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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8 주지[住持]가 된 日 잠수함장








주지[住持]가 된 日 잠수함장



일본에는 우리나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종교가 있다.
일본의 개국신[開國神]인 "아마데라스 오오가미"라는 우리나라 단군 격의 여자를 모시는 신도[神道]가 그 것이다.


 

                                       오미와 신사 입구의 도리이


일제가 한반도 강점기에 삼천리 방방곡곡에 신사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한국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했다가 코웃음으로 응수 받았던 일본 민족만의 종교이기도 하다.


신도에도 불교와 같이 절도 있고 주지(住持)도 있다.
절은 신사라고 부르고, 승려는 신관이라고 부르며 신사의 책임자는 궁사[宮司]라고 부른다.



                                          신관, 궁사의 차림세
       직급이 엄격해서 여러 계급이 있고 궁사가 되기 위해서는 국립대학인 신관 전문 교육 기관의 교육을
       필해야 한다.
뒤에 따르는 여자는 신녀라는 신사 소속 여성.


가끔 한국 TV에도 등장하는 인물로서 한국의 버선을
뒤집어쓴 것 같은 건[巾]을 쓰고 포대기 같이 풍성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궁사이다.


궁사에 해당하는 한국어가 없으니 이 글에서는 관례대로
주지로 번역하기로 한다.


일본인들은 신사에 가면 박수를 세 번 쳐서
신을 부르고 허리를 굽혀 집안의 안녕함을 기원한다. 궁사들은 기원의 실행과 봉납은 물론 결혼식과 장례식을 주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궁사는 신도들과 신과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궁사


잠시 이야기를 바꾸어 본다. 태평양 전쟁이 다 끝나가던 시기인 1945년 7월 30일 심야인 00:14
태평양에서 단독으로 항진하던 미국의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 함이 뇌격을 받고 격침되었다.


이 순양함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두 발의 원자탄에 이어 투하할 계획이던 제 3의 원자탄이 적재되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었지만,
사실 이 함은 8월 7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농축 우라늄과 중요한 부품을 샌프란시스코로부터 원자탄 투하 발진 기지인 티니언 섬으로 수송해왔었다.



                                       인디애나폴리스 함. 9,800톤.


임무를 수행한 인디애나폴리스 함은 필리핀의 레이테 근해를 거쳐 오키나와 근해의 미 함대에 합류하고자 항해 중이었다.


인디애나폴리스 함은 너무 방심한 탓에 호위함 없이 홀로 항해했었고
피격후 보낸 조난 신호조차 잘 전달되지 않아 1,196명의 승무원들 대부분이 나흘간이나 표류하였는데 상어와 기갈로 인해 879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이 해역은 세계 최대의 상어 떼가 횡행하는 곳이다. 격침 사실을 모르던 미 해군이 구조선을 보내지 않아 수많은 수병들이 상어에게 잡아 먹혔다.]


인디애나폴리스 함의 격침으로 미군은 전쟁 중 최대의 인명피해를 보았다.
역사상 최대의 상어 떼에 의한 피해이기도 했다.

 

                   표류하다가 구조되어 괌 섬으로 이송된 인디애나포리스 함의 승조원들



인디애나폴리스 함을 뇌격한 적함은 일본 잠수함 I-58함이었다.
함령 불과 2년의 최신식 대형 잠수함이었다.


               I-58. 3천톤급의 대형 잠수함으로 인간 자살 특공 병기인 가이텐 4기를 싣고 있다.
                   I-58에서도 여러 기의 가이텐이 출격해서 미해군 함정들을 공격했었다.


함장은 일본의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하시모토 모치쓰라 중좌였다.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잠수함이었고 함장이었다.

                                               하시모토 중좌.


미 해군사상 가장 끔찍한 피해를 입혔던 하시모토 중좌는 나중에 궁사가 되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생역전이었다.


