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 [2]


                              초기의 모습

 
대잠초계기는 그 특성상 장시간 하늘에 체공하여야 하지만 기동이 날렵하거나 속도가 빠를 필요까지는 없다. 때문에 플랫폼이 되는 비행기들은 전투기와는 달리 굳이 기체가 고성능일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대잠작전 및 해상초계에 필요한 각종 센서(Sensor)류가 워낙 고가의 장비다 보니 이러한 장비들이 탑재된 대잠초계기 한 기의 가격은 보통 고성능 전투기의 그것을 능가하고는 한다.


            오늘날 대잠초계기는 육상발진형, 항모탑재형, 헬기형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초계 임무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각종 센서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도의 전략물자인데, 수요처도 한정되어 있고 제작에도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되어 이를 생산하는 나라도 얼마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하였던 나라들이 자신들의 해상지배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필요에 의해서 장기간의 노력과 개발로 이루어진 성과물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기술은 미국과 영국이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계기는 플랫폼 자체가 고성능은 아니지만 센서류가 고가인 무기체계다

 
잠수함의 무서움이 널리 알려진 시기는 앞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유보트의 신화가 처음 등장한 제1차 대전부터인데, 당시에는 주로 사람의 오감에 의해서 잠수함의 탐지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보편적인 대잠초계 장비로 사용되는 소나(Sonar)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ASDIC 같은 초보적인 초계장비가 개발되기도 하였지만 당시 기술 여건상 그리 좋은 성능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소나의 기술은 어군탐지에도 이용되는 등 여러 목적으로 사용 중이다
 

독일의 유보트들이 충전 등을 위하여 수시로 수면 위로 부상하였지만 연합군은 수상함만으로 이들을 발견하기 매우 힘들었다. 이때 하늘에서 잠수함을 감시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비행선(Airship)이 적당한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제1차 대전은 본격적으로 비행기가 실전에 본격 투입된 무기사적으로 혁명적인 시기였지만, 넓은 바다 위에서 잠수함을 탐색하기에는 체공시간이나 비행반경 등을 고려 할 때 그리 적합하지는 않았다.

 
     제1차 대전은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무기로 활용된 시기였으나 항속거리 등이 짧아
             넓은 지역을 장시간 초계할 플랫폼으로 사용하기는 곤란 하였다

 
그래서 비행선이 적합한 초계도구로 사용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센서에 해당되는 부분은 오로지 비행선에 탑승한 인간의 눈(眼) 밖에는 없었다. 비행선이 비록 장시간 체공은 가능하였지만 속도가 느리고 거대한 동체를 이착륙시키기 위해서는 해안주변의 연근해에서만 활동이 가능하였고, 당시의 통신기술을 고려할 때 잠수함을 발견하였어도 이를 해군 구축함에 즉시 통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비행선이 최초 초계용 항공 플랫폼으로 등장하였다

 
더구나 마땅한 자체 대잠공격 능력을 보유하지 못하여 부상한 잠수함을 바로 아래에서 발견 하였다 하더라도 손가락만 빨았을 뿐이었끼 때문에 비행선은 전술적으로 뛰어난 효과는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잠수함의 출몰을 감시하는 것은 망망대해를 수십 척의 수상함 들이 떼를 지어 헤집고 다니는 것보다는 분명히 효과적이었다.

 
                 하늘에서 해상을 감시하는 것이 효과적 방법임이 입증되었다


 
오늘날 고성능 PC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APLLE ][ 를 단순히 성능만 가지고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컴퓨터는 반드시 집체만한 대형이고 여러 명의 전문가들만이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APLLE ][ 와 같은 선구자의 등장 없었다면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를 만든 기술적 발전과 진보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의 열풍도 이미 이를 시대를 앞서보고 사전에 차근차근 준비한 기술적 기반이 있었기에 탄생한 것이다.

 
                    비행선에 의한 초계활동은 보잘 것 없는 시작이었지만 
                          오늘날 해상초계기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제1차 대전 당시에 인간의 감각에 의지하여 적 잠수함을 발견하는 한 없이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초보적인 형태의 공중초계 활동을 결코 우습게 볼 수는 없다.  ( 사실 '견시'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초계수단이다 ) 그러한 하나하나의 시도와 시행착오가 쌓여서 오늘날의 고성능의 대잠초계기가 탄생되고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 계속 )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 1




잠수함
(Submarine)
이 개발되고 그 위력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보트(U-Boat)로 잘 알려진 잠수함을 독일해군이 대량 운용하면서 부터이다.  비록 전쟁 전에 독일은 대대적인 건함을 통하여 세계 2위 수준의 해군력을 보유하였지만 영-프 연합군보다는 열세여서 적극적인 정면대결은 할 수 없었다.  이때 독일은 150 여척의 U-Boat 를 이용한 변칙작전으로 종전 시까지 무려 1,200만 톤의 연합국 선박을 침몰 시키는 전과를 발휘하였다.


