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형 군대?] 

                                   제1탄.  현빈도 간다.



'시크릿00'의 차도남 현빈이 '해병대'를 지원하셨다는 사실, 모두들 알고 계시죠?    
"부디 선발되소~서!! ^^ "


                    '빤짝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현빈은 그렇게 해병대를 준비하였나보다.??? ^^



                           현빈은 '빤짝이'츄리닝, 해병대는 '빨간'추리닝! 우왕~닯았다.


우리의 네티즌님들, 현빈이 복무할 지도 모를 '해병대'.  과연 어떤 곳인지? 아니, 부대는 어떤지? (특히 여자분들.) 무척 궁금하실텐데요,  2011년 현빈이 입대할 군대는 '전투형 군대'!!!

아니, 전투형 군대는 뭥미??  ㅇㅇ;



          너무나 '귀여운 모습'이라 '해병대'가 아니라고요? 겨울이면 가뿐하게! 폭설피해 복구작전.


'전투형 군대'의 탄생은.. 작년, 아니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북한의 무자비한 도발'에 기인한다고 하겠습니다. 끊임 없이 '적화통일'을 꿈꾸는 북한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우리군은 고민,고민 하였드랬습니다.
'강한 대응'으로 감히 북한이 도발을 꿈꾸지 못하도록 해주자!  아자! 아자! 아자 ~~~~!!!
그래서, 국방부와 군은 2011년형 '전투형 군대' 준비하였습니다.
그럼, '전투형 군대'를 솜솜 뜯어 보실까요?


                                                                                                                                                                                    
     
    군 간부의 능력을 제고하고, 장병 정신교육과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등 현존하는 전력을 극대화하여 현장에서 
   반드시 싸워 이기는 '군대다운 군대'로 재탄생하겠다 것이지요. 

   기존의 전력구조를 원점에서 검토하고 재설계하여, 우리군을 네트워크중심전(NCW)에서 합동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군대로 만들겠다~ 이말씀!

    또, 이를 위한 많은 정책들을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20만 명 대 2만명???

남한 대 북한의 특수부대 병력이라지요? 끊임없이 적화통일 야욕을 불태우고 있는 '이글이글~~아이!!!  북한'. 북한의 특수전 전력은 세계 최대 규모로 평가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한 특수부대의 병력증강과 장비보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지금도 적화야욕에 불타고 있는 '이글아이' 김정일


다시, 현빈의 해병대 이야기!
직업군인 중심인 '특전사'와는 달리 '해병대'는 병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유사시 전략 타격부대 역할을 담당해야할 우리 군의 최정예 부대랍니다. (현빈님이 바로 이곳을 가고자 하신다는 거~ ! ) 또, 해병대는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에도 핵심역할을 담당하게 될 전략부대이기도 합니다.

'전투형 군대'! 더 알고 싶으시다고요?


            공군은 1월 11일부터 4일간 국산항공기 TA-50 최초전력화에 대비하여 부대 지휘관,참모 
            대상으로 시뮬레이터 처험을 실시하였습니다.



<제2탄>에 계속됩니다..       2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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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광장'에 오세요!



지금 이시각! 12월 25일부터(이미 시작되었죠?) '11년 1월 8일까지 서울광장에서는 '천안함, 연평도 그리고 북한'이라는 기획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시청역 서울광장에 기획사진전이 있네요~>



올 한해는 북한의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로 온 국민들이 분노와 참담함 속에 있었고, 국방부와 군도 어려움을 겪었던 한해였습니다.

그런데, 국내외 주요 언론들이 '지금은 정전 이후 최대 안보위기'라고 평가하고 있음에도 금년 12월중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는 우리 청소년들을 비롯한 사회전체에 심각한 안보불감증과 취약한 안보관이 만연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방부는 기획사진전을 마련하여, 국민들이 북한의 실체를 바로보고 굳건한 안보의식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직접 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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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위험했던 순간
[ ]



오래 동안
"한국전쟁 당시에 대한민국이 가장 위기였던 순간이 언제였는가?" 한다면 열이면 열 19507월부터 9월 사이에 벌어진 '낙동강방어선전투'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총 연장 200여 킬로미터의 낙동강방어선의 일각이라도 북한군에게 돌파되어 부산이 점령당한다면 그것으로 전쟁이 끝나는 상황이었으므로 상당한 위기의 순간이었음에는 틀림없다.


                                낙동강방어선전투를 가장 위기의 순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영천전투에서 파괴된 북한군 T-34)



부산에서 가장 가까웠던 마산은 불과
40여 킬로미터에 불과했고 가장 먼 대구도 100여 킬로미터 남짓하였다. 일단 지도상으로 한반도의 90퍼센트 이상을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국부와 인구의 90퍼센트를 북한이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와 같았다. 하지만 낙동강방어선은 시간을 얻기 위해 대신 공간을 내어주고 유엔군 스스로 선택한 방어선이었다.



