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의 마지막 도박, 복제 전투기 [下]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 해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전투기는 F4U와 F6F였다. 전쟁 초기에는 일본의 제로기가 구닥다리 미군 전투기를 압도하였지만 얼마가지 않아 새롭게 등장한 위 전투기들에 몰려 도망 다니기에 급급한 실정으로 역전 당하였고, 일본은 이런 격차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일본 군부는 이러한 암울한 상황을 다시 바꾸고자 하였다.
 
                               시범비행중인 미군의 F6F(아래)와 일본의 제로전투기(위)
                                          하지만 제로기는 F6F와 맞서기 힘들었다.
 

마침내 1944년 중순경, 만난을 무릅쓰고 잠수함으로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서 독일로부터  얻게 된 최신 군사지원 자료에는 전편에 소개한 Me-163외에도 세계최초로 제식화한 제트전투기 Me-262에 관한 귀중한 자료도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귀한 자료를 입수한 일본은 이를 Ki-201로 명명하고 나까지마사에 즉시 제작하도록 지시하였다.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독일의 Me-262
 

그런데 제2차 대전 당시 일본 군부는 육군과 해군이 서로 협력하기 보다는 권력을 분점하고 경쟁하던 사이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전사나 무기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자존심을 내세워 쓸데없이 경쟁을 하고는 하였는데, 그러한 와중에 일본식 Me-262 또한 처음부터 육군용과 해군용으로 나뉘어 개발되었다.

 
                                      일본판 Me-262인 Ki-201 제작 중 모습
 

물론 전투기가 육군용과 해군용이 기능이나 성능이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는 없지만 1945년에 와서 일본 해군은 더 이상 항공모함을 운용할 여력이 되지 못한 상태였다. 더구나 한곳으로 자원을 집중하여 무기를 개발해도 부족할 판에 굳이 각 군별로 자원을 나누어 신무기 개발에 나선 것은 한마디로 말해 무모한 도전이었다.

 
                                                  나까지마 제작공장
 
어쨌든 설계도를 바탕으로 일본은 육군용인 카류해군용 기까의 동시 개발에 착수 하였다. 비행체로써의 기본구조는 육군용 해군용이 별로 차이가 없었지만, 이를 사용하고자하는 목적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해군은 적의 폭격기를 요격하는 제공 전투기로 개발에 나섰지만 육군은 폭탄을 탑재 할 수 있는 전폭기로써 개발방향을 잡았다.
 
                                                    엔진장착부
 

사실 Ki-201의 원형인 Me-262도 히틀러의 간섭으로 인하여 폭격기로 개발되는 잘못된 길을 갔었다. 당시 독일이건 일본이건  본토가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당하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연합군의 공습을 저지하는 것이 우선의 당면 과제였다. 따라서 단 한기의 고성능 요격기가 아쉬운 형편이었는데 프로펠러기가 감히 추격하기 어려운 속도를 자랑하는 제트기는 이에 적합한 물건이었다.

 
                                                  지상시험 중인 모습

 
하지만 즉시 보복을 외치던 위정자들의 편협한 발상에 제트기의 이런 장점은 묻혀버렸다. 지상공격은 비행기의 속도보다 저공에서의 선회력과 대공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내구성이 좋아야하는데 초기의 제트기는 그런 임무에 부적합하였다. 결론적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직시하지 못한 히틀러나 일본 육군의 한심한 발상은 인류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체 도색이 완료된 Ki-201


어쨌든 카류를 기준으로 일본 군부는 제작사에 운항속도가 최고시속 852km, 상승한도는 12,000m 그리고 항속거리는 980km가 되며 주무장으로 30mm기관포 2문과 보조무장으로 20mm기관포 2문 그리고 500~800Kg의 폭탄 1발을 장착할 수 있도록 요구하였는데 이는 오리지널인 Me-262의 성능을 웃도는 것으로 당시 일본 항공업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가혹한 것이었다.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인 마징가에 등장한 Ki-201

 
제작사는 1946년 3월까지 원형기를 포함하여 총 18기의 초도기를 만들 예정이었지만 종전으로 개발은 중단되었다. 비록 이들이 완성되었어도 전쟁의 향방을 바꿀 수는 없었겠지만 연합군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데 조금 더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완성으로 끝난 이러한 시도가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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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미 F 86기들의 적 쌍발 폭격기대 기습 -



1951년 11월 말 아침. 미 공군 김포 기지의 브리핑 룸에서 출격 조종사들은 한 놀라운 브리핑을 받았다.

브리핑 내용은 압록강 앞 바다 섬을 폭격하러 출격한  공산 공군의 쌍발 폭격기 편대군을 요격하라는 임무 부여와 함께 출격에 필요한 관련 전투 정보들이었다..

이는 공산 측의 최신 미그 15기들을 상대로 하는 공중전을 주 임무로 하고 있는 F-86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분명 놀랄 특수 임무였다.


                                                               미공군 F-86기 편대


공산군 공군 쌍발 폭격기들은 소련제 쌍발 프로펠러 엔진의 TU-2기 30기로서 같은 프로펠러 전투기인 소련제 LA-9들이 호위를 맡았다.

적 호위대는 더 있었다. 이들 구식 프로펠러 폭격기와 전투기들은 이 지역 상공에 출몰하는 미 공군 F-86기들의 내습에 대비해서 후방 고공에서 비행하는 소련 공군 미그 15기들의 호위를 받았다.

공산 공군 폭격기들의 작전 임무는 압록강 아래 한 섬에 설치되어 있는 유엔군 전방 비밀 레이다 감시초소를 폭격하는 것이었다.

이 레이다 기지는 중국내 만주 지역에서 출격하는 공산군들의 전투기 자세한 정보를 탐지해서 이 지역까지 출격하는 유엔기들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마셜 소령의 공중전기에는 공중전 외의 배경 설명은 대폭 생략 되었고 오류들도 있어서 아래에 추가적인설명이 필요하다,

위에서 말한 섬은 평안북도 압록강 하구 아래 육지에 인접한 바다에 자리 잡은 대화도가 유력하다. 미국 기록은 이날 폭격이 대동강 하구앞 바다의 초도에 가해 졌다고 하지만 최근에 출판 된 중국 기록은 대화도로 되어 있다. 


                                                  북한 지도-좌측 맨 아래에 대화도가 보인다.


대화도는 평북 철산군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서 북한 탈출 유격대와 미군과 영국군의 혼성 첩보 부대가 게릴라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대화도는 두 번의 공산기 폭격을 받았었다. 한번은 1951년 10월 13일 미그기 4대편대의 호위를 받는 9기의 중공군 중폭격기대가 가한 폭격이었다.

이 예기치 않은 폭격으로 주민과 유격대 69명이 죽고 여러 가옥과 시설들이 대파되었다.

성공적인 첫 폭격이 공산측으로 하여금 더 대규모이고 더 대담한 두 번째 폭격을 시도하게 했다.

두 번째는 같은 해 1951년 11월 30일 오후 6시에 500톤급 8척으로 용암포에서 출발한 중공군 148사단 예하 연대 병력이 섬을 기습 상륙하기전에 가한 사전 폭격이다.

잘 무장한 정규군이 수비하던 상황이 아니었고 섬에 주둔하던 유격대들은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중공군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손쉽게 상륙하고 말았다.

유격대는 이틀간 저항했지만 다수의 사상자가 났으며 미군 두 명과 영국군 한 명이 포로가 되고 섬은 점령당했다.

이 곳에 마셜 소령의 기록처럼 레이다 기지가 있을 법하지만 다른 기록들은 이 사실을 전하지 않고 있다.[미군 기록의 초도에는 레이다  기지가 있었다.]

시기나 규모로 보아 미군에게 궤멸당한 폭격대는 이 섬 함락 작전 때 동원된 것아 확실하다.

사실 미공군 공격대가 공산군의 폭격대를 조우한 시간은 오후 4시경으로 중공군의 상륙작전 2시간 전으로 대규모 폭격대들이 역시 대화도에 가한 대규모 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출격에  나선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더구나 미국 기록이 말하는 초도는 황해도 앞바다에 있어서 김포나 수원의 미공군  기지와 너무 가깝다.[상식적으로 보아도 속도가 느린 프로펠러기들이 대규모로 접근하기에 아주 위험한 남쪽에 위치해 있다.]

중공군의 폭격이 대화도를 겨냥한것임에도 미공군은 레이다 기지가 있던 초도를 겨냥한 것으로 오인한것이 이런 혼란한 기록이 나오게 만든것으로 판단된다.

마셜 소령의 전투 기록은 이때 출격한 폭격기들이 북한 공군의 TU -2 경폭격기라 했지만 다른 기록은 중공군의 소련제 TU-25 중형 폭격기들이라고 전하고 있다.


                                                                 소련제 TU-2기


그러나 이들 폭격기들을 직접 목격하고 격추했던 마셜 소령의 기종확인이 더 신용할만해서 이를 TU-2기로 하기로 한다.[중국 출판물에도 TU-2기들로 되어있다.]

단 폭격기대 소속은 북한 공군보다도 중국 공군 소속이 더 정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밀 작전은 오랫동안 비밀로 보존되어서 정확하고 세밀한 공식 기록을 찾기가 힘들다.

유엔군이 압록강 넘어 중국 땅에서 출격하는 미그기들을 감시하는 레이다 감시 초소로서 공산군에게는 목의 가시였지만 유엔군에게는 생존 정보의 제공자로서 비할 바 없는 중요성이 있는 비밀기지였다.

