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비사(秘史) - 소.일 잠수함 해전


 
소련과 일본은 1905년 쓰시마 근해에서 큰 해전을 치른 뒤 수 십 년 동안 바다에서 크게 격돌한 일은없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소련과 일본은 동해에서 서로 경계하는 불편한 대치 상태를 유지했지만 실제로 전투를 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태평양 전쟁이 터지고 그 다음해 일본의 잠수함이 소련 잠수함을 뇌격해서 격침시킨 작은 소.일 해전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해전은 이런 격돌이 발생했을법한 동해가 아니라 태평양을 가로 질러 머나먼 미국 서해안 해역에서 발생했었다는 점이 특색이다. 그리고 두 격돌 상대는 서로 상대가 누군지를 몰랐다는 것도 또 다른 특색이다.
 
가격자인 일본 해군은 자신들이 뇌격한 것이 미국 잠수함이라고 단정했었고, 피격자인 소련 해군 역시 가격자로 미 해군을 의심했었다.
 
미 근해에서 소련 잠수함을 뇌격한 일본 잠수함은 해전사에 상당히 유명한 존재로 기록되어 내려온다. 이 잠수함은 I-25잠수함으로은 정찰기를 탑재한 특수 목적의 잠수함이다. I-25잠수함은 2,344톤의 크기에 6문의 어뢰 발사관과 140mm 함포를 장비하고 있다.
 

                                                              I-25 수상기 탑재 잠수함


잠수함 사령탑 앞에 작은 격납고가 있어서 여기에 날개를 분해한 정찰기를 싣고 항해하다가 목적지 부근 해상에서 날개를 다시 결합하여 출격시킨다.

미군들이 그렌[glen]이라고 부르는 이 복좌 수상 정찰기에는 푸로트[float]가 붙어 있어서 해상에서 이착륙을 할 수가 있다.

일본의 제식 명칭은 영(zero)식 소형 수상 정찰기이며 340 마력의 엔진을 가진 소형기로서 880 킬로 미터를 비행할 수가 있다.
 

                                                    영식 소형 수상 정찰기 - 아이치 사 제작


일본 잠수함 I-25에서 발진한 정찰기가 미 본토를 최초로 폭격했었고, 잠수함도 함포로 미 본토를 최초로 직접 포격했었다. 함장은 다카미 메이지 중좌였는데 부하들에게도 상당한 존경을 받는 유능한 함장이었다.

정찰기 조종사는 후지다 노부오 준위였다. 1932년 해군에  입대하여 1933년 조종사가 된 그는 일본 해군 항공대의 고참 조종사였다. 

그의 이름이 진주만 기습 항공대장 후지다 미쓰오 중좌와 비슷해서 두 사람을 혼동하는 미국 관련 서적을 본 일이 있다. 그는 나중에 최초 미 본토 폭격에 대한 책을 써서 상당한 유명 인물이 되었다.
 
 
                                                                 후지다 노부오 준위


그의 잠수함 I-25는 일본 해군의 진주만 기습 때부터 출동해서 전쟁 초기 남태평양을 가로 지르며 내내 정찰 활동을 했다.
 
1942년 2월 17일 시드니 항 정찰을 시작으로 호주의 멜번 항, 호바트 항의 상공을 유유히 나르며 사진을 촬영 했다. I-25는 활동을 계속해서 3월 8일에는 뉴질랜드의 웰링턴 항을 정찰했으며, 그 후에 더 이동해서 피지 섬의 상공을 정찰 비행했다.
 
남태평양 쪽의 활동을 마치고 요코스카로 귀항한 I-25는 도크 정비 후 다시 출항하여 그 함수를 서쪽으로 향했다.
 

                                                            후지다 준위와 그의 수상 정찰기


1942년 은밀하게 미 서해안에 접근한 I-25는 잠수함 함포로 아스토리아 근처 포트 스티븐스의 해안포대를 포격하였다. 그해 9월 I-25는 더 야심찬 작전 계획을 가지고 다시 미 본토로 출항하였다.
 
일본 해군이 원래 잠수함에 항공기를 탑재하는 개념 개발 단계에서 염두에 두었던 제일 큰 목표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의 폭격과 폐쇄였었다.
 
하지만 미국도 이를 알고 파나마 운하 양 입구에 엄청난 해상 및 공중 대잠 초계 자원을 집중시켜 놓아서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선택한 임무가 미국 본토 서해안 산림 지대를 폭격해서 큰 산불을 내는 것이었다.
 
