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에서 부활한 명장
 
 

지난 2011년 1월 21일, 우리군은 역사에 길이 빛날 쾌거를 이루었다.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의 인질 구출 작전에서 우리군은 세계 대테러전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비록 피랍선박 선장 석해균 씨와 UDT대원 3명이 부상을 당하였지만 21명의 인질들과 이번 작전에 투입된 해군요원들 모두가 완벽할 정도로 무사했다는 점은 격찬을 받을 만 했다.

 
                                        함교로 진입을 시도하는 해군 UDT대원들
 

항상 세계 최고 수준의 특수전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해외에서 벌어진 테러작전에 투입된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청해부대가 이 정도로 멋지게 활약할 줄 예상했던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번의 업적은 이스라엘 특공대가 지난 1976년 실시하여 이제는 인질 구출 작전의 전설이 된 엔테베 작전과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테베 공항에 억류되었다가 무사히 구출된 인질들
 

인질 구출 작전이 어려운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우습게 아는 흉포한 테러범의 위협 하에 인질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박이나 항공기 피랍의 경우는 좁은 공간 안에 테러범들이 인질들과 뒤섞여 있어 이들을 구분하여 테러범을 일일이 제거하고 인질을 구해내기가 상당히 힘들다. 따라서 격렬한 교전이 벌어졌음에도 모든 인질들의 생명을 구하고 해적들을 완벽하게 제압한 이번 작전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격렬한 총격전 와중에도 무사히 구출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
 

이것은 마음 한 구석에 가졌던 모든 염려를 일순간 종식시키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또한 지난해 우환이 연이어 발생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국군의 사기를 단 번에 회복시켜주었다. 더불어 우리를 만만하게 보았던 국제 테러조직에 엄중한 경고를 주었고 앞으로 도발이 반복될 경우 어떻게 응징을 받게 될 것인지 확실히 알려주었다.

 
                                             청해부대 UDT대원들의 훈련모습
 

우리나라는 소말리아 해적의 위협으로부터 선박들을 보호하기 위한 '항구적 자유 작전-아프리카의 뿔(Operation Enduring Freedom-Horn of Africa)'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2009년 3월 청해부대를 창설하여 현지에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4,500톤급 한국형 구축함을 기반으로 1기의 슈퍼링스 헬기와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30여명의 UDT대원으로 구성된 청해부대는 4개월을 주기로 교대되고 있는데 금번에 활약한 최영함은 제6진이다.

 
                                        청해부대 1진으로 파견되었던 문무대왕함
 

다음은 그동안 항구적 자유 작전에 파견되어 총 15회의 해적 퇴치 작전을 실시한 청해부대의 일지다.
 
1진 2009년 3월 13일 문무대왕함
2진 2009년 7월 17일 대조영함
3진 2009년 11월 20일 충무공 이순신함
4진 2010년 4월 2일 강감찬함 (CTF-151 연합해군 기함)
5진 2010년 7월 9일 왕건함
6진 2010년 12월 29일 최영함

 
                                           6진으로 파견된 최영함의 출항모습
 

이번 작전의 주인공인 최영함은 지난 해 12월 29일 파견되었기 때문에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작전에 투입된 경황없는 상황이었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전을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번에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최영함이 보여준 모습은 640여 년 전 홍산대첩(鴻山)을 이끌어 이후 왜구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백수최만호(白首崔萬戶)의 재림이라 하여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백수최만호로 불린 최영장군의 묘 (출처-Wikimedia)
 

백수(白首)는 백발을 뜻하고 만호(萬戶)는 대장군이라는 뜻을 지닌 몽골말에서 유래된 고려의 관직이다. 즉, 백수최만호는 멋진 백발을 휘날리며 전투를 지휘하던 고려말의 명장 최영(崔瑩, 1316~1388)을 왜구들이 두려워하면서 부르던 별명이었다. 이름을 물려받은 구축함답게 최영함은 너무나 멋진 서전을 장식하였다. 앞으로 남은 임무기간 동안에도 왜구에게 죽음의 사신이었던 백수최만호의 혼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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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그제 였습니다.  제60주년 '인천상륙작전 기념식과 그 재현행사'를 다녀왔습니다.
우선, 해상에서 있었던 재현행사가 궁금하시죠?
그래서, 열혈국방이 대신 가서 동영상을 녹화해 왔습니다. 보시죠!  충성!







                                                   인천상륙작전 재연은 맥아더 장군과 함께!

                                          재연행사의 마무리는 역시 맥아더의 멋진 퇴장! ㅋㅋㅋ 


자~ 이제 그럼, 인천상륙작전 재현행사 바로 전에 있었던 '6.25 60주년 기념식'을 만나보시죠!^^


                       행사시작 20분전. 월미도입니다. 무더운 햇볕을 맞으며 기념식장으로 가는 길



                                     인천 월미도 앞바다에 준비된 기념식장 전경이에요.



                                     '인천상륙작전 해병대참전용사'분들 오셨구요,



          따가운 햇볕, 합참의장님,연합사령관님,국외 참전용사 대표님(빨간 옷) 등이 함께하셨어요.


                         세계 곳곳에서 UN군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 분들도 오셨습니다.


기념식 사회자의 개식사로 기념식이 시작되자, UN기와 참전국 국기들 입장합니다.


                                        

이어 UN군 참전용사 대표분들께서 입장하셨고요.


                         각국의 UN군 참전용사들이 우리 해병대 전차를 타고 식장으로 입장!




이어, 국방부장관의 대통령 축사 대독과 주요인사들의 영상 메시지 상영이 진행되었습니다.


                                              국방부장관의 대통령 축사 대독


기념식이 끝나고, 월미도 앞 해상에서 인천상륙작전 재연이 있은 후(앞쪽에 동영상!), 국내외 참전용사분들을 모시고 참전용사 격려연이 진행되었어요. 

격려연 행사장 한쪽에서는 해군의 '바다사진전'과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 미술대전'이 동시에 진행되었는데요,



 


                    귀여우신(? ㅋㅋ) 우리 해군의장대 사진도 눈에띄네요.  "찰칵!"
 


이렇게, 인천상륙작전 행사장면만을 보신다면.....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하지만, 행사에 참석하신 6.25 참전 한국군과 UN군 용사들의 모습 속에서, 열혈국방은.. 잊혀지지 않은 전쟁의 아픔과 승리의 자부심이 교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열혈국방 생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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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열혈국방'입니다.^^


요즘, 태풍때문에 출퇴근시 지하철 운행중단에, 아름드리 나무도 뽑혀나갔고, 날씬한 우리의 몸도 바람따라 구름따라 날아가 버릴 뻔 했잖아요? ㅎㅎㅎ... 아닌가요??


                                             태풍땜에, 나무도 울고, 나도 울고..흑! 흑! 흑!

 
요즘, 사실 좀 섬찟! 하셨을 겁니다. "태풍이 무서워!~"   그러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짜짜짜짜, 짜짱~가  엄청난~   바로! 우리 '군'이 있지요. " 
그 누구도 못막는 자연재해 때마다! 그 복구현장에는 늘 우리 군이 있었다는 사실!


                                          정말 멋져요~ 우리 육군71사단 오빠들~
   

때는, 금번 9월 2일이었습니다. 10년만에 최대 강풍을 몰고 온 제7호 태풍 '곤파스' 때문에 우리는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태풍이 한반도를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피해복구에 뛰어든 이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육군 57사단, 71사단과 해군 3함대사령부, 해병대 청룡부대였습니다.

특히, 육군57사단은 경기 구리 토평교 인근에서 태풍으로 쓰러진 비닐하우스 10여 동을 치우는 등 대민지원을 하였고요. 71사단은, 40년된 나무도 쓰러져버린 경기 남양주 시내의 도로 복구에 앞장 서기도 하였답니다.


