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연평도 포격도발' vs. '우리군의 대응'
                           
 




북한은 '천안함 폭침사태' 이후 8개월 만에,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최초'로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포격하였습니다. 북한의 170여발의 포탄중, 80여발이 육상에 떨어졌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연평부대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법적, 기습적 무력도발에도 북한은 그 책임을 우리측에 전가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우리민족'을 내세우나, 이번 연평도 포격도발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적으로 삼고있음을 명맥히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우리군은 '강한 억제'와 '보복응징 태세'를 재확립하고 있습니다.


     1. 북한 사격 후 13분만에 대응사격, 너무 소극적이지 않았나?


당시 우리군은 통상적 해상사격 훈련을 시행하고 있었으며, NLL지역으로는 단 한발도 지향하지 않았습니다.  

"왜 북한이 사격을 개시한 지 13분 뒤에 대응사격을 했는가?", "왜 80여 발만 사격했는가", 그리고 "공군 전투기로 보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등 국민들의 우려가 많습니다. 


                                          북한의 포격 도발로 검은 연기에 휩싸인 연평도 모습


그러나, 사건 당시 사격진지에는 적의 포탄이 떨어져 포진지 내에 화재가 발생한 상태였고, 그 불길이 탄약고 쪽으로 번지자 포반 장병들은 직접 불길도 진압해야 했으며 생존성도 보장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13분 만에 첫발 사격은 연평부대가 잘 훈련된 부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K-9 자주포는 포사격 훈련 중이었기에 남서쪽을 향하고 있었고, 사격 준비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으며, 연평부대가 북한의 사격이 끝나기 전부터 준비하여 사격종료 직후 곧바로 반격한 것은 오히려 우리 해병용사들이 평소에 잘 훈련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2. 북한포격 절반수준의 대응사격은 교전규칙상 ‘비례성의 원칙’을 어겼다?


당시 우리 군은 북한의 포탄 중 부대 내에 떨어진 것만을 확인 가능하였고 민간에 떨어진 것은 확인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적 포탄의 절반 이상이 해상에 떨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장 지휘관은 사실상 두 배 정도로 대응수준을 결정하였던 것으로, 적절하였다는 평가를 받고있습이다. 북한이 사격한 170여 발은 최종적으로 확인된 육상 및 해상에 떨어진 모든 포탄의 수효입니다.


                                                                 자주포 실사격 모습


   3. 왜 공대지 사격을 실시하지 않았나?    


이는 UN사 교전규칙과 관계가 있습니다. 1953년 유엔사가 만든 교전규칙은, 확전방지를 위해 필요성과 비례성, UN헌장에 규정된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교전규칙이 과연 현실에 적절한가의 논란은 있을 수 있으며, 우리 대통령과 국방부장관도 유엔사와 협의하여 교전규칙을 수정, 보완해 나가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군 장병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희생이 있었음에도 사태의 엄중함을 외면하고, 유엔군사령부가 제의한 ‘유엔사-북한군 간 장성급회담’ 개최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상 금지된 중대 범죄'입니다. 민간인 피해가 나면 전쟁 중이라도 상대방 국가와 국제사회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준칙입니다. 

우리군은 북한의 재도발 의지를 꺾고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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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랑치고 가재잡고
 
 

돌처럼 급하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물을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오랜 세월동안 지구상에서 사용 중인 무기는 예외 없이 인간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무기도 상업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공산품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반 공산품과 차이라면 공급과 수요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최신 전투기인 F-35 조립공장. 보통의 일반 공장처럼 분주한 모습입니다.

 
공급측면에서 볼 때 대다수의 무기는 일반 공산품처럼 이윤을 남기려는 목적을 가진 사기업에서 제작하여 공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만 무작정 만들어서 공급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철저한 통제와 감시 하에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비하여 수요처는 상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무기는 통제 하에 제작 공급이 되지만 이를 제작하는
                             사기업이 이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 제2차 대전 당시 탱크를 생산하여 엄청나게 성장한 크라이슬러 )

