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상 규정된 자와 국군이 관리하는 포로가 지은 죄 등은 어디에서 재판을 받을까요?
아시다시피, 바로 '군사법원'이죠.

"그런 범죄 처리안하면 군사법원 아니잖아요?"
"아니, 다들 표정들이 왜이래요? 군사법원에서 처벌 많이 받아보신 사람들처럼." 


                            모 방송 행복전도사 왈, "그런 범죄 처리안하면, 군사법원 아니잖아요?"


대한민국헌법에는, 군사재판을 위한 특별법원으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군사법원법」에서는 군사재판을 관할할 군사법원의 조직, 권한, 재판관의 자격 및 심판절차와 군검찰의 조직, 권한 및 수사절차 등을 규정하여 군사법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에서는 이군사법원법」의 일부조항을 개정하고 있답니다.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지요.

첫째, '양형위원회' 조직, 운영, 양형 기준의 효력 등 관련 조항을 추가하고자 합니다.
대법원에는「법원조직에 따라 '양형위원회'를 두고 있는데요, "양형"이란 형벌의 종류와 양을 정하는 과정으로 양형위원회에서는 형벌의 종류와 양형기준을 설정, 변경하고 그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일 수가 있답니다.

현재 군사법원에서는 임시 양형위원회가 열리고 있는데요, 금번군사법원법일부조항 개정은 '양형위원회'을 설치, 상시 운영하기 위한 법적근거를 마련하여 군 범죄 형량에 대한 기준 연구를 지속하고 좀더 신뢰성있고 객관적인 양형 기준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이는, 향후 인권보장과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군사법원의 새로운 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임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군사법원의 양형위원회

 

둘째, 군검찰관 및 군사법경찰관의 수사장구 및 무기 사용의 법적 근거를 만들고자 합니다.
일반경찰의 경우「경찰관직무집행에 범인의 체포, 도주 방지 등을 위해 최소한으로 경찰장구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군사법경찰관과 군검찰관 수사 시에는 그러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입니다. 이에, 군 수사업무도 적법하게 수행하고 직무수행자와 기타 제3자의 생명, 신체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필요 최소한 범위의 수사장구(수갑 등) 나 무기(가스총, 전자충격기 등)를 사용할 수 있도록군사법원법개정이 필요합니다.
 
혹자는 이것이 직무수행시 악용될 소지가 있음을 우려하기도 하시지만,경찰관직무집행법과 마찬가지로 무기 사용의 경우 범인이 무기나 흉기를 소지하여 세 차례 이상의 투항명령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구체적 사용 기준을 명시하려는 것이랍니다.




그 밖에 이번군사법원법개정을 통하여 '군검찰관'이라는 딱딱하고 엄격하게 느껴지는 용어를 '군검사'로 변경하고 미비점을 개선하고자 한답니다.

군사법원은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수행하는 동시에 국민들에게 양질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재,군사법원법」개정은 '입법예고'를 통한 의견수렴 단계에 있습니다. 군 사법기관의 재판의 공정성과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는군사법원법개정이 절실하다라고 감히 말씀을 드려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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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시점을 2015년으로 연기한 것과 관련하여 논란이 많습니다.


                                                    한미동맹, 전작권 전환 연기에 합의


'전시작전통제권'이란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과 미군 및 美증원군에 대한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며 그 중 '핵심은 美증원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입니다.

美증원군이 우리 안보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 규모가 69만 여명의 병력, 함정 160여척, 항공기 1,600여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현재 주한미군 규모가 2만 8,500여명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전속결의 현대전 성격상 美증원군의 '전개여부'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개속도'가 중요하므로, 이를 위한 전시지원(WHNS)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미 '전시지원 시범식교육' 모습


전시지원(WHNS)이란, Wartime Host Nation Support의 약어로서 '전시 주둔국 지원'을 의미하며 이를 줄여 '전시지원'이라는 용어로 통칭되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위기, 적대행위 또는 전쟁시 대한민국이 미합중국 군대의 접수, 이동과 지속을 위하여 제공하는 군사, 민간자원 및 지원"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데요, 이 전시지원(WHNS)의 목적은, 美증원군의 신속한 전개를 보장하고 전투력을 증진시킴으로써 유사시 한반도 방어능력을 완비하는 것입니다.


