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리펜 계획'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0.01 나가 싸우란 말이야! 제발 [3]
  2. 2009.09.22 나가 싸우란 말이야! 제발 [1]

또다시 침공로가 되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후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기 때문에 또 다시 독불간에 전쟁이 발생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긴장된 포니워(Phoney War)기간동안 독일과 프랑스 모두 장차전에 대한 세밀한 구상에 돌입하였습니다. 이때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벨기에로 귀착됩니다.


                                다시 벨기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터가 되려 하였습니다.


독일은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의 입안으로 마지노선이 끝나는 벨기에의 아르덴느(Ardennes)를 돌파하여 프랑스를 섬멸할 기상천외한 계획을 세웠는데 반하여 프랑스는 다일- 브레다 계획(Dyle-Breda Plan)이라는 오늘날 이스라엘이 자주 사용하는 공세적 방어개념과 비슷한 대응전략을 구상 합니다.


                             1)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로 (슐리펜 계획)
                       2)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방어 게획 (다일-브레다 계획)
                       3)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로 (만슈타인 계획 - 낫질 작전)
                       독일, 프랑스 모두 벨기에를 장차 전쟁터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프랑스의 계획은 한마디로 방전으로 승리를 쟁취한 1차대전의 경험이 기반이 되었는데 그 개요는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독불국경간은 마지노선으로 충분히 방어 할 수 있고, 또한 독일도 이곳으로 주력을 투입하여 침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때문에 독일은 1차대전 때와 같이 벨기에 평원을 이용한 침공을 감행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에방에말요새에 막혀 돌파에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셋째, 이때 연합국 주력(프랑스 1집단군 및 영국 대륙원정군)을 벨기에-프랑스 국경 근처에 배치하였다가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자마자 즉시 벨기에 영토내로 진입하여 벨기에와 연합하여 독일의 주력을 섬멸한다.


       독일은 앞만 보고 있던 프랑스의 배후를 단절하려 하였습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군)


이 얼마나 약소국 벨기에를 하찮게 생각하는 발상입니까? 독일은 침공로로, 프랑스는 자국에서의 전투를 회피하고자 약소국 영토를 전장터로 삼고자 하였으니 말입니다. 만에 하나 프랑스가 독일-폴란드 전쟁직후 대독 선전포고를 한 이상 독불전선에서 침공전을 하여야 하는데, 이를 외면하고 자국 내에서의 전투만 회피만 하려는 소극적 대응전략으로 시간이나 보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당시 벨기에 국민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짧은 침략, 긴 고통

드디어 세기의 악당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1940년 5월 서부전선의 전투가 시작 됩니다. 또다시 벨기에는 프랑스를 공격하려는 독일의 침공로에 놓이게 됩니다. 굳이 1차대전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벨기에 평원이 아닌 아르덴 산악지대가 독일 기갑부대가 지나가는 주 침공로가 되었다는 사실 일 뿐입니다.


                              아르덴의 삼림지대가 독일의 침고로로 예정되었습니다.


벨기에 국민들이 철석같이 믿던 에방에말요새이었지만 독일의 독창적인 공수 특공에 의해 불과 10분 만에 엎어진 거북이 꼴이 되고 맙니다. 단지 85명의 팔슈름야거(Fllschirmjager-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공수부대)의 특공작전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사전에 은밀히 개척하여 놓은 통로를 지나 독일군은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순식간에 벨기에를 석권하여 통과하면서 프랑스로 물밀듯이 들어갑니다.


                               에방에말을 점령한 전설적인 독일의 공수부대 팔슈름야거


그것도 독일 주력도 아닌 기만전술을 썼던 B집단군의 페이트모션에 의해서 말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독일 책략에 속아 프랑스군 총사령관 가믈랭(Maurice Gamelin)은 연합군 주력인 프랑스 제1집단군과 영국원정군을 벨기에 영토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명분은 벨기에 구원, 독일을 응징한다는 것이었지만, 진짜 속뜻은 프랑스 영토 내에서 전쟁을 피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덩케르크에서 후퇴하는 연합군


물론 결과는 아시다시피 기습적으로 연합군의 배후를 치고 들어가는데 성공한 독일의 포위망에 걸려 나룻배라고 얻어 타고 영국으로 도망가기 급급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벨기에는 독일의 전광석화 같은 기습에 의해서 장기화된 1차 대전 때보다 물적 피해가 적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 만큼 아주 짧게 침략을 당합니다.


