많이 들었지만 제대로 모르는 장군의 이름
 

 

중공군의 갑작스런 등장은 자신만만하게 북진을 이끌던 미 8군 사령관 월튼 워커(Walton H. Walker 1889~1950)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적의 공세는 거셌고 지금까지의 북진하였던 길을 뒤돌아 후퇴하여야 했을 만큼, 명령을 내린다고 중공군을 막을 수 있던 상황은 아니었다. 이제 워커에게 부여된 임무는 단 하나, 최대한 후퇴 속도를 조절해 전선을 최대한 빨리 고착화시키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초기 미 8군 사령관이었던 월튼 워커
 

후방에 튼튼한 방어선을 만들려면 우선 중공군의 남진을 최대한 지연시켜 시간을 벌어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공군에 놀라 후퇴하기 바쁜 일선 부대의 분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워커는 바닥까지 떨어진 예하부대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제일선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하였다. 원래 워커는 야전을 돌아다니며 직접 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즐겼지만 지금은 더욱 열심히 돌아 다녀야 할 상황이었다.
 

                      그는 전선을 직접 순시하며 현장에서 지휘하는 저돌적인 지휘관이었다
 

1950년 12월 23일, 워커는 경원축선에서 중공군과 맞서 방어전을 펼치던 미 24사단과 영 27여단을 방문하기 위해 의정부 북방으로 출발했다. 당시 상황으로는 서울을 다시 포기하여야 했는데, 군은 물론 민간인도 함께 안전하게 소개하려면 이들 부대가 좀 더 오래 동안 이곳을 방어해내야 했다. 또한 그는 이번 기회에 미 24사단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는 외아들 샘 워커(Sam S. Walker 1925~)대위도 오랜만에 만나려 했다.
 

          방한한 콜린스 미 합참의장에게 아들 샘 워커 대위를 소개하는 월튼 워커 미 8군사령관. 그는 
          대를 이어 군인이 된 아들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오전 11시 경 워커를 태운 지프가 현재의 서울 도봉동 596-5번지 지점을 통과하여  의정부로 향할 때 반대편에서 남하하던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이 사고로 그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비록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에 비하여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유엔군 지상군의 주력인 미 8군을 이끌며 최전선을 종횡무진 활약하던 명장의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사망 60주년을 맞아 최근 사고현장에서 벌어진 추모제(사진-연합뉴스)
 

이를 안타까워한 미군 당국은 한국에 있던 외아들 샘 워커 대위로 하여금 아버지의 시신을 미국으로 운구토록 조치하였다. 그런데 샘은 남아서 싸우겠다고 고집하여 결국 맥아더가 직접 불러 운구지시 명령을 내렸다. 강골이었던 그의 아버지처럼 전형적인 무인이었던 샘 워커는 이후 최연소 미 육군 대장에 올랐고 이것은 아직까지 미군 역사상 부자가 대장에 오른 두 차례 밖에 없는 희귀한 예가 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훗날 미 육군대장에 오른 아들 샘 워커
 

월튼 워커의 이름은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편인데 그 이유는 사실 호텔 때문
이다. 국내에 변변한 시설이 없어 휴가 때마다 일본이나 태국으로 놀러 가는 주한미군들을 유치할 목적으로 1963년 4월 한강변에 설립한 호텔을 워커 장군으로 이름을 따서 워커 힐(Walker Hill)로 명명하였는데 그 이유는 전쟁 영웅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급 호텔로 자리매김한 워커힐
 

하지만 그는 지난 한국전쟁 당시 가장 위태로웠던 낙동강전선을 성공적으로 사수한 맹장이었다. 그가 지휘한 미 8군과 국군의 분투가 있었기 때문에 아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역전타를 날리고 감격스런 북진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중공군의 참전으로 통일의 꿈이 무산되고 그 또한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한국전쟁 초창기에 그가 남긴 족적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컸다.

 
                  지난 6월에 미 8군 영내에서 있었던 워커 장군 동상 제막식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호텔명 때문에 흔하게 불려지는 것과는 별개로 그가 이러한 인물이었는지 제대로 아는 이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그를 기리기 위해 지난 6월 23일, 사망한지 60년이 지나고 나서야 용산 미 8군 사령부내에서 동상이 제막되었지만 이 또한 일반인들이 접하기는 힘든 위치이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다 바로 이맘 때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 그를 한국전쟁 60주년인 2010년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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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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