전시지원(WHNS)은, 1980년대 'Hunn-Warner법'에 의한 군축여론과 美 국방예산 삭감 등으로 인해 미국이 동맹국들의 안보부담을 요구하면서 생성되어, NATO의 중장기 방위력 증강계획 추진과정에서 발전되었습니다. 특히, 1982년에는 미국-서독간 전시지원(WHNS) 협정이 체결되어 당시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공산진영 국가들의 안보위협에 대한 준비태세가 확립되었고, 이러한 추세에 따라 미국은 또 다른 분단국인 우리나라와도 1991년에 전시지원(WHNS)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현실(판문점에서) 


이후 1990년에 동-서독이 통일되면서 1995년에는 미국-서독간 전시지원(WHNS) 협정이 종료되었으며, 미국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와 체결한 전시지원(WHNS)협정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전시지원(WHNS)은, RSOI 단계별로 시행되는데 RSOI(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Integration의 약어)란 '한반도에 전개되는 美증원군을 지휘관의 작전적 요구대로 전투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부대병력, 장비, 물자가 도착하도록 공항 및 항만이 제공되어 수용(Reception)되고,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일정기간 대기(Staging)를 위해 시설과 토지가 제공됩니다. 이후, 작전지역과 집결지로 이동(Onward movement)하기 위해 주보급로와 예비보급로가 확보되어야 하며, 수송수단 및 이동관리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집결지에서 전방부대와 작전적으로 통합(Integration)하기 위해 토지 및 시설, 보급, 탄약지원 등이 필요하게 됩니다.

현재 한,미간에는 전시지원(WHNS) 협정이 체결되어, 이를 근거로 한 전시지원(WHNS) 계획이 수립되어 우리 동원계획(충무계획)에 반영되어 있으며, 동 계획에 의한 지원절차 숙달을 위해 매년 KR과 UFG연습 기간동안 실제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키리졸브 한미합동군사훈련


한가지 국방의 고민점은, 이 전시지원(WHNS) 계획은 지원자산에 대한 사후 비용분담 원칙이 아직 정립되지 못해 '잠정'전시지원(WHNS) 계획으로서 수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美증원군에 대해 지원을 하더라도 무조건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은 아니며, 자산별로(정부 및 軍자산, 민간 동원자산, 시설 및 토지 등) 비용분담 원칙이 합의되어야 하는데, 양국간 국익이 대립되는 문제이므로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이러한 비용분담 원칙을 타결하여 정상적인 전시지원(WHNS)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전시지원(WHNS)의 법적체계를 완비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 안보문제는, 주변 열강의 국익이 대립되는 국제적 문제이며, 우리의 자주국방 노력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운 근본적 취약요소가 존재합니다. 이로 인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유사시 美증원군의 한반도 전개 보장'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입니다.

결국, '전시작전통제'의 성공은, 전시지원(WHNS)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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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국군용사'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귀환 국군용사'란 1994년 이후 귀환한 6.25전쟁 국군포로들 말합니다.

6.25전쟁 관련 국군 실종자는, 정전 당시 유엔군의 추정 수치로는 8만 2천여 명에 이르고 있으나, 최종 송환된 국군포로의 수는 8천여 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다수의 미송환 국군포로들이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으셨던 미국, 그리스, 네덜란드 6.25 참전용사들과 가족


6.25전쟁 국군포로 관련하여, 국방부는 1994년 10월 최초로 국군포로였던 조창호 중위의 귀환 이래 이들 국군포로와 가족들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미 귀환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으로 그분들을 돌봐드리는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정기적으로 귀환 국군용사의 가정을 방문드리기도 하며 각종 간담회를 개최, 의견을 수렴하기도 한답니다. 

6.25 전쟁 60주년인 올해 5월31일~6월1일에는 국방부 주최로 1박2일간의 '제9회 국군용사 초청행사'를 개최하여, 귀환 국군용사간 친분을 쌓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으며 각종 애로 및 건의사항들을 국방부에 제의하실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제9회 국군용사 초청행사' 현장으로 떠나보실까요?

