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던 바로 그곳
 


극적인 ‘아덴만 여명 작전’과 관련하여 소말리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마치 국가가 직접 나서서 해적질을 하는 것으로 착각이 될 만큼 소말리아하면 해적이 떠오를 정도인데, 일부 언론 매체에서는 해적질이 소말리아의 가장 큰 산업이라고 비하할 정도다. 도대체 나라가 어떠하기에 자국민들이 전 세계로부터 비난받는 해적질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말인가?
 

                           청해부대의 작전과 더불어 소말리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현재 각종 통계자료에 따르면 소말리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국토의 대부분이 건조지대라 유목 외에 별다른 산업기반도 없으며 이 마저도 생산 활동이 미미하다. 따라서 종종 대량의 아사자가 속출하는 끔직한 기아사태가 발생하여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더구나 장기간의 내전으로 인하여 그나마 형식상 존재하는 정부도 어느 누구도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인 사실상 무정부국가이다.
 

                            몇 십 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국가의 기능이 완전 마비되었다


그렇다보니 해적질이 이 나라의 산업 아닌 산업이 되어버린 형국이고 해적들은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해적들과 이를 뒤에서 비호하는 군벌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핑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사익을 채우기 위해 온갖 나쁜 짓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존재가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대부분의 선량한 소말리아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린 가장 큰 주범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어떤 반론도 있을 수 없다.

 
                                   가난하다는 사유로 해적질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말리아가 원래부터 이토록 비참한 국가는 아니었다. 제국주의 시대에 공식적으로 서구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아프리카의 유일 지역이었을 만큼 역사적 자부심이 큰 나라였다. 오늘날 해적질의 주 활동무대인 이른바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 불리는 동아프리카 반도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유사 이래 오래동안 아랍, 아프리카, 인도를 연결하는 무역의 중심지로 영화를 누리기도 했다.


                                             우주에서 바라 본 아프리카의 뿔


그러나 국민들이 단결하여 국가를 발전시키지 못하였고 1991년 이후 내전이 발발한 이후 국가의 몰락이 가속화되면서 오늘날 이러한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하고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자 유엔은 1992년 12월 치안유지를 위한 개입결의안(제794호)을 채택하여 평화유지군(PKO)을 파견하였는데 바로 이때 우리나라도 유엔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한민국 수립 후 최초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였다. 바로 ‘상록수부대’다.


                                            태극기가 선명한 상록수부대의 군복


국군의 해외 파병은 월남전과 1991년에 있었던 걸프전도 있었지만 이들 사례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파병된 경우이고 국제기구의 요청에 따라 평화유지군으로 해외로 나간 것은 1993년 7월 소말리아 파병이 최초였다. 당시 공병대대를 주축으로 창설된 상록수부대는 1995년까지 2차례에 걸쳐 연 인원 516명을 파견하여 지역 재건, 의료 지원 등 인도적 활동을 중심으로 평화정착 지원임무를 수행하였다.


                                             소말리아 현지에서 활동하는 모습


그런데 이처럼 우리도 참여한 유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의 평화회복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는 AU(아프리카 연합) 주축의 평화유지군이 소말리아의 치안 확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공공연히 백주에 테러행위가 자행 될 만큼 아직까지도 소말리아의 항구적인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따라서 해적 문제 또한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 될 가능성마저 희박하다. 국제사회는 물론 소말리아 국민들에게도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1995년 귀국 보고를 하는 상록수부대


해적 사건 때문에 부각되었지만 이처럼 소말리아는 국군과 인연이 많은 곳이었다. 어느덧 상록수부대의 파병은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이것은 대한민국이 세계 평화의 일익을 담당하는 책임 있는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기폭제였다. 현재 우리는 평화유지군을 세계의 여러 분쟁 또는 재해 지역에 파견하여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1993년 소말리아 파병은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소말리아에 하루 빨리 평화가 정착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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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덴만에서 부활한 명장
 
 

지난 2011년 1월 21일, 우리군은 역사에 길이 빛날 쾌거를 이루었다.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의 인질 구출 작전에서 우리군은 세계 대테러전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비록 피랍선박 선장 석해균 씨와 UDT대원 3명이 부상을 당하였지만 21명의 인질들과 이번 작전에 투입된 해군요원들 모두가 완벽할 정도로 무사했다는 점은 격찬을 받을 만 했다.

