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아르헨티나 전쟁'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3.25 포크랜드 항공전 -제3편- (1)
  2. 2011.03.23 포크랜드 항공전 -제 2 편-
  3. 2011.03.23 포크랜드의 항공전 -제1편-








포크랜드 항공전 -제3편-


이 전쟁에서 영국 해군의 씨 해리어기와 공군의 해리어[GR.3]기는 전쟁 전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그 성능과 내구성이 입증되었다.


참전 용사인 겟지 예비역 해군 중령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해리어기는 1,500회 출격을 했고 보유기는 98%의
가동률을 보였습니다.“


이틀 뒤 영국군이 확보한 교두보를 완전히 장악하고 섬의 내륙으로
진격해 들어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순간에 아르헨티나 해군의 마지막 남은 스카이호크기 4대가 덮쳐 들었다.


이들은 영국 해군 호위함인 앤티롭를 공격했다.

아르헨티나 해군의 칼로스 린케 대위가 다시 이 출격에 나섰었다.


“공격 접근 비행 마지막 3분 동안 나는 편대장인 과다그니니와 함께 
적 함대에 돌격했었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영국 함 브로드스워드에서 발사한 씨 다트에 맞고 전사했지요. 나는 나의 전우이자 편대장을 잃고 말았습니다."


네 대의 스카이호크기는 앤티롭에 두 발의 폭탄을 투하해서
함체에 큰 구멍을 내게 했다.


그 날 밤 불발탄인줄 알고 방심했던 두 발의 명중 폭탄 중에서
한 발에 지연신관이 장착되어 있어서 뒤늦게 폭발했다.


함에 큰 화재가 일어나서 다음날 아침에 앤티롭은 침몰하고 말았다.


                                        침몰전 화재가 발생한 앤티롭



앤티롭이 침몰한 날 험스에서 이륙하려던 씨 해리어기가 추락해서 고든 바트 중령이 전사했다.그리고 하루 동안은 조용했다.



                                   아르헨티나 공군 사령관 라미 도조 장군.
                           포크랜드 전쟁에서 죽을 쑨 육군과 달리 공군은 선전해서 
                           한때 국민적 인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5월 25일은 아르헨티나 독립 기념 19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런 의미있는 날에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함대 사령관 존 우드워드 제독은 함대를 포트스탠리 동쪽 60마일 해상까지 진출시켰다.


씨 해리어기들에게 왕복 시간을 줄여서 더 긴 체공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대공 장비가 잘 된 구축함 브로드스워드와 코벤트리를
산 카르로스 만 북쪽에 배치하였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전폭기들을 유인할 디코이[사냥에서 들새나 들짐승을 사정거리 안으로 유인하기 위하여 만든 모형 새]의 역할을 했다.
과연 이날 아르헨티나 해공군 여섯 대의 스카이호크기들이 출격했다. 두 대는 기체 이상으로 돌아가고 네 대가 두 척의 영국 구축함에게 육박했다.


씨 해리어기기들은 네 대를 보았으나 브로드스워드로부터
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예정이니 거리를 두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틀 전 엔티롭을 공격했던 링케와 그의 새 편대장이 브로드스워드에
그대로 돌진하여 폭탄을 투하했다.


세 발의 폭탄은 명중하지 않았고 한 발은 선수를 뚫고 다른 쪽 현으로
빠져서 바다에 떨어졌다.


다른 두 대는 코벤트리로 저공 돌진했다.
씨 해리어기들은 이들 스카이호크기를 보았으나 역시 대공 미사일을 발사할테니 거리를 두라는 교신을 받고 그저 지켜만 보았다.


코벤트리는 씨 다트 한발을 발사했으나 명중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의 마리아노 베라스코 중위가 투하한 세 발의 폭탄이 코벤트리에 명중해서 모두 함체 내부에서 폭발하였다. 코벤트리는 전복되어 기울다가 침몰하였다.


                                    침몰한 영국 4,800톤급의 코벤트리 함


아르헨티나의 스카이호크기는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해군이 최고 전과를 올린 날이었다.


한편 같은 날 두 대의 슈페르에땅다르기들이 각기 프랑스제
엑소세 미사일을 장착하고 출격했다.


이들은 영국 함대 레이다 망 훨씬 북쪽 으로 날아가서 C-130 허큐리스기를
개조한 급유기에서 연료를 공급받고 남하했다.


아르헨티나 해군은 영국 해리어기들이 모두 포크랜드에서 멀어지면서
급강하해서 레이다에서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항모의 위치를 숨기기 위한 저공 비행이었다.


잠적하는 위치는 각기 달랐지만 방향은 한 곳이었다.
아르헨티나 해군은 그 방향을 뒤지면 영국 기동함대의 주력 항공모함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아르헨티나 해군은 며칠 전 슈페르에땅다르기들을 이 방향으로
출동시켜 보았으나 연료 부족으로 돌아와야 했다.


해군은 급유기를 동원해서 급유를 받고 여유 있게
수색을 해볼 작정이었다.

이 날은 운이 좋았다. 슈페르에땅다르기가 영국 항모에서 발신하는 레이다 전파를 잡은 것이었다.


두 기는 즉시 더 강하하여 단 15미터의 저고도로 레이다 추정
발신 위치로 비행해갔다.


이들의 앞에는 씨 해리어기들이 모두 출동하고 단 몇 기의
초계 엄호만 받고 있는 항모 험즈가 있었다.


                                            영국 항공모함 험스



그 뒤에 산 카르로스 만으로 향하고
있는 화물선 아트란틱 컨베이어호가 있었다.

