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24 북풍한설 속의 크리스마스 이브 (2)
  2. 2009.12.18 1944년의 크리스마스 (4)
  3. 2009.12.16 전선에 울려 퍼진 크리스마스 캐럴 (2)



                                           크리스마스 이야기 [ 끝 ]
 
                 1950년 ( 흥남 ) 에피소드
 
 
통일의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던 달콤했던 1950년 10월이 지나가고 찬 서리가 내리던 11월이 되었을 때 전선의 상황은 뭔가 이상해지고 있었습니다. 산속 깊숙한 곳에서 저항하는 적들이 지금까지 상대한 북한군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만국경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작은 충돌이 아니라 대규모의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 지금까지의 전쟁은 무효가 되어버렸습니다.

 
                          중공군의 등장은 새로운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2월이 되어 속절없이 아군 부대들이 중공군에 각개 격파되어 나가자 후퇴는 결정되었고 지금까지의 진격로를 뒤로 돌아 북한 땅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동해의 전략거점이자 함경도의 초입인 원산이 12월 7일 중공군에게 점령되자 한반도 동북부 방향으로 진격하여 잘 싸우고 있던 미 10군단, 국군 1군단은 순식간 배후가 절단되면서 적진 한가운데 고립될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중공군의 포로가 된 미군
 

다행히도 제해권, 제공권을 가지고 있던 UN군은 이를 발판삼아 한반도 동북부의 요충지인 흥남일대로 집결하여 교두보를 설치한 후 바다로 철수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항구도시 흥남에는 병력 10만 5천명에, 차량 1만8,422대 그리고 3만 5천 톤의 각종 군수물자들이 모여들었고 이를 해상으로 이동시키기 위하여 총 125척의 각종 선박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미 7함대의 엄청난 화망이 철수작전 동안 흥남항을 향한 중공군의 접근을 거부시켰습니다.

 
                                         1950년 12월 흥남항 전경
 

1940년 프랑스북부의 됭케르크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된 30만의 연합군이 기적 같은 해상철수에 성공하였던 이후 사상 최대의 해상 철수작전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군이 배를 타기위해 흥남항을 향하여 속속 집결하는 것과 발맞추어 군인들을 능가하는 엄청난 규모의 피난민이 함께 부두로 모여들고 있었는데 바로 자유를 찾아 남으로 가고자 했던 북한주민들이었습니다.

 
                                   철수대기 중인 군인들과 섞여있는 피난민들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등지고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남쪽으로 가고자 하였을 만큼 지난 5년간 벌어진 공산학정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극악하였습니다.  그렇게 후퇴하는 아군을 따라 흥남으로 몰려든 한반도 동북부의 주민들은 벌써 20여만 가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전하게 탈출시켜 주겠다고 그들에게 사전에 약속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공산학정을 피하여 탈출하려는 민족의 거대한 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철수작전을 총 지휘한 미10군단장 알몬드 (Edward Almond )는 커다란 시름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또한 한국전에 발을 들여 놓고 난 후 한반도 곳곳에서 벌어진 엄청난 학살현장을 익히 보아왔고 흥남항에 모여든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그러한 공포가 무서워 피난하고자하였던 사람들이라는 사람을 그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변한 한국전쟁은 후방의 민간인들조차 결코 안전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흥남철수의 총책임자 알몬드 미 10군단장
 

하지만 알몬드에게는 당연히 군의 철수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미 10군단 민사부 고문이자 통역이었던 현봉학 박사에게 3천여 명의 민간인만 소개하겠다는 의중을 밝힙니다.  하지만 북풍한설에도 뜬눈으로 서서 밤을 새며 부두에 몰려든 수십만 피난민의 애끓는 눈초리를 그 누구도 외면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때 국군 1군단장 김백일 장군이 이들의 동반 탈출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현봉학 박사도 알몬드를 설득하였습니다.
 
