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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30 무용지물이었던 일본의 전함들

 







일 전함들의 미 비행장 포격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의 정형화 된 상륙전 전략을 보면
먼저 항공력이 일본군을 강타하고 이어서 접근한 함대의 함포가 무지막지한 포격을 한 다음 해병대가 상륙정을 타고 상륙해서 굴을 파고 숨어 있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섬을 점령하는 것이 전쟁의 시나리오였다.


해군 함포의 화력은 미군이 태평양 전쟁 진행에서 활용했었던
항공력과 함께 미 해군의 전투 주력 자산중의 하나였다.


그 중 3만 톤이 넘는 전함의 거포가 쏟아내는 포화는
함포 화력의 주역이었다.

거함인 전함[battleship]이 함대 결전의 핵이라는 사실은 1905년 러일 전쟁때 쓰시마 해전과 그후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영독 함대가 싸운 유트란드 해전에서 증명된 바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 영 일등 해군 강국은 초노급이라는 거함 경쟁에 돌입해서 거대 전함건조에  열을 올렸다.

일본은 막대한 국력을 동원해서 거대 전함들을 속속 건조했다. 항공모함이 출현하자 전함보다 항공모함을 더 건조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했지만 거함대포주의는 일본 해군의 주류적인 해군의 철학이었다.

하지만 전함들은 태평양 전쟁에서 사실 '왔다 갔다'하는 역할에 그쳐 무용지물에 가까웠다는 것이 전쟁의 결과로서 증명되었다.



                            전함들의 일제 포격. 원안에 날아가는 포탄들이 보인다.


태평양 전쟁은 새로운 항공모함 시대를 열었다. 항공모함 시대는 전함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전함이 적함과 포화를 교환하는 해전을 벌인 것은
불과 서 너 번에
지나지 않았고, 주로 육상 표적을 쏘는 해상 요새의 포병 역할을 하였다.

미 해군 전함이 지상의 일본군이나 시설을 포격하면, 발사된 거탄들이 낙하하면서 굉음을 내고 대폭발을 하면서
커다란 구덩이를 만드는 바람에 땅을 파고 들어간 일본군들은 간을 졸이며 공포 속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거꾸로 일본군 전함이 지상의 미군들을 포격해서 큰 피해를 입힌 적도 있었는데 일본군 전함 공고와 하루나가 1942년 10월 과달카날섬의 미군 핸더슨 비행장을 두들긴 야습 포격이 그것이었다.



                                             일본군 전함 공고
            1913년 진수, 영국에 주문한 마지막 전함 36,600톤,30노트, 14인치[360미리]포 4문 장비
            두 번의 개장으로 현대화 되었는데 사진은 개장전의 모습이다.



                                          일본군 전함 하루나
                     공고와 같은 급이고 같은 영국 디자인이지만 일본에서 건조하였다.
                     제원은
공고와 유사하며 사진은 개장 후 모습.


                              과달카날 룽가 포인트에 일본군이 건설중인 비행장.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 발발후 확장일로의
전략을 구사했던 일본 해군은
                   과달카날 섬을
무혈 점령후 이곳에 비행장 건설을 추진했다.
이 과달카날은 남
                   진한 일본군의 최전선이었다.
과달카날은 1568년 페루에서 출발한 스페인 탐험
                   선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과달카날이라는 이름은 탐험대원 페드로 드 오르테가
                   바렌시아의
고향인
안다루시아 지방의 작은 도시 이름이다



미군은 1942년 8월 7일 해병 1사단을 동원해서 과달카날 섬과
인접 플로리다 섬의 툴라기에 기습 상륙 작전을 가했다.


일본 해군의 수상기 기지였던 툴라기에서는 약간의 교전이
있었으나 과달카날은 미 해병 1사단 11,000명의 병력이 거의 저항 없이 상륙했다.


해안에 교두보를 확보한 미 해병대는 룽가 포인트 지역으로 전진해서
비행장을 건설 중인 일 해군의 비행장 설영대[設營隊, 야외에 시설이나 천막 따위를 설치하기 위하여 편성한 집단]를 밀림으로 내쫓고 건설 중인 비행장을 점령했다.


미군들은 일본군이 가지지 못했던 중장비인 불도저를 동원하여 미완성 비행장을 완공,
8월 18일에 작전 가능 상태로 만들었다.


                                             
완공된 헨더슨 비행장에 최초로 착륙한 미 해군 카타리나 비행정
                  이 비행장에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전사한 헨더슨 소령의 이름이
주어졌다.



헨더슨 비행장을 기지로 해서 활동했던 미국 해군, 해병대, 육군, 그리고
뉴질랜드 혼성 항공대는 상륙 작전 기획 중 섬에 붙여진 암호명을 따서 캑터스[cactus -선인장] 항공대라 명명되었는데, 이 항공대는 6개월간 계속된 과달카날의 육해공 전투에서 일본군 격멸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44년 잘 정비된 헨더슨 비행장 사진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던 10월 13일 일본군의 해군기지 트럭 섬을 출발한 전함 공고와 하루나 두 척의 전함들이 야음을 틈타 과달카날로 접근했다.


