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항공모함 테세우스의 한국전쟁 출동기(제 1 편) 
 
 
 

                                                              영 항모 테세우스13,400톤


극동 파견의 명을 받고 영국을 떠난 테세우스는 일차 기항지 홍콩에 기항할 때 까지 항해 중에도 부단한 이착륙 훈련과 공중 기동 연습을 해서 전투력의 수준을 더욱 향상시켰다. 함장은 볼트 대령, 항공대장은 스토빈 브래드포드 중령이었다.
 
 
                                                                     함장 볼트 대령


1950년 9월 24일. 항모 테세우스가 개전 초기부터 참전하여 많은 전공을 세우고 귀환하는 영 항모 트라이엄프로부터 임무 교대와 장비 인수를 하는 동안 항모의 항공대는 작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잠깐 홍콩 카이탁 공항으로 이동했다가 그 날 오후 귀함(歸艦)하였다.
  
드디어 1950년 10월 2일 11시 30분. 테세우스는 성대한 환송 속에 홍콩을 출항하여 한국 전장으로 장도에 올랐다. 저녁에 태풍이 찾아 왔으나 태풍은 수요일에 모두 통과하고 바다는 다시 평온해졌다. 
 
테세우스는 항해를 계속해서 그 다음 목요일 한반도를 마주 보고 있는 일본 규우슈의 군항 사세보에 입항하여 영국 군함 와리어의 옆에 정박했다. 사세보 항은 향후 테세우스의 후방 기지를 하게 된다. 테세우스는 한국 해역 출동준비를 위해 바쁜 이틀간을 보냈다.
  
 
                                             6.25중 사세보 항 - 미 대형 항모 밸리 포지와 레이테


함상 전투기나 공격기들이 추가 공급되었고 각 함재기들에게 피아 식별을 위한 줄무늬들이 그려졌다. 전에 작전하던 트라이엄프의 씨 화이어기가 미 공군 B-29 기총수로부터 오인 사격을 받고 격추되었던 쓴 경험으로 인해 인식 줄무늬를 그리게 된 것이다.
 
사세보 항 인근 이와쿠니 기지에는 예비 전투기들과 이를 관리하는 정비요원들이 배치되었다.
 
10월 7일. 극동함대 사령관 앤드류스 제독은 기동부대 TE 95를 7개의 작은 팀으로 나누어서 이 작은 팀들을 TE 95.10에서 TE 95.16까지로 각각 명명하였다.
 
테세우스와 그에게 배속된 구축함들의 함대는 TE 95.11이 되었다. 이번 출동전에 테세우스는 신형 함상 전투기로 장비가 교체 되었다. 한국 참전 동안 호커사가 제작한 씨 퓨리기가 테세우스의 주력 전투기로 활동하게 되었다. 
 
  
                                           씨 퓨리 기 - 미그 15기도 격추했던 성능좋은 영 해군기다.


이전 트라이엄프의 주력기는 육상 전투기 스피트파이어를 함재기화한 씨 화이어였다. 이 전투기는 육상에서는 명전투기였지만 해상 활동에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었다.
 
직렬 엔진이 달린 긴 기수는 흔들리는 함체의 짧은 활주로에서 뜨고 내리는 데 절대 필요한 시야확보에 제한이 있었고, 육상용이었던 이착륙장치가 거친 함상 사용에 적합하지 않아 착륙시의 충격으로 기체 후부에 주름이 잡히는 금속 피로 현상이 오기도 하였다,
  
 
                  씨 화이어기는 육상의 명기 스피트화이어를 함재기로 개량한 것으로 날개를 접을 수가 있다.
                   그러나 해상 작전에서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씨 퓨리기는 시야가 좋은 성형(星型)엔진을 가졌고 이착륙장치도 해군 전용기답게 무척 크고 단단했다. 새로운 전투기 운영 초기에 자주 일어나는 사고가 이번에도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으나 다행히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해역으로 가는 동안 공격기인 화이어플라이기 한 기가 함대를 선도하며 대잠 초계 비행을 계속하였다. 북한이 개전 전에 이미 소련으로부터 두 척의 잠수함을 인도받았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들이었지만 하여튼 조심해야 했다. 레이다에 나타난 미확인 적기를 향해 긴급 요격 이륙을 하기도 했었지만 공산기가 아니라 거의 미군기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긴급 발진은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유익한 경험 축적이 되었다.
 