                                       태풍으로 찢어진 비닐하우스의 비닐 제거중입니다. 충성!


"육군만 군인이냐?"

아... 그렇지요? ^^;

우리 해군 3함대는요, 전남 신안군 흑산면으로 달려가 도로 시설물 복구에 최선을 다하였고요, 해병대청룡부대는 경기 김포시 침수지역에서 토사제거와 침수민가 자재도구 정리 등 재난피해 복구에 앞장서기도 하였습니다.   등등등...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호호호~   사실, 아예 재해가 없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제 이름이 '열혈국방'이라서 그런건가요?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왠지~ 우리 '군'에 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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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전10시, 제2연평해전 8주년 기념식이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되었습니다.

'제2연평해전'은, 붉은 악마들이 '2002 월드컵'으로 기쁜 함성을 외치던 그날, 우리해군이 북한의 기습공격으로부터 이나라를 지켜낸 해전입니다.




행사에는 연평해전 전사자 유족과 전상자, 각부처 주요인사, 각계대표, 시민, 학생 등 2,50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제2연평해전 기념식은. 해군에서 개최되던 것을 2008년부터 정부주관 행사로 격상시켜 개최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전 국민의 행사로 개최할 계획입니다.





특별히 이번 행사에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와 전상자들의 나라를 위한 숭고한 헌신과 공훈을 기리고 이를 계승하여 '나라사랑 정신'의 원동력을 삼고자 학생 500여 명이 초청되었습니다.

6월 29일 기념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전쟁기념관은, 제2연평해전 교전 당시의 총탄 자국과 신체 굴곡 등이 원형과 동일한 '참수리 357정'의 모형을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참수리 357정' 모형


해군은 제2연평해전에서 승리를 남기고 떠난 전우들를 기려, 최첨단 유도탄 고속함에 전사한 전우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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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천안함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6월초입니다.

그러한 현실에 국방부는 마음이 아팠고... 그래서 6월8일 국방부는 대학신문기자, 파워블로거, 트위터이용자들을 국방부 대회의실로 초청하였습니다.

바로, 여기 이분들을요.


국방부 대회의실

                                        

아시는 분들도 계시다고요?  맞습니다.^^  유명하신 밀리터리 파워블로거님들이 몇분 계시지요?
합조단에서는 천안함 사고 원인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  열심히 설명을 드리고 있는데요, 오신 분들께서는 워낙에 자유분방들 하셔서 ^^, 아랑곳 않고 취재에 열중하고 계시는군요. 물론, 처음부터 그 모든것이 가능하다고는 말씀드렸답니다. 


국방부 대회의실에 오신 트위터리안과 대학생기자들



트위터리안과 대학생기자들입니다. 대회의실 저- 뒤쪽으로 천안함으로 유명해지신 국방부 대변인이 완전 소외되어 앉아계십니다. ㅋㅋㅋ.. 국방부 공무원들의 공식 회의석상이었다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완전 자유로운 분위기였죠. 하지만, 오신분들의 열렬한 관심과 오고가는 대화들이 저희 국방에게는 너무도 감사하였답니다.   




민군합동조사단 대변인은, 말하자면 '장군'이시지요. 군에서는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 하지만, 오신분들은? 말씀 듣고싶은 사람은 듣고, 사진 찍고싶은 사람은 찍고 하시더군요~ 그 광경이 한편으로는 흥미로웠고, 그들의 능동적인 모습에 감동도 받게 되더군요~   



   
대회의실 정책설명회 시간. 그중에서도 질의,응답 시간입니다. 역쉬!

질의, 응답이 진행중이나 그와 상관없이, 강당 앞쪽으로 자유롭게 나오셔서 어뢰 사진을 찍고 계시지요? ^^  '1인 미디어 시대'라는 말이 실감이 났답니다. 

오전 국방부 대회의실에서의 정책설명회가 끝나고, '제2부'로 참석자들 모두함께 국방부 버스를 타고 평택 2함대사령부로 '천안함 절단면'을 보러 갔었답니다.  국방부도 해군도 천안함 사건 관련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평택 2함대사령부내 천안함 선체 앞에서

                                

위의 사진은 2함대사령부입니다. 천안함을 뒤로하고, 열심히 천안함 함체에 대해 설명하시는 장군님. 오신분들은 장군님 찍고 천안함 찍고 하시느라 보시는 바와 같이 무척 바쁘셨습니다. 질문도 수도 없이 하셨지요...^^


천안함 절단면을 보기전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



아참, 질문 내용이 무엇이었냐고요? " 혹자는, 천안함 사고 원인이 어뢰가 아니고, 좌초 후에 또 무슨 일이 연달아 일어난 결과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물기둥의 물방울이 병사의 얼굴에 튀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등등 주로 저희 국방부와 군도 트위터와 인터넷 등에서 많이 접하였던 질문들이었습니다. 합조단과 해군은 과학적 근거를 들어 사건의 원인이 북한어뢰임을 다시한번 명백히 설명드렸답니다.




오신분들 모두, 해군 제독의 설명을 경청하시면서 천안함 절단면을 보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질문과 함께 사진촬영 등에 몰두하셨지요. 요- 앞에 계신분은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트윗과 리트윗을 하고 계셨죠.

천안함 절단면 공개 후, 추가적인 천안함 관련 질의와 응답 시간을 가졌고 초청의 시간을 모두 마쳤답니다.

오늘 오신분들과는 천안함에 대한 '의혹'속에 만났지만... 헤어짐의 시간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나눌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저희 국방부와 군은, 방문해 주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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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하라! 천안함
 


 
일본이 진주만을 급습하기 직전인 1941년 12월 1일, 전통의 뉴포트뉴스(Newport News) 조선소에서 건조에 들어간 신형 항공모함이 있었다.
이 항모는 에섹스(Essex)급 항모의 2번째 함이었는데, 건조 전에 CV-10 본 홈 리차드(Bon Homme Richard)로 이미 이름이 정해져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한창 건조 중이던 1942년 12월 26일 이름이 요크타운(Yorktown)으로 변경되었고 완공 이후 1943년 4월 15일 실전에 투입되어 태평양 전역에서 맹활약한 후 1970년까지 일선을 누비다 퇴역하였다.

 

원래 예정되었던 이름이 본 홈 리차드였던 CV-10 요크타운


 
이처럼 이름이 갑자기 요크타운으로 바뀌게 된 데는 미 해군의 자랑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 때문이었다.
원래 요크타운은 1936년 건조한 CV-5 항공모함의 이름으로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에 미 해군이 전투에 투입 가능한 5척의 중형(重型) 항모 중 하나였다.
그러다보니 이들 항모들은 일본의 극성기에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많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미드웨이해전에서 타격을 입고 침몰중인 CV-5 요크타운

 

CV-5도 각종 전투에 연이어 참전하여 맹활약하였는데, 특히 태평양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던 미드웨이해전에서 대승을 이끄는 주역이었지만 적에게 맹폭을 당하여 1942년 6월 7일, 최후를 맞았다.
이런 고귀한 이름을 버릴 수 없어 미군 당국은 새로 건조 중이던 신형 항공모함에게 요크타운이라는 의미 있는 이름을 승계시켰던 것이었다.
이것은 세계 해군사에 내려오는 함명 승계에 관련한 수많은 예 중 하나다.

