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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7 마지노선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 (5)
  2. 2009.09.28 나가 싸우란 말이야! 제발 [2]

                          마지노선?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인용되고 표현인데 많이 접하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국제유가가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배럴당 XX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여야는 올해 말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원내 통과를 완료하기로 합의 하였습니다.
 
흔히 위기감을 나타내기 위해 마지노선 (Maginot Line) 이 인용되는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최후의 한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양보하기 힘든, 또는 최후의 보루로 반드시 고수하여야 할 목표임을 의미하며 또한 그 만큼 돌파하기 힘든 든든한 방어막이라는 뜻도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막아야 할 위기의 한계점으로 마지노선이라는 말이 종종 인용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 됩니다.  戰史에 있어 마지노선은 최후의 보루가 아닌 적을 가장 앞에서 방어하는 최전선의 방어물이었습니다.  또한 뚫릴 수 없다는, 또는 뚫려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대명사와 달리 실제로는 나라를 구하지 못하고 너무나 허무하게 종말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노선은 허무하게 종말을 맞이하였습니다.
                                     (독일군에게 항복한 마지노선의 프랑스군)

 
참호를 깊게 파고 일진일퇴 피 말리는 대치 끝에 제1차 대전에서 결국 승리를 거머쥔 프랑스는 방어가 최고라는 생각이 뇌리에 각인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참호를 더욱 깊게 파고 이를 더욱 단단한 보호물로 막아버리면 어떠한 적의 공격도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된다는 믿음은 맹신이 되어버렸고 전후 많은 논란 끝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 독불국경에 마지노 요새선을 건설하였습니다.

 
                   참호전의 끔찍했던 기억은 전후 거대한 요새선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

 
장차전에서는 고정화된 요새가 그리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프랑스 젊은이의 40퍼센트가 사상 당하였을 만큼 제1차 대전의 상처가 워낙 깊어 거금을 들여 방어막은 근대과학의 정수를 모아 구축 될 수 있었습니다. 1927년부터 1930년까지 약 200억 프랑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어갔는데 이 때문에 공군력 확충 등에 실패하였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독불국경을 따라 어마어마한 요새선이 만들어졌습니다.

 
건설은 베르덩 전투에서 부상까지 당한 당시 육군장관 마지노 (Andre Maginot) 의 주도로 스위스부터 룩셈부르크에 이르는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750킬로미터를 따라 건설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장대한 요새선의 이름이 명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노라는 이름은 어떠한 외침으로부터도 안전하게 프랑스를 보호할 수호천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국민들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프랑스국민들은 마지노선이 그들을 지켜줄 것으로 맹신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대한 군사 건축물의 결정체가 한심한 콘크리트임이 판명 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1940년 독일침공군은 이곳을 우회하여 연합군을 던커크해변에 고립시켜 버리면서 전쟁을 순식간 끝내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요새에 안전하게 틀어 박혀 있던 수십만의 프랑스군은 뒤로 돌아 나타난 독일에게 얌전히 항복하는 것으로 임무를 끝냈습니다.

 
                  하지만 배후를 돌파 당한 마지노선은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악몽 같은 참호전이 재발되더라도 완벽하게 자국의 병사들을 보호 할 수 있다면 최종 승자가 된다는 고루한 교리에 집착하여 나타난 결과였고 이 때문에 마지노선은 전사에 지상 최대의 삽질로 표기되었습니다. 물론 마지노선 자체가 뚫린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이를 회피하여  승부수를 띄운 독일의 전략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1944년 프랑스를 회복한 미군이 마지노선을 바라보는 모습

                   가장 중요할 때 하나도 쓸모없던 공룡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지요?

 
때문에 마지노선은 굳건한 방어막이나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말로는 부적합 합니다.  결론적으로 나라를 구하지 못한 방어막은 결코 최후의 보루를 의미하는 중요한 의미로 쓰여서는 곤란합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마지노선은 무용지물이나 미래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고 현실에만 안주하려는 단순한 생각이 낳은 한심한 결과의 대명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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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5

쑥대밭이 된 약소국

독일은 계획대로 벨기에를 돌파하여 노도와 같이 북부 프랑스로 쇄도하여 들어갔으나,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필히 우익을 강화시켜라"라는 유언을 남긴 슐리펜(Alfred Graf von Schlieffen)의 의도와 달리 병력을 우익에 집중하지 못한 당시 독일 육군 참모총장 小몰트케(Helmuth von Moltke)의 실책으로 마른전투(Battle of Marne)에서 독일군의 진격이 멈추게 되고 이후 종전까지 무시무시한 참호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마른에서 프랑스는 독일의 진격을 극적으로 막아내었고
                                 이후 서부전선은 참호전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이후 지옥으로 변한 참호전은 후방에 앉아있는 지휘관들이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체로, 이전 전쟁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엄청난 살상무기로 무장한 상대편 진지로 나폴레옹 전잰당시처럼 무조건 병력을 돌격시켜 말 할 수 없는 인적피해를 야기한 그야말로 무식한 전쟁의 표본이 됩니다. 때문에 이런 결과 참호로 연결된 전선부근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됩니다.


