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책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최근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는 '국방개혁'이 그 주제였습니다. 



'국방개혁'이라 하면, 많은 분들께서 난해해하거나 생소하게 느끼실텐데요,

'국방개혁'은 '국방의 선진화와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비하여 2005년에 수립된 중장기발전계획'니다. 2012년 전시작전권의 전환과 2020년까지 국방개혁의 달성을 목표로 수립되었던 '국방개혁'은, 계획수립 당시엔 북한 위협이 감소할 것을 전제로 수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3월26일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하였고, 5월13일 정부는 국가안보시스템의 총체적 재점검을 위해 '국가안보태세 확립과 국방개혁2020 재검토'를 결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열린 국회 정책토론회 "국방개혁,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는 우리 국방에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진지하게 토론에 임하는 군 참석자들..

                              

토론회는, 한국국방연구원, 세종연구소, 조선일보 등 5개기관의 국방분야 전문가들의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고, 국방부와 합참 등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역시 여러분들을 대신하여 토론회에 다녀온 제가 토론회의 대강을 말씀드리도록 하죠. 저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순간 여러분들도 국방개혁에 관하여 한말씀 남기셔야하는 국방의 의무가 발생함을 알려드립니다. ^^

토론회는, 현 안보태세의 문제점, 북한의 위협 가능성, 이에 대한 대응방안, 이에따른 국방개혁의 과제 등을 짚어보고자 하였습니다.

토론중 발제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우리 군의 전략과 전력의 현주소'라는 주제에 대해 국방연구원 차두현 연구실장의 발제입니다.


차두연 연구실장 발제

                                          

" 천안함 사태를 통해 우리가 교훈으로 얻은 것은, '제도'나 '계획'보다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위기관리'는 국방부 혼자서 모든 것을 할수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외교, 안보, 재정 등 위기 유관부처간에 공유되어야 합니다. 우리사회가 문제의식을 너무 국방태세의 취약성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위기'에는 예방과 대응, 사후관리가 모두 중요합니다.

 그럼, 우리군의 현주소 측면을 살펴봅시다. 천안함 사건과 같은 위기에 대응하려면, 북의 도발에 대비한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또한, 1년이상 긴장이 지속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장병들에게 적절한 휴식조치도 병행이 되어야 유사시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유관 기관간 보고체계의 신속/정확성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며, 특별히 현 시점에는 모든 주변국들이 공감할 상황종결을 유도하기 위한 차후대책이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싸울것인가'의 정립이 매우 필요합니다.
국방개혁의 합리적 수정/보완을 위해서는, 위협의 대상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분명한 전략수립, 취약한 해/공군력의 자체 억제력 제고, 이를 위한 무기체계의 장비유지예산 증액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국방개혁 2020 수정안, 바람직한 방향이었나?' 에 대하여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편집인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정치논리에 좌우되어 턱없이 부족한 국방개혁 예산의 증액이 필요합니다. NLL최전방의 수요는 줄지않았는데 고속정의 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해군의 전력...'국방개혁 2020'의 핵심은 계획된 예산의 조달입니다. 육군 중심 군 지휘구조의 '삼군균형발전'도 필요합니다. 합리적 예산과 조직이 운영될때, 효율적 전력투자와 국방개혁이 달성될 것입니다.

이어, '남,북 전력의 강점과 취약점' 대해 디펜스타임즈 김병기 편집위원이 발제하였습니다.  




"최근 북한은, 김정은 후계체계를 만들기위해 군이 전면에 나서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경제난에 따라 무기/탄약이 노후되고, 병사들의 체력이 약화되는 등 체제유지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으로 군사적으로는 한계에 달하여 무모한 모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북한의 강점이라면, 전략적 목표 수립과 그 구현을 위한 수단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여, 약점 극복을 위한 특수전 병력강화, 게릴라전 등 준비, 군지휘부의 독자적 작전기획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남한의 약점은 국민전체의 안보 불감증, 미군에 의존적인 군 구조와 의식에 따른 한국군 지휘부의 작전기획능력 부족, 3군의 자군 이기주의에 따른 어중간한 합동군 체제 등이며, 강점이라면 미국과의 동맹체제에 따른 강한 억제력(핵억제력 등), 세계적 신뢰향상에 다른 정치/외교 입지 우위, 무기의 현대화 등이라 하겠습니다. 한국군은 너무 빨리 북한에 대한 자만심을 보여왔습니다. 북한군은 언제든 폭발 가능성이 있는 불발탄 같은 존재입니다." 

네번째로, '북한의 특수전 능력과 양산 평가' 관해, 북에서 남한으로 망명한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

                                       

"북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난으로 인민군대 전력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 대다수 병사들의 전투능력 상실에 따라 특수부대를 강화하고 있으며, 2003년 이라크전 이후 게릴라전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게릴라전을 강화, 핵무기 개발, 정치범을 이용한 세균무기 및 생화학무기 등을 개발(세계3위)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도발임이 거의 확실해지고 있는데, 북한도발의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인민군의 사기 제고를 위한 충격적 승리가 필요했고, 둘째, 화폐개혁에 따른 북한주민의 분노를 잠재울 외부로부터의 공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방개혁, 어떻게 재조정되어야 하나?' 주제로 세종연구소 이상호 박사가 발표하였습니다.


