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랜드 항공전 -제2편-

이틀 뒤인 5월 4일 아르헨티나의 낡은 P2V 넵츈[미국 록키드사 제조] 초계기는
포트스탠리 항 남쪽 85마일 해상에서 영국 기동 함대를 발견했다.


넵츈은 급상승해서 함대의 전모를 살펴보고 리오그란데
기지에서 대기 중이던 두 대의 슈페르에땅다르기에 필요 정보를 통보했다.


                                         미 록키드 사의 P-2 넵츈기


두 해군 기는 프랑스 제 함대함 엑소세 미사일을 장비하고 있었다.
슈페르에땅다르 기들은 200마일의 거리를 해면 15미터의 저공 비행으로 영국 함대에 접근했다.


목표가 가까워오자 아르헨티나 조종사 조시아는 고도를 40미터로
올리고 짧은 순간 슈페르에땅다르기의 레이다를 작동시켰다. 그는 레이다 화면에 뜬 백색 물체를 확인했다. 영국 구축함 쉐필드 함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영국 구축함 쉐필드 함



쉐필드 함에서 20마일 더 멀리에 항모가 있었으나 조종사는 쉐필드의
대공 미사일 망을 통과해서 더 비행하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두 기는 바로 앞에 있는 쉐필드에 엑소세 미사일을 발사하고
기수를 
빠르게 돌려 그 곳을 이탈했다. 발사 거리는 12마일이었다.


슈페르에땅다기르 조종사 조시아가 짧은 시간 가동했던 레이다의 전자파는
영국 구축함 쉐필드에게 감지 당했다.


적기가 지척에 출현했음을 안 쉐필드 함의 함교(艦橋)는 당황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두 기가 발사한 엑소세 미사일 한 발은 날아 가다가 목표를 잃고
바다에 추락했으나 한 발은 12마일의 짧은 거리를 번개같이 날아 쉐필드 함의 함체 측면을 강타했다. 이어서 발생한 화재로 20명이 전사했다. 나중에 중상자 중 5명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화재가 극심해서 결국 쉐필드 함은 계속 연소하며 표류하다가 10일 뒤에
침몰하고 말았다.


영국 구축함 쉐필드가 아르헨티나 해군의 슈페르에땅다르기에게
격침당하자 영국군은 이들 5기의 육상 기지인 리오그란데 기지를 특공대로 기습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실행되기 전에 취소되었다.


대신 포크랜드 해역으로 출동했던 다섯 척의 영국 해군 잠수함으로하여금
아르헨티나 12마일 영해 밖에서 초계선을 만들어 공격해오는 아르헨티나 전투기들에 대한 조기경보를 하도록 하였다.


구축함 쉐필드가 격침 당하는 날은 영국 해군에게 불운한 날이었다.
포크랜드 서남단에 있는 구스그린이라는 작은 도시 인근의 비행장을 공습 나갔던 항모 험즈의 씨 해리어기도 대공포에 격추되었다.


조종사 닉 테일러 대위는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쉐필드 함의 피해에 놀란 영국 기동 함대는 섬에서 더 멀리 떨어진 해
역으로
일단 이동했다.


씨 해리어기의 격추가 주는 교훈은 씨 해리어기가 결코 대지 공격에
적합한 기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씨 해리어기기는 해상 초계와 제공권 확보에만 사용하기로 결정 되었다.
포크랜드의 대지 공격은 곧 수송선에 운반되어 도착할 영국 공군의 해리어기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영국 공군의 육상용 해리어 기[GR.3기]들은 지상 공격을 위한
컴퓨터 시스템과 항법 시스템들을 장비하고 있어서 더 안전하고 더 정확하게 폭격을 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씨 해리어기를 찾아 온 불운은 계속 되었다.
이틀 뒤 공중 초계 중이던 두기가 항모의 레이다에 나타난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안개 속으로 사라진 뒤에 영원히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두 조종사들, 존이튼 존스와 알커티스는 함대 항공대의 가장 긴
비행 시간을 가진 노련한 조종사들이었다.


두 기의 실종으로 두 척 항모를 주축으로 하는 기동 함대는
겨우 18기의 씨 해리어기만 가용하는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불운은 아르헨티나 공군에게도 닥쳤다.


5월 9일
4전투 비행단 소속 스카이호크기 두 대가 구름 속을 비행하다가 산에 부딪혀 추락했고, 사흘 뒤 영국 함대를 공격하던 스카이호크기 편대 세 대가 영국 함대에서 발사한 씨 울프 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다.