                               지도상으로 본다면 우리가 가장 밀렸던 시기이기는 하다



개전이후 전력이 압도적이었던 북한군이 쉽게 우회 돌파할 수 있었을 만큼 전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금강방어선까지는 쉽게 무너져 내렸다
. 결국 아군은 증원군이 도착하여 전력의 균형을 맞추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따라서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하여 유엔군은 전략적 방어물이 불비한 호남지역을 과감히 포기하고 낙동강을 교두보 삼아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낙동강방어선은 군사전략상 아군이 선택한 상황이기도하다

                                        (부산항을 통해 속속 증원되는 유엔군)



그리고 예상대로 전선이 촘촘히 연결되자 북한군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고 서서히 전력을 증강시킨 아군은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 위기의 순간도 다가왔지만
, 사실 19508월이 경과하면서 북한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지도상으로 낙동강방어선이 위기임에는 맞지만 군사전략상으로는 적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었다는 의미다.



                             낙동강이 철옹성으로 변하자 아군은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인천에 상륙하는 미 해병1사단)



그렇다면
6.25전쟁 기간 중 대한민국 최대의 위기는 언제였을까? 지난 1990년대 들어 미국에서 비밀이 해제된 여러 가지 문서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실이 새로 밝혀졌는데 이중에는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과 달리 진정으로 위기였던 순간이 따로 있었다. 19511월초, 미국이 전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즉 대한민국을 포기하고 한반도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였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위기의 순간은 따로 있었다

                                (전쟁 초의 급박한 순간을 웅변하고 있는 폭파된 한강교)



1950
1025일 중공군이 등장한 후 계속된 두 차례의 공세에 놀라 유엔군은 황급히 38선 일대로 도망쳐 내려왔다. 지연전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중공군과의 접촉을 거부하고 일사천리로 달려왔을 만큼 유엔군은 처음 접해본 중공군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38선 일대에서도 적의 남진이 멈출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았고 미군 당국은 또 다시낙동강까지 물러날 의사를 표시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크게 실망시켰을 정도였다.


                                    중공군의 참전이후 전쟁의 양상은 급격해 바뀌었다

                                         (195114일 서울에 진입하는 중공군)



하지만 더 무서운 계획이 준비 중에 있었다
. 1222일 미군 합동참모본부는 "중공의 참전 의도가 북한회복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유엔군을 완전히 몰아내려는 것임이 명백해 진다면, 유엔군은 한반도를 포기하고 가능한 빨리 철수 한다"는 경악할만한 결정을 하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공군이 금강까지 진출하면 제주도에 약 이백 여만의 한국인을 소개시켜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유엔군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물러나간다는 계획이었다.


                                   한국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군할 계획이 수립되었다

                                             (흥남철수 당시 후퇴하는 유엔군)



더구나 이 계획은 동요를 우려해 한국정부에는 정식통보하지 않아 우리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 바로 그 상태에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었고 아군은 195114일 서울을 다시 내주고 110일경 평택-삼척을 잇는 37도선까지 후퇴하였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금강까지는 불과 50킬로미터였다. 여기서 조금만 더 후퇴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종말이었다. 바로 그때 작은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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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지지 않을 귀신잡는 용사들의 이야기
 
 

지난 1999년에 들어 북한이 서해에 새로운 군사분계선을 전격 선언하고 난 이후 연쇄적으로 벌인 일련의 군사도발로 인하여 NLL(북방한계선)을 서해 5도에 연한 군사분계선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동해바다에서의 군사분계선 또한 NLL이다. 다만 동해안의 NLL은 DMZ을 직선으로 바다 쪽으로 확장한 모양새이고 더불어 인근에 도서가 없기 때문에 서해 쪽과 지리적 여건이 다를 뿐이다.

 
                           보통 많이 간과하지만 NLL은 동해안의 군사분계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해에서 북한의 해상 도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지금보다 더 극렬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1967년 작전 도중 북한 해안포의 포격에 의해 침몰하여 39명이 전사한 당포함 피격사건이나 이듬해 벌어진 미군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USS PUEBLO) 피납사건 그리고 1969년에 31명 탑승원 전원이 사망한 미군 정찰기 EC-121 격추사건이 모두 동해의 NLL 또는 북한 영해 부근에서 발생하였다.

 
                                  천안함 사건 이전 최악의 격침 사고인 당포함 사건
 

다만 적극적으로 분쟁지역으로 각인시키고자하는 서해에 비해서 동해의 NLL은 북한이 트집을 잡을 만한 이슈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서해 5도 같이 북한이 껄끄러워 할 만한 전략요충지가 동해 NLL 인근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서해안의 석도나 초도보다 더 위협적인 위치에 있던 동해안의 여러 섬들을 휴전 직전까지 아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북한의 포격으로 파괴된 연평도 (사진-연합뉴스)
 

사실 해병대의 전략도서 확보작전은 서해보다 동해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신편 된 해병대 독립 제42중대는 1951년 2월 14일 초대 중대장 심희택(沈熙澤) 중위의 지휘 하에 원산 앞바다의 여도(麗島)를 거점으로 하여 주변의 신도(新島), 대도(大島), 모도(茅島), 사도(砂島), 황토도(黃土島) 등 총 6개 섬을 기습 점령하였다. 때문에 북한 측 동해안의 최대 요충지인 원산항은 전략적으로 봉쇄당한 입장이었다.

