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항공모함 테세우스의 한국전쟁 출동기 -제 2 편- 
 
 

 
여섯 번째 출동 때 테세우스는 함에 장비했던 구조기 씨 오터를 내리고, 미 해군이 제공하는 헬리콥터를 대신 적재했다. 복엽기인 씨 오터는 지원 항모 HMS 유니콘으로 이동해서 새 엔진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받을 터였다
 
 
 
                                                               영 수상 비행정 - 씨 오터
                                                         구식으로 보이지만 전후 탄생하였다.


유니콘은 항모였지만 사세보 항에 정박하여 주로 항공기의 정비나 새 항공기의 공급 및 휴식 공간 제공 등의 지원 업무만을 하였다.
 
1월 25일. 테세우스는 출항해서 다시 한국 해역으로 행했다. 여섯번째 출동이었다. 이날 부로 테세우스는 미 항모 바타안과 임무를 교대 했다. 한국 해역으로 이동 도중 새 조종사들은 항모 갑판 이착륙 훈련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한국의 서해안에서 미 해군 함정들이 북 해안 봉쇄, 황해 상공에서 탈출한 조종사 구출과 한국 전선의 최서단 적진에 대한 함포 사격의 임무 수행을 하고 있었다.
 
기상은 비행하기에 아주 좋은 쾌청한 날씨였다. 테세우스는 8일간의 여섯번째 출동에서 408 소티를 출격했다. 임무는 전과같이 이 해안지방 초계와 지상지원이었다.
  
26일에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출격했던 A.C 베반 대위의 씨 퓨리기에 갑자기 불꽃이 튀는 것이 보이더니 나선을 그리며 수면을 향해 추락했다. 그 나선은 함재기가 수면에 추락하여 큰 물보라를 만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베반 대위로부터는 아무런 통신이 없었다.
 
추락지점은 테세우스로부터 10마일 북방이었다. 구축함 코삭이 고속으로 항진해서 15분후에 추락 현장에 도착했으나 생존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영 구축함 코삭 1,450톤 
                                                영국 구축함들은 미 구축참들보다 조금 작았다.
 

27일은 테세우스에게 불운한 날이었다. 케이리 피치 대위 기가 지상 작전 지원중 적 25mm 대공포나 소화기 탄에 명중되어 구축함 누트카 옆 해상에 불시착하였다. 다행히 그는 구축함에 의해서 구조되었다.
  
같은 날 케이리 피치 대위의 항공기가 동두천 부근에서 대공화기에 명중되어 좁은 골짜기 사이에 불시착하였다. 그의 동료들이 미 구조 헬기가 올 때가지 90분간 그를 엄호하며 적군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불시착한 그의 화이어플라이기를 연소시키려고 했던 씨 퓨리기의 되풀이 된 기총 소사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기체는 벌집이 되었다. 씨 퓨리기와 화이어플라이기들은 미 해군 포격의 지상 목표를 발견하는 임무에도 출격했다.
 
29일 씨 퓨리기들은 미 순양함 세인트 폴의 포격을 인천 소재 구 일본 자동차 공장 자리로 유도하였다. 세인트 폴의 8인치 포탄 30발이 공장에 낙하하여 몇 채의 빌딩을 파괴하였다.
 
31일은 출격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고, 2월 1일 출격한 씨 퓨리기가 해주 항의 독크 시설을 폭격하였다.
 
2월2일. 항모가 보유했던 1,463시간의 무사고 착륙 기록은 씨 퓨리 한 기가 거친 바다 위에서 상하로 피칭을 하는 항모에 착륙하려다가 타이어가 터지고 착륙장치 부분이 파괴되는 사건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2월 3일 씨 퓨리기들은 영 순양함 씨런의 화력을 인천 서쪽 표적들에게 유도하였다.
 
 
 
                                                             영 경순양함 씨런 8,800톤


영 항모 함재기들의 초계 범위는 수원과 김포 일대를 포함한 서울 북서지방이었으며, 이 지역에 추락한 미 모스키토 기 조종사가 헬기에 구출되는 동안 엄호하기도 했다.
  
2월 3일은 테세우스의 여섯번째 출동의 마지막 출격일이었다. 이날 테세우스가 속한 17항모단은 66회의 기록적인 출격을 하였다. 대잠 초계비행 임무에 동원된 소수의 기를 제외하고 모든 화이어플라이기들이 총 출동하여 수원의 북서쪽 지역의 적 점령 마을과 적 참호, 안양 주변에 설치된 적 대공포대들을 공격하였다. 이 공격후 옹진 반도와 해주 비행장을 정찰 비행하기도 했다,
  
미 항모 바타안과 임무 교대를 한 테세우스는 일본 구레 항으로로 돌아왔다. 테세우스는 48시간동안 구레 항에 정박하면서 귀국 희망자들을 위한 절차를 밟았다.
 
 
                                                                   항진 중인 테세우스


2월 12일 테세우스는 구레 항을 출발하여 한국 해역으로 돌아왔다. 일곱번째 출동이었다. 2월 13일 일곱번째 출동을하면서 새로 부임한 조종사들을 위한 비행 연습을 했다.
 