 

군사박물관으로 사용중인 CV-10요크타운. 미해군역사상 최단기간내 이름을 승계한 군함이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급습 시 가장 크게 피해를 당한 군함은 전함이었던 BB-39 아리조나(Arizona)로 일본군의 공습에 일순간 폭발당하여 1,177명의 수병이 전사하고 침몰당하는 미 해군 역사상 최대의 참사를 겪었다.
그런데 아리조나는 아직까지 함명이 승계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비참한 참사를 겪어서가 아니라 침몰한 선체 위에 그날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박물관이 세워져 운용되면서 진주만에서 그 역할을 아직까지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침몰된 선체위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묵묵히 역할을 다하는 BB-39 아리조나


 
정부는 지난 4월 23일 천안함 침몰참사와 관련하여 군의 사기를 제고하고 희생 장병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최신형 초계함 형태로 천안함을 재건조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키로 결정했다.
세부안이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서 천안함과 동급의 군함을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 건조될 차기함정에 이름을 승계시킬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천안이라는 함명은 새롭게 부활하여 우리에게 다가올 것 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정부에서는 천안함 재건조를 적극 추진하기로 하였다.


 
사실 천안함의 이름은 한국 해군사에 있어 상당히 전통이 있는 함명 중 하나로 최초의 천안함은 상륙함인 LST-801이다.
1943년 건조되어 태평양전쟁에서 미 해군 LST-659로 맹활약한 동 함을 1949년 7월 우리 해군이 인수받아 LST-801 용화(龍化)함으로 명명하였고 이후 천안함으로 함명이 바뀌었다. 제1대 천암함은 6.25전쟁 시에 육군 제17연대의 옹진 철수작전, 군산지구 정부미 및 중요물자 후송작전, 묵호지구 수복전 등 주요 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고 1959년 4월에 퇴역하였다.

 

제1대 천안함 LST-801


 
제2대 천안함은 1989년 건조된 PCC-772함으로 1999년 제1연평해전에 참전하여 승리를 이끈 자랑스러운 전과가 있지만 이번에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침몰 당하였다.
하지만 앞서 요크타운이나 아리조나의 예도 들었지만 군함의 침몰은 결코 치욕이나 감추고 싶은 아픈 기억으로만 남지는 않는다.
따라서 새로운 함정을 건조하여 천안함의 이름을 승계시키기로 한 것은 PCC-772함이 최후를 당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 부활하였음을 상징하는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름이 살아있는 함정은 죽거나 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비록 불의의 사고를 겪었지만 그것이 천안함의 끝은 아니다. 천안함의 부활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처럼 본연의 임무이든 아니면 새롭게 부여받은 역할이든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면 군함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천안함은 이름을 승계받아 새로 태어날 예정이라 하니 더더욱 그러하다.
천안함의 멋진 부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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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시기에도 묵묵하게
 

 
천안함사건과 이와 관련된 금양98호의 침몰 그리고 링스헬기의 추락이 연이어 벌어진 2010년은 대한민국 해군사에 있어 두 번째되는 시련의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9명이 전사한 당포함 피격사건과 여객선 한일호가 충남함과 충돌하여 94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던 1967년의 사건 다음이라 할 만큼 천안함 사건은 크나 큰 시련임에 틀림이 없다.

 

천안함사건은 크나 큰 시련임에 틀림없다.


 
워낙에 천안함 사건이 위중한 관계로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어려운 시기임에도 대한민국 해군은 여전히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수선하였던 지난 4월 2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서는 청해부대 4진이 소말리아 작전지역으로 예정대로 출항하였고 항해 끝에 21일에는 현지에서 임무를 마친 3진과 부대 교대 후 임무에 투입된 일이 있었다.

 

지난 4월 2일 출항하는 청해부대 4진 강감찬함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암약하는 해적들로부터 한국선박들을 비롯한 민간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인데 특히 대한민국 국군의 해외 파견역사상 처음으로 해군 단독으로 임무에 투입되고 있으며 부대구성에도 상당히 특색이 있다.

 

현지에 도착하여 적응훈련에 돌입한 청해부대의 모습


 
청해부대는 최신예 한국형 구축함에 대잠헬기 슈퍼링스 1기와 30여명의 UDT/SEAL 특수전요원들로 부대가 구성되다보니 함 자체가 바로 부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일정기간 현지에서 근무 후 부대전체를 교체하는 형식으로 임무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2009년 3월 제1진이 작전에 투입된 이후 이번에 파견된 부대는 제4진으로 4,500톤급 구축함인 DDH-979 강감찬함이 파견되었다.

 

청해부대 4진에 포함된 해군 특수전요원들


 
더구나 이번에는 아덴만과 소말리아 동부 해상에서 대해적 작전을 전담하기 위해 2009년 1월 1일 연합해군사령부 예하에 창설된 다국적군 부대인 CTF-151을 대한민국 해군의 이범림 준장이 21일부터 8월31일까지 지휘하게 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CTF-151의 지휘관은 파견국가 순번대로 돌아가며 담당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차례인 것이다.

 

아덴만에서 작전을 펼치는 CTF-151의 다국적 전투함들


 
이범림 준장은 강감찬함을 기함으로 하여 참가국에서 파견된 21명의 다국적군 참모단의 보좌를 받으며 CTF-151을 지휘, 통제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지휘가 경쟁은 아니지만 여러 나라 해군 지휘관과 자연스럽게 비교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므로 한국해군의 역량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주기를 바란다.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여 주기를 기대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 대한민국 해군은 초유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 맡은바 임무를 다하려 애쓰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해군의 노력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안전하고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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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해를 지키는 하늘의 파수꾼
 
 

천안함 사건과 별개로 최근 해군이 운용중인 링스(LYNX)대잠헬기가 작전 중 연이어 추락하는 전대미문의 사고가 발생하여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해군의 링스헬기


 

지난 4월 15일 오후 8시 58분쯤 전남 추자도 인근 해역에서 초계비행 중이던 해군 3함대사령부 소속 링스헬기가 추락하였는데, 사고 확인 직후 관계 당국에서 구조 활동을 벌였으나 현재 시신으로 발견된 권태하 대위를 제외한 홍승우 중위, 임호수 중사, 노수연 중사 등 나머지 탑승자의 생사여부는 물론 기체까지 아직 파악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故 권태하 대위




그리고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4월 17일, 소청도 남쪽해상 왕건함에서 출동한 해군 2함대사령부 소속의 링스가 추락하는 사고가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불행 중 다행히도 3인의 승무원들이 안전하게 구조되었고 기체도 즉시 인양되어 수리하면 재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사고가 이어지자 군당국은 해군이 보유한 전체 링스헬기의 운항을 중지하고 긴급 안전진단 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소청도 인근 추락 링스헬기의 모함이었던 왕건함. 즉각적인 후속조치로 인명을 구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연이은 사고와 보도로 인하여 우리 해군이 운용하는 헬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많이 증폭되었다. 왜냐하면 링스헬기는 육상을 기지로 하여 운용되는 여타 헬기와 달리 주로 함정에 탑재하고 있다가 해상초계 및 대잠임무에 투입되는 헬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창군 후 우리 해군은 오랜 기간 연안해군 규모였고 보유하였던 함정의 크기도 작아서 군함에 해상작전을 위한 항공장비를 탑재하고 다닌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해군에서 헬기를 함에 탑재하여 작전에 투입한 것은 1980년대 초였는데 실전에도 투입되어 전과를 남기기도 하였다.

 
 

한국해군 최초로 헬기데크를 갖춘 구축함중 하나였던 DD-922 강원함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83년 8월 13일에 울릉도 근해에서 있었던 북한 간첩선 격침작전이었다.
미국에서 도입한 일부 기어링급 구축함의 함미를 개조하여 헬기데크를 만들어 해상작전용 헬기를 탑재시켰는데 DD-922강원함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에 강원함에 탑재되었던 SA-319B 알류트(Alouette) III 대잠헬기가 AS-12대함미사일을 이용하여 도주하던 간첩선모함을 격침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1980년대 우리해군이 운용하였던 것과 동종의 알류트 III 대잠헬기

 


당시에 활약한 구형구축함이나 알류트헬기는 모두 현역에서 은퇴하였고 이제 그 자리는 최신 한국형 구축함들과 1990년대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도입한 OO대의 영국제 링스(Mk-99형, Mk-99B형) 대잠헬기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 링스헬기들은 현재 우리 해군이 보유한 OO기의 P-3C, P-3CK 초계기와 더불어 하늘에서 우리의 영해를 철저히 감시하는 매서운 눈은 물론 매서운 발톱의 역할도 담당하는 만능일꾼이다.


