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혹은 악연 [下]
 
 
집중 공격을 받아 인천 앞바다에서 격침당한 바랴그를 조사한 일본은 함의 상태가 의외로 양호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인양하여 수리하기로 결정하였다. 전리품이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 수리를 받은 바랴그는 오노(小野)로 이름이 바뀌어 일본 해군의 훈련선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약 10년 후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에 바랴그는 돈을 받고 러시아에 되팔려가는 운명이 되었는데, 이것은 사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전성기 당시의 바랴그
 

러시아가 이배에 대해 가지는 애착이 남달랐다고 할 지는 모르겠으나 격침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적에게 노획된 굴욕의 함을 돈을 주고 되샀던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1차대전 당시 러시아와 일본 모두 연합국이었고 러시아의 전황이 워낙 다급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작은 에피소드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이처럼 바랴그의 운명은 기구하였다. 하지만 바랴그의 이후 생애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인천 앞바다에 침몰한 바랴그
 

러시아 함대에 배속 된 바랴그는 발트해 인근에서 벌어진 해전에 투입되었으나 독일과의 전투 중 피격을 당하면서 수리를 위해 1917년 영국의 리버풀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러시아혁명이 발발하고 그 와중에 수리비를 내지 못할 처지가 되자 영국 해군이 바랴그를 나포해 버렸다. 하지만 선령이 너무 오래되어 사용가치가 없자 전후인 1923년 독일에 고철로 판매되었고 결국 해체되어 용광로 속으로 사라졌다.

 

                                  영국에 있는 바랴그 기념비
 

역사의 격랑 속에 초라하게 생을 마감하였지만 한때 위기의 순간에도 불굴의 용기를 뽐냈던 바랴그라는 이름에 대한 향수를 잊을 수 없었던 러시아인들은 1989년 소련 최초의 본격 항공모함이라 할 수 있는 쿠즈네초프(Kuznetsov) 급 2번 함의 이름을 바랴그로 명명하고 건조를 진행하였다. 30여기의 고성능 Su-33 함재기를 운용 할 수 있는 쿠즈네초프 급 항모는 현재 미국의 항모를 제외 한다면 최강으로 손색없는 야심작이다.

 

                              건조중단 당시의 항공모함 바랴그
 

그런데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막대한 건조비용을 감당 할 수 없었던 러시아는 70%의 공정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제작을 포기하였고 선명 또한 동시에 취소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용도변경이나 매각협상 끝에 비운의 항공모함은 2001년 중국에 팔렸는데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도착한 곳이 공교롭게도 100년 전 요동반도의 지배자로 군림하던 제정러시아 해군의 모항이었던 따롄이었다.  즉 100여 년 전 바랴그가 활동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따롄의 조선소에서 개조작업 중인 바랴그
 

건조가 취소되면서 이름이 공중에 떠버린 바랴그는 한동안 사라진 이름이 되었다. 그러다가 구 소련의 해체 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함대 분리에 관한 협정을 맺으면서 최강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 슬라바 급 순양함들 중 하나인 체르포나(Chervona)를 러시아 해군이 인계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이 바랴그로 명명되었다. 최강의 함에 또다시 바랴그라는 이름을 승계한 것을 보면 러시아 해군이 바랴그라는 함명에 대해 갖는 애정이 유별난 것 같다.
 


                             인천항을 방문한 미사일 순양함 바랴그
 

지난 2004년 2월 바랴그 함을 포함한 러시아 함대가 인천항을 방문하였던 적이 있었는데 러일전쟁 100주년을 맞아 당시 인천 앞바다에서 산화한 바랴그와 까례에츠의 전몰장병들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바랴그는 우리에게도 상당히 인연이 있는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힘이 없어 우리 땅과 바다가 외세의 각축장이 되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는 유쾌한 기억이라 할 수는 없다.