조종사들에게 전하는 바에 의하며 이 섬의 비밀 레이다 기지를 운영하는 팀은 호주 군이라고 했다.[영국군을 오인했던 듯]

그날 적의 이색적인 이 폭격기 떼를 남김없이 격멸하기 위해서 미 공군 4 전투 비행단의 334 대대, 335 비행대대,336 비행대대의 출격가능한 모든 F -86 전투기들이 동원되었고 조종사들도 모두 비행단의 최고 기술을 가진 노련한 조종사들이 선발되어 편대장이나 선도기들의 위치에서 비행했다.

이 글의 주인공 데이비드 마셜 소령은 335대대를 지휘하였다. 총 지휘는 비행단장 벤 프레스턴 대령이 맡았다. 기습이야 말로 이 비밀 작전 성공의 열쇠였다.


                           한국 전쟁시 미 공군 활약을 소개하는 대표 사진으로 자주 등장하는 사진. 
                           중앙이 이날 공중전을 총 지휘했던 제 4 비행단장 벤 프레스턴 대령, 왼쪽이
                           마셜 소령. 오른쪽은 적기 14기를 격추한 에이스 였지만 전사했던 죠지 데이비
                           스 소령. 대화도 상공의 공중전이 있기 며칠전 마셜 소령과 데이비스 소령이
                           동시에 에이스[5기 격추 이상 조종사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된 것을 기념하는 
                           사진.


적 폭격기 떼 격멸을 노리고 출격한 미 공군 4 전투 비행단의 F-86기들을 적을 기만하기 위한 위장된 비행 루트를 택했다.

평소에는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서 [압록강까지의 출격거리가 너무 멀어서 압록강 상공에서의 전투 체공시간은 단지 20여분에 지나지 않았다.]김포 기지에서 출격하면 연료를 최소한 소비하는 최단거리를 날아 압록강까지 북상했다가 작전이 끝나면 같은 최단거리의 루트로 돌아왔었다.

비행대형 또한 연료를 많이 소요하는 밀집 대형 방식이 아니라 넓게 산개해서 완만한 상승을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최단거리가 아닌 한반도 남북을 가로 지르는 백두대간의 동해 쪽에 바짝 붙어서 밀집한 대형으로 저공비행을 하였다. 중국에 설치된 공산측의 레이다에게 탐지 되지 않기 위해서 였다.

조종사들은 적과 조우하기 전까지 절대 무전 침묵을 명령받았다. F86편대들은 은밀하게 백두대간의 동쪽에 낮게 붙어 북쪽으로 날다가 적절한 지점에서 왼쪽 산맥을 넘어 서쪽 압록강 하류 아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맥을 넘자마자 F 86 편대는 즉시 급상승해서 넓게 산개한 전투 비행 편대를 형성했다. 공산군 레이다들은 바로 이 시점에 불시에 동쪽에 기습한 미군기들의 존재를 탐지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전투 비행편대로 적진에 육박해간 미군기들 앞에 하늘을 가득채운 북한 공군의 거대한 TU -2 폭격기와 호위하는 LA-9 전투기 편대들이 웅웅거리며 접근하고 있었다.

TU- 2 폭격기는 복좌 전투기로서 후방사수는 조종사와 등을 대고 후방을 향해 앉게 되어 있다.

독일의 메사슈미트 110기나 일본의 돈류 경폭격기와 비슷한 개념으로 설계 된 것들이 LA-9기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7년에 선을 보인 전투기로서 그 성능이 미군의 P-51 무스탕기 수준이었다. 두 기종(機種)들는 북한 공군이 1953년 극심하게 행했던 남한 야간 폭격에 동원되기도 했다.


                                     소련제 LA-9기, -23mm 기관포 4문 장비 어떤 글에는 이날 전투기를
                                      LA-11기라고 설명되어 있으나 원문대로 LA-9기로 한다. 두기는 거의
                                      같은 전투기다.

프로펠러 공산기들이 하늘 넓게 펼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폭격기들은 하늘 넓게 상하와 좌우로 산개하여 날아오는 중이었다.

호위기인 LA-9기들은 더 높은 상공에서 폭격기들의 앞 뒤를 감싸고 호위 비행했다.

아주 높은 후방 상공에는 공산군의 미그기들이 만드는 수십 개의 비행운이 줄무늬를 수놓고 있었다.

중국 출판물에는 소련 미그기들이 상황이 종료되어 가는 시점에 도착해서 별다르게 활약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이들 미그기들은 미국과의 전면전을 두려워해서 참전 사실을 적극 부인했던 스탈린의 지시로 바다 상공을 비행하는 것을 억제했었다.

바다에서 격추되면 미군에 의해서 포로가 되고 이들의 참전 사실이 폭로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이 이날 소련공군이 소극적으로 일관하게 했다고 본다.

그들은 미 공군의 F 86기들이 도전해왔음을 지상 레이다의 연락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근거리에 육박한 미 전투기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아직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들은 F86기들이 그들과 이미 섞여 들었음을 알고 크게 놀라고는 있었을 것이다.

멀리 작게 보이던 공산군 폭격기 떼는 순식간에게 다가왔다. 적 폭격기들은 3기 1개 편대로서 10개 편대로 구성되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북한 폭격기 떼들은 우리와 조우한 지점에서 약 50마일 거리에 있는 황해의 한 섬[대화도]으로 가는 직선 비행 코스에 있었다.

미 F 86 공격대가 이들 폭격대를 공격 일보 직전에 덜미를 잡은 것은 중요한 정보의 사전 입수와 작전의 절묘한 타이밍이라 하겠다.

공격 전략은 334 대대와 335대대가 정면 공격을 가하고 마셜 소령의 335대대는 고공에서 비행중인
적 미그기가 덮칠 경우를 대비한 엄호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마셜 소령의 편대기들은 급상승해서 후방 상공의 미그기들과 전방의 폭격기들의 중간 상공에 위치를 잡고 미그기 들의 공격에 대비한 경계 비행을 시작했다.

그 고공에서 보는 아래 하늘은 공중 살육전의 대장관이 개시되고 있었다.

아래 하늘은 그저 연달은 적기들의 폭발로 터져 나갈 듯했다. 공산 폭격기들은 F 86기들이 내습하자 급히 간격을 좁히며 밀집 비행편대를 만들었다.

적전투기들의 표적 노출을 최소화 하고 후방석의 기총 화력을 활용하기 위한 폭격기들의 전통 방어 전술이다.

호위하던 프로펠러 전투기 LA-9기중에 쇄도하는 미군 F 86기들을 향하여 용감하게 맞서는 것들도 있었다.

불을 뿜는 공중의 열전 공연이 본격적으로 절정으로 가기 시작했다.

마셜은 바로 아래에서 LA-9기가 공격당해 불을 뿜고 격추 당하고 있음을 보았다. 추락하는 적기들에서 비상 탈출한 조종사들을 매단 낙하산이 추락하는 적기들 사이 여기저기에서 마치 꽃이 지듯이 연출되고 있었다.

고공 후방에서 호위 비행을 하던 몇 기의 미그기들도 이 공중의 격전장을 향하여 급강하했다. 그들은 마셜 소령의 편대와 격돌했다.

그러나 미그기들은 경험 많은 F-86기 조종사들에게 모두 후미를 잡히고 말았다. 쫓고 쫓는 F-86기와 미그 15기들이 엮는 장관이 대 공중전의 무대에 추가로 연출 되었다.


                                                                     미그 -15기


그 장관은 영원히 계속 될 것같이 생각되었지만 미군기들의 은밀한 기습은 불과 몇 십 초 만에 공산 기들을 압도하고 말았다.

마침내 상황을 신속히 끝내버리기로 판단한 비행단장 프레스턴 대령은 마셜소령에게 대대를 이끌고 신속히 급강하해서 남은 적 주력 폭격기를 남김없이 섬멸하라고 명령했다.

마셜 소령은 대대를 이끌고 목표 폭격대를 향하여 급강하했다. 사방에서 있는 공중전하는 LA -9 전투기나 미그 15기 F-86기들 사이를 여기 저기 피하며 비집고 급 강하 하는 것이 마치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타이 방콕의 거리를 어렵게 운전하는 것 같이 느꼈다.

드디어 마셜 소령의 F 86편대는 가로 막아선 적기들의 틈을 누비고 아직도 온전히 밀집 비행중인 잔존 폭격대의 후방에 따라 붙었다.

폭격 목표인 서해의 섬[대화도]이 불과 몇 마일이 떨어지지 않은 아슬아슬한 지점이었다.

마셜은 적 폭격대를 선도하는 대장기로 보이는 TU-2기를 향하여 육박하자마자 CAL 50기관총 6문의 포문을 열었다.

명중한 적 폭격기는 검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지만 한동안 밀집 편대에서 바로 이탈하지는 않았다.

적 폭격대에 쇄도하여 일격을 가한 그의 대대 전투기들은 모두 일차 기습을 완료하자 즉시 재차의 공격을 위해서 기수를 높이 들고 급상승했다 .

그러나 그를 발견한 한 적 LA-9기가 정면에서 도전해왔다, 마셜의 유능한 윙맨 -동료기 조종사-존 호노커는 마셜이 확인하기도 전에 적기를 즉시 공격해도 좋다고 알려왔다. 즉 그의 후미에 아무런 적기도 따라 붙지 않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는 겁 없이 정면으로 덤벼드는 적 LA-9기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적기는 명중 몇 초 후에 폭발,불덩이가 되어 추락했다. 격추 된 적기에서 탈출하는 낙하산은 보이지 않았다.

공중전에 돌입하면서 공격대는 질서있은 편대 비행 대형을 유지하지 않고 각자의 전투 상황에 따라 모두 흩어졌다. 그러나 2기 1개 조의 기본 전투대형은 모두 견지하고 있었다.

마셜과 호노커는 다시 적 TU-2 폭격대를 향하여 재차 급강하했다.

