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등장한 한니발의 코끼리
 

 
제1차 대전 당시 전선이 고착화되고 인명손실이 늘어나자 이를 타개할 방법을 골몰하던 영국은 비밀리에 최초의 현대식 전차 Mk I을 제작하여 1916년 9월 15일 솜전투(Battle of Somme)에 투입하였다. 전세를 뒤집을 만한 회심의 히든카드로 전장에 데뷔시켰지만 운용 노하우가 전무하였고 작전에 투입한 전차가 총 49대밖에 되지 않았던 데다가 고장차량까지 생겼다.

 
                                            1916년 솜 전투에 사상 최초의 전차가 등장하였다
 

이 때문에 생각했던 것만큼의 피해를 독일군에게 입히지 못하고 전선돌파에 실패하자 일선에서는 전차무용론까지 제기되었다. 그러나 전차가 장차전의 주역임을 입증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1917년 11월 20일 캉브레전투(Battle of Cambrai)에서 474량의 전차를 집중 투입한 영국은 진지돌파에 성공하였고 이로써 전차는 그 효과를 인정받게 되었다.

 
                                                  깡브레전투에서 전차는 돌파의 주역으로
                                                  진면목을 발휘하였다
 

2차 포에니전쟁 초기에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Hannibal)이 코끼리를 동원하여 로마군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캉브레전투에 등장한 영국의 대규모 전차부대는 참호에 안주하여 소극적방어전을 펼치던 독일군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버렸다. 당시 영국의 신문들이 한니발의 코끼리가 다시 등장하였다고 대서특필하고 전차의 전선돌파와 작전모습을 상세하게 보도하였을 정도로 의기양양하였다.


 
 
                                                          영국의 언론은 한니발의 코끼리가
                                                          재림하였다고 선전하였다
 

전선의 병사들도 전차가 한니발의 코끼리를 능가하는 전선의 수호신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믿음직스러워하였다. 전차를 앞에 두고 건배를 하는 당시 병사들의 모습은 마치 새 차를 장만하고 무사고 운전을 기원하며 고사를 지내는 우리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할 정도인데, 항상 죽음을 앞에 두고 싸워야 하였던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여 느꼈을 반가운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출 된 것이라 생각 된다.

 
 
                                                   영국군은 전차가 승리를 안겨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코끼리의 약점을 알게 되자 로마군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급속히 반감되고 그에 상응한 작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처럼, 당시 기술로는 어쩔 수 없이 빈약했던 전차의 장갑능력과 느린 기동력을 독일이 파악하게 되자 효과적인 대전차 공격방법을 찾아내었던 것이었다. 더구나 독일도 즉시 전차를 카피 생산 하자 전차가 연합군만이 보유한 필살기가 아니게 되었다.

 
   
                             적들도 코끼리를 만들어 내었고 전차간의 전투도 벌어지게 되었다
 

상대도 전차를 보유 하였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전차끼리의 전투가 일어난 것을 뜻하며 당시 신문들은 전쟁터에 새롭게 등장한 전차전의 모습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결국 영국의 입장에서는 한니발의 코끼리보다 약발이 오래가지 못한 꼴이 되었다. 전선에 그럭저럭 데뷔하여 무기사에 길이 남을 도도한 발자국을 찍었지만 당시의 전차는 전쟁 전체를 좌우 할 만큼 위력적이지 않았던 둔중한 코끼리였을 뿐이었던 것이었다.
 

                                               전차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보병들의 모습
 

하지만 이 코끼리들이 진화하여 전쟁의 주역으로 등장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전차의 공격을 받아 두려움을 겪었던 독일은 다음 전쟁에서는 이를 갈고 다듬어 미처 참호가 만들어질 틈도 주지 않았을 만큼 전선을 급속히 돌파하여 승리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였던 것이었다. 제2차 대전을 기점으로 전차는 지상전의 왕자로 자리매김하면서 불과 20년 만에 둔한 코끼리가 날렵한 공룡으로 변하였던 것이다.

 
               전차는 다음전쟁에서 지상의 왕자로 등극하였고 지금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라는 말처럼 전차의 발달은 대전차 무기의 발달도 함께 동반하였고 현재까지 그런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대전차 무기는 시간이 갈수록 휴대가 편리하고 정확도는 물론 파괴력도 높아져서 전차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전차는 등장이후 지상의 왕자 자리를 계속 차지하는 것을 보면 과연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과연 훗날에도 한니발의 코끼리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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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그들은 바보들이었나?

 
 
일본이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켰을 때를 제2차 대전 개시일로 보자는 일부의 의견도 있지만, 역사교과서나 백과사전 같은 많은 공인된 자료에는 독일이 폴란드를 기습 침공한 1939년 9월 1일을 제2차 대전의 시작으로 본다. 아마도 당시까지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서구를 위주로 역사를 기록하다가 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폴란드를 전격 침공한 독일군

 
따라서 제2차 대전과 관련한 대부분의 서적들은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전쟁사를 기술한다. 독일의 침공을 받은 폴란드는 불과 한 달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것은 독일의 급속한 팽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승자인 독일군의 전과는 상세히 설명하는 반면 순식간 몰락한 폴란드군에 대해서는 무능함을 묘사한 내용이 많다.
 

