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강에서 벌어진 냉전의 역사 [ 下 ]
 
 

냉전시기에 동서는 전 분야에서 체제경쟁을 하였지만, 국력을 올인하다시피하며 가장 치열하였던 경쟁을 벌였던 것은 우주개발 분야다. 그 시작은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쏘아올린 일이었는데, 미국의 교육제도까지 바꿀 정도로 그 후폭풍은 엄청난 것이었다.
 

                               미국을 경악에 빠뜨린 스푸트니크 1호
 
 
이후 미국과 소련은 국력을 쏟아 붓는 무한경쟁에 돌입하여 우주를 체제 우월을 입증하는 선전무대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이런 무한경쟁은 우주개발을 적어도 30년 이상 단축시켰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과학탐사와 개발이 상호 협조가 아닌 체제경쟁을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 문제였고 양국 모두에게 엄청난 경제적 짐이 되었다.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은 1960년대에 인간의 달 탐험을 이루는 업적을 선보였다
.
 

그러한 무한경쟁의 장소였던 우주에서 데탕트를 상징하는 이벤트를 벌여 세계인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행사가 기획되었다. 1975년 7월 15일, 미국 우주선 아폴로(Apollo) 18호와 소련 우주선 소유즈(Soyuz) 19호의 도킹 행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우주개발에 나선 후 사상 처음으로 미국과 소련이 함께 실시한 우주탐사였다.
 

                                미국과 소련의 합동 우주탐사가 기획되었다.

 
모든 일에서 최초라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지나고 나서 초기의 업적을 지금과 비교하면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최초 성공까지의 수많은 도전과 실패는 바로 오늘을 만든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러시아 우주선을 미국 관광객이 타고 우주비행에 나서는 시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최고의 특급 국가기밀을 적국에게 오픈시켜 주는 이런 시도가 곧 동서 화해의 신호탄이었던 것이었다.
 


                                당시 양국 우주비행사들의 합동 훈련 모습
 

도킹과 관련한 준비를 위해 양국 우주비행사와 기술진이 사상 최초로 상대편 기지를 방문하여 기술적 협의와 합동훈련을 하게 되었다. 미소의 우주선에서 사용하는 공기만 하여도 미국이 산소 60% 질소 40%의 혼합물인데 반하여 소련은 100% 산소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처음 대외에 밝혀 질 정도로 당시는 모든 것이 비밀이었던 시대였다. 당연히 모든 진행과정 하나하나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주에서 화합의 시대를 연 아폴로 18호와 소유즈 19호의 승무원들
 

이런 어려운 준비과정을 거쳐 미소의 우주선이 우주공간에서 결합하고, 미국의 스태포드(Thomas P. Stafford)선장과 소련의 레오노프(Alexei Leonov) 선장이 악수하는 모습을 세계인들에게 생방송으로 보여줌으로써 일말이나마 평화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그것은 인류에게 미국과 소련이 협력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도킹 후 우주에서 악수를 나누는 장면
 

그런데 예정보다 6분 정도 빠르게 이루어져 대서양 상공 우주에서 도킹이 이루어졌지만 최초 미소의 우주선이 접촉하기로 예정된 장소는 바로 30년 전 미소의 군대가 처음으로 악수를 나누었던 엘베강 토르카우 위의 우주였다. 아마도 미국과 소련이 가장 분위기가 좋았던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를 바라보던 분단 독일국민들의 심정은 그리 좋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현재 세계 각국의 협력으로 건설 중인 국제 우주 정거장 ISS
 

하지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엘베강변과 우주에서 있었던 이러한 기억을 과거의 사실로 만들어 버렸다. 독일은 다시 통일이 되었고, 오늘날 우주개발은 ISS(International Space Station ; 국제우주정거장)라고 불리는 거대한 우주정거장으로 상징 되듯, 전 인류가 동참하여 개발하는 협력과 평화의 장이 되어 가고 있다. 미소가 나치를 쳐부수고 조우하였던 엘베강은 66년 전에도, 우주선이 만났던 36년 전에도, 오늘도 흐르고 있다. 그리고 강물처럼 역사도 흘러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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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베강에서 벌어진 냉전의 역사 [ 上 ]

 

 

1945년 4월, 전 세계를 전쟁의 불길로 뒤덮으며 지긋지긋하게 타오르던 제2차대전도 서서히 그 끝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의 히틀러가 소년병까지 동원하며 최후의 발악을 해보았지만, 노도와 같이 동서 양쪽에서 독일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진격하는 연합군과 소련군을 막을 방법은 사실 없었다.