1942년 9월 9일 미 서해안 오레곤주에 은밀히 접근한 I-25는 후지다와 오쿠다 쇼지 하사가 탑승한 수상기를 발진시켰다.
 
후지다는 오레곤 주의 에밀리 산 상공에 진입하여 소이 폭탄을 두 발을 투하했다. 한 발은 행방이 불명이 되었지만 한 발은 그럭저럭 작은 산불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날 비가 온데다가 숲이 습해서 금방 저절로 꺼지고 말았다.
 
9월29일 후지다는 다시 출격해서 케이프 블랑코 부근 산에 폭탄을 투하했으나 이 폭탄들은 산불도 일으키지 못했고 미 당국에도 발견되지 못한 채 미궁 속으로 사라졌다.
 
 
                                                                  영식 소형 수상 정찰기


하여튼 태평양 전쟁 중에 일본군이 저질렀던 여러 멍청한 짓 중의 하나였던 미 본토에 산불내기 임무를 그런대로 완수한 I-25는 미 연안을 따라 초계 항해를 하다가 유조선들인 SS 캄덴과 SS 래리 도흐니들을 발견하고 어뢰로서 격침시켰다.
 
그러나 진짜 먹음직한 먹잇감은 10월11일 발견하였다. I -25잠수함 견시가 종대로 항해하고 있는 두 척의 잠수함을 목격한 것이다.
 
위치는 오레곤 앞바다 800마일 해역이었다.
 
급속 잠항한 I-25는 접근해서 그 중 앞서 가던 한 척에게 어뢰를 발사했다. 두 발의 대형 어뢰에 맞은 선두의 적 잠수함은 격심한 폭발음을 내고 그대로 격침되었다.
 
I-25는 격침 된 잠수함이 당연히 미 해군 소속의 것으로 판단해서 일본의 해군 사령부에도 미 잠수함을 격침하였다고 보고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잠수함들은 미 해군이 아니라 소련 해군 소속이었다.


 
소련 잠수함을 격침한 순간부터는 소련 측의 기록을 인용해보기로 한다.

이들 잠수함들은 소련 해군의 ‘L'형 잠수함들이었다.
 
당시 전황으로서는 소련 잠수함들이 미국 해안에 나타난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힘든 일이지만 두 척의 잠수함은 블라디보스톡 해군 기지에 소속된 7척의 잠수함 중 일부였다.
 

                                                            소련 레니넷츠 급 잠수함  -1,123톤


비록 소련과 일본은 불안하지만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소련 대륙의 반대편 북해는 전황이 심각했다.
 
북해의 소련 항 무르만스크는 미영 서구진영에서 소련으로 보내는 모든 전쟁 물자가 유입되는 유일한 입구였다.
 
독일 해군은 미영의 보급 수송 선단을 차단하기 위해서 북해에 강한 해군력을 집중해서 선단과 호위 함대들을 공격했었다.
 
소련 해군은 블라디보스톡 해군기지 소속 잠수함 6척을 무르만스크로 이동 배치하기로 결정하고 이동 명령을 내렸다. 블라디보스톡 기지에는 L급과 S급 두 가지 잠수함이 배속되어 있었다. L급 잠수함 두 척을 먼저 보내기로 했었다.
 
이동 경로는 북태평양과 미 서해안을 거쳐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고 대서양을 횡단해서 북해를 통해 무르만스크로 향하는 것이었다.
 
미국과 영국에 지원을 요청해서 이들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확보한 소련은 1942년 9월 24일 먼저 L-15과 L-16을 출항시켰다.
 
L-15의 함장은 코마로프 대위, L-16의 함장은 블라디보스톡 잠수함대 최연장자인 구마로프 대위였다.
 
레니넷츠급인 L-16은 1,100톤으로 비교적 소형 잠수함이며, 이 레니넷츠급 잠수함 중 16번째로 건조된 잠수함이다.
 
두 함은 먼저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항해를 계속, 알래스카 앞 알류산 열도의 더치 하버에 기항해서 미 해군으로부터 재급유와 재보급을 받고 10월 6일 다시 출항했다
 
다음 기항 예정지는 미국 서해안의 샌프란시스코였다. 출항한지 6일 후인 10월 11일, 잠수함 견시 당직 교대 시각인 오전 11시 15분, L-15의 함교에 있던 코마로프 함장과 신호병 스몰니코프는 전방에서 들려오는 두 개의 큰 폭음에 놀랐다.

