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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3 영광의 국군 기갑사(機甲史) [4]
  2. 2011.05.06 영광의 국군 기갑사(機甲史) [ 1 ]







영광의 국군 기갑사(機甲史) [4]
 

또 다른 주먹들
 
 
기갑연대에는 기마 300필을 보유한 2개 중대 규모로 이뤄진 기병대대가 있었다. 요즘 일부국가의 산악부대 외에는 전투부대로 기병대를 별도로 운용하는 나라는 더 이상 없으리라 생각 되지만 당시에는 엄연한 전투부대였다. 장갑대대가 전쟁초기 서서히 각개 격파 되었던 것에 비한다면 기병대대는 낙동강 방어선까지 편제를 그대로 유지하였으며 전쟁초기 기갑연대의 제 부대들 중 최고의 전과를 올린 부대였다.
 

                               기갑연대 소속이었던 기병대대의 검열 모습

 
1950년 7월 말 경북 청송까지 후퇴한 기갑연대는 워낙 소모가 심하여 그 전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도보대대는 김포전투에서 상실되었고 장갑대대는 각 전선에서 거의 격파되어 M-8 장갑차 4대만이 청송으로 이동하였다. 반면 당시까지 200여명의 병력을 유지한 기병대대는 편제를 대부분 유지하면서 기갑연대의 주력으로써 맹활약 하였다.
 

                                       시가행진 중인 기병대대
 

오늘날 제1사단을 최고의 상승부대(常勝部隊)로 꼽는 이유 중 하나에는 전쟁 내내 편제를 유지하였다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 수많은 부대들이 전쟁 중 해체 및 재창설의 과정 등을 겪고는 하였는데 제1사단은 후퇴 시기에도 대부분의 편제와 장비를 보존하였고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훌륭한 전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기갑연대 중에서도 최후까지 전력을 보존하여 방어전을 펼쳤던 기병대대의 노력은 영웅적이라 할만 했다.
 

                    1950년 7월초에 촬영된 기병대대원들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7월 초 한강도하를 감행하였다. 이때 긴급하게 시흥전투사령부를 구성하여 한강 남쪽에서 북한군을 방어하던 혼성 부대 중에는 기병대대도 있었는데 천호동에서 한남동 대안에 이르기까지 넓은 정면을 방어하였다. 한강을 방패막이 삼아 적의 공격을 막아냈고 후퇴 시에는 기병대의 기동력을 이용하여 아군의 최후 철수부대를 엄호하는 작전을 펼쳤다.
 

                                     전선으로 향하는 기병대대
 

특히 미군 전사에는 7월 초순 경북 구미 부근에서 미 제24사단 63포병대대 B포대가 1개 대대병력의 북한군에 포위되어 몰살 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홀연히 나타난 기병대대 2개 소대가 적 배후를 급습하여 이들을 구출한 전과가 상세하게 나오기도 한다. 이후 북진에도 참여하였던 것으로 기록이 나와 있지만 1.4 후퇴 후 더 이상의 기록을 발견 할 수 없는데 아마도 기병대가 더 이상 전장상황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어 해체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북진 당시의 모습인데 이후 기병대대는 국군 역사에서 사라진다
 

도보대대는 2개 중대 규모로 구성된 경무장 보병대대
였는데 오늘날 수색대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전쟁 개전 시에는 기갑연대의 본부 및 남산 송신소 등을 방어하다가 한강 이남으로 후퇴하여 김포지구방어사령부 소속으로 방어전에 나섰다. 전쟁 초기에 당시 북한군 중 최고의 기동을 보여주었다는 북한군 제6사단의 김포 반도 도하 작전으로 국군의 배후가 노출될 위험에 처하자 도보대대가 긴급 투입되었다.
 

                                  이동 중 휴식을 취하는 국군 보병부대
 

약간의 M-8 장갑차의 지원을 받아 부천 및 오류동 방향으로 진출하여 방어선을 구축한 도보대대는 병력과 화력의 절대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쟁 초기 북한군 최강으로 평가되던 6사단과 혈전을 벌여 상상 외의 타격을 입힘으로써 영등포 진출을 지연시켰다. 하지만 김포 공항 탈환에 실패하며 부대가 해체 될 만큼의 타격을 입었고 지휘관은 자결을 하였다.