 
                                        함교로 진입을 시도하는 해군 UDT대원들
 

항상 세계 최고 수준의 특수전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해외에서 벌어진 테러작전에 투입된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청해부대가 이 정도로 멋지게 활약할 줄 예상했던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번의 업적은 이스라엘 특공대가 지난 1976년 실시하여 이제는 인질 구출 작전의 전설이 된 엔테베 작전과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테베 공항에 억류되었다가 무사히 구출된 인질들
 

인질 구출 작전이 어려운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우습게 아는 흉포한 테러범의 위협 하에 인질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박이나 항공기 피랍의 경우는 좁은 공간 안에 테러범들이 인질들과 뒤섞여 있어 이들을 구분하여 테러범을 일일이 제거하고 인질을 구해내기가 상당히 힘들다. 따라서 격렬한 교전이 벌어졌음에도 모든 인질들의 생명을 구하고 해적들을 완벽하게 제압한 이번 작전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격렬한 총격전 와중에도 무사히 구출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
 

이것은 마음 한 구석에 가졌던 모든 염려를 일순간 종식시키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또한 지난해 우환이 연이어 발생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국군의 사기를 단 번에 회복시켜주었다. 더불어 우리를 만만하게 보았던 국제 테러조직에 엄중한 경고를 주었고 앞으로 도발이 반복될 경우 어떻게 응징을 받게 될 것인지 확실히 알려주었다.

 
                                             청해부대 UDT대원들의 훈련모습
 

우리나라는 소말리아 해적의 위협으로부터 선박들을 보호하기 위한 '항구적 자유 작전-아프리카의 뿔(Operation Enduring Freedom-Horn of Africa)'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2009년 3월 청해부대를 창설하여 현지에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4,500톤급 한국형 구축함을 기반으로 1기의 슈퍼링스 헬기와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30여명의 UDT대원으로 구성된 청해부대는 4개월을 주기로 교대되고 있는데 금번에 활약한 최영함은 제6진이다.

 
                                        청해부대 1진으로 파견되었던 문무대왕함
 

다음은 그동안 항구적 자유 작전에 파견되어 총 15회의 해적 퇴치 작전을 실시한 청해부대의 일지다.
 
1진 2009년 3월 13일 문무대왕함
2진 2009년 7월 17일 대조영함
3진 2009년 11월 20일 충무공 이순신함
4진 2010년 4월 2일 강감찬함 (CTF-151 연합해군 기함)
5진 2010년 7월 9일 왕건함
6진 2010년 12월 29일 최영함

 
                                           6진으로 파견된 최영함의 출항모습
 

이번 작전의 주인공인 최영함은 지난 해 12월 29일 파견되었기 때문에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작전에 투입된 경황없는 상황이었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전을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번에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최영함이 보여준 모습은 640여 년 전 홍산대첩(鴻山)을 이끌어 이후 왜구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백수최만호(白首崔萬戶)의 재림이라 하여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백수최만호로 불린 최영장군의 묘 (출처-Wikimedia)
 

백수(白首)는 백발을 뜻하고 만호(萬戶)는 대장군이라는 뜻을 지닌 몽골말에서 유래된 고려의 관직이다. 즉, 백수최만호는 멋진 백발을 휘날리며 전투를 지휘하던 고려말의 명장 최영(崔瑩, 1316~1388)을 왜구들이 두려워하면서 부르던 별명이었다. 이름을 물려받은 구축함답게 최영함은 너무나 멋진 서전을 장식하였다. 앞으로 남은 임무기간 동안에도 왜구에게 죽음의 사신이었던 백수최만호의 혼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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