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에 해당되는 글 40건

  1. 2011.04.07 '붉은 멍게'사건에서 나타난 언론의 묻지마식 보도를 보며..
  2. 2011.03.25 故민평기 상사의 혼이 담긴 3.26기관총
  3. 2011.03.25 천안함에게 전하는 말
  4. 2011.03.24 천안함의 충격, 교훈 그리고 처방에 대해 논하다..
  5. 2011.03.24 아픔을 망각하고 앞으로 나갈 수는 없다
  6. 2011.03.23 추모리본 달기 운동에 참여해 주세요~
  7. 2011.03.18 음향 어뢰가 사용된 최초의 해전
  8. 2011.01.12 천안함, 연평도 그리고 북한이 '서울광장' 에!
  9. 2010.12.16 귀신잡는 해병대, 동해 NLL도 지켰다.
  10. 2010.12.01 '북한 연평도 포격 도발' 대 '우리군의 대응'
  11. 2010.11.27 '합참의장, 대응사격 20발만 쏴라.' 사실과 다릅니다.
  12. 2010.10.13 "합조단, 천안함 의혹에 답하다." (1)
  13. 2010.08.31 'G20과 아시아 안보'를 생각한다.(1) : 국제안보학술회의 (1)
  14. 2010.08.27 UFG연습 기간, 별들을 만나다!
  15. 2010.08.23 해군 항공대여, 적 잠수함을 섬멸하라!
  16. 2010.08.04 <납량특집> '대한민국 특수부대', 커밍 순(Coming Soon)!
  17. 2010.08.03 교훈을 얻고 대비를 하라
  18. 2010.08.03 "北어뢰 '1번'글씨, 매직이 아닙니다."
  19. 2010.07.26 '한미 외교/국방장관', 2+2회담 전에.
  20. 2010.07.06 "강하고 효율적인 군으로 육성" - 신임 합참의장 취임
  21. 2010.07.05 6.25전쟁 당시, 해군의 용전분투 (2)
  22. 2010.07.05 '한-미 동맹', 전작권 전환시기를 보완하였습니다.
  23. 2010.07.01 연평해전 고(故) 윤영하 소령을 추모하는 '송도고등학교' (2)
  24. 2010.06.29 동해안에 기록된, 6.25전쟁 남침의 증거
  25. 2010.06.28 6.25 전우여! 고맙습니다.("Thank you, brothers!") (2)
  26. 2010.06.11 적의 침투도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1)
  27. 2010.06.11 밀리터리 파워블로거-'국방부 워크숍' 갔다. (10)
  28. 2010.06.01 대학생들 및 네티즌들에게 천안함을 공개합니다.
  29. 2010.05.21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라는 결정적 증거들 (26)
  30. 2010.05.19 '국방개혁'을 논하다






불과 두달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되어 생사를 넘나들던 인질들을 우리 군이 성공적으로 구출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건 당시, 인질을 안전하게 구출한 이후 구출 작전이 진행되던 과정 중에 있었던 일부 언론들의 무분별한 보도행태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관련 포스트 바로 보기) 취재경쟁으로 실종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은?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안함 피격사건 1주기(3.26) 즈음하여 또다시 일부 언론에서는 확실한 근거 없이 무책임한 보도를 하며 국민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부정적 여론을 선동하는 듯한 행태가 반복되었다.

3월 24일 논란의 시발점이었던 오마이뉴스의 첫 보도를 시작으로 어제(4월 6일) 국방부 조사본부의 발표에 이은 오마이뉴스의 공식사과("‘붉은 멍게’ 보도, 사과드립니다")를 통해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이 되었다.


과연 그간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알기쉽게 사건의 전말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았다.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 1차 단독 보도 
  ▶ 가리비 나왔던 '1번'어뢰 추진체 이번엔 동해에만 사는 붉은 멍게 발견(링크)



② [데일리안] 1차 반박보도
   ▷"1번 어뢰추진체에 동해산 붉은 멍게? 붉은 멍게와는 색깔과 모양 전혀 달라"  보도(링크)



③ 이어 <
오마이뉴스> 2차 반박보도
   ▶'1번'어뢰추진체에 붙은 게 섬유질? "붉은 멍게가 건조된 것이 틀림없다"(링크)


④ [데일리안] 2차 반박보도
   ▷히드라 논란 놓고 붉은 멍게라 오역하다니(링크)



국방부 조사본부 발표 (4.6) (링크)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이 주 박사가 천안함을 공격한 것으로 지목된 어뢰추진체에 붙어 있는 붉은색 물체가 멍게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있다




⑥ <오마이뉴스> 공식사과, "‘붉은 멍게’ 보도, 사과드립니다" (링크)




그런데 천안함을 침몰시켰던 어뢰추진체에서 붉은 멍게가 발견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만약 '1번어뢰'에 부착된 물질이 '동해산' 붉은멍게라면..
'서해'에서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 전체에는 분명 오류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이용하면 천안함 피격사건이 조작되었다는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의 최근 보도행태에 의문이 가는 부분이 몇가지 있다.

㉠ 먼저 1차 보도의 시점이 천안함 1주기를 맞아 온 국민이 희생장병들을 추모하는 분위기였던 3월 넷째주라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추모분위기 형성에 따른 천안함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는 3월 26일 이틀 전 시의적절(?)하게 1차 단독보도를 했다.

오마이뉴스가 1차 보도에서 활용한 문제의 사진은 '가을밤'이란 이름의 블로거에있는 사진으로서, 사실 웹상에서는 이미 몇달전부터 보여지고 있던 사진이다. 


㉡ 사실 검증 없이 '붉은 멍게'로 보이는 사진을 인용한 점이다.

천안함 어뢰추진체에 붙어있는 물질은 0.8mm이다.
오마이뉴스가 어린 붉은 멍게라고 보도한 외국 해양 생물 웹사이트의 붉은 생물체는 약10cm 정도의 크기이다.

 

블로거 가을밤이 접사렌즈를 사용해 촬영한 어뢰추진체에 붙어 있는 물체(좌)와 양식업자 A씨가 어린 붉은 멍게라고 제시한 붉은 생물체(우)


<사진설명>
(좌) 어뢰추진체의 붉은 부착물질(0.8mm) - 블로거 가을밤이 촬영한 사진
(우) 붉은 생물체(10cm)와 녹색 말미잘(30cm) - 양식업자 A씨가 어린 붉은 멍게 라고 제시한 붉은 생물체 사진


위 사진은 0.8mm로 '점' 수준인 어뢰 부착 물질은 확대하고..

이보다 100배 이상 큰 10cm의 붉은 생물체 사진은 축소하여..
이를 나란히 배열..


☞ 형태의 유사성만을 강조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두 사진속의 물체가 동일한 물질인 듯 착각을 하도록 보도를 했다.(위 사진 참조)




오마이뉴스의 이러한 보도로 인해 결국 국방부 조사본부는 전문기관에 의뢰를 하여 어뢰 부착물질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실시했다.

◈ 어뢰 부착물질에 대한 유전자 분석

- 분석기관 : 농림수산식품부 국립수산과학원 전략양식연구소

- 분석기간 : 3.30(수)~4.4(일)

- 분석방법 : 어뢰추진체에 부착물질 시료 일부 채취하여 실제 붉은멍게 시료와 함께 DNA농도 측정, DNA추출 및 유전자 증폭 실험을 통한 DNA존재 확인

- 분석결과 : 어뢰부착물질에서 생물체 종류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떠한 DNA 조각도 검출되지 않음

▶ 어뢰 부착물질과 붉은 멍게 유생 및 어린 붉은멍게를 비교한 결과..
어뢰 부착물질은 붉은멍게가 아닌 것으로 판단됨




오마이뉴스는 자칭 붉은멍게 양식업자라는 사람과 익명의 수산대학 교수의 말을 근거로 보도했었으나,
조사결과를 발표한 이주 연구관은 붉은멍게는 아직 양식에 성공한 바 없다며 '붉은멍게 양식업자'란 존재할 수 업다고 반박했다.


결국 이날 국방부 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오마이뉴스는 "사실검증에 소홀했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언론이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보도를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충분한 검증을 통한 사실에 근거하여 보도를 해야 한다.

사실검증 없이 오직 자사 이기주의에만 빠져 특종만을 위해 묻지마식 기사를 쓰고 보도를 한다면 언론의 본래의 기능인 국민의 알권리 충족은 커녕.. 
오히려 이러한 매체로 인해 국민들을 더욱 혼란에 빠지고 분열시킬 뿐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국민들이 그 어느때보다 힘든시기인 요즘, 국민 모두가 통합하여 힘을 모을 시점이지만..
근거없는 보도로 국민간의 갈등을 초래하는 보도가 계속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비록 사과문 게재와 함께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일부 언론매체들의 무분별한 보도행태가 향후 지속되지 않도록..  언론 스스로의 정화활동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국방부 블로그 트랙백 0 : 댓글 0
 
 
 



호국의 기관총
 

현재 여러 나라에서 채용하고 있는 M-2중기관총은 탄생한지 거의 100년이 다 된 장수 무기로 국군도 창군 당시부터 사용하여 왔다. 12.7mm의 대구경을 가진 중량화기여서 주로 차량이나 항공기에 거치하여 사용하는데 그동안 많은 성능개량이 이루어졌다. 특히 가장 최신식 버전으로 알려진 M-2/QCB(Quick Change Barrel)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알려진 총열 교환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미 해병이 사용중 인 M-2중기관총

 
그런데 이러한 M-2/QCB를 더욱 개선하여 우리 실정에 맞게 탄생한 중기관총이 K-6다. K-6는 국산 무기 개발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1986년에 개발에 착수하여 불과 1년 반 만에 제작을 완료하였고, 1989년부터 전 군에 보급되었다. 다시 말해 국군이 사용 중인 K-6는 가장 성능이 개선된 M-2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일선 부대에서 오래 동안 실전에 사용되면서 호평을 받아왔다.
 

                                               국군이 사용 중인 K-6중기관총
 

비록 차세대 중기관총인 XK-13가 성공적으로 개발되어 채용되면 서서히 교체되겠지만 100년 가까이 현역에서 물러나지 않은 M-2의 역사를 반추한다면 K-6는 그리 쉽게 도태되지 않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국군의 주력 중기관총으로 그 역할을 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일부 매체를 통해 알려진 작은 소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K-6의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중기관총 XK-13
 

무기는 제식번호 외에 그 용맹함을 상징하는 별도의 애칭이 부여되는데, 예를 들어 국산 기동헬기의 이름인 '수리온'은 일반인들의 공모를 받아서 탄생하였다. 그런데 소총이나 기관총처럼 소화기의 경우 애칭은 없고 대개 제식번호로만 불리는데, 이번에 특이하게도 K-6에 이름이 부여 되었다. 비록 일부 도입 물량에 한해 부여된 것이지만 그 의의는 사뭇 다르다.
 

                                       최근 도입된 K-6에 새롭게 이름이 부여되었다.


1년 전인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북의 기습 도발로 천안함이 침몰 당하면서 46 용사가 희생되었고 구난 과정 중 해군 특수전여단의 한주호 주위가 순직하는 사건이 벌어져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 당시 전사한 故민평기 상사의 모친인 윤청자 여사가 "영해와 영토를 한 발짝이라도 침범하는 적을 응징하는데 써 달라"며 1억8백9십8만8천원을 기탁하였는데 해군은 이러한 고귀한 뜻을 받들어 K-6중기관총을 구입하였다.

 

                                                 故민평기 상사와 윤청자 여사

 
이처럼 뜻 깊게 도입된 18정의 K-6중기관총이 천안함이 속해 있던 제2함대 소속 함들의 근접 방호용 무기로 조만간 장착 될 예정이다. 처음에는 이를 '민평기 기관총'이라 명명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천안함 사건을 잊지 말고 46용사 모두를 의미할 수 있는 3월 26일을 기려 '3.26 기관총'으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이와 같이 기증된 18정의 K-6에 한하여 붙은 이름이지만 여기에 담긴 뜻은 엄청나게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기증 된 '3.26 기관총'
 

2000년 예멘의 아덴 항에 정박하고 있던 미 해군의 최신예 구축함 콜(Cole)호가 알카에다의 폭탄 테러에 의해 60여명 가까이 사상당하고 선체가 대파되는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각종 첨단 무기를 장착한 최신예 이지스함이 어이없게 피격당한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가장 오래된 구형 장비라 할 수 있는 M-2중기관총이 가장 가까이 다가온 적을 방어하는 무기로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3.26 기관총'은 호국의 첨병이 될 것이다
 
이번에 해군 초계함에 새롭게 장착된 K-6도 마찬가지다. 비록 중기관총은 은밀히 침투하는 적 잠수함이나 적함을 단숨에 격파할 수는 없지만 비정규전 도발을 선호하는 북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무기다. 최첨단만으로 모든 침략을 막아낼 수 없음은 이미 역사가 입증해 주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이름이 부여된 '3.26 기관총'이 기증자의 뜻을 기려 호국의 첨병으로 그 맡은바 역할을 다해 주기를 기원해 본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1년 전 오늘 천안함은 평소와 다름없이 서해바다를 항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날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모른채..




그리고 2010년 3월 26일 밤, 천안함의 침몰 소식을 전하는 뉴스 속보가 TV에서 흘러나왔다..