폭음의 방향을 바라본 두 사람은 앞서 가던 동료함 L-16에서 터져 나오는 화염과 연기를 발견했다.
 
같은 순간에 L-15의 통신장교는 L-16으로부터 평문의 다급한 무선을 수신했다.
 
“우리는 ---”으로 시작한 전문은 위의 말만 남기고 중단되었다.
 
함교의 코마로프 함장은 L-16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을 목격하였다. 같이 함교에 있던 스몰니코프 수병은 다른 방향의 파도 사이로 수상한 잠망경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함장에게 보고했다.

코마로프는 잠수함의 포수들을 즉시 전투 배치하고 잠망경이 나타나면 포격하라고 명령했으나 잠망경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코마로프는 L-16함이 침몰한 전방 위치로 빠르게 이동해서 주변 해면을 살폈지만 아무런 생존자를발견할 수가 없었다. 코마로프는 자신들이 두 번째 표적이 될 위험성을 감지하고 비상 급속 잠항을 했다.
 
L-15는 그날 하루 종일 총원 전투 배치를하고 공격에 대비하며 위험 수역에서 빠져 나와야만 했다.
 
소련은 이 비극이 있었는데도 이어서 10월 6일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한 4척의 S형 잠수함에게 그대로 항해를 계속하도록 명령했다.
 
네 척의 잠수함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북해의 무르만스크에 도착하였다.
 
 
                                                소련 S 급 잠수함- 840톤 , L급 보다 더 작고 구형이다.


L-16함의 격침 사고에 소련은 오랫동안 이것을 미 해군이 저지른 것으로 의심하였다고 한다.
 
L-15가 알류샨 열도의 더치 하버에 기항해서 그곳 미 해군 측과 앞으로의 항해 계획을 상의했을 때미 해군은 추가 파견 소련 S급 잠수함대의 출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L-15 코마로프 함장에게  알려주지 않았었다.
- 미 해군에 복무하는 러시아 이민 출신 수병이 추가 파견 잠수함대가 출발했음을 코마로프 함장에게 귀뜸 해 주었다고 한다. -
 
당연히 소련 잠수함장에게 알려 주어야 할 정보를 감추고 있는 미 해군 측에 석연치 않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 해군이 의심 받을 일은 또 있었다. 미 해군 장교는 소련 잠수함장에게 미 해안에 접근하면서 샌 프란시스코 미 해군 기지와는 항해 정보를 평문으로 교신하라는 지침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것은 잠수함대의 위치를 공공연히 알려주는 것과도 같았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전쟁이 끝나고 사실이 규명될 때까지 소련은 미 해군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멈추지 않았었다.
 ※ 미 소 냉전시대 조작된 말같기도 하다. 격침된 L-16함에는 미 해군에서 파견한 러시아 이민자 출신의 미 해군장교 한명이 연락 장교겸 통역장교로 승함했었다.※
 
I-25 잠수함의 운항으로 경험을 얻은 일본 해군은 신형 수상기를 탑재한 대형함인 5,223톤 급의 I -400 시리즈 잠수함을 개발했다. 역시 제일 큰 목적은 파나마 운하 폭격이었다. 원래는 18척 건조 계획을 했지만 3척만 진수하였다. 
  

                          I-400시리즈 대형 잠수함 , 2차 세계대전에 출현한 잠수함중 최대 크기를 지녔다.


기술적으로 상당히 발전한 잠수함이었는데 종전 후 미국 해군은 이를 탐내는 소련의 손에 넘어 갈 것을 염려해서 한 척은 나가사키 앞 바다에서, 두 척은 하와이로 가져와 모두 침몰시켰다. 
 
 
                                                    I-400형 잠수함에 탑재했던 세이란 신형 정찰기


소련 해군은 이 신형 잠수함 대신 의문의 뇌격을 가한 잠수함이 미 해군이 아니라 일본 해군의 I-25라는 사실만을 얻게 되었을 뿐이었다.
 
후지다는 종전 후 고향인 이바라키 현에서 철물점을 하다가 한 전선 만드는 회사에서 입사해서 평범한 살길을 찾아 갔다.
 
