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전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4.14 T-50 훈련기가 실전에 투입될 수 있을까?
  2. 2011.04.12 주인이 바뀐 소련제 전차









훈련기의 실전 투입.


한국의 항공기 제작 기술도 장족의 발전을 가져와 이제 KT-1 터보 프롭 훈련기와 수출까지 추진하고 있는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훈련기 두 종을 보유하게 되었다.



                                           T -50 고성능 훈련기


훈련기는 조종사 훈련이 목적이지만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는 적을 공격하는 임무도 주어져있다.

한국의 두 훈련기에도 전쟁발발시 전선 출동의 임무가 주어지게 되어있다. 그러나 이 당연지사 같은 훈련기의 전투 출격에 한마디 해야 할 필요를 느껴 몇마디 적어본다.


전투나 공격 전문의 전투기나 공격기들은 그 이름답게 목적에 맞는
공격 장비들도 다 갖추고 있고 적의 대공 사격에 대비한 방어 장비들도 다 갖추고 있다.


그러나 훈련기들은 이런 실전을 위한 장비가 없거나 단순하다. 다시 말한다면 실전에 투입하는 훈련기들은 적의 대공 사격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 취약한 열등한 성능의 전투기나 공격기라고 할 수 있다.

열등한 성능의 훈련기는 실전 투입시 낮은 생존율과 깊은 연관이 있다.


물론 실전 투입시 대공 방어 능력이 낮은 적을 선별해서 목표로 한다는
상식 수준의 배려는 있어야한다는 생각은 해보겠지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아래에 우리가 훈련기의 실전 투입을 위해서 연구해볼만한 전사가 있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 프랑스에서 개발한 훈련기인 푸가 마지스터
기를 직도입 16기, 국내 라이센스 생산 36기하여 합계 52기나 보유했었다.


비교적 소규모인 이스라엘 공군에
이 정도의 많은 훈련기가 필요없었을텐데 저렴한 푸가 기를 많이 확보해서 훈련뿐만 아니라 실전에 투입하려던 계획이 있었던 것같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보유한 푸가 기 중 20기에 날개에 두 발의 소형 폭탄[50kG,]이나 12발의 80미리 로케트 탄 랙커를 장착하고, 7.62미리 기관총 두 정을 보강해서 실전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개조했었다.


                                                    푸가기 
                   쌍발 엔진이고 수직 미익이 없다.
기본 무장은 7.62mm 기관총두 문뿐이다.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의 선공으로 6일 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 공군의 고성능 미라주나 미스테르 등의 전투기는 총 출동하여 이집트 공군 격멸과 대공 시스템 파괴에 집중하였다.


공군의 공격과 함께 이스라엘 기갑 부대는 시나이 반도를
쾌속으로 진격해 갔다.


전격전에서 기갑 사단의 돌격에 항공기의
근접지원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전 첫날 이스라엘의 고성능 전투기들은 이집트 공군 격멸에 집중했던터라 지상전까지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첫날 훈련기들인 푸가 기들이 로케트를 장비하고
기갑부대 전방의 적들을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6일 전쟁 당시 일선에 출격한 푸가 기들은 임시 변통 공격기로 개조한 20기가 전부였다. 푸가 기들은 진격하는 이스라엘 기갑부대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공격햇다.

           


                                             1967년 6월 전쟁


푸가 기들은 개전 둘째 날부터는 이집트 공군 격멸을 완료한 전투기들에게 시나이 전선을 넘기고 요르단 전선에 출격해서 적 보병과 기갑 포병의 인원과 장비들을 파괴하는 근접 지원 임무를 수행 하였다.


실전에 투입된 푸가 기들은 우수한 이스라엘 조종사들의 능력에 힘입어 지상 지원 
임무를 만족스럽게 수행했다. 

이런 성과를 올린 이면에는 푸가 기가 6대나 격추당한 피해가 있었다. 푸가 기 비행 대대장 아리에 벤오르와 부대대장 아르농 리브낫이 격추되어 전사했다. 불과 2~3일간의 출격에 푸가 기들의 1/3이 격추되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공군 기록은 푸가 기 6대 격추를 예상을 벗어난
큰 피해로 평가했다.


                                       착륙중인 푸가 마지스터 기


현대의 전장은 6일 전쟁때 보다 훨씬 더 복잡해지고 더 살벌해졌다.

6일 전쟁에서는 존재 하지도 않았던 이동식 대공 미사일이나
견착식 휴대용 미사일, 그리고 레이다로 조준, 추적, 발사하는 비호나 에리콘 같은 대공포는 현대 지상군의 표준화된 장비들이다.


북한 지상군들도 이런 장비는 기본으로 다 장비하고 있는
사실이 뉴스 화면에서도 자주 보인다.


이제 한반도의 전장터는 무스탕이나 콜세어 기들이
하늘을 휘젓고 다니며 지상의 공산군들을 두들기던 6.25전의 시절은 아닌 것이다.


6,25때 북한은 미군의 제트 전투기인 F80이 출현했는데도 2인승 훈련기인 야크 7B라는 저성능의 복좌 훈련기들을 편대 출격시켰다가 개전 다음 날 1950년 6월 26일 일본에서 날아온 F-82 쌍발기(트윈 무스탕)에 3대나 격추 당하는 굴욕을 당했었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북한 프로펠러기들은 다시는 미군기에 도전하지 않았었다.


                                            야크 -7B기
       북한 공군은 1950년 6월 26일
미 공군의 제트기가 출현한 수원-안양 상공에 이런 저성능의 훈련기
       후방석에 부조종사까지 탑승시켜 출격시켰었다.



