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일병의 연예사병 면접현장

한류스타 김정훈 일병의 국방홍보지원대 면접현장~





안녕하세요. 강군입니다.
국방홍보원에 한류스타들(?)이 뜬다고 해서 강군이 달려가봤습니다.^^

여러차례 국방부 대표블로그인 '동고동락'을 통해 국방홍보지원대 연예병사들의 면접현장 및 활약상을 소개해드렸기에, 국방정책블로그 '열혈 3인방'에서는 '국방홍보지원대란 어떤곳인가?' 에 포커스를 맞춰보겠습니다.






국방홍보지원대 운영 훈령 2조와 4조를 살펴보면

"홍보지원대원"이란 사회에서 영화배우, 탤런트, 개그맨, 가수, MC, 작사가 및 작곡자, 영상편집자,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등 해당분야별로 전문적인 활동을 하다 입대한 자로 국방홍보지원대에 선발된 병사를 말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국방홍보지원대에는 20명 정원에 연기자(공지철-공유, 이헌균-재희, 송정식-온주완, 김재원, 이동욱) 5명, 가수(노유민, 양동근, 김재덕, 안승호-토니안) 4명, 개그맨(홍순목, 양세형) 2명, 작곡자(유현석-마이큐) 1명, CG(이인종, 이갈렙) 2명으로 총 14명의 연예병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원은 20명이나 전문분야별로 인력수급을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편성된답니다. 

지난 19일 용산 국방홍보원에서 진행된 연예사병 선발 면접을 통해 뽑힌 가수(김정훈)와 연기자(이진욱)의 합류로 16명이 되겠네요.


이진욱 이병


김정훈 일병



그럼 '국방홍보지원대원의 자격요건'은 어떻게 될까?

국방홍보지원대 운영 훈령 8조를 살펴보면

*영화배우는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급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는 자
*탤런트는 TV방송국의 드라마에 주연 또는 조연급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는 자
*개그맨은 TV방송국의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자
*가수는 음반 판매실적이 있고, TV 방송국의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자
*MC는 TV방송의 프로그램에서 진행을 맡은 경력이 있는자
*음악 작사가 및 작곡자는 본인들의 작품을 대외에 발표한 실적이 있는자
로 규정되어 있답니다.

간단히 애기하자면, 지명도와 인기가 필수라는 말이겠죠.^^ 홍보지원대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위의 자격요건을 상회하는 실력을 갖춘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음이 확인됩니다.

우리에게 잘알려진 육군 소속인 천정명 병장을 비롯해 해군본부 홍보단에서 복무하는 개그맨 고장환 상병, 공군작전사령부 군악대의 조인성 일병, 해병대사령부의 이정희(이정)일병 등은 각군의 대표하는 연예인 출신 병사로써 국방홍보지원대의 연예사병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한답니다.


                                                                                               공군 블로그 마하2.5 제공


10여년전에 비해 연예인의 나이가 낮아졌거나 혹은 인기 있는 남자연예인들의 오랜 군입대 연기로 인해 국방부 홍보지원대 뿐만 아니라 각 군에 톱스타급 연예인들이 보다 많아졌습니다.


얼마전 국방부 최고령(?)병사였던 싸이(박재상 예비역 병장)가 제대함에 따라 안승호(토니안)일병군 최고령 병사 타이틀을 넘겨 받았습니다.^^;;

안 일병은 "박재상(싸이) 예비역 병장의 마지막 공연에 열광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보고, 정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연예사병 한 사람이 해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끼와 땀만으로 수천 명 장병들의 사기를 충전시키는 일, 그것이 바로 국방홍보지원대원 '연예사병'들의 진정한 임무일 것"이라며 신입 연예사병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행사장에서, 국군 방송국에서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고 수행하고 있을 국방홍보지원대원인 '연예사병'들의 활약에 감사하며, 그들의 인생에 지금의 군복무가 힘찬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화이팅 연예사병~~~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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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5


경기력 향상을 위한 당근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자랑 할 것이 별로 없던 1980년대까지 만하더라도 스포츠는 대내적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대외적으로 국위를 선양하는데 많이 이바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올림픽 3위 입상이상, 아시안게임 1위처럼 스포츠를 통하여 국위를 선양한 자에 한하여 병역면제 혜택을 주기 시작하였던 것은 1980년대부터 입니다.


                         한국 스포츠의 좋은 성적은 국민을 기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동기는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한 후 대폭적으로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였는데, 사실 1981년 서울이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은 되었지만 바로 이전까지 해방 후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1976년 제21회 몬트리얼 올림픽에서 레슬링 양정모 선수의 단 1개에 불과 하였을 정도로 한국의 경기력은 사실 미약하였습니다.


       지금은 한국이 세계적인 스포츠열강 이었지만 한국의 경기력은 사실 미약 하였습니다
                  (해방 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레슬링의 영웅 양정모 선수)


때문에 자칫하면 서울올림픽이 돈 들여 어렵게 판만 벌여놓고 남의 나라 선수들의 잔치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올림픽 개최국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병역면제 같은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정책을 병행한 체육 진흥책이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이후 한국은 올림픽과 같은 국제 대회에서 당당히 체육 열강으로 진입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즉흥적인 변화와 원칙의 훼손


하지만 이렇게 제정된 법조항을 즉흥적으로 개정하면서까지 선수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부여한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2002년 월드컵 4강의 기적을 이룬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과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거둔 자랑스러운 업적은 단군 이래 최대로 전 세계 한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고 온 국민들이 행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올림픽 상위 입상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격이 충분하였을지 몰랐습니다.