1962년 그는 자신이 폭격했던 오레곤 주 브루킹 시의 주민들 초대로 현장을 방문하고 자기 집에 400년간 전해오던 일본도를 브루킹스 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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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끝]



 
 

                           좀 더 확충되기를 바라는 부분

 

오늘날은 탐지기기의 발달에 힘입어 물 밖으로 떠오른 잠수함뿐만 아니라 물속에 숨어있는 잠수함까지도 하늘에서 탐지 할 수 있을 만큼 항공기를 이용한 대잠초계 활동 영역이 더욱 넓혀졌다. 특히, 고정익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대잠헬기의 등장은 항공모함처럼 거대한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보통 크기의 수상전투함들도 하늘을 통한 대잠 초계활동을 가능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초기의 수상발진형 대잠초계기 Martin Flying Boat

 

더불어 대잠미사일이나 공중투하어뢰 같은 정확한 대잠 타격능력의 발달은 은밀히 숨어있는 잠수함이라도 하늘로부터의 공중초계에 포착된다면 곧바로 침몰로 연결 될 수 있을 만큼, 잠수함에게 대잠초계기는 더욱 위협적인 존재로 변하였다. 더구나 잠항 중에 있는 잠수함이 하늘에 떠 있는 대잠초계기의 존재를 즉시 알아내기가 어려워, 수면 위에서 잠수함을 감시하는 수상함보다 더욱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해상초계 단일 목적으로 최초로 개발 된 P2V Neptune


잠수함도 수시로 부상하여 몸을 노출 시킬 수밖에 없었던 예전의 재래식 잠수함의 한계를 극복한 핵추진이나 AIP같은 여러 가지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보다 은밀히 작전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항공초계에 탐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임무 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재 우리 군도 운용중인 P-3 Orion

 
결국 처음 하늘에서 잠수함을 감시하기 시작한 이후 많은 시일이 지났지만 쫓는 대잠기와 쫓기는 잠수함의 위치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 중에는 아직까지도 물속의 잠수함이 하늘에 떠있는 항공기를 공격할만한 마땅한 공격체계가 부족한 점도 있다.  물론 잠대공 요격 미상일이 연구 단계에 있어 가까운 시일 내 실용화도 예상되지만,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쫓고 숨어 다니는 일방적인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 되리라 생각된다.

 
                             우리도 사용하였던 2세대급 항모 탑재 초계기인 S-2 Tracker
                                         ('전쟁기념관'에 가시면 볼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많은 북한 잠수함세력의 위협에 대처하여야 하며, 또한 주변국 잠수함들의 천연이동로라고 불리는 동해를 비롯한 인근 해역의 초계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  해군의 대잠초계 능력을 좀 더 증대 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천안함사태에서 보듯이 서해 또한 결코 잠수함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최근에 퇴역한 항모 탑재형 초계기인 S-3 Viking

 
현재 영해를 초계하기 위해 우리 해군은 OO기의 함정탑재용 링스(Lynx)대잠헬기와 OO기의 P-3C 대잠초계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종들은 현재 여러 나라의 주력 대잠 초계기로 널리 사용될 만큼 훌륭한 성능을 자랑하는 좋은 기종이다. 특히 국내에서 대대적으로 개수하여 최근에 제식화한 P-3CK는 부족하였던 대잠 초계능력을 대폭 증가시켜주었다.
 

                               최근 도입되어 국군의 대잠 초계 능력을 확장시킨 P-3CK


 
이러한 체계적인 장비의 도입과 운용으로 우리 군의 해상초계 능력은 꾸준히 증가되었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주변 해역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선인 인근 주변 수역까지 24시간 쉬지 않고 완벽하게 감시하는데 충분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해군 항공대의 전력 확충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미국 항공모함을 방문한 한국 해군의 링스헬기

 
우리 해군은 삼면이 바다인 영해를 방어하는 것은 물론 청해부대처럼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원양에서도 작전을 펼치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임무에 투입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임무를 담당할 수 있는 해군 항공대의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 대잠초계를 비롯한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임무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우리 해군의 발전과 노력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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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 [3]




                                하늘에 뜬 저승사자
 
레이더가 실용화되어 그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영국해협전투의 예처럼 제2차 대전은 각종 군사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던 시기로 대잠초계분야 또한 폭 넓은 진화가 있었다. 각종 탐지장치가 등장하고 무선통신기술이 폭넓게 사용 되는 등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다 광범위한 범위의 탐색이 가능하여, 제1차 대전 당시와 달리 인간의 시야를 벗어난 지역까지의 초계가 가능하여 지기 시작하였다.

