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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9 영광의 국군 기갑사(機甲史) [6]







영광의 국군 기갑사(機甲史) [ 6 ]
 

멀고도 험한 성장과정
 
 
1954년 본격적인 중(重)전차인 M-4를 미군으로부터 인수받아 국군은 드디어 진정한 전차부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엔군이 대대적으로 철군을 단행한 1957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으로부터 총388대의 셔먼 전차를 축차적으로 도입하게 되면서 국군은 본격적인 기갑부대 확장기에 들어선다.


                           국군이 장비한 최초의 전차인 M-4A3E (1957년 해병대 소속)
 

북한군 전차에 응어리진 감정을 가지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전차의 보유와 확장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여 어렵게 마련한 기갑전력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당시 국군이 도입한 M-4 전차는 76mm 주포를 탑재한 M-4A3E형 이었는데 비록 북한의 T-34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열세라고 평가는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전력이었다.

 

                                             4.19혁명 당시 출동한 M-4 전차
 

기록에 따르면 'M-36 전차는 본격적인 전차로 보기 힘든 장비이므로 진정한 전차라고 할 수 있는 M-4 전차가 우리 기갑 역사의 실질적인 출발점' 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그 의의가 컸다. 하지만 이정도 수량으로는 집중화된 독립적인 기갑부대를 구축하기 힘들었다. 전쟁 전에도 그랬지만 북한은 우리의 기갑전력을 능가하였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에는 미국의 지원보다 북한에 대한 소련의 지원이 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T-54/55 계열의 전차를 대량 도입하자 대응에 나서야 했다
 

전후 북한이 당대 최신예인 T-54/55 계열의 전차를 도입하여 그 전력을 급격히 확대하여 나가자 한국군도 더 이상 M-4로 대응하기가 곤란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에 상응하는 대체전력으로 1959년부터 M-47 전차를 총 463대 도입하여 60~70년대 국군 기갑세력의 중추로 운용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도 전반적으로 열세였던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의 기갑전력에 대응하고자 도입된 M-47
 

대량 생산되어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상당량이 공급되어진 M-47은 많은 탄약 적재량과 함께 입체식 거리측정기를 장착하여 주포의 명중도가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어 일선에서 오래동안 활약하였고 현재 일부는 해안포로 운용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곧바로 M-48 전차의 개발에 착수 하였을 만큼 M-47은 개발국인 미국에서도 그리 성능에 만족하지는 않았던 전차였다.

 

                                    퇴역하여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에 전시 중인 M-47
 

국군의 기갑전력이 본격적인 확장기로 접어 든 것은 월남전 때문이었다. 국군의 대규모 월남전 파병과 1971년 한국에 주둔하던 미 7사단의 철수로 생긴 전력의 공백을 메우고자 1971~1975년 사이에 한미 협의에 의해 국군 현대화 5개년계획이 수립되었고, 이에 따라 M-48A2C 전차 400여대와 M-113 장갑차 400여대를 미국이 지원하였다. 이를 모태로 해서 본격적인 국군의 기갑부대가 육성될 수 있었다.
 

                                       오래 동안 국군의 주력으로 활약한 M-48 전차
 

이렇게 취득한 대규모의 M-48 전차와 M-113 장갑차를 발판으로 1973년 월남에서 철군 한 수도사단이 국군 최초의 기계화사단으로 개편되어지고 후속하여 제1기갑여단, 제2기갑여단이 창설됨으로써 기갑장비를 집중 운용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힘들게 구축한 기갑전력은 우리 스스로의 역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대외 원조에 의존 한 것이었다.

 

                                           인천항을 통해 도입되는 M-113 장갑차
 

1970년대 들어 더 이상 원조에 의존해서 자주국방을 이룰 수는 없다고 판단한 정부는 그동안 이룬 경제개발을 바탕으로 '우리 땅은 우리 손으로 지키자'는 기치하에 자주국방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 적극 나서게 되었고 더불어 기갑장비의 국산화를 위한 노력도 함께 하였다. 국군 기갑사에 새로운 한 획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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