아르헨티나 해공군이 초 저공에서 투하한 영국제 1,000파운드의 폭탄은
잘 폭발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발견한 아르헨티나 조종사들은 적어도 60미터 이상의
은 고도로 상승해서 폭탄을 투하하여야 했다. 이 고도는 영국군의 미사일 명중이 가능한 위험한 고도였다.

아르헨티나 군은 저공에서 왜 폭탄이 작동되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는 고도가 낮은 위치에서 투하할 경우 폭발로 인해 기체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특별히 세팅된 신관 때문이었다.[타이머 역할을 하는 폭탄 후미의 프로펠러가 어느 정도 돌아야 신관이 작동했는데 영국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비밀로 했던 이 사실을 영국의 BBC가 보도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도 알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폭탄에 저공에서도 안전하게 투하가 가능하도록 급조치를
해서 6월 8일부터 이 폭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불발탄은 계속 발생했다.

5월 18일 영국 화물선 아틀랜틱 컨베이어가 영국 공군의 해리어기[GR.3]와
해군의 씨 해리어 기 두 종의 전투기와 필요 물품을 아센션 섬으로부터 운반해왔다.



                               아트란틱 컨베이어 함-나중에 엑소세 미사일에 침몰


공군과 해군의 해리어기들은 컨베이어 호의 선상에 두 개의 컨테이너로 임시 가설한 이륙장에서 수직 이륙하여 영국 항모로 이동해왔다. 전쟁 중 파견 된 공군의 해리어기[GR.3]는 총 8대였다. 이들은 두 항모의 전력을 크게 보강시켰다.


5월 하순이 되자 작전의 포커스는 포크랜드 북쪽
산 카르로스 만이라는 곳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이 곳은 영국군이 상륙하기로 예정된 곳이었다.

아르헨티나 해공군은 섬들 사이의 좁은 해협에 위치한 산 카르로스 만을 공격하기 위해서 해협 요소요소에 배치된 영국 호위함들의 대공 화망을 뚫어야 했다. 나중에는 영국 육군의 대공 미사일 부대까지 배치되었다.

영국군은 이곳을‘폭탄 골목’이라 불렀다.
아르헨티나 공군이 이런 위험한 곳에 죽자살자 뛰어들어 수 없는 폭탄 공격을 가했었기 때문이다.


5월 21일 영국은 이 산카르로스 해협의 해변에 상륙 작전을 개시하였다.
총 4천명의 영국군이 이날 산 카르로스 만으로 상륙했다.


원래 이곳이 인적이 드문 곳이고 일기까지 불순해서 아르헨티나 군은
상륙 초반에는 저지를 위한 아무런 작전을 하지 못했다.



                                             포크랜드 전투 상황도 
        산 카르로스 만과 구스 그린,피츠로이만, 포트 스탠리 등 이 글에서 등장하는 지명이 다 보인다.


교두보를 확보하고 각종 장비와 물자를 양륙하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날씨가 맑아지면서 시계가 좋아 졌다.


영국군이 상륙을 개시한 것을 안 아르헨티나 공군은
결사적인 파상공격을 해왔다.


첫 공격에 나선 전투기는 6기의 이스라엘제 대거기들이었다.
이들은 남쪽을 경계하는 영국군의 허를 찔러 북쪽 바다에서 부터 기습해왔다.


첫 공격에서 투하한 폭탄은 화물선 안트림 호에 명중하여
선내로 깊이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천행으로 폭탄은 불발탄들이었다.
아르헨티나 공군의 미구엘 카레로 대령은 그 때 중위로서 공격에 참여했었는데 후에 이렇게 회상했었다.

“우리는 단지 7,500리터의 연료만 가지고 출격했습니다.
폭탄은 두 발만 적재했지요. 이것만 해도 전투기의 한계 적재량을 오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르헨티나 남부 포크랜드 맞은 편 본토 티에라델푸에고에
있는 리오그란데 기지에서 이륙하였다.


“ 이륙 후 바다 위를 15분간은 무선 항법장치로, 그리고 나머지 15분은 
지상 레이다에 유도되어 비행했었지만 남은 비행은 나침반과 시계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공군 소장인 호라시오 미르 곤자레스는 그때 소령으로
공격 편대를 이끌고 있었다.


“우리는 리오그란데 기지에서 이륙해서 포크랜드까지 한 시간 45분정도
비행해서 공격하고 되돌아 왔습니다. 기지 귀환 비행은 단지 45분간의 여유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기지에 착륙할 때 연료 탱크의 연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상륙 첫날 터보 프롭 엔진 두 기가 달린 아르헨티나 토종 공격기
푸카라도 용감하게 함대를 공격했지만 아덴트 함에 격퇴되었다.