 

                  2011년 2월에 속초함에서 벌어진 러시아 해군 추모행사
 

알아 본 것처럼 러시아 해군에게 바랴그는 상당히 곡절이 많았던 함명 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우리 역사에도 자국을 남겼고 중국과 일본에게도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더구나 한 때 바랴그라는 이름으로 건조되던 항공모함이 중국의 따롄으로 가서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취역할 준비를 마쳤다는 것도 현재 우리의 안보환경과 연관 지어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100년 전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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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혹은 악연 [ 上 ]
 

 

 
바다에서 고구려 본토로 향하는 길목을 가장 바깥에서 방어하던 비사성(卑沙城)이 위치한 따롄(大連)은 현제 중국의 요동(遼東)반도 끝에 위치한 항구 도시다. 이곳을 봉쇄하거나 점령하면 자연스럽게 발해만(渤海湾)을 장악하고 더불어 중국의 심장부인 베이징을 향해서 비수를 세울 수 있으므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라 할 수 있다.
 

                                          지리적 요충지인 따롄
 

현재 한국 기업의 대 중국 투자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곳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둥(山東)반도인데 반하여 일본은 따롄을 중심으로 하는 요동반도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거의 향수를 못 잊어 하기 때문인데, 옛 이름이 뤼순(旅順)인 이 도시에서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고 순국하였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따롄은 가장 먼저 일본이 지배하였던 중국의 영토였다.

 

                                          최근 따롄의 모습
 

1895년에 있었던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곳을 지배할 수 있었으나 3국 간섭으로 러시아에게 권리를 빼앗겼다. 이후 절치부심 끝에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곳을 점령하여 중국과 만주로 향하는 요충지로 발전시켰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따롄의 구도심은 군데군데 러시아, 일본 식 건물들이 상존하고 있어 그 고단했던 역사를 얼추 엿볼 수 있다.

 

                              20세기 초에 촬영된 뤼순항의 모습
 

최근 이 도시에 있는 조선소에서 수리 중인 한 선박에 관한 소식이 외신을 통해 타전되었다. 지난 2001년 러시아 국내사정으로 건조가 중단된 군함이 해상 호텔 용도로 중국에 팔려왔는데, 그동안 개조작업을 거쳐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조만간 취역할 예정이고 함명이 스랑(施琅)으로 정해졌다는 내용이었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내용이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조만간 취역할 예정으로 보도된 중국의 항공모함
 

그런데 구 소련에서 70%의 공정 상태에서 건조를 중단하였을 당시에 붙여졌던 이 함의 이름이 바랴그(Varyag-Viking이란 뜻)였는데, 현재 이 함명은 슬라바(Slava)급 순양함 3번 함의 이름으로 승계시켰을 만큼 러시아 해군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랴그가 따롄은 물론 이곳과 뱃길이 연결된 인천과도 상당히 인연이 많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슬라바 급 미사일 순양함 바랴그
 

한반도가 강대국의 전쟁터가 되려는 불길한 조짐이 보이자 대한제국은 1904년 1월 21일 국외중립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1월 27일 일본 함대가 뤼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함대를 급습하여 러일전쟁이 개시되었고 전쟁의 불똥은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2월 4일 개전을 선언한 일본은 한반도 지배권을 선점하기 위해 2월 8일 육군을 제물포(인천항)에 상륙시켜 서울로 진격시켰던 것이었다.

 

                          러일전쟁 당시 인천(제물포)에 상륙하는 일본군
 

일본의 뤼순항 급습으로 3척의 군함이 침몰당하는 피해를 입는 와중에 러시아 해군의 순향함 두 척이 극적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인천 앞바다에서 14척으로 구성 된 일본함대에게 포위당하였다. 이때 러시아 해군은 항복하지 않고 저항을 선택하여 함포사격으로 일본 순양함 2척을 불사르는 용기를 보였지만 사방에서 날아오는 포격에 타격을 입고 침몰 당하였다.

 

                                 출동하는 바랴그(우)와 까례예츠
 

이 때 인천 앞 바다에서 중과부적의 상태임에도 굴하지 않고 전투를 펼쳐 장렬하게 최후를 맞은 2척의 러시아 순양함 중 한 척의 이름이 바랴그였다. 이 전투에서 구조되어 러시아로 송환 된 생존 승무원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는데 사실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주변 강대국들이 벌인 전쟁이었으므로 바랴그와 인천의 인연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후 침몰 하였던 바랴그의 운명이 이상하게 진행 되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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