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부대 K-9 자주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12.20 훈련은, 어떠한 여건에서도 중단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뛰었다 !
 
 

요즘 자가운전자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라면 비싼 기름 값 일 것이다. 더불어 혹한기에 접어들면서 유류로 난방을 하는 가정의 주름살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오래 동안 잊혀 진 연탄이 최근 몇 년 전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1990년대 같은 저유가시대로의 회귀는 원유의 수요와 공급 상관관계로 볼 때 불가능하다."고 하니 이런 고유가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 생각된다.
 

               현재의 유류 수급관계로 볼 때 고유가는 계속될 것으로 예측 된다 (사진-중앙일보)
 

더불어 저유가로 인한 풍요로움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져서 이 정도의 유가 수준은 충분히 충격을 흡수 할 수 있으므로 오일쇼크(Oil Shock) 당시 같은 어려움을 겪기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그렇다면 고유가시대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예전의 오일쇼크 당시처럼 경제가 완전히 마비 될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원유가 한정된 자원이지만 다양한 노력을 병행하면 고유가 시대를 극복할 수 있다.
 

아마 40대 이하에게는 오일쇼크라는 단어가 상당히 생소하겠지만, 1974년과 1979년에 있었던 국제유가급등은 세계경제를 순식간 공황상태로 빠뜨리는 엄청난 충격파를 가져왔다. 특히 1974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배럴 당 3달러 하던 유가가 14달러(지금 물가 수준으로는 140달러 정도라고 한다.)로 폭등한 제1차 오일쇼크는 성장 초기에 있었고 경제규모도 작았던 우리나라의 생활방식을 순식간 바꿀 정도로 말 그대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1974년 오일쇼크 당시 석유를 얻기 위해 줄 선 모습
 

차량운행 제한, 연탄공급 확대 같은 원론적인 대책 외에도 요즘에는 상상하기 힘든 다음과 같은 대책도 실시되었다. 평일 오후 6시 이전 TV 방송이 금지되었고, 네온사인 간판도 사라졌으며 운동경기의 나이트 게임이 금지되었는데, 이런 조치가 단계적으로 해제된 것이 1980년대 중반 들어서부터다. 이런 고난의 시대(?)에 군이라고 예외 일수는 없었다. 다음은 오일쇼크 당시였던 1974년에 전차병으로 근무하였던 J씨의 경험담이다.
 

                                 한때 국군의 주력이었으나 현재는 퇴역한 M-47전차


그의 회고에 따르면 계속하여 이런 식으로 훈련 했던 것은 아니지만 오일쇼크가 닥치자 당시 전차병들은 훈련장을 뛰는 것으로 기동훈련을 많이 대체하였다고 했다. 5인 1조로 구성된 M-47 전차병들이 한데 모여 자신들의 전차가 기동한다고 가정하고 예정방향으로 깃발을 들고 구보하는 식으로 훈련을 하였던 것인데, 알다시피 지상의 왕자인 전차들이 엄청난 연료를 소모하지만 그렇다고 훈련을 중단할 수 없어서 선택하였던 고육책이었다.

 
                                전차병들이 마치 보병처럼 뛰어다니며 훈련하여야 했다
 

최근 벌어진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서 연평부대 K-9 자주포대원들이 보여준 투혼은 평소 실전과 같은 훈련을 거듭하였기 때문에 즉각 대응할 수 있었던 증거다. 훈련은 모든 것이 충분히 지원되는 좋은 환경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좋겠지만 혹시 그렇지 못하더라도 결코 중단될 수는 없다. 오일쇼크 당시 전차병들은 위에 언급한 예처럼 훈련량을 늘이는 방법으로 질적 부족분을 보충하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던 것이다.

 
                             철저한 훈련 덕분에 위기의 순간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전차에 탑승하였다고 가정하고 전차병들이 무리지어 깃발 들고 뛰어다닌다고 상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 나라전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훈련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고 숙연해 지기도 하다. 그 어려웠던 시기에 이런 식으로나마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이들은 애썼던 것이었고 그들의 노고덕분에 대한민국은 발전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2차 오일쇼크 당시의 신문보도
 

사실 오일쇼크는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비록 그 당시처럼 고통스런 경험이 반복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할 것이다. 먼저 사용하지 않는 전원의 코드를 뽑는 사소한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