이미 공산 폭격기들은 다른 F 86기들에 의해서 상당수가 불을 토하며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얼핏 보니 원래 30기 중에서 대 여섯 기만이 살아남아 목표를 향한 끈질긴 비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마셜는 그중 한 기를 골라 급강하 하며 기총사격을 하였다. 마셜의 집중 사격을 받은 적기는 화재가 발생하고 연기를 끌며 지상으로 추락해 갔다.

공산기 승무원들은 격추되는 폭격기에서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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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세대 ?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의 역사는 약 40억년이지만 이에 비하여 인류가 출현한 것은 약 400만 년 전이라 한다. 그리고 글로써 역사를 기록한 것은 약 3,000여 년 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상당히 짧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막연히 체감하고 있는 역사는 불과 2,000년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지구 역사에 비하면 티끌과 같다
 

그 이유는 서양력 때문이다. 지구상 모든 국가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서양력은 역사를 BC(기원전)과 AD(기원후)로 나누어서 표기한다. 이런 통상적인 표기방식 때문에 기원전 시대의 많은 역사적 기록과 유물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원후 역사가 느낌상으로 더 큰 비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서기 1년 이전의 모든 역사를 비슷한 시기로 보는 착시현상이 벌어진다.
 

그래서인지 막상 기원전 시기를 모두 비슷한 동시대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석기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만화에 공룡이 등장하는 것처럼 말도 안 돼는 허무맹랑한 내용들이 종종 묘사되고는 한다. 극화니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단지 기원전이라는 이유 때문에 10만 년 전과 1억 년 전이 비슷한 시기로 연관 지어지는 것은 그만큼 어느 정도 이전의 과거를 정확히 느끼기 어려워서다.
 

                             인간과 공룡이 공존한 이런 장면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무기사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투기의 세대구분이 그렇다. 누가 그런 구분법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전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트시대가 도래하면부터를 제1세대 전투기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제트기 등장 전에 있던 시기는 마치 BC처럼 취급받는다. 다음은 1940년대 이후의 전투기 구분법인데 대략 다음과 같다.


   제1세대 - 제트전투기 최초 등장시기  Me-262, F-86, MiG-15 등
  제2세대 - 초음속 돌파시기  F-104, MiG-19, MiG-21, Mirage 3 등
  제3세대 - 레이더 및 기본유도무기탑재시기  F-4, MiG-25 등
  제4세대 - 고성능 전자장비 및 정밀유도무기탑재시기  F-15, F-14, Su-27 등
  제5세대 - 스텔스 및 차세대전투 기능  F-22, F-35 등


                                        제1세대 전투기인 Me-262와 제5세대로 인정받는 F-22
 

사람의 주관적 기준이 관여할 수도 있겠지만 위의 구분은 많은 자료에서 통용되는 기준이다. 그런데 이러다보니 전사의 큰 획을 장식한 불멸의 프로펠러전투기들이 황당하게도 단지 제트세대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BC시기의 역사처럼 도매 급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같은 전장에서 활약하였지만 P-40과 P-51는 세대가 다를 만큼 현격한 성능차이를 보인
             전투기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구분으로는 제1세대 이전 전투기들로 구분된다.
 

프로펠러 전투기라도 매니아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전투기로 활약한 P-40과 P-51의 성능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굳이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제1차 대전 당시의 복엽기와 제2차 대전 당시의 전투기를 같은 세대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이 이상하다고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도 제트기 시대부터 1세대로 하다 보니 이들 모두가 엉뚱하게도 전투기 시대의 BC가 되어 버린 것이다.

 
                    프로펠러 전투기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동급의 전투기로 묶기는 곤란하다
 

전투기도입 당시부터 시기를 구분한다면 너무 구분이 많이 갈 것 같아서 그렇게 표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트전투기의 등장을 마치 AD로 하고 그 이전 전투기의 역사를 하나의 역사로 몰아넣은 것은 공룡시대와 석기시대를 같은 시기로 표현한 만화영화를 보는 것처럼 왠지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전투기가 가장 멋있게 하늘의 주역으로 활약하였던 시기는 제트기 등장이전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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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건너 재탄생한 전투기들 [ 下 ]
 
 
                             타향에서 출현한 후계자들
 
 
그런데 한국전쟁 휴전당시에 남북 중 하나를 선택하여 돌아가거나 전향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도나 브라질 같은 제3국으로 망명한 많은 전쟁 포로들이 있었던 것처럼,  패전 직후 미국이나 소련이 아닌 중립지역의 국가들로 망명하였던 독일의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이들은 망명국으로부터 많은 환대를 받으며 독일에서 연구하였던 프로젝트를 계속 수행하였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국으로 옮겨 온 독일의 V-2 팀
 

때문에 미소의 제1세대 제트전투기들이 등장하였을 때 그 동안 항공산업이 특별히 앞서 있거나 기술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국가들에서 F-86, MiG-15와 맞먹는 제트기들이 생산되기도 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전쟁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의 J-29 Tunnan전투기였다.

 
                    제1세대 전투기로 홀연히 등장한 스웨덴의 J-29 Tunnan
                    독일의 귤이 회수를 건너 오렌지가 된 부인 할 수 없는 증거다
 

그 모양은 오히려 오리지날 베이스로 생각하던 Ta-183의 재현이 아닌가 할 정도로 똑 같았다.  스웨덴이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어느 날 뚝딱하고 만들었다고는 절대로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닮아 있다.  부인 할 수 없지만 이것은 귤이 발트해라는 회수를 건너 오렌지가 된 경우였다.

 
                영락없이 J-29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Ta-183의 상상도(上)와
                전후 소련에서 노획물을 이용하여 카피 개발한 Ta-183의 희귀한 모습
                독일의 귤이 전후 소련 오렌지의 기반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그런데 귤이 강을 건너는 정도가 아니고 대양을 건넌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대서양을, 그것도 밤낯은 물론 계절도 정반대인 곳까지 멀리 이동하여 오렌지가 되었던 경우가 있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전쟁 중 미국의 압력으로 외형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였지만 전쟁기간 내내 상당히 친독적인 정책을 유지하였던 국가였다.

 
         친독적이었던 아르헨티나에는 전쟁 후 독일의 많은 전범들이 도피해 있었다
            ( 아르헨티나에서 모사드에 의해 납치 체포 된 아이히만의 재판모습 )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독일 엔지니어들이 아르헨티나로 망명하였고 SS나 게쉬타포처럼 처벌을 두려워한 많은 전범들도 이 대열에 합류 하였다. 그중에는 포커울프의 유명한 엔지니어로 불세출의 전투기인 Fw-190와 Ta-152시리즈를 제작 하였던 탕크(Kurt W. Tank 1898~1983)도 있었다.
 

                                도살새 FW-190의 아버지 쿠르드 탕크
 

그는 1947년 아르헨티나 정부의 지원 하에 코르도바에 옛 포커울프 직원들을 규합하여 종전으로 중단된 제트전투기 연구를 재개하였다. 탕크는 Ta-183를 프로토타입으로 하여 MiG-15에도 채택된 영국의 롤스로이스 Nene II엔진을 장착한 제트전투기를 만들었는데 비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르헨티나 군부와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탕크
 

이 전투기는 비록 실전에 데뷔한 기록이 없지만 나타난 성능만으로도 F-86이나 MiG-15와 맞먹는 성능을 보여 주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미국, 소련 등과 더불어 초기 제트전투기 개발의 주역으로 당당히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그 전투기의 이름이 Pulqui II였다.  귤이 또 하나의 오렌지가 되었던 것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진화한 또 하나의 오렌지인 Pulqui II
 

회수를 건너온 귤이 퇴보하여 탱자가 될지 아니면 오렌지가 될 지는 결국은 받아들이는 당사자가 하기 나름이고 또한 이러한 사례는 결코 남의 일만이라 할 수는 없다. 비단 무기뿐만 아니라 국가 방위와 관련한 모든 분야가 우리나라에 와서는 오렌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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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건너 재탄생한 전투기들 [ 下 ]
 
 
                             타향에서 출현한 후계자들
 
 
그런데 한국전쟁 휴전당시에 남북 중 하나를 선택하여 돌아가거나 전향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도나 브라질 같은 제3국으로 망명한 많은 전쟁 포로들이 있었던 것처럼,  패전 직후 미국이나 소련이 아닌 중립지역의 국가들로 망명하였던 독일의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이들은 망명국으로부터 많은 환대를 받으며 독일에서 연구하였던 프로젝트를 계속 수행하였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국으로 옮겨 온 독일의 V-2 팀
 

때문에 미소의 제1세대 제트전투기들이 등장하였을 때 그 동안 항공산업이 특별히 앞서 있거나 기술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국가들에서 F-86, MiG-15와 맞먹는 제트기들이 생산되기도 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전쟁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의 J-29 Tunnan전투기였다.

 
                    제1세대 전투기로 홀연히 등장한 스웨덴의 J-29 Tunnan
                    독일의 귤이 회수를 건너 오렌지가 된 부인 할 수 없는 증거다
 

그 모양은 오히려 오리지날 베이스로 생각하던 Ta-183의 재현이 아닌가 할 정도로 똑 같았다.  스웨덴이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어느 날 뚝딱하고 만들었다고는 절대로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닮아 있다.  부인 할 수 없지만 이것은 귤이 발트해라는 회수를 건너 오렌지가 된 경우였다.

 
                영락없이 J-29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Ta-183의 상상도(上)와
                전후 소련에서 노획물을 이용하여 카피 개발한 Ta-183의 희귀한 모습
                독일의 귤이 전후 소련 오렌지의 기반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그런데 귤이 강을 건너는 정도가 아니고 대양을 건넌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대서양을, 그것도 밤낯은 물론 계절도 정반대인 곳까지 멀리 이동하여 오렌지가 되었던 경우가 있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전쟁 중 미국의 압력으로 외형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였지만 전쟁기간 내내 상당히 친독적인 정책을 유지하였던 국가였다.

