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정책 블로그'에 해당되는 글 87건

  1. 2010.08.27 UFG연습 기간, 별들을 만나다!
  2. 2010.08.24 제2차대전과 제트기 개발 경쟁!
  3. 2010.08.23 [3회] 특수부대의 임무 (1) : '타격작전' 이란?
  4. 2010.08.23 해군 항공대여, 적 잠수함을 섬멸하라!
  5. 2010.08.16 잠수함 잡는 '대잠초계기'
  6. 2010.08.04 <납량특집> '대한민국 특수부대', 커밍 순(Coming Soon)!
  7. 2010.07.30 '불굴의 의지' 훈련에 참여한 함재기들
  8. 2010.07.29 행복전도사 曰, "양형위원회 없으면, 법원 아니잖아요?" (1)
  9. 2010.07.26 '한미 외교/국방장관', 2+2회담 전에.
  10. 2010.07.23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 '트윗벙개'의 추억.. (2)
  11. 2010.07.22 태평양을 왕복하는 6.25당시 총기들
  12. 2010.07.20 '전시작전통제'의 전제조건, 전시지원(WHNS)
  13. 2010.07.20 대림 미술관(6.25 특별사진전), 함께 가시죠!
  14. 2010.07.16 '천안함'으로, 국방부와 '시민사회단체'가 만났습니다. (2)
  15. 2010.07.15 6.25 상황 재현, 잠시 짚고 넘어가도 될까요??
  16. 2010.07.14 최고의 무기 AK-47소총, "그러는 거 아냐." (3)
  17. 2010.07.13 '국방정보화와 아키텍쳐', 나아갈 길은?
  18. 2010.07.12 해외파병 성공의 요건, '무사귀환'을 바라며.
  19. 2010.07.09 1950년 6월, 공군의 극적 분투
  20. 2010.07.08 제4회 국방부 '웰컴투 건강골' 행사..라고요?
  21. 2010.07.07 천안함 외교 - '샹그리라 대화(Shangri-La Dialogue)'
  22. 2010.07.06 "강하고 효율적인 군으로 육성" - 신임 합참의장 취임
  23. 2010.07.05 6.25전쟁 당시, 해군의 용전분투 (2)
  24. 2010.07.05 '한-미 동맹', 전작권 전환시기를 보완하였습니다.
  25. 2010.06.30 제2연평해전을 기념하며 - "승리를 남기고 떠난 전우여!"
  26. 2010.06.29 동해안에 기록된, 6.25전쟁 남침의 증거
  27. 2010.06.28 6.25 전우여! 고맙습니다.("Thank you, brothers!") (2)
  28. 2010.06.25 월드컵보다 뜨거운 '한-터키 군인 축구'! (2)
  29. 2010.06.23 예술의 경지, 월드컵 16강 그리고 '경계에서'!
  30. 2010.06.21 '제9회 6.25전쟁 귀환 국군용사 초청행사'에 참석하여. (2)





여러분의 국방부는, 8월 16일~19일 총4일간의 UFG연습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별'들을 만나뵈었지요.  올 한해 다사다난하였던 국방부... 특별히 '별'님들을 만나뵙고 싶었던걸까요?

바로, 국방부장관 주관으로 '10년 예비역 장성 초청 국방정책 설명회를 개최하였다는 이야기.
 



국방부는 1989년부터 매년, 국내 거주 예비역 장성을 대상으로 위와 같은 초청행사를 진행하여 왔는데요,

이 자리는 예비역 장성분들을 초청하여 그분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국방현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분들을 국방정책에 대한 후원자로 모시고자하는 자리라고 하겠습니다.


                                초청행사 시작전, 간단한 티타임을 갖고 담소를 나누시는 '별'들~



                                                      방명록을 작성하시고-

                                               국방에 소중한 제언을 하십니다...

                           그리고, '별'님들은 행사장(국방부 대강당)으로 입장하시지요.

                                               정책설명회 전, '별'들의 환담

금번 '10년 예비역 장성 초청 국방정책 설명회는, '제1부'로 1) 장관 인사말씀 및 주요인사 소개 2) 북한의 군사동향 및 군사대비태세 보고 3) 천안함 피격사건 조사결과 보고 4) 국방정책현안 보고 5) 질의/응답 으로 구성하였으며, 오찬 후 '제2부'로는 안보현장 견학(문서고, 전쟁기념관, 천안함 현장 중 택1)으로 구성하였답니다.


UFG연습 기간이라 민방위복을 착용한 국방장관의 '별'들께 대한 인사말씀으로 정책설명회는 시작되었고요.

특별히 금번 예비역장성 초청 행사를 UFG연습 기간 중에 실시하게 된 것은, 특별히 예비역 장성분들과 안보현안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국방부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정책현안 설명 전, 중요한 것들을 말씀드렸지요.
바로, 오찬 후 안보현장 견학 이동경로입니다- 






한가지 알려드린다면,..
예비역 장성분들중 많은 분들께서, 평소 자발적으로 국방부 정책고객으로 등록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국방부가 정책고객서비스 메일을 통해 전해드리는 각종 국방정책들에 대해 고견을 보내주시는데요, 이처럼 전역 후 현재까지 꾸준히~ 우리 국방에 대해 아낌없는 조언과 성원들을 보내주고 계시답니다.

물론, 일반 국민들께서도 국방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국방부가 금번 특별히 예비역 장성분들을 초청한 이유는... 그분들은 평생을 국방부 및 군과 동고동락하신 만큼 국방정책과 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10년 예비역 장성 초청 국방정책 설명회는 국방정책에 대한 예비역 장성분들의 아이디어를 수렴하고「선진 강군」의 토대를 놓으신 군 원로들의 헌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뜻깊은 자리였답니다. ^^
국방부를 찾아 주신 '별'님들!  그 사랑 변치마소~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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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새로 만든다는 것이

 
 
음모론이나 무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한 번 정도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이 만들었던 비밀무기에 관한 이야기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V-1, V-2, Me-262처럼 실제로 전선에 등장하여 연합군을 경악시킨 놀라운 무기도 있었지만, 단지 구상단계로 끝나고 이후 흥밋거리로 전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V-2는 대표적으로 알려진 나치의 비밀병기다.


 
오래전 인터넷 검색 도중 아래 그림을 보고 깜작 놀랐던 적이 있었다. ( 현재는 폐쇄된 폴란드사이트로 후속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지 가정으로만 끝날 수 있는 내용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그림은 독일의 유명한 항공기 제조사인 포케울프(Focke Wulf)가 제2차 대전 말에 콘셉을 잡은 차세대 전투기인 Ta-183의 예상도인데, 설명이 너무 자세히 되어있었다.

 
                                       상상력을 유발시킨 문제의 Ta-183 그림
 

설명에 따른다면 전쟁 당시에 포케울프의 제작소나 연구소 같은 관련 시설이 東프로이센(East Prussia-현재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와 폴란드 동북부 일대)에 있었던 듯하다. 사실 습작에 불과한 단순 개념도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미 독일은 최초로 제트기를 만들고 제트전투기도 처음 데뷔시킨 나라인데다 Ta-183의 디자인도 극히 평범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제2차대전 당시 포케울프사의 명성을 드높인 프로펠러 전투기 Fw-190
 

그림을 보고 놀랐던 이유는 사실 다른데 있었다. 포케울프 제작진이 제2차 대전 후 스웨덴으로 가서 제트기 제작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에 동서진영을 대표하여 제트전투기로 명성을 드높인 후퇴익 제트전투기인 F-86과 MiG-15는 제2차 대전 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과 소련에서 옮겨간 독일 기술진들이 직간접적으로 제작에 참여하였다. 그래서 거의 동시에 등장한 이 두 전투기의 외형이 놀랄만큼 비슷하다.

 
                        MiG-15(전)와 F-86이 비슷한 모습을 가지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거의 동시대에 중립국 스웨덴이 최신 후퇴익 제트전투기인 J-29를 선보였는데, 이것은 미국과 소련 외에 처음으로 제식화에 성공한 후퇴익 제트전투기이었다. 제트기 (그것도 후퇴익)의 개발은 첨단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동안 별다른 기술적 기반이 없다고 평가되던 스웨덴이 J-29를 만들어낸 데에는 패전국 독일 기술진의 참여가 있었을 것이라 심증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밀 기계공업의 강국인 스웨덴의 자체 기술력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스웨덴의 SAAB J-29 Tunnan

 
특히 포케울프가 구상하던 여러 제트전투기 모델 중 Super TL과 스웨덴의 J-29는 이름만 바꿔 달았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너무 닮았다.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나치 비밀병기 콘셉을 보면 UFO타입의 나치 비밀병기처럼 당대 기술로 불가능한 것들이 많지만 Super TL은 실현 가능성이 컸던 모델이어서 전후 독일 기술진의 J-29 제작 참여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포케울프가 구상하고 있던 Super TL

 
포케울프의 관련 시설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東프로이센은 소련군에게 제일 먼저 점령된 독일영토였다. 당시 거기에 살던 400여만의 독일인들은 보복을 피해 피난을 하였는데, 제트기 엔지니어들이 발트해 건너에 있던 중립국 스웨덴으로 도피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사실 이 정도 고급인력이 굴러 들어온다면 마다할 나라는 없다. 그들이 스웨덴에 정착하여 제트기 전투기 개발에 착수하지 않았을까?
 

                             오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작된 스웨덴의 최신 전투기 그리펜
 

그렇다면 오늘날 최신예 전투기인 그리펜(Grippen)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스웨덴의 전투기 제작기술은 독일의 기술진이 뿌린 씨앗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장의 개념도에 쓰여 있는 내용과 J-29를 연관지어 이처럼 여러가지 가능성이 생각나게 만들 만큼 고성능 제트기를 자력으로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그것은 현재도 그렇다.

 
                                                공군의 고등훈련기 T-50
 

사실 우리가 T-50 Golden Eagle 같은 고성능 제트기를 직접 만들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앞에서 추론한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외부의 자발적 도움 가능성도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제트기 제작에 관한 노하우 습득에 있어서 거의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였다. 그러한 어려움을 겪으며 이뤄낸 쾌거여서 더욱 자랑스럽고 그 성과가 소중하다. 앞으로도 계속적인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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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적군의 중요시설을 향해서

소수의 군인들이 특공작전을 펼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

‘나바론의 요새’입니다.




영국군 2천명의 목숨을 노리는 나바론 섬의 거포,

첩첩산중에 독일군이 우글거리는 적진의 한가운데로

포대를 파괴하라고 겨우 6명의 군인들이 보내집니다.

이들이 가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공군으로도 안되고, 해군으로도 안되니

재주 있으면 니들이 해봐라’는 것입니다.

결국 특수부대는 정규부대가 수행하지 못하는 임무의

노련한 해결사들인 거죠.

 
결론적으로 이런 저런 고생 끝에

끝내 거포를 폭파했다는 게 스토리죠.


                      <6인의 특공대랍니다. 자세가 많이 어정쩡한 게 ‘아저씨 배구단’인가요? -_-;; >

 

바로 여기서 볼 수 있는 특수부대의 임무가

‘타격작전’이라는 것입니다.

실로 타격작전은 특수부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임무죠.

   
    타격작전이란 “특수작전부대가 실시하는 단기간 또는 소규모의 공세작전으로 사전에 지정된
 
   목표물(인명, 장비 또는 시설물)을 포획/파괴/회수하는 군사작전“을 말합니다.




                          <아무리 남자끼리 신체접촉이 싫어도 해야죠. 타격작전이잖아요. -_-;;>

 

근데 말이 좋아서 타격작전이지 정말 어렵습니다.

일단 상당히 위험하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머릿수가 심하게 모자라기 때문이랍니다.

 
이런 타격작전은 소수의 특수부대 병력으로 타격합니다.

보통 공격할 때는 수비병력의 3배를 동원하는 것이 정석인데

오히려 적보다 3배 이상 적은 경우가 허다하지요.

 
결국 치고 빠지는 게 관건이 됩니다.

적에게 들키지 않고 은밀히 접근해서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하고도 격렬하게 공격한 다음

목표가 달성되었다 싶으면 곧바로 빠져나옵니다.


             <굳이 줄 타고 내려오는 것도 알고 보면 1초라도 빨리 적에게 한 방을 먹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은밀히 접근하다보니 밤을 선호하고,

침투하는 수단도

고공강하, 헬리콥터, 잠수함 등 다양합니다.

