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고등학교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지난 6월 29일은 6인의 전사자가 발생한 제2연평해전 발발 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해군주관으로 지내오던 추모식이 지난 2008년부터 정부주관 공식행사로 바뀌었고 특히 올해는 서울의 전쟁기념관에서 TV생중계 속에 성대히 개최되었다.
더불어 그동안 부대 내에 있어서 평소 국민들이 접하기 힘들었던 참수리 357호의 동일 크기의 모형이 함께 전시되어 제2연평해전의 의의와 장병들의 활약상을 쉽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8주년 행사
 

이와 관련하여 하루 전인 6월 28일, 인천 옥련동에 위치한 송도(松都)고등학교에서 작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교내 행사가 벌어졌는데, 이 학교의 72회 졸업생으로 전투 중 산화한 참수리 357호의 정장 고(故) 윤영하 소령의 추모행사였다.
그런데 이 행사는 단발적인 1회성 추모제가 아닌 제2연평해전 다음해인 2003년부터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벌여오는 연례행사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의미 있는 교내행사를 매년 실시하고 있는 송도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대담 기원서 교감선생님 )

 
                                 송도고등학교에서 열린 고 윤영하 소령 추모행사
 

문)
  매년 교내 추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2002년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당시 여섯 명이나 전사한 제2연평해전이 너무 쉽게 잊혀져가는 것 같아 상당히 안타까웠습니다. 때문에 적어도 선배가 산화한 우리 학교의 학생만이라도 이를 기억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 이듬해부터 6월 29일을 기해 추모행사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인양되는 참수리 357정
 

문)
  외부의 참여나 지원이 있었습니까?
답)  아닙니다. 순수하게 학교가 주관하는 자체 행사였고 경우에 따라 손님들을 초대하여 행사를 치르고는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2009년)에는 영하의 흉상 제막행사를 함께 하였는데 영하 부모님을 초청하였습니다.
 
문)  고 윤영하 소령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는지요?
답)  우리학교는 사립이다 보니 영하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학교 다닐 때 영하가 워낙 과묵하여 군인이 될 줄을 몰랐는데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제2연평해전 약 3주전에 영하가 학교를 찾아 온 적이 있었어요. 스승의 날에 출동 중이어서 찾아뵙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그때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졌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을 몰랐습니다.

 
                                      2009년 교내에 설치된 고 윤영하 소령 흉상
 

문)
  고 윤영하 소령 때문에 학교와 해군과의 인연이 각별하다고 들었습니다.
답)  예. 우선 영하의 해군사관학교 동기 분들이 매년 우리 학교에 윤영하 장학금을 기탁하여 주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리고 제2함대 소속의 제천함과 자매결연을 맺어 매년 방문  행사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안보교육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문)  올해는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답)  제2연평해전이나 천안함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우리나라는 안보에서 한시도 눈을 팔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데도 신문보도에서 보듯이 요즘 청소년들 중 6.25전쟁의 발발일은 고사하고 어떤 전쟁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기성세대의 잘못이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교육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들이 사실을 정확히 알게끔 더욱 노력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학교는 그렇게 하고자 노력합니다.

 
                                       송도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앰블램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에서 1906년에 개교하여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송도고등학교는 6.25전쟁 중이던 1952년에 인천으로 피난하여와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렇다보니 6.25전쟁에 대한 의미가 상당히 남다를 수밖에 없어 전쟁 발발일과 제2연평해전이 속한 6월 마지막 주를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한 추모주간으로 정하여 매년 이와 관련한 각종 교내행사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추모 행사 중의 송도고등학교 학생들
 

송도고등학교는 특히 농구부가 유명한데 이충희, 김승현, 유희형, 김동광, 정덕화, 강동희 등 한국 농구사의 기라성들이 바로 이 학교 출신이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농구부보다 정, 관, 군, 학계를 빛낸 이 학교 출신의 많은 인사들이 배출되었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된 학교이고 당연히 학교를 빛낸 수많은 졸업생들이 배출되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젊은 졸업생이라 할 수 있는 고 윤영하 소령을 기리는 행사를 매년 잊지 않고 열어오고 또한 이를 교육에 적극 반영하고 있는 송도고등학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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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침(不沈)의 상징이 된 이름
 