때는 5월31일 오전, 행사 참석자들은 국방부와 대전을 각각 출발하여 '국방과학연구소'에 집합하셨습니다. 이곳에 모이신 참석자들은 우선 대한민국 최신 무기체계를 관람하셨는데요, 금강산도 식후경, 물론 점심식사 이후의 일이었지요.^^ 



국군용사들과 가족들이 식사하시는 모습-'국방과학연구소'에서

            

초청행사의 시작 -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다음의 순서로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동, 참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천안함 희생 장병들이 잠든 곳에 참배하고 희생 장병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의 천안함 희생장병 참배

                         


참배 후 방명록을 작성하시는 모습

                    

 

국립대전현충원내 천안함 희생장병들이 잠든 곳

                        

 

천안함 희생장병의 비석에 씌인 글귀를 보시는 귀국 국군용사의 모습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중인 6・25 전쟁 사진전시회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 이르자, 귀국 국군용사분들의 대화가 부쩍 늘어나시더군요. 옛 생각이 나신 것이겠지요..



6・25 전쟁 사진전을 관람하시는 귀국 국군용사들

                       


 

6・25 전쟁당시 사용된 물품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참배와 관람을 마친 후에는, 간담회 및 만찬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진행간에는 최근  국방부 추진 국군포로 정책에 대하여 설명을 드렸으며 건의사항 청취의 시간도 가졌답니다.

 


현충원 참배 후 간담회 모습

                                     

 

국방부와 군에 건의사항을 말씀하시는 귀환 국군용사

                    


'제9회 국군용사 초청행사'는, 귀환 국군용사들의 애로사항들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던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참석하신 국군용사들은, 밤이 늦도록 오랜시간 쌓아두셨던 회포를 푸시며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시기도 하였습니다.

행사 2일차 오전, 참석자들은 연세대학교 이호선 교수님의 「노년기 건강관리와 부부생활」 강의를 들으신 후 청남대를 관람하셨습니다. 전날의 간담회가 귀환용사들의 특수성에 초점이 맞춰진 행사였다면, 행사 2일차에는 일반적 노년의 생활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강의로 행사를 구성하였습니다.


노년의 건강과 부부생활에 대한 강의

                              

  강의청취후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계룡스파텔에서 1시간 거리의 청남대로 향하였습니다.



귀환 국군용사들의 청남대 관람

                                 

 

 청남대는, 1983년 충청북도 청원군에 건설된 대통령 별장입니다. 이곳은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 라는 뜻으로 역대 대통령의 명절휴가・여름휴가시 이용되어왔다고 하는데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충청북도로 이관되어 최근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남대 관광을 끝으로 '제9회 귀환용사 초청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금번 행사를 계기로 처음 귀환 국군용사들을 만나뵌 저는, 그 분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흥미로워 시간가는 줄을 몰랐답니다. 그분들은 주로 북한 탄광촌 일을 하시다가 탈북하여 어렵게 한국에 오신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국가에서는 물론 이분들을 예우하고는 있으나, 이미 나이도 많으시고 또한 북한에 두고온 가족 걱정으로 한국에서도 마냥 편하게 지내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번 초청행사는 제게 60년전 6・25전쟁이 남긴 상처가 과연 어떤 것이었는 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25 전쟁 60 주년을 맞은 2010년, 우리국민 모두는 6.25 그 의미를 되새기며 나라를 위해 큰 희생을 치르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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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8월 15일 '저탄소 녹색성장'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선포된 이래, 우리사회 전반에는 '저탄소녹색성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LED전등을 사용하는 GOP

                       

국방도 이러한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에 걸맞게 국방녹색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녹색기술을 활용해 석유 고갈 등 미래 에너지 안보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나아가 미래 녹색 방산시장을 선점함으로써 방위산업을 신경제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녹색국방기술 : 무인기체계의 핵심기술인 초소형 터보제트엔진( MTJ-150 )을 개발하였다.

 

그럼 지금부터 국방녹색기술 중에서 무기개발과 관련해 국내외에서 연구 중인 신무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녹색 신무기라 하면 보통 친환경 무기, 비살상 무기 등을 말한다.


비살상장거리음향장치 LRAD(Long Range Acustic Device) : 평형감각상실, 두통 등 유발



초강력 전자기 펄스탄부터 살펴보자. 흔히 EMP탄이라고 하며 게임방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모게임에서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EMP탄을 볼 수 있는 모(?) 게임

                                


EMP탄은 순간적으로 전자 장비를 오작동시킬 정도의 강력한 전기장․자기장을 일으켜 적의 전기 장치․시설 등을 무력화시키는 무기이다.
현재 이를 응용해 이라크전 등에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등장한 급조폭발물(IED)제거를 위한 EMP 발생기술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급조폭발물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폭발장면 - 영화 Hurt Locker 중에서 -



탄소섬유탄 적의 전력시설에 탄소섬유를 살포하여 전기적 단락, 누전 및 방전 등을 일으켜 마비, 파괴시킴으로써 적의 전투력을 저하시키는 비살상 무기이다.