 



 "백령도 인근에서 경비중이던 우리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고 있어서 긴급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합동 참모본부는 어제 밤 9시 20분 쯤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 초계함 천안함의 바닥에 구멍이 생겨 침수되기 시작하면서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밤 11시 현재까지 구조된 인원은 58명이며.."

 

처음 뉴스를 듣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군함이 침몰하다니? 그것도 1,200톤급 초계함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있을 것 같지 않은 뉴스였기에 화면을 통해 보이는 엄연한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의구심만 커질뿐  앞으로 다가올 충격과 고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안함 침몰의 원인으로 북한 잠수함의 공격 가능성이 언급되고, 천안함과 함께 사라진 장병들의 이름이 하나 둘 발표되면서, 사건의 심각성을 실감하게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충격은 점점 더 거세게 밀려왔다. 
 
단 한명이라도 살아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희망에 말그대로 목숨을 건 실종 장병 수색작업이 전개되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희박해지는 생존가능성에 절망하게되었고, 오히려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한주호 준위의 사망과 금양호의 침몰로 안타까운 희생 소식이 잇따르면서 하루하루가 지날 수록 고통은 점점더 커져만 갔다. 결국 그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을 결코 놓을 수 없을 것 같던 실종 장병 가족들마저 사랑하는 아들, 남편을 스스로 포기하는 비극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가까스로 천안함이 인양되고,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46명의 장병을 온 국민이 추모하며 떠나 보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 사회를 또 다른 혼란에 빠트리며 흔들어 놓았다. 

결국 북한의 비열한 만행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과 슬픔에 분노까지 더해져...
그렇게 온 나라가 거의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를 것 같던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 그 아픈 기억이 시간의 한바퀴를 돌아와 다시금 천안함을 떠올리게 한다. 아픔의 크기가 망각의 속도를 늦춰 놓는 걸까?  바로 어제의 일 같은데 벌써 일년이란 세월이 지났다니 믿기지 않는다.  

천안함 1주기를 맞아 천안함 1주기 추모식, 유가족 위로행사, 46용사 위령탑과 한주호 준위 동상 제막식, 추모 음악회 등 군과 정부 그리고 여러 단체에서 주관하는 공식적인 추모행사가 많이 준비되고 진행될 예정이다. 



뿐만아니라 많은 일반 국민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추모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희생 장병 가족들의 사연을 접할 때면, 그때의 슬픔이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있음을 보게되어 다시금 마음이 아파오고, 그 분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기 위해 무엇인가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천안함 사건은 차라리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될 기억임을 알기에,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아픈 기억을 들춰내어
떠나간 장병과 그 가족을 다시한번 애도하고 위로하며, 또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는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반성과 다짐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천안함은 이제 평택 2함대 한 켠에 조용히 자리잡고,
그날을 기억하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비록 바다를 누비는 임무는 종결되었으나,
우리 군에게는 한치의 방심과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강한 군대로 거듭나야 한다는 뼈아픈 자성을 심어주고,
국민들에게는 우리의 안보현실이 어떠한 상황인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어둡고 검푸른 바다의 거친 파도를 두려움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헤쳐나가며 우리의 바다를 지키던 저 배가... 이제 여러 겹의 철골에 몸을 의지한 채 땅위에 박제처럼 덩그러니 서있는 모습을 대하니 왠지모를 분노와 자책이 밀려든다.




천안함은 낮은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하고 있는 것 같다.
 " 미안하다고,, 우리의 바다를 온전히 지키지 못해서..."


그에게 우리가 마음속으로 답해줘야 하지 않을까?
 "편히 쉬라고... 우리는 그동안 네가 최선을 다해 조국의 바다를 지켜왔음을 알고있고, 또 왜 지금 그자리에 있게 되었는지도 알고있다고"

 그리고 "너와 운명을 같이한 46명의 장병들과 함께 항상 우리 곁에 있어 달라고..,그러면 너는 영원히 침몰하지 않는 것이라고.. "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3.22일 
'프레스센터'에서 천안함 폭침 1주년을 회고하는 특별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천안함 1주기를 맞아 천안함 사태가 남긴 교훈과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는데요..

이번 회의는 천안함 사태 이후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로 인해 어느때 보다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커지고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안보실태를 되짚어보고 대처방안을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하겠습니다.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한국국방정책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심포지엄에는 한국국방연구원, 통일연구원 등 4개 기관의 국방분야 전문가가 발제자로 참여하였고, 토론자로는 외국어대학교, 경남대학교, 평화네트워크 등 민간분야와 국방부 관계자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회의장에는 준비된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일반 시민들이 찾아와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회의는 『한국의 군사적 대응과 안보』, 『한국사회의 변화와 민군관계』를 주제로 각 발표자가 발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요.. 토론의 주요 발제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의 군사적 대응과 안보』를 논하는 제1회의 에서는

먼저, '천안함 피격사건의 군사적 교훈과 한국의 대응방향'이
라는 주제에 대해 한국국방연구원 박창권 책임연구위원이 발제하였습니다. 
                                          

 

" 천안함 피격 사건은 북한의 실체를 정확히 보여주었던 중요한 사건으로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시사점은 관점에 따라 다양할 수 있겠지만, 국방구조적 측면, 군사전략·작전·능력의 측면, 그리고 한·미동맹 및 안보협력 차원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먼저 국방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적시에 보고 및 대처를 위한 위기대응 체제와 육·해·공군의 작전을 효과적으로 지휘통제할 수 있는 합동작전체제의 확립이 필요하고, 실질적인 적 위협에 대한 선별적인 정보제공과 이를 적시에 작전에 반영하기 위한 정보·작전 간의 유기적 협력체제가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탐색 및 구조작전 과정에서 나타난 민군협력체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여야하며,  사실을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고 정보의 공개 범위를 정립하여야 하는 국방 커뮤니케이션의 개선도 이루어져야할 것입니다.


군사 전략·작전·능력 측면에서는
북한의 국지도발을 안보의 핵심적 위협으로 중요시하는 전략개념을 정립하고, 북한의 기습적 군사도발을 응징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며, 잠수함/잠수정 등 비대칭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을 강화하고, 탐색 및 구조작전 능력 등을 향상시킬 필요성이 중시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체제를 발전시키고, 중국·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관계를 개선하며, 특히 중국이 안보문제에 대해 한국을 지원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언급한 교훈과 최근 발표된 국방개혁안을 토대로 한국의 정치·군사적 대응조치와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해서 크게 다섯 가지 정책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위기대응체제의 강화를 위해서는 기존에 사건 발생 후 사후 처방식으로 단편적인 조직정비만 실시해왔던 차원에서 벗어나, 사전에 다양한 위기상황을 대비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위기의 특성과 조직의 특성을 함께 고려한 체제를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합동성 강화를 위한 군 구조 개혁은 전문성과 통합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 합동성 개념에 대한 명확한 이해, 군의 문화와 업무행태, 책임과 권한의 위임과 분담, 합동 작전과 관련한 지휘관과 참모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세째,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이후 도입한 적극적 억제전략은 강력한 응징능력을 통해 북한이 군사도발을 포기토록하고 북한의 무력도발 징후 시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 응징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전략적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략적 개념을 한미간 합의를 통해 전쟁 및 작전개념에 반영하고, 군사행동을 뒷받침할 정보능력과 타격능력을 확보하는 등 후속조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넷째, 북의 비대칭위협에 대한 대비능력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잠능력 강화, 서북도서 전력 증강 등을 계속 추진하되, 보다 공세적인 전략 추진 방안, 북의 비대칭 무기 및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 무기 위협에 대한 한미 협력체제 구축, 그리고 미래 안보위협까지 고려한 정책적 고려가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한국을 지원할 수 있는 지역 안보여건 조성을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를 발전시키고, 한·중, 한·러 관계를 개선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끝으로 군사적 대응방안과는 별도로 북한 위협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남북간 대화 추진 등 정치적 방안과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 메카니즘 작동도 동시에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두번째로,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남북관계의 변화' 에 대해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전략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 북한은 완전범죄는 아니더라도 확증을 찾지 못하는 영구미제 사건이 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또한 사건 이후 발생한 사고 원인 관련 국내의 심각한 국론분열도 북한이 의도했던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 사태에서 보듯이 한반도에서는 냉전시대와 다름없이 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남북 분단과 대결의 원인인 사상 문제와 군사문제, 즉 체제 대결과 군사적 대치 상태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사상과 군사문제에 대해 더 투철한 쪽은 북한이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체제대결에서의 승리를 위해 남한을 사상적으로 무장해제 시키고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니다.
 
남북관계를 관리하는데 있어 감상적인 기대나 순진한 기대를 따르기 보다는 마치 칼날위를 걷듯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확고하고 원칙적인 대응자세를 견지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어서,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제2회의에서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민군관계』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먼저,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한 국론분열 양상과 원인분석'
 대해 국방대학교 김병조 교수가 발제하였습니다.  

"천안함 침몰은 
한국 군사안보의 허술함을 드러낸 사건이지만 한편으로는 사건 전개과정에서 국론분열이라는 국가안보상의 또다른 취약점을 노정하게 되었습니다.

국론분열의 원인은 "시민사회 요인"과 "군/정부 요인" 그리고 "북한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 요인으로는 군사안보에 대한 낮은 이해, 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조사결과의 정치적 해석, 맹목적 과학주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군/정부 요인으로는 허술한 위기관리·초기대응 및 정보관리의 소홀, 조사결과의 정치적 이용 등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개입이 국론분열의 또다른 원인입니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북한의 개입은 통상적 국론분열이 국가안보적 국론분열로 전환되는 데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북한이 개입하기 힘든 국론형성구조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시민사회와 군/정부는 모두 자신들이 원인이되어 국론분열을 야기한 측면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국론분열 과정에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역할을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앞으로 시민사회와 군/정부의  불필요한 대립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회가 국론통합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군의 대응 및 대군 신뢰' 대해 육군사관학교 온만금 교수가 발제하였습니다.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아덴만 인질 구출작전에 이르기 까지 군과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였으며, 이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고 있는 지 규명하고자 합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천안함 피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던 반면, 연평도 사격훈련 재개와 아덴만 인질구출 작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있습니다. 

이렇듯 정부와 군에대한 인식과 평가가 시기별로 뚜렷이 구별되는 배경에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시에는 대비태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각 상황 발생시 드러난 혼란상 그리고 각 사건에 대한 소극적 대응에 국민들이 실망했던 반면, 연평도 사격훈련 재개와 아덴만 인질구출작전에서는 정부와 군이 철저한 대비태세와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였다는 점에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만족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상은 토론회의 발제 내용이었는데요, 발표가 끝난 후 종합토론 시간에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실질적인 교훈과 처방에 대해 발표자와 토론자 그리고 참석한 많은 일반 시민간에 다양한 의견 제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몰아넣으며 국가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천안함 사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가 반성하고 고쳐야 할 점을 다양하고 냉철한 시각에서 되짚어보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입다.

회의가 끝난뒤..
우리의 안보는 단순히 군사적인 측면의 문제일 뿐만아니라, 정치적·사회적으로도 많은 요인이 충족될 때 비로소 공고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결국 군과 정부 뿐만아니라 모든 국민 개개인이 안보문제에 대해 설마..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보다 성숙된 자세와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그 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도 우리의 안보에 대해 지금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아픔을 망각하고 앞으로 나갈 수는 없다
 
 
지난 2004년 2월 초,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의 미사일 순양함 바르야그(Varyag)가 이끄는 일단의 군함들이 인천항을 방문하였다. 양국 해군의 친선도모 등 여러 목적이 있었지만, 한반도를 빙 돌아 인천을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정확히 100년 전 러일전쟁 당시에 인천 앞바다에서 전사한 제정러시아 함대 소속 장병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였다.


                                             러시아의 미사일 순양함 바르야그
 

1904년 1월 27일, 일본함대가 당시 러시아의 조계지였던 뤼순(현 따롄)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함대를 급습하여 러시아 군함 3척을 침몰시키면서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는데, 이 와중에서 두 척의 러시아 순양함이 극적으로 항구를 탈출하였다. 하지만 제물포(현재 인천항) 앞 팔미도 부근에서 추격에 나선 14척의 일본 군함들에 의해 엄중히 포위당하는 위기에 빠졌다.


                                      뤼순항에서 탈출한 바르야그(右)와 까레예쯔
 

14대 2라는 엄청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군함들은 항복 대신 교전을 선택하였다. 용감하게 포탄을 일본 함대에 발사하여 2척의 일본 순양함을 침몰시키면서 분전하였으나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일본 함대의 집중 공격을 받아 침몰 당하였다(이상 제물포해전).  그런데 당시에 침몰하여 수많은 수병이 목숨을 잃은 러시아 군함들의 이름이 바르야그까레예쯔(Koreyets-한국이라는 뜻)였다.

 

                        제물포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압도적인 공격으로 침몰당한 바르야그
 

이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일부 러시아 수병들은 일본의 포로가 되었다가 강화조약 성립 후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는데, 제물포 해전에서 보여 준 죽음을 불사한 저항 때문에 영웅으로서 열렬히 환영 받았다. 이처럼 비록 비참한 최후를 당했지만 바르야그와 까레예쯔는 러시아 해군의 역사에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지난 2004년 인천을 방문한 러시아함대 지휘관의 모습
 
 
그래서 100년이 지난 2004년, 같은 이름을 승계 받은 바르야그함이 역사적인 패전의 장소를 방문하여 추모행사를 벌였던 것이었고, 인천 연안부두 친수공원에 추모비까지 세웠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구 소련 해군이나 지금의 러시아 해군 함정들은 대한해협을 통과할 때마다 반드시 러일전쟁 당시에 산화한 러시아 해군 전몰용사들에 대한 추모행사를 벌인다는 것이다.


