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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9 전설로 남은 별
  2. 2009.10.07 나가 싸우란 말이야! 제발 [끝]
               전설로 남은 별
 


1960년 9월 26일,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Fenway Park)에서 홈팀 보스턴 레드삭스( Boston Red Sox)가 볼티모어 오리올즈(Baltimore Orioles)와 경기를 벌이고 있었는데 바로 이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42살의 老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그가 날카롭게 휘두른 방망이에 공은 커다란 궤적을 남기고 홈런이 되었고 모든 관중의 기립환호와 아쉬움 속에 통산 521홈런을 기록한 이 타자는 야구복을 벗고 은퇴하였습니다.

 
                          마지막 타석을 홈런으로 장식하고 老타자는 은퇴합니다
.

 
바로 메이저리그의 전설로 남은 위대한 야구선수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 1918~2002)의 은퇴 경기 당시의 장면입니다.  1941년 시즌 그가 기록한 0.406 (456타수 185안타)의 타율은 역대 8위의 기록이지만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아직까지 4할 대 타율 기록이 나오지 않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야구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설의 강타자 테드 윌리엄스


 
20년간 오로지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으로 있었으면서 통산 0.344타율, 2654안타, 521홈런, 1839타점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한 그를 평가할 때 반드시 따라다니는 하나의 가정이 있습니다. 바로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계속하여 운동을 하였다면 과연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하는 가정입니다.


 
                                 그의 백넘버는 당연히 영구결번입니다.

 
윌리엄스는 선수생활 중 제2차 대전과 한국전쟁에 현역으로 참전하여 무려 5년이라는 공백 기간이 있었습니다. 호사가들이 컴퓨터로 분석하여보니 공백 기간 동안 그가 선수생활을 계속하였을 경우 222개의 홈런을 더 쳐냈을 것이고, 그렇다면 통산 743개의 홈런을 기록하여 행크 애런보다 앞서 베이브 루스의 통산 714홈런 기록을 경신했을 것이라고 분석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먼저 갱신하였을 지도 몰랐습니다.


 
역사적인 4할 타율을 기록한 그는 이듬해인 1942년 타율 0.356, 36홈런, 137타점으로 타격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으나 시즌 도중 전쟁에 참전하라는 영장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시즌을 끝마치기 전에 해군에 입영신청을 하고 해병대 조종사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여 맹활약하였습니다.


 
                          1942년 시즌을 완전히 마치지 못하고 참전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3년간의 공백 끝에 1946년 야구장으로 돌아온 윌리엄스는 타율 0.342와 38홈런, 123타점의 맹타를 휘둘러 공백 기간의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고 1947년에는 리그 MVP에 오르는 등 참전 이전과 다르지 않은 훌륭한 기량을 팬들에게 선보였습니다. 통상 군복무기간 동안 경기력이 하락된다고 여겨지는데 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제2차 대전 후 야구장으로 복귀하여 변함없이 맹타를 날립니다.


 
그런데 절정기의 기량을 선보이던 1952년, 그에게 또 한 번의 징집영장이 전달되었습니다.  즉시 현역으로 복귀하여 한국전에 참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윌리엄스는 망설임 없이 현역으로 다시 복귀하였고 1952년 겨울 "이번에는 죽을지도 모른다."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듣도 보도 못한 극동의 한국으로 떠납니다.

 
                          다시 한국전에 참전하여 최전선에서 활약합니다.


 
이전 참전 때도 그랬지만 윌리엄스는 유명세를 이용하여 후방에서 시간이나 보내는 그런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1953년 2월 16일 평양 남쪽 폭격작전에서 그의 애기가 공산군의 대공포에 맞아 추락당할 절체절명의 위기를 당하기도 하였으나 수원기지까지 날아와 동체착륙을 하였을 정도로 군인 윌리엄스대위는 최전선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1999년 보스턴에서 열린 올스타전의 히어로는 바로 테드 윌리엄스였습니다.
 

      메이저리그의 현역 올스타들조차 그의 옆에 한 번 서 보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1953년 휴전까지 총 39번의 출격작전을 수행한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레드삭스의 중심타자로 맹활약하였습니다. 윌리엄스는 수차례의 참전기간에도 기량이 전혀 녹슬지 않았고 1957시즌과 1958시즌에 리그 타격왕에 올랐는데 1958시즌의 40세 최고령 타격왕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지 어려운 불멸의 기록입니다.