탄소 섬유탄 폭발과정

                                              

영화 스타워즈에서 사용되던 광선검과 유사한 고에너지 레이저 무기 또한 녹색 신무기로 연구되고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

                                   


고에너지 레이저 무기는 UAV(무인항공기), 항공기 등에 장착하며, 전기에너지로부터 고에너지의 레이저광을 발생시켜 동체를 파괴하거나, 유도탄 탐색기 및 감시정찰장비의 전자광학 센서를 무력화시키는 기술이다. 별도의 추진제나 화약을 사용하지 않고 전기 에너지를 통해 레이저빔을 발사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은 물론 환경오염이 전혀 없는 무기이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빠른 무기이기도 하다.

                                                 

고에너지 레이저무기



이외에도 고섬광탄, 태양전지를 활용한 비행체 연구, 하이브리드 전투차량 개발 등 수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이러니 하지만 가장 파괴적인 전쟁 무기들이 친환경, 비살상무기로 진화하고 있다.


레이저를 쏘아 일시적으로 눈을 멀게하는 비살상무기

                            

물론, 무기를 더이상 개발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일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을 그리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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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으로, 군에대한 불신과 군복무에의 두려움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아들을 과연 군대에 보내도 될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또 어떤 분들은 "그래도,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지!" 하며 군복무를 통해 사회성와 체력, 담력 등을 기를 수 있음을 높이 사기도 하십니다. 


이렇듯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복무를 피하기는 어려운데요, 그렇다면 군복무가 생소한 병사들에게 병영생활에 도움을 줄 누구 없나요?




병사의 취향! '병영생활 전문 상담관'있어요.





'병영생활 전문 상담관' 제도는, '05년 '기본권 전문상담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운영되어 주로 '기본권 관련 업무'를 수행하여 왔으나, '08년 말에 '병영생활 전문 상담관','생명의 전화 전문상담관','병역심사관리대 병영상담관'의 3개의 이름으로 개칭되면서 '장병에 대한 심리적 지원을 통한 사고예방'과 '의사소통 활성화'로 기능이 보다 세분화되어 운영되고 있는 중입니다.




군내 '병영생활 전문 상담관'은, 청소년상담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 전문가 등 '자격'자들로서, 위기상담 능력을 갖춘 군내유일의 상담 전문가랍니다. 병사들에게는 엄마, 아빠와 같은 존재들로 상담을 통해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며, 극한 심리적 상황에 처한 병사에게는 위기상담과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군복무 적응을 유도하여 자살 등 위험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등 임무를 수행하고 있답니다.




아래와 같이 '09년말 군내 설문조사를 실시해 보니, 복무병사의 1/5 정도가 군 생활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하였고, 병영생활 전문 상담관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주된 이유로는, 미래진로걱정, 친구/가족에 대한 그리움, 병영내 인간관계 등이라고 답한 병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림] 군 생활중 어려움을 겪는 이유



상담관은 1인당 월평균 최소20명~최대81명을 상담하고 있으며, 현장방문 상담활동을 통해 의사소통 경로를 지속적으로 확보하여 군무이탈 및 폭행사고 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동시에 지휘부담도 경감시키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상담관의 활동은 장병 및 군인가족의 소원과 고충을 파악하여 처리하며 장병들에게 전역 후 진로 및 직업개발에 대한 실질적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지요.






특히, 병사들 중에는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에 어려움을 느껴 입대후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경우 '병영 생활 전문 상담관'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외부 연구결과 나타나고 있습니다. 군내 장병들 대상으로 '09년 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살 생각 경험자 중 절반 이상이 전문상담관과의 상담을 경험하였고, 상담후 약 68%가 구체적,실질적 도움을 얻었다고 답하였습니다. 또한, 상담 경험자의 50% 이상이 재상담 의사가 있다고 응답하기도 하였답니다.





상담 경험이 없는 병사들도 77% 이상이 전문상담관 제도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하는 등 상담관 제도에 대해 많은 장병들이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08년 대비 '09년에는 복무중 자살자 수 또한 감소추세를 보였습니다.

