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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1 나가 싸우란 말이야! 제발 [3]

또다시 침공로가 되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후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기 때문에 또 다시 독불간에 전쟁이 발생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긴장된 포니워(Phoney War)기간동안 독일과 프랑스 모두 장차전에 대한 세밀한 구상에 돌입하였습니다. 이때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벨기에로 귀착됩니다.


                                다시 벨기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터가 되려 하였습니다.


독일은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의 입안으로 마지노선이 끝나는 벨기에의 아르덴느(Ardennes)를 돌파하여 프랑스를 섬멸할 기상천외한 계획을 세웠는데 반하여 프랑스는 다일- 브레다 계획(Dyle-Breda Plan)이라는 오늘날 이스라엘이 자주 사용하는 공세적 방어개념과 비슷한 대응전략을 구상 합니다.


                             1)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로 (슐리펜 계획)
                       2)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방어 게획 (다일-브레다 계획)
                       3)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로 (만슈타인 계획 - 낫질 작전)
                       독일, 프랑스 모두 벨기에를 장차 전쟁터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프랑스의 계획은 한마디로 방전으로 승리를 쟁취한 1차대전의 경험이 기반이 되었는데 그 개요는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독불국경간은 마지노선으로 충분히 방어 할 수 있고, 또한 독일도 이곳으로 주력을 투입하여 침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때문에 독일은 1차대전 때와 같이 벨기에 평원을 이용한 침공을 감행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에방에말요새에 막혀 돌파에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셋째, 이때 연합국 주력(프랑스 1집단군 및 영국 대륙원정군)을 벨기에-프랑스 국경 근처에 배치하였다가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자마자 즉시 벨기에 영토내로 진입하여 벨기에와 연합하여 독일의 주력을 섬멸한다.


       독일은 앞만 보고 있던 프랑스의 배후를 단절하려 하였습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군)


이 얼마나 약소국 벨기에를 하찮게 생각하는 발상입니까? 독일은 침공로로, 프랑스는 자국에서의 전투를 회피하고자 약소국 영토를 전장터로 삼고자 하였으니 말입니다. 만에 하나 프랑스가 독일-폴란드 전쟁직후 대독 선전포고를 한 이상 독불전선에서 침공전을 하여야 하는데, 이를 외면하고 자국 내에서의 전투만 회피만 하려는 소극적 대응전략으로 시간이나 보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당시 벨기에 국민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짧은 침략, 긴 고통

드디어 세기의 악당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1940년 5월 서부전선의 전투가 시작 됩니다. 또다시 벨기에는 프랑스를 공격하려는 독일의 침공로에 놓이게 됩니다. 굳이 1차대전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벨기에 평원이 아닌 아르덴 산악지대가 독일 기갑부대가 지나가는 주 침공로가 되었다는 사실 일 뿐입니다.


                              아르덴의 삼림지대가 독일의 침고로로 예정되었습니다.


벨기에 국민들이 철석같이 믿던 에방에말요새이었지만 독일의 독창적인 공수 특공에 의해 불과 10분 만에 엎어진 거북이 꼴이 되고 맙니다. 단지 85명의 팔슈름야거(Fllschirmjager-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공수부대)의 특공작전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사전에 은밀히 개척하여 놓은 통로를 지나 독일군은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순식간에 벨기에를 석권하여 통과하면서 프랑스로 물밀듯이 들어갑니다.


                               에방에말을 점령한 전설적인 독일의 공수부대 팔슈름야거


그것도 독일 주력도 아닌 기만전술을 썼던 B집단군의 페이트모션에 의해서 말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독일 책략에 속아 프랑스군 총사령관 가믈랭(Maurice Gamelin)은 연합군 주력인 프랑스 제1집단군과 영국원정군을 벨기에 영토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명분은 벨기에 구원, 독일을 응징한다는 것이었지만, 진짜 속뜻은 프랑스 영토 내에서 전쟁을 피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덩케르크에서 후퇴하는 연합군


물론 결과는 아시다시피 기습적으로 연합군의 배후를 치고 들어가는데 성공한 독일의 포위망에 걸려 나룻배라고 얻어 타고 영국으로 도망가기 급급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벨기에는 독일의 전광석화 같은 기습에 의해서 장기화된 1차 대전 때보다 물적 피해가 적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 만큼 아주 짧게 침략을 당합니다.


                                                    전쟁으로 사망한 벨기에인들


하지만 이후 점령지로써 독일 전쟁 수행을 위한 수탈을 당하게 되고 대영 전쟁을 전초기지 역할을 하느라 전 국토가 군사기지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웃 네덜란드와 더불어 벨기에는 현재도 집집마다 식량비축 창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독일의 수탈기간 동안 워낙 배가 고팠던 쓰라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며 벨기에 국민으로 살던 28,000여 유태인들이 가스실로 끌려가게 됩니다.

(계속됩니다.~ 명절 잘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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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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