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이 있기에
 
 

북한의 연평도 급습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몇 장의 사진들이 공개 되었다. 특히 포진지가 적의 피격으로 불타는 위급한 순간임에도 침착하게 K-9자주포를 전개하는 해병대원들의 처절한 사투와 철모가 불타고 얼굴에 화상을 입는 와중에도 맡은바 임무를 다한 임준영 상병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 주었다.

 
                                   철모가 불타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한 임준영 상병
 

그러한 연평부대의 처절했던 11월 23일 전투의 모습에서 지난 60년 전 기습남침을 감행한 압도적인 북괴군에 맞서며 살신성인의 분투를 보여 주었던 제18포병대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대와 환경이 다르지만 이번 해병대 연평부대의 투혼은 지난 한국전쟁 당시 제8사단 18포병대대(현 제2사단 예하)의 모습을 반추하는데 결코 모자람이 없고 생각되어 소개한다.

 
                                        적의 기습으로 탄흔이 가득한 포진지의 모습
 

1950년 6월 27일 새벽 4시, 그동안 국군 제8사단의 강력한 저항으로 진격이 지체되었던 북한군은 5배나 많은 전력을 앞세워 공격을 재개하였고 결국 국군 제5사단 10연대가 담당하던 연곡천 방어선을 돌파하였다. 이때 10연대의 급작스런 붕괴로 말미암아 최전방 배후까지 올라와 화력 지원을 하던 제18포병대대의 포진지도 동시에 적의 전면에 노출되는 위기에 빠졌다.
 

                                      창군 초기 국군의 유일 중화기였던 M-3곡사포
 

만일 이 상태에서 무작정 후퇴한다면 이동속도가 느린 포병대대 전체가 적에게 추월당하여 포위될 가능성이 농후하였다. 따라서 포병대대는 정면에서 교전하여 적의 진격속도를 누그러뜨리면서 후방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장병들의 생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군의 유일중화기와 다름없는 M-3곡사포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이처럼 단 한 문의 포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만큼 한국전쟁 초기에 우리 군의 전력은 부족하였다.

 
                               포병대대는 적을 가시권까지 끌어들여 직접 타격하였다
 

포병대대원들은 옥쇄(玉碎)의 각오로 인식표를 땅에 묻고 포병진지 전방 100미터까지 적들이 다가오도록 기다린 후 수평으로 포신을 낮추어 직접 타격하여 적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포진지로 난입한 적과 백병전을 치루며 포들을 이동시켰다. 이러한 급박한 와중에도 2문의 포가 밭에 빠져 회수할 수 없자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난 후 후퇴하였을 만큼 대대원들은 침착하였다.

 
                                           제18포병대대 순국 3용사 추모행사
 

이때 2번 포차 운전병 심우택 이병은 포 폐쇄기를 안은 채 산화했고, 통신소대 최서종 중사는 와이어 드럼을 회수하기 위해 적진으로 뛰어 들어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또한 관측반 한명화 하사는 끝까지 관측소에 남아 임무를 수행하다 순국했다. 이처럼 적에게 포위 될 위기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제18포병대대 병사들이 보여준 이러한 분전은 전쟁 당일 강릉을 점령하려던 북한의 계획을 무려 사흘간이나 지체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그대들의 분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번 적의 연평도 도발에서 압도적인 적 해안포 세력에 비해 불리한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평부대가 보여준 놀라운 사투는 밤하늘의 별처럼 국군의 자존심을 세워 준 모습이 아닐까도 생각되며 60년 전 제18포병대대가 보여준 용전과 비교하여 결코 모자람이 없다. 선배들 못지않은 투혼을 보여준 연평부대원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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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국방' 입니다. 오늘은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에 맞선던 우리 해병들의 모습을 보여드립니다. 


누구나... 우리군에 대해, 남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만, 정작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적은 것이 아쉬운 때입니다...


         11월25일 북한 연평도 포격도발로 우리해병대의 사격훈련이 순식간에 실전으로 전환되었다.


우리해병은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전우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며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정비소대 조수원 일병".... 북한의 1차 피폭시 부상을 당해 구급차 후송을 대기하고 있었으나, 승차인원이 제한되어 자신보다는 전우를 위해 나중에 탑승 하였습니다. 심각한 조일병의 부상을 목격한 동료해병 4명(일병 조다형 외 3명)은 조일병을 들것에 싣고 포격을 피해가며 의무대로 후송, 조일병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조일병은, 반드시 그분들을 찾아 보답하겠노라고 말합니다.


"중화기 중대 김지용 상병"은...... 동료 해병들과 북한군의 포격간 마을주민을 대피시키고 잠시 소강상태가 된 사이 부대로 복귀, 곧 2차 폭격이 시작되었으나 파편으로 인해 목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중대 관측담당관 김종선 상사가 김상병의 목을 지혈하며, "넌 반드시 내가 살린다."는 약속으로 안전해 보이는 건물외부 탄약고로 피신을 시켰습니다. 이후 몸을 추스린 김상병은 절친했던 동료해병의 인기척이 없음을 김종선 상사에게 보고했고, 김상사는 포격이 쏟아지는 건물로 되돌아가 피폭된 건물 속에 피신하고 있던 두명의 해병을 구해냈습니다.  


                           북한의 도발이후 연평도 도로에 뒹굴고 있는 북의 포탄 잔해물들 


"포7중대 상병 박진관"은 최초 1포대 포상이 피격당하자, 자기 한몸의 피신보다는 오로지 K-9자주포로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근처 소화기를 사용하여 자주포 주변의 모든 화염을 완전히 소화시킨 후에야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경상자로 분류되었다가 중상자로 재분류되어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된 "공병소대 박봉현 일병"은 끝까지 전우와 싸우겠다며 군의관에게 고집을 피워, 심한 골절로 더이상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서야 눈물을 머금고 뒤늦게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합니다.


                                         해병대 '불굴의 감투정신'을 발휘한 포7중대 임준영 상병 


철모가 녹아내리는 가운데에도 즉각 대응사격을 실시한 해병대원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포7중대 임준영 상병"...평소처럼 교육훈련에 매진하던 중 갑작스런 북한군의 포격을 맞이하고서도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무작정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합니다. 임상병 철모에 붙은 불길은, 그의 전투복과 철모턱끈을 타고내려와 화상을 입혔으나, 임상병은 뜨거움을 느낄 여유도 없이 북한군 포격에 응사하였습니다. 이후에도 임상병은 불에탄 철모를 쓰고 복구작업에 임하였습니다. 그는 해병대 감투정신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11월 25일 오전, 해병대 장병들이 인천에서 백령을 향해 승선하는 모습

해병대 정신과 전우애는 남다르다 더니, 빗말은 아닌가 봅니다.... 이 상황에, 너무 감성적인 이야기라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 이같은 모습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북한에 맞서고있는 우리해병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북의 도발에 대응 준비를 하고있는 백령도 주둔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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