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파병'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5.07 단비부대 파병, 70일간의 일기 (13)
  2. 2010.02.24 파병(派兵)을 알아? 정말? (6)


오늘, 5월 7일로 국회 파병동의안 의결에 따라 우리군이 아이티로 '단비부대'를 파병한 지 70일이 되었습니다.


단비부대 창설식장에서



'단비부대'의 해외파병은 우리군에게 특히 큰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나라 파병 역사상 가장 신속히 이루어진 파병이자,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파병이라는 점이 바로 그러합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의 아픔을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09년 11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정식 가입함으로써 사상최초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현지 어린이에게 간식을 나누어주는 단비부대원



'단비부대'는, 2010년 1월 12일 강한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중앙아메리카 국가 '아이티'의 피해복구 및 재건을 위해 2월 17일에 창설되었고, 2차례의 선발대에 이어 2월 27일 본대를 파병, 3월 15일부터는 피해복구 및 재건활동을 본격화하였습니다.


단비부대원들의 아이티 지진피해 복구 활동



'단비부대'는, 그간 다양한 재건 및 봉사활동을 전개하여 지역주민으로부터 '레오간의 희망'이라는 칭송과, 유엔 아이티 안정화 지원단(MIHUSTAH) 및 타 파병국들로부터 'Thunder ENGCOY(번개처럼 빠른 공병부대)라는 평을 받으며 완벽한 임무수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비부대원들의 건물 복구 작업



그렇다면, 아이티의 현지상황과 단비부대의 활동여건은 과연 어떨까요?

아이티는 한국군이 처음 파병된 국가로서 우리군에게 그 지형과 기후 등이 매우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티는 1월 12일 대지진 이후 60여 회의 지진이 꾸준히 관측되고 있으며, 5월 현재 낮 최고기온은 43도를 기록,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어닥치는 모래바람 등 열악한 기후로 인해 향후에도 현지민들의 피해는 가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치안상황은 호전되고 있고, 적대세력에 의한 테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나, 납치와 절도가 발생하는 등 어려운 여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불어닥치는 모래바람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단비부대'는 주어진 여건을 극복하고 정서적 안정 속에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고자 장병들의 생일축하 행사, 종교활동, 주말 영화상영 등 장병 정서함양과 스트레스 해소 등을 위해 노력하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단비부대의 70일간의 일기를 살펴볼까요?

1. 단비부대는 첫번째 임무로, 아이티의 중추신경인 204번 도로를 보수, 정비하고 있습니다.
레오간에서 자크멜에 이르는 204번 도로는, 말하자면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현재 204번 도로는 산사태 등으로 인해 급경사와 낭떠러지가 되어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204번 도로 공사 임무는 '10년 3월 31일 유엔총회에서 결의한 38억 달러 규모의 기금으로 집행되며 유엔 아이티 안정화 지원단(MIHUSTAH)에서도 가장 중점 추진하고 있는 중요임무입니다. 현재 공사는 20%의 진척을 보이고 있으며, 7월 말까지 진행 예정입니다.  


204번도로 암석 제거 현장



2. 두번째 임무로, 단비부대는 레오간 시내의 모든 건물 및 학교 잔해를 제거하고 있는데요, 5월 초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본 임무는 현지 학생들의 수업여건 보장을 위한 긴급조치 중 하나랍니다.
 

단비부대원의 레오간 시내 건물잔해 제거 임무수행



3. 세번째 임무로, 단비부대는 심정개발 및 급수지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이티 레오간에는 주민을 위한 급수시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민들은 정수시설 없이 강물 등을 그대로 마시거나 그 물로 빨래와 목욕 등을 하고 있어 각종 수인성 질병 및 피부병 환자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단비부대는 레오간 곳곳에 심정을 굴착하여 주민들에게 양질의 물을 공급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수맥탐지기를 이용하여 굴착지점을 찾고 있는 단비부대원들



4. 네번째 임무로, NGO단체 구호활동 지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파병 역사상 최초로 외국군의 도움없이 정부(KOICA), 민간NGO단체와 연계하여 구호활동시 모든경호와 지원임무를 담당하는 것입니다. 현지인들은 단비부대원들의 인도주의적이며 적극적인 지원활동과 정성에 감동을 받고 있다고 전합니다.