일곱번째 출동에는 영 연방 해군의 코뮤스, 카유가, 아타바스칸과 누트카등이 호위 함대를 이루어서 동행하였다.
 
다음 날인 14일. 미 5공군은 육상 기지에 낮고 짙게 드리워진 구름때문에 출격을 못하였고, 영 함재기들만이 출격할 수가 있었다.
 
화이어플라이기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두 팀은 서울 북서쪽의 지상군 지원임무에 출동하고, 다른 두 팀은 초계 임무에 나섰다.
 
씨 퓨리기들은 서울과 평양사이 도로와 사리원과 해주 일대의 정찰 비행을 실시하면서 의심 목표를 공격하였다.
 
항모에 화이어플라이기들이 착륙하던 중 한 기의 기관포 3문이 오작동으로 발사되어 이착륙 관제사 J. F.위그리 준위를 사망하게 만들었다. 그는 다음 날 정중한 해군 의식으로 수장되었다.
 
2월 15일 진남포항 주변의 바다 얼음들이 녹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사실은 공산군들이 다시 기뢰 설치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 해역에 대한 정찰과 감시가 강화되었다.
 
  
                                                              테세우스와 항공대 부대원들


2월 17일. 이틀간 불량한 일기로 출격을 못하다가 출격한 화이어플라이기들은 인천 서북방 구역을 집중적으로 초계하였다. 출동의 마지막 출격 목적은 진남포 일대의 적이 수리한 철도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평양역에서 은폐되어 있다가 파괴 된 북한 기관차


같은 날 화이어플라이기들은 원주에서 미 9군단의 지상 작전을 지원하였다. 일곱번째 출동은 2월 23일부로 종료되고 테세우스는 임무를 미 항모 바타안에게 인계하고 사세보 항으로 향하여 항진, 다음날 저녁에 도착하였다.
 
 3월 4일 테세우스는 사세보 항을 출발하여 여덟번째 출동을 하였다. 
  
해상 작전은 출항 당일부터 개시되었다. 군함 케니아와 그 호위함들이 북한 해안을 포격하는 동안 공중 초계가 진남포에서 구사성까지 집중적으로 행해졌다. 공산 측에게 이북 서해안에 대한 상륙작전이 임박했다는 오판을 하게 만드는 위장작전이었다.
 
화이어플라이기들은 초계와 정찰과 교량 폭격을 했고, 씨 퓨리기들은 케니아의 포격을 집중 지원 하였다. 함재기들은 틈을 내어 옹진반도와 해주의 적 비행 기지들을 정찰했다.
 
3월 6일. 기상이 나빠져서 화이어플라이기와 씨 퓨리기는 제한적인 공중 초계만 할 수가 있었다. 이 날은 씨 퓨리기들만 출격해서 해주 서쪽의 도로에 대한 감시 비행만 했을 따름이었다. 3월 7일 역시 해안 포격을 하는 케니아에 대한 지원과 초계를 하였다.
 
3월 8일. 테세우스 함재기들은 서울 -개성- 신막 지역을 정찰하고 철도역과 화물 집적소를 공격하였다. 이날도 순양함 케니아의 연안 포격을 위한 지원 비행이 있었다. 이어서 미 1기병사단에 대한 지원 지상 공격을 하였다.
 
9일은 출격을 쉬었고 다음날 10일은 기상 악화로 출격이 없었다. 11일은 다른 날과 같은 임무의 출격이 있었다. 
 
12일에 화이어플라이기들은 황해도 장연과 옹진 일대를 정찰 비행 중에 황주 남방에서 공산 측의 심한 대공 사격을 받았다. 이날 제임스 대위는 4,500피트 상공을 비행 중에 적의 대공사격에 피탄 되었다.
 

그는 동료 조종사 존슨 대위와 함께 미 공군 기지가 있는 수원 비행장으로 겨우 비행해서 착륙했다.그는 그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귀함하였다. 
 
 
 
                                                                  미 공군 수원기지
                  1953년 북한기의 야간 공습으로  9기의 피해를 본 뒤 기체 엄폐를 위한 방벽이 설치되었다.


여덟번째 출동의 마지막 날 함재기들은 강산사와 진남포 사이를 초계하다가 황해도 장연 상공에서 적의 격심한 대공포화를 만났다.겨우 대공사격 지대를 벗어났지만 조금 뒤 G.H 쿨스 대위와 D.W 가이 대위의 화이어플라이기가 추락했다.
 
대공포화나 아니면 장착한 폭탄이 오작동으로 폭발했을 것이었기 때문으로 추측 되었다. 동료들은 추락 현장을 맴돌며 지켜보았으나 아무런 생존자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테세우스의 상공을 나르는 화이어플라이기들


비극적인 함재기의 손실이 있었지만 테세우스는 예정대로 그날 오후 사세보 항으로 회항하여 다음날 오후에 기항하였다. 여덟번째 출동에서 테세우스는 공격성 총 출격 226회 방어성 총 출격 113회를 기록하였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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