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지 전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31 야구를 모르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2. 2009.10.07 나가 싸우란 말이야! 제발 [끝]






야구는 몇 회까지 하지 ?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과 WBC대회의 선전이후 야구의 인기는 폭발적이라고 해도 가히 틀린 표현이 아닌 듯하다. 경기를 보려고 수많은 관객들이 야구장을 찾는데, 예전과 달리 가족단위 관람객과 여성들이 많아진 것에서도 그러한 변화를 알 수 있다. 또한 동네 주변 놀이터에서 배트를 휘두르거나 공을 던지고 받는 아이들이 늘어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 야구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런데 운동으로써 야구는 넓은 경기장과 많은 장비 그리고 최소한의 적정 인원이 요구되므로 쉽게 즐기기에는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거기에다가 규칙이 세세할 정도로 너무 많아 초보자가 입문하기는 매우 힘든 종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문화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인기가 많지 않아 주로 미주나 극동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성행한다.
 

                                      사실 야구는 쉽게 즐기기에 제약 사항이 많다
 

즉, 특정 지역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스포츠이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상당히 생소한 종목이 바로 야구다. 물론 모든 운동 종목이 전 세계인 모두가 골고루 좋아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야구가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이지만 같은 뿌리인 것으로 여겨지는 크리켓이 뭐 하는 경기인지 아는 이들을 찾기는 가뭄에 콩 나듯 할 정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축구는 전 지구적인 스포츠라 할만하다.

 

                           아마도 축구만큼 전 지구인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도 드물듯하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어린이와 여성들까지 엄청나게 좋아할 정도로 인기를 끌지만 반대로 다른 한쪽에서 철저하게 무관심(무지)한 운동이라면 종종 군사적 수단으로 유사시에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간에 전쟁이 벌어져 피아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 야구와 관련된 내용이 유효적절하게 쓰인 경우를 전사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다음은 바로 그러했던 에피소드다.
 

                           야구가 전쟁 중 피아를 구분하는 수단으로 쓰였던 적이 있었다
 

1944년 12월, 수세에 몰리고 있던 독일은 비밀리에 전력을 집중하여 놓고 연합군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대공세를 개시하였다. 이른바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 또는 '발지 전투'라고도 불린 공세였는데 이때 미군 후방으로 침투하여 교란작전을 벌이기 위한 독일의 특작부대가 전선에 투입되었다. 무장 친위대의 스코르체니(Otto Skorzeny) 중령이 지휘하는 제150 기갑여단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특수전의 대가로 유명한 오토 스코르체니
 

그중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일부 대원들이 미 군복을 입고 노획한 9대의 미제 지프에 분승해 미군 진영에 투입되어 멀쩡한 길가에 지뢰 지대 표시하기, 표지판 돌리기, 거짓 정보 흘리기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미군 후방을 교란하였다. 비록 9개조로 이루어진 44명의 특작부대가 벌인 소규모의 작전이었지만 그 효과는 대단하여 유언비어에 속아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가 사령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정도였다.
 

                                 미군 전차로 위장한 제150기갑여단 소속의 5호 전차
 

이처럼 미군이 단시간 내에 급격히 혼란에 빠지게 되면서 발생한 가장 큰 문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자 미군들은 상식처럼 쉽게 알지만 독일군들이 모르는 질문을 검문에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미키 마우스의 여자 친구는?' 같은 질문이었는데 그중에는 미국의 국기라 할 수 있는 야구와 관련된 질문도 있었다.

 

                                               검문 방법에 야구가 동원되었다
 

'올해 월드시리즈 우승팀은?', '디트로이트 팀 이름은?' 같은 질문은 미군이라면 당연히 알겠지만 아무리 영어를 잘하더라도 독일군은 대답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사를 살펴보면 미군들이라고 모두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던 듯하다. 한 장성이 시카고 컵스(Cubs)가 아메리칸 리그에 속한다고 대답하여 억류된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 장군은 복귀한 후 야구팀 이름 외우느라고 고생하였을 것 같다.