                                          부두에 대기중인 국군 1군단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배의 빈곳이라면 어디건 상관없이 배가 침몰하지 않을 수준까지 피난민을 태우고 철수하라고 명령이 하달되면서 장엄한 인도주의 작전이 12월 12일 시작되었습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맹추위와 더불어 눈보라가 흩날리는 흥남부두는 군인들과 각종 물자를 비롯하여 괴나리봇짐을 짊어진 남녀노소구분 없는 피난민들이 함께 승선을 하였고 그들은 차례차례 자유를 향한 탈출에 오릅니다.

 
                             지휘부의 결단으로 장엄한 탈출극은 시작됩니다.
 

비록 모든 피난민을 다 구할 수는 없었지만 1950년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마지막 철수선이 불타는 흥남항을 떠나면서 군사적 철수를 완료함과 동시에 총 9만8천명의 피난민들이 함께 북한을 탈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것은 이후 결과적으로 한민족 역사상 최단 시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주지를 옮긴 문화인류학적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탈출선 출항 직후 폭파되는 흥남부두
 

하지만 무엇보다도 1950년 눈보라 속의 크리스마스가 빛났던 이유는 지금까지 인류가 벌여온 수많은 전쟁사를 살펴보아도 찾기 힘든 인도주의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전쟁에서 인간을 생각한다는 점은 사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여건 하에 벌어진 1950년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보여준 아름다운 표상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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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이야기 [ 2 ]
         
           1944년 에피소드(
숲속 오두막집에서 있었던 휴전)


1944년 12월, 이른바 벌지 전투(Battle of the Bulge)로 알려진 서부전선에서 독일과 연합군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던 당시, 벨기에 국경 부근인 독일 휘르트겐 숲속 작은 오두막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944년 크리스마스 때 숲속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아헨에서 살다가 연합군의 계속된 공습으로 인하여 이곳으로 피난 온 열두 살 먹은 프리츠 빈켄(Fritz Vinken )은 어머니와 함께 이곳 한적한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야포의 포격, 폭격기 편대의 비행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194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때였습니다.

 
                                         프리츠 빈켄의 어릴 적 모습
 

비록 쉴 새 없이 포 소리가 이어지는 전쟁터이기는 하였지만 민방위 대원으로 근무 중인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수 있다는 기대에 소년 빈켄은 들떠 있었습니다.
 
그때 느닷없이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촛불을 끄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눈 쌓인 겨울나무들을 배경으로 철모를 쓴 병사 둘이 유령처럼 서 있었고 조금 뒤 눈 위에는 부상을 당한 병사가 누워 있었습니다.

 
                                    낙오하여 부상당한 미군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와 빈켄은 거의 동시에 그들이 적군인 미군들임을 알아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빈켄의 어깨 위에 한손을 올려놓고 잠시 동안 가만히 서 계셨습니다. 무장한 그들은 구태여 우리의 허락이 없더라도 강제적으로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그냥 문 앞에 서서 잠시 쉬어가게 해 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중 한 사람과 프랑스어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부대에서 낙오한 그들은 독일군을 피해 사흘이나 숲속을 헤맸고 동료는 부상까지 입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철모와 점퍼를 벗고 나니 그들은 겨우 소년티를 벗은 앳된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적군이었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아들 같은 소년들로만 보였습니다.

 
                            지치고 다친 그들은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께서 " 들어오세요 "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부상자를 들어다 빈켄의 침대 위에 눕혔습니다.  부상자를 살펴보러 가면서 어머니가 빈켄에게 말했습니다. " 저 두 사람의 발가락이 언 것 같구나. 자켓과 구두를 벗겨 줘라. 그리고 밖에 나가 눈을 한 양동이만 퍼다 다오 "  빈켄은 어머니 말씀대로 눈을 퍼와 그들의 퍼렇게 언 발을 눈으로 비벼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군들이 오두막집에 왔습니다
.
 