영국 항모 험즈 주변 네 귀퉁이에는 네 대의 링스 핼기가 
적 함대함 유도탄을 기만하기 위한 위장 비행을 하고 있었다.[영국의 앤드류 왕자가 이 들 조종사들 중의 한명이었다.]


40마일 밖에서 기수를 쳐들고 고도를 높인 슈페르에땅다르기는
짧게 레이다를 작동 시켜서 영국 항모 험스의 위치를 확인했다.


두 슈페르에땅다르기들은 즉시 두 발의 엑소세 미사일을 발사했다.
발사할 때의 거리는 20마일이었다.


험스는 슈페르에땅다르기가 쏘는 전파를 감지하고, 즉시 함의 대공화기들이
최대한 화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급 변침(變針)함과 동시에 날아오는 엑소세를 기만하기 위해서 채프[다량의 은박지]를 발사했다.


엑소세 미사일 한 발은 함에 미치기 전에 바다에 추락하였다.
한 발은 험즈를 향하여 계속 날아왔으나 함의 상공을 통과해버렸다.


그러나 함의 상공을 통과한 엑소세 미사일은 아무런 방비책도 없던
아트란틱 컨베이어 호를 탄두의 작은 레이다로 감지하고 쫓아갔다.


엑소세 미사일은 선체의 측면을 부수고 선내에 들어가서 폭발했다.
선내에는 영국 공군의 대형 헬리콥터 C-47 치누크 네 대와 각종 장비와 보급품 그리고 대량의 연료가 있었다.


치누크 한 대만이 이륙하고 있어서 다행히 살아남았다.
대형 헬기인 치누크들은 상륙한 영국군의 포트스탠리 점령 작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장비들이었다. 아트란틱 컨베이어 호는 며칠간 불에 타다가 침몰하였다.


포트스탠리의 비행장에 있는 아르헨티나 군의 레이다는
전쟁기간 내내 영국군에게 상당한 괴로움을 주었었다. 포트스탠리 비행장은 벌칸 폭격기의 장거리 폭격과 씨 해리어기들의 연다른 공격,그리고 영국 해군 함의 포격에도 그 저항을 멈추지를 않았다.


레이다는 영국 전투기들의 상황을 모니터하고 아르헨티나 본토에 연락해서
공습을 기획하게 하였다.


또 포트스탠리 공항은 아르헨티나 군에게 젖줄과도 같았다.
포크랜드의 아르헨티나 군에게는 밤마다 본토에서 저공비행으로 날아오는 C-130 허큐리스 수송기가 군수품과 무기 그리고 차량과연료들을 보급했다.


이 공항에는 영국 전투기들을 요격 할 제트기도 없었지만 대공 방어망은 여전히 튼튼했다.
비행장은 프랑스와 독일이 합작 생산한 로랑 대공 미사일과 영국제 타이거캣 미사일에 의해서 방어되고 있었고 여기에 스위스제 35mm 외리콘 쌍열 대공포가 이를 보조 하고 있었다.


영국 해군은 밤에도 해리어기를 출격시키는 것이 너무 과중한 임
무였었고 해리어기가 장비한 블루 폭스 레이다는 저공으로 날아오는 허큐리스 수송기를 발견할 룩 다운[look down]능력이 거의 없었다.


※ 영국 해군기에게 격추당한 유일한 허큐리스기는 야간 보급 비행 때 당한 것이 아니라 6월 1일 주간에
  
영국 해군 함대를 정찰하러 섬의 동북 쪽으로 장거리 초계에 나섰다가 씨 해리어기에게 격추 당한
   TC -63기였다.

   이 허큐리스기는 아르헨티나 해군이 보유한 단 한 대의 록히드
P-2V 넵춘기가 부품 부족으로 비행을
   못하게 되자 대신 초계에
나섰다가 격추 된 것이다.


                                            포트 스탠리 공항



포트스탠리 공항의 레이다를 무력화시켜야 할 필요를 절감한
아센션 섬의 영국 공군에게는 미국에서 공급받은 레이다 기지 공격용 슈라이크 미사일이 있었다.


슈라이크 미사일은 레이다가 쏘는 전파를 쫓아가서 파괴하는
레이다 파괴 전용 미사일로서 월남전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포트스탠리 공항의 레이다 파괴에는 이 미사일이 필수적이었다.
포크랜드 전쟁에서 출동한 다섯 대의 벌칸기 중 두 대에 이 미사일이 장비되어 있었다.


5월 30일
벌칸기의 첫 출동에 포트스탠리 공항의 레이다가 파괴되었지만 단 하룻 만에 다시 활동을 개시하였다.


6월 2일
벌칸기는 다시 장거리를 출격하였다. 한번 당한 일이 있던 스탠리 공항의 레이다는 침묵을 지켰다. 벌칸은 40분이나 공항 상공을 배회했으나 레이다는 작동되지 않았다.


조종사 닐 맥도걸은 포트스탠리 공항 폭격시 기지를 발휘하였다.


그는 밤 하늘에 벌칸기 4발 엔진의 요란한 폭음을 뿌리며 공항에 저공으로 접근하였다.


유혹을 참지 못한 대공 포대의 레이다가 작동되었다. 맥도걸은 즉시 슈라이크 미사일을 발사해서 대공 포대 한 곳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귀환 길에 벌칸기의 급유 봉이 파괴되어 주유를 받기가
불가능해지자 그는 브라질로 기수를 틀어 리오데자네이로에 공항에 불시착했다.