 
         친독적이었던 아르헨티나에는 전쟁 후 독일의 많은 전범들이 도피해 있었다
            ( 아르헨티나에서 모사드에 의해 납치 체포 된 아이히만의 재판모습 )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독일 엔지니어들이 아르헨티나로 망명하였고 SS나 게쉬타포처럼 처벌을 두려워한 많은 전범들도 이 대열에 합류 하였다. 그중에는 포커울프의 유명한 엔지니어로 불세출의 전투기인 Fw-190와 Ta-152시리즈를 제작 하였던 탕크(Kurt W. Tank 1898~1983)도 있었다.
 

                                도살새 FW-190의 아버지 쿠르드 탕크
 

그는 1947년 아르헨티나 정부의 지원 하에 코르도바에 옛 포커울프 직원들을 규합하여 종전으로 중단된 제트전투기 연구를 재개하였다. 탕크는 Ta-183를 프로토타입으로 하여 MiG-15에도 채택된 영국의 롤스로이스 Nene II엔진을 장착한 제트전투기를 만들었는데 비행에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르헨티나 군부와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탕크
 

이 전투기는 비록 실전에 데뷔한 기록이 없지만 나타난 성능만으로도 F-86이나 MiG-15와 맞먹는 성능을 보여 주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미국, 소련 등과 더불어 초기 제트전투기 개발의 주역으로 당당히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그 전투기의 이름이 Pulqui II였다.  귤이 또 하나의 오렌지가 되었던 것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진화한 또 하나의 오렌지인 Pulqui II
 

회수를 건너온 귤이 퇴보하여 탱자가 될지 아니면 오렌지가 될 지는 결국은 받아들이는 당사자가 하기 나름이고 또한 이러한 사례는 결코 남의 일만이라 할 수는 없다. 비단 무기뿐만 아니라 국가 방위와 관련한 모든 분야가 우리나라에 와서는 오렌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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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건너 재탄생한 전투기들 [ 上 ]
 
                                              
                                            승자의 권리
 
 
"귤이 회수를 건너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생물이나 물건이라도 환경이 바뀌면 이에 맞춰 변화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격언인데, 탱자가 귤보다 맛이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본고장을 떠나면 아무래도 품질이 나빠진다는 의미가 내포 되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본고장을 떠나면 그 모습이 변하기 마련이다
                                            (김치를 탱자로 만들어 버린 기무치)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속담이기도 하다.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로 오렌지가 될 수도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리지널보다 나중에 나온 파생형이 좀 더 업그레이드 될 가능성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비보이는 한국으로 건너 와서 탱자가 아니라 오렌지가 되었다

 
특히, 무기의 경우가 그러한데 90퍼센트 이상은 시간이 갈수록 오리지널보다 훨씬 성능이 우수한 놈들이 나온다. 그 이유는 최신 무기가 기존 것보다는 성능이 좋아야 이길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대편 것이 좋다면 비록 카피를 하여 우선 탱자라도 만들겠지만 개발에 관한 노하우가 쌓이면 오렌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무기 체계다.

                       독일의 보병휴대용 대전차무기인 팬저파우스트를 카피하여 탄생한 RPG-7은 
                  지금도 사용 중인 베스트셀러다.

 

1945년, 연합군이 독일 영토내로 진입하고 제3제국의 멸망이 가시화 되자 품질 좋은 무기를 개발하였던 독일의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살길을 찾아서 갈 길을 가게 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이 미국이나 소련으로 갈 길을 정하였고, 이들이 적국의 엔지니어지만 적극 스카우트하는데 미국과 소련 또한 주저하지 않았다.


                             전쟁말기 앞선 무기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였다
                                      (노르트란트의 V-1 제조시설을 점령한 미군)
 

특히 이들 중 미국이나 소련의 목표가 되었던 엔지니어들은 독일이 독보적으로 앞서있던 로켓과 제트기관련 종사자들이었다. 이들은 독일에서 연구하다가 종전으로 중단되었던 프로젝트를 새롭게 자리잡은 미국과 소련에서 재개하였고, 냉전이 본격 개시되자 최신무기를 앞다투어 만들어 내었다.


                             V-2 개발의 중추로 전후 미국으로 건너가 그 명성을 꽃 피운 폰 브라운
 

이런 이유 때문에 로켓이나 제트전투기 분야에서 새롭게 등장한 동서 양진영의 무기들은 유사하게 닮아있다. 당사자들은 독창적으로 개발 하였다고 강변 할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외양까지도 흡사 할 정도였다. 특히 이들 중 백미인 F-86과 MiG-15는 형제지간이라고 불러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 하지 못할 만큼 외양이나 성능이 막상막하였다.


                      독일의 패전으로 제작이 중단 된 차세대 제트전투기의 목업인 P.1101

 
F-86과 MiG-15은 패전으로 중단 되었던 메셔슈미트의 P.1101프로젝트와 포커울프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였던 Ta-183의 아류작들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유사하다. 후퇴익 주익과 동체에 삽입시킨 인테이크와 노즐은 제1세대 제트기들의 기본모양이 되었다. 따라서 P.1101은 F-86에 Ta-183은 MiG-15의 등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냉전시기 제1세대 전투기였던 F-86과 MiG-15는 독일의 오렌지들이었다.


 
이처럼 제2차 대전 후에 곧바로 다가온 온 냉전으로 말미암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무기가 세계시장을 순식간 양분하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독일의 귤은 전쟁 당시의 적들에 의해 오렌지로 변화하였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미국과 소련 외에 의외의 장소에서 오렌지가 되었던 경우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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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새로 만든다는 것이

 
 
음모론이나 무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한 번 정도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이 만들었던 비밀무기에 관한 이야기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V-1, V-2, Me-262처럼 실제로 전선에 등장하여 연합군을 경악시킨 놀라운 무기도 있었지만, 단지 구상단계로 끝나고 이후 흥밋거리로 전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V-2는 대표적으로 알려진 나치의 비밀병기다.


 
오래전 인터넷 검색 도중 아래 그림을 보고 깜작 놀랐던 적이 있었다. ( 현재는 폐쇄된 폴란드사이트로 후속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지 가정으로만 끝날 수 있는 내용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그림은 독일의 유명한 항공기 제조사인 포케울프(Focke Wulf)가 제2차 대전 말에 콘셉을 잡은 차세대 전투기인 Ta-183의 예상도인데, 설명이 너무 자세히 되어있었다.

 
                                       상상력을 유발시킨 문제의 Ta-183 그림
 

설명에 따른다면 전쟁 당시에 포케울프의 제작소나 연구소 같은 관련 시설이 東프로이센(East Prussia-현재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와 폴란드 동북부 일대)에 있었던 듯하다. 사실 습작에 불과한 단순 개념도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미 독일은 최초로 제트기를 만들고 제트전투기도 처음 데뷔시킨 나라인데다 Ta-183의 디자인도 극히 평범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제2차대전 당시 포케울프사의 명성을 드높인 프로펠러 전투기 Fw-190
 

그림을 보고 놀랐던 이유는 사실 다른데 있었다. 포케울프 제작진이 제2차 대전 후 스웨덴으로 가서 제트기 제작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에 동서진영을 대표하여 제트전투기로 명성을 드높인 후퇴익 제트전투기인 F-86과 MiG-15는 제2차 대전 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과 소련에서 옮겨간 독일 기술진들이 직간접적으로 제작에 참여하였다. 그래서 거의 동시에 등장한 이 두 전투기의 외형이 놀랄만큼 비슷하다.

 
                        MiG-15(전)와 F-86이 비슷한 모습을 가지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거의 동시대에 중립국 스웨덴이 최신 후퇴익 제트전투기인 J-29를 선보였는데, 이것은 미국과 소련 외에 처음으로 제식화에 성공한 후퇴익 제트전투기이었다. 제트기 (그것도 후퇴익)의 개발은 첨단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동안 별다른 기술적 기반이 없다고 평가되던 스웨덴이 J-29를 만들어낸 데에는 패전국 독일 기술진의 참여가 있었을 것이라 심증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밀 기계공업의 강국인 스웨덴의 자체 기술력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스웨덴의 SAAB J-29 Tunnan

 
특히 포케울프가 구상하던 여러 제트전투기 모델 중 Super TL과 스웨덴의 J-29는 이름만 바꿔 달았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너무 닮았다.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나치 비밀병기 콘셉을 보면 UFO타입의 나치 비밀병기처럼 당대 기술로 불가능한 것들이 많지만 Super TL은 실현 가능성이 컸던 모델이어서 전후 독일 기술진의 J-29 제작 참여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포케울프가 구상하고 있던 Super TL

 
포케울프의 관련 시설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東프로이센은 소련군에게 제일 먼저 점령된 독일영토였다. 당시 거기에 살던 400여만의 독일인들은 보복을 피해 피난을 하였는데, 제트기 엔지니어들이 발트해 건너에 있던 중립국 스웨덴으로 도피하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사실 이 정도 고급인력이 굴러 들어온다면 마다할 나라는 없다. 그들이 스웨덴에 정착하여 제트기 전투기 개발에 착수하지 않았을까?
 

                             오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작된 스웨덴의 최신 전투기 그리펜
 

그렇다면 오늘날 최신예 전투기인 그리펜(Grippen)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스웨덴의 전투기 제작기술은 독일의 기술진이 뿌린 씨앗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장의 개념도에 쓰여 있는 내용과 J-29를 연관지어 이처럼 여러가지 가능성이 생각나게 만들 만큼 고성능 제트기를 자력으로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그것은 현재도 그렇다.