헬기로 날아와도 점잖게 착륙하지 않고

굳이 줄 타고 내려오는 이유도

빠른 시간 내에 갑자기 목표물에 접근하려는 이유에서 랍니다.

 
공격도 남다릅니다.

불과 몇 분 내에 수백발의 탄환을 쏟아 붓고

폭약을 장착하여 목표물을 완전히 파괴합니다.


                      < 명사수들의 화력이 모이면 적은 더 이상 적이 아닙니다. 벌집일 뿐이죠. ^^ >

 

이게 체력만 좋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짧은 시간 내에 어떤 시설물을 파괴하려면

속속들이 그 내부를 알아야 합니다.

 
목표까지 정확히 몇 발자국인지

초병의 동선이 어디에서 어디인지

팀원이 피격됐을 때 어떻게 임무를 재분배할지

수십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놓고

반복적인 사전연습을 통해서

머리 속에 그리고 근육 하나하나에 각인시킵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특수부대의 저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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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끝]



 
 

                           좀 더 확충되기를 바라는 부분

 

오늘날은 탐지기기의 발달에 힘입어 물 밖으로 떠오른 잠수함뿐만 아니라 물속에 숨어있는 잠수함까지도 하늘에서 탐지 할 수 있을 만큼 항공기를 이용한 대잠초계 활동 영역이 더욱 넓혀졌다. 특히, 고정익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대잠헬기의 등장은 항공모함처럼 거대한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보통 크기의 수상전투함들도 하늘을 통한 대잠 초계활동을 가능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초기의 수상발진형 대잠초계기 Martin Flying Boat

 

더불어 대잠미사일이나 공중투하어뢰 같은 정확한 대잠 타격능력의 발달은 은밀히 숨어있는 잠수함이라도 하늘로부터의 공중초계에 포착된다면 곧바로 침몰로 연결 될 수 있을 만큼, 잠수함에게 대잠초계기는 더욱 위협적인 존재로 변하였다. 더구나 잠항 중에 있는 잠수함이 하늘에 떠 있는 대잠초계기의 존재를 즉시 알아내기가 어려워, 수면 위에서 잠수함을 감시하는 수상함보다 더욱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해상초계 단일 목적으로 최초로 개발 된 P2V Neptune


잠수함도 수시로 부상하여 몸을 노출 시킬 수밖에 없었던 예전의 재래식 잠수함의 한계를 극복한 핵추진이나 AIP같은 여러 가지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보다 은밀히 작전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항공초계에 탐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임무 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재 우리 군도 운용중인 P-3 Orion

 
결국 처음 하늘에서 잠수함을 감시하기 시작한 이후 많은 시일이 지났지만 쫓는 대잠기와 쫓기는 잠수함의 위치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 중에는 아직까지도 물속의 잠수함이 하늘에 떠있는 항공기를 공격할만한 마땅한 공격체계가 부족한 점도 있다.  물론 잠대공 요격 미상일이 연구 단계에 있어 가까운 시일 내 실용화도 예상되지만,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쫓고 숨어 다니는 일방적인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 되리라 생각된다.

 
                             우리도 사용하였던 2세대급 항모 탑재 초계기인 S-2 Tracker
                                         ('전쟁기념관'에 가시면 볼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많은 북한 잠수함세력의 위협에 대처하여야 하며, 또한 주변국 잠수함들의 천연이동로라고 불리는 동해를 비롯한 인근 해역의 초계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  해군의 대잠초계 능력을 좀 더 증대 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천안함사태에서 보듯이 서해 또한 결코 잠수함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최근에 퇴역한 항모 탑재형 초계기인 S-3 Viking

 
현재 영해를 초계하기 위해 우리 해군은 OO기의 함정탑재용 링스(Lynx)대잠헬기와 OO기의 P-3C 대잠초계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종들은 현재 여러 나라의 주력 대잠 초계기로 널리 사용될 만큼 훌륭한 성능을 자랑하는 좋은 기종이다. 특히 국내에서 대대적으로 개수하여 최근에 제식화한 P-3CK는 부족하였던 대잠 초계능력을 대폭 증가시켜주었다.
 

                               최근 도입되어 국군의 대잠 초계 능력을 확장시킨 P-3CK


 
이러한 체계적인 장비의 도입과 운용으로 우리 군의 해상초계 능력은 꾸준히 증가되었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주변 해역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선인 인근 주변 수역까지 24시간 쉬지 않고 완벽하게 감시하는데 충분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해군 항공대의 전력 확충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미국 항공모함을 방문한 한국 해군의 링스헬기

 
우리 해군은 삼면이 바다인 영해를 방어하는 것은 물론 청해부대처럼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원양에서도 작전을 펼치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임무에 투입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임무를 담당할 수 있는 해군 항공대의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 대잠초계를 비롯한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임무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우리 해군의 발전과 노력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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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 [2]


                              초기의 모습

 
대잠초계기는 그 특성상 장시간 하늘에 체공하여야 하지만 기동이 날렵하거나 속도가 빠를 필요까지는 없다. 때문에 플랫폼이 되는 비행기들은 전투기와는 달리 굳이 기체가 고성능일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대잠작전 및 해상초계에 필요한 각종 센서(Sensor)류가 워낙 고가의 장비다 보니 이러한 장비들이 탑재된 대잠초계기 한 기의 가격은 보통 고성능 전투기의 그것을 능가하고는 한다.


            오늘날 대잠초계기는 육상발진형, 항모탑재형, 헬기형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초계 임무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각종 센서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도의 전략물자인데, 수요처도 한정되어 있고 제작에도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되어 이를 생산하는 나라도 얼마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하였던 나라들이 자신들의 해상지배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필요에 의해서 장기간의 노력과 개발로 이루어진 성과물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기술은 미국과 영국이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계기는 플랫폼 자체가 고성능은 아니지만 센서류가 고가인 무기체계다

 
잠수함의 무서움이 널리 알려진 시기는 앞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유보트의 신화가 처음 등장한 제1차 대전부터인데, 당시에는 주로 사람의 오감에 의해서 잠수함의 탐지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보편적인 대잠초계 장비로 사용되는 소나(Sonar)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ASDIC 같은 초보적인 초계장비가 개발되기도 하였지만 당시 기술 여건상 그리 좋은 성능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소나의 기술은 어군탐지에도 이용되는 등 여러 목적으로 사용 중이다
 

독일의 유보트들이 충전 등을 위하여 수시로 수면 위로 부상하였지만 연합군은 수상함만으로 이들을 발견하기 매우 힘들었다. 이때 하늘에서 잠수함을 감시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비행선(Airship)이 적당한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제1차 대전은 본격적으로 비행기가 실전에 본격 투입된 무기사적으로 혁명적인 시기였지만, 넓은 바다 위에서 잠수함을 탐색하기에는 체공시간이나 비행반경 등을 고려 할 때 그리 적합하지는 않았다.

 
     제1차 대전은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무기로 활용된 시기였으나 항속거리 등이 짧아
             넓은 지역을 장시간 초계할 플랫폼으로 사용하기는 곤란 하였다

 
그래서 비행선이 적합한 초계도구로 사용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센서에 해당되는 부분은 오로지 비행선에 탑승한 인간의 눈(眼) 밖에는 없었다. 비행선이 비록 장시간 체공은 가능하였지만 속도가 느리고 거대한 동체를 이착륙시키기 위해서는 해안주변의 연근해에서만 활동이 가능하였고, 당시의 통신기술을 고려할 때 잠수함을 발견하였어도 이를 해군 구축함에 즉시 통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비행선이 최초 초계용 항공 플랫폼으로 등장하였다

 
더구나 마땅한 자체 대잠공격 능력을 보유하지 못하여 부상한 잠수함을 바로 아래에서 발견 하였다 하더라도 손가락만 빨았을 뿐이었끼 때문에 비행선은 전술적으로 뛰어난 효과는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잠수함의 출몰을 감시하는 것은 망망대해를 수십 척의 수상함 들이 떼를 지어 헤집고 다니는 것보다는 분명히 효과적이었다.

 
                 하늘에서 해상을 감시하는 것이 효과적 방법임이 입증되었다


 
오늘날 고성능 PC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APLLE ][ 를 단순히 성능만 가지고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컴퓨터는 반드시 집체만한 대형이고 여러 명의 전문가들만이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APLLE ][ 와 같은 선구자의 등장 없었다면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를 만든 기술적 발전과 진보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의 열풍도 이미 이를 시대를 앞서보고 사전에 차근차근 준비한 기술적 기반이 있었기에 탄생한 것이다.

 
                    비행선에 의한 초계활동은 보잘 것 없는 시작이었지만 
                          오늘날 해상초계기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제1차 대전 당시에 인간의 감각에 의지하여 적 잠수함을 발견하는 한 없이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초보적인 형태의 공중초계 활동을 결코 우습게 볼 수는 없다.  ( 사실 '견시'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초계수단이다 ) 그러한 하나하나의 시도와 시행착오가 쌓여서 오늘날의 고성능의 대잠초계기가 탄생되고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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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특수부대'들이 몰려 옵니다!   여러분의 '열혈국방'으로.
 



                                                             특전사


                                                           동명부대


    금번 '열혈국방'에서는 '열혈님'들을 위해 <납량특집> '한반도를 지키는 첨병 : 

    대한민국 특수부대' 연재를 준비하였습니다.

    육군 특전사, 해군 UDT/ SEAL/ EOD, 해병특수수색대, 공군 CCT/ PJ, 경찰

    특공대, 해양경찰특수기동대, 해외 파병 특수부대 등등등을 만나보십니다.



                                                          경찰특공대
                 
                                              경찰특공대 가상 테러진압 훈련

                        
  
                                      경찰특공대 가상 한강여객선 인명구조 훈련


    
    대한민국 각 특수부대를 '클로즈-업' 합니다.
   
    각 특수부대의 창설, 활동내용, 화기, 기타 장비 등등등...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화~악!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흐믓해져 옵니다. ^^


    본 특집기사 제작에는,  대한민국 각 군, 경찰청, 해양경찰청, 해외 파병부대 등이
   
    협조하여 주셨으며, 작가는 '열혈국방'에서 '글로벌 밀리터리' 코너를 담당하고
   
    조선일보 등에서 밀리터리 컬럼니스트로 활동하고 계신 '양욱'님 입니다.


    8월 2주부터 연재될  "한반도를 지키는 첨병 : 대한민국 특수부대"!

    기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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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굴의 의지'  훈련에 참여한 함재기들
 
 

작전명 불굴의 의지(Invincible Spirit)로 명명되어 지난 7월 25일에 시작된 한미연합훈련에는 우리 해군이 보유한 독도함을 비롯한 다양한 각종 함정들과 F-15K를 위시한 공군의 최 신예기들이 참여하여 막강한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훈련에 선보인 무기들 중 하이라이트는 미국이 보유한 항공모함 CVN-73 조지 워싱턴호와 현존하는 최강의 전투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신예 전투기 F-22라 할 수 있습니다.


                                    연합훈련 중인 미 항모 조지 워싱턴호와 한국 해군의 독도함

 
그중 전략 기동장비의 꽃인 항공모함은 훈련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미국만이 운용 중인 슈퍼캐리어(초대형 항공모함)는 다양한 종류의 함재기를 탑재하여 작전을 펼치는데, 항공모함이 우리에게 낯선 장비이다 보니 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함재기도 생소한 편입니다.  물론 F-4팬텀기처럼 함재기에서 파생된 기종을 사용하였지만 통상적으로 함재기는 항공모함을 기반으로 운용되므로 우리에게 낯선 것은 사실입니다.