 
           함재기의 발달과 항모의 실용화로 보다 광범위한 해상초계가 가능하여 졌다
 

그리고 제2차 대전, 특히 태평양전역에서 군사적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항공모함의 본격 실용화와 각종
함재기의 발달이다. 이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원양에서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항공작전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항공모함에 탑재한 함재기를 이용하면 함대나 상선의 이동 경로를 미리 탐색하여 적 함대를 사전에 수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즉시 공격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부상한 잠수함이 해상초계기의 눈을 벗어나기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까지의 기술로는 오늘날처럼 하늘에서 수중을 감시하는 정밀한 탐지기기는 아직 실용화되기 전이었다. 그러므로 해상초계활동 중 발견한 적 수상함이나 부상한 잠수함이 아닌 수중에서 잠항하는 잠수함을 탐색하고 공격하는 임무는 바다위의 구축함이 담당하였다. 다시 말해 이때까지는 하늘 위에 떠서 물속에 숨어 있는 잠수함까지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부상하여 있는 잠수함의 탐색은 이전에 비해 월등히 쉬웠고 공격도 즉시 가능하였다.

 
                           잠수함의 어설픈 부상은 최후를 의미 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잠수함은 배터리 충전 등을 위하여 부상 할 때 예전보다 더욱 조심하게 되었고 구축함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의 감시와 공격에도 항상 대비해야 할 만큼 위험스러운 임무환경을 맞이하였다. 물론 스노클(Snorkel)과 같은 장비의 개발로 이런 위험을 조금 감소 할 수 있었지만 스노클도 작동 시 하늘에서 발견하기 쉬운 흔적을 바다 위에 남기었다. 한마디로
대잠초계기가 잠수함의 천적으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스노클을 수면 위에 노출하고 잠항 중인 유보트
 

아직은 초보 수준이었던 대잠초계기였지만 제2차 대전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그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모했다. 특히 대서양과 유럽 인근에서 주로 활약하던 독일해군 유보트들의 손실을 보면 대잠초계기의 위력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당시 연합군함정에 의한 손실이 264척인데 대잠초계기에 의한 손실도 250척이었을 정도였고 결국 하늘로부터의 공격에 진절머리가 난 독일은 대공포를 장착한 초계기 요격잠수함인 U-flak까지 취역시킬 정도였다.

 
                               대잠초계기 공격을 위한 대공화기 탑재 유보트
 

당시의 대잠초계기는 적 잠수함의 출몰이 예상되는 지역을 천천히 초계비행하면서 잠수함의 부상흔적 등을 찾는 형태였는데, 만일 수면위에 잠수함 출현 흔적을 발견하면 근처 아군에게 통보하여 즉시 요격하도록 하거나 만일 적 잠수함이 초계기의 공격 범위 안에 노출되어 있다면 직접폭격 등을 실시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초계기가 직접 공격까지 하였다
 

이와 같은 대잠초계를 위해 제2차 대전 당시 미국은 두 가지 형태의 대잠초계기를 운영하였다. 하나는 항공모함에 탑재한 전투기와 뇌격기(어뢰를 이용하여 적함을 공격하는 전투기)를 하나의 편대로 구성하여 대잠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조합 형태는 아군함대 인근이나 적의 반격이 있을지도 모르는 최전선의 해역에서 이루어지는 작전 형태였다.

 
                             제2차 대전 당시 본격적으로 등장한 초계기는
                                오늘날 초계기의 직접적인 선배가 된다
 

또 하나는 제해권이 장악된 후방 해역에서 적 잠수함의 게릴라식 기습을 막기 위해한 작전 형태였는데,
장거리 항속 및 체공이 가능한 대형수상기를 이용하여 대잠초계 활동을 펼쳤다. 이렇게 소형인 항공모함에 탑재 대잠초계기를 이용한 초계활동과 육상에서 발진 가능한 대형항공기를 이용한 초계활동은 오늘날도 계속 이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대잠초계 형태로 자리 잡았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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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 [2]


                              초기의 모습

 
대잠초계기는 그 특성상 장시간 하늘에 체공하여야 하지만 기동이 날렵하거나 속도가 빠를 필요까지는 없다. 때문에 플랫폼이 되는 비행기들은 전투기와는 달리 굳이 기체가 고성능일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대잠작전 및 해상초계에 필요한 각종 센서(Sensor)류가 워낙 고가의 장비다 보니 이러한 장비들이 탑재된 대잠초계기 한 기의 가격은 보통 고성능 전투기의 그것을 능가하고는 한다.


