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의 마지막 도박, 복제 전투기 [下]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 해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전투기는 F4U와 F6F였다. 전쟁 초기에는 일본의 제로기가 구닥다리 미군 전투기를 압도하였지만 얼마가지 않아 새롭게 등장한 위 전투기들에 몰려 도망 다니기에 급급한 실정으로 역전 당하였고, 일본은 이런 격차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일본 군부는 이러한 암울한 상황을 다시 바꾸고자 하였다.
 
                               시범비행중인 미군의 F6F(아래)와 일본의 제로전투기(위)
                                          하지만 제로기는 F6F와 맞서기 힘들었다.
 

마침내 1944년 중순경, 만난을 무릅쓰고 잠수함으로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서 독일로부터  얻게 된 최신 군사지원 자료에는 전편에 소개한 Me-163외에도 세계최초로 제식화한 제트전투기 Me-262에 관한 귀중한 자료도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귀한 자료를 입수한 일본은 이를 Ki-201로 명명하고 나까지마사에 즉시 제작하도록 지시하였다.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독일의 Me-262
 

그런데 제2차 대전 당시 일본 군부는 육군과 해군이 서로 협력하기 보다는 권력을 분점하고 경쟁하던 사이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전사나 무기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자존심을 내세워 쓸데없이 경쟁을 하고는 하였는데, 그러한 와중에 일본식 Me-262 또한 처음부터 육군용과 해군용으로 나뉘어 개발되었다.

 
                                      일본판 Me-262인 Ki-201 제작 중 모습
 

물론 전투기가 육군용과 해군용이 기능이나 성능이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는 없지만 1945년에 와서 일본 해군은 더 이상 항공모함을 운용할 여력이 되지 못한 상태였다. 더구나 한곳으로 자원을 집중하여 무기를 개발해도 부족할 판에 굳이 각 군별로 자원을 나누어 신무기 개발에 나선 것은 한마디로 말해 무모한 도전이었다.

 
                                                  나까지마 제작공장
 
어쨌든 설계도를 바탕으로 일본은 육군용인 카류해군용 기까의 동시 개발에 착수 하였다. 비행체로써의 기본구조는 육군용 해군용이 별로 차이가 없었지만, 이를 사용하고자하는 목적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해군은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는 제공 전투기로 개발에 나섰지만 육군은 폭탄을 탑재 할 수 있는 전폭기로써 개발방향을 잡았다.
 
                                                    엔진장착부
 

사실 Ki-201의 원형인 Me-262도 히틀러의 간섭으로 인하여 폭격기로 개발되는 잘못된 길을 갔었다. 당시 독일이건 일본이건  본토가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당하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연합군의 공습을 저지하는 것이 우선의 당면 과제였다. 따라서 단 한기의 고성능 요격기가 아쉬운 형편이었는데 프로펠러기가 감히 추격하기 어려운 속도를 자랑하는 제트기는 이에 적합한 물건이었다.

 
                                                  지상시험 중인 모습

 
하지만 즉시 보복을 외치던 위정자들의 편협한 발상에 제트기의 이런 장점은 묻혀버렸다. 지상공격은 비행기의 속도보다 저공에서의 선회력과 대공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내구성이 좋아야하는데 초기의 제트기는 그런 임무에 부적합하였다. 결론적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직시하지 못한 히틀러나 일본 육군의 한심한 발상은 인류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체 도색이 완료된 Ki-201


어쨌든 카류를 기준으로 일본 군부는 제작사에 운항속도가 최고시속 852km, 상승한도는 12,000m 그리고 항속거리는 980km가 되며 주무장으로 30mm기관포 2문과 보조무장으로 20mm기관포 2문 그리고 500~800Kg의 폭탄 1발을 장착할 수 있도록 요구하였는데 이는 오리지널인 Me-262의 성능을 웃도는 것으로 당시 일본 항공업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가혹한 것이었다.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인 마징가에 등장한 Ki-201

 
제작사는 1946년 3월까지 원형기를 포함하여 총 18기의 초도기를 만들 예정이었지만 종전으로 개발은 중단되었다. 비록 이들이 완성되었어도 전쟁의 향방을 바꿀 수는 없었겠지만 연합군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데 조금 더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완성으로 끝난 이러한 시도가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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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의 마지막 도박, 복제 전투기 [ 上 ]
 