세종연구소 이상호 연구위원

                                                 

" 최초의 '국방개혁 2020'은, 자주국방 등 당시의 진취적 정책이 잘 반영되어 있으나, 실현이 의문시되는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정부의 수정안은, 정량적 평가에 치우쳐 예산의 축소, 지상군 전력강화에 주력, 해/공군 전력보강 지연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진정한 국방개혁의 실천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측면보다는 군의 입장에서 '전쟁의 방법(군사전략과 작전)'에 맞는 합리적 예산과 전력 소요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상은 토론회의 발제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국방개혁'이 어느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보는, 모든 국민의 행복추구를 가능케하는 기본 인프라이며, '국방'은 온 국민의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군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군의 명예는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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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전쟁 [上]


 
 
2010년은 4년마다 열리는 지구촌의 대제전인 월드컵(FIFA World Cup)의 해로 이번 제19회 대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6월 11일 개최될 예정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개최는 경합에 의해 결정되었다기보다는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대륙에서, 그것도 한때 흑백 갈등의 상징이었던 비극의 땅에서 세계적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평화를 어필하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의도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금번 월드컵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그런데 평화의 제전이라는 모토와는 전혀 동떨어진 사건이 월드컵의 역사에 있었다.
그것도 모든 나쁜 것들 중의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이 바로 월드컵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니 당대의 기준으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는데,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도 아닌 불과 한 세대 전의 이야기로 흔히 축구전쟁(Soccer War)로 통칭한다.  

월드컵과 관련하여 월드컵 역사에 있어 유명한, 하지만 창피한 사건이기도 했던 축구전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전쟁의 포연속에서도 열리는 것이 축구경기이지만 어처구니없게 축구가 전쟁을 촉발시킨 역사가 있었다.


 
한 세기 전의 영국이나 현재의 미국 정도가 아니면 대양을 건너가서 외국과 전쟁을 벌일 나라는 사실 없다고 보아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 국가 간의 충돌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 사이에서 발생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고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간의 사이가 좋았던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반대로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들끼리는 사이가 나쁠 일도 없고, 혹시 사이가 나빠진다하여도 전쟁까지 벌어지기는 사실 힘들다.
예를 들어 쿠바가 한때 우리나라의 적성국이었지만 적대국이라 하기에 곤란하였던 이유도 사실 너무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전쟁은 인접국 사이에서 벌어진다.

 

우리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몰려있는 중미(Central America)의 경우만 해도 역사적,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웃간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 중에서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국가들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엘살바도르온두라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하였던 적이 있었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축구 때문이었다.
축구전쟁이라는 명칭처럼 축구가 양국간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기는 하였지만, 이면에는 전쟁이 발발할 수 밖에 없었던 내재적 요인이 축적되어 폭발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던 상태였다.
마치 호시탐탐 전쟁을 개시할 구실만 찾고있다가 사라예보의 총소리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모두 독립 이후 계속해서 반복된 정변으로 해가 뜨고 질 정도로 정부가 안정되지 못한 전형적인 중미 국가들이었다.
여담으로 중미에서 정치적으로 안정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면 코스타리카 정도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이 지역은 정치적 안정을 찾아보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런데 일본의 통일을 이룬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군부가 군부통치하던 아르헨티나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여 무마하기 위해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던 것처럼, 1960년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정부 모두는 국가 이익을 위해 타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책을 용인하고는 하였다.

많이 닮은 엘살바도르(좌)와 온두라스 국기

 
 
20세기 초부터 약 30만 명의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국경을 넘어 온두라스(인구는 양국이 얼추 비슷한데 국토는 온두라스가 8배 정도 크다)로 이주하였는데 이들이 온두라스의 경제권을 급속히 장악하고 사회의 상층부를 이루게 되었지만 온두라스 국민들에게는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자 1969년 온두라스정부가 새로이 농지개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눈에 가시같던 엘살바도르인 수만 명을 국외로 추방하자 두 나라 사이의 감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두 나라 관계가 악화되던중 월드컵예선전이 열렸다.(1970년 멕시코월드컵 포스터)


 
바로 이런 와중에 1970년 제9회 멕시코월드컵 중미예선에서 두 나라가 맞서게 되었다.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루어진 예선전이 벌어져 온두라스에서 1969년 6월 8일 경기가 먼저 열렸는데, 이 경기에서는 일방적으로 응원을 받은 홈팀 온두라스가 1-0으로 승리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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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7일, 국회에서 '전장스트레스 실태와 관리 방안'이라는 주제로 정책세미나가 개최되었습니다. 


국회의원회관 1층 소회의실




'전장스트레스'...

우리는, 평소 무수한 종류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살아갑니다. 집에서, 직장에서, 연인과의 갈등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종종 스트레스를 호소하죠.

'전장스트레스'는 우리에게 낯선 개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국군이 있는 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될 개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국회 정책세미나에 참석하신 분들을 소개해 드려야지요?


전직 국방부장관 김장수 의원과 김동성 의원...



국민의례..(세미나를 주최한 김정 의원도 보입니다)



국방부장관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전장스트레스란,
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말하죠. 
전장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명을 위협받고 피로와 고통이 강요되는, 장래를 예견할 수 없어 여러가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이라 하겠습니다. 