                                              연안부두 친수공원 내 추모비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러시아가 세계사에서 참패로 기록된 러일전쟁 당시의 치욕을 결코 잊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예라 할 수 있다. 비록 바르야그가 적의 공격으로 침몰 당해 러시아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지만, 현재 최신 전투함의 이름을 바르야그로 명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습공격한 적과 중과부적의 상태에서도 당당히 맞섰다는 사실 또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비참한 최후를 당했지만 바르야그는 영원히 기억될 이름이다
 

러시아 해군이 정작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적을 얕보고 방심하였던 사실이다. 즉 패배 그 자체보다 상대를 무시하였던 자체가 바로 치욕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오래전 산화한 장병들을 추모하면서 역사적 과오를 다시 한 번 성찰하는 것이다. 이처럼 치욕은 아픔이지만 회피하여야 할 과거의 유산은 결코 아닌 것이다.
 


                                                      합동영결식

 
지난해 5월 4일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천안함이 침몰한 3월 26일을 '국군 치욕의 날'로 인식하고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당시에 치욕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까지 자책하였던 것은 그만큼 결의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다. 적의 기습에 의해 꽃다운 수많은 장병들이 희생당한 엄청난 사실을 단지 아픈 기억이라고 회피할 수는 없다.

 

                                치욕을 결코 잊지 말고 와신상담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결과가 치욕스럽다고 이를 무조건 감추거나 숨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자세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치욕을 깊이 되새기고 반성의 기회로 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3월 26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야 하며, 이런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되새기는 반면교사의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천안함과 순국장병들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 추모리본(▷◁) 다는 방법

 1) ‘▷◁’을 드래그 후 복사(Ctrl+C), 붙여넣기(Ctrl+V) 하세요.
 2) 한글 ‘ㅁ’과 ‘한자’ 키보드를 동시에 누른 후 오른쪽 하단에 나오는 특수기호 중 ‘▷’와 ‘◁’를 선택해주세요.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최초의 음향 어뢰 해전-인도·파키스탄 전쟁





천암함 사건 1주년이 되어 간다.

북한은 이 천인공노할 만행에 음향 어뢰를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음향 어뢰는 배의 엔진 소음 등을 따라 추적하는 수중의 유도탄형 어뢰를 말한다.]

 

                    천암함 - 비열한 만행이 발생한지 일년이 되어간다. 2010년 3월 26일 침몰.


세계 해전사에서 음향 어뢰가 사용된 사례가 딱 한 번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이야기다.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때 파키스탄 해군
잠수함이 음향 어뢰로 인도 프리게이트함 한 척을 격침한 해전을 소개한다.


원래 인도는 영국 통치 때까지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로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국가
였는데 독립되면서 종교에 따라 인도[힌두교]와 파키스탄[이슬람교]로 분리 되었다.


이슬람교는 공교롭게도 인도 대륙의 동쪽과 서쪽 양쪽에
퍼져있어, 파키스탄은 국토가 동 파키스탄과 서 파키스탄으로 분리된 상태로 독립하였다.


그러나 동서로 분리된 파키스탄은
여러 갈등이 발생했는데, 결국은 동 파키스탄의 독립선언과 서 파키스탄 주민간 무력 충돌의 정치 갈등으로 비화했다.


이에 인도가 개입하면서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하였다.
결과 파키스탄이 패배하고 동 파키스탄은 독립하여 오늘날의 방글라데시가 되었다.


1971년 12월 3일부터 12월 16일까지 발생했던 인도·파키스탄 전쟁
동안 양국 사이에 발생했던 해전은 상당한 규모였다.


12월 4일 야간에 인도 해군이 파키스탄 해군에 선공을 가했다.
인도 함대가 파키스탄의 카라치 항을 기습하여 구축함 한 척을 격침시키고 기뢰 제거함 두 척을 대파하고 육상 정유 시설을 파괴하였다. 파키스탄 해군의 전사자만도 720명이나 발생하였다.


동 파키스탄의 벵갈만에서도 인도 해군은 항공모함까지 동원하여
파키스탄 해군을 완전히 봉쇄하고 제해권을 확보했다.


파키스탄 해군은 전쟁 전, 정세가 험악해지고 전운이 감돌자
잠수함 한 척에 기뢰를 적재하고인도 해역으로 출동시켰었다.


은밀한 임무에 동원된 파키스탄 잠수함은 1944년 미국에서
진수한 텐크급 디아블로 함이었는데,


                                  카지 함, 1570톤 - 파키스탄 최초의 잠수함.


1963년 파키스탄에 양도 되어 그 이름이‘카지’함으로 바뀌었다.
1967 파키스탄은 이 잠수함을 터키로 보내 기뢰 설치 시설을 추가하는 개수를 했다.


서 파키스탄을 떠난 카지는 3,000마일이나 항해해서 벵갈만으로 들어왔다.

카지는 벵갈만 인도 동부에 위치한 비샤카파트남 항으로 출입하는 항로에 기뢰를 설치하라는 명을 받았었다. 이 항구는 인도의 해군 기지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잠수함은 기뢰를 부설하는 작업을 시작한지 몇 분 만에
초계하던 인도 해군 구축함 라쥐푸트 함에게 폭뢰 공격을 받고 격침당했다. 자파르 무하마드 칸 함장 이하 승무원 92명 전원이 사망했다.


인도 해군의 발표에 의하면 이 잠수함이 동 파키스탄 치타공의
파키스탄 해군 기지와 교신하는 무선을 감청하고 이에 대응 출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잠수함 내부의 적재 기뢰 폭발로 침몰했다고 주장한다.
이 설은 중립적인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인도는 카지 함을 인양해서 격침 원인을 조사해보자는 몇 외국 단체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파키스탄 해군은 잇따른 패배 소식에 맥을 추지 못하며
절망감을 참아야 했다.


                        한고르 함 -프랑스 다프네이급 잠수함, 860톤. 장보고 함보다 작다.



그러나 파키스탄 해군의 최신 잠수함 한고르함
인도 해군의 프리게이트함 쿠크리를 뇌격해서 격침시키는 개가를 거두어 파키스탄 해군의 우울한 사기를 일신했다.


해전은 12월 8일 밤에 발생했다.
파키스탄 해군의 최신예함이었던 한고르함은 1968년 프랑스에서 건조한 프랑스 다프네이급 잠수함이다.


전쟁 1년 전인 1970년에 파키스탄에 인도되었었다.
정세가 험해지자 한고르함은 1971년 11월 21일 파키스탄의 기지에서 출항했다. 주어진 임무는 인도 대륙의 카티와 해안 초계였다.


1971년 12월 2일 한고르는 봄베이 항[뭄바이 항] 앞 바다에
잠복 감시하고 있다가 인도 서부 함대의 다수 함정들이 출동하는 것을 탐지했다.


이 함대에 인도의 대형 순양함 미소르도 있었다.


인도 함대는 앞서 소개한 파키스탄의 카라치 항을 급습할
목적으로 출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함대는 수중에 잠복한 한고르함의 전방을 아주 근접해서
지나갔다.


한고르함은 무선 폐쇄를 하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인도 함대가 통과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부상한 한고르함은 인도의 대규모 함대가 출동했다는 정보를 카라치에 보고했다.


보고는 곧 닥쳐올 인도 해군의 파키스탄 카라치 항 기습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였지만 이 중요한 메시지 발신은 인도 해군 통신 정보대에게 감청 당하고 말았다.


무선이 파키스탄 해군의 잠수함에서 발신된 것임을
파악한 인도 해군은 다음날인 12월 3일 서부함대 14전단 소속 프리게이트함 두 척을 인근 해역으로 급파했다.


두 프리게이트함들은 쿠크리키르판이었다.
[쿠타르라는 함도 출동했다는 설도 있다.]
모두 인도 고유의 칼 이름을 딴 함명(艦名)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같이 대잠 항공 초계 능력이 뛰어난 나라라면
대잠기를 즉각 파견했겠지만 인도 해군은 이런 항공 초계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었다,


출동한 두 척의 군함은 며칠간 전파 발신 주변 해역을 수색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한편 12월 9일, 한고르함의 전파 탐색기에는 인도 해군 함정들이 발신하는
무선 신호로 추측되는 여러 개의 전파가 감지되었다.


한고르함의 능동 소나 분석 결과, 무선 발신체 두 개는 확실히 인도 해군 전투함에서 발신하는 것임을 알수 있었다.


바로 한고르함을 잡기 위해서 출동했던 쿠크리와 키르판이
서로 주고 받는 무선이었다.


한고르함은 발신 추정 해역을 탐색하기 위해서 북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한고르함의 함장 타스님 중령은 이를 추적해서 발견하면 격침하기로 결심했다.


이 때 목표와의 거리는 6-8마일이었다.
그러나 느리게 수중 항해를 하는 한고르함의 속도보다 적 전투함의 수상 항해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한고르함은 뒤로 처져서 빠르게 앞으로 빠지는 두 함들과 
더 이상 접촉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고르함은 적의 항로를 예상하고 앞질러가서
잠복할 위치로 직행하였다. 저녁 7시경이었다.


1971년 12월 9일 자정 무렵 적함에 접근한 한고르함은
깊숙이 잠항하였다. 이제부터 접근과 뇌격은 오직 소나만을 이용한 맹목 항해에 의해서 행해 질 것이었다.


두 척의 인도 해군함들이 점점 한고르함에 가까워 옴을 탐지 할 수있었다.
사거리 내에 두 척이 들어오자 40미터의 해저에 있던 한고르함은 선두의 키르판에게 음향 어뢰 한 발을 발사했다.


하지만 손에 땀을 쥐고 기다리던 한고르함 소나 병에게
아무런 폭발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뢰가 목표를 명중시키지 못했던 것이었다.


                          쿠크리는 영국이 건조한 블랙우드급 프리게이트 함.-1,456톤
                                 
사진은 쿠크리와 같은 급의 익스마우스 함.
 

어뢰가 명중하지 못했지만 키르판은 어뢰가 스쳐 지나갔음을 알아챘다.


키르판의 함장은 자신의 함이 적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함수를 돌려 최대 속도로 도주해 버렸다.


키르판은 대피했지만 그 남쪽에 있던 쿠크리는 도주하지 않고
반대로 어뢰가 달려 온 방향을 파악하고 함수를 한고르함을 향하여 역시 최대 전투 속도로 정면 육박해왔다.


한고르함은 전속력으로 덤비는 쿠크리로 함수를 전환하고
응전에 나섰다.


발사 제원을 입력하고 조준한 한고르함은 두 번째의 어뢰를 발사했다.
한고르함 소나 병의 이어폰에 음향 어뢰가 달리는 소음과 이어서 엄청난 폭발음이 잡혔다. 쿠크리에게 명중한 것이다.


폭발음이 들리기 직전 힌고르함의 소나 병은 쿠크리의
마드라 나태뮤라 함장이 즉시 어뢰 회피 기동을 명령하는 것을 감지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늦었다.


간발의 차이로 음향 어뢰는 쿠크리의 엔진 소리를 쫓아와 폭발했다.
한고르함은 전투후 부상해서 생존자를 찾았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음향 어뢰에 명중한 쿠크리는 단 2분 만에침몰하고 18명의 장교를 포함한 176명의 전 승무원이 침몰하는 함과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 인도 구지라트 주 디우 해안 앞 바다에서의 해전이었다.


                                      뇌격 순간의 긴장한 한고르함 내부 그림.
                  중앙에 서 있는 사람이 타스님 함장.
나중에 쓰리 스타 제독으로 진급했다.


일설에 의하면 함장이 구명 조끼를 부하 장교에게 건네주고 침몰하는 함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고 하는데 이 말은 신빙성이 없다.[생존자가 한 명도 없었는데 누가 목격하고 이런 소리를 했는지 궁금하다.]

한고르함의 첫 뇌격에 놀라서 도주하던 키르판은 동료함이 침몰
되는 것을 보고 크게 분격해서 다시 되돌아와 급하게 폭뢰 공격을 가했다.


키르판은 이 폭뢰 공격에 한고르함이 격침되던가 또는 최소한 위협을 느껴
철수하기를 기대했지만, 한고르함은 피하지 않고 기회를 엿보다가 폭뢰를 뿌리는 키르판의 함미에 음향 어뢰를 한 발 더 쏘았다.


한고르함이 발사한 세 번째 음향 어뢰였다.


키르판은 한고르함이 어뢰를 발사하자마자 이를 발견하고 빠른
회피 기동과 함께 다시 최고 속력으로 도주하였다.


한고르함도 함수를 서쪽으로 돌리고 더 깊은 바다 속으로 잠항해서 다시
있을지 모르는 키르판의 역습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키르판은 그대로 철수하고 말았다.