 
                           해병대는 여도를 비롯한 원산 앞바다의 주요 도서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사건은 해병대의 독립 제43중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함경남도 명천이 고향인 최청송(崔靑松) 중위가 지휘한 제43중대는 그해 8월 28일, 명천군 상가면 앞바다의 양도(洋島)를 기습 점령하였다.  양도는 3개 섬으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제도였지만 이곳의 점령은 북한입장에서 함경도 해안의 연해 길목을 차단당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여도에 상륙하는 해병대원의 모습
 

막강한 제해권을 발판으로 요충지 섬들을 해병대가 점령하자 북한은 이곳 섬들의 대안에 5배 이상의 병력을 증강시켜 배치하여야만 했고 그 만큼 최전선에 가해진 압박을 돌릴 수 있었다.  섬을 점거한 소수의 해병대가 육지로 진격할 수는 없었지만 북한 측의 공세에 수시로 격렬한 교전이 벌이지고는 하였다.  경우에 따라 일시적으로 외부와 연결이 단절된 해병대원들이 섬 안에 갇혀 산화하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였다.

 
                  동해 도서작전에서도 해병대는 불굴의 투혼을 보여 주었다 (사진-영화 스틸컷)
 

이처럼 동해안의 여도와 양도를 근거지로 하여 적의 배후를 양도부대로 개칭되었고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휴전 때까지 현 진지를 사수하였다.위협하고 적 보급차단 및 연안봉쇄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제42중대와 제43중대는 1952년 10월 여도부대와   비록 이들 부대의 도서작전은 전술적인 측면에서 중대규모가 펼친 작은 규모의 후방작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눈엣 가시처럼 적에게 끼친 전략적인 효과는 엄청나게 컸다.

 
만일 원산만과 양도 일대에 NLL이 설정 되었다면 적들이 느낄 곤혹감은 대단하였을 것이다. 영흥만의 경우는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양도는 현재 북한의 미사일 기지로 유명한 무수단리및 핵 실험 장소 부근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러한 전과가 그동안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휴전과 동시에 이들 요충지 섬들을 포기하고 철수하여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만일 이 섬들을 아직까지 우리가 장악하고 있고 이곳까지 NLL이 선포되었다면 과연 어떠하였을까?  서해 5도가 현재 대한민국 안보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쉽게 답이 나올만한 이슈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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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령도가 끝이 아니었다
 
 

'서해 최북단'
흔히 신문보도나 방송 매체에서 백령도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인데, 백령도가 군사분계선의 가장 서북쪽 끝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휴전이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군사분계선은 육상을 가로지르는 DMZ(비무장지대)와 바다의 경계선인 NLL(북방한계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철책으로 명확히 구분된 DMZ와 달리 NLL은 서해 5도의 북쪽 해상을 연결하는 바다 위의 가상 선이므로 육안으로 구별하기는 힘들다.
 

                   현재 서해 최북단인 백령도 (천연비행장으로도 유명한 백령도의 사곶 해변)
 

그런데 우리가 좀 더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면 서해 최북단의 섬은 백령도가 아닐 수도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당시에 유엔군사령관 클라크(Mark Clark)장군은 서해 5도의 북쪽인 북위 37도 35부와 북한의 점령지인 옹진반도 남단의 북위 38도 03부 사이의 중간 해역을 연결하여 NLL을 선포하면서 그 이북에 아군이 점령하고 있던 섬에서 철수하였기 때문이다.

 
                                         북한이 도발의 빌미로 삼고자하는 NLL
 

이때 해병대가 적의 도발을 물리치고 강고하게 점령하고 있던 동서해의 여러 섬들을 부득이 포기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서해의 석도(席島)와 초도(椒島)는 그야말로 요충지 중의 요충지였다. 석도와 초도는 평안남도와 황해도를 가로지르는 대동강하구의 광량만에 위치한 섬들인데, 북한 서해의 최대항구인 진남포와는 30킬로미터의 거리이고 평양까지도 70킬로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위치인 석도와 초도
 

최근 연평도에 MLRS가 배치된 것과 관련하여 서해 5도를 방어기지가 아닌 유사시에 적 후방을 타격하는 전략 거점으로 육성하면 북한이 상당히 곤혹스러워 할 것이라는 의견에서 알 수 있듯이, 만일 현재까지도 석도나 초도를 우리가 장악하고 이곳에 장거리 타격무기를 전진 배치한다면 북한이 느낄 압박감은 이루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한 것은 석도나 초도의 점령은 북한이 서해바다를 포기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NLL이 석도까지 연결되었다면 북한의 서해는 완전히 고립되는 형국이다
 

NLL을 초도와 석도까지 연결한다면 북한의 서해바다는 완전히 봉쇄되는 형국이다. 현재 서해 5도로 인하여 주요 항구인 해주가 제 기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유추 가능한 부분이다. 지난 천안함 사태로 인하여 북한군 잠수함대가 전개하고 있는 해군기지로 알려진 비파곶이 바로 석도 맞은편에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위치의 전략적 가치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북한의 잠수함기지인 비파곶이 바로 앞에 있을 만큼
                               석도와 초도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교동도를 거쳐 백령도 점령을 완수한 해병대 독립 제41중대가 1951년 5월 7일 기습 상륙하여 석도와 초도를 장악하자 북한은 경악하였다. 북한이 얼마나 위기의식을 느꼈는지는 한 개 중대가 점령한 석도와 초도를 경계하기 위해 무려 2개 사단을 맞은편 대안에 이동 전개 시켰던 사례에서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다. 당연히 섬을 재 장악하기 위한 북한의 도발은 집요하였고 그 과정에서 철수 전까지 수많은 격전이 벌어졌다.
 