                  제1차 대전은 잠수함의 효용성을 입증 시켰다 (종전 후 자침한 유보트)
 

하지만 은밀한 잠수함이라 하여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주 수면위로 부상(浮上)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다수 잠수함의 동력구조에 기인한다.  원자력이 아닌 재래식 동력의 잠수함은 디젤 엔진으로 발전기를 가동하여 생산된 전력을 잠수함에 설치된 대형축전지에 충전한 후 이 전력을 이용하여 전기 모터를 가동시켜 추진력을 얻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초기 잠수함들은 오랜 기간 잠항하여 작전을 펼칠 수 없었다
 

그런데 축전지가 소모되면 디젤 엔진을 이용하여 다시 충전하여야 하는데 디젤엔진을 가동하려면 외부로부터 공기를 공급받아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공기가 있는 수면위로 부상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의 기술로는 수중에 숨어서 할 수 없었던 정찰 및 통신을 위해서라도 잠수함의 장점인 은밀함을 포기하고 부득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야 했다.

 
                         충전, 정찰, 통신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수시로 부상하여야 했다
 

지금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경우처럼 이론적으로 무한대 잠항이 가능하고, 재래식 동력 잠수함도 AIP(Air Independent Propulsion)의 탑재로 잠수시간이 획기적으로 늘었다.  거기에 더하여 수중에서 외부와의 통신이나 수면 위 탐지 장치 등 여러 기기들의 개발 때문에 예전처럼 수시로 부상하여야 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잠수함이 본격 활약하기 시작한 당시에만 해도 이것은 잠수함의 태생적인 한계로 여겨졌다.

 
                        요즘은 여러 첨단 기술로 잠수함에 대한 제약이 많이 완화되었다.
                             (AIP를 탑재하여 장시간 수중 작전이 가능한 손원일함)



수상전투함이 잠수함을 잡는 방법은 한마디로 공격을 받기 전에 먼저 발견하여 폭뢰나 어뢰 등을 이용하여 침몰 시키는 것인데 특히 수면 위로 부상한 잠수함은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사실 잠수함은 어뢰이외에 별다른 외부무장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적들 앞에 부상한다는 자체가 곧 잠수함의 최후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작전 중 부상은 그만큼 위험하였다.


                             수면 위로 떠오른 잠수함은 손쉬운 먹잇감일 뿐 이었다
 

이러한 고유한 잠수함의 약점을 최대한 노려서 공격하고자 이들을 찾고 요격하기 위한 구축함(Destroyer)이 해군의 주요 전력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사실 오늘날의 구축함은 종합전투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오로지 잠수함을 잡기위한 단일 목적함으로 운용되다 시피 하였고 이들 구축함은 잠수함이 부상할 만한 위치를 주로 탐색하며 사냥하기 위해 애썼다.

 
                              잠수함의 활약 때문에 구축함의 중요성도 증대 되었다.
                              제1차 대전 당시 영국의 주력 구축함이었던 V-Class
 

그런데 부상한 잠수함을 찾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구축함이나 초계함들이 쉴 새 없이 넓은 바다를 돌아다는 것이 아니라 잠수함 탐지수단을 탑재한 비행체를 이용하여 하늘에서 감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도 잠수함의 동력체계 변화 및 소나부이(Sonobuoy) 같은 대잠 탐지 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초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하늘로부터 잠수함을 찾는 노력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결국 하늘에서 잠수함을 추적하는 방법이 고안 된다
 

오늘날 대표적인 대잠초계 항공기들은 해안 부근이나 대형 항공모함에 근거를 두고 작전하는 고정익기 형태와 주로 구축함이나 호위함 정도 규모의 함정에 탑재하여 작전을 펼치는 헬기형태로 구분 되는데, 이 중에서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대잠초계기들에 대한 간략한 역사와 내용을 알아보고 이와 관련하여 우리 해군 항공대의 나갈 방향에 대해 점검해 보고자 한다.