그 사이 어머니는 크리스마스이브때 쓰려고 아껴 두었던 수탉 한 마리와 감자를 가져와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가 흐른 뒤, 고소한 통닭 냄새가 방안에 가득 차자 또다시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 또 미군들이겠지 ) 하는 생각하고 빈켄이 문을 여니 밖에는 네 명의 독일군이 서 있었습니다.
 
순간, 빈켄의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적군을 숨겨 주는 것은 최고의 반역죄로 즉결총살 감이었음을 비록 어리지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프뢸리헤 바이낙텐 ( 축 성탄 ) ! " 어머니가 인사를 하자 병사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쉬어 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 물론이지요 ... 따뜻한 음식도 있으니 어서 들어오셔요. " 막 구워지고 있는 통닭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던 병사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순식간 긴장감에 흐르고 독일군과 미군은 싸울 준비를 하였습니다
.
 

그러자 어머니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 하지만 우리 집에 이미 다른 손님들이 와 있습니다 ... 비록 그들이 당신들의 친구는 아닐지 모릅니다. " 그 찰나 독일군들은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고 숨어서 문 밖을 살피던 미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방에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순간 ... 어머니가 다시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었습니다. "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 우리집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습니다 ... 당신들은 내 아들과 같습니다 ... 그리고 저 안에 부상당해 낙오한 미군들도 마찬가지예요 ... 모두가 배고프고 지친 몸입니다 ... 오늘 밤만은 죽이는 일을 서로 잊어버립시다. "

 
             소박한 식사와 함께 작은 오두막집에서 그들만의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고 아마도 그 자리의 어느 누구에게나 그것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것을 깨뜨린 것은 총소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명랑한 목소리였습니다. " 뭣들 해요 ? ... 우리 빨리 맛있는 저녁을 듭시다. 총은 모두 이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아요. "  그러자 젊은 독일군과 미군들은 동시에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분고분 총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갑자기 손님이 늘어난 관계로 저녁을 더 준비하기 위해 어머니는 빈켄에게 감자를 가져 오라고 하였습니다. 창고에서 식량을 찾는 동안 빈켄은 미군 부상병의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감자를 가득 안고 돌아와 보니 독일군 하나가 안경을 쓰고 부상당한 미군의 상처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적개심을 풀고 서로를 도왔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 위생병이군요 ? " 그러자 안경을 쓴 독일 병사가 대답 하였습니다. " 아닙니다. 하지만 몇 달 전까지 하이텔베르그에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 그는 꽤 유창하게 들리는 영어로, 추위 덕분에 환자의 상처가 곪지는 않았다고 미군들을 안심 시켰습니다.
" 과도한 출혈 때문입니다. 쉬면서 영양을 섭취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 서로 간의 적개심이 서서히 가시면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식탁에 앉았을 때 다시 보니 나의 눈에까지도 군인들은 아주 어리기 보였습니다.

 
                            지치고 힘든 어린 병사들은 눈물을 훔치기 바빴습니다.
 

쾰른에서 온  하인츠와  빌리는 열여섯 살이었고, 스물 세 살 난 하사가 가장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사가 배낭에서 포도주 한 병을 꺼내자, 하인츠는 호밀 빵 한 덩어리를 꺼내 놓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방을 잘게 썰어 식탁 위에 놓고 포도주 반병은 부상당한 미군 소년을 위해 따로 남겨 두었습니다.
 
식사준비가 되자 어머니는 모든 병사들을 식탁에 모아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귀에 익은 " 주님이시여, 오셔서 저희들의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 라는 구절을 읊조릴 때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 전쟁터까지 오게 된 병사들은 그 순간 어린 소년들의 모습으로 돌아가 눈물을 훔치기 바빴습니다.

 
                     그들은 그해 크리스마스때 가장 빛나는 별을 함께 보았습니다
.
 