                           1951년 12월 21일 병력교대를 위해 초도에 상륙하는 해병대원
 

해병대는 압도적인 해군의 화력 지원 하에 적의 접근을 거부시키는데 성공하였지만, 소수의 부대가 적진 한가운데에 동 떨어져 벌이는 작전은 항상 많은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예를 들어 1952년 3월에 석도 앞의 작은 무인도인 호도에서 벌어진 격전에서 악천후로 인하여 외부지원이 끈긴 해병대 1개 소대가 5배나 많은 적의 공격을 끝내 격퇴시켰지만 소대원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실종당하는 참사를 겪기도 하였다. 이처럼 해병대는 피와 눈물로 서해의 요충지를 지켜내었다.
 
 
                            서해의 요충지를 소수의 해병대원들은 피와 눈물로 사수하였다
                             (석도에서 교전 중 부상당한 병사를 후방으로 이송하는 모습)
 

하지만 앞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휴전협정 체결 후 유엔군은 원격지라 판단한 석도와 초도를 전격 포기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서해 5도에만 준하여 NLL을 설정한 것은 북한에게 커다란 은혜를 베푼 것과 다름없었고 사실 북한도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고 전후 20년간 엄중하게 이를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방자하게도 이를 망각하고 도발을 일삼는 것을 보면 석도와 초도를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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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LL 그리고 해병대

 
 
금번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인하여 NLL(북방한계선)이 국가 방위에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다시 한 번 부각되었다. 지리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NLL에 배치된 우리 해병대의 전력이 북한군에 비해 절대 열세인 사실이 우려스럽게 다가왔지만, 그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아군의 10배가 넘는 북한 4군단을 DMZ으로 전개되지 못하도록 잡아놓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리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NLL의 아군이 열세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대규모의 북한군을 
             잡아놓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림-연합뉴스)

 
서해바다에 이렇게 전략적으로 놀라운 군사분계선이 위치하게 된 것은 백령, 대청, 소청, 연평, 우도로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서해 5도를 휴전당시 아군이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북한이 무효화를 주장하면서 NLL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막상 NLL을 선포하였을 때 북한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했던 이유는 한마디로 그것이 그들에게 유리하였기 때문이었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바라본 장산곶 (사진-연합뉴스)
 

1953년 휴전직후 유엔군사령부는 휴전 당시에 별도의 논의가 없었던 해상 분계선과 관련하여 NLL을 선포하고 즉시 북한에 통보하였다. 그것은 NLL을 넘어서 우리 해군이 작전을 펼치지 않겠다는 의미였는데, 북한군이 이곳 아래로 내려오지 말라는 경고의 뜻보다 우리가 이곳을 넘어 북쪽으로 가지 않겠다는 통보에 가까웠다.

 
                        휴전협정 조인 당시의 모습 그런데 해상 경계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현재 NLL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는 최전선이 되었지만, 휴전 당시에는 오히려 북한이 얻는 이익이 컸다. 바로 전쟁 내내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으며 괴롭혀온 유엔군 해군의 공격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즉 유엔군 해군이 알아서 어느 선 이상으로 올라오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하였으니 너무 반가웠던 것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바다를 심정적으로 포기한 상태였다.

 
                        한국전쟁 당시 적진을 향해 날리는 전함 미주리의 가공할 포격 장면
 

NLL 설정 당시에 아군이 장악하고 있는 도서를 연결하여 바다위에 분계선을 긋는 것은 너무 당연하였다. 국경이 아닌 군사분계선은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곳을 연결하는 것이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NLL을 다행스럽게 생각한 북한은 휴전 직후에 어떠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1973년 이후부터 북한은 서해 5도 주변수역을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긴장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 연평해전 당시의 긴박한 모습
 

계속적인 군비증강으로 우리를 앞섰다고 판단한 북한은 이때부터 노골적인 도발야욕을 표출하였다. 당시는 월남전이 격화되어 가고 있었고 더불어 한반도 방위의 한 축을 담당하던 미 7사단이 철수하는 등 주변정세가 좋지 않게 돌아가던 중이었다. 더불어 오일쇼크에 따른 극심한 경제 침체도 우리를 어렵게 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침략의 명분을 잡기위해 NLL에 대한 북한의 트집이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철수 전 미 제7사단이 주둔하였던 레드크라우드 기지 정문
 

지금은 그때와 안보환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서해에서 벌어진 여러 차례의 교전이나 연평도 포격처럼 북한이 아직도 NLL에 목을 매는 이유는 NLL의 철폐보다 긴장감을 조성하여 북한내부의 동요를 단속하려는 목적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내부분열을 노리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언급한 것처럼 오래되었지만 생소했던 단어인 NLL이 최근 들어 누구나 알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해병대 제6여단과 연평부대의 선배인 독립 41중대를 포함한 도서방어부대기
 

이렇게 현재도 우리 안보를 굳건히 지키는 최전선인 NLL이 성립될 수 있도록 서해 5도를 확보하게 된 것은 전쟁이라는 혼란한 상황 중에도 그 전략적 위치를 미리 인지하고 전광석화 같은 도서 확보작전을 펼쳤던 해병대 독립 41중대를 비롯한 도서방어부대의 분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이제는 후배들인 해병대 제6여단과 연평부대가 굳건히 지키고 있다. 변함없는 당신들의 투혼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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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위기는???
  

