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랜드의 항공전 - 제 1 편-




포크랜드는 영국령이고 주민들도 영어를 말하는 영국인들이었지만
포크랜드를 말비나스라고 부르던 아르헨티나는 오랜 기간 동안 그 섬의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1982년 아르헨티나의 정권을 잡고 있던 군부는 포크랜드를 점령해도
영국이 그 먼 곳까지 군사력을 파견해서 탈환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말비나스 섬을 접수하기 위한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아르헨티나 군대는 1982년 4월 2일 포크랜드의 수도
포트스탠리에 상륙하여 이를 점령했다. 주둔 병력이 일개 소대도 되지 못한 영국 해병대는 항복했다.



                                             포크랜드 전쟁 지도
                         포크랜드 제도의 위치와 아센션 섬,그리고 사우스 조지아 섬


비록 노쇠했지만 자존심에 먹칠을 당한 대영제국의 국민들은 격앙했다.

철나비라는 별명을 가진 마가렛 대처 여사는 TV에 나와 대노한 모습으로 포크랜드의 탈환 계획을 공식 선언했다.


영국은 두 척의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원정부대를
구성했다.


항모 두 척은 험스[HMS Hermes]와 인빈시블[HMS Invincible]이었다.
구형 인빈시블은 이미 퇴역이 결정되어 고철로 팔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해군의 항모 인빈시블



그러나 포크랜드가 침공 당하자 두 항모에 즉시 비상이 걸리고, 다음날에는 2개의 해군 씨 해리어기 항공대가 두 항모에 배치되어 출동 준비에
들어갔다.


포크랜드 탈환을 위한 코포레이트 작전이 발동 된 것이다.

※ 영국 해군이 사용하는 씨 해리어기는 공군의 해리어기[GR.3로 통칭]와 외양도 비슷하고 수직 이착륙하는 것도 같았으나 다른 점들이 있었다.


씨 해리어는 소금기 많은 해상 운용을 위해서 주요 기체 부품에
부식 방지 처리가 되어 있었고, 좁은 항모에서 이착륙에 필요한 양호한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서 조종석의 캐노피 방풍유리도 전방이 잘 보이도록 더 둥글게 튀어 나와 있었다.


두 항모는 스키 점프대 같은 비행 갑판이 있어서 씨 해리어기는 수직 이륙하는 것 보다 더 많은 폭탄을 적재하고 출격할 수가 있었다.

블루 폭스라 불리는 해군 씨 해리어기의 레이다도 성능이 강력해서 유효 탐지 거리가 더 길었고 공중 뿐만아니라 해상 탐지 능력도 있었다.

씨 해리어기는 아직 신 기종이라서 그 성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중이라 실전 능력은 미지수였다.


 

                                          영국 해군의 씨 해리어기


그러나 이 전투기는 포크랜드 전쟁에서 서방 세계에서 만든 잡다한 전투기들과 한판 승부를 겨루어 그 능력을 입증했다.

출동 전 해군은 조종사가 부족해서 공군[royal air force]에 부탁하여 두 명의 해리어 조종사를 지원 받았다.


이들은 수송함으로 후속하는 예비 항공대에 배속되어서
전쟁 중반기부터
출격을 시작했다.


씨 해리어기에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미국이 급거 공급한 공대공 미사일 사이드와인더[ Sidewinder-L ]
L형은 해군 조종사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사이드와인더 L형 신형 유도탄은 아주 예민한 최신형 센서가 있어서
조준기 밖에 있는 항공기도 추적해서 격추 시킬 수 있는 광각(廣角) 발사 능력이 있었다.


한 군사 소식통은 이 미사일이 재래 사이드와인더와 달리
적기의 후방이 아니라 전방에서 발사해도 적기의 기수에서 공기 마찰로 발생한 미세한 열을 감지해서 명중하기 때문에 적기에 대한 정면 발사가 가능하다고 말한 바있다.



                                            사이드와인더 9- 엘 형


영국 해군 주력 함대는 1982년 4월 6일 영국 포트머스 항을 출발했다. 함대는 먼저 남대서양 영국령 아센션 섬에 도착해서 지중해에서 이동한 다른 영국 함대와 만나 포크랜드 탈환 기동 함대를 꾸려 4월 18일 4,000마일 남쪽의 포크랜드 제도로 출발했다. 씨 해리어기가 출격 개시가 가능한 해역 도착 예정은 4월 30일이었다. 포크랜드 공략 기동 함대 사령관은 존 샌디 우드와드 해군 소장이었다.


