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력 향상을 위한 당근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자랑 할 것이 별로 없던 1980년대까지 만하더라도 스포츠는 대내적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대외적으로 국위를 선양하는데 많이 이바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올림픽 3위 입상이상, 아시안게임 1위처럼 스포츠를 통하여 국위를 선양한 자에 한하여 병역면제 혜택을 주기 시작하였던 것은 1980년대부터 입니다.


                         한국 스포츠의 좋은 성적은 국민을 기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동기는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한 후 대폭적으로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였는데, 사실 1981년 서울이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은 되었지만 바로 이전까지 해방 후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1976년 제21회 몬트리얼 올림픽에서 레슬링 양정모 선수의 단 1개에 불과 하였을 정도로 한국의 경기력은 사실 미약하였습니다.


       지금은 한국이 세계적인 스포츠열강 이었지만 한국의 경기력은 사실 미약 하였습니다
                  (해방 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레슬링의 영웅 양정모 선수)


때문에 자칫하면 서울올림픽이 돈 들여 어렵게 판만 벌여놓고 남의 나라 선수들의 잔치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올림픽 개최국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병역면제 같은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정책을 병행한 체육 진흥책이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이후 한국은 올림픽과 같은 국제 대회에서 당당히 체육 열강으로 진입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즉흥적인 변화와 원칙의 훼손


하지만 이렇게 제정된 법조항을 즉흥적으로 개정하면서까지 선수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부여한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2002년 월드컵 4강의 기적을 이룬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과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거둔 자랑스러운 업적은 단군 이래 최대로 전 세계 한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고 온 국민들이 행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올림픽 상위 입상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격이 충분하였을지 몰랐습니다.


                     2002년 축구 국가대표팀은 우리를 하나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 있었던 제1회 WBC야구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이 엄청난 선전을 하여 국민들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때 다시 한 번 병역면제라는 선물이 선수단에 부여가 되었는데 많은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이를 받아들였지만 당시에 이런 예외 규정이 자꾸만 발생한다면 원칙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반대여론도 많이 나왔습니다.

                         2006년 야구 국가대표팀도 국민을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는 국위를 선양하고 국민들을 기쁘게 해준 운동선수들에 대해서 굳이 병역혜택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의 보상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국민의 의무인 병역과 관련한 원칙은 되도록 고수되어야 하는 것이 옳고 국민이 열광하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그때마다 원칙을 자꾸만 바꾼다면 나중에는 감당하지 못할 상황까지 이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병역의 의무에 관한 원칙이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예인들도 병역을 충실히 완수하여야 더욱 인기가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병역면제를 주장하는 이유가 국위선양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가장 경기력이 왕성한 시기에 선수들이 군복무를 하면 이후 경기력이 후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시기에 병역면제를 하여주고 선수들로 하여금 더욱 운동에 정진시키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실 이제는 운동실력으로만 한국을 자랑하던 그런 시기는 솔직히 지난 것 같고 경기력과 관련한 주장과 관련하여 다음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범근 선수의 도전

1978년 12월 방콕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한국은 북한과 연장전까지 치르는 명승부 끝에 0-0으로 공동우승을 합니다. 그 경기직후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차범근 선수는 독일 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이유는 단하나, 세계 최고의 축구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는데 마침 독일 교민으로부터 분데스리가 팀을 소개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었습니다.


         1978년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은 한국과 북한의 숨 막히는 혈투 끝에 공동우승으로
          막을 내리고 이 경기 직후 스트라이커 차범근 선수는 독일 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


 하지만 지금처럼 전문 매니저의 도움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서독에 찾아온 축구 변방 아시아의 이방인을 반겨준 팀은 아무 곳도 없었습니다. 조금 먼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일본인 오쿠데라가 있었고 비록 아시아에서 차범근은 오쿠데라보다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고는 있었지만 차범근도 한국축구도 서독에서는 관심 밖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부 젊은 분들은 차범근 선수를 통신회사 광고에 등장하는 감독 또는 TV 해설자 정도로 알지만 개인적으로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였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차범근 선수가 처음 서독에 갔을 때 눈길을 주었던 구단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겨우 입단 테스트 기회를 준 구단이 있었는데 리그 최하위 다름슈타트였습니다. 하지만 테스트에서 보여준 차범근의 기량은 다름슈타트를 만족시켜 입단계약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름슈타트는 차범근을 입단 시키자마자 12월 31일 경기에 곧바로 데뷔시켰는데 한국인 운동선수가 세계적인 빅 리그에 데뷔해본 경험이 없던 당시 이러한 소식은 국내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간신히 분데스리가에 데뷔하였습니다. (사진은 레버쿠젠 소속으로 뛰던 말년의 모습)


