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등장한 한니발의 코끼리
 

 
제1차 대전 당시 전선이 고착화되고 인명손실이 늘어나자 이를 타개할 방법을 골몰하던 영국은 비밀리에 최초의 현대식 전차 Mk I을 제작하여 1916년 9월 15일 솜전투(Battle of Somme)에 투입하였다. 전세를 뒤집을 만한 회심의 히든카드로 전장에 데뷔시켰지만 운용 노하우가 전무하였고 작전에 투입한 전차가 총 49대밖에 되지 않았던 데다가 고장차량까지 생겼다.

 
                                            1916년 솜 전투에 사상 최초의 전차가 등장하였다
 

이 때문에 생각했던 것만큼의 피해를 독일군에게 입히지 못하고 전선돌파에 실패하자 일선에서는 전차무용론까지 제기되었다. 그러나 전차가 장차전의 주역임을 입증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1917년 11월 20일 캉브레전투(Battle of Cambrai)에서 474량의 전차를 집중 투입한 영국은 진지돌파에 성공하였고 이로써 전차는 그 효과를 인정받게 되었다.

 
                                                  깡브레전투에서 전차는 돌파의 주역으로
                                                  진면목을 발휘하였다
 

2차 포에니전쟁 초기에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Hannibal)이 코끼리를 동원하여 로마군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캉브레전투에 등장한 영국의 대규모 전차부대는 참호에 안주하여 소극적방어전을 펼치던 독일군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버렸다. 당시 영국의 신문들이 한니발의 코끼리가 다시 등장하였다고 대서특필하고 전차의 전선돌파와 작전모습을 상세하게 보도하였을 정도로 의기양양하였다.


 
 
                                                          영국의 언론은 한니발의 코끼리가
                                                          재림하였다고 선전하였다
 

전선의 병사들도 전차가 한니발의 코끼리를 능가하는 전선의 수호신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믿음직스러워하였다. 전차를 앞에 두고 건배를 하는 당시 병사들의 모습은 마치 새 차를 장만하고 무사고 운전을 기원하며 고사를 지내는 우리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할 정도인데, 항상 죽음을 앞에 두고 싸워야 하였던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여 느꼈을 반가운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출 된 것이라 생각 된다.

 
 
                                                   영국군은 전차가 승리를 안겨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코끼리의 약점을 알게 되자 로마군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급속히 반감되고 그에 상응한 작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처럼, 당시 기술로는 어쩔 수 없이 빈약했던 전차의 장갑능력과 느린 기동력을 독일이 파악하게 되자 효과적인 대전차 공격방법을 찾아내었던 것이었다. 더구나 독일도 즉시 전차를 카피 생산 하자 전차가 연합군만이 보유한 필살기가 아니게 되었다.

 
   
                             적들도 코끼리를 만들어 내었고 전차간의 전투도 벌어지게 되었다
 

상대도 전차를 보유 하였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전차끼리의 전투가 일어난 것을 뜻하며 당시 신문들은 전쟁터에 새롭게 등장한 전차전의 모습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결국 영국의 입장에서는 한니발의 코끼리보다 약발이 오래가지 못한 꼴이 되었다. 전선에 그럭저럭 데뷔하여 무기사에 길이 남을 도도한 발자국을 찍었지만 당시의 전차는 전쟁 전체를 좌우 할 만큼 위력적이지 않았던 둔중한 코끼리였을 뿐이었던 것이었다.
 

                                               전차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보병들의 모습
 

하지만 이 코끼리들이 진화하여 전쟁의 주역으로 등장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전차의 공격을 받아 두려움을 겪었던 독일은 다음 전쟁에서는 이를 갈고 다듬어 미처 참호가 만들어질 틈도 주지 않았을 만큼 전선을 급속히 돌파하여 승리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였던 것이었다. 제2차 대전을 기점으로 전차는 지상전의 왕자로 자리매김하면서 불과 20년 만에 둔한 코끼리가 날렵한 공룡으로 변하였던 것이다.

 
               전차는 다음전쟁에서 지상의 왕자로 등극하였고 지금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라는 말처럼 전차의 발달은 대전차 무기의 발달도 함께 동반하였고 현재까지 그런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대전차 무기는 시간이 갈수록 휴대가 편리하고 정확도는 물론 파괴력도 높아져서 전차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전차는 등장이후 지상의 왕자 자리를 계속 차지하는 것을 보면 과연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과연 훗날에도 한니발의 코끼리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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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 적 프로펠러기에 당한 미 최신 제트기-.