                     많은 자료가 폴란드군의 무능함을 묘사하고 있다 (포로가 된 폴란드군)
 

다음은 이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내용이다.
 
독일 대 폴란드 전쟁에서 가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월등히 우수한 독일 기갑부대와 맞서 싸우는 폴란드 기병대의 모습은 전쟁 장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비극적인 장면이었다. ( 폴 콜리어 외, 「제2차세계대전」, 2008 )
 
SF영화 속의 한 장면이라면 또 모를까, 전쟁이 장난도 아니고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전차의 위력을 전혀 알지 못하는 기마병들은 승리를 다짐하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있다. 보나마나 지는 전쟁인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 리젠, 「CEO의 원가 자르기 비법」, 2007 )
 

                              폴란드 기병대는 바보 같은 돌격의 대명사로 회자되었다
 

제2차 대전사를 읽다보면 이처럼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기갑부대를 향하여 창을 꼬나 잡고 돌격하였다가 전멸한 이야기가 자주 인용된다. 이때 군사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이렇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 무식한 것들이 용감하다라고 ...'
 
그런데 그것만이 진실일까? 과연 그들은 창으로 전차의 장갑을 뚫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단순, 무식하게 전차를 향하여 돌격하였을까? 폴란드인들은 후진국이라서 전차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까?
 

                      과연 그들은 창으로 전차를 뚫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바보들이었을까?
 

영광의 16세기 폴란드를 이끌었던 주역으로, 이른바 윙드 후사르(Winged Hussar)로 알려진 기병부대는 폴란드에서 최고의 정예부대로 자랑스럽게 생각되고 있으며 현재도 의전용 기병대를 운용하고 있을 정도다. 제2차 대전 발발 당시에 폴란드의 기병대는 비록 시대에 뒤쳐졌지만 엄연한 전투병과였다. 따라서 전사를 보면 기병대가 개전 첫날부터 독일군과 격전을 벌인 사실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기병대에 대한 폴란드의 자부심은 크다 (최근 폴란드 기병대의 모습)
 

그러한 전투 중에서 위에 언급하였듯이 오해를 불러왔던 것은 9월 19일 볼카 베그로바(Wolka Weglowa)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제9 마로폴스키(Malopolski) 기병연대가 독일 기갑부대와 격전을 벌여 순식간 100여명이 전사하는 커다란 패배를 당하였는데, 마침 이를 목도한 이탈리아 기자가 '바보 같은 폴란드 기병들의 돌격' 이라고 기사를 작성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이후 왜곡정도가 더욱 증폭되었다. 그런데 본질은 결코 그것이 아니었다.
 

                                   전선으로 달려가는 폴란드 기병대의 역동적인 모습

 
우선 독일에 비해 열세여서 그렇지 당시에 폴란드도 엄연히 기갑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사실 독일의 전차부대가 폴란드를 앞선 것은 재군비를 선언한 이후부터이므로 불과 3~4년 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폴란드군들이 전차를 창으로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바보들이라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뻔히 아는 폴란드 기병대는 왜 무모하게 기갑부대를 향해 돌격하였을까?
 

                 폴란드군도 전차를 보유하고 있어 결코 생소하지 않았다 (폴란드 제10기갑여단)
 

당시 폴란드 기병대는 함락 위기에 빠진 수도 바르샤바를 방어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는데 우연하게도 대규모의 독일 전차부대와 조우하게 되었다. 진지를 구축하여 방어선을 설정하고 말고 할 수도 없을 만큼 허허벌판에서 순식간 독일군 전차들에게 포위당한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은 항복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망설임 없이 돌격을 선택하였다. 전차를 향해 돌격하는 행위는 정녕 무모하였지만 굴종보다 영예로운 군인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라 침략자에 굴복하지 않았던 용사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멍청한 바보들이 아닌 당시의 상황에서 가장 군인답게 취할 수 있던 행동을 망설이지 않고 실시한 영웅들이었다. 전쟁터에서 폴란드 기병대와 마주한 독일군들은 그들에 대해 경외감을 가질 정도였는데, 9월 1일 폴란드 기병대와 격돌하여 승리를 이끈 독일의 명장 구데리안(Heinz Guderian)은 전쟁이후 저술한 저서에서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신념에 대해 찬사를 남겼을 정도였다.
 