단비부대원의 NGO연계 지원



5. 다섯번째 임무로, 의료지원 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이티의 의료수준은 정치,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세계에서 가장 낙후되어 있습니다. 즉, 국가차원의 기본적 예방접종과 건강검진 등 서비스조차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의료물품등이 전량 외국에서 수입되어 의료비는 증가하고 현지인 대부분이 의료서비스를 받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이에, '단비부대'는 22명(군의관 7명, 수의장교 1명, 간호장교 4명, 의무부사관 1명, 의무병 9명)으로 전문 의료팀을 구성하여, 매일 아침 8시~오후 6시까지 정기진료를 실시하며 야간 응급환자 발생에 대비하여 당직군의관을 운영하는 등 24시간 친절하고 수준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레오간 전역에 알려지면서 일일 100명 이상의 환자들이 방문, 70일만에 진료환자 3,500명을 돌파하였다고 합니다. 




아이티 현지인들에 대한 의료지원 활동



6. 그리고, 한,일 연합건설 및 복구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단비부대는 일본군 파병부대와도 긴밀히 협조하여 건설 및 복구활동을 추진하고 있어 한일 군사교류의 새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양국 파병부대는 월 1회 상호방문을 정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 난민촌에 대한 연합 민사활동(의료지원, 구호품 전달)과 MINUSTAH 주요사업(도로복구, 배수로 정비, 건물 잔해제거) 등을 공동 추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단비부대장이 일본파병부대장에게 부대 활동사항을 설명하는 모습



이렇듯, 대한민국 단비부대의 인도주의적 재건활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모범적 실천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파병장병들의 안전에 대해 우리 국민들의 우려가 많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진입할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세계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있는 우리군을 격려해주는 편이 더욱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티 현지 어린이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13



 


파병에 대한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처음 앉았을 때 막막했다. 자이툰이나 다이만처럼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해서 글을 쓰라면 정말 자신이 있는데 (정말 그 이야기는 책으로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 않은 다른 파병 역사를 소개하는 글은 정말 자신이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난 시오노 나나미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고 해서 열혈국방 식구들에게 대충 짜깁기 한 글을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선 우리나라 파병사를 담은 두툼한 책 몇 권을 빌려 옆에 쌓아 두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읽어 봐도 답이 안나오기는 마찬가지. 역사책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매력적인 소재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고민했다.

         (괜히 쓴다고 그랬어, 괜히 쓴다고 그랬어......뾰로롱~ 블로그에 올려만 주세요~~.^^)

뭐가 좋을까? 뭔가 독특한 것? 아니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진실들? 일단 도전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파병사(派兵史)에 대한 기록을 정리해 놓은 책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 못믿겠다면 대형서점의 인터넷 사이트나 학교 도서관 홈페이지로 들어가 검색해 보라. “파병”을 키워드로 넣었을 때 나오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대중의 관심에서도, 학자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한 戰史가 아닌 파병사이기 때문이거나, 연구할 자료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서 일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앞으로 파병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도록 노력하겠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해외에서 헌신해 온,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戰士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왜 그곳에 가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말이다.


               파병의 기원


우리 군은 베트남에 전투 및 전투지원 부대 파병부터 최근의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임무와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때론 일부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파병은 여러 가지 고려요소를 두고 고민한 결과 국익에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들이었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우리가 세계 속에 어깨를 펴고 자랑스럽게 우뚝 설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다른 나라에 파병하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해외에 병력을 보내기 시작했는지 그 파병의 기원에 대한 것은 학자에 따라서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앞에서 베트남부터라고 이야기한 건 뭐고 지금 다시 기원을 따지는 건 뭐야?’ 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로만 우리의 지식을 한정짓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조금만 참고 우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자.

파병은 우리의 전쟁이 아닌 타국의 요청에 의해 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여 고대사까지 그 영역을 확대한다면 최초의 파병 기록은 신라 현덕왕 때인 서기 8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 본기를 보면 “현덕왕 11년 7월, 당나라 군주절도사 이사도가 반란을 일으켰다. 당의 현종은 이를 토벌하기 위해 양주절도사인 조공을 보내 우리 군사들을 징발해 주도록 했으므로 왕은 순천군(順天軍) 장군 김웅원에게 군사 3만을 거느리고 가서 돕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라가 3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파병을 했던 당나라에 대한 보답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글쓴이는 해외파병 관련 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군인입니다. 「라라라」라는 필명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파워블로거이기도 하고요.^^  『열혈국방의 Blue Helmet(블루헬멧)』을 통해 넘쳐 흐르는 문학적 소양과 전문적인 군사지식을 접목해 해외파병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기고할 예정입니다.