박지성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 박찬호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것 이상으로 당시만 해도 온 국민은 열광을 하였고 기대가 컸으며 당연히 차범근 선수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한국의 명예를 드높여 주기를 고대하였습니다. 그 후 한 두 차례의 경기에서 돋보이던 활약을 보여준 차범근은 곧바로 분데스리가의 관심대상 선수가 되었고 차선수의 선전에 국민들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원칙은 원칙


그런데 당시 정부는 차범근 선수에게 소환명령을 내립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귀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현역 군인 신분으로 당시 성무팀 ( 공군축구팀인데 그 당시는 오늘날 尙武처럼 별도의 국군체육부대가 없이 각 군별로 팀을 운영하였습니다 ) 소속인 차범근 선수가 병역을 완전히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고 빨리 와서 군복무를 이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차범근 선수에게 원칙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사회 일각에서 차범근 선수가 어렵게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였으니 외국에서 국위를 선양 할 수 있도록 조기 제대를 시켜주어 계속 서독에서 활약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여론이 벌 떼처럼 일어났었습니다. 요즘이라면 바로 직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사회적 분위기로도 조기제대가 충분히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는데 당시 정부는 병역에 관한 원칙을 절대로 훼손 할 수 없다고 천명하였습니다. 


병역의무가 경기력을 약화 시킨다?
 

결국 차범근 선수는 추상같은 소환령에 봇짐을 싸들고 돌아와 1979년 5월까지 잔여 군복무를 마친 다음에야 다시 서독으로 향하게 되었고 서독 복귀 후 그의 기량을 눈여겨 본 명문 프랑크푸르트팀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원칙을 고수한 정부의 방침으로 군복무를 완수한 차범근 선수의 경기력이 약화되었을까요?


   원칙을 지켜 의무를 다한 차범근 선수는 다시 독일로 가서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의 독일 활약상을 대변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스트라이커 미하일 발락이 입국 일성으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발락의 어릴 적과 최근의 모습) 

차범근 선수는 많은 축구 꿈나무들이 어려서부터 본받고 싶어 하던 영웅이었습니다.

  " 이곳이 정말 차붐의 나라인가요? 어려서부터 저의 우상이었고 영웅이었던 위대한 축구선수 차붐의 나라를 방문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 (발락)

현역에서 은퇴하였지만 차범근 선수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써 아직도 명성을 남기고 있습니다.


신고
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2

강군이 오늘은 퀴즈를 하나 내봅니다.

국군의 날은 왜 10월 1일까요?

건군 61주년 국군의 날 기념 동영상 시청하시고 생각해보시길~



자!!! 답을 알려드릴께요

국군의 날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양양 동부전선에서 육군 제3사단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해 북으로 진격한 날을 기념하고 국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1956년 대통령령으로 제정한 날입니다. (정확하게는 현 육군 3사단 25연대입니다.) 

이후 76년부터 공휴일로 제정되었다가 1990년에 이르러서는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왜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인지 아시겠죠?

그럼 국군의 날이 왜 61주년인가 궁금하실분들이 계시죠? 사실 1948년 광복후 제헌헌법이 만들어지고 난 뒤 육군 및 해군이 창설되고 이후 해병대, 마지막으로 공군(49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때 공군의 창설일이 1949년 10월 1일이 되면서 오해를 하시는분들이 계시죠.^^ 그래서 국군의 올해 나이는 광복을 기점으로 61살이 된답니다.

별안간 강군이 퀴즈를 내고 동영상을 보여드린 이유는 , 이번 건군 61주년 국군의 날 행사를 소개해드릴려고 그럽니다.


작년에는 건군 60주년 행사로 건군 최초로 강남 도심에서 군사 퍼레이드도 하면서 성대하게 개최되었고, 재미있는 행사도 많았답니다. 올해도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사가 많이 열릴예정입니다.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자면

올해도 어김없이 시가행진이 대전 둔산대공원을 시작으로 ~ 타임월드~ 보라매 공원으로 이어진답니다.  또한 식전행사로  연예 병사들, 사관생도 연합응원단 등 민*군이 함께 하는 축제를 연출할 예정입니다.


'국민 축하 영상 메시지’도 그 일환으로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비롯한 군 원로와 이장무 서울대 총장, 김인식 한화이글스 야구감독, 금난새 경기도립오케스트라 예술감독 등 학계·예술계·스포츠·연예계 등 각계 저명인사들이 국군의 날을 축하하고 장병들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낼 계획입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선진강군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일반인 2,100명을 참관시키기로 하고 국방부 및 육·해·공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14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참관신청도 받고 있습니다.