                     2002년 축구 국가대표팀은 우리를 하나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 있었던 제1회 WBC야구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이 엄청난 선전을 하여 국민들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때 다시 한 번 병역면제라는 선물이 선수단에 부여가 되었는데 많은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이를 받아들였지만 당시에 이런 예외 규정이 자꾸만 발생한다면 원칙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반대여론도 많이 나왔습니다.

                         2006년 야구 국가대표팀도 국민을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는 국위를 선양하고 국민들을 기쁘게 해준 운동선수들에 대해서 굳이 병역혜택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의 보상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국민의 의무인 병역과 관련한 원칙은 되도록 고수되어야 하는 것이 옳고 국민이 열광하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그때마다 원칙을 자꾸만 바꾼다면 나중에는 감당하지 못할 상황까지 이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병역의 의무에 관한 원칙이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예인들도 병역을 충실히 완수하여야 더욱 인기가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병역면제를 주장하는 이유가 국위선양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가장 경기력이 왕성한 시기에 선수들이 군복무를 하면 이후 경기력이 후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시기에 병역면제를 하여주고 선수들로 하여금 더욱 운동에 정진시키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실 이제는 운동실력으로만 한국을 자랑하던 그런 시기는 솔직히 지난 것 같고 경기력과 관련한 주장과 관련하여 다음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범근 선수의 도전

1978년 12월 방콕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한국은 북한과 연장전까지 치르는 명승부 끝에 0-0으로 공동우승을 합니다. 그 경기직후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차범근 선수는 독일 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이유는 단하나, 세계 최고의 축구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는데 마침 독일 교민으로부터 분데스리가 팀을 소개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었습니다.


         1978년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은 한국과 북한의 숨 막히는 혈투 끝에 공동우승으로
          막을 내리고 이 경기 직후 스트라이커 차범근 선수는 독일 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


 하지만 지금처럼 전문 매니저의 도움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서독에 찾아온 축구 변방 아시아의 이방인을 반겨준 팀은 아무 곳도 없었습니다. 조금 먼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일본인 오쿠데라가 있었고 비록 아시아에서 차범근은 오쿠데라보다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고는 있었지만 차범근도 한국축구도 서독에서는 관심 밖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부 젊은 분들은 차범근 선수를 통신회사 광고에 등장하는 감독 또는 TV 해설자 정도로 알지만 개인적으로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였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차범근 선수가 처음 서독에 갔을 때 눈길을 주었던 구단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겨우 입단 테스트 기회를 준 구단이 있었는데 리그 최하위 다름슈타트였습니다. 하지만 테스트에서 보여준 차범근의 기량은 다름슈타트를 만족시켜 입단계약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름슈타트는 차범근을 입단 시키자마자 12월 31일 경기에 곧바로 데뷔시켰는데 한국인 운동선수가 세계적인 빅 리그에 데뷔해본 경험이 없던 당시 이러한 소식은 국내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간신히 분데스리가에 데뷔하였습니다. (사진은 레버쿠젠 소속으로 뛰던 말년의 모습)


박지성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 박찬호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것 이상으로 당시만 해도 온 국민은 열광을 하였고 기대가 컸으며 당연히 차범근 선수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한국의 명예를 드높여 주기를 고대하였습니다. 그 후 한 두 차례의 경기에서 돋보이던 활약을 보여준 차범근은 곧바로 분데스리가의 관심대상 선수가 되었고 차선수의 선전에 국민들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원칙은 원칙


그런데 당시 정부는 차범근 선수에게 소환명령을 내립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귀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현역 군인 신분으로 당시 성무팀 ( 공군축구팀인데 그 당시는 오늘날 尙武처럼 별도의 국군체육부대가 없이 각 군별로 팀을 운영하였습니다 ) 소속인 차범근 선수가 병역을 완전히 마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고 빨리 와서 군복무를 이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차범근 선수에게 원칙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사회 일각에서 차범근 선수가 어렵게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였으니 외국에서 국위를 선양 할 수 있도록 조기 제대를 시켜주어 계속 서독에서 활약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여론이 벌 떼처럼 일어났었습니다. 요즘이라면 바로 직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사회적 분위기로도 조기제대가 충분히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는데 당시 정부는 병역에 관한 원칙을 절대로 훼손 할 수 없다고 천명하였습니다. 


병역의무가 경기력을 약화 시킨다?
 

결국 차범근 선수는 추상같은 소환령에 봇짐을 싸들고 돌아와 1979년 5월까지 잔여 군복무를 마친 다음에야 다시 서독으로 향하게 되었고 서독 복귀 후 그의 기량을 눈여겨 본 명문 프랑크푸르트팀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원칙을 고수한 정부의 방침으로 군복무를 완수한 차범근 선수의 경기력이 약화되었을까요?


   원칙을 지켜 의무를 다한 차범근 선수는 다시 독일로 가서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의 독일 활약상을 대변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스트라이커 미하일 발락이 입국 일성으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발락의 어릴 적과 최근의 모습) 

차범근 선수는 많은 축구 꿈나무들이 어려서부터 본받고 싶어 하던 영웅이었습니다.

  " 이곳이 정말 차붐의 나라인가요? 어려서부터 저의 우상이었고 영웅이었던 위대한 축구선수 차붐의 나라를 방문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 (발락)

현역에서 은퇴하였지만 차범근 선수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써 아직도 명성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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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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