아! 꼬인다 꼬여, 몸이......이 곳은, '영어학원'인가요? 아님, '공인중개사' 학원??
이 적응안되는 열공의 분위기란.... 정말 적응 안되시죠?  아니, 본인은 항상 공부만 하신다고요??   설..마~


                                                           태극전사에 쏠린 눈


'미술관'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 에구구구....빛 들어왔네요.


                  마지막 입맞춤...'천안함,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또, 기술부족..


월드컵, 북한, 천안함 이야기까지... 이곳은,




광화문에 위치한 한국프레스센터!  금빛 엘리베이터를 타고 19층가지 올라가십니다.

바로 이곳에서, 8월30일 월요일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주관으로 '제28회 국제안보학술회의'가 개최되었는데요,

제목은, "G20, Middle Powers, and Global Korea" 였지요.  "뭐, 이정도는 다 해석되시잖아요?  기본영어 잖아요? " 호호호^^  제목은 "G-20, 중견국가 그리고 글로벌 코리아". 내용이 무지 어려웠을 것 같죠?  네, 맞습니다. 어려웠습니다. 특히, 발표와 토론하시는 박사님들께서 영어를 정말 유창하게 하시더라고요.  동시통역사를 동원할 정도의 어려운 영어들을... 그래서, 바로 제일 위의 사진과 같은 광경이 연출되었던 거죠~ 모두들 매우 열심히 듣는듯 보이지만, 왠지 몸이 꼬이는 분위기랄까요? 하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이죠. 

그럼 이제, 제가 원어로 들을 수 있었던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사실, 동시통역사의 도움을 아주 조금! 얻을 수 있었죠~).

최근,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한 '중견국가'들이 G-20정상회의 회원국으로서 선진국이 주도하던 세계경제 질서에 영향력을 증가시키고 있는데요, 특히 한국은 오는 11월 G20정상회의 개최국이자 의장국으로서 중요 역할을 맡게되었죠. 'G20회의'는 '세계경제안정화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룬답니다.


                                                 G20 회원국들....(이미 다 알고 계셨다고요?)

안보문제 전문가들 사이에는 G20정상회의가 '안보문제'도 의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만, G20은 경제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위해 안보문제는 논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견국가들의 경제적 영향력과 함께 안보역할도 확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현 시점에서 대표적 중견국가인 호주, 인도네시아, 한국이 스스로의 안보역할을 논의하는 이 학술회의는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지요. 




학술회의는 크게 3개의 회의로 나뉘어 진행되었답니다. '제1회의' : G-2 리더십, '제2회의 : 중견국가들의 영향력 증대', '제3회의 : G-20과 한국의 국가안보전략' 이렇게죠. 모든회의는 발표후 토론의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제1회의 : G-2 리더십>
 - Richard Hermann(Mershon Center, U.S,) :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요 역할을 지속할 것은 분명합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과연 어떤 요소들이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지요. 누구나 예상하듯이 '중국의 리더십'이 미국의 정책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며, 일본과 한국의 정치리더십의 성격도 상당히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중국이 한국과 미국을 분열시킬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생각해볼 문제라고는 하겠습니다."

- Xiaohe Cheng( Renmin University, China) :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일본을 따라잡음에 따라 더욱 큰 글로벌 역할을 해야한다는 기대가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추구하는 데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국제정세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 야심은 다음의 장애요인들로 인해 방해를 받게될 것입니다. 중국은 정체성에 대하여 국내적 합의가 부재합니다. 어떤이들은 중국을 제3세계 회원국으로 여기며, 어떤이들은 중국을 이미 글로벌파워의 최상국으로, 또 어떤이는 중국을 미국 다음으로 세계정세를 좌우하는 'G-2'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같은 중국내 정체성 합의 부재는 중국의 대외정책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추구하는 데에 또다른 장애물이 있다면, '미국중심의 동맹시스템'의 존재와 결정적 시점에 '중국을 전략적으로 지지할 연합의 부재'를 들수 있겠습니다."

다음에 계속....^^                                                                                     - 열혈국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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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였죠!
국방부에서는 정책고객서비스에 가입되어 있는 고객들 중에 국방정책에 뜨거운 관심을 가져주신 우수정책고객을 모시고 국방부 차관 주관으로  '국방부 우수정책고객과의 대화'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우수 정책고객 80여명이 초청되었으며, 우수 정책고객에 대한 시상과 2009년 국방예산, 북한 군사위협 대비태세, 국방개혁 추진사항 등 국방현안에 대한 대변인 브리핑, 차관 및 국장들과의 간담회 순으로 진행 되었으며, 참가자 들의 열띤 토론으로 예정시간을 초과하여 저녁 9시 30분이 되서야 행사가 끝났습니다.

정책고객이란 각 정부부처에서 시행 중인 정책고객서비스(PCRM: Policy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에 가입되어 있는 국민들을 말하는데,
민간의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기법을 공공부문에 적용한 대국민 정책고객서비스는 정부가 국민과의 적극적인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해 정부정책을 정확하게 이해시키고 국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2003년부터 도입한 제도이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신 고객님들 먼저 식사부터 하시죠


다양한 참석자들
회사원, 공무원, 예비역, 연구원, 교수, 기업인, 대학생, 심지어 고등학생까지 국방부 우수 정책고객의 분포는 다양합니하다.
또한 주소지도 서울, 인천, 대전, 충북, 전남 순천, 경북 영주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주소는 뭐지?  베트남 호치민 00번지....  그러면 이고객님은 베트남에서 오신건가? 맞습니다. 그 열정 대단합니다.(충성!!!!   경례가 저절로...)