한고르함은 나흘간 그 해역을 어슬렁거리며 추가 먹잇감을 찾았으나
인도 해군은 잠수함 출몰 해역으로 다시 출동하지 않았다. 한고르함은 12월 13일 서 파키스탄 해군기지로 귀항하였다.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12월 16일 인도의 승리로 종식되었고
동 파키스탄에서는 라만 수상을 수반으로한 방글라데시 정부가 수립되어 방글라데시 국의 탄생을 선포하였다.


한고르함은 파키스탄 해군에서 30년 이상을 활동하다가
2006년에 퇴역하였다.


천안함 사건을 바탕으로 음향 어뢰가 사용되었던
인도 해군과 파키스탄 해군의 해전 상황을 살펴보면 두 가지의 특성에 눈길이 간다.


첫째는 음향 어뢰의 명중률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사실이다.
세 발 쏘아서 한 발이 명중했는데 유도 무기의 명중률로는 아무래도 시원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어뢰가 사용된 해전은
두 번 있었다.


첫 번이 인도·파키스탄 전쟁이고 다음이 1982년의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이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1982년 5월 2일 영국 핵잠수함 콘쿼러함이
아르헨티나 순양함 벨그라노함을 격침했다.


                                    영국 핵잠 콘쿼러 함-4,000톤급 대형함.


영국 잠수함은 유도 장치가 없는 재래식 어뢰
세 발을 발사해서 그중 두 발을 명중시켰다.


함장 크리스 레포드 브라운 중령은 장비했던 음향 어뢰를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로 그 신뢰성에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40년의 세월이 지나 정밀 공업이 별로 발달하지도 못한 북한의 음향 어뢰가 천암함을 명중했는데, 그 간 세계적으로 음향 어뢰 제작 기술이 크게 발전하였고 북한도
이 방면에 기술을 상당히 축적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하다.

두 번째는 통신 보안의 문제이다. 인도·파키스탄 해전이 의미하는 또 다른 것은 전쟁 중의 해군 함정들의 통신 보안 문제이다.


                           격침되는 아르헨티나 순양함 벨그라노[9,575톤].323명 사망 


앞에서 소개했다시피 양쪽 해군은 상대방 함정의
무선을 감청해서 정보를 얻고 이에 대응하는 작전을 전개했었다.


인도·파키스탄의 잠수함 해전사가 주는 또다른 중요한 교훈은 해전에서
무선 통신 보안의 중요성이라 하겠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지금, '서울광장'에 오세요!



지금 이시각! 12월 25일부터(이미 시작되었죠?) '11년 1월 8일까지 서울광장에서는 '천안함, 연평도 그리고 북한'이라는 기획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시청역 서울광장에 기획사진전이 있네요~>



올 한해는 북한의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로 온 국민들이 분노와 참담함 속에 있었고, 국방부와 군도 어려움을 겪었던 한해였습니다.

그런데, 국내외 주요 언론들이 '지금은 정전 이후 최대 안보위기'라고 평가하고 있음에도 금년 12월중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는 우리 청소년들을 비롯한 사회전체에 심각한 안보불감증과 취약한 안보관이 만연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방부는 기획사진전을 마련하여, 국민들이 북한의 실체를 바로보고 굳건한 안보의식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직접 와보세요!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잊혀지지 않을 귀신잡는 용사들의 이야기
 
 

지난 1999년에 들어 북한이 서해에 새로운 군사분계선을 전격 선언하고 난 이후 연쇄적으로 벌인 일련의 군사도발로 인하여 NLL(북방한계선)을 서해 5도에 연한 군사분계선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동해바다에서의 군사분계선 또한 NLL이다. 다만 동해안의 NLL은 DMZ을 직선으로 바다 쪽으로 확장한 모양새이고 더불어 인근에 도서가 없기 때문에 서해 쪽과 지리적 여건이 다를 뿐이다.

 
                           보통 많이 간과하지만 NLL은 동해안의 군사분계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해에서 북한의 해상 도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지금보다 더 극렬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1967년 작전 도중 북한 해안포의 포격에 의해 침몰하여 39명이 전사한 당포함 피격사건이나 이듬해 벌어진 미군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USS PUEBLO) 피납사건 그리고 1969년에 31명 탑승원 전원이 사망한 미군 정찰기 EC-121 격추사건이 모두 동해의 NLL 또는 북한 영해 부근에서 발생하였다.

 
                                  천안함 사건 이전 최악의 격침 사고인 당포함 사건
 

다만 적극적으로 분쟁지역으로 각인시키고자하는 서해에 비해서 동해의 NLL은 북한이 트집을 잡을 만한 이슈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서해 5도 같이 북한이 껄끄러워 할 만한 전략요충지가 동해 NLL 인근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서해안의 석도나 초도보다 더 위협적인 위치에 있던 동해안의 여러 섬들을 휴전 직전까지 아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북한의 포격으로 파괴된 연평도 (사진-연합뉴스)
 

사실 해병대의 전략도서 확보작전은 서해보다 동해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신편 된 해병대 독립 제42중대는 1951년 2월 14일 초대 중대장 심희택(沈熙澤) 중위의 지휘 하에 원산 앞바다의 여도(麗島)를 거점으로 하여 주변의 신도(新島), 대도(大島), 모도(茅島), 사도(砂島), 황토도(黃土島) 등 총 6개 섬을 기습 점령하였다. 때문에 북한 측 동해안의 최대 요충지인 원산항은 전략적으로 봉쇄당한 입장이었다.

 
                           해병대는 여도를 비롯한 원산 앞바다의 주요 도서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사건은 해병대의 독립 제43중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함경남도 명천이 고향인 최청송(崔靑松) 중위가 지휘한 제43중대는 그해 8월 28일, 명천군 상가면 앞바다의 양도(洋島)를 기습 점령하였다.  양도는 3개 섬으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제도였지만 이곳의 점령은 북한입장에서 함경도 해안의 연해 길목을 차단당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여도에 상륙하는 해병대원의 모습
 

막강한 제해권을 발판으로 요충지 섬들을 해병대가 점령하자 북한은 이곳 섬들의 대안에 5배 이상의 병력을 증강시켜 배치하여야만 했고 그 만큼 최전선에 가해진 압박을 돌릴 수 있었다.  섬을 점거한 소수의 해병대가 육지로 진격할 수는 없었지만 북한 측의 공세에 수시로 격렬한 교전이 벌이지고는 하였다.  경우에 따라 일시적으로 외부와 연결이 단절된 해병대원들이 섬 안에 갇혀 산화하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였다.

 
                  동해 도서작전에서도 해병대는 불굴의 투혼을 보여 주었다 (사진-영화 스틸컷)
 

이처럼 동해안의 여도와 양도를 근거지로 하여 적의 배후를 양도부대로 개칭되었고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휴전 때까지 현 진지를 사수하였다.위협하고 적 보급차단 및 연안봉쇄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제42중대와 제43중대는 1952년 10월 여도부대와   비록 이들 부대의 도서작전은 전술적인 측면에서 중대규모가 펼친 작은 규모의 후방작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눈엣 가시처럼 적에게 끼친 전략적인 효과는 엄청나게 컸다.

 
만일 원산만과 양도 일대에 NLL이 설정 되었다면 적들이 느낄 곤혹감은 대단하였을 것이다. 영흥만의 경우는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양도는 현재 북한의 미사일 기지로 유명한 무수단리및 핵 실험 장소 부근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러한 전과가 그동안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휴전과 동시에 이들 요충지 섬들을 포기하고 철수하여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만일 이 섬들을 아직까지 우리가 장악하고 있고 이곳까지 NLL이 선포되었다면 과연 어떠하였을까?  서해 5도가 현재 대한민국 안보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쉽게 답이 나올만한 이슈가 아닌가 생각된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북한 연평도 포격도발' vs. '우리군의 대응'
                           
 




북한은 '천안함 폭침사태' 이후 8개월 만에,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최초'로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포격하였습니다. 북한의 170여발의 포탄중, 80여발이 육상에 떨어졌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연평부대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법적, 기습적 무력도발에도 북한은 그 책임을 우리측에 전가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우리민족'을 내세우나, 이번 연평도 포격도발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적으로 삼고있음을 명맥히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우리군은 '강한 억제'와 '보복응징 태세'를 재확립하고 있습니다.


     1. 북한 사격 후 13분만에 대응사격, 너무 소극적이지 않았나?


당시 우리군은 통상적 해상사격 훈련을 시행하고 있었으며, NLL지역으로는 단 한발도 지향하지 않았습니다.  

"왜 북한이 사격을 개시한 지 13분 뒤에 대응사격을 했는가?", "왜 80여 발만 사격했는가", 그리고 "공군 전투기로 보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등 국민들의 우려가 많습니다. 


                                          북한의 포격 도발로 검은 연기에 휩싸인 연평도 모습


그러나, 사건 당시 사격진지에는 적의 포탄이 떨어져 포진지 내에 화재가 발생한 상태였고, 그 불길이 탄약고 쪽으로 번지자 포반 장병들은 직접 불길도 진압해야 했으며 생존성도 보장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13분 만에 첫발 사격은 연평부대가 잘 훈련된 부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K-9 자주포는 포사격 훈련 중이었기에 남서쪽을 향하고 있었고, 사격 준비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으며, 연평부대가 북한의 사격이 끝나기 전부터 준비하여 사격종료 직후 곧바로 반격한 것은 오히려 우리 해병용사들이 평소에 잘 훈련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2. 북한포격 절반수준의 대응사격은 교전규칙상 ‘비례성의 원칙’을 어겼다?


당시 우리 군은 북한의 포탄 중 부대 내에 떨어진 것만을 확인 가능하였고 민간에 떨어진 것은 확인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적 포탄의 절반 이상이 해상에 떨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장 지휘관은 사실상 두 배 정도로 대응수준을 결정하였던 것으로, 적절하였다는 평가를 받고있습이다. 북한이 사격한 170여 발은 최종적으로 확인된 육상 및 해상에 떨어진 모든 포탄의 수효입니다.


                                                                 자주포 실사격 모습


   3. 왜 공대지 사격을 실시하지 않았나?    


이는 UN사 교전규칙과 관계가 있습니다. 1953년 유엔사가 만든 교전규칙은, 확전방지를 위해 필요성과 비례성, UN헌장에 규정된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교전규칙이 과연 현실에 적절한가의 논란은 있을 수 있으며, 우리 대통령과 국방부장관도 유엔사와 협의하여 교전규칙을 수정, 보완해 나가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군 장병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희생이 있었음에도 사태의 엄중함을 외면하고, 유엔군사령부가 제의한 ‘유엔사-북한군 간 장성급회담’ 개최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상 금지된 중대 범죄'입니다. 민간인 피해가 나면 전쟁 중이라도 상대방 국가와 국제사회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준칙입니다. 

우리군은 북한의 재도발 의지를 꺾고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대한민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입니다. 


           합참이 11.27(토)오전, 논란이 되는 "대응사격 20발만 쏴라'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혔습니다.   


11.27(토) 모일간지가 보도한 '합참의장, 대응사격 20발만 쏴라.'는 조사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해당 일간지는 정정보도를 하여야 하겠지요...
 
해당 일간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시 합참의장이 직접 20발만 쏘라고 지시하였다고 보도하였습니다. 먼저, 합참은 해당 보도로 인해 작전 지휘상황이 왜곡되는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도내용 관련 '사실"은 이렇습니다. 

11월 23일 북한의 도발 당일, 합참의장은 즉각 보고를 받고 합참지휘통제실로 내려가 해병대사령부와 연평부대장으로부터 대응사격을 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한 후, 신속한 대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대응사격 권한은, 자위권적 차원에서 연평부대장의 권한이지 합참의장이 했어야할 것이 아님을 명확히 말씀드립니다.   

나라의 위기 시에는, 언론의 정확한 보도와 국익에 대한 생각이 우선되어야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합조단, 천안함 의혹에 답하다."

 

 

□.프롤로그




천안함 피격사건이 일어난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 국제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을 명백히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으며, 지난 9월 13일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와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만화를 제작 발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국방부는 일각에서 제기한 소위 '핵심의혹'에 대해 합조단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들과 조사위원들이 직접 설명을 드리는 동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첫번째, 스크류 논란




천안함 스크류와 관련하여 여전히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민군 합동조사위원 노인식(충남대) 교수의 설명입니다. 
 

                             

□.두번째, 흡착물 논란




일부 재미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천안함 선체와 어뢰추진체에 묻어있는 흡착물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국방과학연구소 이근득 박사의 설명입니다
 

                               

□.세번째, 물기둥 논란




천안함 피격 당시 물기둥이 존재했느냐?에 대한 의혹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국방과학연구소 이재명 박사의 설명입니다. 
 

                                   

□.에필로그



 

국방부는 사건 이후 국내 12개 민간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국제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조사결과는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었습니다.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한 CHT-O2D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한 것이며, 이 어뢰는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으로부터 발사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명백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북한은 조속히 천안함 피격사건의 책임을 인정하고, 대한민국 국민들과 천안함 희생장병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될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1





이 분위기는???
  

아! 꼬인다 꼬여, 몸이......이 곳은, '영어학원'인가요? 아님, '공인중개사' 학원??
이 적응안되는 열공의 분위기란.... 정말 적응 안되시죠?  아니, 본인은 항상 공부만 하신다고요??   설..마~


                                                           태극전사에 쏠린 눈


'미술관'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 에구구구....빛 들어왔네요.


                  마지막 입맞춤...'천안함,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또, 기술부족..