우리는 물론 세계 각국의 공군들은 이스라엘의 전사뿐만 아니라 한국 전사에서 기록 된 북한 공군의 무모한 행동을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보유한 전투 자산을 모두 투입해서 전투역량을 극대화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훈련기의 실전 투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첨단 전투기들의 무대인 공중 무대는 조종사들의 단순한 용기나 우월한 기술만 믿고 뛰어들 공간은 절대 아니다.

훈련기를 실전에 투입할 상황을 기대하고 있다면 당국은 실전 상황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분석을 실시해서 훈련기를 전투에 투입해야 할 이상적인 조건을 미리 설정해야 할 것이다.

비록 훈련기라해도 생존 확률을 높이는 기본 장비는 필히 보유해야 할 것이고 이를 상정한 훈련을 충실히 실시해서 훈련기의 공격 효과와 귀환 생존성을 향상시켜야 하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전투 상황에 직면한 세계 각국 공군들이 숙고해야 할 문제다.

다행히도 초음속 훈련기 T-50은 실전 투입시 다른 어느나라 훈련기보다 공격력도 높고 생존력도 더 강한 여러 기능을 갖추고 있다.

훈련기의 실전 투입이라는 상황에 T-50을 활용할 공군에서 실전에 부응할 수준 높은 시스템과 전술도 함께 개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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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획무기의 재활용 사례 [ 上 ]
 
 
세계가 동서로 갈려 첨예하게 대립했던 냉전 당시에 서방측의 주력전차(MBT; Main Battle Tank) 중 최고의 성능을 가진 걸작이라면 서독의 레오파드(Leopard 1)전차를 꼽는다. 하지만 2차대전의 패전국이라는 치명적인 멍에를 가진 서독의 전차가 실전에 투입되기는 곤란하였고 주로 흔히 패튼시리즈(Patton Series)라고 불린 미국의 M-47/ 48/ 60전차들이 서방측을 대표하는 전차로 활약하였다.
 


                                     냉전 시기 서방측의 대표적 전차였던 M-60
 

반면 동구권에서는 1980년대 이전까지 공산권과 친 소련 국가들의 유일한 무기 공급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소련의 전차 일색이었다. 따라서 2차대전 이후 등장한 미소의 전차는 서로를 숙명의 라이벌로 여기고 상대를 뛰어넘기 위해 항상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전차 사이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고, 이들 무기를 채용한 국가들 간의 전쟁을 통해 미국과 소련의 전차들은 서로 뒤엉켜 싸웠다.

 

                                         같은 시기에 공산권을 대표한 T-55전차
 

이 시기 미국과 소련이 만든 전차가 정면으로 충돌하여 대규모의 기갑전을 벌인 경우는 이스라엘과 아랍 제국 사이에 수 차례 벌어진 중동전에서였다. 동 시대에 있었던 한국전이나 월남전은 지형상 대규모 기갑전이 벌어지기 힘든 환경이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제 전차를 이용하던 이스라엘이 소련 전차를 사용하던 주변 아랍국들과 전투를 벌여 일방적이라 할 정도의 완승을 이끌어 냈다.
 


                                            욤키푸르 전쟁 당시 파괴된 양측 전차
 

하지만 이런 결과는 훈련, 전술에서 이스라엘이 뛰어났기 때문이지 전차의 성능 차이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냉전 시기에 동구권에서 사용한 소련제 전차들의 성능이 상당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인데, 엄밀히 말해 현재 미국의 주력 전차로 명성이 자자한 M-1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미국의 전차가 소련의 전차를 성능면에서 압도한 적은 없었다.

 

                   M-1의 등장으로 미국은 소련보다 좋은 성능의 전차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차로 잘 알려진 T-34의 예에서 보듯이 전차에 대한 기술적 기반이나 생산 능력을 본다면 오래전부터 소련은 이 분야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었다. 특히 1950년대 중반 소련의 야심작인 T-54/ 55전차가 출현하였을 때 피탄 면적을 최소화한 혁신적인 디자인과 뛰어난 기동성 그리고 서방의 전차들을 압도하는 대구경 주포 등으로 인하여 당대 최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소련의 기술력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꾼 T-34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대 최강으로 평가받았던 T-54/ 55전차가 주인이 바뀌어, 그것도 격렬한 전투를 벌인 교전 상대에 의해서 더욱 더 강력한 전차로 탄생한 희한한 경우가 있었다. 1967년 이른바 '6일 전쟁' 당시에 이스라엘이 노획한(사실 버리고 도망간 것을 접수하였다는 표현이 적절) 이집트의 T-54/ 55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유기된 T-55전차들
 

지금도 무기개조 분야에서 감히 어느 나라도 따라 올 수 없는 실력을 가진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인데, 그들은 전리품으로 수확한 T-54/ 55를 개조하여 최강의 T-54/ 55를 만들어 냈다.  바로 Ti-1967 타이란(Tiran)전차인데, 이 전차들로 별도의 기갑여단을 운용하여 아랍의 T-54/ 55와 교전을 벌이기도 하였고 1972년 욤키프르 전쟁 때는 최신식 T-62전차들까지 노획하여 새로운 타이란 전차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이 개조한 최강의 T-55인 타이란 전차 부대의 퍼레이드
 

이렇게 탄생한 타이란은 동급 최강의 T전차로 명성을 날렸고 한때 이들의 주인이었던 아랍 국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이들을 값지게 사용한 후, 외국에 팔거나 무상으로 원조하여 외교적으로 생색을 냈을 만큼 마르고 닳도록 써먹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만행(?)을 지켜만 보고 또한 얻어터지기까지 하였던 주변 아랍국들이 배가 아팠을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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