최연소, 그리고 아름다운 국방부 정책우수고객(박은혜, 김민성, 최은진 고객님)


국방부 정책고객 하면 나이드신 예비역 분들이 생각나시죠
여기 젊고 아름다운 국방부 정책고객도 있답니다. 가운데 김민성 고객님은 현재 고등학생이라고 합니다.

대변인과 김사무관


두분은 행사장을 바라보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 "김사무관  고객님들이 생각보다 많이 오셨네 그치"  
-  "네 대변인님" "우수 고객님들이라 출석률도 우수합니다."
-  "그런데  선배님들이 대부분이라 조금 긴장되네..." "아무튼 잘 끝나야 될텐데"



차관과의 대화에서 오고간 다양한 의견
 - 북한의 땅굴이 수원 인근까지....

이기영 고객님 :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것에 비해 실적이 너무 부진하다. 이는 시신을 발굴하고도 유가족들의 채혈이 부족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해서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음.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으며, 채혈은 군병원에서만 하니 접근성이 부족하다. 각 지역 보건소나, 병원, 더 나아가 헌혈차량에서도 유가족 채혈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였으면 좋겠음.

국방부 차관 : 6·25전쟁 후 미수습 시신은 10만 이상이나 실제 유해 발굴수는 상당히 적다. 또한 유해발굴 후에도 채혈문제로 유전자 감식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임.
국방부에서는 채혈방법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법을 강구하고 있으며 현재 각 지역 보건소에서도 채혈을 할 수 있으며 향후 개인병원 등으로도 확대해 나갈 계획임, 또한 국방홍보원이나 공익광고 등을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할 계획임.
 

질문하는 이기영 고객님과 경청하는 차관님

 

조남혁 고객님 : NLL은 과거 학도병과 청소년들을 주축으로 유격군을 결성해서 서해 5도를 지킴으로 사수한 것임. 앞으로도 굳건히 지켜나가길..

국방부 차관 : 선배님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이 이정도 발전할 수 있었음. 그 의지를 받들어 우리 군은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NLL을 굳건히 사수할  것임.

정덕교 고객님 : 각조 신문, 방송 등에 보안상 문제가 될 수 있는 자료나 사진들이 나오는 것은 문제가 많음.   또한 6·25의 참상을 잘 모르는 세대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6·25 전쟁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음.

국방부 차관 : 옳으신 말씀입니다. 비밀 누설 등의 문제는 정부나 국방부가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함. 

정면 단상까지 나와 발표하는 정덕교 고객님의 발표에 웃음짓는 차관님


  
기타 : 북한이 땅굴을 수원시 인근까지 뚫었다고 하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 확인을 해주기 바람.

국방부 차관 : 이는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 입니다. 우리 군의 정보력이나 선진 감시체제 등으로 볼 때 우리 군에 발각되지 않고 땅굴을 수원까지 팔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군은 북한군의 동향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뛰어남. 걱정하지 않으셔도 됨.

우수 정책고객이란 이름에 걸맞게 개개인들의 발표시간은 매번 주어진 1분의 제한시간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고, 제 앞에 앉아 계신 분들은 전부 고령이셨는데 발표할 내용을 인쇄하여 가져오시는 열정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열정은 열혈 청년보다 더 뛰어나시더군요
발표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자,  급기야 화를 내는 고객까지...(우우...  발표기회를 바로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행사장 전경



늦은 시간까지 참석해 주신 정책고객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은 국방부 우수 정책고객과의 대화의 현장에서 선진이었습니다.


행사장 이모저모

환한 미소


우수고객 시상식


잠깐 무슨생각 하시는지


인사하는 국방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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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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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강군입니다. 요즘은 선진씨와 정예화양이 잘 안보이시죠. 저도 보고 싶은데, 각자의 업무가 바빠서 볼수가 없네요.^^;;;

  지난 주말의 안타까운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오늘은 북한이 2차 핵실험 및 단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한걸로 나타나 강군도 조금 바쁘네요. 오늘은 군관련 재미있는 자료 간단히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The Military Balance(2006-2008)의 자료를 분석해 '세계 각국의 국가별 병력현황 및 국방지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자료는 첨부하였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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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총 병력은 687,700명(육군:560,000명, 공군:64,700명, 해군:35,000명, 해병대:28,000명)인걸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를 끄는 자료는 북한의 인구 100명당 군인은 4.7명이며, 한국은 1.4명 수준인걸로 나타났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북한은 길가는 행인 20명중 반드시 군인이 1명 포함된다는거죠. 그밖에 북한만큼 인구대비 군인이 많은 나라는 아프리카의 에트리아가 4.1명, 이스라엘은 2.7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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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국의 병력 구성 현황(클릭!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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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1


유용원의 군사셰계 메인화면(http://bemil.chosun.com)


안녕하세요. 열혈 3인방의 정예화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회 명단 공개'(92년 12월)를 비롯해서 ‘군수본부 포탄 사기사건’(93년 말), ‘KF-16 추락사고 원인은 엔진 결함’(98년 8월), ‘권영해 전 안기부장 20억 원 비자금 조성’, ‘북한 MIG-21기 40대 도입’ 등 조선일보사 최다 특종상 수상자로 오르기도 했던 유용원 기자를 만났습니다.
블로그 운영 외에도 본업인 기자생활로 바쁘신데 국방부 블로그의 발전을 위해 흔쾌히 시간을 내주셔서 일단은 고맙다는 말씀부터....
오늘 인터뷰에 앞서 유용원의 군사세계를 방문해 보았다. 오전 10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방문 수는 벌써 2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유기자님을 등에 업고 인기 좀 얻을 수 있을까요.