 
허가를 득하여 합법적으로 모방하는 경우도 많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짝퉁이라 불리는 것처럼 불법으로 흉내 내는 경우도 있다. 전자건, 후자의 경우건 오리지널이라 불리는 원래 기술이나 제품이 좋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평이 좋지 않다면 굳이 기를 쓰고 전수받으려 하거나 불법으로 복제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짝퉁은 그만큼 원판이 좋고 유명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이 짝퉁 제국으로 불리지만 그것은 허가를 득하지 않고 겉으로만 흉내 내기에 급급한 경우이고, 선진기술을 모방하거나 이전받아 대성공한 나라는 원래 일본이다. 예를 들어 트랜지스터나 전자레인지의 원천 기술은 미국이 가지고 있지만 이를 상업화한 것은 일본이었다. 어쨌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이러한 노력으로 일본이 짧은 기간 내 선진국으로 도약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일본의 라디오는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여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대표적 예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무기분야에서도 그런 경향이 많았다. 우리는 흔히 제2차 대전 당시의 일본군 무기라면 제로기로 대표되는 일부 전투기나 상대적으로 강했던 해군의 항공모함, 전함 등을 연상한다. 하지만 일본은 전반적으로 기술 수준이 떨어져 당시 최첨단 무기를 모방하여 개발하려던 시도를 벌였는데 그중에는 최신식 전투기도 있었다.
 
                   일본 항공자위대의 F-2 전투기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F-16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기술력이 앞선 동맹국 독일의 도움이 있기는 했지만 외관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단순한 기술 협력이 아닌 영락없이 짝퉁이라 불러도 이의가 없을 정도인 전투기가 개발되었다. 비록 완성 전에 종전이 되어 실용화되지는 못했지만 당시에 일본이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다음은 그와 관련한 이야기다.
 

고공 요격기 J8M1
 
J8M1은 제2차 대전 말기 연일 계속되는 미군의 폭격에 시달리던 일본이 B-29폭격기를 요격 할 방법이 없어 고민 하던 중, 전략물자 교환 협정에 의거 독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은 Me-163 Komet를 기초로 제작한 로켓요격기다. 당시 독일도 비슷한 사정이었고 이런 목적에 Me-163를 투입하지만 사실 그다지 눈에 띄는 전과는 올리지 못하였다.

 
                                                 원형인 독일의 Me-163

 
일본은 원래 Me-163을 그대로 양산할 생각이었지만, 설계도나 각종 자료를 싣고 일본으로 오던 독일의 잠수함이 연합군의 공격으로 침몰했기 때문에, 사진 및 드로잉만 가지고 도면을 제작 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일부 일본 자료에는 Me-163과 닮았지만 단지 모양만 비슷할 뿐 실제 크기나 성능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무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의 J8M1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사실 신빙성이 부족하다. Me-163은 제2차 대전 당시 사람이 탔던 비행체 중 최고속도를 기록한 당대 최고 기술의 집약체였다. 지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어설프고 조잡한 무기처럼 보이지만 Me-163같은 로켓요격기를 단지 사진과 손으로 그린 어설픈 자료만 가지고 단기간 내 복제한다는 것이 결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발 중에 있던 J8M1
 

어쨌든 하루라도 빨리 실전 배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일본 군부는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하여금 제작에 착수하게하면서 동체는 해군이, 로켓 엔진은 육군이 담당하도록 하였다. 제작에 박차를 가해 1945년 7월 7일, 요코스카 해군 비행장에서 이누즈카 대위의 조종으로 제1호기의 시험 비행을 실시하였다.

 
                                      박물관에 Me-163과 비교 전시된 J8M1 모형
 

그러나 이륙 직후 고도 350m에서 엔진이 멈춰 불시착하여 대파되었고 조종사는 다음날 사망하였다. J8M1은 총 7기가 제작되었지만 얼마가지 않아 일본은 항복하였고 실패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1970년 오사카에서 개최된 EXPO에 J8M1 모형을 전시하였을 만큼 일본이 가지고 있던 애착은 생각보다 컸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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