일본군 연합함대 사령관 마모도 이소로쿠가 제독이 구리다 다케오 중장이 지휘하는 공고와 하루나 공격 함대에
헨더슨 비행장 포격을 명령했던 것이다.


두 척의 전함은 한 척의 순양함과 아홉 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된 호위 함대를
거느리고 출동했었다.


이틀 전인 10월 11일에도 일 중순양함 부대가 헨더슨 비행장을
포격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에스페란스 곶에서 미 함대에게 저지당했었는데, 두 전함들은 아무 저지도 받지 않고 무사히 과달카날에 도착하였다.


과달카날 해역에 도착한 두 척의 전함들은 14일 새벽 1시 33분
16,000미터의 거리에서 14인치거포의 포격을 개시하였다. 일본 해군의 14인치 포는 3식 연산탄 대공용 고폭탄을 발사했다.  이 거탄들은 항공기뿐만 아니라 신관만 조정하면 인마살상과 시설파괴의 대지 공격도 가능했다



                                 야습 포격에 불타는 헨더슨 비행장 항공기들


당일 헨더슨 비행장에는 캑터스 항공대 소속 전투기,
폭격기, 정찰기 등 잡다한 군용 항공기들이 90기나 밀집해있었다. 연료 탱크와 산더미 같은 보급품들도 여기저기 산적해 있었다.



                                          포격이 거쳐간 아침의 모습


거탄들은 사정없이 날아와 폭발했다. 단잠에 빠져있던 비행장의 미군들은 방공호 속에 뛰어들어 공포 속에 포격을 견디어 내야 했다.


포격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83분간이나 계속되었다.
일본 해군의 두 전함들이 발사한 포탄들의 총계는 무려 973발이나 되었다.


그 중에 2,200평방미터의 좁은 헨더슨 비행장에 명중한 탄만해도
700여 발이 넘었다.


거탄들은 두 개의 활주로를 대파시키고 항공유 저장 탱크를
명중시켜서 모든 항공유를 연소시켰는가 하면 90기의 항공기중에 48기를 파괴시켰다.


미군은 41명이 전사했다.
이 중에 6명이 조종사였다.



                                 포격에 파괴된 미 해군 F4F 와일드 캣 전투기


폭격을 종료한 두 전함은 즉시 함수를 돌려 트럭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두 개의 활주로 중 보조 활주로에 해당하는 한 개는 미군이 상륙한 뒤에 건설한 것이어서 일본군에게 그 정확한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았었다.


덕분에 이 활주로에는 포격이 집중되지 않아 서너 시간의
수리 후에 출격이 가능해졌다. 손상 항공기들도 몇 주 만에 긴급한 보충으로 원상회복되었다.



                                    공중 촬영한 헨더슨 비행장 피해 모습


일본 전함이 육상 표적에 함포 사격을 가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미국은 일본 전함의 헨더슨 비행장 포격 사건을 태평양 전쟁사에서 관심 있게 다루고 있다.


또 이 포격 사건을 정점으로 일본 해군의 수상함 부대가 내리막길로 가게되기 때문에 일본 해전사에서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대피 기동으로 항공기의 공격을 피하는 하루나.


일본은 러일전쟁의 쓰시마 해전에서 대승한 후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거함 대포를 동원한 함대 결전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 최대 거함 야마토와 무사시를 건조했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중 전함들의 임무는 해상에서 적함과
해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상륙 작전을 위한 화력 지원에 그 존재와 효용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이미 제공권과 제해권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 전함들은 
공고와 하루나의 성공적인 과달카날 포격을 끝으로 그 기회를 다시는 갖지 못했다.


몇 달 뒤 공고와 하루나와 같은 전과를 기대하며 야간 출동했던
일본 전함 기리시마가 과달카날 근해에서 미 전함 워싱턴의 레이다 조준 일제 사격에 침몰하고 말았다.

태평양 전쟁 중에 있었던 유일한
전함대 전함의 대결이었는데 일본이 완패했다.
[기리시마도 공고 하루나와 같은 급이다]


몇 달 뒤에는 히로히토 일왕이 좋아했던 히에이 전함이 항공 공격에 의해 
격침 되고 말았다.


히에이 함대 역시 공고와 하루나의 성공을 기대하고
과달카날로 침투 중이었다.


해전에서도 레이다와 항공 지원 없이는 일본
전함들이 설 곳이 없다는 것이 과달카날에서 증명된 것이다.



                                            전함 기리시마
                      미 전함 워싱턴이 가한 단 한번의 레이다 조준 포격에 격침되었다.


전함들이 쓸모가 없어졌는데도 일본 전함들은 전과 없는 비생산적인 출동을
거듭하다가 1945년거함 야마토의 자살 출동이라는 어이없는 비극을 거쳐 종말을 맺었다.


일본인들은 끝까지 거함 대포주의의 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과달카날을 포격했던 공고는1945년 7월 28일 일 구레 해군기지 항내에 정박해 있다가 미 해군 항공기의 공격을 받고 격침되었고 하루나는 그 전해인 1944년 11월 26일 필리핀 근해에서 미 잠수함에게 격침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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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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