  
               영 함상 공격기 화이어플라이 기 - 2인승으로, 동체 후부에 피아인식을 위한 둥근테가 그려져 있다.


테세우스의 함재기들은 육군에 파견된 전방 항공 통제 장교들의 유도에 따라 지상 지원 작전을 할 예정이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지상 공격시 미군의 공격기들은 훨씬 파괴력이 강한 네이팜 탄을 썼지만 영국 해군기들은 주로 통상의 폭탄과 로케트 포, 그리고 기관포탄을 사용 했다.
 
한국은 높은 산들이 많은 산악 국가였기 때문에 구름이 낀 날은 고도의 비행 능력이 요구되어 구름이 낀 날은 긴 산맥을 특히 조심해야 했다.
 
항모의 항공대는 작전 시 통상 하루에 50회(소티)를 출격했었고, 대개 한번 출격에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이 소비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66회나 출격하기도 하였다.
 
무거운 신형기 씨 퓨리기들은 상황이 급할 때 항모의 캐타펄트[항공기 이륙 사출 장치]가 고장 나면 로케트 이륙 추진 장치인 RATOG를 장착하여 비상 이륙하기도 하였다.
  
화이어플라이기나 씨 퓨리 기들을 발진시킬 때 이 장비가 여러 번 사용되었는데 이 장치를 사용하면 항공기 이륙시 항모에 무리가 가는 22노트의 전속력을 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선에 최초로 출동했던 트라이엄프


1950년 10월9일에서 11일까지 3일 간 테세우스가 첫 실전을 경험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항공 공격의 대상은 적의 대공 포대와 군사 통신 체계였다.
 
10월 9일. 씨 퓨리 전투기 편대와 화이어플라이 공격기 편대는 각각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대동강 하구 진남포를 공습했다. 적 군사 시설 타격의 공습 작전은 10월 내내 계속되었다.
 
공격 목표들은 주로 적 보급선의 급소들인 교량이나 철도 등이었다. 적의 보급 교통망을 차단하는 공격은 평양-사리원- 황주사이에 북서쪽에 집중되었다.
 
10월 첫 작전 중 항모의 정비팀들은 최고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 적 소화기 대공 사격이나 대구경 고사포탄 파편들에 뚫린 기체의 구멍 정도는 즉시 당일로 수리가 되었다. 때로는 밤을 세워가며 엔진 전체를 교체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우수한 정비 덕택에 함재기 가동률은 아주 높았다. 항상 탑재 씨 퓨리기 20기 중에 19기, 화이어플라이 12기 중 11기가 출격 가능 상태로 유지되었다,
 
테세우스의 첫 출동은 10월 21일 마감되어[테세우스는 다음해 봄까지 열 번의 출동을 하게 된다.] 정비와 보급을 위해서 일본 사세보 항으로 돌아왔다.
 
첫 작전에서 입증된 테세우스의 새 전투기 씨 퓨리 2기와 새 공격기 화이어플라이 5기의 성능은 영국 해군을 매우 만족하게 만들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 전선에 첫 투입된 영 항모 트라이엄프는 스피트화이어 해상형 개조기인 시화이어와 화이어플라이 1형기로 장비되어 있었는데 이들의 가동률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테세우스의 신형기들은 트라이엄프의 구형기들에 비해서 특히 전투 능력은 물론 가동률도 훨씬 우수하다는 사실을 출격과 정비로서 말해주었다.
 
테세우스의 두 번째 출동은 10월 27일에 있었다. 이날 테세우스는 일본 사세보 항을 출항해서 한국 황해로 향했다. 이번 출동에는 한 손님이 테세우스에 합류했다.
 