그는 일주일간 억류되었다가 석방되었다.

비밀 무기인 슈라이크 미사일은 브라질 당국에 압류되었다.


             영국 폭격기의 슈라이크 미사일에 명중 된 아르헨티나 군의 미제 웨스팅하우스 레이다


5월 30일 아르헨티나 해군은 단 한 발의 엑소세 미사일만 보유하고 있었다.
이 금쪽 같은 엑소세 미사일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작전이 꾸려졌다.


두 대의 슈페르에땅다르기 중 한 대는 한 발만 남은
엑소세 미사일을 장비하고 한 대는 그냥 출격했다.


이들의 목표는 영국 항모의 격침이었다.
슈페르에땅다르기에 동행하는 스카이호크기가 있었다. 모두 네 대의 아르헨티나 공군 A-4C기들이었다.


해상 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슈페르에땅다르기를 따르다가
엑소세 미사일이 발사되면 엑소세 미사일을 따라서 영국 항모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5월 30일
이 별스런 편대는 아르헨티나 남부 리오그란데 기지를 출발했다. 두 대의 KC-130기들이 중간에서 연료를 보충해주고 돌아갔다.


아르헨티나 해공군 혼성 편대는 적 항모가 있다고 생각한
포크랜드 동남방을 향하여 190 마일을 날아갔다.


경계 거리에 들어서자 이들은 짙은 구름과 마침 내리는 장대비를
뚫고 강하하여 15피트 상공에서 비보라 치는 해면에 착 붙어서 비행을 계속했다.


영국 함대는 잠수함 초계선의 경고로 그들이 멀리서 날아오는 것을
알았으나 이들이 저공으로 내려가자 항적을 잃었다.


조금 뒤 슈페르에땅다르기가 탐색을 위한 레이다를
짧게 가동하자 이를 알아채고 비상 대응에 들어갔다.


슈페르에땅다르기의 조종사는 짧게 가동한
레이다에 나타난 함영(艦影)이 영국 항모 인빈시블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아르헨티나 해군 항공대가 보유한 마지막 엑소세 미사일을 발사했다. 영국 함대에서 24마일 떨어진 지점이었다.


발사 뒤 두 대의 슈페르에땅다르기들은 기수를 돌려
기지로 귀환했다.



                                    엑소세 미사일의 함체 돌입 순간


뒤에서 따라오던 공군의 스카이호크기들은 앞으로 빨리 사라지는
엑소세를 힘겹게 뒤따랐다.


엑소세 미사일이 노린 영국 함정은 항모가 아니라 구축함 HMS 아벤저와 엑스터였다.
엑스터가 덩치가 커서 슈페르에땅다르기 조종사가 레이다 화면만 보고 거대 항모로 오해 했던 것이다.


두 척의 영국 구축함에 네 대의 스카이호크기들이 쇄도했다.
엑스터에서 발사한 씨 다트 대공 미사일이 두 대의 스카이호크기를 격추시켰지만 나머지 두 대는 계속 육박해 들어왔다.


두 대는 각각 두발씩의 500파운드 폭탄을 투하했으나
모두 빗나갔다.


폭탄을 투하한 스카이호크기들은 북방 해역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허큐리스 급유기를 향하여 기수를 돌렸다.


포크랜드의 전쟁도 두 달이 지난 6월이 되자 영국이 공격할 지상 목표도
많이 감소했고 큰 손해를 입고 저항력을 거의 상실한 아르헨티나 공군이나 해군의 위협도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포크랜드 섬 내륙으로 진격해간 영국군은 구스그린을 점령하고
더 진출해서 수도 포트스탠리 남쪽 20마일 지점의 피츠로이에 집결하여 최후의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쟁은 마감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머피의 법칙이 이 순간에 찾아왔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반격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공군은 솥바닥을 있는대로 긁어서 마지막 일격을
가할 편대를 구성했다.


6월 7일이었다. 시계가 불량한 틈을 타 두 척의 양륙함이 피츠로이 만에 정박해서 병력과 화물들을 양륙시키고 있었다.


6대의 대거기와 8대의 스카이호크기, 그리고 미라주3기 두 대까지
가세한 대 습격대가 구성되어 출격했다.



                                               포크랜드 지도


6대의 대거기는 피츠로이 만에 있는 HMS 프리머스를 공격했다. 네 발의 폭탄이 명중했으나 한발도 폭발하지 않은 불발탄이었다. 5대의 스카이 호크기는 목표에 접근하자 두개 편대로 나누어서 영국 상륙함에 폭탄 투하를 했다.


예상치 못한 공습에 대공포화도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대공포화가 미약한 것을 보고 아르헨티나 스카이호크기들은 고도를 높여 폭탄의 신관이 확실히 작동되도록 하였다.


세 발의 폭탄이 한 척의 트리스트람 양륙함에 명중하여서 모두 폭발하였다.
다른 한 척에도 명중하여서 큰 불이 일어났다.


아르헨티나 스카이호크기들의 마지막 폭격으로 상륙함에서
상륙을 대기하던 병력 50명이 전사하고 57명이 중상을 입었다.




                             전쟁 막판 피츠로이에서 공격당한 상륙함 트리스트람


포크랜드 전쟁 중 단일 폭격으로 입은 최대의 인명피해였다.
피츠로이 만에서 성공적인 폭격을 마치고 아르헨티나 기지로 돌아가던 스카이호크기 편대의 링케는 2차 공격대가 출격했음을 알았다.

