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보다 먼저 천벌받은 부하 테러리스트



                             살인귀의 말로 - 자르카위의 시신


금세기 최대의 살인마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당했다.
인간의 죽음을 축하할 이유는 별로 없지만 그는 사실 죽어 마땅한 응징을 받았다.

그가 막대한 재력으로 펼친 테러는 세계의 어떤 종교적, 정치적 또는 도덕적 명분을 갖다 붙여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행한 살인들은 그가 숭배하는 알라조차도 등을 돌릴만큼 잔인한 것들이었다.

그런 암살 테러범 밑에서 최악의 살인 졸개 노릇을 하다가 미군의 폭탄 세례를 받고 저 세상으로 간 잔인한 인물이 있었다.

독자 분 중에 2004년 한국의 젊은이 김선일 씨가 이라크에서 테러리스트 일당에게 납치되어 참혹한 최후를 맞은 사실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것이다.


독실한 신앙인이던 김선일 씨는 아랍어를 전공했고 학비를 벌어 석사 학위에 도전하고자 이라크 소재 한국 기업 다나 무역에 취업했었다.


다나 무역은 미군들에게 납품업을 하는 기업이었다. 김선일 씨는 테러리스트가 많은 모술에 주둔한 미군에 납품차 가던 중에 납치되었다.


아부 자르카위는 김선일 씨 살해 등 갖은 악행을 저지르다가  이라크에서 최후를 맞았지만 실은 요르단 태생이다.[1966년 생]


생긴대로 불량스럽던 그는 젊은 시절 요르단 뒷거리에서 숱한 범죄를 저지르며 형무소를 드나들던 깡패였다. 서른일곱 번의 사건에 연루된 범죄 경력이 있고 알콜 중독자였다.

                           조무래기 조폭 수준의 불량배였던 젊은 시절의 자르카위


그러다가 어떻게 바람이 불어 1989년 아프가니스탄으로 흘러
들어가
소위 말하는 반 소련군 무력투쟁인 지하드[성전]에 끼어들었다. 이때 알 카에다의 두목 빈 라덴과도 친교를 텄다.


이 뒤에 자르카위는 요르단에서 군주제 폐지 쿠데타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5년간 교도소 살이를 했었다.


출옥 후 성전의 이름 아래 아프가니스탄과 북부의 거점을 들락거리며 테러 활동에 관계하다가 2003년 미군에 의해 이라크가 침공되자 잔악한 테러 활동을 격화 시켰다.


원래 자신의 폭력 조직을 알 카에다의 이라크 지부로서 연결하여 협력 체제를 만든 뒤에는 테러의 극을 달렸다.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시절의 자르카위


요르단과 이라크 내외에서 폭탄 테러와
납치 암살 등을 수시로 저질러서 악명을 떨쳤는데, 그가 악명을 세계에 드날린 것은 납치한 미국인 니콜라스 버그 씨를  직접 참수하는 끔찍한 장면을 담은 비디오가 세계에 알려 진 뒤이다.


그후 자르카위는  2004 년 6월 김선일 씨를 납치해서 인질로 잡고 있다가 그를 직접 살해했으며, 김선일 씨가 살해되기 직전까지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국내에도 방영되어서 국민들의 격분과 슬픔을 불러왔었다.


                                           알 자르카위의 다른 모습 
                              그의 행적때문인지
불량배의 인상이 뚜렷해 보인다.


이라크의 미군은 그의 목에 2천 500만불의 현상금을 걸고
그를 추적했었다. 쫓기던 그는 네 시간마다 은신처를 옮기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그는 한 때 미군 공격에 중상을 입기도 했지만 용케 잘 빠져 나가며 체포를 피했다.


그러나 갖은 악행을 저지르던 살인마 자르카위에게 결국 하늘의 응징이 내려졌다.


자르카위가 2006년 6월 7일 오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북쪽 8킬로 떨어진 교외인 바쿠바의 안전가옥에서 비밀 회합을 가질 것이라는 정보가 미군 당국에 입수되었다.


자르카위는 이 회합에 두 번째 부인과 어린 아들까지 대동하고 나타났다.  참석한 부하들은 총 7명이었다. 회합을 하다가 미군이 포위하고 있는 것을 알아챈 자르카위 일당은 격심한 사격으로 저항했다.


                                   정밀 폭격으로 파괴된 자르카위 안가


미군은 할 수 없이 두기의 F-16기를 불렀다.
F-16기들은 레이다로 유도하는 500 파운드짜리 스마트 폭탄 두 발씩을 장비하고 있었다.


목표를 여러번 확인한 F-16기 조종사는 스마트 폭탄 한 발을 투하했다. 예외는 없었다. 폭탄은 정확히 명중해서 안가(安家)는 산산조각이 났다.


자르카위는 발견될 당시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주변에서 구경했던  이라크 주민들은 미군들이 자르카위를 구타했다고 증언했지만 다 죽어가는 그에게 폭력을 행사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미군이 살펴보고 있는 그의 비트 흔적.