                                     아르헨티나 제 쌍발 터보 프롭 공격기 푸카라


이어 전투 초계 중이던 영국 조종사 샤키 와드는 아르헨티나 공군의
후안 톰바 소령이 조종하는 이 토종 공격기를 추격해서 30mm 아덴 기관포로 사격했다.

그러나 톰바 소령은 느리고 둔한 그 쌍발 공격기를 노련하게 조종해서 회피 기동을 했다.


씨 해리어기의 첫 공격에 수평타가 날아갔고, 두 번째 공격은 오른쪽 엔진을 파괴하였고,
세 번째 공격은 왼쪽 엔진을 날려버렸다.
그래도 이 쌍발기는 당분간 비행을 계속하다가 추락했다. 톰바 소령은 탈출해서 생존했다.


그는 나중에 구스그린에서 진격해온 영국군에게 붙들려 포로가 되었다.
그는 영어를 잘해서 이후 영국군 최고의 통역장교로 활동을 하였다.


전 시대적인 이상한 전투기를 조종하여 용감하게 영국 함대를 공격한
그는 영국 함대 장병들에게 영웅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날 영국 해군 조종사 닐 토마스와 마이크 브리센은 함대에 접근하는
네 대의 스카이호크기를 요격해서 한 기를 확인 격추하고 한 기는 미확인 격추했다.


그렇게 전투기들이 격추되는데도 아르헨티나 전투기들은 계속 날아왔다 .


앞에서 인용했던 편대장 곤자레스 소령은 땅에 닿을 듯한 저공으로
산 카르로스 만 언덕을 넘어갔고, 시야에 영국 상륙함대가 들어왔다.


그는 영국 상륙함 중 13척이 대공 유도 무기 체계를 갖춘 호위함들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
더 다가가 이들의 대공 화망에 뛰어 드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어쩔 수없이 그는 가장 가까운 호위함에 폭탄 한 발을 던지고
역시 해면을 거의 미끄럼 타듯 비행하며 수많은 수송선들 사이를 빠져 도주하였다.


그러나 함대 접근 중 그의 편대기 한 대가 영국군 씨 해리어기 조종사
롭 프레데릭슨 중령에게 격추 당했다.


뒤이어 나타난 6대의 스카이호크기가 호위함 아르고나트에
두 발의 1,000파운드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두 발의 폭탄은 함내 깊숙이 뚫고 들어왔지만 폭발하지 않고 처리되었다. 그래도 함의 내부에 상당한 파손을 입혔다.



                                       아르헨티나 해군의 A-4 스카이호크 기


앞서 말한 곤자레스 소령의 편대는 호위함 아덴트 함에 저공으로 육박하여 폭탄을 투하 했는데 그 중 1,000파운드 폭탄 한 발이 명중하였고 두 발은 함 옆 해면에 떨어졌으나 폭발하지 않았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아르헨티나 공군 5비행단의 스카이호크기들도 상륙 교두보로 
돌격해 들어왔다. 이미 대파된 아덴트 함은 두 발을 더 맞았다.


세 대의 대거기들이 뒤따라와서 구축함 브리리안트 함에
기총소사를 했지만 801편대의 씨 해리어기 조종사 와드와 스티븐 토마스에게 격추당했다.


이어서 나타난 세 대의 아르헨티나 해군 스카이호크기들이 대파된
아덴트 함에 500파운드의 지연 폭탄 두발을 투하했다.


이 공격 뒤에 영국은 아덴트 함을 포기하였고, 그날 늦은 오후에 침몰하였다.


                                             침몰한 아덴트 함


영국군 상륙 작전에 출격하여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던 이들 세 대의 스카이호크기들은 무사히 귀환하지 못했다.


초계하던 800항공대의 씨 해리어기들이 기습을 가하고
도주하던 스카이호크기들을 추격해서 세 대 모두 격추시켰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공격을 멈춘 아르헨티나 해공군은 스카이
이호크기 5대, 대거기 5대, 쌍발 푸카라기 2대를 잃었다.


그 중 9기는 영국 해군의 씨 헤리어기들에게 격추 된 것이고
나머지는 영국 해군과 육군 대공포화에 희생되었다.


한편 이 상륙 작전의 첫날 포크랜드 섬의 지상 표적을 공격하던
영국 공군의 해리어기[GR.3기] 한 대와 헬리콥터 한 대가 아르헨티나 군의 대공포화에 격추되었다.


- 다음회(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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