 
                                                공군의 고등훈련기 T-50
 

사실 우리가 T-50 Golden Eagle 같은 고성능 제트기를 직접 만들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앞에서 추론한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외부의 자발적 도움 가능성도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제트기 제작에 관한 노하우 습득에 있어서 거의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였다. 그러한 어려움을 겪으며 이뤄낸 쾌거여서 더욱 자랑스럽고 그 성과가 소중하다. 앞으로도 계속적인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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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 [3]




                                하늘에 뜬 저승사자
 
레이더가 실용화되어 그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영국해협전투의 예처럼 제2차 대전은 각종 군사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던 시기로 대잠초계분야 또한 폭 넓은 진화가 있었다. 각종 탐지장치가 등장하고 무선통신기술이 폭넓게 사용 되는 등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다 광범위한 범위의 탐색이 가능하여, 제1차 대전 당시와 달리 인간의 시야를 벗어난 지역까지의 초계가 가능하여 지기 시작하였다.

 
           함재기의 발달과 항모의 실용화로 보다 광범위한 해상초계가 가능하여 졌다
 

그리고 제2차 대전, 특히 태평양전역에서 군사적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항공모함의 본격 실용화와 각종
함재기의 발달이다. 이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원양에서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항공작전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항공모함에 탑재한 함재기를 이용하면 함대나 상선의 이동 경로를 미리 탐색하여 적 함대를 사전에 수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즉시 공격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부상한 잠수함이 해상초계기의 눈을 벗어나기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까지의 기술로는 오늘날처럼 하늘에서 수중을 감시하는 정밀한 탐지기기는 아직 실용화되기 전이었다. 그러므로 해상초계활동 중 발견한 적 수상함이나 부상한 잠수함이 아닌 수중에서 잠항하는 잠수함을 탐색하고 공격하는 임무는 바다위의 구축함이 담당하였다. 다시 말해 이때까지는 하늘 위에 떠서 물속에 숨어 있는 잠수함까지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부상하여 있는 잠수함의 탐색은 이전에 비해 월등히 쉬웠고 공격도 즉시 가능하였다.

 
                           잠수함의 어설픈 부상은 최후를 의미 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잠수함은 배터리 충전 등을 위하여 부상 할 때 예전보다 더욱 조심하게 되었고 구축함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의 감시와 공격에도 항상 대비해야 할 만큼 위험스러운 임무환경을 맞이하였다. 물론 스노클(Snorkel)과 같은 장비의 개발로 이런 위험을 조금 감소 할 수 있었지만 스노클도 작동 시 하늘에서 발견하기 쉬운 흔적을 바다 위에 남기었다. 한마디로
대잠초계기가 잠수함의 천적으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스노클을 수면 위에 노출하고 잠항 중인 유보트
 

아직은 초보 수준이었던 대잠초계기였지만 제2차 대전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그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모했다. 특히 대서양과 유럽 인근에서 주로 활약하던 독일해군 유보트들의 손실을 보면 대잠초계기의 위력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당시 연합군함정에 의한 손실이 264척인데 대잠초계기에 의한 손실도 250척이었을 정도였고 결국 하늘로부터의 공격에 진절머리가 난 독일은 대공포를 장착한 초계기 요격잠수함인 U-flak까지 취역시킬 정도였다.

 
                               대잠초계기 공격을 위한 대공화기 탑재 유보트
 

당시의 대잠초계기는 적 잠수함의 출몰이 예상되는 지역을 천천히 초계비행하면서 잠수함의 부상흔적 등을 찾는 형태였는데, 만일 수면위에 잠수함 출현 흔적을 발견하면 근처 아군에게 통보하여 즉시 요격하도록 하거나 만일 적 잠수함이 초계기의 공격 범위 안에 노출되어 있다면 직접폭격 등을 실시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초계기가 직접 공격까지 하였다
 

이와 같은 대잠초계를 위해 제2차 대전 당시 미국은 두 가지 형태의 대잠초계기를 운영하였다. 하나는 항공모함에 탑재한 전투기와 뇌격기(어뢰를 이용하여 적함을 공격하는 전투기)를 하나의 편대로 구성하여 대잠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조합 형태는 아군함대 인근이나 적의 반격이 있을지도 모르는 최전선의 해역에서 이루어지는 작전 형태였다.

 
                             제2차 대전 당시 본격적으로 등장한 초계기는
                                오늘날 초계기의 직접적인 선배가 된다
 

또 하나는 제해권이 장악된 후방 해역에서 적 잠수함의 게릴라식 기습을 막기 위해한 작전 형태였는데,
장거리 항속 및 체공이 가능한 대형수상기를 이용하여 대잠초계 활동을 펼쳤다. 이렇게 소형인 항공모함에 탑재 대잠초계기를 이용한 초계활동과 육상에서 발진 가능한 대형항공기를 이용한 초계활동은 오늘날도 계속 이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대잠초계 형태로 자리 잡았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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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 [2]


                              초기의 모습

 
대잠초계기는 그 특성상 장시간 하늘에 체공하여야 하지만 기동이 날렵하거나 속도가 빠를 필요까지는 없다. 때문에 플랫폼이 되는 비행기들은 전투기와는 달리 굳이 기체가 고성능일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대잠작전 및 해상초계에 필요한 각종 센서(Sensor)류가 워낙 고가의 장비다 보니 이러한 장비들이 탑재된 대잠초계기 한 기의 가격은 보통 고성능 전투기의 그것을 능가하고는 한다.


            오늘날 대잠초계기는 육상발진형, 항모탑재형, 헬기형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초계 임무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각종 센서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도의 전략물자인데, 수요처도 한정되어 있고 제작에도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되어 이를 생산하는 나라도 얼마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하였던 나라들이 자신들의 해상지배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필요에 의해서 장기간의 노력과 개발로 이루어진 성과물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기술은 미국과 영국이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계기는 플랫폼 자체가 고성능은 아니지만 센서류가 고가인 무기체계다

 
잠수함의 무서움이 널리 알려진 시기는 앞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유보트의 신화가 처음 등장한 제1차 대전부터인데, 당시에는 주로 사람의 오감에 의해서 잠수함의 탐지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보편적인 대잠초계 장비로 사용되는 소나(Sonar)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ASDIC 같은 초보적인 초계장비가 개발되기도 하였지만 당시 기술 여건상 그리 좋은 성능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소나의 기술은 어군탐지에도 이용되는 등 여러 목적으로 사용 중이다
 

독일의 유보트들이 충전 등을 위하여 수시로 수면 위로 부상하였지만 연합군은 수상함만으로 이들을 발견하기 매우 힘들었다. 이때 하늘에서 잠수함을 감시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비행선(Airship)이 적당한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제1차 대전은 본격적으로 비행기가 실전에 본격 투입된 무기사적으로 혁명적인 시기였지만, 넓은 바다 위에서 잠수함을 탐색하기에는 체공시간이나 비행반경 등을 고려 할 때 그리 적합하지는 않았다.

 
     제1차 대전은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무기로 활용된 시기였으나 항속거리 등이 짧아
             넓은 지역을 장시간 초계할 플랫폼으로 사용하기는 곤란 하였다

 
그래서 비행선이 적합한 초계도구로 사용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센서에 해당되는 부분은 오로지 비행선에 탑승한 인간의 눈(眼) 밖에는 없었다. 비행선이 비록 장시간 체공은 가능하였지만 속도가 느리고 거대한 동체를 이착륙시키기 위해서는 해안주변의 연근해에서만 활동이 가능하였고, 당시의 통신기술을 고려할 때 잠수함을 발견하였어도 이를 해군 구축함에 즉시 통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비행선이 최초 초계용 항공 플랫폼으로 등장하였다

 
더구나 마땅한 자체 대잠공격 능력을 보유하지 못하여 부상한 잠수함을 바로 아래에서 발견 하였다 하더라도 손가락만 빨았을 뿐이었끼 때문에 비행선은 전술적으로 뛰어난 효과는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잠수함의 출몰을 감시하는 것은 망망대해를 수십 척의 수상함 들이 떼를 지어 헤집고 다니는 것보다는 분명히 효과적이었다.

 
                 하늘에서 해상을 감시하는 것이 효과적 방법임이 입증되었다


 
오늘날 고성능 PC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APLLE ][ 를 단순히 성능만 가지고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컴퓨터는 반드시 집체만한 대형이고 여러 명의 전문가들만이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APLLE ][ 와 같은 선구자의 등장 없었다면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를 만든 기술적 발전과 진보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의 열풍도 이미 이를 시대를 앞서보고 사전에 차근차근 준비한 기술적 기반이 있었기에 탄생한 것이다.

 
                    비행선에 의한 초계활동은 보잘 것 없는 시작이었지만 
                          오늘날 해상초계기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제1차 대전 당시에 인간의 감각에 의지하여 적 잠수함을 발견하는 한 없이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초보적인 형태의 공중초계 활동을 결코 우습게 볼 수는 없다.  ( 사실 '견시'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초계수단이다 ) 그러한 하나하나의 시도와 시행착오가 쌓여서 오늘날의 고성능의 대잠초계기가 탄생되고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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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적이었던 대한민국 공군의 분투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최근 각종 매체를 통해 극이나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개전 초기의 참담했던 상황을 묘사하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북한군 전차다.
국군이 용감하게 육탄방어에 나섰지만 전차를 앞세운 북한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당시에 국군이 보유하지 못한 전차는 6.25전쟁 발발 당시의 현격한 전력차이를 한 번에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군 전차를 육탄공격 중인 국군을 묘사한 TV 드라마 (사진-MBC)
 

그런데 이처럼 전차로 대표되는 기갑전력 외에도 국군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북에 비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엄청난 열세를 보이고 있었다.
병력으로는 1 : 2 수준이었지만 화력까지 계량화한다면 전쟁 발발 당시에 남북 간의 전력차이는 약 1 : 5 정도까지 벌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중에서도 사실 가장 전력차이가 심했던 것은 항공전력이었다.
전차의 경우라면 비록 북한군의 T-34를 막는데 무용지물이었지만 2.36인치 로켓포나 57밀리 대전차포처럼 형식적이나마 대전차무기를 보유하였던 것에 비한다면 전쟁 발발 당시의 항공전력은 그야말로 비교불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격준비에 나선 북한 공군기

 
당시에 북한군은 야크(YAK)전투기 외 160여기의 작전기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총 200여기의 군용기로 구성된 항공사단을 보유하였다.
하지만 당시 국군은 단지 L-4, L-5, T-6 훈련기 23기 만 보유하여 전투력은 전무한 상태여서 공대공전투로 적기와 맞상대할 수 없었다.
당연히 개전하자마자 북한기가 서울 상공에 나타났을 만큼 제공권은 북한군이 장악하였다.