하시모토 중좌는 패전 후 미국으로 불려갔다.
그의 뇌격으로 승조원 다수가 사망했던 인디애나포리스 함의 함장 찰스 버틀러 멕베이 대령이 지휘태만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기 때문이었다.


증인으로 법정에 섰던 그는 멕베이 대령을 적극 변호하는 증언을 했다.
[멕베이는 사면되고 1949년 소장으로 전역했지만 1968년 자살했다. 평생 인디애나폴리스 함 격침의 심리적인 충격에 시달렸다고 한다.]


                              격침 사건에 대해서 기자 회견을 하는 맥베이 함장.


귀국 후 하시모토는 해운계에 투신해서 상선 선장이 되었으나 상선 선장 생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한국 배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고 배에서 내려야 했고, 1954년에 가와사키 중공업에 입사하여 일본 해상 자위대 최초의 잠수함 오야시오 함의 건조 프로젝트에 종사했었다.

그리고 그의 다음 인생은 바다와는 전혀 관계없는 오미와 신사의
궁사라는 신도의 직업에 투신하는 것으로 반전했다.


그는
궁사라는 직업에 만족한 듯, 죽을 때까지 신사(神社)에서 궁사로서 조용히 지내다가 2000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도 궁사의 직을 이어 받아서 후임자가 되었다.


                                                 오미와 신사.

원자탄을 수송했던 순양함을 격침시켜 수많은 미 수병들을 전사하게 했던 잠수함장이 신사의 궁사라는 길을 간 것이 이색적이어서 일본 기록을 찾아보니 그의 형들도 해군 사관학교 출신이었지만 아버지는 역시 궁사였다.


일본 패전 후 군대는 해산되고 아무런 보상도 없이 직업을 잃은
일본 육해군의 간부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했다.


          I-58함의 전후 내부 모습.  I-58은 전후 미군에게 몰수되어 사세보 근해에서 격침 당했다.


알래스카의 기스카 섬에서 일본군을 감쪽같이 철수시켜 유명해진 함대 사령관
기무라 마사토미중장처럼 염전 사업에 뛰어 들어 큰 돈을 번 사람도 있었고 진주만에서 어뢰 공격을 시도하다가 포로가 된 사카마키처럼 도요다 자동차 회사의 중역이 된 사람도 있었지만 전직 군인들은 대부분은 아주 어려운 생활을 했었다.


해군의 격추왕 사카이 사부로는 인쇄소를 차려서 겨우
생활 기반을 닦기 전까지는 7년간 막 노동자 생활을 했었다.


그러나 종교인의 길을 간 사람도 있었다.
진주만 공격대 대장인 후치다 미쓰오 중좌인데 기독교의 전도사가 되었고 전도차 우리나라도 한번 다녀갔었다.


                                             후치다 미쓰오 대좌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 배우 다무라 다카히로
가 콧수염을 단 후치다를 연기한 것을 기억하는 올드 팬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탄이니 어뢰니 잠수함이니 하는 첨단 병기의
세계에 있던 하시모토의 이미지와 한국인이 보기에 케케묵은 궁사의 이미지는 너무 대조적이다.


                      잠망경을 잡고 뇌격 명령을 내리던 하시모토의 인생 전반부의 자세는
                     
후반부에 이렇게 경배하고 기원하는 자세로 변화하였다.


더구나 그의 뇌격으로 인해 미 수병들이 끔찍하게 집단 전사하였다는 사실도
인간의 행복을 지향하는 궁사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하여튼 그는 궁사답게 자신이 죽음의 길로 가도록 명령했던 가이텐 승무원들과 자신의 공격으로 죽은 미군들의 영혼을 애도하며 평생을 보냈다고 그의 자서전은 전하고 있다. 인디애나폴리스 함장 맥베이와 대조적인 삶이다.

전역 후 여러 이색적인 길을 가는 것은 한국군 출신들에게서도 많이
볼 수 있지만 태평양 전사의 큰 고비를 만든 하시모토는 확실히 이색적인 후반의 인생을 살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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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국방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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