링케는 그들과 교신하면서 공격 정보를 주었다.
그들의 공격이 아주 성공적이었으며 목표는 대공 방어망이 약해서 공격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고무된 2차 공격대는 일약 피츠로이로 달려 갔다.
그러나 상륙함들이 공격 받았다는사실을 긴급 연락 받은 영국 기동함대가 두 대의 씨 해리어기를 급파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었다.


2차 공격대 4대가 불타는 상륙함의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 피츠로이 만 상공에 다다랐지만씨 해리어기들에 의해 요격되었다.


이 공중전에서 영국 공군의 데이비드 모간 대위가 사이드와인더 미사일로
두 대의 스카이호크기를 격추시키고 그의 편대기 조종사 데이비드 스미스 대위가 다른 한 대의 스카이 호크기를 역시 미사일로 잡았다.

이 공중전으로 개인 전과에 두 대의 격추 기록을 추가한 모건은 격추기가 4기로 늘어나 포크랜드 전쟁 최고 격추왕이 되었다.


피츠로이만 기습을 끝으로 아르헨티나 공군기의 출격은
더 이상 없었다.


6월 14일 포트스탠리가 영국군에 함락되고 아르헨티나 군이
항복함으로서 두 달 넘게[74일] 진행된 전쟁은 끝이 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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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랜드 항공전 -제2편-

이틀 뒤인 5월 4일 아르헨티나의 낡은 P2V 넵츈[미국 록키드사 제조] 초계기는
포트스탠리 항 남쪽 85마일 해상에서 영국 기동 함대를 발견했다.


넵츈은 급상승해서 함대의 전모를 살펴보고 리오그란데
기지에서 대기 중이던 두 대의 슈페르에땅다르기에 필요 정보를 통보했다.


                                         미 록키드 사의 P-2 넵츈기


두 해군 기는 프랑스 제 함대함 엑소세 미사일을 장비하고 있었다.
슈페르에땅다르 기들은 200마일의 거리를 해면 15미터의 저공 비행으로 영국 함대에 접근했다.


목표가 가까워오자 아르헨티나 조종사 조시아는 고도를 40미터로
올리고 짧은 순간 슈페르에땅다르기의 레이다를 작동시켰다. 그는 레이다 화면에 뜬 백색 물체를 확인했다. 영국 구축함 쉐필드 함이었다.


 

                                     화재가 발생한 영국 구축함 쉐필드 함



쉐필드 함에서 20마일 더 멀리에 항모가 있었으나 조종사는 쉐필드의
대공 미사일 망을 통과해서 더 비행하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두 기는 바로 앞에 있는 쉐필드에 엑소세 미사일을 발사하고
기수를 
빠르게 돌려 그 곳을 이탈했다. 발사 거리는 12마일이었다.


슈페르에땅다기르 조종사 조시아가 짧은 시간 가동했던 레이다의 전자파는
영국 구축함 쉐필드에게 감지 당했다.


적기가 지척에 출현했음을 안 쉐필드 함의 함교(艦橋)는 당황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두 기가 발사한 엑소세 미사일 한 발은 날아 가다가 목표를 잃고
바다에 추락했으나 한 발은 12마일의 짧은 거리를 번개같이 날아 쉐필드 함의 함체 측면을 강타했다. 이어서 발생한 화재로 20명이 전사했다. 나중에 중상자 중 5명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화재가 극심해서 결국 쉐필드 함은 계속 연소하며 표류하다가 10일 뒤에
침몰하고 말았다.


영국 구축함 쉐필드가 아르헨티나 해군의 슈페르에땅다르기에게
격침당하자 영국군은 이들 5기의 육상 기지인 리오그란데 기지를 특공대로 기습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실행되기 전에 취소되었다.


대신 포크랜드 해역으로 출동했던 다섯 척의 영국 해군 잠수함으로하여금
아르헨티나 12마일 영해 밖에서 초계선을 만들어 공격해오는 아르헨티나 전투기들에 대한 조기경보를 하도록 하였다.


구축함 쉐필드가 격침 당하는 날은 영국 해군에게 불운한 날이었다.
포크랜드 서남단에 있는 구스그린이라는 작은 도시 인근의 비행장을 공습 나갔던 항모 험즈의 씨 해리어기도 대공포에 격추되었다.


조종사 닉 테일러 대위는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쉐필드 함의 피해에 놀란 영국 기동 함대는 섬에서 더 멀리 떨어진 해
역으로
일단 이동했다.


씨 해리어기의 격추가 주는 교훈은 씨 해리어기가 결코 대지 공격에
적합한 기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씨 해리어기기는 해상 초계와 제공권 확보에만 사용하기로 결정 되었다.
포크랜드의 대지 공격은 곧 수송선에 운반되어 도착할 영국 공군의 해리어기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영국 공군의 육상용 해리어 기[GR.3기]들은 지상 공격을 위한
컴퓨터 시스템과 항법 시스템들을 장비하고 있어서 더 안전하고 더 정확하게 폭격을 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씨 해리어기를 찾아 온 불운은 계속 되었다.
이틀 뒤 공중 초계 중이던 두기가 항모의 레이다에 나타난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안개 속으로 사라진 뒤에 영원히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두 조종사들, 존이튼 존스와 알커티스는 함대 항공대의 가장 긴
비행 시간을 가진 노련한 조종사들이었다.


두 기의 실종으로 두 척 항모를 주축으로 하는 기동 함대는
겨우 18기의 씨 해리어기만 가용하는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불운은 아르헨티나 공군에게도 닥쳤다.