 

최근 도입한 P-3CK 초계기

 


최근에 와서 대형 구축함이나 헬기모함 등에 탑재하여 사용하는 여타 해상작전용 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링스헬기가 경량인 점이 단점으로 종종 거론되기는 하지만 세계 여러나라 해군에서 주력 대잠헬기로 사용 중일 만큼 이들 링스헬기들은 이전에 사용하던 알류트 III 기종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성능을 보유하고 있고 안정성도 입증된 기종이다.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여주기를 기대한다


 

비록 이번에 사고가 발생하긴 하였지만 우리 해군이 보유한 링스헬기는 현재도 청해부대의 일원으로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되어 원양에서 여러차례 해적 퇴치 임무에 투입되는 등 우리의 영해를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최선을 다하고있다.
조속히 사고원인이 규명되어 제반 후속조치가 이루어져 원래 대로 임무에 복귀하기를 바라며 지난 사고에서 실종된 대원들과 기체의 조속한 수색이 완료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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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천안함 희생자 가족협의회'는.. "아들을 군대에 보냈으면 나라의 아들이고, 해군의 아들들에게 가장 큰 것은 해군장" 이라며, 국회의사당과 서울광장에서의 장례식을 마다하였습니다.




천안함 희생장병 가족의 기도




천안함 희생자 가족들은, 한주호 준위의 또다른 희생을 보며 자신들의 실종된 자녀에 대한 구조와 수색 중단을 요청하였습니다.



故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을 찾은 희생장병의 가족





그들은.. 일부 여론의 신속한 천안함 절단면 공개 주장에도, 선체 인양에 따를 수 있는 위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다소 시간이 지연됨에도 함미를 얕은 곳으로 옮기는 데에 동의하여 주었습니다.
 
또 그들은, 8명의 아들을 아직 보지 못하였는데도 '산화자'로 처리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이들에 대한 수색도 이젠 중단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생존장병을 위로하는 희생장병의 가족





천안함과 관련된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이라면 희생자 가족들의 모든 주장이 정부와 국민들에게 받아들여 질 수도 있을텐데, 그들은 자식 잃은 부모의 애끓는 성정을 누르고 단호히 이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여러차례 중요한 결단들을 내려주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들도 국가와 군에 대한 원망을 금할 길 없었지만, 이제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애써 참으며 천안함 함장의 입장까지도 이해하려 애쓰는 등 불필요한 국론의 분열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희생장병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모두는 천안함 희생장병들을 사랑하지만.. 지금은 이 나라에 남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들을 생각해 볼 때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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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라이벌[ 3 ] 경쟁자, 하지만 사랑하는 전우

 
                                                        누가 최강인가 ?
 
월남전의 교훈으로 미국은 다기능 다목적 전투기보다 뛰어난 기동력으로 공대공전투에서 적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차세대 초강력 전투기를 개발하게 되었고 공군과 해군이 각각 별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현재도 최강 전투기들로 인정받는 두 놈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합니다.
 
   
                                               공군 F-15 Eagle
 

공군은 최강의 기동능력과 공대공 능력을 갖추었다고 자화자찬하고 대외적으로도 최고의 전투기로 인정받는 F-15 Eagle을, 해군은 장거리 요격능력으로 더 이상 따라 올 수 없다고 자부하는 F-14 Tomcat을 개발하여 제식화하였습니다. 아마도 P-51 과 F4U 이후 최강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해군 F-14 Tomcat
 

F-15는 실전에서 피격추율 0퍼센트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을 만큼 그 성능이 입증된 당대 최강의 파이터로 계속적인 진화를 거듭하며 여러나라에서 아직도 최고의 전투기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반면 특징적인 가변익 형태를 가진 F-14는 이란에게 소수가 공급된 적이 있었지만 주로 미 해군만 사용되었고 최근 완전히 퇴역하였습니다.
 

                                       너무 비싸서 
 
F-15와 F-14가 최강임은 맞지만 강한만큼 비싼 것이 흠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돈 많은 미국이라도 마구 구입하지 못할 정도여서 이들을 보조하는 전력으로 가격은 저렴한 또 다른 경량전투기들을 개발하여 제식화 하는데 이놈들이 의외로 뛰어난 성능을 보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공군 F-16 Fighting Falcon

 
바로 공군의 F-16 Fighting Falcon과 해군의 F/A-18 Hornet입니다. 그런데 F/A-18은 처음 F-16 도입당시 함께 제안되었던 YF-17를 베이스로 하여 개발된 전투기였습니다. YF-17의 인상적인 능력에 주목하였던 해군은 비록 공군기 채택경쟁에서 탈락한 이를 좀 더 개량 발전하여 F/A-18 이라는 또 다른 명품전투기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었습니다.

 
                                              해군 F/A-18 Hornet
 

비록 F-16과 F/A-18은 공군과 해군의 보조전력 개념에서 채택하였지만 오히려 눈부신 진화를 거듭하여 F-15나 F-14와는 차별된 또 다른 다양한 능력을 선보이면서 미국 외 여러 나라의 주력전투기로도 채용되었습니다.  F-16과 F/A-18은 분명히 또 다른 멋진 라이벌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로 그리고 .. 
 
최근 막대하게 소요되는 전투기개발비의 부담과 냉전시대의 해체로 인하여 미국은 외국자본 및 기술을 처음부터 끌어 들여 해군, 해병대, 공군이 함께 사용할 플랫폼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JSF(합동타격기)로 알려진 F-35 Lightning II입니다. 비록 공군이 F/A-22이라는 괴물을 독자 채택하고는 있지만 이것으로 해공군의 라이벌 관계는 끝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F-35 Lightning II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공군과 해군과의 이러한 자존심 경쟁이 어쩌면 한심하고 우습게 보이기도 하지만 과연 이것이 미군의 모습일까요?
 
아마도 그들의 진짜 모습은 전황이 어려웠던 태평양전쟁 초기에 도쿄 공습을 위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육군의 특공폭격비행대를 항모에 탑재하고 위험을 무릅쓴 체 적진 깊숙이 항해하였던 해군의 모습이 바로 진정한 라이벌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미드웨이 해전에서 고군분투하는 해군 항공대를 돕기 위해 뻔히 안 맞을 줄 알면서도 일본 항모를 격침하려 호위 전투기도 없이 제로기가 우글대는 적진으로 망설임 없이 날아가 고공폭격을 감행하였던 미 육군의 B-17 폭격기 편대들도 진정 멋진 라이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평소에는 자존심을 세우며 으르렁대다가도 국가가 위기에 닥쳤을 때 힘을 합하여 난관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 바로 맞수의 진정한 멋진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육해공군도 겉으로는 가장 멋있는 군대라고 치열하게 경쟁은 하되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일사분란하게 행동할 줄 아는 멋진 라이벌로 자리매김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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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라이벌 [ 2 ] 

제트시대에 재현된 개구리들


                                                  공군 F-80 Shooting Star



제2차 대전 후 제트시대가 도래하면서 공군(이때부터 육군 항공대에서 공군으로 독립)의 F-80 Shooting Star와 해군의 F2H Banshee가 최초로 공군과 해군의 제트전투기로 각각 제식화됩니다. 이 당시 미국은 유럽과 태평양에서 사상 최대의 전쟁을 승리하였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전후 세계최강의 위용을 뽐내며 감히 누가 내게 맞서랴하는 자만심이 충만하였던 시기였습니다.