미 해군 워세스터 함 탑재 헬기가 진남포 항까지의 해로에 적이 설치한 기뢰발견과 소해(掃海)의 임무를 띄고 테세우스에 파견된 것이다.
 
헬리콥터가 항모 갑판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바람에 테세우스는 여러 제약을 감수해야 했다.
 
함재기 사출 장치(캐타펄트)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로케트 보조 장치로 이륙하는 항공기들은 로케트나 폭탄 또는 보조탱크를 외장하지 못했다.
 
헬리콥터 활용 면적 확보를 위해서 6기의 화이어플라이기는 당분간 항모를 떠나 사세보의 육상 기지에 머물려 있어야 했다. 바다로 출동한 테세우스의 미 해군 헬리콥터는 10월 29일부터 기뢰 수색 작전을 개시하였다.
 
테세우스의 함재기 씨 퓨리기들은 기관포만 무장하고 주로 함과 헬리콥터의 항공 초계와 호위 임무만 수행하였다. 테세우스가 임무를 끝내고 사세보 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육상 기지에 대기하고 있던 화이어플라이기 6기가 다시 테세우스로 돌아왔다.
 
  
                                         북한 철도 교통망은 끊임없는 유엔 공군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사세보에 일시 기항했던 테세우스는 홍콩을 향해 출항했다. 홍콩까지의 항해 3일간 함의 정비팀은 캐타펄트 장치의 가속성능과 착륙 속도 지연 로프의 성능을 개량했다. 테세우스는 홍콩에 정박하고 11월 13일 하루 바다로 출항해서 개량한 사출장치의 성능을 시험했다.
  
한국의 전쟁은 북한군이 패주하고 유엔군이 그 뒤를 쫓아 압록강을 향하여 쾌속 진격중이라, 전쟁의 끝이 보이는듯했다. 테세우스의 승조원들은 한국 원정 임무는 이제 다시 없을 것이고 테세우스는 당분간 홍콩에서 활동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테세우스와 호위함들은 다시 닻을 올리고 집결지 사세보로 긴급 출항했다. 테세우스를 주축으로 한 영연방 기동함대 TG 95.1은 피난민들이 철수하는 진남포 항을 제외하고 전 북한 서해안 쪽의 포구나 항구의 군사 목표 공격 임무를 부여받았다,
 
테세우스의 세 번째 작전 출동은 UN군이 밀리던 12월 4일 있었다. 호위 함정들인 콘코드와 코색, 에버튼 함들을 동행한 테세우스는 사세보를 출항하였다. 테세우스의 씨 퓨리와 화이어플라이기들은 작전지역에 도착하자 곧 집중적인 출격을 개시하였다.
 
함재기들은 전진하는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적지의 교량, 화차, 군수물자 집합소, 그리고 중공군들을 공격하였다.
 
마침 공군들은 전방 기지들이 폐쇄하고 철수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 불리한 시기에 바다의 이동 기지인 테세우스는 공백이 생긴 항공력을 대체하는 능력을 훌륭히 발휘하였다.
 
겨울 바다에서 테세우스 함재기들의 출격은 12월 5일 시작하였다.
첫 임무는 아군들과 피난민이 철수하는 진남포 항으로 진격해오는 중공군들을 공격하는 것이었지만, 전황은 시시각각 악화되고 있었다.
 
12월 8일 두 번째 출격이 있었다. 유엔군을 추격하는 중공군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 날의 총 출격 시간은 무려 115시간으로, 테세우스가 취역한 이래 최대의 기록이었다.
 
10일은 기상이 아주 안 좋아서 김포 기지에 착륙했던 4기의  씨 퓨리기들이 그냥 김포 기지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11일 다시 출격이 있었다. 공격 대상은 전과 같이 적의 보급선인 도로와 철도였다. 적의 철도와 물자 집하장 또는 화차나 도로에서 움직이는 적 차량들이었다.
 
13일 해주와 진남포의 군사 목표들을 공격했다. 함재기들은 진남포 해주 일대 지역에서 대지 공격 임무만  수행한 것이 아니었다.
 