월드컵, 북한, 천안함 이야기까지... 이곳은,




광화문에 위치한 한국프레스센터!  금빛 엘리베이터를 타고 19층가지 올라가십니다.

바로 이곳에서, 8월30일 월요일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주관으로 '제28회 국제안보학술회의'가 개최되었는데요,

제목은, "G20, Middle Powers, and Global Korea" 였지요.  "뭐, 이정도는 다 해석되시잖아요?  기본영어 잖아요? " 호호호^^  제목은 "G-20, 중견국가 그리고 글로벌 코리아". 내용이 무지 어려웠을 것 같죠?  네, 맞습니다. 어려웠습니다. 특히, 발표와 토론하시는 박사님들께서 영어를 정말 유창하게 하시더라고요.  동시통역사를 동원할 정도의 어려운 영어들을... 그래서, 바로 제일 위의 사진과 같은 광경이 연출되었던 거죠~ 모두들 매우 열심히 듣는듯 보이지만, 왠지 몸이 꼬이는 분위기랄까요? 하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이죠. 

그럼 이제, 제가 원어로 들을 수 있었던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사실, 동시통역사의 도움을 아주 조금! 얻을 수 있었죠~).

최근,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한 '중견국가'들이 G-20정상회의 회원국으로서 선진국이 주도하던 세계경제 질서에 영향력을 증가시키고 있는데요, 특히 한국은 오는 11월 G20정상회의 개최국이자 의장국으로서 중요 역할을 맡게되었죠. 'G20회의'는 '세계경제안정화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룬답니다.


                                                 G20 회원국들....(이미 다 알고 계셨다고요?)

안보문제 전문가들 사이에는 G20정상회의가 '안보문제'도 의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만, G20은 경제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위해 안보문제는 논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견국가들의 경제적 영향력과 함께 안보역할도 확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현 시점에서 대표적 중견국가인 호주, 인도네시아, 한국이 스스로의 안보역할을 논의하는 이 학술회의는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지요. 




학술회의는 크게 3개의 회의로 나뉘어 진행되었답니다. '제1회의' : G-2 리더십, '제2회의 : 중견국가들의 영향력 증대', '제3회의 : G-20과 한국의 국가안보전략' 이렇게죠. 모든회의는 발표후 토론의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제1회의 : G-2 리더십>
 - Richard Hermann(Mershon Center, U.S,) :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요 역할을 지속할 것은 분명합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과연 어떤 요소들이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지요. 누구나 예상하듯이 '중국의 리더십'이 미국의 정책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며, 일본과 한국의 정치리더십의 성격도 상당히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중국이 한국과 미국을 분열시킬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생각해볼 문제라고는 하겠습니다."

- Xiaohe Cheng( Renmin University, China) :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일본을 따라잡음에 따라 더욱 큰 글로벌 역할을 해야한다는 기대가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추구하는 데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국제정세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 야심은 다음의 장애요인들로 인해 방해를 받게될 것입니다. 중국은 정체성에 대하여 국내적 합의가 부재합니다. 어떤이들은 중국을 제3세계 회원국으로 여기며, 어떤이들은 중국을 이미 글로벌파워의 최상국으로, 또 어떤이는 중국을 미국 다음으로 세계정세를 좌우하는 'G-2'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같은 중국내 정체성 합의 부재는 중국의 대외정책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추구하는 데에 또다른 장애물이 있다면, '미국중심의 동맹시스템'의 존재와 결정적 시점에 '중국을 전략적으로 지지할 연합의 부재'를 들수 있겠습니다."

다음에 계속....^^                                                                                     - 열혈국방 -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1 : 댓글 1





여러분의 국방부는, 8월 16일~19일 총4일간의 UFG연습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별'들을 만나뵈었지요.  올 한해 다사다난하였던 국방부... 특별히 '별'님들을 만나뵙고 싶었던걸까요?

바로, 국방부장관 주관으로 '10년 예비역 장성 초청 국방정책 설명회를 개최하였다는 이야기.
 



국방부는 1989년부터 매년, 국내 거주 예비역 장성을 대상으로 위와 같은 초청행사를 진행하여 왔는데요,

이 자리는 예비역 장성분들을 초청하여 그분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국방현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분들을 국방정책에 대한 후원자로 모시고자하는 자리라고 하겠습니다.


                                초청행사 시작전, 간단한 티타임을 갖고 담소를 나누시는 '별'들~



                                                      방명록을 작성하시고-

                                               국방에 소중한 제언을 하십니다...

                           그리고, '별'님들은 행사장(국방부 대강당)으로 입장하시지요.

                                               정책설명회 전, '별'들의 환담

금번 '10년 예비역 장성 초청 국방정책 설명회는, '제1부'로 1) 장관 인사말씀 및 주요인사 소개 2) 북한의 군사동향 및 군사대비태세 보고 3) 천안함 피격사건 조사결과 보고 4) 국방정책현안 보고 5) 질의/응답 으로 구성하였으며, 오찬 후 '제2부'로는 안보현장 견학(문서고, 전쟁기념관, 천안함 현장 중 택1)으로 구성하였답니다.


UFG연습 기간이라 민방위복을 착용한 국방장관의 '별'들께 대한 인사말씀으로 정책설명회는 시작되었고요.

특별히 금번 예비역장성 초청 행사를 UFG연습 기간 중에 실시하게 된 것은, 특별히 예비역 장성분들과 안보현안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국방부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정책현안 설명 전, 중요한 것들을 말씀드렸지요.
바로, 오찬 후 안보현장 견학 이동경로입니다- 






한가지 알려드린다면,..
예비역 장성분들중 많은 분들께서, 평소 자발적으로 국방부 정책고객으로 등록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국방부가 정책고객서비스 메일을 통해 전해드리는 각종 국방정책들에 대해 고견을 보내주시는데요, 이처럼 전역 후 현재까지 꾸준히~ 우리 국방에 대해 아낌없는 조언과 성원들을 보내주고 계시답니다.

물론, 일반 국민들께서도 국방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국방부가 금번 특별히 예비역 장성분들을 초청한 이유는... 그분들은 평생을 국방부 및 군과 동고동락하신 만큼 국방정책과 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10년 예비역 장성 초청 국방정책 설명회는 국방정책에 대한 예비역 장성분들의 아이디어를 수렴하고「선진 강군」의 토대를 놓으신 군 원로들의 헌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뜻깊은 자리였답니다. ^^
국방부를 찾아 주신 '별'님들!  그 사랑 변치마소~서- 
감사합니다. ^^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숨는 자 그리고 찾는 자[끝]



 
 

                           좀 더 확충되기를 바라는 부분

 

오늘날은 탐지기기의 발달에 힘입어 물 밖으로 떠오른 잠수함뿐만 아니라 물속에 숨어있는 잠수함까지도 하늘에서 탐지 할 수 있을 만큼 항공기를 이용한 대잠초계 활동 영역이 더욱 넓혀졌다. 특히, 고정익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대잠헬기의 등장은 항공모함처럼 거대한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보통 크기의 수상전투함들도 하늘을 통한 대잠 초계활동을 가능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초기의 수상발진형 대잠초계기 Martin Flying Boat

 

더불어 대잠미사일이나 공중투하어뢰 같은 정확한 대잠 타격능력의 발달은 은밀히 숨어있는 잠수함이라도 하늘로부터의 공중초계에 포착된다면 곧바로 침몰로 연결 될 수 있을 만큼, 잠수함에게 대잠초계기는 더욱 위협적인 존재로 변하였다. 더구나 잠항 중에 있는 잠수함이 하늘에 떠 있는 대잠초계기의 존재를 즉시 알아내기가 어려워, 수면 위에서 잠수함을 감시하는 수상함보다 더욱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해상초계 단일 목적으로 최초로 개발 된 P2V Neptune


잠수함도 수시로 부상하여 몸을 노출 시킬 수밖에 없었던 예전의 재래식 잠수함의 한계를 극복한 핵추진이나 AIP같은 여러 가지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보다 은밀히 작전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항공초계에 탐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임무 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재 우리 군도 운용중인 P-3 Orion

 
결국 처음 하늘에서 잠수함을 감시하기 시작한 이후 많은 시일이 지났지만 쫓는 대잠기와 쫓기는 잠수함의 위치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 중에는 아직까지도 물속의 잠수함이 하늘에 떠있는 항공기를 공격할만한 마땅한 공격체계가 부족한 점도 있다.  물론 잠대공 요격 미상일이 연구 단계에 있어 가까운 시일 내 실용화도 예상되지만,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쫓고 숨어 다니는 일방적인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 되리라 생각된다.

 
                             우리도 사용하였던 2세대급 항모 탑재 초계기인 S-2 Tracker
                                         ('전쟁기념관'에 가시면 볼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많은 북한 잠수함세력의 위협에 대처하여야 하며, 또한 주변국 잠수함들의 천연이동로라고 불리는 동해를 비롯한 인근 해역의 초계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  해군의 대잠초계 능력을 좀 더 증대 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천안함사태에서 보듯이 서해 또한 결코 잠수함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최근에 퇴역한 항모 탑재형 초계기인 S-3 Viking

 
현재 영해를 초계하기 위해 우리 해군은 OO기의 함정탑재용 링스(Lynx)대잠헬기와 OO기의 P-3C 대잠초계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종들은 현재 여러 나라의 주력 대잠 초계기로 널리 사용될 만큼 훌륭한 성능을 자랑하는 좋은 기종이다. 특히 국내에서 대대적으로 개수하여 최근에 제식화한 P-3CK는 부족하였던 대잠 초계능력을 대폭 증가시켜주었다.
 

                               최근 도입되어 국군의 대잠 초계 능력을 확장시킨 P-3CK


 
이러한 체계적인 장비의 도입과 운용으로 우리 군의 해상초계 능력은 꾸준히 증가되었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주변 해역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선인 인근 주변 수역까지 24시간 쉬지 않고 완벽하게 감시하는데 충분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해군 항공대의 전력 확충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다.
 

                                      미국 항공모함을 방문한 한국 해군의 링스헬기

 
우리 해군은 삼면이 바다인 영해를 방어하는 것은 물론 청해부대처럼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원양에서도 작전을 펼치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임무에 투입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임무를 담당할 수 있는 해군 항공대의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 대잠초계를 비롯한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임무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우리 해군의 발전과 노력을 기원한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대한민국 특수부대'들이 몰려 옵니다!   여러분의 '열혈국방'으로.
 



                                                             특전사


                                                           동명부대


    금번 '열혈국방'에서는 '열혈님'들을 위해 <납량특집> '한반도를 지키는 첨병 : 

    대한민국 특수부대' 연재를 준비하였습니다.

    육군 특전사, 해군 UDT/ SEAL/ EOD, 해병특수수색대, 공군 CCT/ PJ, 경찰

    특공대, 해양경찰특수기동대, 해외 파병 특수부대 등등등을 만나보십니다.



                                                          경찰특공대
                 
                                              경찰특공대 가상 테러진압 훈련

                        
  
                                      경찰특공대 가상 한강여객선 인명구조 훈련


    
    대한민국 각 특수부대를 '클로즈-업' 합니다.
   
    각 특수부대의 창설, 활동내용, 화기, 기타 장비 등등등...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화~악!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흐믓해져 옵니다. ^^


    본 특집기사 제작에는,  대한민국 각 군, 경찰청, 해양경찰청, 해외 파병부대 등이
   
    협조하여 주셨으며, 작가는 '열혈국방'에서 '글로벌 밀리터리' 코너를 담당하고
   
    조선일보 등에서 밀리터리 컬럼니스트로 활동하고 계신 '양욱'님 입니다.


    8월 2주부터 연재될  "한반도를 지키는 첨병 : 대한민국 특수부대"!

    기대하십시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교훈을 얻고 대비를 하라


 
 
<사례 1> 1935년 10월 30일, 차세대 폭격기로 개발 중인 모델번호 299실험기가 최종평가 시험비행을 벌이던 도중 추락하였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조종사 과실에 의한 사고였습니다.  결과는 참혹하여 조종사를 비롯하여 비행기에 탑승하였던 수많은 관계자들이 모두 숨지는 끔직한 참사가 되었습니다.  비록 299실험기는 여타 경쟁기종에 비해 성능이 앞선다고 사전 평가를 받았음에도 정식 도입 여부가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추락하여 불타는 299실험기
 

<사례 2>
1943년 2월 18일, XB-29실험기로 명명되어 제작 중이던 차세대 폭격기가 최초 실험비행에 나섰습니다.  군 관계자와 기술자들을 태우고 40여 분 동안 비행했을 때 갑자기 엔진에서 불이 났고 이로 인해 비행기가 공장지대에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 및 공장 관계자 등 총 31명이 사망하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XB-29실험기의 본격 제식화는 유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장지대에 추락하여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한 XB-29실험기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은 무지막지한 전략폭격을 실시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적 후방을 공습하여 상대의 전쟁수행 능력과 의지를 꺾어버린 전략폭격은 한마디로 전쟁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꾼 거대한 군사전략이었습니다.  이때 미국은 유럽전선과 태평양전선에 각기 다른 4발 중(重)폭격기를 투입하였는데 유럽에서는 하늘의 요새(Flying Fortress)라고 불린 B-17이, 태평양에서는 최강요새(Superfortress)로 알려진 B-29가 활약하였습니다.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폭격기로 명성이 자자한 B-17(좌)와 B-29
 

그런데 B-17은 <사례 1>에서 소개한 모델번호 299실험기가, B-29는 <사례 2>의 XB-29실험기가 바로 원형기입니다.  이처럼 무기 개발사는 물론 전쟁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뛰어난 전략폭격기들이었던 B-17과 B-29의 명성은 엄청난 실수에 의한 실패와 기술부족에 의한 시련을 극복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B-29는 6.25전쟁에서도 맹활약하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어져 문제없이 사용되는 것이 가장 좋고 누구나 바랍니다.  하지만 무기 개발사를 살펴보면 이처럼 실패와 좌절을 극복한 예를 발견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잡하고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는 무기일수록 이런 실패의 예는 흔하고 드러나지 않는 소소한 문제점까지 고려한다면 처음 무기를 만들었을 때 처음 구상한대로 완벽하게 작동하는 무기를 만들기란 어쩌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아야 합니다.