전장스트레스에 따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전쟁, 교통사고, 폭력 등 강한 충격이 있는 사건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장애로서, 조기발견과 치료가 어렵고 발병시기의 예측도 곤란하며 완치 후엔 재발 가능성이 상존하는 증상이라 합니다.  세부 증상으로는, 외상적 사건 재경험에 따른 고통, 정서적 마비, 죄책감, 거부감, 환각 등을 경험하게 되며, 우울감, 자살기도, 공격성, 파괴적 행동 등을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증상은 대개 3개월 이내에 나타나지만, 길게는 30년 후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장병들은 예기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직면할 극한의 상황에 대한 블안감으로 극심한 전장스트레스를 체험하게 됩니다. 전장스트레스는, 전투 피로감 증가와 전투의지 파괴를 야기하며, 종국에는 부대 전체의 사기와 전투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미국은, PTSD 국가연구센터를 운영합니다. PTSD의 사전예방-현장관리-전문치료-사후관리를 거쳐 다시 사전관리로 환류하는 PTSD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하는데요,
'09년 미국 RAND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 등 파병 장병 16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25%의 장병이 정신과적 질병을 앓고 있으며, 그 중 56%는 2가지 이상의 증세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장스트레스에 따른 PTSD와 우울증은, 자살, 살인충동으로 인한 인명손실 등을 초래하여 재정 손실로 따지면 약 4억~6억 달러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도, 지진 등 재해가 많은 나라로서 재난/재해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일본 '효고 외상성스트레스연구소(HITS)'에서는 '재해지역 정신보건의료 활동지침'을 마련하여 체계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군의 요청이 있을시 직접 군에 방문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답니다.  


대한민국의 해외파병은, 1965년 10월 청룡부대를 베트남에 파병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1991년 국제연합에 가입 이후 다양한 형태로 국군의 해외파병이 실시되고 있는데, 이는 2010년 1월25일 제정된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른 파병입니다.

이렇듯 국군의 해외파병 임무가 다양화되는 가운데 해외파병 장병 등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관리에 관한 논의는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미나를 통해, 전 국방대교수인 정효현님은 연구논문을 통해 국방부, 국가보훈처, 민간단체의 유기적 협조하에 'PTSD종합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방안과 의무사령부 내에 미군과 같은 '정신건강증진지원팀'을 공식 설치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였습니다.

계요병원 정신과 전문의 박주언님은,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베트남전 참전,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스트레스 환경에 직면해 있어 PTSD에 대한 고위험 사회라고 하면서, 군대에서도 PTSD 발병이 증가할 수 있어 관심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08년 해당기관 연구팀의 사병, 부사관, 장교를 대상으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 대부분(83.1%)이 군내 사고후 정신과적 개입과 PTSD 대응관리체계가 우리 군을 위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위상이 격상됨에 따라 UN 등 국제사회의 파병요구는 증가할 것이며, 현재는 국제적 역할과 국격제고를 위해 해외파병을 적극 수용하는 상황으로, 국가적으로 파병의 목적을 달성하고 군과 부대 및 개인차원에서의 성공적 파병을 위해서는 전문적 전장스트레스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우리군은 2010년 7월부터 해외파병 전담부대를 운용할 예정으로, 이는 파병전 전장 스트레스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로 인명손실 없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한 방안이며, 이에 따라 개인과 군 , 국가차원에서는 파병의 엄청난 부가가치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국방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를 달성하려면, 무기체계 등 물리적 영역의 발전 못지않게 장병 개개인의 정신적 영역관리에 대한 업그레이드도 병행되어야 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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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시기에도 묵묵하게
 

 
천안함사건과 이와 관련된 금양98호의 침몰 그리고 링스헬기의 추락이 연이어 벌어진 2010년은 대한민국 해군사에 있어 두 번째되는 시련의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9명이 전사한 당포함 피격사건과 여객선 한일호가 충남함과 충돌하여 94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던 1967년의 사건 다음이라 할 만큼 천안함 사건은 크나 큰 시련임에 틀림이 없다.

 

천안함사건은 크나 큰 시련임에 틀림없다.


 
워낙에 천안함 사건이 위중한 관계로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어려운 시기임에도 대한민국 해군은 여전히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수선하였던 지난 4월 2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서는 청해부대 4진이 소말리아 작전지역으로 예정대로 출항하였고 항해 끝에 21일에는 현지에서 임무를 마친 3진과 부대 교대 후 임무에 투입된 일이 있었다.

 

지난 4월 2일 출항하는 청해부대 4진 강감찬함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암약하는 해적들로부터 한국선박들을 비롯한 민간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인데 특히 대한민국 국군의 해외 파견역사상 처음으로 해군 단독으로 임무에 투입되고 있으며 부대구성에도 상당히 특색이 있다.

 

현지에 도착하여 적응훈련에 돌입한 청해부대의 모습


 
청해부대는 최신예 한국형 구축함에 대잠헬기 슈퍼링스 1기와 30여명의 UDT/SEAL 특수전요원들로 부대가 구성되다보니 함 자체가 바로 부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일정기간 현지에서 근무 후 부대전체를 교체하는 형식으로 임무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2009년 3월 제1진이 작전에 투입된 이후 이번에 파견된 부대는 제4진으로 4,500톤급 구축함인 DDH-979 강감찬함이 파견되었다.