자정 직전 어머니는 문 밖으로 나가 함께 베들레헴의 별을 보자고 말씀 하셨습니다. 모두들 어머니의 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찾는 동안 그들에게서 전쟁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빈켄(右)과 생존자의 재회모습
 

다음날 아침, 독일군과 미군들은 오두막집 앞에서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독일군 병사가 미군들에게 부대로 돌아가는 길을 상세히 가르쳐 준 뒤, 그들은 서로 헤어져 반대편으로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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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이야기 [ 1 ]
 
                      1914년 에피소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쾌속 진공하던 독일군의 진격이 마른전투 (Battle of Marne) 에서 프랑스군의 강력한 반격에 막혀 멈춘 후 전쟁은 소강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참호전으로 변한 전선에도 어느덧 눈발과 더불어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왔고 밤은 점점 깊어져갔습니다.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어느덧 전선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춥고 습한 참호 속에 웅크리고 언제 있을지 모를 독일의 공격에 대비하던 영국군들의 귀에 독일어로 부르는 낯익은 노래 소리가 낭랑한 바로 그때 들려 왔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四面楚歌처럼 영국군의 사기를 더 떨어뜨리기 위한 독일의 심리전으로 처음에는 생각 하였다고 합니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노래 소리는 서서히 독일군 참호 쪽 전체로 변해가더니 합창처럼 전선에 울려 퍼져 나갔습니다. 바로, 독일어로 부른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이었습니다. 그러자 영국군 참호 쪽에서도 이를 영어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한 낯 동안 포격이 반복되던 전선이 순식간에 크리스마스캐럴 아카펠라 경연장이 되었습니다.

 
                                밤새도록 치열한 (?) 노래 대결이 있은 후
                           독일의 한 병사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밤새 캐럴이 울려 퍼진 전선에 동이 터오자 한 독일군 병사가 참호 밖으로 나와 영국군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방아쇠에 손이 간 영국 병사들은 그 독일 병사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고 총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독일병사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작은 나무에 초를 단 크리스마스 트리였습니다.

 
                     양측 병사는 무기를 내려놓고 전선 중간으로 나와 어울렸습니다.
                                       (기념재현 행사와 박물관 기념물)


 
순간 영국군 측에서도 몇 몇 병사들이 참호 밖을 빠져나가 그 병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양측 지휘관은 놀라서 병사들을 제지하였으나 그러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양측 참호 중간지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No Man's Land 로 불리던 죽음의 땅에 잠시간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 입니다.


                              지옥의 전선에 크리스마스의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당시의 극적인 모습이 담긴 실사)


 
참호 밖으로 나온 병사들은 그때서야 양측 참호 사이에 무수히 널려있던 양쪽 병사들의 시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양측 지휘관들이 시체수습을 위하여 잠시 동안 휴전을 하기로 합의합니다. 영국 병사들을 묻을 때는 곁에 있던 독일군들이 기도하고, 독일 병사를 묻을 때에는 반대로 영국군 병사들이 명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시신을 함께 수습하는 모습


                 이후 전쟁 기간 내내 시신 수습을 위한 일시적 휴전이 종종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시체가 치워지자 들판에서 양측 병사들의 축구경기가 벌였습니다.  피탄 공이 가득 찬 진흙벌판은 공을 차고 쫓는 병사들의 함성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경기 후에는 병사들끼리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 지급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여서 가족 사진을 서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휴전을 보도한 당시 신문보도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양쪽 군 수뇌부는 경악하였고 적군 병사와 어떤 형태의 접촉도 금한다는 강력한 명령이 즉시 내려옵니다. 그리고 일선의 지휘관들에게는 참호를 벗어나 적군 병사에게 접근하는 경우에는 이적행위자로 간주하여 현장에서 총살해도 좋다는 지침이 하달됩니다.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1914년의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지나고 다시 아침이 찾아오자 포탄이 상대편의 머리위로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최전선의 병사들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멈춰졌던 전쟁은 명령에 의해서 다시 시작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크리스마스의 평화는 결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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