 

             미 군복을 입고 후방 작전을 벌였기 때문에
스파이 죄로 즉결처분되는 독일 특작부대원
 

비록 언급한 내용은 오래전의 예이기는 하지만 유사시에 북한군 특작부대의 후방 침투가 충분히 예상되는 우리나라의 안보환경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참고할만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예를 들어 무승부, 일몰, 우천 경기가 아니면 야구는 9회까지 진행되는 것은 상식이지만 평생 야구를 접해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야구가 몇 회까지 하는지는 수학 문제만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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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참화를 겪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연합군은 베를린으로의 진격을 개시 합니다. 이때 독일은 영국 본토와 가까운 벨기에의 해변 도시에서 다량의 V1와 V2를 영국으로 발사하였고 연합국은 이를 격멸하고자 공습을 단행 합니다. 덕분에 벨기에의 곳곳은 연합국의 폭탄에 의하여 멍들게 됩니다. 하지만 벨기에의 영토가 아작 난 것은 제3제국의 패망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보여준 히틀러의 똥고집에 의해서입니다.


                 전쟁 말기에 영국을 공격하기 위한 독일의 비밀병기가 벨기에에서 발사됩니다.


결과적으로 독일의 패망을 6개월 앞당겼다는 발지 전투(Battle of Bulge)때문입니다. 제2차 대전 사가들로 부터는 독소전의 다른 전투에 비해서 과장되게 알려 졌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서부전선에서 독일과 연합군의 피 튀기는 마지막 대회전이 벌어진 곳은 바로 약소국 벨기에 영토입니다. 그래서 전쟁 말기에 마지막으로 쑥대밭이 됩니다.


                    벨기에 영토에서 벌어진 발지 전투는 서부전선 마지막 대회전이었습니다.


어쨌든 전쟁은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고 벨기에는 해방이 되나 침략도 해방도 자국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단지 침공로에 놓였다는 이유만으로 국토가 망가지고 국민은 피폐해 집니다. 그것도 30여 년 동안 두 번씩이나 같은 강대국 때문에 말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벨기에의 안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비추어


지난 우리역사를 돌아볼 때 벨기에가 겪었던 참화와 비슷했던 치욕의 역사가 계속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목적은 항상 우리를 침탈하는 것이었지만 침략자들의 대외적인 명분은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떠들곤 하였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일본의 명분은 정명가도였습니다.


몽고가 일본진출을 계획 하였을 때도 고려를 짓밟고 황폐화 시켰습니다. 전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세웠던 명분은 정명가도(征明假道)였습니다. 이런 교활한 명분하에 우리는 침략을 받았고 이를 구원한다며 명과 일본은 우리나라 국토를 황폐화시키며 백성을 수탈하며 신나게 피를 흘립니다.


                                청일전쟁 당시 평양전투에서 포획된 청군 포로


근대에 들어와 청과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제국주의 전쟁을 우리 땅에서 벌입니다. 이 역시 우리와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역시 황폐화 되는 것은 우리 국토이고, 수탈되는 덧은 우리 민중이었습니다. 우리가 침탈되었을 때의 공통점은 우리 스스로 지킬 힘이 없었을 때나 스스로 태평성대라고 생각하고 국방을 게을리 하였을 때라는 점입니다.
                           

현재의 벨기에와 우리

벨기에는 두 번의 전쟁 결과 어정쩡한 중립이 냉혹한 국제정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독일과 프랑스로 부터의 위험을 제거하고자, 2차 대전 후 오히려 냉전체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합니다. NATO 본부를 자국에 유치한 것만 보아도 벨기에의 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벨기에는 어설픈 중립을 포기하고 국제질서에 능동적으로 참여합니다.
                                       (벨기에에 있는 NATO  본부)


벨기에는 지난 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연속된 경험으로 독일이나 프랑스로 부터의 침공이 있을 때 자력방위가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소극적인 중립이 아닌 적극적인 동맹에 참여 하여 국가의 안보를 지키려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힘을 기르지 않고 국제 질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체
                                       말로만 평화를 지킬 수 는 없습니다.


우리가 벨기에만큼 인구나 국력이 작은 나라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의 국가들이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임을 깨닫고 말만 앞서는 어설픈 자주를 외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국제적 힘의 균형을 이루는 데 참여하여 그 일익을 담당하여야 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우리 스스로를 충분히 자위 할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침략을 당했을 때 "나가 싸우란 말이야! 제발"이라는 절박한 호소는 냉정한 국제 현실에 절대 통용 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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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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