 
                   갑판에 다양한 종류의 함재기를 가득 싣고 항해 중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항공모함에는 통상 1개 항모비행단(CVW-Carrier Air Wing)이 탑재되어서 운용되는데, CVW는 소속 항공모함을 필요에 따라 바꾸기도 하며 CVW를 구성하는 비행대도 작전의 투입 목적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고는 합니다.  이번 한미연합훈련에 참여한 조지 워싱턴에는 별개의 임무에 투입되는 8개의 비행대로 구성된 제5항모비행단(CVW-5)이 전개되었습니다.  막강하지만 우리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이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전투폭격비행대 (VFA)

 
공대공전투와 공대지전투를 펼치는 전폭기로 구성된 비행대로 항모비행단의 주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CVW-5에는 F/A-18E 슈퍼호넷으로 구성된 3개 비행대(VFA-27, 102, 115)와 구형인 F/A-18C 호넷으로 구성된 1개 비행대(VFA-195)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통상 1개 비행대가 12~14기의 전폭기로 구성되니 48~56기의 전폭기가 항공모함에 탑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착함 중인 VFA-27의 FA-18E 전폭기
 

                                        조기경보비행대 (VAW)

 
조기경보기는 작전 구역을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한마디로 하늘의 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공중을 통한 적의 내습을 원거리에서 감시하거나 아군 VFA가 원거리로 작전을 나갈 때 함께 동행하여 아군기가 원활하게 작전을 펼치도록 돕는 임무에 투입됩니다.  CVW-5에는 4~6기의 E-2C 조기경보기로 구성된 1개 비행대(VAW-115)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이함하는 VAW-115의 E-2C 조기경보기
 

                                          전자전비행대 (VAQ)

 
전자전기는 적의 레이더망을 비롯한 전자 감시체계를 교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한마디로 아군이 대지공격 등의 작전을 펼칠 때 상대의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VFA가 작전을 나갈 때 조기경보기와 전자전기가 함께 동행 하여 작전을 펼치며 CVW-5에는 4~6기의 EA-6B 전자전기로 구성된 1개 비행대(VAQ-136)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전자전기는 아직 우리 군도 보유하지 못한 최고의 전술장비입니다.
 

                                         이함 준비 중인 VAQ-136의 EA-6B 전자전기
 

                                             수송비행대 (VRC)

 
말 그대로 항공모함을 기반으로 하는 수송기부대입니다.  항공모함은 한 번 작전을 나가면 장기간 작전을 펼치므로 인근 육지나 다른 항공모함 사이의 긴급한 인원이나 화물의 수송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목적에 수송비행대가 투입되는데, CVW-5에는 2~4기의 C-2A 수송기로 구성된 1개 비행대(VRC-30)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비행 중인 VRC-30의 C-2A 수송기
 

                                        헬리콥터비행대 (HS)


조종사구조, 해상구난, 연락, 수송, 대잠초계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헬리콥터로 구성 된 비행대입니다.  CVW-5에는 4~6기의 SH-60, HH-60 고성능 헬리콥터로 구성된 1개 비행대(HS-14)가 전개되어 있습니다.
 

                                          작업 중인 HS-14의 HH-60H 헬리콥터

 
위에서 언급한 CVW의 구성은 통상적이지만 고정된 것은 아니고 임무와 상황에 맞게 수시로 변경되거나 조정됩니다.  평소에는 위에서 언급한 60여기 정도의 각종 작전기를 탑재하고 항공모함이 작전에 나서지만 이들 작전기들 대부분은 하나하나가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최신예기라서 상당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따라서 흔히 항공모함 비행단의 전투력이 중소국가의 공군력을 능가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패키지 시범 비행 중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에 탑재된 제5항모비행단(CVW-5) 소속의 함재기들
 

사실 항공모함 자체는 그리 무서운 무기가 아닙니다.  워낙 큰 덩치 때문에 방어에 불리하여 수많은 호위함의 보호 없이 단독으로 바다로 나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능력을 가진 CVW를 원거리로 이동시켜 작전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전략무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항공모함에서 내려 육지에 전개 된 CVW는 통상적인 비행단 수준으로 능력이 반감된다는 점입니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처럼 항공모함과 CVW는 함께 있을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처럼 무서운 전략무기도 결국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 때 힘을 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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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상 규정된 자와 국군이 관리하는 포로가 지은 죄 등은 어디에서 재판을 받을까요?
아시다시피, 바로 '군사법원'이죠.

"그런 범죄 처리안하면 군사법원 아니잖아요?"
"아니, 다들 표정들이 왜이래요? 군사법원에서 처벌 많이 받아보신 사람들처럼." 


                            모 방송 행복전도사 왈, "그런 범죄 처리안하면, 군사법원 아니잖아요?"


대한민국헌법에는, 군사재판을 위한 특별법원으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군사법원법」에서는 군사재판을 관할할 군사법원의 조직, 권한, 재판관의 자격 및 심판절차와 군검찰의 조직, 권한 및 수사절차 등을 규정하여 군사법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에서는 이군사법원법」의 일부조항을 개정하고 있답니다.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지요.

첫째, '양형위원회' 조직, 운영, 양형 기준의 효력 등 관련 조항을 추가하고자 합니다.
대법원에는「법원조직에 따라 '양형위원회'를 두고 있는데요, "양형"이란 형벌의 종류와 양을 정하는 과정으로 양형위원회에서는 형벌의 종류와 양형기준을 설정, 변경하고 그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일 수가 있답니다.

현재 군사법원에서는 임시 양형위원회가 열리고 있는데요, 금번군사법원법일부조항 개정은 '양형위원회'을 설치, 상시 운영하기 위한 법적근거를 마련하여 군 범죄 형량에 대한 기준 연구를 지속하고 좀더 신뢰성있고 객관적인 양형 기준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랍니다. 이는, 향후 인권보장과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군사법원의 새로운 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임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군사법원의 양형위원회

 

둘째, 군검찰관 및 군사법경찰관의 수사장구 및 무기 사용의 법적 근거를 만들고자 합니다.
일반경찰의 경우「경찰관직무집행에 범인의 체포, 도주 방지 등을 위해 최소한으로 경찰장구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군사법경찰관과 군검찰관 수사 시에는 그러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입니다. 이에, 군 수사업무도 적법하게 수행하고 직무수행자와 기타 제3자의 생명, 신체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필요 최소한 범위의 수사장구(수갑 등) 나 무기(가스총, 전자충격기 등)를 사용할 수 있도록군사법원법개정이 필요합니다.
 
혹자는 이것이 직무수행시 악용될 소지가 있음을 우려하기도 하시지만,경찰관직무집행법과 마찬가지로 무기 사용의 경우 범인이 무기나 흉기를 소지하여 세 차례 이상의 투항명령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구체적 사용 기준을 명시하려는 것이랍니다.




그 밖에 이번군사법원법개정을 통하여 '군검찰관'이라는 딱딱하고 엄격하게 느껴지는 용어를 '군검사'로 변경하고 미비점을 개선하고자 한답니다.

군사법원은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수행하는 동시에 국민들에게 양질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재,군사법원법」개정은 '입법예고'를 통한 의견수렴 단계에 있습니다. 군 사법기관의 재판의 공정성과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는군사법원법개정이 절실하다라고 감히 말씀을 드려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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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관심 속에, 7월 21일(수)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국방부 앞 전쟁기념관에서는 6.25 참전 전사자들과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헌화와 의장행사가 있었습니다.

전쟁기념관 후문을 통해 행사장으로 향하니, 한쪽으로 양국 의장대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답니다. 아래는 미국측 의장대 대기모습!


                                                           미측 의장대원들 행사전 대기 모습


이제, 클린턴 미 국무장관, 게이츠 미 국방장관, 대한민국 국방장관과 외교부장관이 전쟁기념관 내로 입장하실 시간입니다.


                                한미 외교/국방장관 입장 전 한미양측 보좌/보조 기관들 대기 중입니다. 


                                                    외신 기자들 긴장합니다.


                                                  우리 장병들도 다같이 긴장!


               한미 외교/국방장관님들, 6.25 전사자와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위해 정렬!


양국 2+2 장관님들은 6.25 참전 전사자들과 천안함 희생자들 명비에 묵념과 헌화 후 의장행사 참관을 위해 평화의 광장으로 내려오십니다.  










의장행사 전, 양국 애국가가 울려퍼지며, 국기에 대한 경례!


                               미국 6.25 참전용사 3세들도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였습니다.


                            이어, 한미 합동 군악대 공연이 있었습니다.(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


       양국 군악대 공연후 장관님들, 참석자들과 인사를 위해 평화의 광장 레드카펫을 행진하십니다.


행진 간, 미국 6.25 참전용사 손자손녀들과의 기념촬영도 빼놓지 않으십니다.(아래) 




위와 같이 전쟁기념관 의장행사 후, 양국 장관님들은 삼엄한 경호 속에 본론인 '2+2 본회의' 진행을 위해 정부종합청사로 향하셨습니다.




당일 오후, 정부종합청사에서는 '2+2 장관회담 본회의'가 개최되었는데요, 회의에서는 '09년 6월 양국 정상이 채택한 '한,미 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을 계속하여 발전시켜 나갈 것과 '15년 12월 한국군으로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포함한 새로운 계획인 '전략동맹 2015'를 '10년 안보협의회의(SCM)시까지 완성할 것에 합의하였습니다. 또한 '10년 7월 9일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을 환영하면서 북한측에 천안함 공격에 책임질 것을 촉구하였고,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 주민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아울러 '09년 6월 '동맹미래비전'에 기초하여 양국이 동맹협력의 폭과 깊이를 보다 긴밀하고 포괄적으로 협력할 것과 동북아 지역의 안보환경과 새로운 도전들에 함께 대처할 방안들을 논의하는 등 다각적으로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해 나갈 것에 의견을 같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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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그 고지식하고 꽉막히기로 유명한('열혈국방'은 절대 인정 안합니다.ㅋㅋ) 우리의 국방부가..  '트윗벙개'를 하였습니다.

때는, 7월 14일 점심시간! 찌는듯한 했볕을 맞으며, 그렇게 우리는 그분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
국방부는 총 5명이 벙개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트위터리안들을 만났죠.



                           

                                                  역시 먹을 것이 있어야 대화가 즐겁줘~ 


                                                    


그러면, 우리의 아름다운 만남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요??

우선, 탕수육과 자장면 그리고 짬뽕이 있어, 만남은 무르익어 갔습니다. 현장에서 찰칵!  정책홍보담당관님 제일 안나오신 사진으로 한장!ㅋㅋ


                                                        삼각지에서 제일 유명한 중국집


식사 간, 마치 10년지기 친구를 만난 것처럼 우리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o  참석 트위터 : " 청와대하고 농림부, 마사회의 트윗벙개 때에도 참석했었어요~...."   
     
    o  참석 트위터 : "일전에 병무청 팀블로그 기자 활동을 했었는데요, 그곳 활동은 취재범위가 군부대
        로만 제한이 되어있어서 만족스럽지 못하였답니다....   저는 국방 전체를 취재하고 싶었거든요...그래서
        그곳 활동을 그만두었습니다. 국방부 직업군인블로그('군화신꼬') 기자가 될 수는 없나요?"

    o  국방부 참석자 : "적극 환영입니다!~ 제가 말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o  참석 트위터 : "저는 00에서 블로그와 트위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국방부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는 지 무척 궁금했습니다...그래서, 이렿게 벙개에.."   모두들 쫑알쫑알쫑알...


그리고, 저희 국방부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영양가 있는 장소, '전쟁기념관'으로 모두들 향하였지요.


                                                                      전쟁기념관 전경



   o  참석 트위터 : "이곳, 전쟁기념관내 '참수리 357호'를 보게되니,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후배들 생각에 다시금
       마음이 아파옵니다. 저도 해군에서 군복무를 했었거든요..." 
       "그리고, 군 복무를 생각하니... 신기한 것이, 군복무 전에는 정말 생각의 중심이 '나' 하나에만 집중되어 있었
       는데요, 군에 복무중에는 부대내 정신교육 때문인지??  정말 나라를 위해 훈련도 하고, 전쟁이 나면 전쟁도
       하며, 전투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되더라고요... 물론 민간으로 돌아오니, 다시 '나'중심
       주의로 돌아갔지만요...ㅋㅋ"

   o  국방부 참석자 :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군'도 조직의 목표가 있고, 군에 온 장병들에게는 당연히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조직 목표를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o  참석 트위터 : 물론.. 그렇겠죠? 

    

                                            전쟁기념관내 참수리 357호를 향하여, 앞으로~갓! 


  o  참석 트위터 : "참수리357호, 이거 진짜를 갖다 놓은 건가요??"

  o  국방부 참석자 : "어디, 진짜 배인지, 모형인지, 한번 올라가 보실까요? 호호호.."


                                               멋진 포즈 잡아주세요~(참수리357호 모형위에서)


                                                '이 배를 조종하려면, 어케 해야하나...궁금하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기념관내 6.25 특별사진전 '감상파'와 '비감상파(일전에 보신 분들)'로 나뉘었습니다.('감상파'들은 사진전을 감상하였지요~)
국방부 , 오신분들께 사진전 입장권을 드렸어요.


       사진전 입장권을 드리니, 참석 트위터 말씀하시길, "다음에 우리 애인하고 와야~쥐. 오늘은 이만!"