 

청해부대 4진에 포함된 해군 특수전요원들


 
더구나 이번에는 아덴만과 소말리아 동부 해상에서 대해적 작전을 전담하기 위해 2009년 1월 1일 연합해군사령부 예하에 창설된 다국적군 부대인 CTF-151을 대한민국 해군의 이범림 준장이 21일부터 8월31일까지 지휘하게 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CTF-151의 지휘관은 파견국가 순번대로 돌아가며 담당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차례인 것이다.

 

아덴만에서 작전을 펼치는 CTF-151의 다국적 전투함들


 
이범림 준장은 강감찬함을 기함으로 하여 참가국에서 파견된 21명의 다국적군 참모단의 보좌를 받으며 CTF-151을 지휘, 통제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지휘가 경쟁은 아니지만 여러 나라 해군 지휘관과 자연스럽게 비교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므로 한국해군의 역량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주기를 바란다.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여 주기를 기대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 대한민국 해군은 초유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 맡은바 임무를 다하려 애쓰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해군의 노력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안전하고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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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명의 천안함 희생장병들에 대한 확인과 희생장병들에 대한 수색 종결이 결정되면서, 나라 곳곳에서는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하는 곳이 늘어나고 4.25일부터 5일간의 희생장병들에 대한 장례가 거행되고 있습니다.
 


천안함과 우리장병들을 기억합니다.



4.25일 정운찬 국무총리는 정부를 대표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4.25일 시작된 천안함 희생장병 장례기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하고, 영결식인 4.29일을 '국가애도의 날'로 지정하기로 하였습니다.


  

4.25일 평택 2함대사령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정운찬 총리와 김태영 국방부장관

 

천안함 희생장병들의 장례는 유가족들의 뜻에 따라 4월 25일을 사작으로 29일까지 '해군장'으로 치뤄지고 있습니다.



평택 2함대사령부 합동분향소


 
이렇듯 천안함 희생장병들을 위해 분향하는 마음은, 희생장병 유족들과 정부만의 것이 아닌가봅니다.

4.25일 천안함 희생장병 장례기간이 시작되면서 전국 곳곳(16개 지자체와 90여 군부대 등)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우리 국민들의 분향을 위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직접적으로 나의 아들, 우리형은 아니지만, 천안함 희생장병을 추모하고 슬퍼하는 마음은 우리국민 모두가 같은가 봅니다.

"희생장병들이 모두 내 아들같고 우리 애아빠같아서 마음이 아파요..."라며 국민들은 말합니다. 



서울광장에 설치된 천안함 희생장병 합동분향소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진해 종합사회복지관 합동분향소에 이르기까지 우리국민들의 분향을 위한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남가주 해군동지회, LA한인회 등도 분향소를 마련하여 분향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방부와 해군을 비롯한 우리군 모두는 평택 2함대사령부 합동분향소와 국립서울현충원 분향소를 비롯한 전국 90여개의 군 부대에 분향소를 마련하였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천안함 희생장병 합동분향소



국방부도 우리장병들을 애도하며 4.25일부터 국립서울현충원 분향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희생장병들에 대한 묵념(국립서울현충원 합동분향소)





희생장병에 대한 분향이 계속되고, 4.29일에는 천안함 희생 장병들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있을 것입니다.

4.25~29일 '국가애도기간'을 통하여 우리군과 우리 국민들은 더욱 성숙될 것이며 모두 하나가 되어 이 나라를 생각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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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해를 지키는 하늘의 파수꾼
 
 

천안함 사건과 별개로 최근 해군이 운용중인 링스(LYNX)대잠헬기가 작전 중 연이어 추락하는 전대미문의 사고가 발생하여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해군의 링스헬기


 

지난 4월 15일 오후 8시 58분쯤 전남 추자도 인근 해역에서 초계비행 중이던 해군 3함대사령부 소속 링스헬기가 추락하였는데, 사고 확인 직후 관계 당국에서 구조 활동을 벌였으나 현재 시신으로 발견된 권태하 대위를 제외한 홍승우 중위, 임호수 중사, 노수연 중사 등 나머지 탑승자의 생사여부는 물론 기체까지 아직 파악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故 권태하 대위




그리고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4월 17일, 소청도 남쪽해상 왕건함에서 출동한 해군 2함대사령부 소속의 링스가 추락하는 사고가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불행 중 다행히도 3인의 승무원들이 안전하게 구조되었고 기체도 즉시 인양되어 수리하면 재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사고가 이어지자 군당국은 해군이 보유한 전체 링스헬기의 운항을 중지하고 긴급 안전진단 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소청도 인근 추락 링스헬기의 모함이었던 왕건함. 즉각적인 후속조치로 인명을 구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연이은 사고와 보도로 인하여 우리 해군이 운용하는 헬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많이 증폭되었다. 왜냐하면 링스헬기는 육상을 기지로 하여 운용되는 여타 헬기와 달리 주로 함정에 탑재하고 있다가 해상초계 및 대잠임무에 투입되는 헬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창군 후 우리 해군은 오랜 기간 연안해군 규모였고 보유하였던 함정의 크기도 작아서 군함에 해상작전을 위한 항공장비를 탑재하고 다닌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해군에서 헬기를 함에 탑재하여 작전에 투입한 것은 1980년대 초였는데 실전에도 투입되어 전과를 남기기도 하였다.

