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1.06 늦가을, 국방부 올레길에서 사색하기!!! (1)
  2. 2009.10.21 A 특공대의 잊혀진 비사 (秘史)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열혈 3인방'에서 지성감성, 그리고 미모를 담당하고 있는 정예화입니다. 부쩍 많이 쌀쌀해진 늦가을, 심하게 가을을 타는 정예화양과 '휴식과 사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까요?

제가 지인에게 들은 애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두 나무꾼이 함께 장작을 패러 산으로 갔습니다. 모두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첫 번째 나무꾼은 잠깐의 휴식시간도 갖지 않고 열심히 했으며, 두 번째 나뭇꾼은 50분을 일하면 반드시 10분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이상하게도 패어 논 장작의 양은 두 번재 나무꾼이 훨씬 많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더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기에 이해할 수 없었던 첫 번째 나무꾼은 물었습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난 잠시도 쉬지도 않고 일했는데... 그래, 자네의 비결이 뭔가?"
두 번째 나무꾼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그건 간단하네, 나는 10분 쉬는 동안에 도끼날을 갈았거든."


때때로 우리는 너무 일에 집중한 나머지 휴식의 중요성을 잊고 맙니다. 휴식은 그냥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더 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나요? 그러면 본론으로 고고씽~~!!

최근 휴식의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제주 올레길, 다들 알고 계시죠?

원래 '올레'는 큰 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방언인데, 제주 올레길은 제주의 관광명소를 코스로 엮은 산책로에요. 얼마전 제주 올레길을 다녀온 어느 국방가족은 꽤 긴 거리의 산책로를 걷고, 또 걸으며 제주의 정취도 한 껏 느끼고 고즈넉한 제주의 풍광 속에서 실컷 사색도 하며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라구요.




특히 10여명의 해군과 80여며의 해병대, 아흔 명의 젊은이들이 사흘을 꼬박 작업(군대식으로 표현하자면, '평탄화 작업')한 끝에 만들었다는 제주올레 4코스(현 8코스) 일명, '해병대의 길'을 걸을 때는 더욱 감회가 깊었다 하네요. 언제 어디서나 자랑스런 우리 군이죠?




반복되는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진 올레길에서의 달콤한 휴식... 꼭 제주도에 가야만 가능하냐구요?

아닙니다.^^ 여유를 갖고 주변을 조금만 더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좋은 사색의 공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세요~!!

그렇다면. 삭막하기만 할 것 같은 국방부에도 그런 공간이 있냐구요?




국방부에는 국방부 근무지원단이 영내 산책로로 조성한 '국방부 올레길'이 있습니다. '국방부 올레길'은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이 녹색 친환경 트레킹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서 착안해 새롭게 조성한 산책로입니다.




'국방부 올레길' 묵은 흙길이나 통행이 드문 기존 산책로 1.5Km를 찾아내 재 정비한 길로, 주변에는 햇볕이나 비를 피할 수 있는 가림막이 설치된 쉼터와 벤치, 그리고 체육시설도 갖추고 있답니다.




'국방부 올레길' 소음과 자동차로부터 자유로우며 산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사색의 길이 됐다는 평가와 함께 자연생태를 효과적으로 보존하고 장병들과 국방부 및 합참 직원의 휴식공간을 제공한다는 1석 3조의 효과도 얻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전력으로 몰두하는 것은 매우 적극적으로 보이지만 열심히 일만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오히려 노력에 비해 성과를 얻지 못합니다.

오늘은,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만끽하며, '사색의 여정'에 빠져 볼까요?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마치 땅 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것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소설 <고향>중에서-


*사진속의 모델은 국방부 홍보과장님이세요. 자켓이 올레길과 잘 어울리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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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1

              A 특공대의 잊혀진 비사 (秘史)
 
 

온산이 울긋불긋 불타오르는 늦가을은 산행을 즐기는데 대단히 좋은 계절입니다.  일주일에 산을 한번 정도 가는 인구가 천만 명을 넘었다는 최근의 통계처럼 등산은 온 국민의 스포츠이자 오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즐기면서 산을 올라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전쟁 중 목숨을 걸고 산에 올라가는 것은 고난의 행로와 다름없습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입니다.
 