 
밀리터리에 대해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살면서 한 번 정도는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라는 군함의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것 입니다. 재래식 동력함인 CV-63 키티호크 (Kitty Hawk)가 2009년 퇴역하면서 미국의 모든 항공모함들이 핵추진함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을 만큼 이제는 의의가 많이 감소하였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최초의 핵추진 항공모함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핵추진 항모인 엔터프라이즈가 취역 40주년을 자축하던 당시의 모습

 

1961년 취역하였으니 벌써 50여년 가까이 바다를 누비고 있는 셈인데, 수차례에 걸쳐 실전 에 투입되었고 한반도에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에도 등장하여 그 위용을 뽐내고는 하였습니다. 무지막지한 건조비용에 놀란 미 해군 당국이 이후 2척의 항공모함을 재래식 동력함으로 만들었을 만큼 엔터프라이즈는 당대를 앞선 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엔터프라이즈인 CVN-65가 미 해군 최초의 엔터프라이즈는 아닙니다.

 
                               현재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CVN-65 엔터프라이즈
 

통상 해군의 군함명은 인물명, 지역명, 역사적 사건명 등 여러 사유로 결정되는데 그렇게 작명된 수많은 선명 중에서도 두고두고 기억하여야 할 가치를 지닌 특별한 선명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 해군의 충무공 또는 이순신과 같은 함명이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영예로운 선명을 지닌 군함이 퇴역하면 새로운 군함이 선명을 승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마 한국 해군에게 가장 영광스런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순신함
 
세계최강 미 해군에서는 엔터프라이즈가 그런 경우에 해당 됩니다. 미 해군 함명들중 가장 많이 계승 되어온 이름이며 또한 이름에 걸맞게 많은 전공을 세웠던 선명입니다. 한마디로 미 해군 불침의 영광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호 엔터프라이즈
1775년 5월 18일 영국으로부터 노획한 70톤짜리 소형 범선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노획물인데 독립전쟁당시 미국의 국력을 고려 할 때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 됩니다.
 
2호 엔터프라이즈
1776년 12월 20일 역시 영국군으로 부터 나포한 25톤 소형 범선입니다.  1호도 그렇지만 나포된 소형선박이기 때문에 그리 오래 사용 되지는 않은듯합니다.
 
3호 엔터프라이즈
1799년 건조된 125톤 범선이며 엄밀히 말해 이 선박부터 엔터프라이즈의 영광이 시작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차례의 전투에 참여 하였으며, 특히 미국 연안 해적 소탕에 투입되어 40여척의 해적선을 격멸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립니다.

 
                                    적함 트리폴리를 격파하는 3호 엔터프라이즈
 
4호 엔터프라이즈
1831년 건조된 194톤 범선으로 주로 중남미 지역의 작전에 참여 합니다. 이로써 엔터프라이즈는 미국연안을 벗어난 지역에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5호 엔터프라이즈
1877년 3월 16일 건조된 1,375톤 증기기관 겸용 범선입니다. 기관의 장착과 선체 대형화로 좀 더 넓은 지역에서의 작전을 수행 합니다.

 
                                최초로 기관이 장착된 5호 엔터프라이즈 (1877년)

 
6호 엔터프라이즈
1917년 제작된 1 파운드포 1문을 장비한 SP-790급 소형경비정의 이름 입니다. 오랜만에 엔터프라이즈의 전통을 승계한 선박이 등장하였으나 그동안 추세와 달리 소형선박에 명명됩니다.
 
7호 엔터프라이즈
1938년 5월 12일 취역한 항공모함 CV-6입니다. 흔히 엔터프라이즈의 영광이라면 이놈을 생각 할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전공을 세웠으며 전설이 된 함정입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의 주역이었고 이후 수차례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고 수차례의 피격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침몰당하지 않았던 미 해군의 영광이었습니다.

 
                                  미 해군의 전설이 된 7호 엔터프라이즈 CV-6
 
8호 엔터프라이즈
1961년 11월 25일 취역한 최초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CVN-65입니다. 현재도 현역에서 활동 중이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활약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무시무시한 초대형항모가 커다란 위험에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 전투로 인한 것이 아니고 안전사고 때문이었습니다.
 