 

                      도보대대의 살신성인 정신은 국군의 귀감으로 남아있다
 

비록 도보대대는 기갑연대의 제 부대들 중 가장 먼저 산화한 부대가 되었지만 중과부적의 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한 그들의 용맹으로 말미암아 시흥전투사령부의 각 부대가 수원 이남으로 안전하게 후퇴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었다. 도보대대의 용맹함은 오늘날 국군 수색대대나 수색중대와 같은 첨병부대들이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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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국군 기갑사(機甲史) [ 1 ]
 

 
기갑연대를 아십니까 ?

 
현재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육군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창설되었던 부대로는 제1, 2, 3, 5, 6, 7, 8, 수도경비사령부(전쟁 도중 수도사단으로 개편되었는데 현재의 수도방위사령부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의 8개 사단 급 부대와 육군본부 직할의 제17연대, 기갑연대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국내 치안 유지에나 적합한 단출한 규모였다.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창설 당시의 모습
 

그런데 창군 당시의 군사(軍史)를 살펴보면 8개 사단을 구성하였던 예하연대 및 2개 독립연대들은 수시로 예배속을 변경하고는 하였다. 아래의 표는 사단 창설 시와 한국전쟁 종전시의 각 부대의 예하연대가 변경된 내용이다. 이런 이유는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창군 당시의 여러 사정과 곧이어 벌어진 전쟁으로 인하여 부대의 해체 및 재 창설 등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창군 8개 사단의 전쟁 전후 예하연대 예배속 상황표
 

때문에 현재도 국군의 간성(城 ; 방패와 성이라는 으로, 나라지키는 믿음직한 군대인물이르는 .)으로 그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보유하고 있는 창군 8개 사단의 역사와 예하에 속해 있는 연대의 역사가 반드시 일치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자면 국군 최초로 창설 된 연대였던 제1연대는 상급소속부대가 제1여단, 제7여단, 제7사단을 거쳐서 현재는 수도기계화사단의 예하부대(수도사단이 기계화사단으로 개편되면서 현재 제1여단)로 있다.
 

                                    세계적인 기갑부대인 수도기계화사단의 기동훈련
 

그런데 자료를 살펴보면 숫자가 아닌 단대호(單隊號 ; 단위 부대마다 소속, 규모, 병과 따위를 정하여 붙인 번호.)를 가진 연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기갑연대"인데 지금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전통의 부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부대는 오늘날 세계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국군 기갑부대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 1948년 "독립수색단"으로 창설된 후 수차례의 예배속 과정을 거쳐 한국전쟁과 월남전쟁까지 참전한 기갑연대의 역사는 바로 국군 기갑사 그 자체라 할 수는데 다음은 기갑연대의 예속 및 참전기록이다.
 
1948년 12월 10일   서울 서빙고에서 독립수색단으로 창설
1949년  6월 20일   수도경비사령부(현 수도기계화사단) 창설시 예속
1949년 11월 15일   육군본부 직할의 독립연대로 예속 전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참전
1950년  6월  28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편성 시 각 혼성사단에 분산 예속
1950년  8월  28일  수도사단에 예속되어 종전 시까지 주로 동부전선에서 전투
1965년 10월  23일  수도사단 예속부대로 월남전 참전
1974년  이후          월남 철군 후 수도사단의 기계화사단 개편 시 기갑여단으로 승격

 

                                  창군 직후 시가행진 중인 기갑연대 소속의 M-8 장갑차
 

기갑연대를 지금과 평면으로 비교하기도 곤란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남침의 선봉이었던 북한군 제105 탱크여단과도 비교되지 않는 극히 빈약한 장비를 보유한 상태로 시작한 부대였다. 기갑이라는 부대명칭과 달리 일부 대대만 경량의 장갑차를 보유한 한마디로 무늬만 기갑부대였는데 그 편제는 다음과 같았다.
 
장갑대대 - 예하 3개 중대
기병대대 - 예하 2개 중대
도보대대 - 예하 2개 중대

 

                                      하루아침에 이런 모습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비록 전쟁 초기에 수많은 손실을 입어 부대가 붕괴되다시피 하는 피해를 입기도 하였지만, 기갑연대는 국군 기갑부대의 선구자로서 후배들에게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는 용맹함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국군 기갑부대의 시초가 되는 기갑연대의 초기 모습과 전선에서 용감하게 적과 맞섰던 전투,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국군이 세계적 수준의 기갑부대를 보유하게 되기까지의 간략한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한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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