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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0 베를린 장벽은 인과응보 (1)

                    장벽 그리고 인과응보
 
 
요즘 민간인 거주지 인근에서 국경을 나누기 위해 설치된 장벽이라면 팔레스타인 지역을 고립시킬 목적으로 이스라엘이 설치한 거대한 장벽이 이슈화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런 장벽이라면 냉전시대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먼저 떠올리시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 됩니다. 특히 지난해 말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행사가 열렸고, 이 때문에 한동안 지나간 역사의 사실로 잊혀져가던 베를린 장벽이 새삼스럽게 부각되었습니다.

 
                    베를린 장벽 제거 후 또 하나의 분단의 상징이 된 팔레스타인 장벽
 

그러나 패전국으로 당연한 응징을 받아 국토가 분단되고 베를린에 장벽이 생기게 되었던 독일과 달리 순전히 타의에 의해 허리가 잘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동족상잔의 끔직한 전쟁까지 치른 우리에게 있어, 냉전시기에도 그나마 제한적인 통행이 가능했던 베를린 장벽은 그리 커다란 장벽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지금은 작은 흔적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어느덧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기념식
 

베를린 장벽이 있었을 당시 가장 많이 고초를 겪은 것은 물론 보통의 독일 국민들이었고 어쩌면 이것은 그들이 감수하여야 할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20세기말 장벽으로 고통 받았던 독일이 베를린처럼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한나라의 국경을 장벽으로 봉쇄하여 약소국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가해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실, 20세기 들어 독일에게 고초를 겪은 약소국이 한둘도 아니기는 합니다만)
 
                           독일은 약소국을 장벽에 가두었던 원죄가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프랑스 침공을 위해 중립국 벨기에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런데 계획과 달리 전선이 고착화, 장기화되자 독일은 전선의 배후에 위치하게 된 벨기에를 손쉽게 통제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즉, 해상을 통한 영국의 상륙전이나 당시 중립국이었던 이웃의 네덜란드를 통한 벨기에와 연합국과의 연결을 막기 위하여 내렸던 결론이 벨기에의 국경을 고압선으로 완전히 봉쇄하여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국경 사이에 설치된 고압선 지도
 

이미 북쪽은 바다, 남쪽은 독일, 서쪽은 전선으로 가로막혀 있던 벨기에에게 동쪽의 중립국 네덜란드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는데, 독일은 이곳 국경 200킬로미터에 2,000볼트의 고압선을 설치하여 벨기에를 완전히 고립시켜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약소국 국민들을 상대로 자행된 욕심 많은 강대국의 천인공노할 만행이었습니다.

 
                             좌측이 중립국 네덜란드 우측이 독일 점령 벨기에
 

독일이 표면적으로 군사적인 명분을 내세웠으나 이로 인하여 독일의 점령지로 추락한 벨기에 국민들은 생필품의 대외 보급로가 봉쇄 (지금도 벨기에의 대외무역은 앤트워프뿐만 아니라 이웃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을 이용하여 많이 이뤄집니다) 되어 크나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배고픔에 못 이겨 피난 가려던 수많은 벨기에 국민들이 이 장벽에서 희생이 됩니다.

 
                                         고압선에 희생된 벨기에 국민
 

이런 봉쇄는 독일이 항복한 1918년까지 계속되었고 그로 인한 고통은 약소국 국민들의 몫이었습니다. 그에 비한다면 20세기 후반에 있었던 베를린 시민들의 고통은 그리 크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자고로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을 받는 것은 인과응보이고 동정을 받기 힘든 행위입니다. 남을 괴롭히고 죄짓고 살다가는 후손들이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역사의 교훈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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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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