                                            윈턴 마셜 소령-너무 말라서 친구 사이에 갈비씨[bones]라는
                                            별명이 이름처럼 통용되었다.

이 폭격기 격추 뒤에 마셜은 전투기의 CAL 50실탄을 모두 소진했음을 발견했다. [적 대형기 격추는 다량의 실탄을 소비하는 집중 사격이 필요하다.]

그는 선도 위치를 즉시 존 호노커에게 양보하고 호위 위치로 옮겨갔다.

이제부터 적기 공격은 존 호노커가 리드 할 것이고 마셜은 엄호만 하게 되었다.

호위 위치로 옮기고 나서 그는 다소 여유를 가지고 수십 개의 공중전이 어지럽게 수놓은 있는 주변 상공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다수의 적 폭격기들이 연기를 뿜고 지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여러 기의 LA-9기들도 마셜의 눈앞에서 격추 되었다.

후방 상공에서 편대를 뛰쳐나와 이 난전에 끼어든 수기의 미그기들도 F-86기들과 얽혀들어 치열한 생과 사의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후미에 붙은 미군기를 떨쳐 내기 위해서 미그기의 격렬한 기동을 보기에도 장관이었다.

마셜의 상공에서 한 미그기는 이미 피격되어 큰 맴돌이를 하며 추락하고 있었다.

이미 격추된 공산기에서 탈출한 수 십 명의 조종사들을 매단 낙하산들이 낙화처럼 지상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상공은 적 낙하산이 너무 많아 마치 미 육군의 82공수사단의 낙하 훈련 현장같이 보였다. 미 공군의 이런 매서운 공격을 견디며 폭격 목표인 대화도를 향하여 목숨을 건 비행을 견지해왔던 남은 TU-2기들이 섬 상공의 폭격 지점에서 마침내 기수를 북으로 돌려 도주하였다.

마셜 소령은 이들 대화도 상공에 진입했던 몇 기의 TU-2 기들이 폭탄을 투하했던 사실을 기술하지 않았다.공중에 전개된 난전으로 그 폭탄 투하 장면을 보지 못한듯하다.

마셜과 동료 호노커는 도주하는 마지막 적 폭격대를 서둘러 격멸하기로 하고 기수를 돌려 다시 급강하를 시작했다.

바로 이 순간 호노커는 비명에 가까운 경고를 발했다. “대장! 급속 이탈 !-BREAK HARD-!”

BREAK HARD라는 말은 조종사가 모르는 사이 적기가 내습한 위기 상황을 동료기가 알아채고 발하는 경고다.

이 경고가 이어폰에서 울리는 순간 조종사들은 만사 젖히고 무조건 최대로 신속하게 기체와 조종사의 조건이 허용하는 한 급격하게 방향 전환과 다이빙으로 적기의 공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 비명의 경고를 듣는 순간 마셜은 격심한 충격에 정신을 잠시 잃고 말았다. 마셜은 나중에야 그가 정면 고공에서 그의 F -86기를 향하여 수직 다이빙으로 기관포 공격을 한 LA-9기를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적기는 그에게 일격을 가하고 아래로 다이빙해서 이탈했다. 문자 그대로 일격이탈의 기습에 마셜 소령이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LA-9는 즉시 추격한 호노커에 격추당했다.

그러나 조종사 왕티안 바오는  살아서 부대로 돌아 갔다. 오히려 마셜 소령의 F-86기를 격추 한것으로 보고하여 대대적으로 선전에 동원되었다.


                                               중국 언론에 프로펠러 기로 미군 최신 전투기를 격추한
                                               영웅으로 대대적으로 선전되던 왕 티안 바오의 사진


적기를 처치한 호노커는 거꾸로 뒤집혀 진채 지상을 향해 나선을 그리고 추락하고 있는 마셜의 전투기를 쫓아왔다.

적 기관포탄은 마셜의 왼쪽 날개를 크게 파손시키고 캐노피[조종석 보호창]를 날려 버렸다.기관포탄 한 발이 조종석 머리 받침대에 뒤에 명중하여 그의 조종 헬멧을 크게 파괴하였다.

머리에 큰 상처를 입어 흐르는 피는 마셜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의 전투기는 뒤집어진 채 지상을 향하여 계속 나선을 그리고 추락했다.

그는 정신을 잃어서 조종 불능상태였다. 그러나 캐노피가 날아간 조종석에 세차게 몰아 부친 북한 겨울의 얼어붙은 냉기가 그의 의식을 되찾게 하였다.