                                 전쟁기념관 '6.25 특별사진전' 관람 전 '빠이빠이-픽쳐' 한 컷!


그리고, 그들은 전쟁기념관내 6.25 특별사진전에서 '3D입체사진'을 보기위해 영화'메트릭스'에 나오는, 그 비슷한 안경을 쓰셨습니다. 요렇게!


                                     영화 '메트릭스'를 연상케 하시는, 트위터리안들.^^  


그분들...  다음 '트윗벙개'때 또 뵙죠.

담에 또 만나요!~~~   트위터리안, 안녕!   


   그리고, 저희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께서는 7월 26일이면 '보건정책과장'이 되십니다. '열혈국방'과 '국방부 
   트위터 대변인', 그리고 '동고동락', '군화신꼬' 등등등을 모~두 낳으신(?) 다산의 여왕!  "사랑합니다!" ^^ 
                                                                        
                                                                                              - 국방부 정책홍보과원 일동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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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을 왕복하는 총기들
 

 
우리나라에서는 수렵용 엽총이나 사격장 용도로 허가를 받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개인이 총기를 보유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때문에 총기와 관련한 사고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없다고 보아야 할 정도로 적고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하여 지켜져야 할 원칙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범죄율이 높은 여러 나라에서 법으로 총기 보유를 강제하고 싶어도 어느덧 하나의 문화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경찰의 단속에 적발된 불법 사제 총
 

이러한 딜레마를 가지고 가장 크게 체감하고 고민하는 나라가 아마도 미국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서부개척 시대를 거치면서 민병대의 전통을 하나의 자랑이자 역사로 생각하는 미국은 현재도 총기의 보유가 자유롭고 총기의 수집이 하나의 취미로도 정착되었을 정도입니다.  금연자도 담배 수집을 취미로 가질 수 있듯이 총기의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도 총기 컬렉션을 할 만큼 총기와 그와 관련된 문화가 관대한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잦은 총기사고에도 불구하고 총기를 규제하지 못하는 것이 미국의 고민입니다
 

국가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겠지만 미국은 유별나게도 지나간 물건에 대한 가치를 상당히 높게 쳐줍니다. 골동품이라기보다는 폐품에 가까운 불과 십여 년 밖에 되지 않은 아주 가까운 과거의 물건도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다보니 시골 동네에도 골동품가게(Antique Shop)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보니 단지 예전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생판 모르는 남의 사진첩도 거래되는 경우까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골동품 점인데 남의 사진까지 거래가 됩니다
 

그런 점은 총기와 관련하여서도 마찬가지며 실제로 실전경험이 있는 총기를 역사적인 소장품으로 간직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이 당연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제2차 대전, 한국전쟁을 거쳐 월남전 초기까지 사용된 M1과 M1카빈소총(이하 카빈)은 상당히 소장가치로써의 인기가 높습니다.  이들 소총은 총 1000만정 가까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생산국인 미국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러 나라에서 주력 제식소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M1소총(상)과 카빈
 

하지만 거대한 전쟁에 가장 많이 사용된 주력 소총이었던 관계로 아직까지 제대로 작동하는 M1과 카빈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 세계에서 아직까지 보관상태가 양호하여 작동되는 M1과 카빈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에 있다입니다.  얼마 전까지 예비군용으로 사용되었을 만큼 상당량의 작동한 소총이 보관 중입니다.  그러나 부품조달, 보관비용 등의 여러 문제로 실전용으로 사용하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비군 훈련에 사용된 카빈
 

마침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애물단지가 되어가던 이들 소총들이 미국 호사가들을 위해 다시 바다를 건넜습니다.  지난 2009년 말 예비군용 총기로 보관되어 있던 M1과 카빈 중 상태가 양호한 12만 2천정 (M1 7만5천정, 카빈 3만 5천정)의 소총들이 미국의 민간판매용으로 방출되기로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데다가 구형총기에 대한 재고관리 부담을 줄일 수 있어서 한마디로 일석이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민간인이 취미로 사용 중인 M1
 

전술한 것처럼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인마살상용 총기의 개인 보유가 허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M1이나 카빈 같은 고성능소총(총 자체가 구형이지만 총기로써의 성능은 상당히 좋은 편으로 현재도 평가되고 있음)의 국내 소비가 불가능하므로 전량 비용을 들여 자체 폐기하여야 되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러한 대외 재판매 방식은 상당히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가 사용 중인 카빈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러 미국에서 한국으로 태평양을 건너왔던 귀중한 무기들이 그동안 소중하게 사용되고 보관되다가 이제는 미국의 호사가들을 만족시켜 주기위해 반대로 태평양을 건너가게 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아마 이들이 생명체였다면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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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시점을 2015년으로 연기한 것과 관련하여 논란이 많습니다.


                                                    한미동맹, 전작권 전환 연기에 합의


'전시작전통제권'이란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과 미군 및 美증원군에 대한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하며 그 중 '핵심은 美증원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입니다.

美증원군이 우리 안보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 규모가 69만 여명의 병력, 함정 160여척, 항공기 1,600여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현재 주한미군 규모가 2만 8,500여명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전속결의 현대전 성격상 美증원군의 '전개여부'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개속도'가 중요하므로, 이를 위한 전시지원(WHNS)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미 '전시지원 시범식교육' 모습


전시지원(WHNS)이란, Wartime Host Nation Support의 약어로서 '전시 주둔국 지원'을 의미하며 이를 줄여 '전시지원'이라는 용어로 통칭되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위기, 적대행위 또는 전쟁시 대한민국이 미합중국 군대의 접수, 이동과 지속을 위하여 제공하는 군사, 민간자원 및 지원"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데요, 이 전시지원(WHNS)의 목적은, 美증원군의 신속한 전개를 보장하고 전투력을 증진시킴으로써 유사시 한반도 방어능력을 완비하는 것입니다.


전시지원(WHNS)은, 1980년대 'Hunn-Warner법'에 의한 군축여론과 美 국방예산 삭감 등으로 인해 미국이 동맹국들의 안보부담을 요구하면서 생성되어, NATO의 중장기 방위력 증강계획 추진과정에서 발전되었습니다. 특히, 1982년에는 미국-서독간 전시지원(WHNS) 협정이 체결되어 당시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공산진영 국가들의 안보위협에 대한 준비태세가 확립되었고, 이러한 추세에 따라 미국은 또 다른 분단국인 우리나라와도 1991년에 전시지원(WHNS)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현실(판문점에서) 


이후 1990년에 동-서독이 통일되면서 1995년에는 미국-서독간 전시지원(WHNS) 협정이 종료되었으며, 미국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와 체결한 전시지원(WHNS)협정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전시지원(WHNS)은, RSOI 단계별로 시행되는데 RSOI(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Integration의 약어)란 '한반도에 전개되는 美증원군을 지휘관의 작전적 요구대로 전투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부대병력, 장비, 물자가 도착하도록 공항 및 항만이 제공되어 수용(Reception)되고,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일정기간 대기(Staging)를 위해 시설과 토지가 제공됩니다. 이후, 작전지역과 집결지로 이동(Onward movement)하기 위해 주보급로와 예비보급로가 확보되어야 하며, 수송수단 및 이동관리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집결지에서 전방부대와 작전적으로 통합(Integration)하기 위해 토지 및 시설, 보급, 탄약지원 등이 필요하게 됩니다.

현재 한,미간에는 전시지원(WHNS) 협정이 체결되어, 이를 근거로 한 전시지원(WHNS) 계획이 수립되어 우리 동원계획(충무계획)에 반영되어 있으며, 동 계획에 의한 지원절차 숙달을 위해 매년 KR과 UFG연습 기간동안 실제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키리졸브 한미합동군사훈련


한가지 국방의 고민점은, 이 전시지원(WHNS) 계획은 지원자산에 대한 사후 비용분담 원칙이 아직 정립되지 못해 '잠정'전시지원(WHNS) 계획으로서 수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美증원군에 대해 지원을 하더라도 무조건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은 아니며, 자산별로(정부 및 軍자산, 민간 동원자산, 시설 및 토지 등) 비용분담 원칙이 합의되어야 하는데, 양국간 국익이 대립되는 문제이므로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이러한 비용분담 원칙을 타결하여 정상적인 전시지원(WHNS)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전시지원(WHNS)의 법적체계를 완비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 안보문제는, 주변 열강의 국익이 대립되는 국제적 문제이며, 우리의 자주국방 노력만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운 근본적 취약요소가 존재합니다. 이로 인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유사시 美증원군의 한반도 전개 보장'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입니다.

결국, '전시작전통제'의 성공은, 전시지원(WHNS)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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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재 서울 대림미술관(경복궁 역쪽)에서는 6.25전쟁 60주년 특별사진전 '경계에서(On the Line)'가  전시 중입니다.


                                                  <6.25 사진전'경계에서(On the Line)...>


'한국전쟁'에 대한 10가지 이야기들을, 구본창, 주명덕, 강운구, 원성원,백승우 등 대한민국 대표작가 10인의 사진을 통해 바라봅니다.

                                                                     구본창 작가와 함께.


                                                                    강운구 작가...


                                                  어머니 그리고 철모.... 구본창 작가 작품들


                                                                    최광호 작가 작품


7월18일 저도, 국방부 특별도슨트 1일 관리자가 되어 대림미술관을 방문했었드랬지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10시30분과 12시에 진행되는 '특별 도슨트(이동욱 일병과 이준기 이병)' 신청은, 선착순 사전예약제(신청 사이트 : http://www.ontheline.co.kr )로 운영되고 있답니다. 국방부 6.25 사진전(6.25~8.20)이 열리고 있는 서울 대림미술관으로 오세요~


                                                           '경계에서' 만의 특별도슨트


6.25 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적지, 다부동 전투의 참전용사 모습, 철책선 주변풍경,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초상과 전쟁유물 등을 사진예술을 통해 이야기 합니다.
 
더운 여름, 시원한 대림미술관에서 6.25전쟁을 생각해보며 사진예술을 즐겨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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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7월15일,목)로, 6~7월중 총 5회의 '천안함 정책설명회'를 모두 진행하였습니다.

국방부는 '천안함 정책설명회'를 준비하여,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된 국민들의 의문사항들을 상세히 설명드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6월 중에는 밀리터리 파워블로거분들과 트위터분들을 만났었죠.^^ (일전에 포스팅한 것 보셔요~)

7월 15일은 국방부에서 준비한 '천안함 정책설명회'가 마지막 5회째를 맞이하는 날이었던 만큼, 특별한 분들을 초청하였습니다.
 
바로, 국민여러분들의 여론을 이끌어 나가시는 '시민사회단체' 여러분들(26명) 이십니다.

다들 모이신 후,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천안함 정책설명회'가 시작되었답니다.


                  민군합동조사단 대변인의 '천안함 조사결과' 설명이 있었습니다.(국방부 대회의실)


먼저,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하시는 의문사항별 설명에 들어갔습니다.
각종 언록매체들을 통해 쟁점이 되었던 부분들을 항목별로 정리하여 설명드렸습니다.
'흡착물' 관련 내용에서 '절단면'과 기타사항 관련 내용까지를요. 



      "어뢰 추진동력장치와 천안함의 선체 흡착물질 성분이 일치"(진지하게 설명을 들으시는 시민단체분들)


                                                   "프로펠러가 안쪽으로 오그라든 이유는?"

                                                           어뢰 추진동력장치 관련 설명

          "폭발 직후(31~41초) TOD 영상은 함수,함미가 맞물려 있는 것 아닌가?" 에 대한 설명내용


다음으로, 천안함 침몰이 '좌초'가 아닌, '비접촉 어뢰폭발' 이라고 판단한 근거들을 설명드렸답니다.
'선체 형상 분석'에서 '폭약 성분 분석' 까지를요.


                                                      선체 형상 분석

                                                    생존자 진술내용 분석


이어, 참석하신 시민사회단체별 질의와 국방부/합참의 답변이 있었답니다.


                                                    가장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던 참여연대 






           그리고,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에서 시민사회단체분들의 질문에 상세히 답변을 드렸습니다.   


다음으로,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질의에 국방부장관은 깊은 감사와 당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국방부장관과 신문사 등에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 오신분들의 성의어린 질문 등 말씀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사고원인 조사에 우수한 인력들을 동원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이자리에서 좀더 세세한 부분들을 가지로 끝없는 질의와 답변을 이어나갈 수도 있겠으나,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함께 이야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천안함 절단면 등을 보기위해 평택 2함대사령부로 향하였습니다.  