 
                공포의 비밀무기로 유명한 V-2 로켓도 엄청난 실패를 겪었습니다.
 

따라서 본격 제식화 된 이후에도 사용도중 발견 된 여러 문제점을 지속적인 개량이나 개선을 거쳐 고쳐나가면서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사실 이것은 비단 무기류뿐만 아니라 상업제품에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제는 당연시 되는 각종 제품의 리콜제도의 대상에는 베스트셀러로 많이 팔리고 사용되는 제품들도 포함되고는 합니다.

 
                          리콜은 흔한 일상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난 7월 29일 장갑차 도하훈련 도중 침수사고가 발생하여 조종사가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
하였습니다.  더구나 사고가 발생한 장갑차는 많은 기대 속에 최근 제식화되어 추후 국군의 주력이 될 K-21장갑차였습니다.  곧바로 사고의 발생 원인을 밝히기 위해 대대적인 조사가 벌어지겠지만 신형 장비를 가지고 훈련 도중 사고가 발생하였고 더구나 인명 피해까지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사고 후 인양된 K-21장갑차 (사진-뉴시스)
 
만일 기계적 결함에 의한 사고라면 조속히 개선이 이루어져야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술한바와 같이 새로운 무기나 장비가 완벽하게 제작되어 별다른 문제가 없이 완벽하게 작동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하여 다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개선하여야겠습니다.

 
                조속히 원인이 규명 되어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인간의 실수에 의해 실패한 B-17이나 결함으로 사고를 겪은 B-29도 뼈아픈 실패를 극복하고 마침내 무기사에 길이 남는 성공한 명품무기가 되었듯이 K-21장갑차도 이러한 뼈아픈 사고를 잊지 말고 이를 반면교사의 사례로 삼아서 훌륭한 무기로 조속히 자리 잡도록 당국과 제작업체에게 노력을 촉구합니다.  반드시 교훈을 얻어 사고의 재발이 없도록 대비하여야겠습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10년 8월 2일(월) 국방부 브리핑룸에서는, 카이스트 송태호 교수가 자청한 천안함 공격 北어뢰 '1번글씨' 관련 발표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논란과 합조단 조사결과에 대한 의문점들 중 "인양된 어뢰 파편 후부에 쓰인 '1번' 이라는 글씨는 폭발시 고열의 화염 속에 타버렸어야 하는데 멀쩡히 남아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사항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미 물리학자, 어뢰폭발했다면 1번 글씨 타버려" .."고열에도 견디는 신기한 '1번'글씨" ...  
일부에서는 어뢰의 온도 상승치에 대하여 그럴듯한 과학적 증거로서 '화약의 발열량의 13%/ 어뢰의 열용량 = 섭씨 약 150도'라는 계산식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송태호 교수는  항간의 서투른 계산으로 인한 열손상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에는 20도씨 이상의 온도 상승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며, 특히 1번 글씨부분은 0.1도의 온도상승도 없어 절대 열손상을 입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래, 카이스트 교수의 주장이 있습니다. 교수의 주장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 바 있고요. 




송교수는, 보다 전문적인 계산을 수행하여 실제에 가까운 온도상승치를 제시하고자 하였으며, "천안함과 어뢰잔해에 나타난 여러가지 현상은 각각 해당 전문가 그룹에 의하여 보다 고도의 분석이 수행되어야 옿게 알려질 수 있으며, 해당분야 전문지식이 부족한 자들이 섣부른 계산을 근거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사회를 낙후시키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천안함 피격사건과 관련하여 네티즌 여러분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온 국민의 관심 속에, 7월 21일(수)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국방부 앞 전쟁기념관에서는 6.25 참전 전사자들과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헌화와 의장행사가 있었습니다.

전쟁기념관 후문을 통해 행사장으로 향하니, 한쪽으로 양국 의장대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답니다. 아래는 미국측 의장대 대기모습!


                                                           미측 의장대원들 행사전 대기 모습


이제, 클린턴 미 국무장관, 게이츠 미 국방장관, 대한민국 국방장관과 외교부장관이 전쟁기념관 내로 입장하실 시간입니다.


                                한미 외교/국방장관 입장 전 한미양측 보좌/보조 기관들 대기 중입니다. 


                                                    외신 기자들 긴장합니다.


                                                  우리 장병들도 다같이 긴장!


               한미 외교/국방장관님들, 6.25 전사자와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위해 정렬!


양국 2+2 장관님들은 6.25 참전 전사자들과 천안함 희생자들 명비에 묵념과 헌화 후 의장행사 참관을 위해 평화의 광장으로 내려오십니다.  










의장행사 전, 양국 애국가가 울려퍼지며, 국기에 대한 경례!


                               미국 6.25 참전용사 3세들도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였습니다.


                            이어, 한미 합동 군악대 공연이 있었습니다.(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


       양국 군악대 공연후 장관님들, 참석자들과 인사를 위해 평화의 광장 레드카펫을 행진하십니다.


행진 간, 미국 6.25 참전용사 손자손녀들과의 기념촬영도 빼놓지 않으십니다.(아래) 




위와 같이 전쟁기념관 의장행사 후, 양국 장관님들은 삼엄한 경호 속에 본론인 '2+2 본회의' 진행을 위해 정부종합청사로 향하셨습니다.




당일 오후, 정부종합청사에서는 '2+2 장관회담 본회의'가 개최되었는데요, 회의에서는 '09년 6월 양국 정상이 채택한 '한,미 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을 계속하여 발전시켜 나갈 것과 '15년 12월 한국군으로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포함한 새로운 계획인 '전략동맹 2015'를 '10년 안보협의회의(SCM)시까지 완성할 것에 합의하였습니다. 또한 '10년 7월 9일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을 환영하면서 북한측에 천안함 공격에 책임질 것을 촉구하였고,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 주민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아울러 '09년 6월 '동맹미래비전'에 기초하여 양국이 동맹협력의 폭과 깊이를 보다 긴밀하고 포괄적으로 협력할 것과 동북아 지역의 안보환경과 새로운 도전들에 함께 대처할 방안들을 논의하는 등 다각적으로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해 나갈 것에 의견을 같이하였습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7월 5일, 한민구 대장이 제36대 합참의장에 취임하였습니다.


 
   
    7월5일, 한민구 대장이 합참의장에 취임하였습니다.


    신임 합참의장은, 앞으로 "확고한 군비태세 유지와 한미연합방위태세 공고화, 합동성

    강화 및 현존/미래 위협에 대비한 효율적 방위역량 구축'
등 4가지 사항에 대한 중점 
 
    추진의지를 밝혔습니다. 


    특히 한 의장은, "합동성 강화는 군의 숙명으로, 각 군 전력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전력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
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천안함 피격 사건은, 적이 도발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우리군의 능력과 의지를 

    다져 국민이 신뢰하는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로서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하였
습니다.


    합참의장 이,취임식을 주관한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천안함 피격 사건은 6.25전쟁 이후 최악의 시련이자 도전으로, 제2의 창군을 시작한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군을 새롭게 바꿔 나가고 교육훈련 강화, 정예 전투원 양성을 통한 강한
 
    군대 육성, 정보 기술 집약형 군사력 구조로의 전환과 효율적 국방운영 체계 구축이 우리
 
    군의 역사적 과업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어둠을 밝힌 용전분투

 
 
1950년 6월 25일 새벽 5시, 해군본부로부터의 긴급출동 명령을 받은 YMS-509 경비정이 동해의 묵호항을 빠져나와 북상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명령을 내린 해군본부나 정장이었던 김상도 소령도 전면전 발발사실은 몰랐다.
북상하던 509정은 7시 20분경 옥계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 상륙부대를 이동하던 북한군 소형 포함을 발견하고 즉시 교전을 벌였는데 이것은 6.25전쟁 최초의 남북 해군간의 교전이었다.

 
                                           YMS-509와 동급의 미 해군 소해정
 

비록 적함을 침몰시키지는 못하였으나 50여 분간의 교전 끝에 북한군 함정을 북으로 패주시켰다.
그리고 509정은 당일 오후 3시에 또 다른 북한군 상륙부대 함정들과 교전을 벌여 상륙정 1척을 격파하고 발동선 1척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당시 북한은 남침과 동시에 동해안 후방에 특작부대를 상륙시켜 국군 제8사단의 배후를 단절시키는 작전을 구사하였는데 509정의 분투로 많은 차질을 빚었다.

 
                          후방으로 침투하던 북한군을 차단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대한민국 해군의 지략은 같은 날 서해바다에서도 빛을 발하였다.
전면전임이 확인되자 해군본부는 유일한 상륙함 LST-801 천안함을 옹진반도로 급파하였다.
원래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고립된 옹진반도에 주둔한 제17연대를 후방으로 철수시키기로 계획은 되어 있었지만 해군은 육군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인천경비부 사령관 유해거 중령에게 명령을 즉각 하달하였다.
 

                                제17연대를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 LST-801 천안함
 

이때 천안함 하나로 부족할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경비부가 보유한 모든 소해정들과 인근의 민간 선박을 징발하여 급조된 철수 선단을 구성하는 치밀함을 해군은 발휘하였다.
그 결과 적에게 함락될 위기의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해상철수한 제17연대는 즉시 국군의 예비대가 되어 전쟁 초기의 피 말리는 지연전에 투입되었고, 이후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여하여 반격전의 선봉장으로 맹활약하였다.

 
                                                  옹진반도 전투 상황도
 

하지만 전쟁 초기의 대한민국 해군이 보여준 최대의 하이라이트는 남해바다에서 있었다.
전면전 발발 소식을 접한 해군본부는 당시 우리 해군이 보유한 최대 전투함인 PC-701백두산함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백두산함은 변변한 전투함정이 한 척도 없음을 한탄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하 모든 해군 장병들이 월급을 털어 마련한 기금에다가 국민의 성금 등이 모여 어렵게 장만한 함이었다.

 
                                          하와이에서 포탑을 장착하는 PC-701함
 

사실 함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미 해군에서 퇴역하여 해양대학의 실습선으로 활용하던 구현 선박에 3인치 포를 장착한 450톤 규모의 소형 함정이었다.
하지만 태평양을 가로질러 태극기를 게양한 백두산함이 1950년 4월 10일 모항인 진해에 입항하였을 때 국민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만큼 한국 해군에게 귀중한 전투함이었다.
바로 이러한 한국 해군의 자랑이 조국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것이었다.

 
                                                      작전 중인 백두산함
 

진해기지를 출항한 백두산함은 25일 18시경, 급속히 남하하던 미확인 괴선박을 발견하고 추격에 나섰는데 이 괴선박이 약 600명의 무장병력을 탑승시킨 북한의 1,000톤급 수송선임을 알게 되었다.
백두산함은 유리한 위치에서 교전을 벌이고자 일단 현장에서 이탈한 후 통제부의 명령을 받아 26일 0시 10분경 다시 근접 접근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이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이 전투 결과 아군은 전사와 부상이 각각 2명인 피해를 입었지만 적선을 격파하여 침몰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대한해협전투 상황도
 

전사에는 이를 대한해협전투라고 표기하는데 그 의의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북한 무장선의 임무는 부산항 점거를 위해 북한군을 상륙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유일 생명선이 조기에 차단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백두산함은 그러한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한 것이었다.
 

                                           전쟁 직전 촬영된 백두산함의 장병들
 

이처럼 개전 초에 압도적인 적에게 밀려 고전을 거듭하였던 지상의 상황과 달리 대한민국 해군은 서전부터 상당한 전과를 올렸고 그것은 암울했던 시기에 어둠을 밝혀준 횃불과 같았다.
비록 최근에 발생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한민국 해군은 이처럼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진 대한민국의 보루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굳게 믿는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2







6월 26일, 한미 양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의 대한민국으로 전환 시기를 2012년에서 2015년 말로 조정하기에 합의하였으며, 금년 SCM(10.8)까지 새로운 전환계획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전작권 전환 시기 조정'은,
지난해 5월 2차 북핵실험 등 한반도 안보상황이 매우 불안정하고, 2012년은 역내 각 국의 지도부 교체 등 정치 및 안보적으로 유동성이 높으며, 여론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50% 이상이 안보불안을 이유로 전작권 시기의 연기를 원하고 있는 등에 따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작권 전환시기가 2015년으로 조정된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2015년에는 전시 임무수행을 위한 필수전력이 구비됩니다.
     →
C4I체계 개발 및 성능 개선, 공중전력 및 對화력전 수행능력 등이 보강됩니다.