뒤집혀 진 기체의 조종석에 거꾸로 매달린 마셜은 지면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정신이 든 마셜의 귀에 들린 것은 호노커가 김포 기지에 다급하게 보고하는 그의 위기 상황이었다.

마셜의 전투기가 추락하고 있고 탈출한 낙하산도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마셜은 조종석을 엄습하는 강풍 속에서 겨우 기체를 다시 잡고 상승해서 호노커와 합류했다. 그의 헬멧을 크게 부서지고 부착된 이어폰이 파괴 되어서 수신은 되었지만 송신은 되지 않았다.

산소 마스크도 얼굴에 밀착되지 않아 한 손으로 조종간을 조작하면서 한 손으로는 산소 마스크를 얼굴에 꼭 대고 있어야 했다. 그의 손과 얼굴은 얼어붙은 대기에 마비가 되었다.

이곳은 적진 깊숙이 있는 격전장이었다. 캐노피마저 날아간 마셜의 전투기를 미그기가 공격한다면이미 날개에 큰 파손을 입은 기체로는 회피 기동마저도 불가능하게 보였다.


                                                        F-86기와 미그 15기들이 격돌하던 유명한
                                                        미그 골목[MIG ALLEY]


더구나 보유한 실탄은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마셜은 150마일 남쪽의 김포 기지로 방향을 틀고 불안한 귀환 비행을 시작했다.

연료계는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부상을 입었고 또 다시 의식을 잃을지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그의 부상이 상당히 심각한 것을 알아차렸다.

폭발한 적 기관포탄 파편들과 파괴된 캐노피에서 비산한 프렉스그라스 조각들이 마셜의 손과 얼굴과 목에 박혀 출혈을 계속하게 했다.

상황은 엄중했고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과연 이런 상황에 전투기를 몰고 남쪽 김포 기지로 귀환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절망적 생각도 들었었다.

이 위기에 믿을 것은 동료 호노커의 호위뿐이었다. 이런 위기상황 대처 능력에서 미 공군에는 호노커보다 더 나은 조종사는 없었다.

그는 적기의 추격을 요격할 후방의 위치에서 계속 마셜을 독려하며 정보를 주고 주변을 경계했다.

존 호노커는 적 기관포탄이 마셜 기체 상부 조종석 후부도 대파시켜 큰 파손 부위가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놀랐다. 그 곳에는 전투기 조종을 통제하는 유압 장치의 중심 부분이 있는 곳이었다.

이 곳이 파괴되어 유압(油壓)이 다 빠져 나간다면 전투기는 조종 불능 상태에 이른다.

마셜은 놀라서 뒤를 돌아보다가 더 놀랄 사실을 보았다. 그가 메고 있는 낙하산의 일부가 파괴되어 흰 천이 길게 빠져나와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낙하산이 적의 기관포탄이 조종석 후방에 명중했을 때 그 파편을 막아내 그의 목숨을 구했을지 모르지만 낙하산이 파괴된 이상 기체에서 비상탈출도 불가능했다.

호노커는 공중의 격전장을 빠져 비교적 안전지대로 접어들자 걱정스럽게 마셜 소령의 옆으로 다가와 지상 쪽을 가리켰다.

그 곳은 북한 해변의 갯벌이었다. 마셜에게 그 곳에 비상착륙을 생각해보라는 호노커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조종 시스템은 그런대로 아직 말을 듣고 있었고 엔진도 제대로 가동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런 추운 날씨에 신체도 시원치 않은 상태로 동체 착륙을 했다가 더 비극적인 결말을 맺을 가능성도 부정 할 수가 없었다.


                                         소련의 격추왕 에브게니 예브게니 페페리아예프 상좌에게 
                                         격추된 미 공군 가렛트 중위의 F-86기

                                         -청천강 하구 앞 얕은 갯벌에 불시착해서 기체 상태가 비교적
                                          온전했다. 그가 비상탈출한 것이 아니란 것이 손상없이 열린
                                          캐노피가 증명해준다. 소련은 이 기체를 소련으로 가져가
                                          철저 분석해서 미 첨단 기술을 빼냈다. 마셜 소령의 F-86기도
                                          하마트면 이 운명을 거쳤을 가능성이 있다.


마셜 소령의 쉽게 포기 하지 않은 싸움닭 기질은 해볼 때까지 해보자는 오기가 들게 했다.