 ○ 참가신청방법
- 신청기간 : '09.9.11(금)까지
- 신청대상 : 대한민국 국민(초등학교 미만 유아 동반 불가)
- 신청방법 : 참가신청 바로가기를 통해 개별신청(양식참조)
※ 참가신청 바로가기 : http://www.army.mil.kr/rok61/input.jsp
※ 신청조회/취소 바로가기 : http://www.army.mil.kr/rok61/login.htm
 - 신청결과 공지 : '09.9.18(금)/국방부 홈페이지 게시판 공시


신종플루가 유행하는 시기와 겹쳐 대규모 행사에 참여하기가 부담스러우시겠지만, 행사장 입구로부터 신종플루 의심환자는 참관이 제한되며, 체온측정도 철처히 한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분들은 참여해 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가을의 초입이네요. 가을타지 마시고 천고마비의 계절 즐겁게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신고
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4



사용자 삽입 이미지

HOT의 전 멤버 토니안과 신인 6인조 그룹 스매쉬가 향토예비군가를 녹음한후 거수 경례하고 있다.


  오늘은 재미있는 소식이 있어 강군이 아침부터 포스팅합니다.^^

  HOT의 전멤버 토니안과 신인그룹 스매쉬가 68년도에 제정된 '향토예비군가'를 리메이크 하여 불렀다고 합니다.(편곡은 이진희, 이흥선씨가 맡았습니다.
)

             
                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

             

  한번 들어 보시죠. 경쾌한 리듬과 랩으로 되어 있어서 듣기에도 따라부르기에도 아주 그만입니다.^^ (악보도 글 맨위 별첨되어 있습니다.)

 
           *향토 예비군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68년에 제정된 향토예비군가를 40여년만에 새로운 곡으로 리메이크 하여 젊은 세대에 취양에 맞게 편곡하였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비군 훈련 강화를 위해 훈련과제별 성과위주의 측정식 합격제 훈련, 서바이벌 장비를 활용한 자유기동식 쌍방훈련 등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더욱 젊고 강인한 예비군의 모습 기대해주세요.^^*

이상...용산에서 강군이었습니다.
 

신고
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3




안녕하세요? 국방부 열혈 3인방의 마스코트(?) 정예화에요.
지난 토요일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에서 열린 소외계층 지원 및 나눔문화 실천분위기 확산을 위하여 다시 사용가능한 물품을 수집, 판매하는 '봄맞이 녹색 나눔장터'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이 장터는 '아름다운 가게'와 '서울시'가 함께 주최했는데요
따뜻하고 포근한 나눔장터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름다운 나눔자어는 지난 2004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국내 최대의 정기 벼룩시장으로 중앙 행정부처에서 적극 동참하고 있는 캠페인 인데요. 국방부도 매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답니다.
특히 국방부 판매대  주변은 매해 드렇듯이  엄청난 인파로 북적이는데요.
다른 부처와 차별화된 국방부만의 비법은??????
며느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그 비법을 지금 공개합니다.


그것은 바로 좋은 일에는 언제나 국방부의 든든한 얼굴이 되어 열심히 활동해주는 연예병사들입니다.(서재경, 토니안, 노갑성, 그리고 마지막은 누구~~~아무튼 연예병사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열심히 판매중인 자랑스런 연예병사들(너무 진지하다. 도대체 뭘 판매하고 있을까?)


 

약간은 초라한 현수막

뚝섬역


국방부의 비법을 공개했으니 이제 천천히 아름다운 가게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재원씨 사진 한장만

최재원씨의 진행


이번 2009년 아름다운 나눔장터의 개장식은 '양심추적의 바른생활 사나이' 배우 최재원씨의 진행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주부들의 알뜰함이 돋보이는 다양한 생활용품들과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예쁜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


국방부 매장이 인기있는 또다른 이유.... 바로  친절한 서비스와 남대문 시장 상인들로 오해받을 만한 프로패셔널한 판매정신(무었이든지 하게되면 전투같이...치열하게.... 열과성을 다해서)


한점 한점 정성스럽게(솔직히 이 물건들은 세탁비도 안나와요. 흐흐흑...)





그 외 다양한 물품들(봄철 자외선으로부터 민감한 내 피부를 보호해 줄 것만 같은 야구모자, 고급 가죽지갑,  그리고 봄날을 겨냥한 개나리색 쟈켓과 제가 특히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신상같은 갈색구두)

이날 국방부는 정부부처 전체 기부금 2,100만원 중 250만원의 기부금액으로 전체의 약 12% 가량을 차지하는 좋은 성과로 단연 타부처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역시 단결하는 국방가족의 힘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또한 국방부는 이날 8톤 트럭 분량의 남은 물품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전달하였습니다.

이상, 국방부의 사랑나눔 실천현장에서 따뜻한  가슴의 정예화였습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5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