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혹은 악연 [ 上 ]
 

 

 
바다에서 고구려 본토로 향하는 길목을 가장 바깥에서 방어하던 비사성(卑沙城)이 위치한 따롄(大連)은 현제 중국의 요동(遼東)반도 끝에 위치한 항구 도시다. 이곳을 봉쇄하거나 점령하면 자연스럽게 발해만(渤海湾)을 장악하고 더불어 중국의 심장부인 베이징을 향해서 비수를 세울 수 있으므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라 할 수 있다.
 

                                          지리적 요충지인 따롄
 

현재 한국 기업의 대 중국 투자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곳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둥(山東)반도인데 반하여 일본은 따롄을 중심으로 하는 요동반도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거의 향수를 못 잊어 하기 때문인데, 옛 이름이 뤼순(旅順)인 이 도시에서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고 순국하였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따롄은 가장 먼저 일본이 지배하였던 중국의 영토였다.

 

                                          최근 따롄의 모습
 

1895년에 있었던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곳을 지배할 수 있었으나 3국 간섭으로 러시아에게 권리를 빼앗겼다. 이후 절치부심 끝에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곳을 점령하여 중국과 만주로 향하는 요충지로 발전시켰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따롄의 구도심은 군데군데 러시아, 일본 식 건물들이 상존하고 있어 그 고단했던 역사를 얼추 엿볼 수 있다.

 

                              20세기 초에 촬영된 뤼순항의 모습
 

최근 이 도시에 있는 조선소에서 수리 중인 한 선박에 관한 소식이 외신을 통해 타전되었다. 지난 2001년 러시아 국내사정으로 건조가 중단된 군함이 해상 호텔 용도로 중국에 팔려왔는데, 그동안 개조작업을 거쳐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조만간 취역할 예정이고 함명이 스랑(施琅)으로 정해졌다는 내용이었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내용이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조만간 취역할 예정으로 보도된 중국의 항공모함
 

그런데 구 소련에서 70%의 공정 상태에서 건조를 중단하였을 당시에 붙여졌던 이 함의 이름이 바랴그(Varyag-Viking이란 뜻)였는데, 현재 이 함명은 슬라바(Slava)급 순양함 3번 함의 이름으로 승계시켰을 만큼 러시아 해군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랴그가 따롄은 물론 이곳과 뱃길이 연결된 인천과도 상당히 인연이 많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슬라바 급 미사일 순양함 바랴그
 

한반도가 강대국의 전쟁터가 되려는 불길한 조짐이 보이자 대한제국은 1904년 1월 21일 국외중립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1월 27일 일본 함대가 뤼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함대를 급습하여 러일전쟁이 개시되었고 전쟁의 불똥은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2월 4일 개전을 선언한 일본은 한반도 지배권을 선점하기 위해 2월 8일 육군을 제물포(인천항)에 상륙시켜 서울로 진격시켰던 것이었다.

 

                          러일전쟁 당시 인천(제물포)에 상륙하는 일본군
 

일본의 뤼순항 급습으로 3척의 군함이 침몰당하는 피해를 입는 와중에 러시아 해군의 순향함 두 척이 극적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인천 앞바다에서 14척으로 구성 된 일본함대에게 포위당하였다. 이때 러시아 해군은 항복하지 않고 저항을 선택하여 함포사격으로 일본 순양함 2척을 불사르는 용기를 보였지만 사방에서 날아오는 포격에 타격을 입고 침몰 당하였다.

 

                                 출동하는 바랴그(우)와 까례예츠
 

이 때 인천 앞 바다에서 중과부적의 상태임에도 굴하지 않고 전투를 펼쳐 장렬하게 최후를 맞은 2척의 러시아 순양함 중 한 척의 이름이 바랴그였다. 이 전투에서 구조되어 러시아로 송환 된 생존 승무원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는데 사실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주변 강대국들이 벌인 전쟁이었으므로 바랴그와 인천의 인연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후 침몰 하였던 바랴그의 운명이 이상하게 진행 되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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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님의 의거 100주년을 즈음하여 최근 안중근 의사의 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안중근 선생님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에 대해서만 알지, 그 분의 철학에 대해선 잘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분의 생각이 군비통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즉, 안중근 선생님이 꿈꾸던 '동양평화', 즉 한*중*일 3국간에 동양평화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동평화군을 창설하자는 생각...



일본은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한채 군사력 증강을 통해 동양평화를 깨뜨렸고, 이에 안중근 선생님께서는 동양평화 파괴의 주범인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경기도 부천 `안중근 공원'에 자리잡은 안중근 의사 동상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이번 포스팅에서는
남북간 군비통제의 실현을 위해 누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말씀드려 볼랍니다.^^


군비통제, 누가 준비하고 있나    <군비통제과 김종덕 사무관>

우리나라 정부에서 '군비통제'라는 이름을 걸고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는 '국방부 군비통제과'가 유일합니다. 좀 독특하죠. ^^

사실...국방부와 군은 군사력 건설을 통한 군사적 억지에 주된 관심을 두는 기관이기에 군비통제와는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다는 애기지요.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정부기관에 군비통제 관련 기관이 처음 생긴 것은 '89년' 이었습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는 동구권의 몰락과 구 소련의 붕괴로 인해 냉전이 해체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곧 닥칠지도 모를 군비통제에 대비하기 위해 급하게 조직을 마련하게 되었지요.