2)  한국군의 지휘구조가 완성됩니다.

      지상작전사령부 창설로 안정적 지휘구조가 마련되며, 연합연습을 통해 운용능력이 완성됩니다.

3)  2015년에는 한-미 연합작전 환경이 더욱 개선됩니다.
      → 2015년에는 주한미군 기지 이전이 완료되며, 지휘구조를 위한 시설과 C4I체계 완전 가동 상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4)  2015년은, 한미양국 공히 선거일정 등이 없어 정치적으로 안정되는 시기입니다. 
   
  → 기존 전환 시기인 2012년은 한국의 총선과 대선, 미국과 러시아의 대선 및 중국의 주석 교체 등이 있어 전략환경상 전작권 전환시기로는 적절치 않다는 판단입니다.    



    전작권 전환시기 조정과 관련, 최근 우려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드립니다.


1)  '추가 부담(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분담액 증가 등은 없으며, 오히려 비용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기대됩니다.


2)  '군사주권'의 문제는?
      작전통제권의 본질은, 국익 보호와 전시 군사력 운용의 효율성 문제이지, 주권의 문제는 아닙니다. 참고로, NATO의 경우도 회원국이 침략을 받을 경우 자국의 결정에 따라 작전통제권을 미군 장성인 NATO사령관에게 위임합니다. 

3)  일부언론의 '밀실 합의'라는 주장에 대한 입장
      한미 양국간에 최종 합의내용이 결정되기까지 보안을 유지하였던 것은, 양국 협의간 안보 관련 중대 민감사안을 공개할 경우에는 국론 분열 및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우려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청와대와 국방부간 전작권 전환시기 관련 이견'이 있다?
      민간언론의 보도 뉘앙스 차이가 확대 해석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작권 전환 합의는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라 하겠으나, 우리 군은 2012년을 목표로 지금껏 충실한 준비를 해왔으며 현재도 연합방위를 주도할 기본운용능력(IOC) 을 구비하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다만, C4I, 합동화력운용체계 등을 보완할 경우 보다 안정적으로 전작권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5)  '국회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78년 연합사로의 작통권 전환과 '94년 한국 합참으로 평시작통권 전환 및 '07년 전시작통권 전환 합의 등도 국무회의 심의로 결정된 바 있습니다.

6)  '전작권 전환시기 조정' 발표가 '정국 타개 방편'이라는 시각은?
      전작권 전환시기의 적정성 평가 및 보완 문제는, 현 정부 출범시부터 국정과제로 선정되어 검토되어 왔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전작권 전환시기 조정과 직접 연관은 없으나 이 사건으로 전작권 전환시기의 조정을 검토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것은 사실입니다.

7)  전작권 전환 시기의 재연기 가능성은?
      정부와 군은 2015년 말을 전작권 전환의 최종시한으로 설정하여 전 역량을 기울여 철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송도고등학교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지난 6월 29일은 6인의 전사자가 발생한 제2연평해전 발발 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해군주관으로 지내오던 추모식이 지난 2008년부터 정부주관 공식행사로 바뀌었고 특히 올해는 서울의 전쟁기념관에서 TV생중계 속에 성대히 개최되었다.
더불어 그동안 부대 내에 있어서 평소 국민들이 접하기 힘들었던 참수리 357호의 동일 크기의 모형이 함께 전시되어 제2연평해전의 의의와 장병들의 활약상을 쉽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8주년 행사
 

이와 관련하여 하루 전인 6월 28일, 인천 옥련동에 위치한 송도(松都)고등학교에서 작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교내 행사가 벌어졌는데, 이 학교의 72회 졸업생으로 전투 중 산화한 참수리 357호의 정장 고(故) 윤영하 소령의 추모행사였다.
그런데 이 행사는 단발적인 1회성 추모제가 아닌 제2연평해전 다음해인 2003년부터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벌여오는 연례행사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의미 있는 교내행사를 매년 실시하고 있는 송도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대담 기원서 교감선생님 )

 
                                 송도고등학교에서 열린 고 윤영하 소령 추모행사
 

문)
  매년 교내 추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2002년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당시 여섯 명이나 전사한 제2연평해전이 너무 쉽게 잊혀져가는 것 같아 상당히 안타까웠습니다. 때문에 적어도 선배가 산화한 우리 학교의 학생만이라도 이를 기억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 이듬해부터 6월 29일을 기해 추모행사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인양되는 참수리 357정
 

문)
  외부의 참여나 지원이 있었습니까?
답)  아닙니다. 순수하게 학교가 주관하는 자체 행사였고 경우에 따라 손님들을 초대하여 행사를 치르고는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2009년)에는 영하의 흉상 제막행사를 함께 하였는데 영하 부모님을 초청하였습니다.
 
문)  고 윤영하 소령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는지요?
답)  우리학교는 사립이다 보니 영하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학교 다닐 때 영하가 워낙 과묵하여 군인이 될 줄을 몰랐는데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제2연평해전 약 3주전에 영하가 학교를 찾아 온 적이 있었어요. 스승의 날에 출동 중이어서 찾아뵙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그때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졌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을 몰랐습니다.

 
                                      2009년 교내에 설치된 고 윤영하 소령 흉상
 

문)
  고 윤영하 소령 때문에 학교와 해군과의 인연이 각별하다고 들었습니다.
답)  예. 우선 영하의 해군사관학교 동기 분들이 매년 우리 학교에 윤영하 장학금을 기탁하여 주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리고 제2함대 소속의 제천함과 자매결연을 맺어 매년 방문  행사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안보교육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문)  올해는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답)  제2연평해전이나 천안함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우리나라는 안보에서 한시도 눈을 팔 수 없는 환경입니다. 그런데도 신문보도에서 보듯이 요즘 청소년들 중 6.25전쟁의 발발일은 고사하고 어떤 전쟁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기성세대의 잘못이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교육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들이 사실을 정확히 알게끔 더욱 노력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학교는 그렇게 하고자 노력합니다.

 
                                       송도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앰블램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에서 1906년에 개교하여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송도고등학교는 6.25전쟁 중이던 1952년에 인천으로 피난하여와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렇다보니 6.25전쟁에 대한 의미가 상당히 남다를 수밖에 없어 전쟁 발발일과 제2연평해전이 속한 6월 마지막 주를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한 추모주간으로 정하여 매년 이와 관련한 각종 교내행사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추모 행사 중의 송도고등학교 학생들
 

송도고등학교는 특히 농구부가 유명한데 이충희, 김승현, 유희형, 김동광, 정덕화, 강동희 등 한국 농구사의 기라성들이 바로 이 학교 출신이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농구부보다 정, 관, 군, 학계를 빛낸 이 학교 출신의 많은 인사들이 배출되었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된 학교이고 당연히 학교를 빛낸 수많은 졸업생들이 배출되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젊은 졸업생이라 할 수 있는 고 윤영하 소령을 기리는 행사를 매년 잊지 않고 열어오고 또한 이를 교육에 적극 반영하고 있는 송도고등학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이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2


               동해안 기록된 남침증거
 

 
흔히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38선 일대의 모든 북한군부대에 '폭풍'이라는 남침 암호가 하달되면서 04시에 일제히 포격을 개시하면서 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모든 남침 준비를 완료한 북한군이 전면남침을 개시한 시간이 04시였고 이것은 6.25전쟁 발발의 개시 시간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군이 38선 이남으로 월경하여 도발을 개시한 것을 전쟁 개시시점으로 본다면 실제로 전쟁은 그보다 1시간 앞선 03시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새벽 4시에 북한군의 포격이 개시되면서 6.25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비록 38선 전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북한군 일부가 6월 25일 03시에 38선을 넘어 이미 남침을 개시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6.25전쟁 당시 상륙작전하면 인천상륙작전을 먼저 떠올리고 전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통영상륙작전, 원산상륙작전 등도 생각이 날 것이다.전쟁 중 상륙작전의 대부분은 위에 언급한 예처럼 제해권을 확보한 유엔군의 주도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막연한 상상과 달리 6.25전쟁 중 최초로 벌어진 상륙작전은 북한군이 시도 하였는데, 이것은 전쟁 개시시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북한이 주장하는 6.25전쟁 북침설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북한군의 동해안 상륙과 강릉전투 상황도
 

1950년 6월 25일 03시 북한군 제766부대(최근 개봉한 영화  '포화 속으로' 에서 차승원이 지휘관으로 나온 부대)가 동해안의 임원진으로 그리고 제945부대(오래동안 제549부대로 알려졌었다)가 인근의 정동진으로 기습 상륙하였다. 그리고 기록을 살펴보면 북한 스스로도 이것은 성공적인 기습작전이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03시에 동해안에 상륙한 북한군은 연대규모의 경무장부대들로 해당 지역에 상륙한 후 현지에서 암약하던 공비 세력과 연결하여 국군을 분리하고 고립시키는 임무에 투입되었다.당시에 동해안을 담당하던 국군 제8사단은 38선 일대의 주문진에 제10연대, 강릉에는 사단사령부를 그리고 후방인 삼척에 제21연대를 배치해 놓고 있었는데 북한군이 중간에 상륙하여 제8사단의 연결을 끓고 제10연대와 사단사령부의 배후를 차단하였다. 따라서 국군 제8사단은 개전 첫날 38선을 돌파하여 남진하는 북한군 주력과 배후를 압박하던 이들 상륙부대에 의해 순식간 고립된 형국이었다.

 
                      영화 '포화 속으로'에 묘사된 북한군 제766부대
 

다행히도 국군 제8사단은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여 전면의 적을 막고 대관령쪽 퇴로를 확보하여 무사히 철수를 단행할 수 있었고 이것은 6.25전쟁사에 있어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그런데 동해안에서 벌어진 바로 이러한 숨막히는 개전 초기의 상황에서 중요한 의의를 그동안 많이 간과하였다.
우선 03시에 북한군 정규군이 동해안에 상륙하였다는 점이다.
이미 북한은 38선 일대에 포격을 날리기 이전에 그들의 정규군을 우리 후방으로 침투시켜 도발을 감행했고 그렇다면 6.25전쟁 개시시간을 03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03시에 전쟁이 벌어졌음을 기록한 남침사적비
 

이것은 또한 6.25전쟁을 지금까지도 북침이라 왜곡 선전하는 북한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증거다.
개전 당일 국군 후방으로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킨다는 자체가 벌써 북한군의 남침을 입증한다.
상륙작전은 규모의 대소 여부를 떠나서 사전에 충분한 사전준비를 마친 후에나 실시할 수 있는 군사작전이기 때문이다.
도발을 받자마자 즉각 반격하여 상대의 배후로 연대규모의 부대가 상륙을 펼친다는 자체가 우선 말이 되지 않는다.

 
         사전 준비가 필요한 상륙작전은 즉시 반격에 사용할 수 없는 군사작전이다.



비교적 소규모였던 통영상륙작전 당시의 해병대도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였다. 따라서 북한의 북침설은 개전 당일 동해안에서 벌어진 상륙작전만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거짓임이 여실히 입증된다. 1950년 6월 25일 03시 동해안에서 벌어진 북한의 기습상륙작전은 개전 시기에 대하여 한 번 정도 생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남침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적극 활용될만한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제8사단 강릉전투 승전비
 

그런데 야심만만하게 후방에 상륙한 북한군 부대는 이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였다.비록 전쟁 발발 당일 동해안 국군 제8사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지만 방어에 나선 민관군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전사에 일일이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무명 사병들과 민초들의 노력이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주역들이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금년은 1950년 발발하였던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서울 전쟁기념관에서는 금년 6월 25일 훨씬 이전부터 6.25 희생용사에 대한 추모와 참전국에의 감사를 위한 각종 전시와 행사들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11월 30일까지 전시되는 전쟁기념관 6.25 특별사진전


                            6.25 전쟁시 배고픈 아이들 - 전쟁기념관 정원에 전시된 사진들

                                                            전쟁기념관 내 '호국추모실'

                              호국추모실 내 조형물 '겨레의 얼'(천장에서 희망의 빛이 비추고 있다.)                    


6월 25일 정오에는, 이곳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UN 6.25 참전국 용사 추모행사가 있었습니다.
행사에는 한미 군지휘부(대한민국 국방장관, 합참의장, 주한미군사령관, 미 8군사령관) 등 90여명이 참석, 전쟁기념관내 참전 21개국 전사자명비에 헌화와 묵념을 하였습니다.


                         먼 땅에서 와 우리를 위해 희생해준 6.25 전우들에게 국화를 헌화하였습니다..



이어, 전쟁기념관 중앙로비로 이동하여 '주먹밥 먹기 체험'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주먹밥과 감자, 고구마는 6ㆍ25 전쟁 당시 군인과 피란민이 주로 먹던 식량이라고 합니다. 



                                                  6.25 참전용사에게 감사편지 쓰기 행사  


                                                                   6.25 당시 전투식량

                                                                '주먹밥 먹기 체험' 행사


6·25전쟁 당시에는, 물자가 귀해 그릇 대신 탄 상자에 주먹밥을 담아 지게로 날랐으며, 포탄 탄피에 된장국을 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6.25 당시에는 밤샘 전투를 벌이는 동안 고작 주먹밥 한 개가 지급되었는데, 전사자가 발생하게 되면 소ㆍ중대마다 5~6개의 주먹밥이 남곤하였습니다. 또 한겨울에는 얼어붙은 보리주먹밥을 먹기도 하였답니다.

