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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30 연평부대의 사투는 6.25당시 18포병대대와 같았다.


                       
                         그대들이 있기에
 
 

북한의 연평도 급습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몇 장의 사진들이 공개 되었다. 특히 포진지가 적의 피격으로 불타는 위급한 순간임에도 침착하게 K-9자주포를 전개하는 해병대원들의 처절한 사투와 철모가 불타고 얼굴에 화상을 입는 와중에도 맡은바 임무를 다한 임준영 상병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 주었다.

 
                                   철모가 불타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한 임준영 상병
 

그러한 연평부대의 처절했던 11월 23일 전투의 모습에서 지난 60년 전 기습남침을 감행한 압도적인 북괴군에 맞서며 살신성인의 분투를 보여 주었던 제18포병대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대와 환경이 다르지만 이번 해병대 연평부대의 투혼은 지난 한국전쟁 당시 제8사단 18포병대대(현 제2사단 예하)의 모습을 반추하는데 결코 모자람이 없고 생각되어 소개한다.

 
                                        적의 기습으로 탄흔이 가득한 포진지의 모습
 

1950년 6월 27일 새벽 4시, 그동안 국군 제8사단의 강력한 저항으로 진격이 지체되었던 북한군은 5배나 많은 전력을 앞세워 공격을 재개하였고 결국 국군 제5사단 10연대가 담당하던 연곡천 방어선을 돌파하였다. 이때 10연대의 급작스런 붕괴로 말미암아 최전방 배후까지 올라와 화력 지원을 하던 제18포병대대의 포진지도 동시에 적의 전면에 노출되는 위기에 빠졌다.
 

                                      창군 초기 국군의 유일 중화기였던 M-3곡사포
 

만일 이 상태에서 무작정 후퇴한다면 이동속도가 느린 포병대대 전체가 적에게 추월당하여 포위될 가능성이 농후하였다. 따라서 포병대대는 정면에서 교전하여 적의 진격속도를 누그러뜨리면서 후방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장병들의 생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군의 유일중화기와 다름없는 M-3곡사포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이처럼 단 한 문의 포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만큼 한국전쟁 초기에 우리 군의 전력은 부족하였다.

 
                               포병대대는 적을 가시권까지 끌어들여 직접 타격하였다
 

포병대대원들은 옥쇄(玉碎)의 각오로 인식표를 땅에 묻고 포병진지 전방 100미터까지 적들이 다가오도록 기다린 후 수평으로 포신을 낮추어 직접 타격하여 적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포진지로 난입한 적과 백병전을 치루며 포들을 이동시켰다. 이러한 급박한 와중에도 2문의 포가 밭에 빠져 회수할 수 없자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난 후 후퇴하였을 만큼 대대원들은 침착하였다.

 
                                           제18포병대대 순국 3용사 추모행사
 

이때 2번 포차 운전병 심우택 이병은 포 폐쇄기를 안은 채 산화했고, 통신소대 최서종 중사는 와이어 드럼을 회수하기 위해 적진으로 뛰어 들어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또한 관측반 한명화 하사는 끝까지 관측소에 남아 임무를 수행하다 순국했다. 이처럼 적에게 포위 될 위기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제18포병대대 병사들이 보여준 이러한 분전은 전쟁 당일 강릉을 점령하려던 북한의 계획을 무려 사흘간이나 지체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그대들의 분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번 적의 연평도 도발에서 압도적인 적 해안포 세력에 비해 불리한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평부대가 보여준 놀라운 사투는 밤하늘의 별처럼 국군의 자존심을 세워 준 모습이 아닐까도 생각되며 60년 전 제18포병대대가 보여준 용전과 비교하여 결코 모자람이 없다. 선배들 못지않은 투혼을 보여준 연평부대원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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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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