또한, 상담관들은 상담후 후속 조치로 자살우려자 및 복무부적응자에 대한 정상근무 유도, 병영부조리 식별과 조치, 현역부적합 처리 건의, 병원 진료 조치 등의 임무도 수행하는 등 병사들의 병영생활 적응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하네요.




전문 연구기관의 연구결과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제도가 병사들의 호응과 큰 성과를 얻고있다는 결론에 이르자, 국방부에서는 ‘10년부터 ’14년까지 가용예산을 고려하여 전문상담관 제도을 점진적으로 확대(사 ․ 여단급 이상 → 연대급 이상)할 계획입니다.



 
이렇듯 군은 병사들의 군복무 환경 개선에 노력하고 있으며, 또한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굳건한 안보태세 재정립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군에게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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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기획과
김    윤   희   주무관
 

                              오늘 아침은...

다른 날과는 달리 새벽 4시 기상, 7시에 국방부엘 도착하였습니다. 출근시간이 앞당겨진 이유는, 오늘 아침 해군 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에서 있을 '천안함 46용사' 합동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함입니다.


연일 내리던 비가 그쳤으나, 오늘.. 날은 흐리고 바람은 거셉니다.
어제는 백년만에 가장 추운 4월날씨였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버스를 타고 어느덧 2함대사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2함대사 맞은편 원정초등학교. 손수건에 추모편지를 써서 소나무에 매어놓았습니다.

 


2함대사 맞은편에는 원정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소나무에 손수건편지가 걸려있었습니다. 원정초등학교에는 희생용사들의 자녀들이 많이 다닌다고 합니다. 희생용사 자녀의 친구들이 천안함용사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쓴 것이라고 합니다.




해군 2함대사 영결식장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2함대사에 도착하니,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에 참석을 위해 전국에서 오신 분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영결식이 열릴 2함대내 안보공원을 바라보며

 


영결식은 국민의례-묵념-경위보고-훈장추서-조사 및 추도사 낭독-종교의식-헌화 및 분향-조총 및 기적-영현운구-폐식사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시종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되던 영결식은 헌화와 분향 순서가 되자 유족들의 오열로 가득했습니다. 아들을 부르며 통곡하시는 어머니, 마지막으로 의젓하게 아버지께 인사드리는 어린 아들, 엄마와 함께 슬퍼하는 어린 딸.. 모두 영정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참석자들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습니다. 


 

영결식이 끝나고 대전 현충원으로 향하는 운구행렬

 


조총 및 기적 취명 후 영현운구를 끝으로 영결식이 끝났습니다. 46명의 용사들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영결식이 끝나자 날이 갰습니다.  희생용사들의 영면을 기원하였습니다.


제2차 연평해전 당시 북한군과 싸웠던 참수리 357호정과 천안함 유족


 

영결식장을 나오는데, 식장 앞에 참수리 357호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02년 북방한계선에서 교전중 전사한 6명의 용사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내가 누리는 이 자유와 행복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로 인해 누리게되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됩니다.


오늘 아침,
'천안함 희생용사'들을 추모하며, 이땅의 아침햇살에 감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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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외교학 전공 후 행시 국제통상직을 거친 제가 국방부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모두 같았습니다.


"국방부엘 가? 거기가 외교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다들 이렇게 반응하시더라고요...그래도, 저는 단호히 국방부를 선택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과연 국방부에서 외교업무를 할 수가 있었을까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국방부 동북아정책과 분들

 


여기 이 분들!  이 분들은 바로 동북아 국가들과의 대한민국 군사외교 업무를 일사천리로 처리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보시다시피, 저희 국방인들은 '지성'에 항상 '미모'를 겸비한다고나 할까요? ^^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바로 접니다.)


동북아정책과 사무실

 


여기는, 제가 위 사진속의 분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는 "국방부 국제정책관실 동북아정책과" 랍니다. 규모가 아담하죠?
하지만, 사무실 크기가 바로 업무의 크기를 대변하는 것은 절대 아니죠.
저희 사무실 안에 몇 시간만 앉아계셔 보십시오. 유창한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각종 동남아 언어들의 선율을 동시에 감상하실 수가 있습니다. 동남아 각 국민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고나 할까요? (제가 수습사무관으로 이곳에 오던 날, 사무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능숙한 외국어 음성에 가슴설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리고, 제가 근무하는 여기 국제정책관실의 업무는 크게 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위급 인사교류', 또 하나는 '각국간 국방정책실무회의 개최'  업무랍니다.