천안함... 국방부와 군도  천안함과 희생장병들이 그립고,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군이 부족하였던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건의 중심이 아닌, 세세한 지식들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그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군이 더욱 강하게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천안함 정책설명회에 참석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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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아쉬웠던 부분들

 
 
6.25전쟁 제60주년을 맞이하여 각종 매체에서 특집 프로그램이 상영되고 있고 당국도 이와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당시의 기록필름을 이용한 시사프로그램과 달리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최근의 극화나 행사를 보면 고증과 관련하여 자못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이에 관하여 몇 가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참전 영국군을 초청하여 4월 17일 개최 된 임진강전투 기념식 (사진-뉴시스)
 

우선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질타를 많이 받은 부분이 당시 사용한 무기나 장비에 대한 묘사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극화니까 내용은 별개로 하고 사실 6.25전쟁에 실제로 사용된 장비를 소품으로 구하는데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 같이 사소한 부분까지 정확히 고증을 거쳐 재현된 전쟁영화나 드라마에 이미 눈높이가 맞추어져 있는 상태다.
따라서 눈에 거슬릴 정도로 고증이 잘못된 부분에 대한 불만이 클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에도 이에 관한 정보를 아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 극화의 모범으로 불리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한 장면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 된 것이 신작 드라마 ‘ 전우 ’ 에 등장한 헬리콥터다.
헬리콥터가 6.25전쟁에 처음 등장한 것은 맞지만 드라마에 나온 헬리콥터는 월남전에 사용된 UH-1H 기종이었다.
비록 이 부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질타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헬리콥터라는 피사체를 극에 등장시키고자 하였다면 어쩔 수 없었던 차선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드라마가 실제로 있었던 전쟁사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재미를 추구하는 가상의 극화이고 내용 전개상 헬리콥터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우에 등장한 UH-1H 헬리콥터 (사진-KBS)
 

하지만 또 다른 극화인 ‘ 로드 넘버 원 ’ 에 등장한 북한군 T-34전차는 정말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방송 전에 1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북한군 전차를 재현하였다고 선전하였는데 문제는 엉뚱하게 재현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사용된 전차를 재현하려는 시도는 칭찬받을 만한 일이지만 이왕 거금을 들여 할 것이면 제대로 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였다.
전쟁당시에 북한군이 사용한 T-34는 85형인데 방송국에서 재현한 모조전차는 제2차 대전 당시에 소련군이 사용한 외형부터 차이가 많이 나는 76형이었다.
한마디로 힘은 힘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은 부분으로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충분히 재현 가능하였는데 대충하다보니 벌어진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제대로 재현할 수 있었던 T-34 (사진-MBC)
 

사실 여기까지는 아마추어(?)가 벌인 일이고 드라마는 아무래도 장비나 소품보다 극 전개가 우선이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하여 당국에서 개최한 재현행사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등장하였다.
지난 6월 28일에 6.25전쟁 초기 대한민국을 구한 위대한 전투로 평가되는 ‘ 춘천전투 ’ 재현행사가 제2군단 주도로 현지에서 열렸다.
당시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맹활약한 국군 제6사단의 선전을 재현하였는데 제16포병대대의 포격장면과 북한군 자주포에 대한 육탄공격 장면이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제6사단의 선전을 표현한 춘천전투 재현행사 (사진-연합뉴스)
 

당시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주체측이 많은 애를 썼음에도 연출 병사들이 사용한 소총이 K-2였던 것처럼 아쉬웠던 부분이 종종 눈에 띠었지만 크게 문제될 부분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적의 SU-76 자주포를 국군이 현재 보유한 M-48 전차로 재현하였다는 점은 커다란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실제 있었던 전투의 재현이라면 적어도 자주포는 자주포로 재현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 지평리전투 ' 재현행사와 비교하여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적의 자주포를 전차로 재현 한 것으로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지난 5월 27일에 참전 유엔군 노병을 초청하여 현지에서 제7기동군단 주체로 지평리전투가 재현되었다.
미 제2사단 마크를 군복에 부착하고 M-1 카빈 소총을 소품으로 섰으며 마지막에 전차를 앞세운 크롬베즈 전투단의 돌격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호평을 받았다.
다만 중공군이 사용한 소총을 나무모형로 깎았는데 아쉽게도 6.25전쟁 당시에 사용하지 않은 AK 소총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옥에 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평리전투 재현행사 (사진-뉴시스)


하지만 개인적으로 위에서 일일이 언급한 부족한 점들은 아픈 과거사를 상기하려는 노력과정에서 벌어진 작은 에피소드라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어느덧 6.25전쟁을 서서히 먼 과거의 기억이 되어가고 있고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가 더 많아진 이때에 그러한 과거사를 잊지 않게 노력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아쉬운 많은 부분이 있었지만 이런 부분은 차차 개선될 것이라 생각하며 비극의 과거사를 잊지 않고 새롭게 각인시켜주려 노력하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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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니야 !
 

 
추론이기는 하지만 지구상에 파생형을 포함하여 단일 품목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어 널리 퍼진 무기라 한다면 AK-47소총이 아닐까 생각된다.
원 개발국인 구 소련은 물론이거니와 옛 공산권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이 순간에도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정확한 생산량을 알고 있지 않을 정도다.

 
                                AK-47은 무기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다
 

군은 병력과 장비로 구성이 되는데 병력이 보유하는 최소한의 화기가 소총이다.
보병은 물론이거니와 통신이나 수송처럼 비전투병과 사병들도 소총은 기본적으로 장비하고 있다.
당연히 무력을 보유한 집단들은 기왕이면 성능이 좋은 소총을 기본무기로 갖추려 한다.
거기에다가 성능이 좋은 소총이 가격까지 저렴하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AK-47은 냉전시기 공산권은 물론 현재도 많은 국가의 표준 소총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947년 개발되어 아직까지 많은 나라의 군대가 기본 장비로 채택하고 있는 AK-47은 가장 좋은 소총이라고 평가하여도 무방할 듯하다.
제작이 용이한 만큼 가격도 저렴하고 내구성과 정비가 용이한데다 화력까지 좋아 미국의 M-16과 더불어 '최고의 공격용 소총' 이라고 평가를 받지만 저작권 개념이 희박한 공산국가에서 탄생한 총답게 카피 본까지 합한 생산량은 M-16을 훨씬 능가한다.

 
                                       북한도 AK소총의 주요 생산 소비국 중 하나다
 

이런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AK-47은 개발자 칼라시니코프(Mikhail Kalashnikov)와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전차부대 하사관으로 참전한 그는 1941년 독일군과 교전하던 중 포탄 공격을 받고 부상을 당하여 입원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소련군이 자기 안방에서 독일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치욕적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옐친(左) 러시아 전대통령과 칼라시니코프
 

장고 끝에 그는 독일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소련의 무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결론을 내렸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독일 무기들의 품질이 소련 것에 비해 좋았지만 T-34처럼 소련 또한 좋은 품질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독소전 초기에 소련이 몰렸던 가장 큰 이유는 전선 지휘부의 무능과 경험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말단으로 참전하였던 칼라시니코프에게는 당장 손에 들고 있던 무기차이가 눈에 보였을 것이다.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소총을 제작하였다
 

독일의 침공으로 소련이 위기에 처하였던 것을 직접 경험한 그는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겪지 않기 위해 무기의 기본이 되는 소총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리고 종전이후 툴라(Tula)조병창에서 일을 하며 그가 구상하던 소총을 탄생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AK-47이다.
그만큼 AK-47은 한 개인의 일생의 노력이 응축된 산물이었다.

 
                                그는 전쟁 초기 소련이 당한 치욕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소련이 채택 후 대량 생산하거나 여러 국가에 생산하도록 허락하여 전 세계에 마구 공급된 AK-47은 방위를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게릴라, 테러리스트는 물론 마약사범이나 갱단까지 널리 애용하는 무기가 되었고 이렇게 AK-47이 전 세계 구석구석에 퍼져 살육도구로 이용되는 현실에 칼라시니코프는 매우 괴로워했다.

 
                   하지만 국가 방위가 아닌 무력 집단의 살육도구로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2006년 6월 12일 중앙일보에 실렸던 기사 중 일부이다.
그는 11일(현지시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 AK-47소총이 오사마 빈 라덴 추종자들의 손에 들려있는 장면을 TV에서 볼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내가 개발한 소총이 저들 손에 들어가게 됐을까'자문하곤 한다 "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중략)...그는 " AK-47 소총 개발은 당초 파시스트 독일 침략군으로부터 조국을 지키려는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됐다 " 고 회고하였다.

 
                                M-16 개발자 유진 스토너(右)와 함께 한 칼라시니코프
 

비록 한 개인의 열정과 애국심에 의해 탄생한 명품이지만 전 세계 분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등장하는 AK-47을 보면 아무리 좋은 물건도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야 빛을 발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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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소 딱딱한 말씀을 드려봅니다.... 하지만, '알찬' 정보로요!^^
 
7월9일 KIDA에서는, 국방부 후원, KIDA(한국국방연구원) 주최로 국방정보화 정책 발전을 위한 세미나(제목 : '미래 국방정보화 발전방향과 EA(Enterprise Architecture)')가 개최되었답니다. 




KIDA의 '국방정보화 정책 세미나'는, 올해로 8번째를 맞이하였습니다.

본 세미나는 주요 국방정보화 추진 이슈에 대해 발표와 토론 진행함으로써 합리적 정책방향을 도출하고 관련 전문가들간 공감대 확산을 목적으로 개최되어 왔답니다.



                          KIDA(Korea Institute for Defense Analyses,  한국국방연구원)


특별히 금번 세미나 시간에는, 대통령실 IT특보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IT강국인 만큼, 현 정부는 '전자정부'를 넘어, 이제 'Smart  Korea' 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2014년까지 '3D, 콘텐츠, 미디어' 분야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며, 금년말 개최하는 'G20 정상회의' 도 'Paperless Meeting'으로 진행할 계획으로, Tablet PC로 회의자료를 보며 자동통역 기능을 활용하고, 실시간 메모 작성과 전송이 가능한 회의가 진행될 것입니다." 


                                          대통령실 IT특보의 특강 ('IT강국에서 IT선도국으로')


"우리나라는 그간 SW개발을 내수에만 치중하고 수출을 등한시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SW수출에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국방SW 수출'도 적극 검토되고 있습니다. 올해 말이면 국방SW 수출'안'이 마련되고, 대통령 보고 후 2011년부터는 '수출용 국방SW 개발'이 진행될 것입니다."


세미나에 참석한 국방 차관은 세미나 서두의 축사를 통해, "국방정보화는, 초기엔 인사/군수 중심의 업무 전산화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최근에는 C4I체계 같은 전장분야로 영역을 넓혀 '네트워크 중심전(NCW)'인 미래전 양상에 대비하여 전투요소들에 정보기술을 통합하는 등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국방정보화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제2부'에서는, 국방부 정보화기획관과 최종섭 KIDA 책임연구위원의 주제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국방부 정보화기획관은, '미래 국방정보화 발전 방향'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 '국방정보화'란, '국방 관련 정보를 생산, 유통, 활용하여 국방분야 제반활동이 가능하도록, 또는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전장관리와 평시관리 업무를 동시에 운영하고, 상용체계와 군용체계를 복합적으로 운영하는 등의 특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그간 국방정보화는 조직원간의 인식의 차이로, 사용자 중심이 아닌 개발자 중심으로 체계가 개발되고 무기체계와 비무기체계를 구분짓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습니다.

이제 '국방정보화'는 다음과 같이 발전되어야 합니다.

1. 조직 '목표'에 부합하고, 2. '상호운용성' 중심으로 관련기관간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며, 3. 정보체계의 활용성을 극대화하고, 4. 민관군 협력(상용기술의 국방적용 촉진, 정부부처간 협력, 산학연 협력체계 구축 강화 등)으로 개방형 발전을 지향하여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최종섭 KIDA 책임연구위윈의 '국방EA 나아갈 길' 발표내용입니다.

" 국방EA(Enterprise Architecture) 란, 무엇입니까?
 많은 분들께서 아키텍쳐, 아키텍쳐 하시는데, 도대체 이 '아키텍쳐'가 무었인지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국방EA'는 바로 '업무에서 정보기술까지, 미래 업무프로세스의 청사진'이라 하겠습니다.    