                       만일 누가 우리 선배들의 육탄공격을 우화한다면 과연 어떠하겠는가?
                                           (춘천전투 당시 육탄전 재현행사)
 

이처럼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는 단지 쓰여진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만일 6.25전쟁 당시에 침략자를 막으려 육탄으로 전차에 돌격하였던 우리선배들을 제3자가 무모한 바보들이라 우화시키고 그것을 남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우리가 왜곡된 정보만으로 남을 잘못 평가 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그러면 남들도 우리를 왜곡하여 우습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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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공포 EFP
 
 

이치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을 설명할 때 모순 (矛盾) 이라는 고사성어를 씁니다. 단어 이면에 담겨있는 정확한 의미는 차치하고 단지 뜻으로만 풀이한다면 모순은 창과 방패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무기의 역사와 다름없습니다. 전투도구인 무기는 살상을 목적으로 하지만 반드시 하나의 전제조건이 있는데 나의 피해는 막고 적에게만 피해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과 방패, 어쩌면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무기는 남을 공격하는 공격용무기와 나를 보호하는 방어용장비로 나뉘어 함께 발달하여 왔습니다. 이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적도 함께 추구하는 공통의 명제인데, 나의 공격 도구는 상대의 방어망을 뚫어야하는 반면 나의 방어장비는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상반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말 그대로 모순입니다.

 
              공격은 반드시 수비를 뚫어야하지만 수비는 공격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바로 전차입니다. 전차는 단 한발로도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가져야 하는 반면, 최전선을 휘젓고 다니면서 활약하는 무기답게 상대의 어떠한 공격도 너끈히 물리쳐야하는 방어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과 달리 이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막강한 화력과 두터운 장갑을 자랑하는 M1A1 전차
 
보통 전차의 장갑능력이 향상되면 이를 깨뜨리기 위한 대전차무기가 개발되고 다시 이것은 전차의 방어력 향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무한반복의 과정을 계속합니다. 이처럼 ' 역사는 도전과 응전 ' 이라는 역사학자 토인비 (Arnold J. Toynbee) 의 말에 가장 부합되는 예가 바로 무기의 발달과정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정규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테러와 대테러 전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전차의 발달과 더불어 대전차무기의 성능도 향상되었습니다.

 
일전에 소개한 IED (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 폭발물) 도 최초에는 일반 차량에 대한 기습공격을 목적으로 하였지만 험비 (HMMWV) 같은 경장갑차량이 등장하여 그 효과가 감소되자 폭발력과 살상력이 초기 형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대된 무서운 IED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중장갑을 두른 MRAP (Mine Resistance Ambush Protected) 처럼 새로운 이동 정찰 수단이 개발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방어력을 증강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방어력 실험중인 MRAP ( 한대에 10억이 넘는 고가의 장비입니다 )
 

IED는 주로 매설되어 있다가 방어력이 취약한 이동차량의 하부를 공격하는 형태가 주로 쓰이는데 이 때문에 차량의 하부를 V자 형태로 가공하여 폭발력을 분산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공격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방어력이 증대되자 테러조직은 단순 폭발을 이용한 공격수단 외에 장갑을 완전히 관통시켜 파괴하는 EFP (Explosively Formed Penetrator 장갑 관통 폭발형 관통자) 라고 불리는 새로운 공격수단을 활용하기에 이르렀으며 최근 그러한 추세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라이너가 덧대어져 있는 EFP의 모습

                                     이라크에서 적발된 EFP 비밀제작공장
 

전통적으로 중장갑을 관통하기 위해서는 성형작약탄 (HEAT) 이 사용되는데 이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IED가 바로 EFP입니다.  성형작약 앞에 구리 등으로 만들어진 라이너 (Liner) 를 덧대어, 기폭 시 라이너가 고속으로 원뿔형으로 변형 사출되면서 표적을 관통하는 구조인데, 가내수공업 형태로도 제작이 가능할 만큼 구조가 단순하지만 그 능력은 중장갑도 뚫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EFP에 공격당한 MRAP의 모습
 
                                    수색하여 발견한 EFP를 제거하는 모습
 

결국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전차 등에 사용되는 반응장갑 같은 특수한 장갑장비가 필요하나 현실적으로 모든 이동차량을 이렇게 할 수도 없으며 사실 이런 점은 대테러 작전운용 경험이 많은 미군도 고민거리입니다. 결론은 EFP를 포함한 IED는 방어력 증대 외에도 사전에 치밀한 수색으로 발견하거나 또는 다양한 재밍 (Jamming 전파교란) 기술을 이용하여 원격 조정 기폭장치를 무력화시키는 여러 가지 방법이 병행되어야 그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라파엘社의 대 IED 레이저 요격 씨스템
 

도둑 하나를 열 명의 경찰이 잡기 힘들다는 격언처럼 테러와 이를 막기 위한 준비는 상당히 고단한 줄다리기이고 어려운 과정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도둑을 잡기 힘들다고 경찰이 자신의 임무를 결코 포기할 수 없듯이, 비록 EFP와 같은 무서운 테러무기 또한 효과적으로 대응할 여러 가지 방법은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처럼 무기도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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