5월 9일
4전투 비행단 소속 스카이호크기 두 대가 구름 속을 비행하다가 산에 부딪혀 추락했고, 사흘 뒤 영국 함대를 공격하던 스카이호크기 편대 세 대가 영국 함대에서 발사한 씨 울프 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다.


아르헨티나 해공군이 초 저공에서 투하한 영국제 1,000파운드의 폭탄은
잘 폭발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발견한 아르헨티나 조종사들은 적어도 60미터 이상의
은 고도로 상승해서 폭탄을 투하하여야 했다. 이 고도는 영국군의 미사일 명중이 가능한 위험한 고도였다.

아르헨티나 군은 저공에서 왜 폭탄이 작동되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는 고도가 낮은 위치에서 투하할 경우 폭발로 인해 기체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특별히 세팅된 신관 때문이었다.[타이머 역할을 하는 폭탄 후미의 프로펠러가 어느 정도 돌아야 신관이 작동했는데 영국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비밀로 했던 이 사실을 영국의 BBC가 보도하는 바람에 아르헨티나도 알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폭탄에 저공에서도 안전하게 투하가 가능하도록 급조치를
해서 6월 8일부터 이 폭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불발탄은 계속 발생했다.

5월 18일 영국 화물선 아틀랜틱 컨베이어가 영국 공군의 해리어기[GR.3]와
해군의 씨 해리어 기 두 종의 전투기와 필요 물품을 아센션 섬으로부터 운반해왔다.



                               아트란틱 컨베이어 함-나중에 엑소세 미사일에 침몰


공군과 해군의 해리어기들은 컨베이어 호의 선상에 두 개의 컨테이너로 임시 가설한 이륙장에서 수직 이륙하여 영국 항모로 이동해왔다. 전쟁 중 파견 된 공군의 해리어기[GR.3]는 총 8대였다. 이들은 두 항모의 전력을 크게 보강시켰다.


5월 하순이 되자 작전의 포커스는 포크랜드 북쪽
산 카르로스 만이라는 곳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이 곳은 영국군이 상륙하기로 예정된 곳이었다.

아르헨티나 해공군은 섬들 사이의 좁은 해협에 위치한 산 카르로스 만을 공격하기 위해서 해협 요소요소에 배치된 영국 호위함들의 대공 화망을 뚫어야 했다. 나중에는 영국 육군의 대공 미사일 부대까지 배치되었다.

영국군은 이곳을‘폭탄 골목’이라 불렀다.
아르헨티나 공군이 이런 위험한 곳에 죽자살자 뛰어들어 수 없는 폭탄 공격을 가했었기 때문이다.


5월 21일 영국은 이 산카르로스 해협의 해변에 상륙 작전을 개시하였다.
총 4천명의 영국군이 이날 산 카르로스 만으로 상륙했다.


원래 이곳이 인적이 드문 곳이고 일기까지 불순해서 아르헨티나 군은
상륙 초반에는 저지를 위한 아무런 작전을 하지 못했다.



                                             포크랜드 전투 상황도 
        산 카르로스 만과 구스 그린,피츠로이만, 포트 스탠리 등 이 글에서 등장하는 지명이 다 보인다.


교두보를 확보하고 각종 장비와 물자를 양륙하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날씨가 맑아지면서 시계가 좋아 졌다.


영국군이 상륙을 개시한 것을 안 아르헨티나 공군은
결사적인 파상공격을 해왔다.


첫 공격에 나선 전투기는 6기의 이스라엘제 대거기들이었다.
이들은 남쪽을 경계하는 영국군의 허를 찔러 북쪽 바다에서 부터 기습해왔다.


첫 공격에서 투하한 폭탄은 화물선 안트림 호에 명중하여
선내로 깊이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천행으로 폭탄은 불발탄들이었다.
아르헨티나 공군의 미구엘 카레로 대령은 그 때 중위로서 공격에 참여했었는데 후에 이렇게 회상했었다.

“우리는 단지 7,500리터의 연료만 가지고 출격했습니다.
폭탄은 두 발만 적재했지요. 이것만 해도 전투기의 한계 적재량을 오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르헨티나 남부 포크랜드 맞은 편 본토 티에라델푸에고에
있는 리오그란데 기지에서 이륙하였다.


“ 이륙 후 바다 위를 15분간은 무선 항법장치로, 그리고 나머지 15분은 
지상 레이다에 유도되어 비행했었지만 남은 비행은 나침반과 시계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공군 소장인 호라시오 미르 곤자레스는 그때 소령으로
공격 편대를 이끌고 있었다.


“우리는 리오그란데 기지에서 이륙해서 포크랜드까지 한 시간 45분정도
비행해서 공격하고 되돌아 왔습니다. 기지 귀환 비행은 단지 45분간의 여유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기지에 착륙할 때 연료 탱크의 연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상륙 첫날 터보 프롭 엔진 두 기가 달린 아르헨티나 토종 공격기
푸카라도 용감하게 함대를 공격했지만 아덴트 함에 격퇴되었다.


                                     아르헨티나 제 쌍발 터보 프롭 공격기 푸카라


이어 전투 초계 중이던 영국 조종사 샤키 와드는 아르헨티나 공군의
후안 톰바 소령이 조종하는 이 토종 공격기를 추격해서 30mm 아덴 기관포로 사격했다.

그러나 톰바 소령은 느리고 둔한 그 쌍발 공격기를 노련하게 조종해서 회피 기동을 했다.