 
 

한국해군 최초로 헬기데크를 갖춘 구축함중 하나였던 DD-922 강원함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83년 8월 13일에 울릉도 근해에서 있었던 북한 간첩선 격침작전이었다.
미국에서 도입한 일부 기어링급 구축함의 함미를 개조하여 헬기데크를 만들어 해상작전용 헬기를 탑재시켰는데 DD-922강원함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에 강원함에 탑재되었던 SA-319B 알류트(Alouette) III 대잠헬기가 AS-12대함미사일을 이용하여 도주하던 간첩선모함을 격침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1980년대 우리해군이 운용하였던 것과 동종의 알류트 III 대잠헬기

 


당시에 활약한 구형구축함이나 알류트헬기는 모두 현역에서 은퇴하였고 이제 그 자리는 최신 한국형 구축함들과 1990년대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도입한 OO대의 영국제 링스(Mk-99형, Mk-99B형) 대잠헬기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 링스헬기들은 현재 우리 해군이 보유한 OO기의 P-3C, P-3CK 초계기와 더불어 하늘에서 우리의 영해를 철저히 감시하는 매서운 눈은 물론 매서운 발톱의 역할도 담당하는 만능일꾼이다.


 

최근 도입한 P-3CK 초계기

 


최근에 와서 대형 구축함이나 헬기모함 등에 탑재하여 사용하는 여타 해상작전용 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링스헬기가 경량인 점이 단점으로 종종 거론되기는 하지만 세계 여러나라 해군에서 주력 대잠헬기로 사용 중일 만큼 이들 링스헬기들은 이전에 사용하던 알류트 III 기종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성능을 보유하고 있고 안정성도 입증된 기종이다.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여주기를 기대한다


 

비록 이번에 사고가 발생하긴 하였지만 우리 해군이 보유한 링스헬기는 현재도 청해부대의 일원으로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되어 원양에서 여러차례 해적 퇴치 임무에 투입되는 등 우리의 영해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최선을 다하고있다.
조속히 사고원인이 규명되어 제반 후속조치가 이루어져 원래 대로 임무에 복귀하기를 바라며 지난 사고에서 실종된 대원들과 기체의 조속한 수색이 완료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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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천안함 희생자 가족협의회'는.. "아들을 군대에 보냈으면 나라의 아들이고, 해군의 아들들에게 가장 큰 것은 해군장" 이라며, 국회의사당과 서울광장에서의 장례식을 마다하였습니다.




천안함 희생장병 가족의 기도




천안함 희생자 가족들은, 한주호 준위의 또다른 희생을 보며 자신들의 실종된 자녀에 대한 구조와 수색 중단을 요청하였습니다.



故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을 찾은 희생장병의 가족





그들은.. 일부 여론의 신속한 천안함 절단면 공개 주장에도, 선체 인양에 따를 수 있는 위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다소 시간이 지연됨에도 함미를 얕은 곳으로 옮기는 데에 동의하여 주었습니다.
 
또 그들은, 8명의 아들을 아직 보지 못하였는데도 '산화자'로 처리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이들에 대한 수색도 이젠 중단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생존장병을 위로하는 희생장병의 가족





천안함과 관련된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이라면 희생자 가족들의 모든 주장이 정부와 국민들에게 받아들여 질 수도 있을텐데, 그들은 자식 잃은 부모의 애끓는 성정을 누르고 단호히 이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여러차례 중요한 결단들을 내려주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들도 국가와 군에 대한 원망을 금할 길 없었지만, 이제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애써 참으며 천안함 함장의 입장까지도 이해하려 애쓰는 등 불필요한 국론의 분열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희생장병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모두는 천안함 희생장병들을 사랑하지만.. 지금은 이 나라에 남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들을 생각해 볼 때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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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외교학 전공 후 행시 국제통상직을 거친 제가 국방부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모두 같았습니다.


"국방부엘 가? 거기가 외교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다들 이렇게 반응하시더라고요...그래도, 저는 단호히 국방부를 선택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과연 국방부에서 외교업무를 할 수가 있었을까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국방부 동북아정책과 분들

 


여기 이 분들!  이 분들은 바로 동북아 국가들과의 대한민국 군사외교 업무를 일사천리로 처리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보시다시피, 저희 국방인들은 '지성'에 항상 '미모'를 겸비한다고나 할까요? ^^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바로 접니다.)


동북아정책과 사무실

 


여기는, 제가 위 사진속의 분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는 "국방부 국제정책관실 동북아정책과" 랍니다. 규모가 아담하죠?
하지만, 사무실 크기가 바로 업무의 크기를 대변하는 것은 절대 아니죠.
저희 사무실 안에 몇 시간만 앉아계셔 보십시오. 유창한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각종 동남아 언어들의 선율을 동시에 감상하실 수가 있습니다. 동남아 각 국민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고나 할까요? (제가 수습사무관으로 이곳에 오던 날, 사무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능숙한 외국어 음성에 가슴설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리고, 제가 근무하는 여기 국제정책관실의 업무는 크게 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위급 인사교류', 또 하나는 '각국간 국방정책실무회의 개최'  업무랍니다.