                                         해군의 F2H Banshee


그러다가 선배들인 P40과 F4F의 꼴을 답습하게 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하늘에 제트 1세대의 최강 전투기 중 하나로 인정받는 소련의 MiG-15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말미암아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꼬리를 내리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또 한 번 서로 간에 잘난 척만 하다가 곧바로 사라진 그저 그런 전투기들이 되었습니다.


                                      공군의 승리  


6.25전쟁에서 갑작스런 MiG-15의 등장에 그나마 미 공군은 F-86 Sabre라는 회심의 후속대타가 있었고 이후 MiG-15와 F-86은 항공전사에 길이 남는 인상적인 공중전을 펼쳐 보이며 세기의 라이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면 해군은 사실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은 침울한 시간을 보냅니다.

 

                                          공군 F-86 Sabre 


시급히 도입한 F9F Cougar 등을 써보기도 하였지만 사실 적기는 물론이거니와 철천지원수인 공군의 F-86의 능력과 맞먹는 놈을 쉽게 제식화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사실, 함재기들은 항공모함 탑재를 위하여 공군기에 비해 기체구조에 제약사항이 많을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능력의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제트시대에 와서는 이러한 제약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F-86의 해군용 버전인 FJ Fury
 

해군은 결국 자존심을 뭉개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공군의 F-86을 함재기로 재설계하여 FJ Fury 라는 이름으로 항공모함에 탑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설명하였던 이유로 함재기로 재설계하면서 F-86 고유의 능력을 많이 상실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그저 그런 평범한 전투기가 되며 별다른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합니다. 제트시대에 와서 해군은 더 이상 공군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해군의 절치부심 
 

F-86의 성공에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 공군은 1950년대 일련의 제트기시리즈를 개발합니다. 이른바 센추리시리즈 (Century Series)라고 불리던 F-100 이후의 전투기들이었습니다. 그 첫째 작품이 세이버의 닉네임을 계승한 F-100 Super Sabre로 제식화 된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소련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MiG-19를 충분히 대적 할 수 있으리라 판단  하였습니다.
 

                                                   공군 F-100 Super Sabre


반면 해군은 F-100과 동일한 엔진을 장착하였으나 기동성과 맷집능력이 뛰어난 F8U Crusader를 제식화하였고 이들은 동시에 월남전에 참전합니다. 자만하였던 공군은 MiG-17 과 MiG-21에 믿었던 F-100이 혼쭐이 나자 곧바로 일선에서 후퇴시킵니다. 그러면서 마구 개발 하였던 전투기들을 이것저것 되는대로 참전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해군 F8U Crusader
 

사실 월남전은 미공군기의 능력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정치적 입김에 가해진 교전규칙 때문에 특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같은 제약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동안 절치부심하며 내공을 키워왔던 해군은 F8U의 뛰어난 기동력으로 공대공전투에서 짭짤한 성과를 얻어내었고 서서히 공군의 망신살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공군의 박탈당한 자존심 
 
 

센추리씨리즈를 개발한다고 난리치던 공군이 많은 전투기를 만들어내었음에도 실전에서 뾰족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사이에 내공을 키워온 해군은 희대의 도깨비 F4H Phanthom II를 함재기로 제식화 하였습니다.  그동안 센추리씨리즈가 월남전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초초해진 공군은 평판이 자자한 도깨비를 해군으로부터 빌려서 시험                  

                                             해군 F4H Phanthom II

 
그 결과 지금까지 공군이 개발하였던 모든 전투기들의 능력을 초과한다는 사실에 경악하였고 비록 자존심상하는 일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를 공군전투기로 제식화하기로 합니다. 여담으로 공군기를 함재기로 만들기는 힘들지만 함재기를 공군기로 전환하기는 상당히 쉽습니다.

 

                                           F4H의 공군용 버전인 F-110 Spectre
 

최초에는 공군 제식부호인 F-110 Spectre 라고 명명하였으나 이마저도 1962년 시행된 국방성의 제식화 부호 통일계획에 따라 F-4 Phanthom II라는 해군의 명칭을 그대로 가져다 쓰게 되었습니다. 굳이 공군이 살린 마지막 자존심이라면 기관포를 장착하고 공중 급유구를 해군과 다르게 설치하였던 점 정도라 할 만큼 공군은 라이벌 해군에게 굴욕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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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라이벌 [1]  
                        
                        아군을 깨부수자?



아래 사진은 현재 모두 퇴역한 미 해군의 제공전투기인 F-14의 편대 비행 모습이니, 조금 오래 된 사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을 보면 조금 황당한 구석이 있습니다. 동체에 ' 해군 힘내라! 육군을 깨부수자! ' 라고 쓰여 있는데 만일 평소에 저렇게 글씨를 써 놓고 날아다닌다면 육군의 항의는 그만 두고라도 언론에서 먼저 두들겨 맞지 않을까요?

 

 
아마도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육군과 해군의 정기 미식축구경기(아니면 이와 비스무리 한 행사 때)에서 육군을 약 올리고 해군을 응원하기 위한 비행이 아닐까하고 추측됩니다. 그렇다면 고정익 항공 전력이 전무한 육군은 아파치 헬기나 M1A1 전차에다가 ' 해군을 깨부수자! ' 라고 비슷한 응원 문구를 썼을지 모르겠습니다. ^^
 
그런데 사실 삼군병립체제가 확고한 미군에서 최고의 라이벌을 뛰어넘어 각 군 간에 거의 원수지간으로 경쟁하는 분야라면 해군항공대공군(전신 육군항공대 포함)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공군을 육군항공대의 연장으로 본다면 해군과 육군이 직접적으로 경쟁 할 곳은 사실 하늘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미국의 해군항공대와 공군(육군항공대)의 자존심 경쟁, 그중에서도 특히, 공통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제공전투기분야의 경쟁은 하나의 연속된 에피소드로 볼 만큼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들  

 
제2차 대전 발발당시 전운이 감돌던 유라시아로부터 지리적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미국은 폭격기분야에 주력하여왔던 관계로 당시의 경쟁 군사열강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공대공 전투에 뛰어난 전투기가 없었다고 보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육군 P-40 Warhawk

 
유럽공군이 Me-109, 스핏화이어 등을 제식화 하고 일본해군이 제로라는 명품을 가지고 있었던데 비한다면 당시 주력이었던 미 육군의 P-40 Warhawk와 해군의 F4F Wildcat는 사실 그저 그런 보통 성능의 전투기였습니다. 참전초기에 코피가 터져 본 후에 1:1로 적기와 맞서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을 정도였습니다.

 
                                                해군 F4F Wildcat


하지만 전쟁 전에 하와이같이 양군의 주둔지가 겹친 곳에서는 서로가 잘났다고 상대군 기지상공에서 위협비행, 곡예비행등을 하면서 잘난 척하였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도토리 키 재기, 우물 안 개구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맷집으로 승부한 놈들

 
제2차 대전 당시 미군 프로펠러기들의 특징 중 하나가 못생긴 돌쇠스타일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돌쇠스타일의 전투기들은 기동능력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였지만 반면 스타일에 걸맞게 단단한 맷집을 겸비하여 공중전을 벌이기에 나름대로 적합한 장점은 있었습니다.

 
                                             육군 P-47 Thunderbolt

 
거의 동시대에 제식화 되어 우물 안 개구리들을 급속히 대체한 육군의 P-47 Thunderbolt와 해군의 F6F Hellcat는 그런 점에서 기동능력이 적기보다 뒤쳐지기는 하였지만, 든든한 기체 골격을 바탕으로 급강하능력과 맷집이 뛰어나 적기와 맞서 승리를 이끌어 내었던 공통점을 가진 전투기들이었습니다.