 

한-일 합참의장 의장대 사열



먼저, '고위급 인사교류'는 국가 친선의 상징이자 장기간 해결되지 못했던 난제들을 극적으로 매듭짓게되는 계기가 되곤하죠. 외교, 실리 양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년 5월에는 '한-중 국방장관회담'이 개최된 바 있는데요, '95년 양국간 국방교류 시작 이래 10년 만에 개최된 이 회담에서는,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걸맞게 '한-중 국방교류협력MOU' 체결이 검토되었고 '실장급 국방전략대화체 개설' 검토에도 합의를 이룬 바 있답니다.

*****************'한-중 국방교류협력 MOU'에 대해 더 알고싶으시다면, Click!*****************



둘째로, '국방정책실무회의'란 각 국간 국방교류협력 계획과 증진방안 등을 실무차원에서 논의하는 자리인데요, 교류협력이 활성화된 국가 간에는 보통 연 1회 '국방정책실무회의'를 개최한답니다.
제가 담당하는 중국과는 '04년부터 매년 1회 실무회의를 개최하며, 일본과는 '94년부터, 러시아와는 '97년부터 연 1회 이상의 실무회의를 개최하고 있지요. 

각 국간 실무회의를 정례화하는 것은, 해당 국가간 군사교류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필수적인 사안이므로 저희 국제정책관실에서도 실무급 회의의 정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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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 모습




위의 사진은, 연 1회 개최하는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의 모습입니다. 저 뒤에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홍기가 보이시죠? '국방정책실무회의'는 고위급 회담보다는 외교적 성격이 다소 약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각 국 국방정책 실무자 간에는 현안에 대해 보다 집중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리라 하겠습니다. '09년 12월에 개최되었던 '09년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에서는 앞서 장관회담에서 거론되었던 '국방교류협력MOU 체결'과 '국방전략대화체 개설'이 주된 의제가 되었는데요, 조속한 시일 내에 후속조치를 완료하기로 의견을 같이하였던 뜻깊은 자리였답니다.  

그런데.. 2박 3일의 일정 내내 이렇게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만 나웠다면, 각국 실무자들도 사람인지라 협력도 지겨워질 수가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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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시 2함대사령부 선상에서




그래서 요렇게! 부대 교류 차원에서 회의 개최국의 함정 방문 등도 실시하였지요.(앗! 저희 과장님과 제 사수이신 이 대령님께서도 출연하셨네요~)

때는 한겨울, 우리 해군함정 선상은 너무도 추웠습니다(오들오들~~). 그런데, 중국대표단은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우리 함정의 구조를 꼼꼼이 살피면서 계속하여 질문을 하시느라 아예 배에서 내려갈 생각을 않으시더군요...  이런 모습은, 중국의 자국 해군력 증강에 대한 열의를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중국해군 특전대원의 전술동작




또한, 중국 측은 대청해전 당시 한국 해군의 배치와 사용 전력 등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면서, 한국 측이 정보공개에 소극적인 것은 양국간 교류정신에 위배된다고 잔뜩 불만을 토로하시더라고요.  순간, 모두가 당황한 속에서 우리 2함대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죠. "우리는 민주국가이므로 모든 것은 언론에 공개된 그대로이다. 보도자료와 실제 교전상황 사이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라고. 단호한 우리측 답변에 중국측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 

군사외교도 외교이다보니, 상대국과의 '원만한 관계유지'가 관건이겠으나, 상대측이 잘못된 언동을 보인다면 어느정도의 단호한  대처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절'과 '단호함'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과연 어떻게 적절히 구사할 것인지 늘상 고민하며 산답니다.

요즘 저희 과는, 동북아 각국이 개최하는 다양한 국제회의에의 참여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제회의에의 참석을 준비한다는 것은, 겉 보기엔 화려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 중요성 만큼이나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지요.