                                                    전쟁으로 사망한 벨기에인들


하지만 이후 점령지로써 독일 전쟁 수행을 위한 수탈을 당하게 되고 대영 전쟁을 전초기지 역할을 하느라 전 국토가 군사기지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웃 네덜란드와 더불어 벨기에는 현재도 집집마다 식량비축 창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독일의 수탈기간 동안 워낙 배가 고팠던 쓰라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며 벨기에 국민으로 살던 28,000여 유태인들이 가스실로 끌려가게 됩니다.

(계속됩니다.~ 명절 잘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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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이름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이후 현재까지 유럽의 역사를 살펴보면 5개의 강국이 있음을 알게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의 등장과는 별개로 이들 5개국은 아직까지도 역사의 주역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열거하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그리고 이탈리아인데 이들은 서로간의 견제와 균형을 이뤄가며 이합집산을 하였고, 20세기 들어 발생한 두 차례 세계대전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제국주의 침탈을 풍자한 독일신문의 삽화
                           하지만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흔히, 세계대전을 이야기 할 때 몇 개국이 참전하고 몇 명이 죽고 등의 통계자료가 나오곤 하는데, 실제 위에서 언급한 국가들 외에 자의적으로 대전에 참전한 국가는 극히 들물다고 단언 할 수 있겠습니다. 굳이 예를 든다면 지금은 사라졌으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강대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나머지 국가들은 이들 강대국 간의 이합집산에 따라 마지못해, 어쩔수 없이 전쟁의 폭풍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지금은 그저 그런 중부유럽의 약소국이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유럽의 강대국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훈련모습)


특히, 독일과 독일의 東西에 접하여 있던 러시아와 프랑스는 이러한 충돌의 중심이었으며, 어쩔 수 없이 이들 사이에 끼인 여러 약소국가들이 전화에 휘 말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유럽 쪽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종식 후 지도제작 업자들이 호황을 맞을 정도로 국가 및 국경의 변동이 심하여 딱히 어떤 나라가 원하지 않는 전화의 피해를 많이 입었나 판단하기조차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직전의 유럽지도
                                       중동부 유럽이 오늘날과 차이가 많습니다.


서부전선으로만 시야를 돌려보면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벨기에, 네덜란드, 록셈부르크의 3개국이 있는데 이들 국가들은 고래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꼴로 20세기에 들어 원하지도 않는 참화를 입게 됩니다. 그중 양차 세계대전에서 그들의 의사와 아무런 상관없이 최대의 격전지가 되었던 약소국 벨기에(Belgium)의 눈물에 대해 몇 회에 걸쳐 알아보고자 합니다.


예고된 전쟁터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독일은 언젠가 보불전쟁의 패전국으로 이빨을 갈고 있던 프랑스와 일전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준비성 강한 독일인답게 구체적인 對프랑스전쟁 계획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슐리펜 계획(Schlieffen Plan)입니다. 최단시간(계획상 6주) 내 프랑스를 쳐부수고 난 후, 러시아를 징벌한다는 한마디로 내륙국 독일이 가장 회피하고 싶은 양면 전쟁 거부책입니다.


                           죽기 전에 장차 독일의 전쟁 해법을 연구했던 참모총장 슐리펜


그런데 이 계획은 독일주력이 독불국경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중립국인 벨기에를 돌파하여 프랑스 북부로 진공 후 파리를 대포위함으로써 프랑스의 조기 항복을 유도 한다는 점이 핵심 이었습니다. 단지 독불국경보다 벨기에가 평야지대인 관계로 대규모 부대의 기동이 용이하여 파리에 쉽게 근접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세중립을 표명하던 약소국의 주권을 철저히 무시한 상태로 계획은 입안되었습니다.


                      슐리펜 계획에 의거 독일은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를 침공할 예정이었습니다.


즉, 전쟁이전 부터 약소국의 주권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단지 침공의 편이만을 위하여 이나라를 전쟁터로 삼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어쨌든 사전에 치밀하게 수립되어 있던 슐리펜 계획에 의거 독일은 1914년 8월 3일 프랑스에 선전포고와 함께 벨기에를 침공합니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을 점령한 독일군



프랑스, 러시아와 군사적 협력을 약속한 3국 협상국이기는 하였으나 최초 전쟁발발 당시에는 중립을 표명하였던 영국이 1914년 8월 4일 독일에게 즉각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던 명분이 바로 중립국 벨기에를 독일이 치범한 것을 이유로 들었을 정도로 당시 세계는 독일의 기습적인 침공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august의 전쟁사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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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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