 

                                     함대 사령관 존 샌디 우드와드 제독


한편, 아르헨티나 해군들도 모두 출동해서 4월 29일 작전 위치에 배치 완료된 상태였다.


아르헨티나 해군도 '5월 25일'함[ARA Veinticinco de Mayo]이라는 영국제 구식 항모를 보유했었고, 해군 항공대는 미 해군기였던 A-4 스카이호크기와 프랑스제 슈페르에땅다르 함재기와 엑소세 대함 미사일로 장비 되어 있었다.



                    아르헨티나 5월 25일함 - 영국 항모 였다가 아르헨티나에 매각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공군은 여러 기종의 잡다한 전투기와 공격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해군과 같은 스카이호크기도 있었고 프랑스제 미라주기,
이스라엘에서 미라주5기를 복제 생산한 대거기, 영국제 칸베라 폭격기, 아르헨티나 고유 디자인인 쌍발 터보 프롭기인 푸카라 공격기도 있었다.


아르헨티나 육해군의 전체 보유기는 대서양에서 출동하는 영국 함재기 보다
10배나 더 많았지만, 포크랜드로 출격 가능한 아르헨티나 남부 리오그란데 기지에 전개된 전투기는 36기뿐이었다.


나중에 여러 기가 추가되어, 포크랜드에서 싸운 아르헨티나 전투
기는 50기였다. 영국 기동 함대가 가동한 씨 해리어기는 총 34기였다.

첫 항공전 개시의 포문은 포크랜드 공략 함대가 도착하기 전인
4월 25일, 포크랜드에서 남쪽으로 800 마일이나 떨어진 사우스 조지아 섬에서 열렸다.


영국 해군의 웨섹스 헬리콥터가 사우스 조지아 섬 그리트비켄 항에
정박중인 아르헨티나 잠수함 산타페[산타페는 미 해군 구피급 잠수함]를 폭뢰로서 공격한 것이다.


산타 페는 격침되고 섬을
점령하고 있던 소수의 아르헨티나 군은 영국 코만도 부대에게 항복했다.


영국 코만도 부대는 이미 포크랜드로 향하고 있던 27,000톤급의
보급 선, 타이드스프링호에 승선하고 있던 병력이었고, 이 대형 수송선은 급히 파견한 여러 척의 영국 전투함대와 같이 사우스 조지아 섬을 탈환했었다.


뒤이어 영국 공군이 포크랜드 탈환 작전의 서막을 여는
대 장거리 폭격을 단행했다.


출격한 날은 5월 1일 이었다. 동원한 폭격대는 와딩톤 공군 기지에 소속된 아브로 벌칸 폭격대였다.



            벌칸기는 50년대 냉전 시기에 소련에 핵폭격을 할 목적으로 제작된 4발 델타익 폭격기였다. 
            
25살이나 된 이 낡은 폭격기들은 곧 퇴역 예정이었다. 그러나 먼 남쪽에서 발발한 전쟁은 
            이들 노 폭격기들에게 은퇴 전 마
지막 화려한 실전 활약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이들 폭격기들은 영국에서 장거리를 날아 먼저 아센션 섬으로 이동했다.



남대서양을 세로로 가로질러 왕복 15,000키로라는 사상
최장의 출격 거리를 기록한 이 첫 도양(渡洋) 폭격에는 두 기의 벌칸기만 출격했으나, 동행한 빅터 급유기는 무려 11기였다.



                            영국 헨드리 페이지 빅터 폭격기를 개조한 급유기도 있다.


첫 출격에서 벌칸기 한대의 엔진 고장으로 급유기 한대는
임무를 포기하고 아센션 섬으로 돌아갔다.


위더 대위의 벌칸기와 10기의 빅터기는 그대로 긴 거리를 직행해서
포크랜드 중심 도시인 포트 스탠리 공항 활주로를 야간 폭격했다.


3만 5천 피트의 고공에서 21발의 폭탄이 투하되었는데 단지 한 발만이
명중하여 활주로에 큰 구멍을 팠을 따름이었다.