            오늘날 대잠초계기는 육상발진형, 항모탑재형, 헬기형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초계 임무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각종 센서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도의 전략물자인데, 수요처도 한정되어 있고 제작에도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되어 이를 생산하는 나라도 얼마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하였던 나라들이 자신들의 해상지배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필요에 의해서 장기간의 노력과 개발로 이루어진 성과물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기술은 미국과 영국이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계기는 플랫폼 자체가 고성능은 아니지만 센서류가 고가인 무기체계다

 
잠수함의 무서움이 널리 알려진 시기는 앞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유보트의 신화가 처음 등장한 제1차 대전부터인데, 당시에는 주로 사람의 오감에 의해서 잠수함의 탐지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보편적인 대잠초계 장비로 사용되는 소나(Sonar)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ASDIC 같은 초보적인 초계장비가 개발되기도 하였지만 당시 기술 여건상 그리 좋은 성능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소나의 기술은 어군탐지에도 이용되는 등 여러 목적으로 사용 중이다
 

독일의 유보트들이 충전 등을 위하여 수시로 수면 위로 부상하였지만 연합군은 수상함만으로 이들을 발견하기 매우 힘들었다. 이때 하늘에서 잠수함을 감시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비행선(Airship)이 적당한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제1차 대전은 본격적으로 비행기가 실전에 본격 투입된 무기사적으로 혁명적인 시기였지만, 넓은 바다 위에서 잠수함을 탐색하기에는 체공시간이나 비행반경 등을 고려 할 때 그리 적합하지는 않았다.

 
     제1차 대전은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무기로 활용된 시기였으나 항속거리 등이 짧아
             넓은 지역을 장시간 초계할 플랫폼으로 사용하기는 곤란 하였다

 
그래서 비행선이 적합한 초계도구로 사용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센서에 해당되는 부분은 오로지 비행선에 탑승한 인간의 눈(眼) 밖에는 없었다. 비행선이 비록 장시간 체공은 가능하였지만 속도가 느리고 거대한 동체를 이착륙시키기 위해서는 해안주변의 연근해에서만 활동이 가능하였고, 당시의 통신기술을 고려할 때 잠수함을 발견하였어도 이를 해군 구축함에 즉시 통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비행선이 최초 초계용 항공 플랫폼으로 등장하였다

 
더구나 마땅한 자체 대잠공격 능력을 보유하지 못하여 부상한 잠수함을 바로 아래에서 발견 하였다 하더라도 손가락만 빨았을 뿐이었끼 때문에 비행선은 전술적으로 뛰어난 효과는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잠수함의 출몰을 감시하는 것은 망망대해를 수십 척의 수상함 들이 떼를 지어 헤집고 다니는 것보다는 분명히 효과적이었다.

 
                 하늘에서 해상을 감시하는 것이 효과적 방법임이 입증되었다


 
오늘날 고성능 PC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APLLE ][ 를 단순히 성능만 가지고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컴퓨터는 반드시 집체만한 대형이고 여러 명의 전문가들만이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APLLE ][ 와 같은 선구자의 등장 없었다면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를 만든 기술적 발전과 진보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의 열풍도 이미 이를 시대를 앞서보고 사전에 차근차근 준비한 기술적 기반이 있었기에 탄생한 것이다.

 
                    비행선에 의한 초계활동은 보잘 것 없는 시작이었지만 
                          오늘날 해상초계기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제1차 대전 당시에 인간의 감각에 의지하여 적 잠수함을 발견하는 한 없이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초보적인 형태의 공중초계 활동을 결코 우습게 볼 수는 없다.  ( 사실 '견시'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초계수단이다 ) 그러한 하나하나의 시도와 시행착오가 쌓여서 오늘날의 고성능의 대잠초계기가 탄생되고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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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 1




잠수함
(Submarine)
이 개발되고 그 위력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보트(U-Boat)로 잘 알려진 잠수함을 독일해군이 대량 운용하면서 부터이다.  비록 전쟁 전에 독일은 대대적인 건함을 통하여 세계 2위 수준의 해군력을 보유하였지만 영-프 연합군보다는 열세여서 적극적인 정면대결은 할 수 없었다.  이때 독일은 150 여척의 U-Boat 를 이용한 변칙작전으로 종전 시까지 무려 1,200만 톤의 연합국 선박을 침몰 시키는 전과를 발휘하였다.