 
                                         적 전차를 향해 육탄 돌격하는 L-5 훈련기
 

그러나 단지 공대공전투가 불가능하다고 국군은 그냥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후방석에 정비사들이 급조폭탄을 휴대하고 있다가 눈으로 조준하여 손으로 투하하는 공대지 육탄작전을 펼치기 위해 당시 하늘의 용사들은 망설임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록 이러한 육탄공격은 미미한 성과밖에 기록하지는 못하였지만 보유한 274개의 폭탄마저 개전 3일 만에 바닥이 나자 더 이상 작전을 진행 할 수도 없었다.
쉽게 극복할 수 없었던 현격한 전력차이에 하늘의 용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1950년 6월의 모습이었다.


                                선명한 태극 마크를 붙이고 현해탄을 건너오는 최초의 F-51편대
 

그러한 국군에게 미국의 즉각적인 참전과 원조는 어둠을 밝히는 빛줄기가 되었다.
미국은 한국 공군에게 10기의 전투기를 공급하는 바우트원(Bout One) 계획을 실시하였고 이에 따라 전쟁 발발 하루 뒤인 6월 26일 이근석 대령을 비롯한 10명의 국군 조종사들이 F-51 전투기를 인수받기 위해 일본 이타즈케의 미 공군기지로 도착했다.
일본에 도착한 조종사들은 즉각 전투기 전환 훈련에 돌입했으나 악천후 등으로 인해 나흘 동안 1인당 20~30분 정도의 훈련비행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급박한 전황 소식을 접한 조종사들은 즉각 귀국을 요청하여 7월 2일, 10기로 이루어진 F-51 전투기 편대가 대구에 도착하였고 다음날부터 출격에 나서 적에 대한 공대지 작전에 투입되었다.

 
                        지난 7월 1일 제11전투비행단에서 열린 F-51 전투기 인수 재현행사
 

세계 항공전사에서 보기 힘든 극적인 광경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순간이었다.
전투기를 다뤄 본적이 없었던 조종사들이 불과 나흘간의 급박한 훈련을 거친 후 실전에 투입되어 전과를 올린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다름없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고 그러한 분투는 국난 극복의 커다란 힘이 되었다.
한국 공군의 선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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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는 무지(無知)에서 온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6년 9월 6일, 극동 소련의 프리모스키 크라이(Primorsky Krai)에 위치한 추구예프카(Chuguyevka)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소련 제11항공군 소속의 전투기 1기가 갑자기 연해주를 벗어나 일본열도 북부의 홋카이도(北海島)에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모습이 정밀하다고 소문난 일본의 방공망에 포착되었다.

 

일본 레이더에 적성국 전투기의 접근이 감지되었다.

 

빠른 속도로 바다를 건너 일본 영공에 다가온 정체불명의 소련전투기를 요격하기 위해 일본항공자위대 소속의 F-4EJ 편대가 출격하였다.
비록 적대행위를 하지는 않아 격추는 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소련전투기는 일본 편대를 유유히 따돌려 일본을 경악하게 만든 후 홋카이도(北海島)의 하코다테(函館) 비행장에 비상착륙하였다.

 

하코다테기지에 비상 착륙한 소련전투기


 
얼마 후 착륙한 전투기에 다가온 일본 관계자들에게 전투기에서 내린 조종사 벨렌코 ( Viktor Belenko ) 중령은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며 정치적 망명의사를 명확히 하였다.
이 사건은 당시 서방세계를 발칵 뒤집고 소련에게는 당혹감을 안겨주었는데, 그 이유는 망명 희망자가 몰고 온 비행기 때문이었다.
그 전투기는 NATO코드명으로 박쥐여우(Foxbat)라고 불리던 MiG-25였다.

 

망명 조종사 벨렌코의 모습

 

MiG-25는 종종 고고도로 서유럽 영공으로 날아와 휘젖고 다니고는 하는데 서방측은 이를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어 쩔쩔매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특히 1970년대 중동의 하늘을 주름잡던 이스라엘 공군이 이집트와 시리아에 임대된 MiG-25가 이스라엘 영공을 가로지르며 정찰활동을 하여도 격추시키지 못하였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고 있던 중이었다.

 

냉전시대 서방은 MiG-25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마하3을 넘나드는 속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소련의 이 최신전투기에 대해서 당시 서방측은 엄청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소련의 천하무적 비밀병기였는데, 생각지도 않은 망명자 덕분에 미국은 눈에 가시같은 소련의 비밀병기를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당연히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은 일본의 변방인 홋카이도에 쏠릴 수 밖에 없었다.

 

불시착한 MiG-25 주위에 몰려든 조사요원들


 
소련은 기체의 즉각 반환을 요구하였지만 미국은 결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후방으로 MiG-25를 이송시켜 철저하게 분해하여 원없이 검사한 후 11월 15일 생색을 내고 돌려주었다.
그런데 당시 검사결과가 공표된 바는 없지만 세월이 흘러 드러난 정보에 따르면 당시 MiG-25를 검사한 후 가장 놀랐던 점은 이 전투기에 대해서 서방측 스스로가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후방에서 조사하기 위해 C-5 수송기에 탑재하는 모습


 
일설에는 미국 군부에서 MiG-25의 성능을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의회로부터 예산을 많이 따내기 위하여 고의로 정보를 은폐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검사 결과 MiG-25는 고고도에서 속도가 빠르다는 것만 제외하고 그리 훌륭한 전투기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동안 정확한 정보도 없이 단지 소련 측에서 흘러나온 선전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였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MiG-25는 무지가 공포를 유발하였던 대표적인 물증이 되었다.


 
결국 무지(無知)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공포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었고, 그렇게 된 이유 중에는 6.25전쟁에서 혜성처럼 등장하여 MiG-15에 호되게 당한 쓰라린 경험도 크게 한 몫 하였다.
사실 세상을 살 때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알고 있으면 두려운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은 군사 뿐만 아니라 인생사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공부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그것은 국방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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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라이벌 [ 2 ] 

제트시대에 재현된 개구리들


                                                  공군 F-80 Shooting Star



제2차 대전 후 제트시대가 도래하면서 공군(이때부터 육군 항공대에서 공군으로 독립)의 F-80 Shooting Star와 해군의 F2H Banshee가 최초로 공군과 해군의 제트전투기로 각각 제식화됩니다. 이 당시 미국은 유럽과 태평양에서 사상 최대의 전쟁을 승리하였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전후 세계최강의 위용을 뽐내며 감히 누가 내게 맞서랴하는 자만심이 충만하였던 시기였습니다.


                                         해군의 F2H Banshee


그러다가 선배들인 P40과 F4F의 꼴을 답습하게 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하늘에 제트 1세대의 최강 전투기 중 하나로 인정받는 소련의 MiG-15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말미암아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꼬리를 내리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또 한 번 서로 간에 잘난 척만 하다가 곧바로 사라진 그저 그런 전투기들이 되었습니다.


                                      공군의 승리  


6.25전쟁에서 갑작스런 MiG-15의 등장에 그나마 미 공군은 F-86 Sabre라는 회심의 후속대타가 있었고 이후 MiG-15와 F-86은 항공전사에 길이 남는 인상적인 공중전을 펼쳐 보이며 세기의 라이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면 해군은 사실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은 침울한 시간을 보냅니다.

 

                                          공군 F-86 Sabre 


시급히 도입한 F9F Cougar 등을 써보기도 하였지만 사실 적기는 물론이거니와 철천지원수인 공군의 F-86의 능력과 맞먹는 놈을 쉽게 제식화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사실, 함재기들은 항공모함 탑재를 위하여 공군기에 비해 기체구조에 제약사항이 많을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능력의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제트시대에 와서는 이러한 제약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F-86의 해군용 버전인 FJ Fury
 

해군은 결국 자존심을 뭉개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공군의 F-86을 함재기로 재설계하여 FJ Fury 라는 이름으로 항공모함에 탑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설명하였던 이유로 함재기로 재설계하면서 F-86 고유의 능력을 많이 상실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그저 그런 평범한 전투기가 되며 별다른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합니다. 제트시대에 와서 해군은 더 이상 공군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해군의 절치부심 
 

F-86의 성공에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 공군은 1950년대 일련의 제트기시리즈를 개발합니다. 이른바 센추리시리즈 (Century Series)라고 불리던 F-100 이후의 전투기들이었습니다. 그 첫째 작품이 세이버의 닉네임을 계승한 F-100 Super Sabre로 제식화 된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소련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MiG-19를 충분히 대적 할 수 있으리라 판단  하였습니다.
 