 


 

              이 정도라면 전쟁을 포기 하는 게 맞지만 히틀러는 국민들을 계속 사지로 몰아넣었다.

 


동부전선은 독일과 소련의 완충지대였던 동유럽을 석권한 후 독일 본토로 계속해서 밀려들어오는 엄청난 규모의 소련군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는 와중이었고,
서부전선 또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독일의 천연요새 지대인 라인강을 도하하여 진군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라인강을 도하하는 미군과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

 


이렇게 동과 서에서 독일의 중심부를 향해 달려 온 소련군과 연합군이 조우한 역사적인 장소가 독일 본토의 중심부를 흐르는 엘베강(Elbe River)이다. 엘베강은 체코에서 발원하여 독일을 가로질러 북해로 빠지는 1,000Km가 넘는 강으로 오래전부터 내륙수운에 사용된 독일의 주요 교통로이기도 하다.

 


 

                                              독일 본토를 가로지르는 엘베강

 


이렇게 독일 한가운데를 상징하는 엘베강변의 토르가우(Torgau)에서 1945년 4월 25일, 미 1군과 소련 코네프(Konev)군이 만나며 더 이상 진격할 곳이 없어지게 되었고, 유럽에서의 전쟁은 그것으로 사실상 종말을 고하였다. 비록 단말마적인 저항이 독일의 곳곳에서 간간이 벌어졌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토르가우에서 조우한 미소 양국 병사들

 


사진처럼 최전선에서 전쟁을 경험했던 미국과 소련의 병사들은 승리의 기쁨과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쉽게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말단병사들의 기쁨과 기대와 달리 공통의 적이었던 나치 독일이 사라지자 이들은 앞으로 이 강의 동서 양편으로 나뉘어 서로 적으로 지내게 될 운명이었다.

 


 

                                    그들은 이 순간을 즐겼지만 적이 될 운명이었다.

 


이렇게 역사적 현장이었던 엘베강은 전후 독일을 동서로 분단하는 경계선이자 이데올로기로 나뉘어 동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냉전시기에 유럽의 최전선이 되었다. 마치 한강 하구처럼 전쟁 전에 내륙수운으로 번창하였던 엘베강 일대는 팽팽한 군사적 대치가 이뤄지면서 침묵의 강이 되어 버렸다.


 

 

                                         냉전의 상징이었던 찰리검문소 경고판

 


그리고 이러한 동서의 첨예한 대치는 사상 최대의 전쟁인 제2차대전이 끝난 지 불과 5년 만에 지구반대편 한반도에서 결국 무력 충돌을 불러와 국제전으로 비화하였으며, 곧이어 베트남 전쟁과 세계를 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은 쿠바사태 같은 위기의 순간을 만들어 내었다. 어쩌면 인류사에 가장 무서웠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을지도 모른다.

 


 

                      쿠바사태는 어쩌면 인류사에 있어 가장 초조했던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쿠바로 향하는 소련 선박을 감시하는 미국 정찰기)

 


1970년대 들어서 조금씩 이러한 긴장상태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데탕트(Detente)시대라 한다. 동서를 대표하는 미국과 소련 양쪽 모두 핵무장을 통한 무한경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 차라리 경쟁이 아닌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선에서 공존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게 된 것이다.

 


 

                                무한 경쟁이 부담스러웠던 미소는 데탕트시대를 열었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핵무기를 감축하는 방법으로 군축을 통한 실질적인 동서 긴장완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면서 이벤트적인 성격의 깜짝쇼를 연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깜짝쇼의 배경으로 독일패전과 분단 그리고 동서 냉전의 상징인 엘베강이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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