유엔군의 철수로를 따라 지역을 세분해서 저공비행을 하며 혹시 뒤처져서 방황하는 아군이 있는지 확인하는 빗질 수색도 있었다. 낙오되어 헤매는 많은 미군들과 한국군이 목격되었다.
 
14일 테세우스의 함재기들은 처음으로 미그 15 기를 목격했다. 미그 15기는 지상의 낙오병들을 구해서 진남포 앞 바다에 정박한 LST로 이송하던 헬리콥터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었다.
 
테세우스는 14일 세 번째 출동을 마치고 다시 사세보를 향하여 함수를 돌렸다. 그러나 귀항 길에 오르고 몇 시간 되지 않아 사령부로부터 황해 북쪽에서 발견된 중국 어선단을 조사하라는 긴급지시를 받았다.
 
그 어선들이 중공군들을 수송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긴급히 발진한 테세우스의 함재기들은 이들 정크선이 단순한 어선임을 확인하고 이를 본부에 보고했다.
 
이번 출동에서 테세우스의 함재기들은 총 338회의 출격과 전투 출격 시간 838시간의 기록을 올렸다.

테세우스는 사세보에서 재급유와 재보급을 완료하자 다시 바다로 나가 네 번째 출동을 하였다.
 
황해 북쪽 작전 해역으로 북상하는 이틀 동안 기상이 너무 불량하여 함재기를 한 번도 이륙시킬 수가 없었다. 작전 해역에 도착 하고 기상이 쾌청해지자 테세우스의 함재기들은 출격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산야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그런 눈 덮인 지상에서 적의 활발한 움직임이 탐지되었다.
공산군은 남으로 전면 철수하는 유엔군을 추격하고 있었다.
 
  
                                                    압록강을 건너 북한땅으로 들어가는 중공군.
                    이들은 압록강에서 최일선까지 도보로 이동했었기 때문에 주야 항공 공격에 시달려야 핬다.


12월 19일. 테세우스의 씨 퓨리기들은 황주와 사리원 사이 도로에서 이동하는 적 수송대를 네 번에 걸쳐 공격해서 트럭 17량과 적 탱크 3량을 파괴하였다.
 
주로 로케트 탄이 사용되었는데 저공 비행과 로케트 공격은 낮게 깔린 구름과 불량한 시계 때문에 아주 어렵게 실행되었다. 악천후는 계속 되었지만 함재기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출격을 계속하였다.
 
12월 23일. 씨 퓨리기 편대는 평양 서쪽에서 행군 중인 중공군 병력과 차량들을 기총소사해서 타격을 주었다. 장거리 비행이 필요한 평양 동쪽 지역에 대한 초계 비행임무는 미 공군의 전방 활동 기능이 다시 가동 되자 26일부로 종료되었다.
 
평양 동쪽 지역의 장거리 지원에서 630회의 출격이 있었고 총 출격 시간은 1,630분이었다. 영 함재기들이 발사한 로케트탄만 무려 1,400발이나 되었다.
 
테세우스는 12월 28일 오후 사세보로 다시 귀항했다. 여기서 세 명의 새 조종사들이 증원되었고 함은 다시 같은 일본의 다른 항구인 구레 항으로 이동하였다.
 
구레에서 테세우스는 다른 영 항모[航母]인 유니콘 옆에 계류되었다. 테세우스는 유니콘에게 수리가 필요한 두 기의 씨 퓨리기와 두 기의 화이어플라이기를 넘겨주고 대신 정비가 잘 된 세 기의 씨 퓨리기와 한 기의 화이어플라이기를 공급 받았다.
 
 
                                                                영항모 유니콘 14,750톤
                                                        작전 출동보다 주로 지원업무만 했다.


12월 31일 일요일. 테세우스 식구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는 동안 반년마다 한 번 씩 있는 진급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라르킨 중령과 홉킨스 중령은 대령으로 진급했고 화이트와 콤프톤, 톰슨, 그리고 항공대장 스토빈 브래드포드 소령은 모두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구레에서 테세우스는 미 7함대 소속 항모 바동 스트레이츠호 정비진의 도움을 받으며 정밀 장비를 정비를 했다.
 