그는 호노커에게 고개를 가로 지으며 남쪽으로 비행을 계속 하였다. 호노커는 김포 기지에서 구조 헬기가 출동했으니 힘내라는 격려를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셜은 기운이 되 살아 나는 것 같았다. 영겁과 같이만 느껴지던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우리는 드디어 엔진이 꺼져도 김포까지 활강할 수 있는 한강 북쪽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호노커와 기지의 분주한 통신을 들어보면 김포 기지에서는 그의 비상착륙에 대비해서 모든 전투기의 이착륙이 금지되고 활주로 옆에는 소방차와 구난차 그리고 앰브란스등이 비상대기 완료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셜 소령은 그를 위한 긴급조처들이 모두 행해져 그의 무사 귀환을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감격의 눈물이 눈에 고였다.

드디어 목마르게 기다렸던 김포 기지 활주로가 보였다. 마셜 소령은 바퀴를 내리고 엔진 출력을 줄이고 착륙 자세로서 활주로로 접근했다.


                                                               전쟁 중의 김포 비행장


그런데 믿지 못할 일이 생겼다. 난데없이 한 F-86기가 나타나 전방 몇 피트 앞에 끼어들더니 마셜 소령의 착륙을 가로막아 방해하며 자기가 먼저 착륙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마셜 소령의 캐노피가 날아간 전투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비상상황인지를 알았을 텐데 양심도 없는 인간이었다.

관제탑에서도 그 무례한 조종사에게 즉시 상승해서 활주로를 양보하도록 여러 번 경고했고 마셜 소령의 비상착륙을 대기하던 지상 요원은 붉은 경고 신호탄을 쏘며 접근을 막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마셜 소령은 그 예기치 않은 조종사의 착륙 방해로 성치 않은 기체의 기수를 올리고 마지막 출력을 가했다. 그는 사력을 다해 F86기를 상승시켜서 비행장을 겨우 한 바퀴 선회하고 가까스로 활주로에 착륙할 수가 있었다.

지상요원들은 마셜 소령과 호노커의 안전 착륙을 열렬히 환영했고 마셜 소령은 즉시 대기했던 앰브런스로 응급 구호소로 직행했다.

마셜 소령은 나중에야 그 양심없는 조종사가 그의 친한 친구이기도 했었고 한국전쟁중 최고의 격추 기록들을 보유한 탑 에이스중의 한 명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조종사는 아군 폭격기 편대를 호위하고 출격했다가 무전기가 고장 나고 말았다. 무전기 고장으로 그는 동료기나 기지와 교신을 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김포기지에 겨우 가까워 오자 엔진이 스톱하고 말았다. 그는 정지된 엔진을 가지고 겨우 활강하여 김포 기지에 비상 착륙을 했던 것이다.

이번 5전투 비행단의 기습작전으로 적 TU-2 폭격기는 불과 수 기만 탈출했고 나머지는 모두 격추당했고 호위하던 LA-9도 거의 섬멸되었다.

미그기도 여러 기가 격추 당했다. 비록 섬은 적에게 점령당했지만 공중에서는 참담한 대패를 겪었던 것이다.

5전투 비행단의 대 승리였지만 베테란 조종사 마셜 소령의 개인적으로는 아찔한 위기의 전투이기도 했다.

적 최신형 미그기와도 여러 번 공중전을 겪었고 다수의 미그기도 격추했던 노련한 마셜 소령이 구식 프로펠러 전투기에 죽었다가 살아났던 것은 6.25전의 아주 이색스런 일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6.25전중 공산군 미그 기가 유엔군 측의 프로펠러기에게 격추 당한 일이 있었던 사례는 두 번이나 있었다.

한 미그기는 대동강 하구 상공에서 미 해병대의 프로펠러 콜세어 기에게 격추 당했었고 다른 한 미그기는 압록강 상공에서 영국 해군 프로펠러 함재기 씨 퓨리에게 격추 당했었다,


                                                       미 해군 및 해병대의 F-4U 콜세어 기


만약 마셜 소령이 프로펠러 기인 LA-9에게 피격당한 뒤 아슬아슬한 귀환 비행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중국 선전대로 공산군 구식기에 미국의 최신 제트기가 당한 경우로 역사에 기록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미 공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한 6.25 전쟁 항공전사에 작은 오점이 될 수도 있었다.

마지막 사족(蛇足) 한마디.