1969년 1월 14일 하와이 근해에서 훈련도중 갑판을 이동하던 차량의 배기가스에 노출되어 과열되었던 로켓이 갑자기 오작동으로 발사되었고 마침 주기되어 있던 다른 함재기를 피폭시켜 대화재가 발생합니다. 화재는 장장 4시간 동안 계속 되었고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미 해군의 비전투 항모사고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옆에 있던 호위함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항모를 밀어서 다음날 진주만까지 안전하게 귀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의 CVN-65 엔터프라이즈
 

그런데 공교롭게도 불멸의 항모 CV-6 엔터프라이즈도 태평양전쟁 당시 동일한 해상에서 크게 타격을 입었으나 안전하게 진주만으로 귀항하였던 적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당시 사고가 제2차 대전 때 죽은 일본군의 원혼 때문이라는 괴담도 있었으나 결론은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은 불침의 아이콘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CVN-65가 퇴역해도 이 이름을 승계하는 다른 항정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국 해군의 레전드가 된 참수리 325호
                             (1999년 제1차 연평해전 당시 북한 경비정을 들이받는 모습)
 

미 해군에 비하면 역사가 일천한 우리 해군은 앞에서 언급한 충무공처럼 역사적인 인물 외에는 승계하여 사용할 만큼 전통 있는 함정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9년 비록 함정명은 아니지만 함번으로 한국 해군의 전설이 될 자랑스러운 이름이 등장하였습니다. 1999년 발발한 제1연평해전과 2009년 벌어진 대청해전에서 연거푸 대승을 이끈 참수리 325호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대청해전의 승전을 이끈 참수리 325호 장병들
 

325호가 함번이라서 함명이 되기는 곤란한 점이 있겠지만 이미 325호는 한국 해군에게 함번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훗날 퇴역하더라도 미 해군의 엔터프라이즈처럼 후속함정에게 승계되어 계속 사용됨으로써 그 용기와 기백이 영원히 알려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한해 대한민국 해군 여러분 고생이 많으셨고 그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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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1



권총은 한 손으로 조작이 가능한 총으로 다른 총에 비해 가장 가까이 있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최후에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호신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원시적인 화기인 Handgun을 소형화 하여 말 위에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시초라 할 수 있는 데, 이후 크기나 형태, 발사장치 등을 개량하여 권총의 편리성과 살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달되었습니다. 아울러 권총은 인류 역사의 기로에 서있던 여러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14세기 경에 탄생된 총기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권총은 작고 소지하기에 편리하다는 점에서 역사상 커다란 사건을 일으키는 도구로 이용되었고요.

조선을 근대화 시키고자 했던, 김옥균의 죽음, 민족의 영웅 안중근의 이토호 히로부미 사살, 민족지도자 김구선생의 암살... 이 모두가 권총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도 1914년 사라예보에서의 한 방의 총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권총은 전투 무기로 이용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소총이 참호내에서 근접전에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서 권총의 개발은 가히 경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독일의 P38권총, 영국의 웰로드 0.32 인치 무소음 권총, 미국의 스미스 & 웨슨 빅토리 리볼버 권총, 일본의 94식 자동권총의 개발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 입니다.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에서 남,북한 해군 사이에 제2연평해전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는 1999년 6월 15일에 있었던 제1연평해전의 패배를 만회하고자 북한이 의도적으로 우리 고속정에서 대하여 함포를 사격해 옴으로써 발생한 전투였습니다.

아래는 제2연평해전의 영웅인 고 윤영하 소령의 권총이자, 우리 군의 대표적인 권총인 'K-5, 9미리 권총으로 1990년대부터 한국 군의 주력 권총으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국산 권총은 대우정밀(주)에서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경량화하여 제작한 권총을 말하며, 모양 및 작동원리는 콜트사의 45구경 권총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초탄 발사의 신속성과 정확한 명중률을 달성하여 세계 유명 권총과 비교해도 성능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권총이 최초 개발된 이후 세계사속에서 어떠한 활약을 했고, 어떻게 발달해왔는지를 강군이 간단히
소개해드렸습니다. ^^*  (사진 자료 및 글 협조 전쟁기념관 조성훈 학예관님)


지금 전쟁기념관에서는 재미있는 권총전시회가 9월 15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무기나 권총에 관심있는 밀리터리 매니아 분들은 한번쯤 꼭 가보시길 바랍니다.^^ 

다음에는 영화속에 등장하는 권총 또한 소개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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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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