 
                                               해군의 F6F Hellcat


항공 전사를 살펴보면 이들은 꼬랑지를 물려 적기가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때려도 살아남아 상대방 조종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전설이 아직까지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돌쇠들은 육해군간 선의의 경쟁보다도 다음에 소개 할 자군 내의 다른 전투기들과 묘한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프로펠러 전투기의 지존들  

 
제트시대가 본격 도래하였던 1950년대 초기까지 살아남았던 (비록 전투기에서 대지공격 임무로 업종은 변경 하였지만) 명실공이 프로펠러 전투기의 지존들이 바로 육군의 P-51 Mustang과 해군의 F4U Corsair였습니다. 미군 전투기답지 않게 날렵한 자태와 뛰어난 능력으로 인하여 사상 최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한마디로 당대 하늘의 최고봉이라 칭하여도 손색이 없는 천하의 명품이었고 지금도 이들을 능가하는 프로펠러기는 없습니다.

 
                                             육군 P-51 Mustang

 
앞서 설명한 P-47과 F6F도 그랬지만 이들 또한 참전하였던 전역이 서로 달랐습니다.  육군 전투기의 경우는 거의 유럽전선에서 해군전투기는 태평양전선에서 각각 다른 적들을 상대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전력 비교는 사실 힘듭니다. P-51 예찬자들은 최강 독일공군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사실을, F4U 지지자들은 상대적으로 뛰어난 맷집 등을 예로 들며 지금도 설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군의 F4U Corsair

 
그런데 역사상 P-51과 F4U가 직접 실전을 벌인 예가 한번 있었습니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사이에 벌어진 전쟁 당시였는데, 흔히 월드컵 예선전 때문에 전쟁이 촉발되었다고 해서 축구전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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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군이 오늘은 퀴즈를 하나 내봅니다.

국군의 날은 왜 10월 1일까요?

건군 61주년 국군의 날 기념 동영상 시청하시고 생각해보시길~



자!!! 답을 알려드릴께요

국군의 날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양양 동부전선에서 육군 제3사단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해 북으로 진격한 날을 기념하고 국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1956년 대통령령으로 제정한 날입니다. (정확하게는 현 육군 3사단 25연대입니다.) 

이후 76년부터 공휴일로 제정되었다가 1990년에 이르러서는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왜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인지 아시겠죠?

그럼 국군의 날이 왜 61주년인가 궁금하실분들이 계시죠? 사실 1948년 광복후 제헌헌법이 만들어지고 난 뒤 육군 및 해군이 창설되고 이후 해병대, 마지막으로 공군(49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때 공군의 창설일이 1949년 10월 1일이 되면서 오해를 하시는분들이 계시죠.^^ 그래서 국군의 올해 나이는 광복을 기점으로 61살이 된답니다.

별안간 강군이 퀴즈를 내고 동영상을 보여드린 이유는 , 이번 건군 61주년 국군의 날 행사를 소개해드릴려고 그럽니다.


작년에는 건군 60주년 행사로 건군 최초로 강남 도심에서 군사 퍼레이드도 하면서 성대하게 개최되었고, 재미있는 행사도 많았답니다. 올해도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사가 많이 열릴예정입니다.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자면

올해도 어김없이 시가행진이 대전 둔산대공원을 시작으로 ~ 타임월드~ 보라매 공원으로 이어진답니다.  또한 식전행사로  연예 병사들, 사관생도 연합응원단 등 민*군이 함께 하는 축제를 연출할 예정입니다.


'국민 축하 영상 메시지’도 그 일환으로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비롯한 군 원로와 이장무 서울대 총장, 김인식 한화이글스 야구감독, 금난새 경기도립오케스트라 예술감독 등 학계·예술계·스포츠·연예계 등 각계 저명인사들이 국군의 날을 축하하고 장병들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낼 계획입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선진강군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일반인 2,100명을 참관시키기로 하고 국방부 및 육·해·공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14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참관신청도 받고 있습니다.

 ○ 참가신청방법
- 신청기간 : '09.9.11(금)까지
- 신청대상 : 대한민국 국민(초등학교 미만 유아 동반 불가)
- 신청방법 : 참가신청 바로가기를 통해 개별신청(양식참조)
※ 참가신청 바로가기 : http://www.army.mil.kr/rok61/input.jsp
※ 신청조회/취소 바로가기 : http://www.army.mil.kr/rok61/login.htm
 - 신청결과 공지 : '09.9.18(금)/국방부 홈페이지 게시판 공시


신종플루가 유행하는 시기와 겹쳐 대규모 행사에 참여하기가 부담스러우시겠지만, 행사장 입구로부터 신종플루 의심환자는 참관이 제한되며, 체온측정도 철처히 한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분들은 참여해 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가을의 초입이네요. 가을타지 마시고 천고마비의 계절 즐겁게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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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민족의 우주를 향한 첫걸음인 나로호(KSLV-1)의 발사가 중지되었습니다. 자동발사 시퀀스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세계 10번째 우주클럽 국가로의 진입은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물론 오는 26일 이내에 다시 재발사 가능성이 높다고는 하나, 그간 여러번의 발사 연기가 있은터라 아쉬움은 너무나 컸습니다. ㅠ.ㅠ




강군은 지난 17일 밤 우리나라 최초 우주 발사체인 나로호 발사 성공을 취재하기위해 전남 여수로 내려갔습니다. 나로호 발사는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우주센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외나로도항이나 인근 해수욕장에서 지켜볼 수도 있었으나, 강군은 생생한 현장의 상황을 여러분들에게 전달해드리기 위해 해상의 해군 상륙함(LST, 2,600톤)인 비로봉함에서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여수항에서 왕복 8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습니다.ㅡㅡ;;)

해군은 국가적 행사인 나로호 발사를 위해 완벽한 해상경계작전을 수행함과 아울러 국민의 염원이 담긴 나로호의 성공적 발사를 지원하기 위해 500여명의 관광객들 및 취재진들을 태운체 비로봉함고준봉함을 외나로도 인근 해상에 배치했습니다.

2척의 상륙함 지원은 국민들이 바다 위에서 역사적인 첫 우주 발사체를 직접 관람함으로써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줄 의도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결론적으로는 아쉬움만 크게 되었죠. ㅡㅡ;;




비로봉함의 갑판위에 놓여 있는 방송중계시설 및 의자들이 보이시죠. 해군 장병들이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땀방울을 흘렸답니다. 또한 일반인들이 대다수라 안전에도 신경 쓰느라 해군 관계자들의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천재소년으로 유명한 과학자 송유근 가족을 비롯해서 소년, 소녀 가장, 우주소년단 등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많이 참석해 우주영상물 상영 등 교육 체험의 장 또한 제공되었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군악대 연주 및 여러 행사들이 취소되었죠.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를 제공하신 김 전대통령의 서거는 참으로 애통한 일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군함 앞의 섬이 외나로도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웠던건 외나로도를 감싸고 있는 해무(바다위 안개)로 인해, 신문방송사 카메라 및 사진기자들의 원성이 발사중지전까지 군함 내부를 가득채웠다는 사실입니다.^^;;;

해무로 인해 사진 및 영상도 제대로 담을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안전거리 유지원칙에 의거하여 군함이 발사대로부터 3㎞ 이내로는 근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에 카메라를 잔뜩 짊어지고 온 한 관광객은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발사체를 찍을려고 밤새 달려왔는데, 외나로도가 해무로 가려져 나로호의 역동적인 화면을 찍을수 없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강군 역시 너무나 안타까웠답니다.)