당시, 군비통제기구를 어디에 둘 것인지 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북간의 군비통제는 남북간 군사적 대치상황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야 하므로, 국방부에 두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이 났다고 합니다.

군비통제는 아래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남북간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재래식 무기 감축을 논의하는 남북 군비통제와 국제 군비통제레짐에 대한 참여와 의무수행을 담당하는 국제 군비통제로 대별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군비검증은 당사국간 군비통제 합의의 이행여부를 검증(verification)함으로써 군비통제의 실제 이행을 촉진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 중, 우리의 관심사는 역시 남북간 군비통제 이겠지요.

그럼, 이제 군비통제과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볼까요?
아~~ 조금 딱딱하고 재미 없으신가요?
여기서.. 잠깐 우리 군비통제과원들의 면상을 공개하겠습니다. 잠이 확 깨시도록!!! ^^*


국방부 군비통제과 직원들



우리 군비통제과는 우선~~

남북간 군비통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될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각종 군비통제 의제에 대한 정책지침과 협상전략을 세워 두었습니다. 즉, 올해 상반기에 「09년 군비통제정책서 」를 발간하였답니다. 이거 만드느라 고생 좀 했답니다.ㅠ.ㅠ

이 책에서는 우리 정부는 9개 분야 33개 추진과제를 도출하여 각 과제별 추진지침과 추진계획을 마련했답니다. 물론, 내용은 여기서 공개할 순 없습니다. 협상전략을 미리 공개하는 것은 안되겠지요. 하여튼 우리는 준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우리 군비통제과는 우리 과원들의 업무 전문성 강화를 위해 매주 군비통제 TF회의를 열어 자신이 맡은 과업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어떨땐, 외부인사들을 초청하여 우리 정부의 군비통제 정책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한답니다. 아래의 사진은 지난 4월 27일 숙명여대 정외과 학생들이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 제가 발표하는 장면이네요.. 쑥스~~




앞으로 남북간 군비통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는 잘 모릅니다.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러나, 우리 정부는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통한 재래식 무기감축 제의, 그랜드 바겐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 등 군비통제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군비통제 논의가 본격화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군비통제과를 비롯한 유관부서들은 항상 준비하고 있답니다.

우리가 조금 더 바빠져서.. 집에 못 들어가더라도...
한반도에서 안중근 의사가 꿈꾸던 동양평화가 이뤄지길 바라며... (추천~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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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0

  
   국방부는 5월 14일부터 6월 13일까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미 JPAC(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이 합동으로 강원도 화천과 경기 연천 등 4개 지역에서 6.25 전사 유해발굴을 한미 합동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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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합동 유해발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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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참에 강군은 우리나라의 유해발굴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전쟁이 끝난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6.25 참전 무명용사 찾기의 현 주소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유해발굴작업은 지난 2000년부터 6.25 전쟁 참전 무명용사들의 유해를 육군 소속의 6.25 기념사업 담당관실에서 발굴 및 감식해오다 '국가의 정체성을 살리고 호국의 얼을 잇는다'는 자세로 미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유해발굴감식단이라는 국방부 직할 부대를 창설하여 올해 3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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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발굴감식단을 둘러보고 있는 이상희 장관과 백선엽 예비역 장군


    한국전으로 말미암아 수습되지 못한 13만의 무명용사들이 있으며, 00~08년도까지 수습한 유해는 2,855구에 그치고 있고, 이중에서도 그나마 신원이나 유가족이 확인된 것은 약 4%(118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해발굴 감식단의 한 관계자는 "6.25세대의 고령화(70~80세), 급격한 국토개발로 인한 유해 매장지의 훼손, 전사자 직계 유가족들의 유전자(DNA) 채취 참여 저조로 인해 유해발굴 및 감식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고충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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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묻힌곳으로 추정되는 스카이뷰 (출처: 동아일보)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한 댓가로 중국의 뤼순 감옥속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 의사의 유해 또한 주변인접지의 개발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는것으로 봐선, 6.25 참전 무명용사들의 유해발굴이 쉽지 않을것 같다는게 강군의 생각입니다.

   국방부는 이런 유해발굴 사업의 어려움을 개선시키기 위해 전사자 유해에 대한 제보를 받아 발굴 성과에 따라 보상금(20만~70만원)을 지급하고 있고, 각 지역 보건소에서 6.25참전 전사자로 추정되는 직계 유가족들에게 채혈을 독려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유해발굴 작업을 살펴보면, 독일과 일본의 경우는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가라 전사자 유해찾기 작업이 비교적 덜 알려져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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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무명용사 묘지의 꺼지지 않는 불꽃 (출처: wardly 블로그)

미국은 전몰장병 기념일이라는 Memorial day로, 러시아는 크렘린궁 근처의 무명용사 묘지에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꼭 들르는 관광코스로 , 영국과 프랑스는 수도 중심가에 기념비 및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설치하는 등 각국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국의 전쟁 참전 무명용사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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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후 현충원내 참배하는 이명박 대통령

   우리도 국립현충원내에 무명용사들을 모셔 기리고 있으나,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기에는 아쉬운점이 많습니다.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고 난후, 제일 처음 찾는 곳은 동작동 국립묘지라는거 다들 아시죠!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된 다음날 국립현충원을 찾았습니다.


  이제는 정치인들과 유가족들만이 찾는 그런곳이 아닌 국민들 모두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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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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