노련한 마셜 소령은 적 LA-9기의 정면 공격에 당했다. 6.25전중 적 미그기를 격추했던 미 해병대의 콜세어기나 영국 해군의 씨 퓨리기도 성능이 월등했던 공산군 제트 전투기인 미그기와 대결했을 때는 대담하게 정면에서 적을 받아쳐 격추 시켰었다,

추측컨대 프로펠러기가 더 빠른 제트 전투기와 조우하면 결과가 뻔한 회피대신 적이 빠른 속도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게 과감한 정면 육박 돌격하라는 생존의 공중전 교리가 그 당시에 개발 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셜 소령은 후에 월남전에도 참전해서 활약했고 공군 소장으로 은퇴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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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이름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이후 현재까지 유럽의 역사를 살펴보면 5개의 강국이 있음을 알게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의 등장과는 별개로 이들 5개국은 아직까지도 역사의 주역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열거하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그리고 이탈리아인데 이들은 서로간의 견제와 균형을 이뤄가며 이합집산을 하였고, 20세기 들어 발생한 두 차례 세계대전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제국주의 침탈을 풍자한 독일신문의 삽화
                           하지만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흔히, 세계대전을 이야기 할 때 몇 개국이 참전하고 몇 명이 죽고 등의 통계자료가 나오곤 하는데, 실제 위에서 언급한 국가들 외에 자의적으로 대전에 참전한 국가는 극히 들물다고 단언 할 수 있겠습니다. 굳이 예를 든다면 지금은 사라졌으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강대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나머지 국가들은 이들 강대국 간의 이합집산에 따라 마지못해, 어쩔수 없이 전쟁의 폭풍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지금은 그저 그런 중부유럽의 약소국이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유럽의 강대국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훈련모습)


특히, 독일과 독일의 東西에 접하여 있던 러시아와 프랑스는 이러한 충돌의 중심이었으며, 어쩔 수 없이 이들 사이에 끼인 여러 약소국가들이 전화에 휘 말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유럽 쪽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종식 후 지도제작 업자들이 호황을 맞을 정도로 국가 및 국경의 변동이 심하여 딱히 어떤 나라가 원하지 않는 전화의 피해를 많이 입었나 판단하기조차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직전의 유럽지도
                                       중동부 유럽이 오늘날과 차이가 많습니다.


서부전선으로만 시야를 돌려보면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벨기에, 네덜란드, 록셈부르크의 3개국이 있는데 이들 국가들은 고래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꼴로 20세기에 들어 원하지도 않는 참화를 입게 됩니다. 그중 양차 세계대전에서 그들의 의사와 아무런 상관없이 최대의 격전지가 되었던 약소국 벨기에(Belgium)의 눈물에 대해 몇 회에 걸쳐 알아보고자 합니다.


예고된 전쟁터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독일은 언젠가 보불전쟁의 패전국으로 이빨을 갈고 있던 프랑스와 일전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준비성 강한 독일인답게 구체적인 對프랑스전쟁 계획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슐리펜 계획(Schlieffen Plan)입니다. 최단시간(계획상 6주) 내 프랑스를 쳐부수고 난 후, 러시아를 징벌한다는 한마디로 내륙국 독일이 가장 회피하고 싶은 양면 전쟁 거부책입니다.


                           죽기 전에 장차 독일의 전쟁 해법을 연구했던 참모총장 슐리펜


그런데 이 계획은 독일주력이 독불국경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중립국인 벨기에를 돌파하여 프랑스 북부로 진공 후 파리를 대포위함으로써 프랑스의 조기 항복을 유도 한다는 점이 핵심 이었습니다. 단지 독불국경보다 벨기에가 평야지대인 관계로 대규모 부대의 기동이 용이하여 파리에 쉽게 근접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세중립을 표명하던 약소국의 주권을 철저히 무시한 상태로 계획은 입안되었습니다.


                      슐리펜 계획에 의거 독일은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를 침공할 예정이었습니다.


즉, 전쟁이전 부터 약소국의 주권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단지 침공의 편이만을 위하여 이나라를 전쟁터로 삼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어쨌든 사전에 치밀하게 수립되어 있던 슐리펜 계획에 의거 독일은 1914년 8월 3일 프랑스에 선전포고와 함께 벨기에를 침공합니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을 점령한 독일군



프랑스, 러시아와 군사적 협력을 약속한 3국 협상국이기는 하였으나 최초 전쟁발발 당시에는 중립을 표명하였던 영국이 1914년 8월 4일 독일에게 즉각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던 명분이 바로 중립국 벨기에를 독일이 치범한 것을 이유로 들었을 정도로 당시 세계는 독일의 기습적인 침공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august의 전쟁사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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