                  제1차 대전은 잠수함의 효용성을 입증 시켰다 (종전 후 자침한 유보트)
 

하지만 은밀한 잠수함이라 하여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주 수면위로 부상(浮上)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다수 잠수함의 동력구조에 기인한다.  원자력이 아닌 재래식 동력의 잠수함은 디젤 엔진으로 발전기를 가동하여 생산된 전력을 잠수함에 설치된 대형축전지에 충전한 후 이 전력을 이용하여 전기 모터를 가동시켜 추진력을 얻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초기 잠수함들은 오랜 기간 잠항하여 작전을 펼칠 수 없었다
 

그런데 축전지가 소모되면 디젤 엔진을 이용하여 다시 충전하여야 하는데 디젤엔진을 가동하려면 외부로부터 공기를 공급받아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공기가 있는 수면위로 부상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의 기술로는 수중에 숨어서 할 수 없었던 정찰 및 통신을 위해서라도 잠수함의 장점인 은밀함을 포기하고 부득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야 했다.

 
                         충전, 정찰, 통신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수시로 부상하여야 했다
 

지금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경우처럼 이론적으로 무한대 잠항이 가능하고, 재래식 동력 잠수함도 AIP(Air Independent Propulsion)의 탑재로 잠수시간이 획기적으로 늘었다.  거기에 더하여 수중에서 외부와의 통신이나 수면 위 탐지 장치 등 여러 기기들의 개발 때문에 예전처럼 수시로 부상하여야 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잠수함이 본격 활약하기 시작한 당시에만 해도 이것은 잠수함의 태생적인 한계로 여겨졌다.

 
                        요즘은 여러 첨단 기술로 잠수함에 대한 제약이 많이 완화되었다.
                             (AIP를 탑재하여 장시간 수중 작전이 가능한 손원일함)



수상전투함이 잠수함을 잡는 방법은 한마디로 공격을 받기 전에 먼저 발견하여 폭뢰나 어뢰 등을 이용하여 침몰 시키는 것인데 특히 수면 위로 부상한 잠수함은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사실 잠수함은 어뢰이외에 별다른 외부무장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적들 앞에 부상한다는 자체가 곧 잠수함의 최후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작전 중 부상은 그만큼 위험하였다.


                             수면 위로 떠오른 잠수함은 손쉬운 먹잇감일 뿐 이었다
 

이러한 고유한 잠수함의 약점을 최대한 노려서 공격하고자 이들을 찾고 요격하기 위한 구축함(Destroyer)이 해군의 주요 전력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사실 오늘날의 구축함은 종합전투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오로지 잠수함을 잡기위한 단일 목적함으로 운용되다 시피 하였고 이들 구축함은 잠수함이 부상할 만한 위치를 주로 탐색하며 사냥하기 위해 애썼다.

 
                              잠수함의 활약 때문에 구축함의 중요성도 증대 되었다.
                              제1차 대전 당시 영국의 주력 구축함이었던 V-Class
 

그런데 부상한 잠수함을 찾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구축함이나 초계함들이 쉴 새 없이 넓은 바다를 돌아다는 것이 아니라 잠수함 탐지수단을 탑재한 비행체를 이용하여 하늘에서 감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도 잠수함의 동력체계 변화 및 소나부이(Sonobuoy) 같은 대잠 탐지 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초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하늘로부터 잠수함을 찾는 노력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결국 하늘에서 잠수함을 추적하는 방법이 고안 된다
 

오늘날 대표적인 대잠초계 항공기들은 해안 부근이나 대형 항공모함에 근거를 두고 작전하는 고정익기 형태와 주로 구축함이나 호위함 정도 규모의 함정에 탑재하여 작전을 펼치는 헬기형태로 구분 되는데, 이 중에서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대잠초계기들에 대한 간략한 역사와 내용을 알아보고 이와 관련하여 우리 해군 항공대의 나갈 방향에 대해 점검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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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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