오늘도 대한민국 군사외교의 선봉에서 열심히 뛰고있는 우리 국방부 국제정책관실, 여러분들도 많이많이 격려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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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 오월에 내 사랑이 숨쉬는 곳 /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 초라한 내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 그리운 사람~"(김현철, '춘천가는 기차' 가사 중)

이 노래 생각나시죠?
춘천 하면 왠지 모르게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데요, 가을이 되면 의암호변의 아름다운 단풍, 덜컹거리고 장터같아도 들뜬 마음에 즐겁기만 했던 춘천행 완행열차, 가을날 노란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남이섬의 메타세콰이어길, 가슴이 탁 트이는 소양호의 배타기, 대학시절 엠티에 이은 춘천 닭갈비와 소주, 첫사랑과 함께 걷던 호숫가 등등등...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예전부터 춘천은 서울과 그리 멀지 않아, 바쁜 서울 생활에 지칠 때면 아련한 옛추억을 찾아 훌쩍 떠나고 싶은 그런 곳이죠. 

김현철도 저와 같은 생각에서 이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모~ 연가'에 나오는 남이섬 메타세콰이어 길




춘천으로 떠나기 전에


일년에 한번쯤은 친구들과 꼭 춘천에 가곤 했던 저는, 봄이 오는 3월이 되자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고 옛추억이 살아있는 춘천으로 가보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춘천지역 관련 최신정보를 얻기위해 인터넷 검색에 열중하던 중, '춘천 미군기지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하게 되었고, 작년 입법예고 업무와 관련하여 다루었던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시행령 개정' 사실이 기억나 관련내용 검색에 더욱 더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춘천 헬기 전용 작전기지의 보호구역 지정 해제'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이 해제된 춘천, 요즘은 어떤 모습을 하고있을까?...'

춘천 미군부대 캠프페이지는, 6.25전쟁중 징발되어 활주로 건설 후 미군의 주둔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전쟁후 북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춘천 미 캠프페이지는 점차 확장되었고, 1958년 9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캠프페이지' 라는 명칭으로 미군에 공여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지요. 춘천 근화동 일대에는 '리틀아메리카촌'이 형성되었고 미군을 상대로 한 상업이 성행, 미군 측에서는 전쟁고아를 위한 보육, 교육, 의료 등 봉사활동 등에 힘을쓰기도 하였습니다.



미군의 주민대상 응급처치교육




전쟁후 오랜시간이 지나고, 면적이 64.3만㎡나 되는 미군기지의 존재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지요. 전쟁 전에는 소양로 일대 드넓은 평원이 춘천의 중심지였으나, 기지 건설후 춘천의 중심지는 봉의산 아래 골짜기로 밀려나 도시발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미 헬기의 소음은 오랫동안 주변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였는데요,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인근 4km까지가 비행안전구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아파트 등 건축물을 더이상 지을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였다는군요.  



춘천 의암호반에 자리잡고 있던 미군 캠프페이지




변화하는 춘천으로 떠나기!


이렇듯 다양한 춘천 캠프페이지 아야기들을 살펴보다 보니, 한층 더 흥미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춘천고속도로를 이용한 춘천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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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가는 길은 터널들이 어찌나 많던지, 대충만 세어보아도 13개 이상은 되는듯 하였습니다.

춘천IC에 도착. 여기까지는 잘 왔는데 지도 어디에도 미군기지 춘천 캠프페이지는 보이지 않더군요. 주요 군사시설이었기에 일반지도에서는 표시가 어려웠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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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청 주변도

                                           


미 캠프페이지가 있던 곳이 근화동 부근 지역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근화동 주변쯤 가서 주민들께 여쭈어보기로 하고, 교통표지판을 따라 중도유원지 쪽과 공지천 쪽으로 향하였는데요, 영 비슷한 것조차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곳 근처 주차장 관리 아저씨께 여쭈어 춘천역 쪽으로 가보니 철조망이 쭉 이어져 있는 높은 담장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찾았다!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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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철조망 벽을 따라 난 그곳 풍경은 그야말로 썰렁하였습니다. 바로 전까지는 공원과 유원지가 있고 닭갈비 음식점들이 많이 보였었는데, 이곳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더 돌아가보니 다음과 같은 플래카드가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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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 춘천시청에 전화를 하였었는데요, 지금 이 곳은 환경정화작업 중이라고 하더군요.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후 오염토양과 오염지하수를 정화처리하고 있는 것인데요, 2년 정도의 작업후 춘천시에서는 본격적으로 춘천 서부도심권을 중심지역으로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을 직접 와서 보니 부지가 꽤나 넓어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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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은 군 비행장 모습이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머지않아 환경정화작업이 끝나고 나면 이곳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게 되겠지요?

제가 변화하는 춘천이라고 하였던가요?  그럼, 이제 무엇이 변화하고 있었는지 말씀드릴까 합니다.