아마 숨이 넘어가는 그를 살리기 위해서 심폐회생 수술을 하는 장면을 보고 오해한듯하다. 그의 부인 이스라와 자식 아부둘 라만은 이 폭격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그는 세 번 결혼했다. 첫 부인은 자르카위의 고향에서 네 명의 자녀들과 같이 살고 있다. 폭격으로 죽은 두 번 째  부인 이스라는 그 녀가 14 살 때 자르카위와 결혼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테러리스트로 시아파 지도자를 암살했었다. 자르카위는 이라크의 한 여인과 세 번째 결혼을 했지만  그녀의 신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폭격으로 같이 죽었다는 설도 있다.]



                      미군이 발표한 자르카위 시신의 다른 사진. 시신 단장을 한 사진이다.

김선일 씨를 무참히 살해한 그의 행각을 보면 그의 두목 오사마 빈라덴 처럼 난세(亂世)면  꼭 나타나서 사상이니 종교니 민족이니 하는 명분을 업고 마음대로 살인을 일삼는 싸이코패쓰 기질이 있는 그런 범죄자들의 한 부류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 같다.


이따위 불량 살인배에게 우리의 성실했던 젊은이가 희생된 것이 안타깝지만 그가 하늘의 응징을 받은 것을 보니 사필귀정이나 인과응보니 하는 옛말들이 떠 오르게 된다. 그가 지옥으로 뒤따라 오는 옛 두목 오사마 빈 라덴을 보면 무슨 소리를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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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니야 !
 

 
추론이기는 하지만 지구상에 파생형을 포함하여 단일 품목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어 널리 퍼진 무기라 한다면 AK-47소총이 아닐까 생각된다.
원 개발국인 구 소련은 물론이거니와 옛 공산권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이 순간에도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정확한 생산량을 알고 있지 않을 정도다.

 
                                AK-47은 무기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다
 

군은 병력과 장비로 구성이 되는데 병력이 보유하는 최소한의 화기가 소총이다.
보병은 물론이거니와 통신이나 수송처럼 비전투병과 사병들도 소총은 기본적으로 장비하고 있다.
당연히 무력을 보유한 집단들은 기왕이면 성능이 좋은 소총을 기본무기로 갖추려 한다.
거기에다가 성능이 좋은 소총이 가격까지 저렴하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AK-47은 냉전시기 공산권은 물론 현재도 많은 국가의 표준 소총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947년 개발되어 아직까지 많은 나라의 군대가 기본 장비로 채택하고 있는 AK-47은 가장 좋은 소총이라고 평가하여도 무방할 듯하다.
제작이 용이한 만큼 가격도 저렴하고 내구성과 정비가 용이한데다 화력까지 좋아 미국의 M-16과 더불어 '최고의 공격용 소총' 이라고 평가를 받지만 저작권 개념이 희박한 공산국가에서 탄생한 총답게 카피 본까지 합한 생산량은 M-16을 훨씬 능가한다.

 
                                       북한도 AK소총의 주요 생산 소비국 중 하나다
 

이런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AK-47은 개발자 칼라시니코프(Mikhail Kalashnikov)와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전차부대 하사관으로 참전한 그는 1941년 독일군과 교전하던 중 포탄 공격을 받고 부상을 당하여 입원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소련군이 자기 안방에서 독일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치욕적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옐친(左) 러시아 전대통령과 칼라시니코프
 

장고 끝에 그는 독일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소련의 무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결론을 내렸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독일 무기들의 품질이 소련 것에 비해 좋았지만 T-34처럼 소련 또한 좋은 품질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독소전 초기에 소련이 몰렸던 가장 큰 이유는 전선 지휘부의 무능과 경험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말단으로 참전하였던 칼라시니코프에게는 당장 손에 들고 있던 무기차이가 눈에 보였을 것이다.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소총을 제작하였다
 

독일의 침공으로 소련이 위기에 처하였던 것을 직접 경험한 그는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겪지 않기 위해 무기의 기본이 되는 소총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리고 종전이후 툴라(Tula)조병창에서 일을 하며 그가 구상하던 소총을 탄생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AK-47이다.
그만큼 AK-47은 한 개인의 일생의 노력이 응축된 산물이었다.

 
                                그는 전쟁 초기 소련이 당한 치욕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소련이 채택 후 대량 생산하거나 여러 국가에 생산하도록 허락하여 전 세계에 마구 공급된 AK-47은 방위를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게릴라, 테러리스트는 물론 마약사범이나 갱단까지 널리 애용하는 무기가 되었고 이렇게 AK-47이 전 세계 구석구석에 퍼져 살육도구로 이용되는 현실에 칼라시니코프는 매우 괴로워했다.

 
                   하지만 국가 방위가 아닌 무력 집단의 살육도구로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2006년 6월 12일 중앙일보에 실렸던 기사 중 일부이다.
그는 11일(현지시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 AK-47소총이 오사마 빈 라덴 추종자들의 손에 들려있는 장면을 TV에서 볼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내가 개발한 소총이 저들 손에 들어가게 됐을까'자문하곤 한다 "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중략)...그는 " AK-47 소총 개발은 당초 파시스트 독일 침략군으로부터 조국을 지키려는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됐다 " 고 회고하였다.

 
                                M-16 개발자 유진 스토너(右)와 함께 한 칼라시니코프
 

비록 한 개인의 열정과 애국심에 의해 탄생한 명품이지만 전 세계 분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등장하는 AK-47을 보면 아무리 좋은 물건도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야 빛을 발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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