씨 해리어기의 첫 공격에 수평타가 날아갔고, 두 번째 공격은 오른쪽 엔진을 파괴하였고,
세 번째 공격은 왼쪽 엔진을 날려버렸다.
그래도 이 쌍발기는 당분간 비행을 계속하다가 추락했다. 톰바 소령은 탈출해서 생존했다.


그는 나중에 구스그린에서 진격해온 영국군에게 붙들려 포로가 되었다.
그는 영어를 잘해서 이후 영국군 최고의 통역장교로 활동을 하였다.


전 시대적인 이상한 전투기를 조종하여 용감하게 영국 함대를 공격한
그는 영국 함대 장병들에게 영웅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날 영국 해군 조종사 닐 토마스와 마이크 브리센은 함대에 접근하는
네 대의 스카이호크기를 요격해서 한 기를 확인 격추하고 한 기는 미확인 격추했다.


그렇게 전투기들이 격추되는데도 아르헨티나 전투기들은 계속 날아왔다 .


앞에서 인용했던 편대장 곤자레스 소령은 땅에 닿을 듯한 저공으로
산 카르로스 만 언덕을 넘어갔고, 시야에 영국 상륙함대가 들어왔다.


그는 영국 상륙함 중 13척이 대공 유도 무기 체계를 갖춘 호위함들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
더 다가가 이들의 대공 화망에 뛰어 드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어쩔 수없이 그는 가장 가까운 호위함에 폭탄 한 발을 던지고
역시 해면을 거의 미끄럼 타듯 비행하며 수많은 수송선들 사이를 빠져 도주하였다.


그러나 함대 접근 중 그의 편대기 한 대가 영국군 씨 해리어기 조종사
롭 프레데릭슨 중령에게 격추 당했다.


뒤이어 나타난 6대의 스카이호크기가 호위함 아르고나트에
두 발의 1,000파운드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두 발의 폭탄은 함내 깊숙이 뚫고 들어왔지만 폭발하지 않고 처리되었다. 그래도 함의 내부에 상당한 파손을 입혔다.



                                       아르헨티나 해군의 A-4 스카이호크 기


앞서 말한 곤자레스 소령의 편대는 호위함 아덴트 함에 저공으로 육박하여 폭탄을 투하 했는데 그 중 1,000파운드 폭탄 한 발이 명중하였고 두 발은 함 옆 해면에 떨어졌으나 폭발하지 않았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아르헨티나 공군 5비행단의 스카이호크기들도 상륙 교두보로 
돌격해 들어왔다. 이미 대파된 아덴트 함은 두 발을 더 맞았다.


세 대의 대거기들이 뒤따라와서 구축함 브리리안트 함에
기총소사를 했지만 801편대의 씨 해리어기 조종사 와드와 스티븐 토마스에게 격추당했다.


이어서 나타난 세 대의 아르헨티나 해군 스카이호크기들이 대파된
아덴트 함에 500파운드의 지연 폭탄 두발을 투하했다.


이 공격 뒤에 영국은 아덴트 함을 포기하였고, 그날 늦은 오후에 침몰하였다.


                                             침몰한 아덴트 함


영국군 상륙 작전에 출격하여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던 이들 세 대의 스카이호크기들은 무사히 귀환하지 못했다.


초계하던 800항공대의 씨 해리어기들이 기습을 가하고
도주하던 스카이호크기들을 추격해서 세 대 모두 격추시켰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공격을 멈춘 아르헨티나 해공군은 스카이
이호크기 5대, 대거기 5대, 쌍발 푸카라기 2대를 잃었다.


그 중 9기는 영국 해군의 씨 헤리어기들에게 격추 된 것이고
나머지는 영국 해군과 육군 대공포화에 희생되었다.


한편 이 상륙 작전의 첫날 포크랜드 섬의 지상 표적을 공격하던
영국 공군의 해리어기[GR.3기] 한 대와 헬리콥터 한 대가 아르헨티나 군의 대공포화에 격추되었다.


- 다음회(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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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랜드의 항공전 - 제 1 편-




포크랜드는 영국령이고 주민들도 영어를 말하는 영국인들이었지만
포크랜드를 말비나스라고 부르던 아르헨티나는 오랜 기간 동안 그 섬의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1982년 아르헨티나의 정권을 잡고 있던 군부는 포크랜드를 점령해도
영국이 그 먼 곳까지 군사력을 파견해서 탈환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말비나스 섬을 접수하기 위한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아르헨티나 군대는 1982년 4월 2일 포크랜드의 수도
포트스탠리에 상륙하여 이를 점령했다. 주둔 병력이 일개 소대도 되지 못한 영국 해병대는 항복했다.



                                             포크랜드 전쟁 지도
                         포크랜드 제도의 위치와 아센션 섬,그리고 사우스 조지아 섬


비록 노쇠했지만 자존심에 먹칠을 당한 대영제국의 국민들은 격앙했다.

철나비라는 별명을 가진 마가렛 대처 여사는 TV에 나와 대노한 모습으로 포크랜드의 탈환 계획을 공식 선언했다.


영국은 두 척의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원정부대를
구성했다.


항모 두 척은 험스[HMS Hermes]와 인빈시블[HMS Invincible]이었다.
구형 인빈시블은 이미 퇴역이 결정되어 고철로 팔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해군의 항모 인빈시블



그러나 포크랜드가 침공 당하자 두 항모에 즉시 비상이 걸리고, 다음날에는 2개의 해군 씨 해리어기 항공대가 두 항모에 배치되어 출동 준비에
들어갔다.


포크랜드 탈환을 위한 코포레이트 작전이 발동 된 것이다.

