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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5 지뢰밭에 착륙한 독일 4성 장군









지뢰밭에 착륙한 독일 4성 장군.



 

                  륀트스테드 원수처럼 전형적인 프러시아 군인의 풍모를 지닌 쇼베르트 장군
                  위풍당당한
무인의 모습이 그의 덧없는 죽음을 더욱 애석하게 느끼게 만든다.


독일 전략가 크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 말대로 전쟁은 변수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있다.
무수한 변수는 상상을 뛰어 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육상 병력이나 차량을 주요 표적으로 하는 땅 밑의 지뢰가
하늘을 나는 항공기를 폭파해서 탑승원 두 명을 저 세상으로 보낸 사건이 1941년 소련 땅에서 있었다.


탑승원 한 명은 조종사였었고 다른 한 명은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의 4성 장군 지휘관이었다.


지뢰 폭발의 횡액을 입고 비명에 죽은 독일 장군은
독일 육군 오이겐 지그프리드 리터 폰 쇼베르트 대장이었다.

그는 미치광이 히틀러가 '바바로사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스타린 통치의 소련을 대대적으로 침공할 당시 독일군의 선두에 섰던 11군 사령관이었다.


전쟁 초기에 세상을 떠난 바람에 그는
롬멜이나 구데리안이나 
만슈타인 같이 세계 전사에 이름을 날리는 명장의 반열에 오를 기회를 갖지는 못했지만 대단한 능력을 가진 전투 지휘관이었다.



                                  오이겐 지그프리드 리터 폰 쇼베르트 대장


그는 1883년 바바리아 주의 군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서 1902년에 군문에 투신한 전형적인 프러시아 무인(武人)이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때 대대장으로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귀족의 작위를 받았으며,전후 공화정이 된 독일의 군대에서도 능력을 발휘하여 1934년에는 17사단 사단장이 되었다. 이후 1938년 7군단장으로 진급한 그는 폴란드 침공에서 역시 큰 전공을 세웠다.


1940년 9월, 그는 히틀러가 바바로사 작전을 수립하고 소련 침공을
은밀히 준비할 때 소련 남부 쪽에 전개 될 11군 사령관으로 임명 되었다.


드디어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의 전면적인 소련 침공 작전이
개시되었다.


그의 11군은 우크라이나의 남부 평야를
거칠 것 없이 진격해갔다.


작전이 개시되고 전선이 소련 땅으로 깊숙이 확대된 1941년 9월 12일,
쇼베르트 대장은 연락기인 훼셀러[Fieseler]를 타고 전선으로 날아갔다.


 

                                          훼셀러 스토르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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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셀러 스토르치 기는 독일이 전전(戰前)인 1935년에 개발해서 1937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작은 연락기다.

훼셀러 스토르치 기는 날개가 길어 이착륙 거리가 100여 미터로 대단히 짧았다.

이착륙 장치[바퀴]도 비교적 튼튼해서 야지(野地)의 어느 정도 평탄한 곳이면 무난히 뜨고 내릴 수가 있었다.
고정익기이지만 회전익기인 지금의 헬리콥터와 비슷한 기능을 발휘하던 비행기라고 할만하다.

[연락기(liaison plane)는 후에 정찰기 또는 관측기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한국군이 쓰는 O-1(Observation-1) 기는 과거에 연락기(Liaison)의 첫 이니셜을 붙인 L-19였다.]

훼셀러 기는 전쟁 중에 2,900기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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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셀러 스토르치 기는 역사의 장면에 두 어 번 얼굴을 내민다.

1943년 9월 12일 90명의 독일 특공대가 이태리 북부 아스펜 산맥의 고산 리조트 그랑 사소에 위치한 캄포 임퍼라토레 호텔에서 (실각당하고 유폐 된) 무소리니를 구출할 때도 큰 역할을 했었다.


훼셀러 스토르치 연락기는 특공대장 스코르제니 대위와 무소리니를
태우고 절벽 위의 작은 공간을 이용해 절묘하게 이륙 한 뒤 비엔나로 직행, 훌륭하게 구출 임무를  완수했다.



              구출한 무소리니를 태우고 이륙을 준비 중인 훼셀러 기의 조종사 발터 겔라크 대위는
              절묘한 이륙 솜씨를 발휘하였다.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은 열사의 사막을 이 작은 연락기로 누비면서 아프리카 군단을 지휘해서 전설적인 승리를 기록하였다.


훼셀러 기로 전선 시찰 중에도 벌판에 자주 착륙해서 일선 지휘관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판단을 위한 정보를 수집 하는 것이 롬멜의 전형적인 전선 밀착형 지휘 방법이었는데, 쇼베르트 장군도 이런 스타일의 지휘를 한 것 같다.


쇼베르트 장군은 9월 12일 우크라이나의 평원에 착륙하였다.
그가 왜 전선에 착륙했는지에 대해서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통상의 지휘 목적으로 착륙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훼셀러 연락기가 고장 나서 비상 착륙을 했다는 것이다 .


착륙하는 그의 훼셀러 기의 바퀴가 닿은 곳에는 퇴각하는
소련군이 조밀하게 설치해 놓은 넓은 지뢰 지대가 있었다.

휘셀러 기는 착륙해서 불과 몇 초의 활주 중에 지뢰를 밟고 폭발하였다.


대파된 기체 잔해는 그대로 밀려가다가 또 다시 지뢰에
접촉하고 폭발했다. 조종사와 쇼베르트 장군은 탈출은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즉사했다.


그의 사후 11군 사령관직에는 명장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가
부임했는데, 이후 독일군 최고의 명장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지는 불후의 전공을 세우게 된다.


앞에서 말했지만 몇 년 만 더 생존해서 활약했더라면, 그는 독일 전사에서 명장의
반열에 올랐을 텐데 전쟁에서 항상 나타나는 변수에 의해서 어이없는 비명에 간 것이다.


전장에서 프러시아 무인다운 장렬한 최후를 맞지 못하고, 하필이면 지뢰밭에
연락기로 뛰어 들어 맞은 최후에 대해서 그는 저 세상에서 아쉬운 통한의 원념을 머금고 또 머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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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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