 

한-일 합참의장 의장대 사열



먼저, '고위급 인사교류'는 국가 친선의 상징이자 장기간 해결되지 못했던 난제들을 극적으로 매듭짓게되는 계기가 되곤하죠. 외교, 실리 양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년 5월에는 '한-중 국방장관회담'이 개최된 바 있는데요, '95년 양국간 국방교류 시작 이래 10년 만에 개최된 이 회담에서는,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걸맞게 '한-중 국방교류협력MOU' 체결이 검토되었고 '실장급 국방전략대화체 개설' 검토에도 합의를 이룬 바 있답니다.

*****************'한-중 국방교류협력 MOU'에 대해 더 알고싶으시다면, Click!*****************



둘째로, '국방정책실무회의'란 각 국간 국방교류협력 계획과 증진방안 등을 실무차원에서 논의하는 자리인데요, 교류협력이 활성화된 국가 간에는 보통 연 1회 '국방정책실무회의'를 개최한답니다.
제가 담당하는 중국과는 '04년부터 매년 1회 실무회의를 개최하며, 일본과는 '94년부터, 러시아와는 '97년부터 연 1회 이상의 실무회의를 개최하고 있지요. 

각 국간 실무회의를 정례화하는 것은, 해당 국가간 군사교류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필수적인 사안이므로 저희 국제정책관실에서도 실무급 회의의 정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 모습




위의 사진은, 연 1회 개최하는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의 모습입니다. 저 뒤에 태극기와 중국의 오성홍기가 보이시죠? '국방정책실무회의'는 고위급 회담보다는 외교적 성격이 다소 약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각 국 국방정책 실무자 간에는 현안에 대해 보다 집중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리라 하겠습니다. '09년 12월에 개최되었던 '09년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에서는 앞서 장관회담에서 거론되었던 '국방교류협력MOU 체결'과 '국방전략대화체 개설'이 주된 의제가 되었는데요, 조속한 시일 내에 후속조치를 완료하기로 의견을 같이하였던 뜻깊은 자리였답니다.  

그런데.. 2박 3일의 일정 내내 이렇게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만 나웠다면, 각국 실무자들도 사람인지라 협력도 지겨워질 수가 있었겠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09년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시 2함대사령부 선상에서




그래서 요렇게! 부대 교류 차원에서 회의 개최국의 함정 방문 등도 실시하였지요.(앗! 저희 과장님과 제 사수이신 이 대령님께서도 출연하셨네요~)

때는 한겨울, 우리 해군함정 선상은 너무도 추웠습니다(오들오들~~). 그런데, 중국대표단은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우리 함정의 구조를 꼼꼼이 살피면서 계속하여 질문을 하시느라 아예 배에서 내려갈 생각을 않으시더군요...  이런 모습은, 중국의 자국 해군력 증강에 대한 열의를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중국해군 특전대원의 전술동작




또한, 중국 측은 대청해전 당시 한국 해군의 배치와 사용 전력 등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면서, 한국 측이 정보공개에 소극적인 것은 양국간 교류정신에 위배된다고 잔뜩 불만을 토로하시더라고요.  순간, 모두가 당황한 속에서 우리 2함대사령관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죠. "우리는 민주국가이므로 모든 것은 언론에 공개된 그대로이다. 보도자료와 실제 교전상황 사이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라고. 단호한 우리측 답변에 중국측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 

군사외교도 외교이다보니, 상대국과의 '원만한 관계유지'가 관건이겠으나, 상대측이 잘못된 언동을 보인다면 어느정도의 단호한  대처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절'과 '단호함'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과연 어떻게 적절히 구사할 것인지 늘상 고민하며 산답니다.

요즘 저희 과는, 동북아 각국이 개최하는 다양한 국제회의에의 참여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제회의에의 참석을 준비한다는 것은, 겉 보기엔 화려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 중요성 만큼이나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지요.

오늘도 대한민국 군사외교의 선봉에서 열심히 뛰고있는 우리 국방부 국제정책관실, 여러분들도 많이많이 격려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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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중요한 것

 

1950년 9월 25일, 마산을 박차고 나온 미 제25사단은 낙동강방어선을 건너 호남지방을 향해 반격을 개시하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진입한 곳은 하동이었는데 전투부대를 바로 뒤 쫓아 전장정리조(戰場整理組)가 함께 투입되었다.

전장정리조가 하동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지난 7월 28일 하동전투에서 북한군의 함정에 빠져 괴멸된 미 제29연대 3대대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이들은 당시 전투에서 전사하여 방치된 미군 시신 313구를 두 달 만에 발견하여 수습할 수 있었다.

 

전장정리조에 의해 전사자 뿐 아니라 학살된 시신도 수습되었다(학살된 미군포로)

 

 

1951년 3월 7일, 중공군의 제4차 공세를 막아낸 유엔군은 대대적인 반격에 돌입하였다. 중부전선을 담당하던 미 제9군단은 용문산-홍천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하였고 선봉은 미 해병1사단이 담당하였다.