                                                   공군 F-100 Super Sabre


반면 해군은 F-100과 동일한 엔진을 장착하였으나 기동성과 맷집능력이 뛰어난 F8U Crusader를 제식화하였고 이들은 동시에 월남전에 참전합니다. 자만하였던 공군은 MiG-17 과 MiG-21에 믿었던 F-100이 혼쭐이 나자 곧바로 일선에서 후퇴시킵니다. 그러면서 마구 개발 하였던 전투기들을 이것저것 되는대로 참전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해군 F8U Crusader
 

사실 월남전은 미공군기의 능력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정치적 입김에 가해진 교전규칙 때문에 특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같은 제약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동안 절치부심하며 내공을 키워왔던 해군은 F8U의 뛰어난 기동력으로 공대공전투에서 짭짤한 성과를 얻어내었고 서서히 공군의 망신살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공군의 박탈당한 자존심 
 
 

센추리씨리즈를 개발한다고 난리치던 공군이 많은 전투기를 만들어내었음에도 실전에서 뾰족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사이에 내공을 키워온 해군은 희대의 도깨비 F4H Phanthom II를 함재기로 제식화 하였습니다.  그동안 센추리씨리즈가 월남전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초초해진 공군은 평판이 자자한 도깨비를 해군으로부터 빌려서 시험                  

                                             해군 F4H Phanthom II

 
그 결과 지금까지 공군이 개발하였던 모든 전투기들의 능력을 초과한다는 사실에 경악하였고 비록 자존심상하는 일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를 공군전투기로 제식화하기로 합니다. 여담으로 공군기를 함재기로 만들기는 힘들지만 함재기를 공군기로 전환하기는 상당히 쉽습니다.

 

                                           F4H의 공군용 버전인 F-110 Spectre
 

최초에는 공군 제식부호인 F-110 Spectre 라고 명명하였으나 이마저도 1962년 시행된 국방성의 제식화 부호 통일계획에 따라 F-4 Phanthom II라는 해군의 명칭을 그대로 가져다 쓰게 되었습니다. 굳이 공군이 살린 마지막 자존심이라면 기관포를 장착하고 공중 급유구를 해군과 다르게 설치하였던 점 정도라 할 만큼 공군은 라이벌 해군에게 굴욕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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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라이벌 [1]  
                        
                        아군을 깨부수자?



아래 사진은 현재 모두 퇴역한 미 해군의 제공전투기인 F-14의 편대 비행 모습이니, 조금 오래 된 사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을 보면 조금 황당한 구석이 있습니다. 동체에 ' 해군 힘내라! 육군을 깨부수자! ' 라고 쓰여 있는데 만일 평소에 저렇게 글씨를 써 놓고 날아다닌다면 육군의 항의는 그만 두고라도 언론에서 먼저 두들겨 맞지 않을까요?

 

 
아마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육군과 해군의 정기 미식축구경기(아니면 이와 비스무리 한 행사 때)에서 육군을 약 올리고 해군을 응원하기 위한 비행이 아닐까하고 추측됩니다. 그렇다면 고정익 항공 전력이 전무한 육군은 아파치 헬기나 M1A1 전차에다가 ' 해군을 깨부수자! ' 라고 비슷한 응원 문구를 썼을지 모르겠습니다. ^^
 
그런데 사실 삼군병립체제가 확고한 미군에서 최고의 라이벌을 뛰어넘어 각 군 간에 거의 원수지간으로 경쟁하는 분야라면 해군항공대공군(전신 육군항공대 포함)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공군을 육군항공대의 연장으로 본다면 해군과 육군이 직접적으로 경쟁 할 곳은 사실 하늘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미국의 해군항공대와 공군(육군항공대)의 자존심 경쟁, 그중에서도 특히, 공통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제공전투기분야의 경쟁은 하나의 연속된 에피소드로 볼 만큼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들  

 
제2차 대전 발발당시 전운이 감돌던 유라시아로부터 지리적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미국은 폭격기분야에 주력하여왔던 관계로 당시의 경쟁 군사열강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공대공 전투에 뛰어난 전투기가 없었다고 보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육군 P-40 Warhawk

 
유럽공군이 Me-109, 스핏화이어 등을 제식화 하고 일본해군이 제로라는 명품을 가지고 있었던데 비한다면 당시 주력이었던 미 육군의 P-40 Warhawk와 해군의 F4F Wildcat는 사실 그저 그런 보통 성능의 전투기였습니다. 참전초기에 코피가 터져 본 후에 1:1로 적기와 맞서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을 정도였습니다.

 
                                                해군 F4F Wildcat


하지만 전쟁 전에 하와이같이 양군의 주둔지가 겹친 곳에서는 서로가 잘났다고 상대군 기지상공에서 위협비행, 곡예비행등을 하면서 잘난 척하였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도토리 키 재기, 우물 안 개구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맷집으로 승부한 놈들

 
제2차 대전 당시 미군 프로펠러기들의 특징 중 하나가 못생긴 돌쇠스타일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돌쇠스타일의 전투기들은 기동능력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였지만 반면 스타일에 걸맞게 단단한 맷집을 겸비하여 공중전을 벌이기에 나름대로 적합한 장점은 있었습니다.

 
                                             육군 P-47 Thunderbolt

 
거의 동시대에 제식화 되어 우물 안 개구리들을 급속히 대체한 육군의 P-47 Thunderbolt와 해군의 F6F Hellcat는 그런 점에서 기동능력이 적기보다 뒤쳐지기는 하였지만, 든든한 기체 골격을 바탕으로 급강하능력과 맷집이 뛰어나 적기와 맞서 승리를 이끌어 내었던 공통점을 가진 전투기들이었습니다.

 
                                               해군의 F6F Hellcat


항공 전사를 살펴보면 이들은 꼬랑지를 물려 적기가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때려도 살아남아 상대방 조종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전설이 아직까지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돌쇠들은 육해군간 선의의 경쟁보다도 다음에 소개 할 자군 내의 다른 전투기들과 묘한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프로펠러 전투기의 지존들  

 
제트시대가 본격 도래하였던 1950년대 초기까지 살아남았던 (비록 전투기에서 대지공격 임무로 업종은 변경 하였지만) 명실공이 프로펠러 전투기의 지존들이 바로 육군의 P-51 Mustang과 해군의 F4U Corsair였습니다. 미군 전투기답지 않게 날렵한 자태와 뛰어난 능력으로 인하여 사상 최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한마디로 당대 하늘의 최고봉이라 칭하여도 손색이 없는 천하의 명품이었고 지금도 이들을 능가하는 프로펠러기는 없습니다.

 
                                             육군 P-51 Mustang

 
앞서 설명한 P-47과 F6F도 그랬지만 이들 또한 참전하였던 전역이 서로 달랐습니다.  육군 전투기의 경우는 거의 유럽전선에서 해군전투기는 태평양전선에서 각각 다른 적들을 상대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전력 비교는 사실 힘듭니다. P-51 예찬자들은 최강 독일공군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사실을, F4U 지지자들은 상대적으로 뛰어난 맷집 등을 예로 들며 지금도 설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군의 F4U Corsair

 
그런데 역사상 P-51과 F4U가 직접 실전을 벌인 예가 한번 있었습니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사이에 벌어진 전쟁 당시였는데, 흔히 월드컵 예선전 때문에 전쟁이 촉발되었다고 해서 축구전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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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1 KF-16 추락사고 상황일지


  오늘 오후 발표된 지난달 3월 31일 서해상으로 추락한 KF-16 추락 사고 상황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사고의 원인은 급격한 공중 전투기동시 일어날 수 있는 항공기의 실속(Stall)에 대비한 훈련이었으나, 실속직전에 회복조작을 조속히 시행하지 못하여 항공기가 실제로 배면실속과 조종 불능 상태로 진입되면서 추락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부에서 제기된 KF-16 엔진 결합에 대한 추락은 아니라고 하니 오해 없으시길 바래요)

  많은 분들이 실속이라는 용어가 궁금하실거에요. 강군 역시 무슨말인지 궁금하여 알아봤답니다.^^*

*실속이라 함은 비행기의 날개 표면을 흐르는 기류의 흐름이 날개 윗면으로부터 박리되어, 그 결과 양력()이 감소되고 항력()이 증가하여 비행을 유지하지 못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양력이라 함은 유체 속의 물체가 수직 방향으로 받는 힘입니다. 이 힘은 높은 압력에서 낮은 압력쪽으로 생기며, 유체에 닿은 물체를 밀어내리려는 힘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비행기의 날개가 이 힘을 이용하여 비행기를 하늘에 띄운는 거죠.  

 
  어떻게 이해 되셨나요? (로켓을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 되실겁니다. 로켓은 추진체가 있어 수직상태에서도 소위 말하는 양력을 잃어 실속상태에 돌입하지 않으나, KF-16은 무게가 10톤에 달하지만 엔진 이외에는 추진동력이 없어 실속상태에 이르면 양력을 잃어 추락하게 되는거지요.^^)

  사고 이후 조종사 분들은 19,000피트 상공에서 5,800피트 상공에 이르기까지 전방석과 후방석 조종사 두분이 회복 조작을 여러차례 시도하였으나, KF-16 탈출 최하 고도(6,000피트)에 이르자 비상탈출 하였다고 합니다.

  사후에 공군은 이같은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지상에서 실속진입 예방 및 회복조작 훈련이 가능하도록 시뮬레이터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고, 미 공군에서 운영하는 실속회복훈련 과정을 추진중에 있다고 하네요.

  이에 공군은 "다시 한 번 전투기 사고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비행사고 예방활동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합니다.  

  이상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강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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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강군 입니다.^^
  제2롯데월드와 서울공항 관련 비행안전장치 1탄에 이은 2탄의 취재를 마치고 이제야 포스팅하네요. 선진 씨와 함께 인천의 모 항공사 비행훈련장의 지형인식정보장치(EGPWS)를 취재하러 간 날은 봄비가 촉촉이 내린 날이었습니다.