나로호 발사현장인 외나로도가 해무로 둘러싸여 있네요.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15분전부터 선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200여명의 관광객들이 하나둘 씩 갑판으로 나와 성공적 발사를 기원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소프트웨어적 결함으로 말미암아 11번째 우주클럽국이길 희망하는 4천만의 염원은 잠시 보류 되었습니다. (다들 아쉬웠죠?)




개발단계부터 나로호는 러시아와의 기술이전 문제로 잡음이 많았습니다. 또한 발사대 부품 공급 차질 및 1단계 로켓 연소의 문제점 등 숱한 어려움과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우주클럽국인 10여개 나라중 아무런 문제없이 로켓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 우주에 대한 첫번째 시도에 성공한 나라 또한 3개국(러시아, 프랑스, 이스라엘)에 불구하고요.




위의 사진은 발사 20분전 나로호의 성공적 발사(?)를 예상하고, 우주소년단의 함성을 미리 카메라 및 캠코더에 담는 기자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 사진 및 영상은 아직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쉬운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곧 보게 되겠죠. 확신합니다 ^.^)

나로호 개발의 책임자였던 항공우주연구원의 이주진 원장은 "이번 발사중지는 실패가 아닌 연기일뿐...다음번 시도는 꼭 성공할 것"이라고 언론 보도를 통해 자신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로호의 성공적 발사를 기대하는 온국민의 염원이 하늘을 감동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번 나로호 발사 현장에 강군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TV로 또는 인터넷으로 신심을 다해 응원할 예정입니다. ^^*

혹자는 "우주를 지배하는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우주를 향한 한민족의 꿈 꼭 실현시켜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해상에서 강군이었습니다.^^
 
*발사 성공을 기원하신다면 추천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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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에 파병된 청해부대(문무대왕함)는 번번이 출몰하는 해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선박의 해상안전을 위해 아덴만 해역에서 성실히 임무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청해부대 문무대왕함은 공식적으로는 총 4차례 해적을 퇴치하였으며, 비 공식적인 구조요청으로 현장에 급파된것까지는 10여차례에 이르고 있습니다.

청해부대 해적퇴치 일지


    그럼 청해부대 문무대왕함은 왜 소말리아로 갔을까요?



  
  과거 전 세계 해적 발생의 30~40% 이상은 동남아 지역 말라카 해협 주변에서 일어난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해안지역의 공동 순찰 강화,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으로 인해 이 지역의 해적 발생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에반해 아프리카 지역은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경제불황으로 말미암아 2007년 이후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동북부 소말리아와 인접한 에덴만 해역에서는 2008년 한해동안 발생한 해적피해가 전년도 13건의 발생의 비해 무려 7배가 늘어난 92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해적문제의 국제정치-이서향 교수' 논문 참조)







  일부에서는 최근 소말리아 주변 해역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해적발생이 중요한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인근 산유국을 드나드는 대형 유조선과 유럽과 아프리카 북미대륙으로 이어지는 항로에 군수물자선과 무역선이 급증함과 궤를 같이 하며, 소말리아 자체의 내부문제(정치, 경제)또한 한 몫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증가하는 해적피해사고로 말미암아 국제해운업계는 이 일대 선박에 대해 추가적인 운송보험료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타임즈(2009.1.27)는 증가하는 해적 피해에 따른 보험료 인상 및 선박의 항해 지역 우회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최소 연평균 약 10억 달러~최대 약 160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해적문제의 국제정치-이서향 교수' 논문 참조)

  위와같은 경제적 피해 외에도 소말리아 해적의 거의 모두가 불법적인 조직인데다 무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국제 테러 단체의 대리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나 WMD 무기 사용까지 할 수 있는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과 연결될 경우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해적의 위협을 막고자 우리의 청해부대가 파병된것은 아니었던것죠. 이런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피해를 고려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또한 대한민국 선박의 피해를 막고자 문무대왕함이 저 멀리 아프리카로 파병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해되시겠죠.^^

   얼마전 현지에서 조달하고 있는 청해부대의 김치가 맛이 없다는 부대원들이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에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우리의 손으로 만든 김치가 지금 소말리아 문무대왕함으로 공수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가까이에서 응원할 수 없지만, 우리 청해부대원들에게 많은 격려 부탁드리겠습니다.^^*




문무대왕함의 링스헬기


   

문무대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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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강군입니다. 요즘은 선진씨와 정예화양이 잘 안보이시죠. 저도 보고 싶은데, 각자의 업무가 바빠서 볼수가 없네요.^^;;;

  지난 주말의 안타까운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오늘은 북한이 2차 핵실험 및 단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한걸로 나타나 강군도 조금 바쁘네요. 오늘은 군관련 재미있는 자료 간단히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The Military Balance(2006-2008)의 자료를 분석해 '세계 각국의 국가별 병력현황 및 국방지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자료는 첨부하였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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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총 병력은 687,700명(육군:560,000명, 공군:64,700명, 해군:35,000명, 해병대:28,000명)인걸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를 끄는 자료는 북한의 인구 100명당 군인은 4.7명이며, 한국은 1.4명 수준인걸로 나타났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북한은 길가는 행인 20명중 반드시 군인이 1명 포함된다는거죠. 그밖에 북한만큼 인구대비 군인이 많은 나라는 아프리카의 에트리아가 4.1명, 이스라엘은 2.7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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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국의 병력 구성 현황(클릭!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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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군내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지난 8일에는 강원도의 모 부대의 훈련병이 행군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9일에는 육군 장병(일병)들의 음독자살 기도가 있었고, 같은날 해군의 모 일병이 총기 사고로 숨졌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강군은 국방부 관계자(병영정책과)를 만나 군내 자살율 및 사망사고 통계를 살펴볼 예정이며, 장병들의 사고예방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볼려고 합니다.

  [인터뷰]  국방부 관계자(병영정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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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군내 사망 사고가 많아지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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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지난 주말 간 발생한 일련의 군 사망사고와 관련하여 유가족과 국민여러분에게 심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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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자님! 군내 자살사고의 원인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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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성향에 차이는 있지만, 복무기간중 개인 또는 가정적인 환경변화 등으로 스스로 부대 업무 및 훈련 등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자살사고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1998년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 군내 장병들의 자살율이 약 10% 정도 증가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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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군요. 우리 한국군의 자살사고가 다른 비교집단에 비해서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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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군내 자살사고 현황은 10만명당 약 11.4명으로 민간인(20대)들의 10만명당 자살자 약 19명보다 낮은 수준이며, 2008년도 미군 자살율(10만명당 20.2명)과 비교하더라도 낮은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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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율이 민간인 및 미군들과 비교해서도 낮은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네요. 그럼 한국 군만의 특별한 자살예방 프로그램은 어떤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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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작년까지는 미군의 자살예방 프로그램인 QPR(Question Persuade Refer)를 장병들에게 적용하여 운용해 왔으나, 우리 한국군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작년 연말에 개발 완료한 한국군 맞춤형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과 스트레스 진단/처방 프로그램을 2009년부터 적용하여 운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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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장병들중 부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도움을 원한다면 어떤 예방조치가 뒤따르나요? 그리고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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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는 05년부터 심리학을 전공하거나 관련 자격증이 있는 병영생활 상담관(105명)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 부대 장교들의 상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간부상담능력 육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대에 적응치 못해 극단적 생각을 하는 병사가 있다면 사단급 이상의 부대에 설치된 병영생활 상담관이나 관련 교육과정을 수료한 장교들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끝으로 국방부로서는 군에 입대한 병사가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대한민국의 성숙된 시민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병사 개인 신상 관리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국민들께서 자녀분들을 군에 보낸 후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군을 믿고 맡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군의 특성상 각종 장비와 위험한 총기들을 다루고 있음을 고려할 때, 장병들의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일선 장교들의 부담감은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없겠구나!!!라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핵가족화 시대에 한 가정에 한 자녀만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는 군장교들의 이런 관리 감독의 부담감은 10배, 100배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이 최대한 만족할 수 있도록 군은 위와 같은 사고예방 프로그램으로 장병들이 무사히 군복무를 마칠수 있도록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게 강군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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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일 전 한때 군 진중문고로 선정되기도 했던 '내생에 단 한번'의 수필집 작가이자 교수이신 장영희 교수(서강대 영문과)님이 10여년간의 암 투병중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언론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군복무 도중 견딜수 없는 고통이 있어서 삶을 마감하거나 탈영할려는 장병들이 있다면 고 장영희 교수님의 책을 보고 힘을 내서 몸 건강히 전역하시길 바랍니다. 장교수님의 희망적인 글귀 몇가지를 보태면서 취재를 마칠까합니다. ^^*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넘고 이젠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장애이든, 인간관계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많은 장애이든." <문학의 숲을 거닐다>(2005, p. 228)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죄이다.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의 감옥 속에 가두어버리는 자살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내 생애 단 한번>(2000, 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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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방부와 국토해양부,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해군기지를 민ㆍ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건설하고, 이와 관련하여 상호 이행해야할 사항들에 대해 협약서를 체결하였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조감도