 

그런데 미 제2사단에서 파견 나온 전장정리조가 옆에서 동행하였다. 이들의 임무는 지난 2월 중국군의 공세 당시에 국군 제8사단의 조기붕괴로 말미암아 횡성 계곡에서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은 미 제10군단 21지원대의 전사자와 장비를 수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12일 횡성 북방에서 250여구의 전사자와 각종 장비를 회수할 수 있었다.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여 함께 후퇴하는 모습(장진호전투 당시 미 해병 제1사단)

 

 

6.25전쟁 당시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전우의 시신을 수습하였던 위의 두 가지 사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사자의 유해를 반드시 발굴하고 수습한다는 미군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당시에 모든 분야에서 경험이 부족하였던 국군의 경우 이런 부분까지 세세히 신경을 쓰지 못하였던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이것은 우리에게 두고두고 커다란 교훈을 준다.

늦었지만 2000년대 들어 진행되는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상당히 다행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해자의 발굴에 유효기간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이지만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꾸준히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은 국민들에게 너무나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사고 발생원인과 별개로 당장 실종된 46명의 승조원들의 안위는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너무나 암울한 상황이지만 국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이들이 살아서 돌아와 주기를 학수고대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신들이 발견되면서부터는 점차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여 주기를 바라는 형국이 되었다.

 

 

故 남기훈 상사의 귀환모습



함의 인양과 탑재되었던 무기의 회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실종자 확인이다. 그 어떤 이유도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기적적으로 살아서 생환한다면 가장 좋겠으나 최악의 경우 시신을 온전히 수습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더구나 국가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다 불의의 사고로 산화한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결코 전시인지 평시인지를 구분지어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안타깝지만 이제는 실종자 확인 및 수습에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6.25전쟁 당시 미군이 빗발치는 포탄을 뚫고 적진을 함락시키자마자 제일 먼저 하였던 일이 지난 전투에서 미처 수습하지 못하였던 전사자의 시신을 확인하고 처리하는 일이었다.

이번 천안함사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함미가 인양되었기 때문에 실종자 확인 및 수습에 보다 박차를 가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고귀한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한명의 생사 확인이 이루어 질 때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여 주기를 기대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국제적인 협조와 민간의 대대적인 참여 속에 이루어질 사고조사는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사항이므로 승조원의 생사확인보다 우선순위가 앞설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국가를 위해 희생당한 이들에 대하여 살아있는 이들이 취하여야 할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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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UDT 참전사
 
 
작금의 천안함 구난활동과 관련하여 그 역할이 자주 거론되는 부대가 UDT (Underwater Demolition Team) / SEAL(Sea Air Land) 이다.
이들 부대의 대원들은 최악의 조건에서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특화된 정예요원들이다보니 이번 천안함 사태처럼 위험한 해상수색, 구난임무에 투입이 되고는 한다.

 

구조,구난활동에 투입 중인 UDT/SEAL

 


하지만 해군 특수전여단 소속임에서 알 수 있듯이 UDT/SEAL은 수중파괴임무와 육해공 전천후 타격임무, 폭발물처리임무, 해상대테러에 특화된 전투부대로 대한민국 최강의 부대라고 자타가 공인할 정도다.
이 부대는 작전자체가 비밀이다 보니 공식적으로 국군 UDT/SEAL의 실전 활약상을 알기는 힘들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상 재난사고의 구조, 구난에서만 대중이 그들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점은 외국의 특수부대도 마찬가지다.

 

UDT/SEAL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특수부대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UDT의 실전 투입기록은 있다. 6.25전쟁 기간 중 미 해군 UDT (미국 UDT는 1983년 해체되어 현재 SEAL이 임무를 대신한다)의 괄목할 만한 작전이 한반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미국 UDT는 제2차 대전 당시에 상륙전이 빈번하게 벌어지자 통로개척 임무 등을 위해 1942년 8월에 창설되었고 이후 타라와전투 같은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6.25전쟁 발발 초기부터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처음부터 상륙전을 구상하자 한반도에 즉시 투입이 되었다.
6.25전사를 살펴보면 총 4회에 걸쳐 미군 UDT는 의미 있는 작전을 수행하였다.

 

6.25전쟁에 투입되었던 미 해군 UDT부대

 

 
1.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인천 앞바다는 갯벌이 많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수로가 극히 좁은 해역이다.
따라서 상륙함대가 진입할 수로일대에 기뢰 부설 여부 등을 사전에 확인하고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이 작전에 미 본토에서 긴급 전개한 10명의 UDT 3팀이 투입되어 맡은 바 임무를 다하였다.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UDT 3팀



2. 대천특공작전 1950년 9월 22일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적 후방 정찰을 위해 충남 대천에 8명의 요원으로 구성된 UDT대원들이 심야에 5대의 고무보트를 나눠 타고 상륙하여 적진을 성공적으로 정찰하였다.

 

고무보트를 이용하여 해안가로 침투하는 모습(원산상륙작전 당시)


 
 
3. 원산상륙작전 1950년 10월
미 제10군단이 원산에 상륙하려 하였지만 소련의 원조로 북한이 설치한 3000여발의 기뢰가 원산만을 가득 채워 동해바다 위에 묶여 있게 되자, 이를 제거하기 위해 UDT가 투입되었다.
급거 투입된 UDT대원들은 현지 주민의 협조를 받아 기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여 이들을 성공적으로 제거하면서 2주 만에 미 제10군단은 상륙할 수 있었다.