  사안이 중요한 만큼 여러분들의 궁금증과 불안감을 속 시원히 풀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비행안전장치 2탄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전 기사 확인 선진-http://mnd-policy.tistory.com/33
                 강군-http://mnd-policy.tistory.com/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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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훈련장의 책임자부터 항공기 지형인식정보장치인 EGPWS에 대한 15분간의 간단한 브리핑을 듣게 되었습니다. 항공기의 EGPWS는 쉽게 애기하면 자동차의 내비게이션과 유사하다고 할까요? 항공기가 어떠한 위험상황에 직면해도 조종사가 당황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유도하는 기능을 담당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지만 그 기능이 단순한 내비게이션과는 차이가 있죠.  

  항공기는 자동차보다는 훨씬 정밀한 기계이기 때문에 단순히 내비게이션을 자동차에 장착하듯이 EGPWS를 설치할 순 없고, 다른 장치들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후 각각의 항공기 및 전투기에 장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EGPWS를 항공기에 장착하게 되면, 각각의 상황에 맞게 경고(Caution)가 울리게 되는데, 항로에 제2롯데월드같이 초고층 장애물이  있는 경우는 [TERRAIN, TERRAIN, PULL UP]이라는 경고음이, 정해진 항로보다 낮게 운행함으로써 충돌위험이 있는 경우는 [SINK RATE]라는 경고음이 울리게 됩니다. 경고음이 실제로는 아래와 같이 울립니다.
(관계자 말로는 실제로 이러한 경고음이 울리는 경우도 거의 없고 울려서도 안 된다고 합니다.)




  관제탑에서뿐만 아니라 항공기 내부에서도 승객들의 안전 및 외부 충돌에 대비해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답니다. 하지만 항공기는 99번 안전운행해도 한 번 사고가 나면 치명적 결과로 다가오기 때문에 아무리 안전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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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형항공운항장치(simulator)


  이제는 모형항공운행장치(simulator)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항공기는 한 번 운행하면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시뮬레이터를 각각의 항공기에 맞게 제작해 조종사들을 훈련시킨다고 합니다. 강군이 들어간 곳은 747-400 기종 시뮬레이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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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모형항공운항장치(simulator)


 
  예전에는 위의 사진과 같이 작은 시뮬레이터에서 조종사들이 훈련을 했다고 하네요. 어떠세요? 너무 작나요.^^ 항공기의 성능이 발전할수록 훈련기계 또한 발맞추어 진화를 해야겠죠.

  선진 씨와 전 시뮬레이터 안에 들어가 조종사에게 몇 가지 요구를 해봤습니다. 첫째 제2롯데월드와 유사한 가상의 고층건물을 지나가는 상황을 재현해 줄 것, 둘째 착륙하는 상황을 보여줄 것, 셋째 산등성이를 올라가며 운행해 줄 것을 말이죠. 제2롯데월드는 아직 존재 하지 않으니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비행안전성을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하려 했습니다.






  세 번째 사진은 63빌딩에 저고도로 접근하는 상황입니다.(물론 이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투철한 실험정신으로...) 조금 더 접근하자 [TERRAIN, TERRAIN, PULL UP]이라는 경고음이 울렸고, 이어 조종사는 급히 조종간을 올려 무사히 63빌딩을 지날 수 있었습니다.(경고음이 어찌나 크게 울렸는지 지금도 귀가 멍멍합니다.^^;;;)

  관제사 및 조종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중, 삼중으로 장착되어 있는 비행안전장치 아래에서는 불의의 사고 또한 예방이 가능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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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롯데월드 첨탑 전망대 조감도


  이것으로 롯데월드와 서울공항 관련 비행안전장치 시리즈를 마칠까 합니다. 어떠셨나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불안감과 궁금증이 해소가 되었나요? 실제 취재를 마친 당사자로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막연히 알고 있던 비행안전장치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림으로써 일부나마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면 그것 또한 성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 국방부와 공군은 롯데그룹과 제2롯데월드와 서울공항 주변의 비행안전장치설치를 위한 협의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행안전장치 시리즈를 통해 살펴본 이러한 첨단관제장비 및 항공기 지형인식정보장치 설치 문제가 다루어 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혹시나 궁금하거나 의문사항이 있다면 댓글로 달아 주세요.


본 내용은 항공사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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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8

안녕하세요. 강군입니다.

지난달 31일 제2롯데월드 신축이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서 최종결정 된후에도 언론으로부터 계속해서 문제가 제기되어온 "서울공항의 비행안전성 문제"에 대해 열혈 3인방 중 강군이 심층적으로 조명해 볼까 합니다.

정확히는 비행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첨단 관제장비는 어떠한 것이 있고, 이러한 장비들이 제2롯데월드 및 서울공항에 설치될 경우 과연 비행안전성이 확보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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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1탄으로 백문이 불여일견, 강군은 인천공항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연인즉..세계 최고의 공항이라 불리는 인천국제공항은 최첨단의 관제장비가 설치되어 있고, 하루에 600여대 이상의 대형 항공기가 안전하게 이착륙 하고 있어서 어쩌면 제2롯데월드로 인해 우려되고 있는 비행 안전성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저만의 생각에서.ㅎㅎ 일단 전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라 인천공항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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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드디어...첨단 관제장비가 있다는 인천공항 관제탑에 올랐습니다.(고소공포증이 있는 저는 살짝 무서웠답니다.^^) 바로 여기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인천공항의 안전을 총 책임지는 사령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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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국제공항 관제탑>

이제 최첨단의 관제장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밑에 사진의 모니터시스템은 상공에서 항공기가 부여된 항로를 제대로 운행하고 있는지, 이륙과 착륙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지를 관제사가 모니터링하면서 조종사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첨단장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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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이런 장비들이 서울공항에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제2롯데월드 신축으로 인한 서울공항의 비행안전성이 과연 보장될 수 있을까요? "만사불여튼튼"이라는 고사성어를 좌우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강군으로서는 혹시 모를 기우를 하나하나 점검해 볼까 합니다.

1. 와류 또는 난기류에 대한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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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제2롯데월드 신축위치가 항공기 항로와 거리가 멀지 않은 데다 소용돌이성 와류 및 난기류에 항공기가 영향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여기에 대한 명확한 정답이라 할 순 없어도 인천공항의 기상관측시스템을 보고는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제사님 曰 "와류라 불리는 돌풍 및 항공기 이착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상이변은 저층난류경보장치(LLWAS)를 통해 감지 및 예방할 수 있다"고 애기하며 "측정반경이 7km내외 이내이기 때문에 이런 장치가 서울공항에 설치된다면 항공기의 안전운행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며 자세히 소개해 주셨습니다.


2. 제2롯데월드와의 충돌가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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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장치는 미국 애틀랜타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최첨단 관제시스템 PRM 레이더입니다. 유독 저 장비를 예로 드는 이유는 애틀랜타 공항의 경우 비행기 3대가 동시에 일정간격(약 1마일≒1600m)을 유지하며 안전하게 이착륙하는데 저 장비가 크게 기여한다고 합니다.
(보이시죠? 두개의 빨간 직사각형 사이로 항공기가 이동하는 모습을...인천공항에는 이와 비슷한 성능의 장비가 있다네요...)

사진에서 보시면 중간에 적색으로 보이는 직사각형의 존이 NTZ(비행금지구역)로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할 경우 관제사가 조종사를 통제해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이 장비는 1초마다 갱신되는 레이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장비들이 3초,5초 마다 갱신되는 것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 제2롯데월드와 서울공항의 항로 사이에 저런 NTZ이 설치되고, PRM 레이더가 도입된다면 비행안전성은 문제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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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이제는 인천공항 근처 레이더 관측소로 이동을 합니다. 공항 관제탑이 공항 근처의 레이더 상황을 감시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각각의 기지별 레이더 상황을 조종사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오른쪽 3번째 사진이 제2롯데월드가 있는 서울공항 근처의 레이더 상황을 관측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쁜 여성분들도 보이시죠. 관제사들의 40% 이상은 여성들이라고 하네요.~~~)

관제사들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해봤습니다.
제2롯데월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레이더 상황을 보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말이죠.
분주히 움직이시더니 제2롯데월드 신축지의 좌표를 입력하고 화면상으로 서울공항 근처의 상황을 보여 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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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도 보이시나요? 저 위에 삼각형 표시가 제2롯데월드 신축지입니다. 아직 동편 활주로가 3도 조정이 안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앞으로 제2롯데월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관제사들이 저런 모니터를 보면서 조종사들에게 관측상황을 알려주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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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관제사들분께서는 화면상으로만 관측하기 때문에 실제로 조종사가 느끼는 기분을 느낄 수는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이러한 첨단관제장비가 서울공항에 도입된다면 항공안전에는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확실히 들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살펴본 관제장비들이 기능상 서로 보완해주고 2중, 3중으로 안전을 체크해주는 역활을 함으로써 사고율 0%의 비행안전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죠.
 
계속해서 강군은 현장르뽀 2탄으로 항공기 안에는 어떠한 비행안전장치가 장착되어 있는지를 며칠 내로 여러분들께 보여드릴려고 합니다. 조종사들은 어떠한 안전장치를 가지고 운행을 하고 있는지,
또한 관제사들의 관측상황이 어떻게 조종사들에게 전달되는지...
강군이 샅샅이 살펴볼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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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면서 올림픽대로옆 63빌딩을 보며 잠시 동안의 상념에 잠겼습니다. 지금은 작아보여도 예전에는 63빌딩이 최고였는데 말이죠.(전 고등학교때 처음으로 63빌딩을 봤죠.ㅎㅎ 촌넘이죠)

이제 제2롯데월드가 5년내에 완공되고, 상암 및 용산에도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서울의 스카이라인도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일거라 상상하니...

2015년 서울의 모습이 마냥 궁금하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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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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