신고
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0

    천안함 승조원들의 무사기원을 바라며  
 


미국은 제2차 대전 당시에 무지막지하게 많이 만들어 사용한 플레처급(Fletcher Class), 알렌 섬너급(Allen M. Sumner Class), 기어링급(Gearing Class) 구축함을 전쟁이후 동맹국들에게 제공하였는데, 우리도 이를 인수받아 최대 9척을 운영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탄생당시의 기준으로나 구축함이었지 현대 기준에 따른다면 호위함보다도 못한 구형 군함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 우리 해군의 주력이었던 기어링급 구축함 (DD-951 광주함)

        

그러나 우리해군은 페인트를 수십 번 덧칠한 선령이 30년이 넘은 이들을 자랑으로 여기며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주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던 1975년 7월, 박정희 전(前) 대통령이 관계자들을 불러놓고 독자적인 한국형 구축함 개발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하지만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처럼 고속정 정도나 개발하여 본 경험이 있던 당시 우리 기술력으로 수상 전투함의 꽃인 구축함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도전이었습니다.


1970년대 최신형 구축함인 영국해군의 42형



더구나 미사일시대를 맞이하여 구축함은 거함거포시대 당시의 대잠수함전을 위한 전문전투함이 아닌 종합전투함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성격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1970년대부터 조선업이 본격 태동하고는 있었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구축함(Destroyer)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아래 단계인 호위함(Frigate)이나 초계함(Corvette)도 만들어 본 경험이 전무하였습니다.


최초의 국산 전투함인 백구급 유도탄고속함

 

결국 당시 기술진들은 Step By Step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전투함건조와 관련한 노하우를 습득하고 우선 당면한 노후함들을 시급히 대체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전투함을 만들어 보기로 결정하고 구축함의 전단계라 할 수 있는 호위함 개발에 착수합니다. 그 결과 1978년 4월, 기본설계가 완료되어 1981년 1월 드디어 최초의 한국형 전투함이 세상에 그 자태를 들어내는데 바로 FF-951 울산함이었습니다.

 

FF-951 울산함


                         

흔히 울산급이라 명명 된 호위함은 1,800톤의 배수량을 가진 전투함이었는데 실험적인 성격으로 제작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많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컸던 고민이 바로 예산이었습니다. 울산함을 건조하면서 전투함제작에 관한 기초 노하우를 획득 할 수 있었지만 예상외로 비용이 많이 들어 당시에 배정되었던 예산으로 계획된 보유물량의 확보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울산급 호위함인 경북함

       
                     

울산급 호위함을 대량 건조하여 노후 전투함을 시급히 교체하여 연안방위의 주력으로 삼고자하였던 계획은 어려워졌고 당국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정책당국은 한정된 예산으로는 연안방위에 투입 할 충분한 양의 전투함을 확보하기 위해 울산급보다 조금 작은 전투함 개발에 착수합니다. 바로 한국형 초계함을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동해급 초계함 2번함인 PCC-752 수원함

             

 
이에 따라 울산함 건조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1982년 조금 축소된 형태의 1,200톤 규모의 초계함인 PCC-751 동해함이 탄생하였습니다. 이후 동해급으로 명명 된 한국형 초계함은 연안방위용으로 대함미사일 없이 3인치 함포 및 기관포를 위주로 화력을 장비하고 어뢰, 폭뢰를 장착하여 제한적인 대잠능력도 갖추었습니다.

 

포함급 초계함 14번 함인 PCC-772 천안함

             

이 동해급 초계함은 총 4척이 취역하였고 제작과정에 습득한 기술로 좀 더 보완하여 1984년 12월에 취역한 새로운 개량형 초계함이 취역하는데 PCC-756 포항함의 이름을 따서 포항급으로 명명되었습니다. 포항급은 1993년 7월 PCC-785 공주함까지 총 24척이 제작되면서 수적으로 연안방위의 중추로 자리잡으면서 북한 해군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단계를 밟아 탄생한 DDG-991 세종대왕함

                               


이렇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온 우리 해군은 전투함 중 최고로 평가받는 이지스급 구축함인 DDG-991 세종대왕함을 2008년 취역시키는 단계로지 발전하여 왔습니다. 즉, 본격적인 한국형 전투함이었던 포항급 초계함은 대양해군으로 성장하는 한국 해군의 시작과 다름없는 기념비적 함정이었고 연안방위에 상당히 많은 역할을 하여 왔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주기를 기원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PCC-772 천안함은 포항급의 14번째 함으로 1989년 취역하였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서도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여 왔던 천안함 승무원들의 무사귀환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비록 현재 상황이 어렵고 구조에도 많은 난항을 겪고 있지만 최선을 다하여 주기를 또한 기대합니다



신고
Posted by 박비 트랙백 1 : 댓글 2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