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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9 국익을 지키려 하였던 약소국의 용기 (1)

               사자에게 대든 하룻강아지
 
                                                                
 
아이슬란드(Iceland)라는 나라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요? 대서양의 북극권에 있는 제법 큰 섬나라로 국토의 크기가 대략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총인구가 불과 30만에 불과한 약소국입니다. 전통적으로 수산업과 관광산업이 이 작은 나라의 기반 산업인데 작년 말 불어 닥친 국제 금융위기 때문에 커다란 타격을 입고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이슬란드의 풍광입니다
 

군사적으로 볼 때도 지상군이 약 120명 정도이고, 경비정이 4척인 해양경비대, 공군은 없으며 헬기만 4대인 그야말로 웬만한 국가의 지역경찰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민망한 수준입니다. 따라서 1949년 NATO 창설 12개국의 일원이었을 만큼 국가의 방위를 대외 동맹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슬란드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본인들 의사와 상관없이 국제 동맹 체제에 가담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작지만 정규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PKO 활동 중인 아이슬란드 여군)
 

아이슬란드는 징검다리처럼 유럽과 북미를 연결하는 대서양 항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지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제2차 대전 당시에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였음에도 영국과 미국에 의해 군사적으로 점령당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대서양을 통하여 생명선을 유지하고 있던 영국과 바다를 건너가 유럽에서 싸워야 할 미국에게 아이슬란드의 중립 선언은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제2차 대전 당시 아이슬란드 산스케이드에 주둔했던 미군
 

지리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중간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1986년 냉전체제의 해체를 예고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역사적인 회담이 열린 곳이 바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빅(Reykjavík)이었을 만큼, 냉전 시기에는 미국이 소련을 감시하기 위한 전략 시설물들을 이곳에서 비밀리에 운용하였고 주변 해역에 이를 역 감시하기 위한 소련의 함대가 수시로 출몰하고는 하였던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냉전을 허물기 시작한 역사적인 1986년 레이캬빅 미소정상회담
 
이처럼 군사적으로 자위를 행사하기에도 터무니없이 작은 초미니 국가가 지난 1976년 영국에 일전불사를 외치고 나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영국이 아무리 늙은 사자(영국의 상징이 사자)이지만 건방지게도 하룻강아지가 사자에 덤빈 형국이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영국이 아이슬란드를 요리하는 데 불과 반나절도 걸리지 않겠지만 영국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이슬란드 인근으로 출동하는 영국 구축함
 

한마디로 초등학생이 격투기 챔피언에게 싸움을 걸었다고 결투를 벌일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세계의 이목이 두려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아이슬란드도 자신들이 이길 가능성이 전무 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지만 결코 장난으로 영국과 대결하려 하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에게는 극히 일부지만 한마디로 아이슬란드에게는 모든 것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사자에게 대든 하룻강아지였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분쟁은 1976년 초 아이슬란드가 선포한 200마일 배타적 경제수역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영국 트롤 어선단이 아이슬란드의 선언을 무시하고 수역 안에서 조업을 계속하자 이를 쫓아내기 위해 아이슬란드 해양경비대가 출동하였고 반대로 영국해군이 자국 어선단 보호를 명분으로 군함들을 출동시켰습니다. 열 받은 아이슬란드는 펄펄뛰며 영국과 단교하고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지만 노르웨이의 중재로 간신히 실전은 면하게 됩니다.

 
                              영국의 어선을 밀어내는 아이슬란드 경비정
 

그런데 이것도 처음이 아니었고 이미 1958년과 1972년에 두 차례에 걸쳐 있었던 충돌의 연장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아이슬란드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영국과 처절히 맞섰습니다. 아이슬란드가 영국해군을 상대하기 위해 동원한 장비는 어선을 개조한 작은 보트였을 뿐이었지만 거친 북해의 바다위에서 영국의 구축함들과 당당히 대치하였습니다.
 

                       대구는 아이슬란드가 양보할 수 없는 생명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무슨 고기가 잡히기에 이렇게 나라의 운명을 걸고 전쟁까지 불사하였던 것이었을까요? 바로 유럽인들에게 최고급 어종에 속하는 대구(Cod)때문 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 근해는 한랭어종인 대구가 우글거리는 황금어장인데 앞에서도 언급하였던 것처럼 아이슬란드에서 어업은 국가의 생명선이기 때문에 이처럼 전쟁 불사까지 외치고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바다를 지키는 것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독도 근해에서 일본 순시선과 대치중인 해양경찰대 경비함정들)
 

결국 원만하게 타협이 이루어졌지만 혹자의 경우는 만일 1970년대 영국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였다면 과연 아이슬란드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무모한 만용이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누군가 빼앗으려든다면 과연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우리나라가 아이슬란드만큼 작은 나라는 아니지만 적어도 국익을 지키기 위한 노력만큼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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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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