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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5 냉전과 화해의 기억을 안고 흐르는 독일 엘베강[ 上 ]







엘베강에서 벌어진 냉전의 역사 [ 上 ]

 

 

1945년 4월, 전 세계를 전쟁의 불길로 뒤덮으며 지긋지긋하게 타오르던 제2차대전도 서서히 그 끝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의 히틀러가 소년병까지 동원하며 최후의 발악을 해보았지만, 노도와 같이 동서 양쪽에서 독일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진격하는 연합군과 소련군을 막을 방법은 사실 없었다.

 


 

              이 정도라면 전쟁을 포기 하는 게 맞지만 히틀러는 국민들을 계속 사지로 몰아넣었다.

 


동부전선은 독일과 소련의 완충지대였던 동유럽을 석권한 후 독일 본토로 계속해서 밀려들어오는 엄청난 규모의 소련군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는 와중이었고,
서부전선 또한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독일의 천연요새 지대인 라인강을 도하하여 진군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라인강을 도하하는 미군과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

 


이렇게 동과 서에서 독일의 중심부를 향해 달려 온 소련군과 연합군이 조우한 역사적인 장소가 독일 본토의 중심부를 흐르는 엘베강(Elbe River)이다. 엘베강은 체코에서 발원하여 독일을 가로질러 북해로 빠지는 1,000Km가 넘는 강으로 오래전부터 내륙수운에 사용된 독일의 주요 교통로이기도 하다.

 


 

                                              독일 본토를 가로지르는 엘베강

 


이렇게 독일 한가운데를 상징하는 엘베강변의 토르가우(Torgau)에서 1945년 4월 25일, 미 1군과 소련 코네프(Konev)군이 만나며 더 이상 진격할 곳이 없어지게 되었고, 유럽에서의 전쟁은 그것으로 사실상 종말을 고하였다. 비록 단말마적인 저항이 독일의 곳곳에서 간간이 벌어졌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토르가우에서 조우한 미소 양국 병사들

 


사진처럼 최전선에서 전쟁을 경험했던 미국과 소련의 병사들은 승리의 기쁨과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쉽게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말단병사들의 기쁨과 기대와 달리 공통의 적이었던 나치 독일이 사라지자 이들은 앞으로 이 강의 동서 양편으로 나뉘어 서로 적으로 지내게 될 운명이었다.

 


 

                                    그들은 이 순간을 즐겼지만 적이 될 운명이었다.

 


이렇게 역사적 현장이었던 엘베강은 전후 독일을 동서로 분단하는 경계선이자 이데올로기로 나뉘어 동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냉전시기에 유럽의 최전선이 되었다. 마치 한강 하구처럼 전쟁 전에 내륙수운으로 번창하였던 엘베강 일대는 팽팽한 군사적 대치가 이뤄지면서 침묵의 강이 되어 버렸다.


 

 

                                         냉전의 상징이었던 찰리검문소 경고판

 


그리고 이러한 동서의 첨예한 대치는 사상 최대의 전쟁인 제2차대전이 끝난 지 불과 5년 만에 지구반대편 한반도에서 결국 무력 충돌을 불러와 국제전으로 비화하였으며, 곧이어 베트남 전쟁과 세계를 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은 쿠바사태 같은 위기의 순간을 만들어 내었다. 어쩌면 인류사에 가장 무서웠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을지도 모른다.

 


 

                      쿠바사태는 어쩌면 인류사에 있어 가장 초조했던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쿠바로 향하는 소련 선박을 감시하는 미국 정찰기)

 


1970년대 들어서 조금씩 이러한 긴장상태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데탕트(Detente)시대라 한다. 동서를 대표하는 미국과 소련 양쪽 모두 핵무장을 통한 무한경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 차라리 경쟁이 아닌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선에서 공존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게 된 것이다.

 


 

                                무한 경쟁이 부담스러웠던 미소는 데탕트시대를 열었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핵무기를 감축하는 방법으로 군축을 통한 실질적인 동서 긴장완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면서 이벤트적인 성격의 깜짝쇼를 연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깜짝쇼의 배경으로 독일패전과 분단 그리고 동서 냉전의 상징인 엘베강이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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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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