‘05년 이곳 춘천의 주한미군기지가 폐쇄됨에 따라, 관련 소음공해는 해결이 되었고요,
’09년10월에는 국방부 '군사시설 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헬기전용작전기지의 지정이 해제되었답니다. 이어 국방부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단은 금년 3월 17일 춘천캠프페이지에서 시민환경단체,학계, 농어촌공사, 춘천시, 토양/지하수 전문가 등 각계각층 50여명과 함께 캠프페이지 환경정화현장에서 직접 토양오염 정화사업 현장설명회 및 자문회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네요~



춘천 캠프페이지 환경정화 현장설명회




현재 캠프페이지에서는,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토양정화사업과 오염지하수 처리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고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캠프페이지 정화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발표를 통한 토지오염정화 시공평가간 문제점을 도출, 발전방안 등을 제시하는 자리 또한 가졌었다고 합니다.


 

춘천 캠프페이지 오염토 농도평가 현장


 

춘천 주민들은 이제 비행안전구역 지정 해제로 재산권제한에서 벗어나시게 되었으니 뒤늦게나마 그분들께 위안이 되었을까요?

이제 춘천은 그간의 어려움을 뒤로한 채, 이전의 캠프페이지 지역을 시의 발전과 시민복지를 위해 사용하고자 한답니다. 앞으로, 미군이 사용하던 격납고는 주민을 위한 실내 체육시설로 활용될 예정이고요, 수영장, 야구장도 보수하여 곧 시민들이 사용하게 된다고 하네요. 향후 춘천시에서는 이곳에 의암호물을 끌어들여 수변관광지로 조성한다고 하니, 이 지역이 새로운 낭만의 장소로 각광받을 날도 이제 얼마 남지않은 것 같았습니다.



이전의 격납고는 주민 실내체육시설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춘천에 관하여 '캠프페이지' 관련 내용만을 알기엔 제 호기심이 너무도 강렬하였기에,
춘천으로 떠나기전 제가 춘천지역 관련 검색을 하며 발견하였던 사실 한가지를 추가로 말씀드리지요. 
올해가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인 것은 모두들 알고계시지요? 6.25와 춘천에 얽힌 ‘대한민국을 구한 춘천대첩' 이야기를 말씀드립니다.

6.25 당시, 바로 이곳 춘천에서는 국군이 첫승을 거두게 되는 사건이 발생, 꺼져가던 대한민국의 명운을 바꿀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북한은 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진격하던 주공 이외에도, 춘천에서 홍천을 거쳐 수원으로 우회공격하여 서울을 포위함으로써 국군의 주력을 섬멸하겠다는 작전 또한 세웠었다고 하네요. 다행히, 김종오 장군이 이끄는 6사단이 임란 당시의 이순신장군과 같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중 초전에 승리를 이룸으로써, 북의 작전을 좌절시킨 '춘천대첩'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로 인해 서울을 점령하게된 북의 인민군은 전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3일을 지체하게 되고, UN군은 시간을 벌게됨으로써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엔군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아래는 춘천호의 모습입니다. 날이 좀 흐렸기에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지만(저의 여행중 객창감 때문이었을까요?), 이제 곧 따뜻한 봄이 오면 더욱더 아름다워지겠지요? 역시 호반의 도시답게 넓은 호수가 자리하고 있었구요. '아. 춘천에서 살고 싶다'하는 생각마저 들던데요~






여행 후 드는 짧은 생각 


생각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도 좋겠지만, 이렇게 여행지역의 역사를 알고 그것을 찾는 테마여행도 색다르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춘천의 이전 캠프페이지 구역도 이제 환경정화사업이 끝나고 새롭게 개발에 들어가게 되면 예전의 모습은 사라질 수도 있겠지요. 과거와 현재를 한번에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여행, 무엇보다도 스스로 조사하고 찾아가는 여행, 이것이 또 다른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춘천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서울에서 1시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아졌고 앞으로 2010년 8월에는 월드레져 총회 및 경기대회 등 세계적인 문화행사도 한다고 하네요. 춘천은 아름다운 추억의 도시이지만 또 다른 변화된 모습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춘천이란 도시, 알면 알수록 더욱더 알고 싶어지는 도시였습니다. 춘천, 추억의 보따리 하나 더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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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미엔젤 트랙백 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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