 

원산 앞바다에서 기뢰에 의해 폭발당하는 한국해군 YMS-516 소해정


 
 
4. 흥남철수작전 1950년 12월
원래 흥남은 북진당시 유엔군이 거점으로 삼았던 항구는 아니었지만 중공군이 원산을 조기 함락시키자 함경도 일대에 고립된 10만여 명의 아군과 수많은 장비들이 철수할 항구로 선택되어졌다.
따라서 사전에 탈출로로 사용될 수로에 대한 안전 확보가 필요하였고 이를 위해 미군 UDT가 투입되었다.
이것은 UDT가 공식적으로 6.25전쟁에 투입된 마지막 작전이었다.

 

작전 투입전 장비를 입는 모습(원산상륙작전 당시)


 
미군 UDT는 휴전 후 1954년 철수하였고 임무를 대신하기 위해 장인표 대위 외 해군장교 7명이 미국 해군 UDT 과정을 수료한 후 귀국하여 1955년 11월 25일 1기 교육생 25명을 훈련시켜서 한국 해군 UDT를 창설했다.
당시 1기 교육생도로 300여 명이 지원했고 그중 25명이 수료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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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여년만에 발생한 서해교전인 이번 '대청해전'을 돌아보며, 지속적인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우리 군이 해야할 일을 정책블로그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1 연평해전이 발생한지 10여년, 제2 연평해전이 발생한지 7년만인 09년 11월 10일, 남과 북은 또다시 서해북방한계선(NLL) 대청도 해상에서 맞다뜨렸다.

                                                                                          





당시 NLL 주변에는 중국어선 몇척과 너울을 동반한 2.5m 파도가 칠뿐 평소와 별다른 특이동향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 경비정(등산곶 383호)1척이 이날 오전 11시 27분쯤 서해 대청도 동방 11.3km 지점의 NLL 해상을 2.2km 가로질러 침범하였다.





우리 군은 침착히 두차례의 '북상하라'라는 경고통신(국제상선공통 핫라인)에 이어 세차례의 '경고사격'하겠다는 의사를 표했으나, 북한 경비정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NLL을 침범하였다.




11시 36분, 북한 경비정 전방 1km 해상에서 우리 고속정(참수리 325정)은 최초 경고사격 (20mm 발칸포로 4발) 하였다. 연이어 북한 경비정은 37분쯤 3km여 떨어져 있는 우리 군의 고속정 함교를 향해 25mm와 37mm 포로 추정되는 함포 50여발을 조준 사격해왔다.
*참고로 우리 고속정은 몇차례의 경고방송을 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NLL을 침범하는 북한 경비정의 1km 해상에 조준없이 경고사격하였으며, 북한 경비정은 NLL을 침범하던중 예고없이 우리 고속정의 함교로 함포 50여발을 조준사격한 것입니다.




즉각적으로 우리 군 또한 비상사태를 발령하여 북한 경비정 함포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포탄이 나옴과 동시에 40mm 함포와 20mm 발칸포로 대응사격을 가하였다. 약 3분여간의 교전속에 수천발의 포탄이 북측 경비정 상단에 집중되었다. 이윽고 북한 경비정은 함포와 기관포 파괴로 교전이 불가능해지자 반파된 상태에서 뱃머리를 북쪽으로 틀게 되었다. 이로써 2009년 대청해전이 종료되었다.



사실 우리측이 인명 및 장비에 아무런 피해없이 교전을 끝낸 것에는 지난 1, 2차 연평해전에서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교훈삼아 '04년도에 개정된 해군 교전규칙' 기여가 컸다고 군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제공  블루페이퍼

제 1,2차 연평해전 당시에는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복잡하게 되어 있던 교전규칙을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단순화 하였고, 군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 또한 강화하였다. 또한 우리 고속정 좌우현에는 삼각형 모양의 철판을 덧대는 등 함정의 격벽을 보강해 외부갑판에서의 전투 안전성을 한단계 더 높였다.

실질적인 교전은 이쯤에서 종료되었으나, 서해 NLL 해상은 교전이후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을 막기위해 최신예 한국형 구축함(KDX-Ⅱ)인 최영함이 전진 배치되면서 이미 작전수행중이던 같은급 구축함인 강감찬함과 같이 해상경계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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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은 이번 해전 승전보의 중심인 고속정인 세대교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87년에 취역한 이번 고속정의 퇴역에 대비해 최신예 유도탄고속함인 윤영하함을 NLL 해상에 전진 배치함으로써 3중, 4중의 방어체계를 구축하여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이번 대청해전의 유공자들에 대한 훈장 및 포장 수여식이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통해 거행되었다. 충무무공훈장에 참수리 325정장 김상훈 대위, 화랑무공훈장에 고속정 편대장 연제영 소령, 고승범 소령, 인헌무공훈장에 정장인 김성완 대위, 강동완 대위, 김상욱 대위에게 수여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연제영 소령은 고속정장으로 참여한 제1 연평해전에 이어 두번째 무공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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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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