2010년 12월에는 국방 통합 아키텍처가 구축될 예정이나, 많은 분들께서 그 활용을 의문시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활용에 관하여 말씀드리면, 'EA'는 국방분야 뿐만 아니라 국가업무 전체 차원에서 그 활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이미 1990년대에 미 국방부와 합참은 아키텍처를 도입하여 적극 활용해오고 있으며, 그 외에도 영국, 호주, 독일 등 선진국들이 'EA'를 도입,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군부대의 건물 신축공사나 전시 작전운용 등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하네요. 


                                             국가 EA추진의 법근거와 추진방향


우리 국방EA의 구축 및 활용의 성공을 위해서는, 활용목적을 명확히 하고, 필요예산 확보에 노력하여야 하며, '최상위 EA' 구축과, 관련 EA 구축사업간에 일관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진행된 참석자들간 정책토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있었답니다. 

" '국방정보화법'이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관계자들간에 공감대 형성과 배려심이 필요하며, 전장과 자원이 이원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효율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국방부 정보화기획관실 정보화정책담당관)",

"국방정보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업간 중복, 폐쇄성을 지양하고 합동성과 표준화을 중시하여야 합니다(합참 지휘통신참모부 차장)",

"공군 무기체계는 첨단무기체계를 추구하여, 그 특성상 유지보수의 해외의존도가 높아 소요예산이 많으며, 정보보호 취약점(해킹 등) 증가에 따라 무기체계의 오작동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즉, 공군의 경우는 군내 S/W 유지보수 능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으로, 향후 '공군 S/W 관리단'을 창성할 계획 있습니다.(공군 정보화기획처장)" ...

저의 경우 부족한 정보화 지식 상태로 세미나에 참석하여, 세미나 진행간 간간이 두통이 엄습하였으나 ^^,  참석자분들 모두 진지하게, 그리고 희망차게 열띈 토론을 벌이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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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사귀환의 이유
 

 
인류역사에 있어서 전인미답의 경지에 최초로 발을 디딘 사람들은 영웅으로 길이길이 그 명성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에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도달하였던 그 자체만으로 그들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탐험가들이 길이 인류사에 남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탐험에 나선 이들의 무사귀환이다.

 
                 산악인 오은선은 여성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하였다 (사진-연합뉴스)
 

목표했던 곳에 도달하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통상적으로 생환하지 못하면 완벽하게 성공한 탐험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통신 및 이동수단이 발달한 요즘은 목표에 도달한 사실이 실시간으로 확인가능하고 조난을 당하여도 구조 될 가능성이 높지만 예전에는 무사히 귀환을 하지 못하면 탐험의 성공여부 자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생명이 탐험의 과정이나 결과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극점에 도달하였지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스코트 탐험대
 

다음의 경우를 살펴보면 무사귀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반, 영국 에베레스트 제9차 원정대 소속의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발을 디뎠고 이들은 지구의 마지막 극점을 정복한 위대한 사람들로 영원히 기록에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보다 훨씬 오래전인 1924년 6월 8일, 영국 에베레스트 제3차 원정대의 조지 말로리앤드류 어빙이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을 것이라 믿는 사람들도 많다.

 
                                           에드먼드 힐러리(右)와 텐징 노르가이
 

"산이 있어 오른다" 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말로리는 동료 어빙, 오델과 함께 해발 8,100m 지점에 6캠프를 설치하는데 성공하였다.
여기에서 말로리와 어빙은 안개 속을 헤치며 정상을 향하여 출발하였고 이들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은 6캠프에 남아 지원을 맡은 오델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일순간 안개가 걷히자 오델은 에베레스트 정상 아래에서 천천히 정상을 향해 다가가는 작은 점 모양의 말로리와 어빙 일행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안개가 다시 끼면서 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조지 말로리(右)와 앤드류 어빙
 

1999년 영국 BBC가 주축이 된 원정대가 말로리의 시신을 찾는데 성공하였으나 그가 지니고 있던 카메라는 발견하지 못하여 등정여부를 밝힐 수는 없었다.
만일 추후에라도 카메라가 발견되어 정상정복의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 나온다면 인류의 탐험사는 다시 쓰여 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라도 성공적으로 완수한 등정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힐러리와 노르가이의 업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티에서 근무 중인 단비부대 (사진-KODEF)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무사귀환이 단지 탐험의 결과 여부를 알리기 위해서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탐험도 의미가 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고 이를 탐험과정 중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바로 완벽한 성공의 기준점이다.
이러한 숭고한 원칙은 탐험 같은 분야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근무를 하여야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명제이기도 하다.

 

                                        해외에 파견나간 국군의 무사안위를 기원한다.
 

현재 이역만리에 곳곳에 파견되어 묵묵히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는 수많은 대한민국의 군인들이 있다.
그들의 임무가 탐험이나 모험이 아니기 때문에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다고 해서 앞에 언급한 예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안전하게 돌아와야 할 이유는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그들은 나라와 국익을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해외로 나간 소중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무사귀환은 미지를 개척하고 돌아온 어떠한 탐험가들의 영웅적인 행동 못지않게 우리에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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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적이었던 대한민국 공군의 분투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최근 각종 매체를 통해 극이나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개전 초기의 참담했던 상황을 묘사하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북한군 전차다.
국군이 용감하게 육탄방어에 나섰지만 전차를 앞세운 북한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당시에 국군이 보유하지 못한 전차는 6.25전쟁 발발 당시의 현격한 전력차이를 한 번에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군 전차를 육탄공격 중인 국군을 묘사한 TV 드라마 (사진-MBC)
 

그런데 이처럼 전차로 대표되는 기갑전력 외에도 국군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북에 비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엄청난 열세를 보이고 있었다.
병력으로는 1 : 2 수준이었지만 화력까지 계량화한다면 전쟁 발발 당시에 남북 간의 전력차이는 약 1 : 5 정도까지 벌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중에서도 사실 가장 전력차이가 심했던 것은 항공전력이었다.
전차의 경우라면 비록 북한군의 T-34를 막는데 무용지물이었지만 2.36인치 로켓포나 57밀리 대전차포처럼 형식적이나마 대전차무기를 보유하였던 것에 비한다면 전쟁 발발 당시의 항공전력은 그야말로 비교불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격준비에 나선 북한 공군기

 
당시에 북한군은 야크(YAK)전투기 외 160여기의 작전기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총 200여기의 군용기로 구성된 항공사단을 보유하였다.
하지만 당시 국군은 단지 L-4, L-5, T-6 훈련기 23기 만 보유하여 전투력은 전무한 상태여서 공대공전투로 적기와 맞상대할 수 없었다.
당연히 개전하자마자 북한기가 서울 상공에 나타났을 만큼 제공권은 북한군이 장악하였다.

 
                                         적 전차를 향해 육탄 돌격하는 L-5 훈련기
 

그러나 단지 공대공전투가 불가능하다고 국군은 그냥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후방석에 정비사들이 급조폭탄을 휴대하고 있다가 눈으로 조준하여 손으로 투하하는 공대지 육탄작전을 펼치기 위해 당시 하늘의 용사들은 망설임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록 이러한 육탄공격은 미미한 성과밖에 기록하지는 못하였지만 보유한 274개의 폭탄마저 개전 3일 만에 바닥이 나자 더 이상 작전을 진행 할 수도 없었다.
쉽게 극복할 수 없었던 현격한 전력차이에 하늘의 용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1950년 6월의 모습이었다.


                                선명한 태극 마크를 붙이고 현해탄을 건너오는 최초의 F-51편대
 

그러한 국군에게 미국의 즉각적인 참전과 원조는 어둠을 밝히는 빛줄기가 되었다.
미국은 한국 공군에게 10기의 전투기를 공급하는 바우트원(Bout One) 계획을 실시하였고 이에 따라 전쟁 발발 하루 뒤인 6월 26일 이근석 대령을 비롯한 10명의 국군 조종사들이 F-51 전투기를 인수받기 위해 일본 이타즈케의 미 공군기지로 도착했다.
일본에 도착한 조종사들은 즉각 전투기 전환 훈련에 돌입했으나 악천후 등으로 인해 나흘 동안 1인당 20~30분 정도의 훈련비행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급박한 전황 소식을 접한 조종사들은 즉각 귀국을 요청하여 7월 2일, 10기로 이루어진 F-51 전투기 편대가 대구에 도착하였고 다음날부터 출격에 나서 적에 대한 공대지 작전에 투입되었다.

 
                        지난 7월 1일 제11전투비행단에서 열린 F-51 전투기 인수 재현행사
 

세계 항공전사에서 보기 힘든 극적인 광경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순간이었다.
전투기를 다뤄 본적이 없었던 조종사들이 불과 나흘간의 급박한 훈련을 거친 후 실전에 투입되어 전과를 올린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다름없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고 그러한 분투는 국난 극복의 커다란 힘이 되었다.
한국 공군의 선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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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강혜정님 대사, 들어 갑니다. " 뱀이 나와~" ㅋㅋㅋ



                                              국방부 본관 로비에 걸려있는 대형 현수막!


국방부 본관 지하1층 로비입니다.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국방부 제4회 '웰컴투 건강골'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7월6일~8일)

여타 정부청사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며 즐거워하고 계신 이분! 이분은 누구?  국방부 근무지원단 의무실 담당 대위입니다. 

행사는 아래와 같이 진행되었답니다.  행사 구성은 1) 설문조사(건강생활습관), 2) 건강측정(혈압측정, 체성분 분석, 체력검진), 3) 건강상담(운동, 절주<가상 음주체험>) 등, 4) 패널전시(금연, 영양, 절주 등)로 하였고요.


 어제인가 담배를 끊고, 매점에서 결연히 샌드위치를 사가지고 나오신 듯한 이분.'나도 행사에 참가해 봐?'


                                                  "술, 너무 드시지 마세요~"

  
                                                     "흡연, 하지마세요~"


                                    "걸으세요! 걸으면 복이와요('만보계'도 드려요)~"


                                     1. 건강 측정전 설문지 작성 - "똑바로 쓰세요!"ㅎㅎ


         2.~ 8. 로비 벽면에 붙은 번호순으로 건강을 측정합니다. 너무나 진지한 표정들..질서도 정연.


                                              즐거운 혈압측정 - "안 아프시죠?"


                                            심폐지구력 측정 - "할만한데요?"


       '가상 음주체험'도 해보아요~ (특수안경을 쓰면, 어지러운 증상 등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국방부는 '08년 3월부터 국방부 전 직원의 건강증진과 조직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매년 위와 같은 '캠패인 성격의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증가하고 있는 직원들의 관심으로, 본 행사는 국방부 조직문화로 확대되어가고 있답니다.  

금년 '웰컴투 건강골' 행사<7.6(화)~7.8(목)까지>에는 국방부/합참 직원 및 영내 지원부대 장병, '단' 장병 및 군무원 530여 명이 참가하였고요, 국방부는 계속하여 조직원들의 건강에의 관심 고취, 기초체력 향상, 만성질환 예방, 생활습관 개선 등을 위해 위와 같은 행사를 개최, 구성원들의 건강과 조직의 건강을 동시에 증진시켜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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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남성 분께서 전화를 통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 국방부가 중국 등 주변국들에게 좀더 열심히 외교적 노력을 전개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최근 위와같은 민원들을 받으면서 '요즘 참 많은 분들께서 천안함 피격 사건, 특히 '천안함 외교'에 큰 관심들을 갖고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우리 국방부는 과연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어떠한 외교적 노력을 하고있을까요?  


                                    '제9차 아시아안보회의' Q&A에 참석한 김태영 국방장관


국방부의 '천안함 외교'는, 기본적으로 '외교'인 만큼 외교통상부와 긴밀한 협조 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양 부처 중 국방부는, 주로 타국의 군 관련자들에게 천안함 관련 정확한 조사내용과 사실을 전달하고 군사전문가들을 설득함으로써, 전 국가 차원의 지지를 얻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데 초점을 두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양쪽 관계부처간 무 자르듯 업무를 명확히 분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기는 합니다.

지난 달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9차 아시아안보회의', 일명 '샹그리라 대화(Shangri-La Dialogue)'는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처하는 우리 국방부의 외교적 노력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던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2010 샹그리라 대화' 회의장 전면 


'아시아안보회의'는 매년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국가 안보수장들이 모여 역내 안보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인데요, 올해에는 천안함 피격 사건의 후속조치를 모색하던 중 개최되면서 우리 정부에는 관련 국제사회의 공조를 호소하기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방부는 사전에 천안함 침몰원인 조사결과를 내용으로 하는 팜플렛을 제작하여 '제9회 샹그리라 대화' 참가국들에게 배포하고, 본회의 주제 연설국으로 참가하여 각국과 양자대담을 실시하는 등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참가국들의 지지와 협조를 요청하는 데 힘썼습니다.  