               혼히 No Man's Land 라고 표현할 만큼 전선은 살아있는 지옥이었습니다.


전쟁 참여국의 국토가 유린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 수 있겠지만 고착된 전선 한 가운데 놓여있던 벨기에는 남의 나라 전쟁 때문에 국토가 박살(?)나게 됩니다. 전사에는 벨기에가 제1차 대전 때 연합국 편이라고 단순히 설명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중립을 짓밟은 독일의 침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차선책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강대국 간의 전쟁으로 벨기에 영토는 풍비박산 났습니다.


특히, 그 악명 높은 독가스가 최초로 사용 된 곳도 벨기에의 이프르(Ypres)입니다. 1915년 4월말에 독일은 병력 이동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약 5천 개의 가스통을 열어 연합군측으로 염소가스를 흘려보냈고, 예상치 못한 독가스에 연합군은 1만 5천명이 중독되고 5천명이 사망하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덩달아 벨기에 또한 본의 아닌 가스피해를 입게 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악명 높은 독가스도 벨기에 영토에서 처음 살포됩니다.


1차대전 서부전선에서는 누가 누가 많이 죽나하고 경쟁을 벌인 많은 무서운 싸움이 있었지만 1917년 제3차 이프르 전투의 일부였던 파스샹달(Passchendaele)전투는 연합군과 독일군 양측이 성과 없이 참호와 진흙탕 속에서 고귀한 인명을 무자비하게 희생한 서부 전선에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으로 남게 된 전투로 기록되며 영불해협에 자리 잡은 벨기에의 아름다운 도시는 지동에서 없어진 것과 같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잠시 동안의 평화


1918년 전쟁이 끝났을 때 서부전선기준으로 패전국 독일은 자국 영토에는 폭탄한방 맞지 않았지만, 막상 승전국 벨기에는 그 참상이 얼마 심하였는지 국제올림픽 위원회(IOC)에서 평화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1차대전 후 최초의 올림픽을 1920년 벨기에의 앤트워프(Antwerp)에서 개최하도록 조치합니다. 당시 IOC의 생각으로는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평화를 어필하는 대안이 없었다고 합니다.


                                          1920년 제7회 앤트워프 올림픽 개막식


제1차 대전의 교훈으로 독일은 고착된 전선을 돌파하는 전격전의 교리를 가열 차게 연구하고 호된 경험을 얻은 프랑스는 공격자가 때리다 때리다 지쳐 쓰러 질만한 완벽한 요새를 꿈꾸게 됩니다. 1927년에 착수하여 10년 뒤인 1936년에 완성한 바로 마지노선(Maginot Line)입니다. 마지노선은 총연장이 약 750km로서, 북서부 벨기에 국경에서 남동부 스위스의 국경까지 이르고, 중심부는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을 따라 이어진 영구 요새선이었습니다.


                                              프랑스 방어 전략의 상징인 마지노선


당시 벨기에는 제1차 대전의 결과로 프랑스와 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고, 프랑스 마지노선의 축성에 자극받아 벨기에-독일 국경에 1932년부터 1935년 사이에 에방에말 요새(Fort Eben-Emae)를 구축 합니다. 당시에는 마지노선보다 더 견고하고 강력한 요새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요새는 다시는 자국의 영토가 강대국의 싸움에 유린되지 않을 거라는 벨기에 국민의 믿음을 대변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벨기에의 자부심인 에방에말 요새
                            마지노선보다 훌륭한 방벽으로 소문이 자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약소국 벨기에가 그들의 앞에 있던 독일의 위협만 대비ㅏ고 있었지만 위협은 또 다른 곳에서도 잠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우방이라 믿고 있던 프랑스도 만일 독일과의 전쟁이 재발한다면 벨기에를 전쟁터로 이용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무서운 사실을 벨기에는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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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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