제주해군기지는 우리나라 해상교역의 99%를 차지하는 남방해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있어, 국가안보 전략상 매우 긴요하다고 판단하여 1990년대 후반부터 후보지를 검토하여 왔는데요.

현 건설예정지는 2007년 5월 제주도가 유치동의와 함께 기지건설 후보지로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건의해 옴에 따라 국방부가 2007년 6월 건설지역을 확정․발표하였고, 동년 12월 국회 예산심의 시, “「민․군복합항」으로의 사업추진 방안에 대해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라는 국회 부대의견에 따라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실시하여 사업추진의 타당성을 검증하였습니다.

또한, 정부는 2008년9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통하여 차질 없는 사업추진을 재확인하면서 제주해군기지를 최대 15만톤 규모의 크루즈선박이 기항할 수 있는「민ㆍ군 복합항」으로 건설하기로 결정하였으며

2009년 1월 국방ㆍ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승인에 따라 보상 및 부지매입, 기본설계가 실시중이며, 금년 12월 공사착수를 위해 공유수면 매립과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협약서 주요 내용(협약서는 10조로 구성)

- 지역발전사업 지원은 지역종합발전계획에 대한 용역연구결과가 나오면 적극 지원할 예정이며,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관계부처와 제주자치도가 참여하는「민ㆍ군복합항 건설지원 협의회」를 구성ㆍ운영함

- 제주도민의 오랜 바램인 알뜨르 비행장 부지는 지역발전을 위해 법적절차에 따라 제주자치도와의 협의를 거쳐 제주자치도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조종사 탐색구조 및 대민지원 활동을 주 임무로 하는 공군 남부탐색구조부대에는 전투기 배치계획이 없음

- 토지매입과 손실보상은 관계법령에 따라 현실성 있는 평가를 실시하여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으며, 공사도 지역건설업체가 최대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

- 기지내의 각종 휴양시설과 편의시설을 지역주민과 함께 사용하고, 민간에 위탁․운영하는 경우에는 지역주민에게 운영권을 우선적으로 부여

협약서 체결을 통해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국가안보와 제주자치도의 지역발전을 위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사업추진 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주민들 간의 반목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조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새로운 관광도시으로 태어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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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될 정도로 블로그의 세계가 활짝 열린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갈수록  블로그 뉴스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지고 있는 가운데  육군 블로그 Army Inside의 누적 방문수가 2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작년 7월에 개설된 것을 감안해 볼때 대단한 발전이다. 지금은 하루 평균 7천 여명의 네티즌들이 방문하고 있다고 하네요. "넘 너무 축하해요." Army Inside의 방문수 200만 돌파를 기념하며 국방부 블로그를 모두 모아보았다.
국방부 블로그는 얼마나 될까요?
궁금하시죠?
 지금부터 국방부 블로그의 세계로 빠져보시죠!
 


육군블로그 : Army Inside
정제화된 사진을 바탕으로 육군의 생활상과 주요 이슈를 올리고 있는데, Army Inside는 군 생활과 관련 사진을 통해 예비역 남성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자는 취지로 개설됐지만 지금은 곰신, 입대장병의 부모, 예비장병 등으로 방문층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블로그의 구성은
▶ DMZ 24(춘,  하, 추,  동)
▶ ARMYLOG(특전사, 기계화부대, 장병양성요람, 아미포커스, 파워아미 UCC, 지상군무기체계, 항공부대, 영화속의전쟁)로 되어 있다.

해군블로그 : blue-paper
메인화면에서 상큰한 바다의 내음이 나지 않으십니까?
blue-paper는  정식 오픈일이 '09년 4월 1일 우리 열혈 3인방과 생일이 같다. 그래서 좀 더 애착이 가긴 한데.......  (조금은 경쟁심이....)
blue-paper는 최근 청해부대의 소말리아 파병과 관련해서 현지 소식을 발빠르게 전해주고 있어 인기가 높다.
블로그의 구성도 해군스럽게
▶ 궁금海, 생생海, 유쾌海, 공감海, 사랑海로 구성되어 있다.

국방부본부 블로그 : 동고동락
잘 알고계시죠? 요즘 대단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동고동락.
동고동락은 현장감있는 군 관련 소식과 다양한 소재로 인기 있는 블로그다. 동고동락도 200만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블로그의 구성은
▶ 국방TV, 꽃보다곰신, 군대추억, 체험현장, 문댕댕의듣보잡툰 등 인기 만큼이나 구성도 다채롭다.

국방부본부 블로그 : 박대위의 말뚝 3년차
박대위의 말뚝 3년차는 지금까지 개설된 국방부 블로그 중 가장 늦게 개설한 블로그로 직업군인들을 위한 각군의 다양한 정보와 각 부대의 감동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달하고 있다.
늦게 개설한 만큼 운영자의 노력이 만만치 않아 그 성장속도가 주목된다.
블로그의 구성은
▶ 용의주도 박대위, 파란만장 박대위, 초보교관 박대위, 사진작가 박대위, 행운절정 박대위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대위가 하는 일도 참 많다.

국방부본부 블로그 : 열혈 3인방
이제는 우리 열혈 3인방을 소개합니다.
열혈 3인방은 국방부 정책블로그를 표방하고 있는데 메인화면은 정책과는 거리가 좀 있는 듯하다. 이는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국방 정책을 알기쉽고 편하게 네티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화면 구성도 친근한 만화캐릭터로 구성하였다.
그래도 소재가 소재인 만큼 방문자가 많지 않아 걱정이다. 그래서 다양한 고객 유치방안을(?) 구상 중이다.
블로그 구성은
▶  현장취재복불복, 정책이야기, 갓구운국방소식, 쟁점말말말, 최기자의독설작렬 등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공군이 빠졌네! 육군과 해군의 활약을 지켜보면 샘도 날법한데....
공군 블로그도 기대해 본다.


다소 많다고 느껴지십니까?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고, 궁금해 하던 군 소식을 다양한 형태로
네티즌에게 전달하여

군 이미지를  보다 친근하게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쭈~욱 열린 국방을 구현하기 위한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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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들어도 가슴 져미는 애틋함이 묻어나는 말
사랑, 고향, 조국 그리고 가족
머나먼 타국에서, 내가족을 만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으로 고통 받는 일은 없어야합니다.

문무대왕의 뜻을 받들고, 장보고 대사의 꿈을 펼치기 위해

내 가족의 행복과 웃음을 위해
언제나 듣기만 하여도 --- 가슴 설레는 나라를 위해
당신의 아들, 딸이 달려갑니다. 



그들은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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