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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4 북풍한설 속의 크리스마스 이브 (2)



                                           크리스마스 이야기 [ 끝 ]
 
                 1950년 ( 흥남 ) 에피소드
 
 
통일의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던 달콤했던 1950년 10월이 지나가고 찬 서리가 내리던 11월이 되었을 때 전선의 상황은 뭔가 이상해지고 있었습니다. 산속 깊숙한 곳에서 저항하는 적들이 지금까지 상대한 북한군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만국경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작은 충돌이 아니라 대규모의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 지금까지의 전쟁은 무효가 되어버렸습니다.

 
                          중공군의 등장은 새로운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2월이 되어 속절없이 아군 부대들이 중공군에 각개 격파되어 나가자 후퇴는 결정되었고 지금까지의 진격로를 뒤로 돌아 북한 땅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동해의 전략거점이자 함경도의 초입인 원산이 12월 7일 중공군에게 점령되자 한반도 동북부 방향으로 진격하여 잘 싸우고 있던 미 10군단, 국군 1군단은 순식간 배후가 절단되면서 적진 한가운데 고립될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중공군의 포로가 된 미군
 

다행히도 제해권, 제공권을 가지고 있던 UN군은 이를 발판삼아 한반도 동북부의 요충지인 흥남일대로 집결하여 교두보를 설치한 후 바다로 철수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항구도시 흥남에는 병력 10만 5천명에, 차량 1만8,422대 그리고 3만 5천 톤의 각종 군수물자들이 모여들었고 이를 해상으로 이동시키기 위하여 총 125척의 각종 선박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미 7함대의 엄청난 화망이 철수작전 동안 흥남항을 향한 중공군의 접근을 거부시켰습니다.

 
                                         1950년 12월 흥남항 전경
 

1940년 프랑스북부의 됭케르크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된 30만의 연합군이 기적 같은 해상철수에 성공하였던 이후 사상 최대의 해상 철수작전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군이 배를 타기위해 흥남항을 향하여 속속 집결하는 것과 발맞추어 군인들을 능가하는 엄청난 규모의 피난민이 함께 부두로 모여들고 있었는데 바로 자유를 찾아 남으로 가고자 했던 북한주민들이었습니다.

 
                                   철수대기 중인 군인들과 섞여있는 피난민들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등지고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남쪽으로 가고자 하였을 만큼 지난 5년간 벌어진 공산학정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극악하였습니다.  그렇게 후퇴하는 아군을 따라 흥남으로 몰려든 한반도 동북부의 주민들은 벌써 20여만 가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전하게 탈출시켜 주겠다고 그들에게 사전에 약속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공산학정을 피하여 탈출하려는 민족의 거대한 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철수작전을 총 지휘한 미10군단장 알몬드 (Edward Almond )는 커다란 시름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또한 한국전에 발을 들여 놓고 난 후 한반도 곳곳에서 벌어진 엄청난 학살현장을 익히 보아왔고 흥남항에 모여든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그러한 공포가 무서워 피난하고자하였던 사람들이라는 사람을 그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변한 한국전쟁은 후방의 민간인들조차 결코 안전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흥남철수의 총책임자 알몬드 미 10군단장
 

하지만 알몬드에게는 당연히 군의 철수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미 10군단 민사부 고문이자 통역이었던 현봉학 박사에게 3천여 명의 민간인만 소개하겠다는 의중을 밝힙니다.  하지만 북풍한설에도 뜬눈으로 서서 밤을 새며 부두에 몰려든 수십만 피난민의 애끓는 눈초리를 그 누구도 외면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때 국군 1군단장 김백일 장군이 이들의 동반 탈출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현봉학 박사도 알몬드를 설득하였습니다.
 
                                          부두에 대기중인 국군 1군단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배의 빈곳이라면 어디건 상관없이 배가 침몰하지 않을 수준까지 피난민을 태우고 철수하라고 명령이 하달되면서 장엄한 인도주의 작전이 12월 12일 시작되었습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맹추위와 더불어 눈보라가 흩날리는 흥남부두는 군인들과 각종 물자를 비롯하여 괴나리봇짐을 짊어진 남녀노소구분 없는 피난민들이 함께 승선을 하였고 그들은 차례차례 자유를 향한 탈출에 오릅니다.

 
                             지휘부의 결단으로 장엄한 탈출극은 시작됩니다.
 

비록 모든 피난민을 다 구할 수는 없었지만 1950년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마지막 철수선이 불타는 흥남항을 떠나면서 군사적 철수를 완료함과 동시에 총 9만8천명의 피난민들이 함께 북한을 탈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것은 이후 결과적으로 한민족 역사상 최단 시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주지를 옮긴 문화인류학적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탈출선 출항 직후 폭파되는 흥남부두
 

하지만 무엇보다도 1950년 눈보라 속의 크리스마스가 빛났던 이유는 지금까지 인류가 벌여온 수많은 전쟁사를 살펴보아도 찾기 힘든 인도주의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전쟁에서 인간을 생각한다는 점은 사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여건 하에 벌어진 1950년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보여준 아름다운 표상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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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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