테세우스의 다섯 번째 출동은 서울을 중공군에게 내준 직후인 1월 5일에 있었다.
 
한국 해역에 도착한 1월 7일에 첫 출격이 있었다. 첫 초계비행의 임무는 최 일선에서부터 진남포까지 해안 지역 정찰, 적 병력의 이동, 선박을 이용한 적 보급 활동의 감시였다.
 
1월의 추운 날씨에 한국 해안의 대부분은 얼어서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해안에서 적이 기뢰를 설치하는 등의 특이 동향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육상 전선에서의 공중 지원 요구는 급증하였다. 영 함대 사령관 앤드류스 제독은 미 5공군 사령관에게 영 해군이 유엔군 지상 병력을 위해서 하루 20 소티 이상의 지상 지원을 해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1월 8일 오후 테세우스의 함재기들은 오산 남방에서 미 육군 25사단을 근접 지원하여 적 병력을 기총과 로케트로 공격했다.
 
영 함재기들의 지상 공격은 미 공군 T-6 표적 지시기의 유도를 따라 행해졌다. 영 조종사들은 작전 상공에서는 자기가 공격하고 싶은 목표를 선택해서 공격 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졌다. 영 해군기들은 지상 지원은 물론 북 서해안 지역과 북한이 패주할 때 폐쇄 했던 북 비행장에 대한 정찰도 게을리 하지는 않았었다.
 


                                                                       씨 퓨리기


1월 13일. 폭설이 출격을 방해했지만 다음 날은 쾌청하여 함재기들의 출격이 가능했다.
 
그러나 몇 기가 출격을 한 뒤 사출 장치가 고장나고 말았다. 이미 상공에는 다른 기들을 기다리며 편대를 짜고 기다리는 씨 퓨리 기들이 있었다.
 
후속기들은 로케트 이륙 보조 장치를 부착하고 이륙할 수는 있었지만 외장(外裝)한 폭탄과 보조 연료탱크는 모두 제거하여야 했다.
 
적 타격에 사용할 무장은 단지 20mm 기관포뿐이었다. 좀 더 가벼운 화이어플라이기는 제대로 무장하고 이륙할 수가 있었지만 씨 퓨리기는 로케트 이륙 보조 장치인 RATOG를 사용하여야 한다.

15일. 묘안을 내서 전투기 계류 위치들을 재조정으로 해서 씨 퓨리기들이 이륙할 수 있었고 화이어플라이 기들도 로케트 이륙 보조 장치로서 이륙할 수가 있었다. 이 날 하이헷트 대위는 1,000번째 무사고 항모 착륙을 기록했다.
 
16일. 테세우스는 새로운 기록인 총 60소티[총출격] 기록을 수립하였다. 미영 합동작전 본부에서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 테세우스가 전 미 5공군에서도 하지 못한 위대한 기록을 남겼다고 치하했다. 16일에 다른 중요 한 일도 있었다. 미 소형 항모 바타안 함이 테세우스와 함께 합동 작전을 위해서 영 함대에 증파되었다.
 
 
                                                             미 소형항모 바타안 16,000톤
                                                      조종사들은 해병대에서 파견되었었다


덕분에 앤드류스 함대 사령관은 자기 휘하의 두 척의 항모를 18일간씩 여유있게 교대로 운행할 수가 있었다.
 
이 조치로 영 항모들은 8일이나 9일간 출격하고 하루는 휴식을 취하고, 사세보에 급유와 보급을 위해서 오갈 때 여유 있게 하루를 더 사용할 수가 있었으며 6~7일간 사세보에서 머물러 정비와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다. 테세우스는 사세보로 귀항하여 휴식과 정비를 했다.
 
이 정박기간 중 "일년 간 최고의 공을 세운" 영국 해군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 수여되는 보이드 컵이 테세우스 조종사들에게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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