금년 6월25일 '주먹밥 먹기 체험' 행사는 1950년 6.25 당시 한국군의 열악했던 보급상황을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는데요, 그 외에 나물국과 쑥개떡 등도 전시되었으며, 오늘날 한국군과 미군의 전투식량도 선을 보였답니다.


                                            UN 참전국 추모행사에 참석한 한미 군 지휘부 




이날 행사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은 주먹밥을 시식한 뒤 “60년 전 우리나라가 숨이 넘어갈 정도의 국난에 직면하였을 때 우리를 도와주려고 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왔었습니다. 그러한 지원들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과거 60년 전을 생각하며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주한미군사령관은 “테이블 접시에 놓은 주먹밥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성찬이라 생각한다”며 “한국이 경제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며, 북한의 지도부는 도발행위를 계속한다면 한반도에는 평화가 정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맞은편 '전쟁기념관'- 다양한 6.25 기념행사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2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변천 트랙백 0 : 댓글 1


여러분과 제가, 좋아하는 '황현님(악랄가츠)과 국방부대변인'입니다.  그들은 왜 만났을까요??
(저의 절친 가츠님, 초상권 침해 아니죠~잉? 원에 의해 찍으셨잖아요. ^^)


'국방부-파워블로거 워크숍' 후 한 컷!


 
6월 5일 토요일, 국방부 브리핑룸입니다.   TV에서 많이 보셨던... 


'국방부-밀리터리 파워블로거 워크숍' 참석자들(먼저 가신분들도 계시네요.)

       

짜자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유진우님(퍼싱의 전쟁영화 이야기), 김홍익님(도라공의 블로그), 박창범님(아침안개의 블로그) 등 밀리터리분야 파워블로거 17명, 자주국방네트워크분들, 국방부 대변인,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 국방부 국방운영개혁관, 합조단 대변인은 바쁘신 관계로 워크숍 후 사진찍기 시간에는 안계셨네요~


오신분들께 감사와 이번 워크숍의 취지를 말씀드리는 국방부 대변인

             

금번 워크숍은, 국방개혁 관련 전력개편방향에 대하여 밀리터리분야의 풍부한 전문지식을 갖추신 파워블로거님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추가로 최근 온라인 상에서 각종 의혹 가운데 있는 천안함 사건의 의혹들을 해소할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신분들, 파워블로거들인 만큼 카메라 하나 이상씩은 지참이십니다.^^


TV와 온라인 상에서 많이 만나신 '민군합동조사단 대변인'의 천안함 사고원인 설명

          


금번 워크숍을 기획하신 국방부 정책홍보담당관

                          

파워블로거들과의 만남이 기쁘신지, 노래를 하시는 건가요? ㅎㅎ


국방부 국방운영개혁관

                                           

그리고, '국방개혁'에 관해 국방부 국방운영개혁관과 파워블로거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질문과 답변들.....  파워블로거님들, 역시 내공이 대단하시더군요!

어떤 질문과 답변들이 오고갔을까요?

국방운영개혁관 : "24개월 복무기간의 단축 등 빈 자리를 무엇으로 매꾸어야할 지.. 국방은 고민이 많습니다. 새로운 무기체계로 대체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듯 하였으나, 여러가지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아침안개'님 : "제가보기에 현재의 국방개혁2020은 '동원체제'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는 듯 합니다. 현재의 동원체제를 가칭 'shadow system(이건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만..)' 으로 개편하면 어떨까요? '정밀보충대대'를 보완하는 것입니다...." 등등등...



유진우(퍼싱)님의 진지한 질문...

                                   

퍼싱님도 한말씀 하시더군요... 모처럼 진지한 모습(?). 워크숍 내내 국방부 브리핑룸 사방을 두루 다니시며 두개의 사진기로 마구 찍어대시더군요. 사진찍으시다가 제 카메라를 보시고는 "이건 너무 후진 것"이라 하시면서~ ㅋㅋ    호기심 왕자셨습니다.^^

국방부 대변인의 말씀을 제가 대신 전해드리며, 마쳐야겠네요.

 " 밀리터리 파워블로거님들의 군에 대한 포용과 관심을 부탁드리며, 앞으로 더욱, 군을 개방적으로 만들어 주시고, 또한 '국방정책'에 대한 견제의 역할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국민들께서 혹시 잘못알고 계신 것들이 있으시면 이에 대해 제대로 전해주시기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워크숍에 참석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1 : 댓글 10


국방부는 민군 합동조사단에 의해 천안함 침몰사건의 결정적 증거(Smoking Gun)인 북한의 어뢰 추진부와 날개가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의혹이 온*오프라인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어, 제한적이나마 일반인들에게 천안함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 관련 정치인, 신문 방송사, 인터넷 매체, 예비역 군인 및 국방 및 안보관련 자문위원단에 천암함을 공개해, 사건 경과를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일 양일간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의 주관으로 실시된 전화여론조사(성인 남녀 700명)에서는 응답자의 72%만이 합조단의 발표대로 "북한 소행이 분명하다"고 답변했고,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은 21%에 달했습니다.

따라서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를 해소시키고, 민군 합동조사단의 최종결과를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시간 및 장소
 
 ⊙ 2010년 6월 8일 화요일 오전 9시~ 16시 (오전 8시 40분까지 국방부 서문으로 집결)
 ⊙ 국방부 브리핑룸 및 해군 2함대사령부 (버스로 이동 예정)

▶ 대상 
 
 ⊙ 대학생 기자(30명)
 ⊙ 밀리터리 분야 파워블로거 (10명)
 ⊙ 트위터 이용자 (20명)
 ⊙ 인터넷 포털 미디어 담당자 (5명) 등 총 70여명을 대상으로 합니다.

▶ 내용 
 
 ⊙ 민군 합동조사단 관계자의 브리핑 
 ⊙ 천안함 절단면 공개
 ⊙ 식사 및 Q&A

▶ 준비물
 
 ⊙ 디지털 카메라, DSLR, 캠코더, 스마트폰 등 천안함을 촬영 및 기록할 수 있는 장비 휴대 가능
       (단, 천안함에 승선은 불가하며, 
        기존 언론사에 공개한 수준(5m 앞 포토라인)으로 촬영 및 기록이 가능 합니다.)
 ⊙ 천안함과 관련된 질문을 준비해오시면 답변을 드릴 예정입니다.

▶ 유의사항
 
 ⊙ 천안함에 관련된 촬영은 허가되나, 국방부 및 부대(2함대)내 촬영은 제한되니 양해바랍니다.
 ⊙ 트위터 이용자 중 해당 공지를 RT(ReTweet)한 사람들 중 무작위로 선발하며, 
     선발자의 타임라인과 Followers수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단, 정당인과 언론인으로 추정되는 이용자는 배제하며,
            트위터에 본인소개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선발에서 배제할 예정입니다.)
 ⊙ 점심식사는 해군 2함대에서 제공할 예정입니다.
 ⊙ 국방부 영내에 주차는 불가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세요.^^ 



민군합동조사단 결과 발표 이후에 국방부는 각계 각층의 국민들에게 정책설명회를 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절단면 공개와 함께 이번 대학생들 및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설명회도 그 일환의 하나입니다.

그럼 6월달에 뵙겠습니다.





신고
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0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침몰했다는 결정적 증거(smoking gun)들을
국방부 정책블로그에서 누리꾼 여러분들에게 좀 더 자세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26
5.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책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최근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는 '국방개혁'이 그 주제였습니다. 



'국방개혁'이라 하면, 많은 분들께서 난해해하거나 생소하게 느끼실텐데요,

'국방개혁'은 '국방의 선진화와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비하여 2005년에 수립된 중장기발전계획'니다. 2012년 전시작전권의 전환과 2020년까지 국방개혁의 달성을 목표로 수립되었던 '국방개혁'은, 계획수립 당시엔 북한 위협이 감소할 것을 전제로 수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3월26일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하였고, 5월13일 정부는 국가안보시스템의 총체적 재점검을 위해 '국가안보태세 확립과 국방개혁2020 재검토'를 결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열린 국회 정책토론회 "국방개혁,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는 우리 국방에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진지하게 토론에 임하는 군 참석자들..

                              

토론회는, 한국국방연구원, 세종연구소, 조선일보 등 5개기관의 국방분야 전문가들의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고, 국방부와 합참 등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역시 여러분들을 대신하여 토론회에 다녀온 제가 토론회의 대강을 말씀드리도록 하죠. 저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순간 여러분들도 국방개혁에 관하여 한말씀 남기셔야하는 국방의 의무가 발생함을 알려드립니다. ^^

토론회는, 현 안보태세의 문제점, 북한의 위협 가능성, 이에 대한 대응방안, 이에따른 국방개혁의 과제 등을 짚어보고자 하였습니다.

토론중 발제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우리 군의 전략과 전력의 현주소'라는 주제에 대해 국방연구원 차두현 연구실장의 발제입니다.


차두연 연구실장 발제

                                          

" 천안함 사태를 통해 우리가 교훈으로 얻은 것은, '제도'나 '계획'보다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위기관리'는 국방부 혼자서 모든 것을 할수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외교, 안보, 재정 등 위기 유관부처간에 공유되어야 합니다. 우리사회가 문제의식을 너무 국방태세의 취약성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위기'에는 예방과 대응, 사후관리가 모두 중요합니다.

 그럼, 우리군의 현주소 측면을 살펴봅시다. 천안함 사건과 같은 위기에 대응하려면, 북의 도발에 대비한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또한, 1년이상 긴장이 지속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장병들에게 적절한 휴식조치도 병행이 되어야 유사시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유관 기관간 보고체계의 신속/정확성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며, 특별히 현 시점에는 모든 주변국들이 공감할 상황종결을 유도하기 위한 차후대책이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싸울것인가'의 정립이 매우 필요합니다.
국방개혁의 합리적 수정/보완을 위해서는, 위협의 대상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분명한 전략수립, 취약한 해/공군력의 자체 억제력 제고, 이를 위한 무기체계의 장비유지예산 증액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국방개혁 2020 수정안, 바람직한 방향이었나?' 에 대하여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편집인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정치논리에 좌우되어 턱없이 부족한 국방개혁 예산의 증액이 필요합니다. NLL최전방의 수요는 줄지않았는데 고속정의 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해군의 전력...'국방개혁 2020'의 핵심은 계획된 예산의 조달입니다. 육군 중심 군 지휘구조의 '삼군균형발전'도 필요합니다. 합리적 예산과 조직이 운영될때, 효율적 전력투자와 국방개혁이 달성될 것입니다.

이어, '남,북 전력의 강점과 취약점' 대해 디펜스타임즈 김병기 편집위원이 발제하였습니다.  




"최근 북한은, 김정은 후계체계를 만들기위해 군이 전면에 나서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경제난에 따라 무기/탄약이 노후되고, 병사들의 체력이 약화되는 등 체제유지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으로 군사적으로는 한계에 달하여 무모한 모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북한의 강점이라면, 전략적 목표 수립과 그 구현을 위한 수단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여, 약점 극복을 위한 특수전 병력강화, 게릴라전 등 준비, 군지휘부의 독자적 작전기획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남한의 약점은 국민전체의 안보 불감증, 미군에 의존적인 군 구조와 의식에 따른 한국군 지휘부의 작전기획능력 부족, 3군의 자군 이기주의에 따른 어중간한 합동군 체제 등이며, 강점이라면 미국과의 동맹체제에 따른 강한 억제력(핵억제력 등), 세계적 신뢰향상에 다른 정치/외교 입지 우위, 무기의 현대화 등이라 하겠습니다. 한국군은 너무 빨리 북한에 대한 자만심을 보여왔습니다. 북한군은 언제든 폭발 가능성이 있는 불발탄 같은 존재입니다." 

네번째로, '북한의 특수전 능력과 양산 평가' 관해, 북에서 남한으로 망명한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강철환 기자

                                       

"북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난으로 인민군대 전력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 대다수 병사들의 전투능력 상실에 따라 특수부대를 강화하고 있으며, 2003년 이라크전 이후 게릴라전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게릴라전을 강화, 핵무기 개발, 정치범을 이용한 세균무기 및 생화학무기 등을 개발(세계3위)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도발임이 거의 확실해지고 있는데, 북한도발의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인민군의 사기 제고를 위한 충격적 승리가 필요했고, 둘째, 화폐개혁에 따른 북한주민의 분노를 잠재울 외부로부터의 공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방개혁, 어떻게 재조정되어야 하나?' 주제로 세종연구소 이상호 박사가 발표하였습니다.


세종연구소 이상호 연구위원

                                                 

" 최초의 '국방개혁 2020'은, 자주국방 등 당시의 진취적 정책이 잘 반영되어 있으나, 실현이 의문시되는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정부의 수정안은, 정량적 평가에 치우쳐 예산의 축소, 지상군 전력강화에 주력, 해/공군 전력보강 지연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진정한 국방개혁의 실천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측면보다는 군의 입장에서 '전쟁의 방법(군사전략과 작전)'에 맞는 합리적 예산과 전력 소요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상은 토론회의 발제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국방개혁'이 어느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보는, 모든 국민의 행복추구를 가능케하는 기본 인프라이며, '국방'은 온 국민의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군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군의 명예는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신고
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