                                                     김태영 국방부장관 본회의 주제 연설 
  

회의기간 중 김태영 국방장관은 본회의 주제 연설을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 무려 11개국과의 양자대담, 국방장관 오찬 등 쉴 틈 없이 빼곡한 일정을 소화했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정은 국방장관 오찬이었습니다. (말씀드린 '오찬행사'는 비공개 행사였으므로, 아래에는 '오프닝 디너' 전경을 공개합니다.^^)


                                           '2010 샹그리라 대화' 오프닝 디너 전경                                       


사실, 한 나라의 안보수장이 둘만 모이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비공식 오찬 차리는 무려 10여개 국의 안보수장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어려운 자리였으므로, 한국은 이 오찬 행사를 활용하여 북한의 천안함 피격 의도, 처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입장, 6자회담 및 천안함 관련 후속조치 등이 조심스럽고도 진솔하게 논의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습니다.


                                           참석자들의 발언 요청시에는 명패를 '번쩍' 듭니다.


우리 국방부는 현재 '아시아안보회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준에서 여러 국가와 전방위적인 협력 외교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현재까지 뉴질랜드, 몽골, 일본, 베트남, 스페인 등과 국방정책실무회의를 개최하고, 호주, 영국, 일본, 인도네시아 국방대생에게는 국방정책설명회를 실시하였습니다. 국방부는 이러한 행사 등을 통해 세계 각국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지지를 유도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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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5일, 한민구 대장이 제36대 합참의장에 취임하였습니다.


 
   
    7월5일, 한민구 대장이 합참의장에 취임하였습니다.


    신임 합참의장은, 앞으로 "확고한 군비태세 유지와 한미연합방위태세 공고화, 합동성

    강화 및 현존/미래 위협에 대비한 효율적 방위역량 구축'
등 4가지 사항에 대한 중점 
 
    추진의지를 밝혔습니다. 


    특히 한 의장은, "합동성 강화는 군의 숙명으로, 각 군 전력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전력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
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천안함 피격 사건은, 적이 도발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우리군의 능력과 의지를 

    다져 국민이 신뢰하는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로서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하였
습니다.


    합참의장 이,취임식을 주관한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천안함 피격 사건은 6.25전쟁 이후 최악의 시련이자 도전으로, 제2의 창군을 시작한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군을 새롭게 바꿔 나가고 교육훈련 강화, 정예 전투원 양성을 통한 강한
 
    군대 육성, 정보 기술 집약형 군사력 구조로의 전환과 효율적 국방운영 체계 구축이 우리
 
    군의 역사적 과업임"을 강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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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을 밝힌 용전분투

 
 
1950년 6월 25일 새벽 5시, 해군본부로부터의 긴급출동 명령을 받은 YMS-509 경비정이 동해의 묵호항을 빠져나와 북상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명령을 내린 해군본부나 정장이었던 김상도 소령도 전면전 발발사실은 몰랐다.
북상하던 509정은 7시 20분경 옥계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 상륙부대를 이동하던 북한군 소형 포함을 발견하고 즉시 교전을 벌였는데 이것은 6.25전쟁 최초의 남북 해군간의 교전이었다.

 
                                           YMS-509와 동급의 미 해군 소해정
 

비록 적함을 침몰시키지는 못하였으나 50여 분간의 교전 끝에 북한군 함정을 북으로 패주시켰다.
그리고 509정은 당일 오후 3시에 또 다른 북한군 상륙부대 함정들과 교전을 벌여 상륙정 1척을 격파하고 발동선 1척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당시 북한은 남침과 동시에 동해안 후방에 특작부대를 상륙시켜 국군 제8사단의 배후를 단절시키는 작전을 구사하였는데 509정의 분투로 많은 차질을 빚었다.

 
                          후방으로 침투하던 북한군을 차단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대한민국 해군의 지략은 같은 날 서해바다에서도 빛을 발하였다.
전면전임이 확인되자 해군본부는 유일한 상륙함 LST-801 천안함을 옹진반도로 급파하였다.
원래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고립된 옹진반도에 주둔한 제17연대를 후방으로 철수시키기로 계획은 되어 있었지만 해군은 육군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인천경비부 사령관 유해거 중령에게 명령을 즉각 하달하였다.
 

                                제17연대를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 LST-801 천안함
 

이때 천안함 하나로 부족할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경비부가 보유한 모든 소해정들과 인근의 민간 선박을 징발하여 급조된 철수 선단을 구성하는 치밀함을 해군은 발휘하였다.
그 결과 적에게 함락될 위기의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해상철수한 제17연대는 즉시 국군의 예비대가 되어 전쟁 초기의 피 말리는 지연전에 투입되었고, 이후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여하여 반격전의 선봉장으로 맹활약하였다.

 
                                                  옹진반도 전투 상황도
 

하지만 전쟁 초기의 대한민국 해군이 보여준 최대의 하이라이트는 남해바다에서 있었다.
전면전 발발 소식을 접한 해군본부는 당시 우리 해군이 보유한 최대 전투함인 PC-701백두산함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백두산함은 변변한 전투함정이 한 척도 없음을 한탄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하 모든 해군 장병들이 월급을 털어 마련한 기금에다가 국민의 성금 등이 모여 어렵게 장만한 함이었다.

 
                                          하와이에서 포탑을 장착하는 PC-701함
 

사실 함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미 해군에서 퇴역하여 해양대학의 실습선으로 활용하던 구현 선박에 3인치 포를 장착한 450톤 규모의 소형 함정이었다.
하지만 태평양을 가로질러 태극기를 게양한 백두산함이 1950년 4월 10일 모항인 진해에 입항하였을 때 국민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만큼 한국 해군에게 귀중한 전투함이었다.
바로 이러한 한국 해군의 자랑이 조국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것이었다.

 
                                                      작전 중인 백두산함
 

진해기지를 출항한 백두산함은 25일 18시경, 급속히 남하하던 미확인 괴선박을 발견하고 추격에 나섰는데 이 괴선박이 약 600명의 무장병력을 탑승시킨 북한의 1,000톤급 수송선임을 알게 되었다.
백두산함은 유리한 위치에서 교전을 벌이고자 일단 현장에서 이탈한 후 통제부의 명령을 받아 26일 0시 10분경 다시 근접 접근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이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이 전투 결과 아군은 전사와 부상이 각각 2명인 피해를 입었지만 적선을 격파하여 침몰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대한해협전투 상황도
 

전사에는 이를 대한해협전투라고 표기하는데 그 의의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북한 무장선의 임무는 부산항 점거를 위해 북한군을 상륙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유일 생명선이 조기에 차단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백두산함은 그러한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한 것이었다.
 

                                           전쟁 직전 촬영된 백두산함의 장병들
 

이처럼 개전 초에 압도적인 적에게 밀려 고전을 거듭하였던 지상의 상황과 달리 대한민국 해군은 서전부터 상당한 전과를 올렸고 그것은 암울했던 시기에 어둠을 밝혀준 횃불과 같았다.
비록 최근에 발생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한민국 해군은 이처럼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진 대한민국의 보루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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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한미 양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의 대한민국으로 전환 시기를 2012년에서 2015년 말로 조정하기에 합의하였으며, 금년 SCM(10.8)까지 새로운 전환계획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전작권 전환 시기 조정'은,
지난해 5월 2차 북핵실험 등 한반도 안보상황이 매우 불안정하고, 2012년은 역내 각 국의 지도부 교체 등 정치 및 안보적으로 유동성이 높으며, 여론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50% 이상이 안보불안을 이유로 전작권 시기의 연기를 원하고 있는 등에 따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작권 전환시기가 2015년으로 조정된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2015년에는 전시 임무수행을 위한 필수전력이 구비됩니다.
     →
C4I체계 개발 및 성능 개선, 공중전력 및 對화력전 수행능력 등이 보강됩니다.

2)  한국군의 지휘구조가 완성됩니다.

      지상작전사령부 창설로 안정적 지휘구조가 마련되며, 연합연습을 통해 운용능력이 완성됩니다.

3)  2015년에는 한-미 연합작전 환경이 더욱 개선됩니다.
      → 2015년에는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완료되며, 지휘구조를 위한 시설과 C4I체계 완전 가동 상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4)  2015년은, 한미양국 공히 선거일정 등이 없어 정치적으로 안정되는 시기입니다. 
   
  → 기존 전환 시기인 2012년은 한국의 총선과 대선, 미국과 러시아의 대선 및 중국의 주석 교체 등이 있어 전략환경상 전작권 전환시기로는 적절치 않다는 판단입니다.    



    전작권 전환시기 조정과 관련, 최근 우려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1)  '추가 부담(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분담액 증가 등은 없으며, 오히려 비용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기대됩니다.


2)  '군사주권'의 문제는?
      작전통제권의 본질은, 국익 보호와 전시 군사력 운용의 효율성 문제이지, 주권의 문제는 아닙니다. 참고로, NATO의 경우도 회원국이 침략을 받을 경우 자국의 결정에 따라 작전통제권을 미군 장성인 NATO사령관에게 위임합니다. 

3)  일부언론의 '밀실 합의'라는 주장에 대한 입장
      한미 양국간에 최종 합의내용이 결정되기까지 보안을 유지하였던 것은, 양국 협의간 안보 관련 중대 민감사안을 공개할 경우에는 국론 분열 및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우려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청와대와 국방부간 전작권 전환시기 관련 이견'이 있다?
      민간언론의 보도 뉘앙스 차이가 확대 해석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작권 전환 합의는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라 하겠으나, 우리 군은 2012년을 목표로 지금껏 충실한 준비를 해왔으며 현재도 연합방위를 주도할 기본운용능력(IOC) 을 구비하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다만, C4I, 합동화력운용체계 등을 보완할 경우 보다 안정적으로 전작권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5)  '국회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78년 연합사로의 작통권 전환과 '94년 한국 합참으로 평시작통권 전환 및 '07년 전시작통권 전환 합의 등도 국무회의 심의로 결정된 바 있습니다.

6)  '전작권 전환시기 조정' 발표가 '정국 타개 방편'이라는 시각은?
      전작권 전환시기의 적정성 평가 및 보완 문제는, 현 정부 출범시부터 국정과제로 선정되어 검토되어 왔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전작권 전환시기 조정과 직접 연관은 없으나 이 사건으로 전작권 전환시기의 조정을 검토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것은 사실입니다.

7)  전작권 전환 시기의 재연기 가능성은?
      정부와 군은 2015년 말을 전작권 전환의 최종시한으로 설정하여 전 역량을 기울여 철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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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전10시, 제2연평해전 8주년 기념식이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되었습니다.

'제2연평해전'은, 붉은 악마들이 '2002 월드컵'으로 기쁜 함성을 외치던 그날, 우리해군이 북한의 기습공격으로부터 이나라를 지켜낸 해전입니다.




행사에는 연평해전 전사자 유족과 전상자, 각부처 주요인사, 각계대표, 시민, 학생 등 2,50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제2연평해전 기념식은. 해군에서 개최되던 것을 2008년부터 정부주관 행사로 격상시켜 개최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전 국민의 행사로 개최할 계획입니다.





특별히 이번 행사에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와 전상자들의 나라를 위한 숭고한 헌신과 공훈을 기리고 이를 계승하여 '나라사랑 정신'의 원동력을 삼고자 학생 500여 명이 초청되었습니다.