* 무슨 말씀을, 저를 팔아서 열혈 3인방에 도움이 되신다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인데요. 기존의 손님들 까지도......
 
- 아무튼 괜찮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유기자님의 다양한 특종보도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이고요. 혹시 특종기사 말고 국방부에 출입하며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같은 건 없으셨나요?

* 글쎄요? 업무상 일 외에는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요.

- 이건 뭐? 너무 성의 없으신 거 아닌가...(정예화 생각)
술을 못하시는 체질인데 술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 예, 저는 술을 잘 못합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신입때 소주 1잔에 폭탄주 2잔 먹고 병원에 실려 갔었어요. 출근도 못했지요.
93년부터 국방부 출입하면서 국방부에 적응하기 위해 술을 먹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땐 정신력으로 폭탄주 너댓잔 먹을 정도까지 올라섰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네요.  라마르크 용불용설처럼....

- (이 정도 수준이면 나도....)
선진, 강군 씨랑 같이 저녁에 술 한 잔 같이 하시죠

* 뭐 그렇게 하시죠.

-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유기자님은 본인의 군사세계 말고 자주 방문하는 블로그가 있으신지요?

* 사이트 만들기 전에는 이곳저곳 많이 방문했었는데, 건방진 말씀 같지만 어느덧 군사분야에서는 제 사이트가 중심이 되다 보니 제 사이트 관리하느라 다른 사이트에 방문하는 경우는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이해 해 주세요...


- 최근에는 누적 방문 수 1억 명 돌파 기념행사도 하시고, 요즈음에는 일일 방문 수가 8만명을 넘나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에도 벌써 방문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던데요. 블로그 관리에 하루 투자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이신가요? 그리고 혼자 관리하기는 힘드실 거고, 관리하는 직원을 몇 명이나 두고 계신가요?

* 직업특성상 돌발 상황이 많아서 틈틈이 관리하는데요, 평균 하루 2~3시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관리는 전담요원이라고 하기는 그런데 1분이 맏아주시고요, 이분도 다른 일을 하면서 하는 것이라...
실질적으로 저를 포함해서 2명이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 답변하기 곤란하시면 안하셔도 되는데요. 블로그로 발생하는 수익은 회사와 나눈다고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수익은 어느 정도이고 회사에서 특별히 ‘유용원의 군사세계’ 블로그에 대해 배려하는 것이 있나요?

* 이 질문은 꼭 물어봐 주셨으면 했는데요. 심지어 우리 회사 기자들도 한 달에 몇 백만 원씩 수입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시는데요. 제 사이트에 들어와 보시면 아시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광고는 배너광고 하나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리 저리 계산해 보면 특별히 남는 게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서버관리 이외에 사이트 개편 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유용원의 군사세계’는 다양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콘텐츠가 모두 몇 개나 되는지요? 그리고 콘텐츠 중에 기자님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관리하는 게 있다면 어떤 거죠?

* 활성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해온 자유사진방이 있고요, 그리고 건스월드라는 코너가 있는데요, 이 코너는 정말 전문성이 있는 코너이고 나름대로 제가 비중을 두고 있는 코너이기도 합니다. 또 북한정보자료 나눔터는 탈북자들이 들어와서 정보를 나누는데 공간인데, 생생한 자료의 보고이지요. 게시판 개수는...대략 74개 정도 될 겁니다. 계속 확장하다 보니 저도 가끔은 생각이 나질 않아서....

- 요즘은 기자들이 쓰는 저널로그, 정치인들이 쓰는 폴리로그등 블로그가 점차 저널리즘으로 전환되는 과도기라고 생각하는데요. 블로그가 과연 저널리즘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요? 또한 블로그 저널리즘은 기존 언론하고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 언론계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글은 취재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일방적일 수가 있어요. 이런 면에서 한계가 있지요.  이와는 다르게 제 사이트는 회원들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거죠.  저는 제 사이트에서 관리만 하는 정도죠.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의 블로그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 자제분이 카스론 미군사학교에서 개교이래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특별히 군사학교에 진학시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장래 자제분이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하나요? 군인이 되길 원하시나요. 혹시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 다행히 아직까지는 본인이 기자하고 싶다고는 안 해서 다행이네요....그리고 군사학교에 다닌다고 군인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과정이 일반학교와 같습니다. 졸업 후 일반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다른 점은 일반학교 보다 통제된 생활을 한다는 거죠. 또 미국은 마약 등 유혹이 많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좋은 것 같습니다. (그 곳은 담배만 피워도 퇴학시킬 정도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미국에 연고가 없으니 믿고 맡길 수 있고,  또 학비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요.  제 아들의 경우는 군사분야의 관심의 저 보다 더 많아서 일반대학에 군사분야의 전공을 살려서 보낼까합니다. 물론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요.