               이 화려한 가을이 완전히 지나기 전에 산에 한번 다녀오는 것은 어떨지요 ?
 

전쟁의 승패에 있어 병참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한국전쟁 또한 군수지원의 중요성이 입증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중공이나 소련과 국경을 맞이하고 있는 북한에 비해서 해상을 통한 군수물자를 보급 받아야 하였던 우리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병참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UN군이 제해권을 확보한 덕분에 안전하게 해상 보급이 이루어 질수 있었고 이것은 고난의 시기에 대한민국을 지탱하여 주었던 힘이기도 하였습니다.
 

                       화물을 열심히 하역하는 한국전 당시 인천항의 모습입니다.
                        UN 군의 해상보급은 자유를 수호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한반도는 산악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이라 최전선의 군수지원에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사통팔달의 도로가 많이 개통되어 평시의 군수지원 환경은 많이 좋아 졌다고 합니다만 동부전선의 산악지역은 아직까지도 폭설이라도 한번 내리면 병참선이 차단 될 정도의 악조건입니다.

 
                    한국전은 초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산악전으로 일관하였습니다.
 

하물며 지금도 그러한데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없다시피 한 한국전 당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특히 1951년 말부터 휴전까지 진행된 참호전은 대부분 고지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는데 이러한 고지에 주둔한 제 부대에 대한 병참지원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산악전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인 부대의 병참지원 모습입니다
.
 

그래서 UN군은 보급품을 운반하는데 일반 노무자들을 활용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민간에게 아웃소싱을 한 것이었는데 전쟁 발발 직후부터 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소위 보국대를 비롯하여 유엔군 참전 이후 만들어진 민간 운반단 ( CTC - Civilian Transport Corps ), 한국근무단 ( 일명 노무단 ), 부두하역단 등이 다양한 형태로 지원 활동을 하였습니다.

 
                  포탄 같은 중량물도 이 분들의 보급 수송에 절대 의존하였습니다.
 

그중 최전선의 산악 고지전을 치르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속칭 지게부대라고 불린 노무대가 있었습니다.  이 노무대는 전쟁 동안 산세가 험한 지역에 위치한 부대에게 포탄, 식량 등의 보급품을 지게에 지고 운반하여 주었는데 대부분이 당장의 호구지책이 어려웠던 월남해 내려 온 청장년들이나 피난민들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징집으로 충당되기도 하였습니다.
 

                    대오를 갖추어 정렬한 지원단 (上) 과 화물 적재 후의 모습
 

전쟁 당시 노무자들의 규모는 육군 사단에 편성되어 전투근무지원을 직접 수행한 노무단원 9만여 명을 포함하여 약 30여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산되며 공식 기록에 의하면 전쟁 시 임무를 수행하다가 희생당한 노무자들의 규모가 전사 2,064명, 실종 2,448명, 부상 4,282명 등으로 집계하고 있으나, 많은 수의 노무자들이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되고 있습니다.
 

                              미군들은 이 분들을  A특공대라고 불렀습니다.
 

노무자들의 지원 수단은 주로 지게였는데 그 모습이 알파벳 A와 흡사하다고 하여 통상 근무단을 ' A Frame Army ' 즉, 지게부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 James Van Fleet 1892~1992 ) 장군은 회고록에서 " 만일 노무자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10만 명 정도의 미군병력을 추가로 파병했어야 했을 것이다. " 고 이들의 노고를 극찬하였습니다.
 

           이 분들의 노고는 조국을 수호하는 원동력 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처럼 A 특공대는 戰史의 전면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군의 승리를 위하여 묵묵히 맞은바 임무를 다한 최고의 정예 부대였습니다.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음지에서 묵묵히 힘써 주신 A 특공대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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