※ 영국 해군이 사용하는 씨 해리어기는 공군의 해리어기[GR.3로 통칭]와 외양도 비슷하고 수직 이착륙하는 것도 같았으나 다른 점들이 있었다.


씨 해리어는 소금기 많은 해상 운용을 위해서 주요 기체 부품에
부식 방지 처리가 되어 있었고, 좁은 항모에서 이착륙에 필요한 양호한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서 조종석의 캐노피 방풍유리도 전방이 잘 보이도록 더 둥글게 튀어 나와 있었다.


두 항모는 스키 점프대 같은 비행 갑판이 있어서 씨 해리어기는 수직 이륙하는 것 보다 더 많은 폭탄을 적재하고 출격할 수가 있었다.

블루 폭스라 불리는 해군 씨 해리어기의 레이다도 성능이 강력해서 유효 탐지 거리가 더 길었고 공중 뿐만아니라 해상 탐지 능력도 있었다.

씨 해리어기는 아직 신 기종이라서 그 성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중이라 실전 능력은 미지수였다.


 

                                          영국 해군의 씨 해리어기


그러나 이 전투기는 포크랜드 전쟁에서 서방 세계에서 만든 잡다한 전투기들과 한판 승부를 겨루어 그 능력을 입증했다.

출동 전 해군은 조종사가 부족해서 공군[royal air force]에 부탁하여 두 명의 해리어 조종사를 지원 받았다.


이들은 수송함으로 후속하는 예비 항공대에 배속되어서
전쟁 중반기부터
출격을 시작했다.


씨 해리어기에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미국이 급거 공급한 공대공 미사일 사이드와인더[ Sidewinder-L ]
L형은 해군 조종사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사이드와인더 L형 신형 유도탄은 아주 예민한 최신형 센서가 있어서
조준기 밖에 있는 항공기도 추적해서 격추 시킬 수 있는 광각(廣角) 발사 능력이 있었다.


한 군사 소식통은 이 미사일이 재래 사이드와인더와 달리
적기의 후방이 아니라 전방에서 발사해도 적기의 기수에서 공기 마찰로 발생한 미세한 열을 감지해서 명중하기 때문에 적기에 대한 정면 발사가 가능하다고 말한 바있다.



                                            사이드와인더 9- 엘 형


영국 해군 주력 함대는 1982년 4월 6일 영국 포트머스 항을 출발했다. 함대는 먼저 남대서양 영국령 아센션 섬에 도착해서 지중해에서 이동한 다른 영국 함대와 만나 포크랜드 탈환 기동 함대를 꾸려 4월 18일 4,000마일 남쪽의 포크랜드 제도로 출발했다. 씨 해리어기가 출격 개시가 가능한 해역 도착 예정은 4월 30일이었다. 포크랜드 공략 기동 함대 사령관은 존 샌디 우드와드 해군 소장이었다.


 

                                     함대 사령관 존 샌디 우드와드 제독


한편, 아르헨티나 해군들도 모두 출동해서 4월 29일 작전 위치에 배치 완료된 상태였다.


아르헨티나 해군도 '5월 25일'함[ARA Veinticinco de Mayo]이라는 영국제 구식 항모를 보유했었고, 해군 항공대는 미 해군기였던 A-4 스카이호크기와 프랑스제 슈페르에땅다르 함재기와 엑소세 대함 미사일로 장비 되어 있었다.



                    아르헨티나 5월 25일함 - 영국 항모 였다가 아르헨티나에 매각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공군은 여러 기종의 잡다한 전투기와 공격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해군과 같은 스카이호크기도 있었고 프랑스제 미라주기,
이스라엘에서 미라주5기를 복제 생산한 대거기, 영국제 칸베라 폭격기, 아르헨티나 고유 디자인인 쌍발 터보 프롭기인 푸카라 공격기도 있었다.


아르헨티나 육해군의 전체 보유기는 대서양에서 출동하는 영국 함재기 보다
10배나 더 많았지만, 포크랜드로 출격 가능한 아르헨티나 남부 리오그란데 기지에 전개된 전투기는 36기뿐이었다.


나중에 여러 기가 추가되어, 포크랜드에서 싸운 아르헨티나 전투
기는 50기였다. 영국 기동 함대가 가동한 씨 해리어기는 총 34기였다.

첫 항공전 개시의 포문은 포크랜드 공략 함대가 도착하기 전인
4월 25일, 포크랜드에서 남쪽으로 800 마일이나 떨어진 사우스 조지아 섬에서 열렸다.


영국 해군의 웨섹스 헬리콥터가 사우스 조지아 섬 그리트비켄 항에
정박중인 아르헨티나 잠수함 산타페[산타페는 미 해군 구피급 잠수함]를 폭뢰로서 공격한 것이다.


산타 페는 격침되고 섬을
점령하고 있던 소수의 아르헨티나 군은 영국 코만도 부대에게 항복했다.


영국 코만도 부대는 이미 포크랜드로 향하고 있던 27,000톤급의
보급 선, 타이드스프링호에 승선하고 있던 병력이었고, 이 대형 수송선은 급히 파견한 여러 척의 영국 전투함대와 같이 사우스 조지아 섬을 탈환했었다.


뒤이어 영국 공군이 포크랜드 탈환 작전의 서막을 여는
대 장거리 폭격을 단행했다.


출격한 날은 5월 1일 이었다. 동원한 폭격대는 와딩톤 공군 기지에 소속된 아브로 벌칸 폭격대였다.