이틀 뒤에 똑같이 대군의 급유기를 동행하고 포크랜드를 찾아간
벌칸기 한대는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초기 벌칸기들의 폭격은 폭격 타격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수확을 거두었다.


아르헨티나 공군은 단 한 개의 구멍을 파기 위에서 15,000킬로를
날아 오는 이 미치광이들이 비행거리가 휠씬 짧은 북쪽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인들 안 찾아오겠느냐는 불안에 다수의 전투기[미라주기]들을 수도 주변에 배치해서 포크랜드 공격 항공력을 그만큼 약화시켰다.


5월 1일 상륙이 임박했다고 생각한 아르헨티나 공군은
무려 36기의 전폭기를 출격시켰다.


작전 해역에 도착한 항모 인빈시블에서 이륙하여 공중 초계[COMBAT
AIR PATROL] 비행을 하던 씨 해리어기들은 함대 레이다의 유도로 서쪽에 나타난 비행 물체들과 조우했다.


아르헨티나 공군의 미라주기 6대였다.
3만 5천 피트를 나는 미라주기들은 영국 해군의 해리어기들이 단연 강점을 가진 저공으로 하강하는 것을 주저하였고, 영국 공군은 고공 전투 능력이 뛰어난 미라주3기와 높은 고도에서 격돌하는 것을 원치 않아 두 적들은 상과 하에서 서로 흘겨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선수는 미라주기가 먼저 쳤다.
연료 부족에 조바심이 난 미라주기가 급강하해서 해리어기들과 얽혀 들었다. 영국 해군의 바튼 대위가 발사한 사이드 와인더가 미라주기의 조종석 후부를 강타해서 조종석 전체를 날려 버렸다.


동료 조종사 스티븐 토마스가 발사한 미사일은 구름 속으로 피신하는
다른 미라주기를 파손시켰다.


피격 된 미라주기는 본토 귀환이 불가능하자 기수를 포트스탠리 공항으로
돌려 비상착륙하고자했으나 공항에 배치된 아르헨티나 대공 포대의 사격에 격추되고
말았다.


같이 출격한 이스라엘제 미라주기인 대거기 3대가 함대의 일부 함정에
폭탄을 투하하고 30mm 기관포를 발사하기도 했으나 투하한 폭탄들은 모두 빗나갔다.


                                      아르헨티나 공군의 대거기
           이스라엘이 프랑스 미라주5형기를
국산화한 NESHER기가 원형으로 아르헨티나에 수입되면서
          
대거기로 이름을 개명했다.


두 대의 대거기가 역시 이스라엘제인 열 추적 샤르피르 미사일을
토니 펜폴드와 마틴 헤일 대위가 조종하는 씨 해리어기에 발사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명중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거기 한 대가 펜폴드 대위의 미사일에 격추 당하자 모두 기수를 돌려
본토로 도주했다.


포크랜드로 출격했던 아르헨티나 공군의 영국제 캔버러 폭격기
한 대도 이날 격추 당했다.



                                          영국 쌍발 공격기 캔버러


공군이 대거 출격한 같은 날, 아르헨티나 항모 '5월 25일’함도 200마일 북쪽에서 영국 함대를 공격하고자 폭탄을 장비한 A-4 스카이호크기를 출격시키려 했으나 낡은 항모의 카타펄트는 폭탄을 만재해서 무거워진 스카이호크기를 발진시키지 못 했다.


다음날인 5월 2일 아르헨티나의 순양함 벨그라노함이 영국
핵 잠수함 콘쿼러함에게 격침당하자‘5월 25일’함은 겁을 먹고 항구로 도피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바다로 나오지 않았다.


전쟁 개시 며칠 만에 상황은 아르헨티나 측에 별로 안 좋은 쪽으로
정리가 되었다.


미라주기들은 모두 벌칸 폭격기의 내습을 경계하고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올라갔고 대거기와 스카이호크기, 슈페르에땅다르기들만이
영국 기동부대의 씨 해리어기들과 맞서는 형국이 되었다.


해군기인 스카이호크기와 슈페르에땅다르기는
공중 재급유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대거기는 그 기능이 없어서 리오그란데 기지에서 포크랜드까지 간신히 왕복 비행 할 능력밖에 없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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