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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2 '악마의 유산' 올림픽 성화 (1)

   악마의 세 가지 유산 중 하나였던 올림픽 성화
 
 
 
제2차 대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히틀러라는 희대의 독재자와 나치라는 전범 집단을 긍정적으로 볼만한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인류사에 끼친 악행이 쉽게 치유되기 힘들만큼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 조차 동동장소에서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법적으로도 나치에 대한 모든 것이 부인되고 부정될 정도입니다.

 
                          히틀러와 나치는 두말할 필요 없는 인류사의 악입니다
 

하지만 한 시대를 좌지우지하였던 인물과 집단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아직도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시대에 뒤진 인종주의를 찬양하는 네오나치 ( Neo NAZI ) 같은 극소수의 추종세력들에게 히틀러와 나치는 아직도 영웅시되고 본받아야 할 교범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는 인간세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가끔 어처구니없는 극소수의 추종세력이 아직도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들 악마들이 남긴 유산 중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전통이나 문명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있습니다.  애써 부인하고 싶지만 이것들을 악마의 긍정적 유산으로 지칭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세 가지 예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 유산 - 폭스바겐 비틀 (Volkswagen Beetle)
 

모든 국민들이 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며 1933년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차량 설계자인 페르난트 포르쉐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하는 새로운 개념의 차, 즉 국민차의 개발을 의뢰합니다.


                                           히틀러와 폭스바겐 비틀
 

어른 두 명과 어린이 세 명이 탈수 있고, 1리터의 연료로 14.5km이상 달릴 수 있으며, 최대시속은 100km의 고성능이지만 정비하기 쉬어야하되, 값은 1천 마르크 이하(당시 1천 마르크는 오토바이 한대의 가격이었음)로 저렴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었습니다.
 
                                 현재도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New Beetle
 

불가능할 것 같은 이러한 어려운 조건을 만족시키며 탄생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딱정벌레(Beetle) 였습니다.  하지만 1939년 제2차 대전의 시작으로 공장에서 조립 중이던 국민차는 대중에게 공급되지 못하고 급히 군용차로 변경되었습니다.  전쟁을 염두에 두었던 히틀러의 전략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폭스바겐 비틀의 명성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둘째 유산 - 아우토반 (Autobahn)
 
                                   아우토반 기공식에 참석한 히틀러와 나치 간부

 
아우토반은 독일이 건설한 자동차 전용도로였는데, 진정한 세계 최초의 현대식고속도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히틀러 집권 전 일부구간이 개통하기는 하였으나 나치가 정권을 장악한 후, 독일의 동서의 주요구간을 가로지르는 총연장 7,000Km에 달하는 통합 간선도로망 건설에 착수합니다.

 
                              현재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아우토반

 
초기에는 대공황에 따른 실업자구제 및 국가물류망의 확충 등이 그 목적이었으나 완공초기라 할 수 있는 1930년대 말부터 이미 독일은 전시 상황에 돌입중이어서 군대 및 군수물자의 이동에 더 적절히 쓰였습니다.  즉, 침략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토반은 현재도 세계최고의 고속도로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독일의 자랑거리입니다.
 
 
셋째 유산 - 올림픽 성화 봉송 (Olympic Torch Relay)

 
올림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 중 하나인 성화는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대회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고대의식에 따라 불을 채화하여 세계 각국을 거치는 장거리 릴레이를 거쳐 개최도시까지 불씨를 봉송하고 개막식에서 성대히 성화대에 불을 밝히는 행사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대회부터 실시되었습니다.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 당시의 성화 최종 주자

 
세계만방에 히틀러와 나치를 자랑하기 위한 선전수단의 일환으로 올림픽을 개최하였던 독일은 개막식의 극적효과를 높이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베를린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던 칼 다임의 의견을 히틀러가 수용하여 성화 봉송을 실시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계획에 걸맞게 행사가 성대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대회의 극적 효과를 증대시켰습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성화

 
그런데 올림피아에서 베를린까지의 성화 봉송루트가 이후 제2차 대전 당시에 발칸반도를 향한 독일군의 진격로가 되었습니다. 평화의 제전을 위하여 실행하였던 행사가 처음부터 전쟁을 염두에 두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를 철저히 전쟁에 이용한 것을 보면 히틀러와 나치는 진정한 악마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올림픽 성화 봉송 릴레이 행사는 범지구적인 중요한 전통행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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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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