            벌칸기는 50년대 냉전 시기에 소련에 핵폭격을 할 목적으로 제작된 4발 델타익 폭격기였다. 
            
25살이나 된 이 낡은 폭격기들은 곧 퇴역 예정이었다. 그러나 먼 남쪽에서 발발한 전쟁은 
            이들 노 폭격기들에게 은퇴 전 마
지막 화려한 실전 활약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이들 폭격기들은 영국에서 장거리를 날아 먼저 아센션 섬으로 이동했다.



남대서양을 세로로 가로질러 왕복 15,000키로라는 사상
최장의 출격 거리를 기록한 이 첫 도양(渡洋) 폭격에는 두 기의 벌칸기만 출격했으나, 동행한 빅터 급유기는 무려 11기였다.



                            영국 헨드리 페이지 빅터 폭격기를 개조한 급유기도 있다.


첫 출격에서 벌칸기 한대의 엔진 고장으로 급유기 한대는
임무를 포기하고 아센션 섬으로 돌아갔다.


위더 대위의 벌칸기와 10기의 빅터기는 그대로 긴 거리를 직행해서
포크랜드 중심 도시인 포트 스탠리 공항 활주로를 야간 폭격했다.


3만 5천 피트의 고공에서 21발의 폭탄이 투하되었는데 단지 한 발만이
명중하여 활주로에 큰 구멍을 팠을 따름이었다.


이틀 뒤에 똑같이 대군의 급유기를 동행하고 포크랜드를 찾아간
벌칸기 한대는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초기 벌칸기들의 폭격은 폭격 타격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수확을 거두었다.


아르헨티나 공군은 단 한 개의 구멍을 파기 위에서 15,000킬로를
날아 오는 이 미치광이들이 비행거리가 휠씬 짧은 북쪽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인들 안 찾아오겠느냐는 불안에 다수의 전투기[미라주기]들을 수도 주변에 배치해서 포크랜드 공격 항공력을 그만큼 약화시켰다.


5월 1일 상륙이 임박했다고 생각한 아르헨티나 공군은
무려 36기의 전폭기를 출격시켰다.


작전 해역에 도착한 항모 인빈시블에서 이륙하여 공중 초계[COMBAT
AIR PATROL] 비행을 하던 씨 해리어기들은 함대 레이다의 유도로 서쪽에 나타난 비행 물체들과 조우했다.


아르헨티나 공군의 미라주기 6대였다.
3만 5천 피트를 나는 미라주기들은 영국 해군의 해리어기들이 단연 강점을 가진 저공으로 하강하는 것을 주저하였고, 영국 공군은 고공 전투 능력이 뛰어난 미라주3기와 높은 고도에서 격돌하는 것을 원치 않아 두 적들은 상과 하에서 서로 흘겨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선수는 미라주기가 먼저 쳤다.
연료 부족에 조바심이 난 미라주기가 급강하해서 해리어기들과 얽혀 들었다. 영국 해군의 바튼 대위가 발사한 사이드 와인더가 미라주기의 조종석 후부를 강타해서 조종석 전체를 날려 버렸다.


동료 조종사 스티븐 토마스가 발사한 미사일은 구름 속으로 피신하는
다른 미라주기를 파손시켰다.


피격 된 미라주기는 본토 귀환이 불가능하자 기수를 포트스탠리 공항으로
돌려 비상착륙하고자했으나 공항에 배치된 아르헨티나 대공 포대의 사격에 격추되고
말았다.


같이 출격한 이스라엘제 미라주기인 대거기 3대가 함대의 일부 함정에
폭탄을 투하하고 30mm 기관포를 발사하기도 했으나 투하한 폭탄들은 모두 빗나갔다.


                                      아르헨티나 공군의 대거기
           이스라엘이 프랑스 미라주5형기를
국산화한 NESHER기가 원형으로 아르헨티나에 수입되면서
          
대거기로 이름을 개명했다.


두 대의 대거기가 역시 이스라엘제인 열 추적 샤르피르 미사일을
토니 펜폴드와 마틴 헤일 대위가 조종하는 씨 해리어기에 발사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명중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거기 한 대가 펜폴드 대위의 미사일에 격추 당하자 모두 기수를 돌려
본토로 도주했다.


포크랜드로 출격했던 아르헨티나 공군의 영국제 캔버러 폭격기
한 대도 이날 격추 당했다.



                                          영국 쌍발 공격기 캔버러


공군이 대거 출격한 같은 날, 아르헨티나 항모 '5월 25일’함도 200마일 북쪽에서 영국 함대를 공격하고자 폭탄을 장비한 A-4 스카이호크기를 출격시키려 했으나 낡은 항모의 카타펄트는 폭탄을 만재해서 무거워진 스카이호크기를 발진시키지 못 했다.


다음날인 5월 2일 아르헨티나의 순양함 벨그라노함이 영국
핵 잠수함 콘쿼러함에게 격침당하자‘5월 25일’함은 겁을 먹고 항구로 도피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바다로 나오지 않았다.


전쟁 개시 며칠 만에 상황은 아르헨티나 측에 별로 안 좋은 쪽으로
정리가 되었다.


미라주기들은 모두 벌칸 폭격기의 내습을 경계하고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올라갔고 대거기와 스카이호크기, 슈페르에땅다르기들만이
영국 기동부대의 씨 해리어기들과 맞서는 형국이 되었다.


해군기인 스카이호크기와 슈페르에땅다르기는
공중 재급유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대거기는 그 기능이 없어서 리오그란데 기지에서 포크랜드까지 간신히 왕복 비행 할 능력밖에 없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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