 
                           경기 전 추모행사와 펜 웨이 파크에 서있는 동상
 

2002년 7월, 그가 84세로 숨을 거두자 메이저리그는 경기 전 그를 추념하는 행사를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기록한 놀라운 성적도 그를 신화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결코 모자람은 없지만 거기에 더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모범적인 태도로 인하여 테드 윌리엄스는 모든 미국민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대중적인 인기는 물론 진심어린 존경까지 받을 수 인물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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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참화를 겪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연합군은 베를린으로의 진격을 개시 합니다. 이때 독일은 영국 본토와 가까운 벨기에의 해변 도시에서 다량의 V1와 V2를 영국으로 발사하였고 연합국은 이를 격멸하고자 공습을 단행 합니다. 덕분에 벨기에의 곳곳은 연합국의 폭탄에 의하여 멍들게 됩니다. 하지만 벨기에의 영토가 아작 난 것은 제3제국의 패망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보여준 히틀러의 똥고집에 의해서입니다.


                 전쟁 말기에 영국을 공격하기 위한 독일의 비밀병기가 벨기에에서 발사됩니다.


결과적으로 독일의 패망을 6개월 앞당겼다는 발지 전투(Battle of Bulge)때문입니다. 제2차 대전 사가들로 부터는 독소전의 다른 전투에 비해서 과장되게 알려 졌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서부전선에서 독일과 연합군의 피 튀기는 마지막 대회전이 벌어진 곳은 바로 약소국 벨기에 영토입니다. 그래서 전쟁 말기에 마지막으로 쑥대밭이 됩니다.


                    벨기에 영토에서 벌어진 발지 전투는 서부전선 마지막 대회전이었습니다.


어쨌든 전쟁은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고 벨기에는 해방이 되나 침략도 해방도 자국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단지 침공로에 놓였다는 이유만으로 국토가 망가지고 국민은 피폐해 집니다. 그것도 30여 년 동안 두 번씩이나 같은 강대국 때문에 말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벨기에의 안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비추어


지난 우리역사를 돌아볼 때 벨기에가 겪었던 참화와 비슷했던 치욕의 역사가 계속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목적은 항상 우리를 침탈하는 것이었지만 침략자들의 대외적인 명분은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떠들곤 하였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일본의 명분은 정명가도였습니다.


몽고가 일본진출을 계획 하였을 때도 고려를 짓밟고 황폐화 시켰습니다. 전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세웠던 명분은 정명가도(征明假道)였습니다. 이런 교활한 명분하에 우리는 침략을 받았고 이를 구원한다며 명과 일본은 우리나라 국토를 황폐화시키며 백성을 수탈하며 신나게 피를 흘립니다.


                                청일전쟁 당시 평양전투에서 포획된 청군 포로


근대에 들어와 청과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제국주의 전쟁을 우리 땅에서 벌입니다. 이 역시 우리와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역시 황폐화 되는 것은 우리 국토이고, 수탈되는 덧은 우리 민중이었습니다. 우리가 침탈되었을 때의 공통점은 우리 스스로 지킬 힘이 없었을 때나 스스로 태평성대라고 생각하고 국방을 게을리 하였을 때라는 점입니다.
                           

현재의 벨기에와 우리

벨기에는 두 번의 전쟁 결과 어정쩡한 중립이 냉혹한 국제정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독일과 프랑스로 부터의 위험을 제거하고자, 2차 대전 후 오히려 냉전체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합니다. NATO 본부를 자국에 유치한 것만 보아도 벨기에의 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벨기에는 어설픈 중립을 포기하고 국제질서에 능동적으로 참여합니다.
                                       (벨기에에 있는 NATO  본부)


벨기에는 지난 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연속된 경험으로 독일이나 프랑스로 부터의 침공이 있을 때 자력방위가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소극적인 중립이 아닌 적극적인 동맹에 참여 하여 국가의 안보를 지키려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힘을 기르지 않고 국제 질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체
                                       말로만 평화를 지킬 수 는 없습니다.


우리가 벨기에만큼 인구나 국력이 작은 나라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의 국가들이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임을 깨닫고 말만 앞서는 어설픈 자주를 외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국제적 힘의 균형을 이루는 데 참여하여 그 일익을 담당하여야 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우리 스스로를 충분히 자위 할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침략을 당했을 때 "나가 싸우란 말이야! 제발"이라는 절박한 호소는 냉정한 국제 현실에 절대 통용 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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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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