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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23 2차 세계 대전 전쟁사 (독일 만슈타인 장군) -제 1 편-








2차 세계 대전 전쟁사 (독일 만슈타인 장군)
-제1편-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전격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전략가 바실 H.리델하트 경은 독일을 여러번 방문, 2차 세계 대전에서 싸웠던 독일 장군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책에 담았다.


독일군의 탄생에서 여러 전투를 거쳐 소멸되기까지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독일 장군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회고담과 평가와 의견을 기록한 것이다.


그가 인터뷰한 독일 장군 중에는 거물 룬드스테드 원수에서부터 동부전선에서 싸운 크라이스트 원수, 북 아프리카 사막전에서
영국군에게 포로가 되었던 토마 장군, 그리고 히틀러가 무리하게 전개했던 발지 전투의 독일군 사령관 만토이펠 대장도 있었다.


이 글의 주인공이 되는 만슈타인 장군은 인터뷰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가 전범으로 몰려 영국군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신임하던 구데리안 장군이 리델하트 경의 "간접 접근 이론"을
읽고 이에 감동을 받아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서 독일 군대를 기계화 했고, 전격 전략을 실행했었기 때문에 그가 그의 제자격인 독일 장군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도 전격전의 체험과 제언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The German general talks"라는 이 책은 1948년 최초로 발간되었는데 이후 19개국에 번역되어 출판되었을 정도로 2차 세계 대전 명 군사 저서의 하나다.



                                      바실 H,리델하트
기습과 기동에 중점을 두는 "간접 접근 이론"을 개발했다. 독일은 이 이론을 실전에 대입해서 전격전의 신화를 만들었다.


이 책의 존재는 이미 알았었고 리델하트의 전략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오랜 노력 끝에 이 책을 구해볼 수가 있었다.


책의 63 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다.
만슈타인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다.


“ 독일 장군 중에서 최고로 유능한 장군은 에
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일 것이다. 이 
 사실은 내가 인터뷰했던 대부분의 독일 장군들, 룬드스테드 장군에서 부터 아래 모든 장군들의 공통된 평가이기도 하다.“


리델하트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글을 이 책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자주 썼었다. 리델하트는 자주 만슈타인이 위대한 명장이었을뿐더러 부하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지휘관이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한 저명한 전쟁사가는 2차 세계 대전에서 명장이라고 타이틀을
붙여줄만한 장군들은 대부분 독일에서 배출되었다고 했었다.


미국의 패턴이나 영국의 몽고메리 등 다른 나라의 명장들도
있었지만 독일에서 배출된 명장들은 전쟁 중 타 국가들의 명장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많았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사를 지휘관 평가 위주로 분석하면서 읽어보면
단연코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슈타인 원수에 필적할만한 장군은 역시 독일
장군인 롬멜 원수나 소련의 쥬코프 원수 정도가 아닐까 한다.
[아이젠하우어 원수가 세계 최고의 명장으로 쥬코프를 지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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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슈타인을 격찬한 이 책에서 리델하트는
롬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냉혹한 평가를 했다.

지금 한국의 일부 밀리터리 블로거들 사이에는 롬멜이 원수의 그릇이
아니라 대대장이나 연대장급의 인물이라는 잘못된 평가 절하의 인식이 있는데, 이의 출발점 중에 리델하트의 평가가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롬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아주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후에
이 블로그에서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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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최고의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은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에 대해서 글을 써본다.


만슈타인[1887년 11월 24-1973년 6월9일]은 원래 만슈타인 가문의
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1887년 프러시아 군의 포병 장군이었던 프릿츠 에리히 폰 르윈스키의 열 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머니 헤렌 폰 스페링의 막내 여동생이자 이모인 헤트빅 폰 스펠링과 그의 남편으로 역시 귀족 출신 장군인 게오르그 폰 만슈타인
중장에게 바로 양자로 입양이 되었다.


그가 르윈스키라는 이름 대신 만슈타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내력이었다.


만슈타인의 양부모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기에 두 가족 사이에는
만슈타인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열 번째 아들은 만슈타인 가문에
양자로 보내기로 결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 무인 가족이었기에 그가 군인의 길을 가는 것은
숙명이었다.
그는 열 세 살 때부터 6년간 유년학교[Kadettenanstalt]에서 수학한 뒤 1906년 소위로 임관하였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실전을 겪으면서 중상을 입기도 했던 그는
종전이 될 때 대위였었다. 전후 대폭 축소된 독일군에 계속 남아서 근무했었던 그는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독일의 재군비를 서둘렀을 때 독일 참모 본부에 있었다.

그는 1935년 참모 본부의 작전 국장을 맡게 되었다. 그는 이 직에 있을 때 중요한 프로젝트 하나를 완성했다. 보병 지원 전문의 돌격포[sturmgeschutze-자주포] 개발을 제안해서 완성시킨 것이다.

자주포는 1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이 완성시켰지만 전차의 개념보다도 문자 그대로 자주 포병의 개념이 강했었다. 만슈타인은 이 자주포에 전차를 대신하는 장갑 돌격포의 새로운 개념을 부여해서 제안했었다.


                                          

                                        전쟁중 최대로 양산되었던 3호 돌격포


전차의 성능을 발휘하되 복잡한 포탑을 제거해서 생산 단가를 대폭 낮춘 이 돌격포 개념은 나중에 소련과 미국 등에서도 채택되었을 정도로 아주 성공적인 독일 무기 개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폴란드 침공 작전>

히틀러가 주도한 2차 세계 대전의 서곡인 폴란드 침공 시 1939년 8월 18일 8사단의 사단장의 직책을 마친 만슈타인은 남부 집단군 사령관 게르드 폰 룬드스테드의 참모장이 되었다.


 

                           독일 보전 합동의 공격 -전쟁 후반의 사진이다.


그는 유능한 작전참모 군테르 브루멘트릿과 함께 폴란드
침공 작전을 입안했었다.


만슈타인은 이 때부터 기갑 부대의 돌파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집단군이 가진 기갑 부대를 모두 발터 폰 레이케나우 장군의 10군에 집중해서 10군을 선봉으로 폴란드의 대군을 비즐라 강 서쪽에 포위할 돌파 작전을 입안했고 룬드스테드의 승인으로 이 작전 계획에 따른 폴란드 침공 작전이 1939년 9월 1일 감행되었다.


폴란드 남부의 대 포위 전략이 성공하여 남부의 폴란드 군은 완전 포위되었고 이들을 가두어 놓은 독일군은 거칠 것 없이
쾌속으로 전진했다.


1939년 9월 27일 폴란드는 항복하였다.
만슈타인은 폴란드를 잠재적인 큰 적인 소련을 상대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남겨 놓는 것이 상책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했었지만 전쟁광 히틀러에게는 통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폴란드에서 선보인 독일의 기계화 부대와 항공대의 번개 같은 진격은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독일이 폴란드 전역에서의 거둔 대승리는 만슈타인이라는 천재가
입안을 주도했었던 '기갑부대의
집중 사용에 의한 돌파'라는 혁명적인 전략 개념이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차라는 것은 포병과 같은 보병의 지원수단이었고
전차 부대의 집중 사용이라는 것은 아주 새로운 개념이었다. 리델하트가 제창하고 독일 구데리안이 추종했었지만 이를 적극 채택해서 실전에서 시도해본 사람은 아직 없었다. 


만슈타인의 작전 입안으로 독일에 의해서 폴란드 전선에서 최초로 시도되었고, 대성공한 이 전략은 전격전[blitzkrieg]라는
이름으로 세계 전사에 최초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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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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