파병에 대한 세밀한 절차 등이 문헌 자료로 남아있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는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고려를 원정기지로 삼겠다는 원나라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나 대규모 원정군을 꾸려 파병했다. 1차 원정 때는 9백척의 전선(戰船)과 1만 5천여명을 지원했고, 2차 원정 때도 역시 9백척의 전선과 2만 5천여명이 동원되었다. 물론 원나라 군사 1만 5천여명에 대한 군수지원은 제외하고 말이다.


고려 2차 일본원정 요도

고려시대 전투장면을 묘사한 그림



조선시대에도 역시 유사한 사례가 있다. 명나라로부터 1467년과 1479년 각각 여진족 토벌의 요청을 받고 대규모의 병력을 보냈다. 2차 파병 때는 1만명을 파병했다가 회군했으나, 이로 인해 명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자 변방수비부대 3천명을 다시 급파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여진정벌 당시 전투를 묘사한 그림

조선의 2차 여진정벌 요도



조선이 두 차례나 정벌했던 여진은 임진왜란 후에 급격히 성장하여 부족을 통일하고 후금을 세웠는데, 이들이 요동으로 진출하자 명나라는 다시 조선에 정벌군 파병을 요청해 왔다. 조선은 임진왜란에 명나라가 군을 파병한 보답으로 1619년 다시 후금정벌을 위해 파병을 했다. 그런데 파병군을 이끌었던 강홍립은 주력군을 이끌고 홍경 근교 심하전투에서 후금군에게 투항했는데, 이는 광해군은 세력이 성장하고 있는 후금의 보복 침공을 예방하면서 동시에 대의명분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파병은 청의 요청에 의한 1654년, 1658년 러시아 정벌이 마지막이었다.


조선의 1차 나진정벌 요도

후금정벌 당시 진군을 묘사한 그림



우리 한민족의 파병역사를 살펴보면 대체로 우리에게 군사적인 지원을 해주었던 주변국의 요청에 따라 정치․외교적인 차원에서 국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추진된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파병과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국익증진과 민족자존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파병



우리 군,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군의 이름으로 태극기를 달고 나간 파병의 시작은 월남전이다. 1964년 9월 11일부터 73년 3월 23일까지 총 8년 6개월 동안 연인원 31만여 명이 577,476회의 작전을 수행했다. 월남전에 파병한 부대만도 주월사령부,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 십자성부대, 비둘기부대, 백구부대, 은마부대 등 총 8개 부대에 이른다. 이 가운데는 해병대(청룡), 해군(백구), 공군(은마)도 포함되어 있다. 1991년 걸프전에 국군 의료지원단(사우디)과 수송단(아랍에미레이트)을 보내기도 했으며, 2001년부터 아프간에서의 항구적 자유작전에는 해군 수송지원단 해성부대와 공군 수송지원단 청마부대를 비롯해 동의․다산부대를 파병해 2007년 12월 14일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이라크 자유작전에도 건설공병지원단인 서희부대와 의료지원단인 제마부대를 보냈으며(2003년 4월 30일~2004년 4월 30일), 2004년 8월 3일부터는 자이툰과 다이만부대를 이라크와 쿠웨이트로 2008년 12월 19일까지 파병했다.

그 이외에도 우리 군은 1993년부터 소말리아, 앙골라, 동티모르 등 다양한 지역에 UN PKO의 이름으로 파병활동을 했으며, 2010년 현재 레바논을 비롯한 전 세계 17개 지역에 약800여 명을 보내 임무를 수행중이다.



<퀴즈>

열혈국방 식구들을 위해서 상품이 걸린 Mini Quiz를 준비했다. 일정병력을 부대 단위로 파병하게 될 경우에는 부대의 임무와 성격을 나타내는 부대명과 부대마크 등을 제작해 사용한다. 그 중 부대마크는 각각의 구성요소가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럼 문제 들어갑니다.

Q> 아래의 그림은 어느 파병부대의 마크입니다.
     그 부대의 부대명(OO부대)과 파병했던 곳은 어디인가요?




정답(부대명과 파병 장소)을 비밀댓글로 남겨주시면 정답자 1명을 선정하여 해외파병부대 장병들의 어깨에 붙이는 태극마크 패치와 레바논 동명부대 기념품인 멋진 볼펜을 상품으로 증정하겠습니다.




다음에는 파병복에 관한 에피소드로 만나뵙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6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