6월 29일 기념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전쟁기념관은, 제2연평해전 교전 당시의 총탄 자국과 신체 굴곡 등이 원형과 동일한 '참수리 357정'의 모형을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참수리 357정' 모형


해군은 제2연평해전에서 승리를 남기고 떠난 전우들를 기려, 최첨단 유도탄 고속함에 전사한 전우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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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안 기록된 남침증거
 

 
흔히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38선 일대의 모든 북한군부대에 '폭풍'이라는 남침 암호가 하달되면서 04시에 일제히 포격을 개시하면서 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모든 남침 준비를 완료한 북한군이 전면남침을 개시한 시간이 04시였고 이것은 6.25전쟁 발발의 개시 시간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군이 38선 이남으로 월경하여 도발을 개시한 것을 전쟁 개시시점으로 본다면 실제로 전쟁은 그보다 1시간 앞선 03시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새벽 4시에 북한군의 포격이 개시되면서 6.25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비록 38선 전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북한군 일부가 6월 25일 03시에 38선을 넘어 이미 남침을 개시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6.25전쟁 당시 상륙작전하면 인천상륙작전을 먼저 떠올리고 전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통영상륙작전, 원산상륙작전 등도 생각이 날 것이다.전쟁 중 상륙작전의 대부분은 위에 언급한 예처럼 제해권을 확보한 유엔군의 주도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막연한 상상과 달리 6.25전쟁 중 최초로 벌어진 상륙작전은 북한군이 시도 하였는데, 이것은 전쟁 개시시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북한이 주장하는 6.25전쟁 북침설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북한군의 동해안 상륙과 강릉전투 상황도
 

1950년 6월 25일 03시 북한군 제766부대(최근 개봉한 영화  '포화 속으로' 에서 차승원이 지휘관으로 나온 부대)가 동해안의 임원진으로 그리고 제945부대(오래동안 제549부대로 알려졌었다)가 인근의 정동진으로 기습 상륙하였다. 그리고 기록을 살펴보면 북한 스스로도 이것은 성공적인 기습작전이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03시에 동해안에 상륙한 북한군은 연대규모의 경무장부대들로 해당 지역에 상륙한 후 현지에서 암약하던 공비 세력과 연결하여 국군을 분리하고 고립시키는 임무에 투입되었다.당시에 동해안을 담당하던 국군 제8사단은 38선 일대의 주문진에 제10연대, 강릉에는 사단사령부를 그리고 후방인 삼척에 제21연대를 배치해 놓고 있었는데 북한군이 중간에 상륙하여 제8사단의 연결을 끓고 제10연대와 사단사령부의 배후를 차단하였다. 따라서 국군 제8사단은 개전 첫날 38선을 돌파하여 남진하는 북한군 주력과 배후를 압박하던 이들 상륙부대에 의해 순식간 고립된 형국이었다.

 
                      영화 '포화 속으로'에 묘사된 북한군 제766부대
 

다행히도 국군 제8사단은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여 전면의 적을 막고 대관령쪽 퇴로를 확보하여 무사히 철수를 단행할 수 있었고 이것은 6.25전쟁사에 있어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그런데 동해안에서 벌어진 바로 이러한 숨막히는 개전 초기의 상황에서 중요한 의의를 그동안 많이 간과하였다.
우선 03시에 북한군 정규군이 동해안에 상륙하였다는 점이다.
이미 북한은 38선 일대에 포격을 날리기 이전에 그들의 정규군을 우리 후방으로 침투시켜 도발을 감행했고 그렇다면 6.25전쟁 개시시간을 03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03시에 전쟁이 벌어졌음을 기록한 남침사적비
 

이것은 또한 6.25전쟁을 지금까지도 북침이라 왜곡 선전하는 북한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증거다.
개전 당일 국군 후방으로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킨다는 자체가 벌써 북한군의 남침을 입증한다.
상륙작전은 규모의 대소 여부를 떠나서 사전에 충분한 사전준비를 마친 후에나 실시할 수 있는 군사작전이기 때문이다.
도발을 받자마자 즉각 반격하여 상대의 배후로 연대규모의 부대가 상륙을 펼친다는 자체가 우선 말이 되지 않는다.

 
         사전 준비가 필요한 상륙작전은 즉시 반격에 사용할 수 없는 군사작전이다.



비교적 소규모였던 통영상륙작전 당시의 해병대도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였다. 따라서 북한의 북침설은 개전 당일 동해안에서 벌어진 상륙작전만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거짓임이 여실히 입증된다. 1950년 6월 25일 03시 동해안에서 벌어진 북한의 기습상륙작전은 개전 시기에 대하여 한 번 정도 생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남침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적극 활용될만한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제8사단 강릉전투 승전비
 

그런데 야심만만하게 후방에 상륙한 북한군 부대는 이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였다.비록 전쟁 발발 당일 동해안 국군 제8사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지만 방어에 나선 민관군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전사에 일일이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무명 사병들과 민초들의 노력이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주역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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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은 1950년 발발하였던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서울 전쟁기념관에서는 금년 6월 25일 훨씬 이전부터 6.25 희생용사에 대한 추모와 참전국에의 감사를 위한 각종 전시와 행사들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11월 30일까지 전시되는 전쟁기념관 6.25 특별사진전


                            6.25 전쟁시 배고픈 아이들 - 전쟁기념관 정원에 전시된 사진들

                                                            전쟁기념관 내 '호국추모실'

                              호국추모실 내 조형물 '겨레의 얼'(천장에서 희망의 빛이 비추고 있다.)                    


6월 25일 정오에는, 이곳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UN 6.25 참전국 용사 추모행사가 있었습니다.
행사에는 한미 군지휘부(대한민국 국방장관, 합참의장, 주한미군사령관, 미 8군사령관) 등 90여명이 참석, 전쟁기념관내 참전 21개국 전사자명비에 헌화와 묵념을 하였습니다.


                         먼 땅에서 와 우리를 위해 희생해준 6.25 전우들에게 국화를 헌화하였습니다..



이어, 전쟁기념관 중앙로비로 이동하여 '주먹밥 먹기 체험'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주먹밥과 감자, 고구마는 6ㆍ25 전쟁 당시 군인과 피란민이 주로 먹던 식량이라고 합니다. 



                                                  6.25 참전용사에게 감사편지 쓰기 행사  


                                                                   6.25 당시 전투식량

                                                                '주먹밥 먹기 체험' 행사


6·25전쟁 당시에는, 물자가 귀해 그릇 대신 탄 상자에 주먹밥을 담아 지게로 날랐으며, 포탄 탄피에 된장국을 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6.25 당시에는 밤샘 전투를 벌이는 동안 고작 주먹밥 한 개가 지급되었는데, 전사자가 발생하게 되면 소ㆍ중대마다 5~6개의 주먹밥이 남곤하였습니다. 또 한겨울에는 얼어붙은 보리주먹밥을 먹기도 하였답니다.

금년 6월25일 '주먹밥 먹기 체험' 행사는 1950년 6.25 당시 한국군의 열악했던 보급상황을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는데요, 그 외에 나물국과 쑥개떡 등도 전시되었으며, 오늘날 한국군과 미군의 전투식량도 선을 보였답니다.


                                            UN 참전국 추모행사에 참석한 한미 군 지휘부 




이날 행사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은 주먹밥을 시식한 뒤 “60년 전 우리나라가 숨이 넘어갈 정도의 국난에 직면하였을 때 우리를 도와주려고 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왔었습니다. 그러한 지원들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과거 60년 전을 생각하며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주한미군사령관은 “테이블 접시에 놓은 주먹밥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성찬이라 생각한다”며 “한국이 경제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며, 북한의 지도부는 도발행위를 계속한다면 한반도에는 평화가 정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맞은편 '전쟁기념관'- 다양한 6.25 기념행사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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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새벽,
태극전사들이 감동의 '16강 진출'을 이루어냈습니다!
56년만의 첫 원정 16강이라고 합니다.

태극전사들과 밤을 낮처럼 밝히신 붉은악마들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6월25일, 우루과이와의 16강전 전날! 
또 하나의 예술, '경계에서(
On the Line)' 막이 오릅니다. 





6.25일 서울 대림미술관을 시작으로, 런던, 뉴욕에서도 전시될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진전 '경계에서(On the Line)'...

대한민국 대표 사진작가 10인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전쟁과 아픔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그 곳...

'작가와의 만남', '자녀들과의 이야기', '재즈콘서트' 함께 어우러지는 새로운 문화의 공간...




특별 '도슨트(전시작품 해설가)' 함께 합니다.  


특별도슨트, 현역 이준기 이병과 이동욱 일병

                              


'월드컵 붉은 악마들의 뜨거운 함성'을 낳으신, 60년전 전쟁의 포화속에서 희생되어가신 그 분들.... 

'6월25일~8월20일,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만나봅니다.

좀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신다면,
http://www.ontheline.co.kr을 방문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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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국군용사'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귀환 국군용사'란 1994년 이후 귀환한 6.25전쟁 국군포로들 말합니다.

6.25전쟁 관련 국군 실종자는, 정전 당시 유엔군의 추정 수치로는 8만 2천여 명에 이르고 있으나, 최종 송환된 국군포로의 수는 8천여 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다수의 미송환 국군포로들이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으셨던 미국, 그리스, 네덜란드 6.25 참전용사들과 가족


6.25전쟁 국군포로 관련하여, 국방부는 1994년 10월 최초로 국군포로였던 조창호 중위의 귀환 이래 이들 국군포로와 가족들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미 귀환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으로 그분들을 돌봐드리는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정기적으로 귀환 국군용사의 가정을 방문드리기도 하며 각종 간담회를 개최, 의견을 수렴하기도 한답니다. 

6.25 전쟁 60주년인 올해 5월31일~6월1일에는 국방부 주최로 1박2일간의 '제9회 국군용사 초청행사'를 개최하여, 귀환 국군용사간 친분을 쌓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으며 각종 애로 및 건의사항들을 국방부에 제의하실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제9회 국군용사 초청행사' 현장으로 떠나보실까요?

때는 5월31일 오전, 행사 참석자들은 국방부와 대전을 각각 출발하여 '국방과학연구소'에 집합하셨습니다. 이곳에 모이신 참석자들은 우선 대한민국 최신 무기체계를 관람하셨는데요, 금강산도 식후경, 물론 점심식사 이후의 일이었지요.^^ 



국군용사들과 가족들이 식사하시는 모습-'국방과학연구소'에서

            

초청행사의 시작 -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다음의 순서로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동, 참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천안함 희생 장병들이 잠든 곳에 참배하고 희생 장병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의 천안함 희생장병 참배

                         


참배 후 방명록을 작성하시는 모습

                    

 

국립대전현충원내 천안함 희생장병들이 잠든 곳

                        

 

천안함 희생장병의 비석에 씌인 글귀를 보시는 귀국 국군용사의 모습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중인 6・25 전쟁 사진전시회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 이르자, 귀국 국군용사분들의 대화가 부쩍 늘어나시더군요. 옛 생각이 나신 것이겠지요..



6・25 전쟁 사진전을 관람하시는 귀국 국군용사들

                       


 

6・25 전쟁당시 사용된 물품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참배와 관람을 마친 후에는, 간담회 및 만찬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진행간에는 최근  국방부 추진 국군포로 정책에 대하여 설명을 드렸으며 건의사항 청취의 시간도 가졌답니다.

 


현충원 참배 후 간담회 모습

                                     

 

국방부와 군에 건의사항을 말씀하시는 귀환 국군용사

                    


'제9회 국군용사 초청행사'는, 귀환 국군용사들의 애로사항들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던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참석하신 국군용사들은, 밤이 늦도록 오랜시간 쌓아두셨던 회포를 푸시며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시기도 하였습니다.

행사 2일차 오전, 참석자들은 연세대학교 이호선 교수님의 「노년기 건강관리와 부부생활」 강의를 들으신 후 청남대를 관람하셨습니다. 전날의 간담회가 귀환용사들의 특수성에 초점이 맞춰진 행사였다면, 행사 2일차에는 일반적 노년의 생활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강의로 행사를 구성하였습니다.


노년의 건강과 부부생활에 대한 강의

                              

  강의청취후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계룡스파텔에서 1시간 거리의 청남대로 향하였습니다.



귀환 국군용사들의 청남대 관람

                                 

 

 청남대는, 1983년 충청북도 청원군에 건설된 대통령 별장입니다. 이곳은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 라는 뜻으로 역대 대통령의 명절휴가・여름휴가시 이용되어왔다고 하는데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충청북도로 이관되어 최근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남대 관광을 끝으로 '제9회 귀환용사 초청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금번 행사를 계기로 처음 귀환 국군용사들을 만나뵌 저는, 그 분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흥미로워 시간가는 줄을 몰랐답니다. 그분들은 주로 북한 탄광촌 일을 하시다가 탈북하여 어렵게 한국에 오신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국가에서는 물론 이분들을 예우하고는 있으나, 이미 나이도 많으시고 또한 북한에 두고온 가족 걱정으로 한국에서도 마냥 편하게 지내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번 초청행사는 제게 60년전 6・25전쟁이 남긴 상처가 과연 어떤 것이었는 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25 전쟁 60 주년을 맞은 2010년, 우리국민 모두는 6.25 그 의미를 되새기며 나라를 위해 큰 희생을 치르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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