- 국방부는 현재 블로그를 3개 운영 중입니다. 국방부 블로그 운영을 어떻게 보시는지?

* 블로그라는 것이 서로간의 소통의 장인데요. 특히 댓글이 얼마나 달리느냐가 중요합니다. 시동 거는 게 어렵지만 시작하기만하면 블로그의 활성화는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특히 국방부는 제한이 많습니다. 따라서 시동을 어떻게 하면 걸수 있는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예,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군사세계는 밀리터리와 관련해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데요. 유기자님의 정년 이후의 군사세계의 모습은 어떨까요?

* 이게 제가 앞으로 풀어 가야할 숙제인데요. 다른 기자들은 블로그를 회사에서 만들어 주고 기자가 올리는 게시물의 소유권이 회사에 있는데.  제 경우에는 블로그 자체도 제가 만들었고 콘텐츠는 회원들이 만들었지요. 그래서 다른 기자들의 블로그와는 차별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윈윈 모델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군사세계가 앞으로 좋은 사례가 될 거라 믿습니다. (조선일보가 그렇게 속 좁은 회사가 아니라서...)  



마지막으로 센스 있게 유기자님께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천재는 악필이라고 했던가요? 기대했던 유명한 기자의 필체는...이게 아닌데...(호호호..)
유기자님의 옷차림이 똑같지가 않죠? 자료사진을 사용한 게 아니라, 유기자님과 인터뷰 후에 열혈 3인방과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살짝 찍어둔 사진이 좋아서 2가지 사진을 다 올렸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깔끔한 흰색셔츠가 넥타이와 조화로워 보이네요.

인터뷰 후기

식사 중에 강군 씨가 '유용원'기자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봤는데요.
"유" 유유자적한 선비의 얼굴로
"용" 용호상박의 치열함의 감춘 그대
"원" 원래 기자들은 두 얼굴 이라지..
과하지 않은 멘트 '올렸다가 살짝 내려가는 센스' ...      괜찮은 것 같은데요.
(유기자님도 많이 웃어 주셨답니다.)

첫 인상이 너무 부드러웠다.
첫 인상 만큼이나 말씀하시는 것도 '치열한 기자 세계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外柔內剛(외유내강) 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르는 분이었다.

유용원의 군사세계가 군사분야의 화수분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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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루군.. 트랙백 0 : 댓글 4

안녕하세요!

열혈 3인방의 '홍일점' 정예화입니다.
현장 취재는 처음인데요. 키 리졸브 훈련과 관련하여 북한측의 발언과 이와 맞물려 우리나라의 경제와 안보의 복합적인 위기로 발전하지 않느냐는 우려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키 리졸브 훈련이 어떤 훈련인지 궁금해서 선진 씨와 강군 씨 모르게 혼자서 경기도 포천의 로드리게스 훈련장을 찾았습니다.


경기도 포천의 로드리게스 훈련장 출입구
(들어올때는 버스를 타고 들어와서 나갈때 찍다보니 출구쪽이 찍혔네요. 이해하세요)


키 리졸브 훈련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 훈련

취재에 나서기 전 훈련에 대한 기본개념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알아본 내용입니다.

1976년부터 1993년까지 연례적으로 실시해오던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되고
1994년부터 한미연합증원훈련인 RSOI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RSOI의 명칭이 지난해 '키 리졸브'로 바뀌어 계속 실시되고 있는 거죠.
'키 리졸브'는 우리말로 '중요한 결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 RSOI : 한반도 전쟁 발발시 대규모 미 증원군 병력과 장비를 어떻게 하면 신속하게 파견해 최전방 지역으로 안전하게 배치할 수 있는가를 숙달하는  연합 전시증원 훈련



점심식사로 미군측에서 제공한 전투식량......  그런데 이걸 어케 먹는거야 !
다른 취재진들도 먹는 방법을 해독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훈련 현장과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는 취재진들 와 !  많다 많어 !
오늘은 한, 미 해병대 시가지 전투훈련(9일 진해 함대 사령부 기지 방어훈련을 시작으로 개시)

 
훈련투입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한, 미 해병대원들


임시 건물을 점령하고 있는 가상 대항군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중인 한국해병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병사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어요)


 공격 준비를 하고있는 미해병들
( 잘 모르겠지만,  공격 지시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어요. 목소리가 엄청 커요!)


앞에 보이는 총은 미군의 마일즈 장비라고 하던데요. 멋지죠! 진짜 공포탄도 나가던걸요.


가상 대항군을 퇴치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침투하고 있는 한, 미 해병대원들
(따라다니느라 정말 진땀났어요!)


훈련을 마치고!   대항군 정리  끝!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제 영어실력이 워낙 겸손해서.............)


 
키 리졸브 훈련 현장취재를 마치고!
뉴스로만 듣고 있었던 훈련상황을 직접 취재해 보니
일부 국민들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훈련상황은 철저히 방어에 중점을 둔 훈련이었습니다.

이러한 대응훈련은 당연한 것이고,
북한의 어떠한 유형의 도발에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국과 우방을 위해 한국과 미국의 장병들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습니다.
키 리졸브 훈련에 여념이 없는 한, 미 장병들에게 뜨거운 지지와 성원이
보내며,  

이상은 키 리졸브 훈련 현장에서 열혈 3인방의 정예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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