 
총기거래가 허용되는 미국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상거래 행위로 개인이 무기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무기는 군, 경처럼 특정 목적으로만 이를 사용하고 또한 통제가 가능한 기관이 수요처입니다. 하지만 불법적인 폭력, 테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무기가 음성적으로 공급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이 경우가 사실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무기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따라서 여타 공산품과 달리 무기는 단지 수요가 있다고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즉, 돈이 있다고 무기를 함부로 구매할 수도 없을 뿐더러, 반대로 생산자는 무턱대고 무기를 팔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무기의 원초적인 존재 이유가 살상과 파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파괴력이 강한 무기는 거래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으며 이것은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부무기는 돈을 준다고 살수도 없고 팔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무기는 경제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정치, 외교적인 변수가 국가 간 거래에 있어 최우선 고려대상이 됩니다. 최신 무기의 경우는 아무리 우방이라도 공급이 불가하거나, 공급이 이루어지더라도 성능이 하향조정 된 다운그레이드 형이 공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최신 무기가 아니더라도 국가 간의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적성국이라면 결코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란에게 공급되기로 하고 제작도중 이란 혁명으로 인하여
                       미국과 국교가 단절되자 금수 조치 된 키드(Kidd)급 구축함

 
때문에 무기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국가라면 정치, 외교적으로 우방이라 단정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공군의 차세대 주력기 도입 계획이었던 FX프로젝트에서 미국과 프랑스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던 예에서 보듯이 단지 우방이라는 사실만으로 무기의 거래가 쉽게 성사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이것은 역으로 우리가 해외에 무기를 수출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FX사업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도입된 F-15K Slam Eagle

 
터키에 공급된 K-9자주포나 인도네시아에 수출된 KT-1훈련기도 있지만 사실 방위산업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의 경우 무기를 외국에 공급한 예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단지 무기를 상품으로만 따진다면 품질이나 가격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외에도 여러 요소 때문에 쉽게 외국으로 수출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터키에서 K-9을 라이센스 생산한 T-155 Firtina

 
그런데 비록 국산은 아니지만 국군이 운용했던 노후 장비들이 우방국들에게 저렴하게 또는 무상으로 공급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보도된 것처럼 해병대에서 사용하던 구형 LVT7A1 상륙장갑차 10대가 인도네시아에 무상 양도되기로 한 것을 비롯하여 필리핀과 가나에 공급되거나 공급 예정된 고속정, 페루에 제공되기로 한 A-36공격기 등이 그러합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 양도가 결정된 LVT7A1

 
이러한 예는 국군의 유휴 장비를 원활하게 도태시킬 수 있으면서도 지원국에게는 추후 국산 방산물자를 수출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사전에 인연을 다져놓는 좋은 정책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보관 및 유지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노후무기를 단지 보유만한다고 전력이 증강되는 시기는 지났고 이는 첨단과학군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에도 당연히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최근 해외 수출을 위해 노력 중인 T-50

 
따라서 시의 적절하게 최신 무기를 도입함과 동시에 노후 장비를 제식무기에서 탈락시켜 이를 외교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정책이라 생각됩니다. 국군이 보유 중인 구형 장비의 대외 지원이 국군의 전력을 보다 첨단화시키면서도 우방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이후 국산방산 물자의 수출에도 기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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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비 트랙백 0 : 댓글 0

혹시 2002년부터 미 육군이 제식화하기 시작한 다목적 경장갑차 스트라이커(Stryker)에 대해서 들어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도 미 육군이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개념 연구 중인 차세대 여단 전투단을 이 장갑차 때문에 흔히 '스트라이커 여단 전투단(SBCT-Stryker Brigade Combat Team)이라고도 부를 만큼 한마디로 차세대 부대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인 장비라 할 수 있습니다.


                  미 육군 차세대 핵심 전술 장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스트라이커 장갑차


C4I(Command, Control, Communications, Computers, and intelligence의 약자로 컴퓨터와 통신을 기반으로 한 종합 지휘체계를 의미)가 장차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판단한 미 육군은 당시 참모총장 신세키(Eric Shinseki)의 주도로 이러한 환경에 따라 작전을 펼 칠 수 있는 새로운 전술단위 부대를 구상하였습니다. 이때 미 육군은 신개념부대에서 사용할 새로운 장갑차를 군수업체들에게 요청하였고, 무려 35종의 후보작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 GM社의 차륜식 장갑차가 채택되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주도한 신세키 미 육군 참모총장


GM의 모델은 당시 미 해병대가 사용 중이던 LAV-25 피라니아(Piranha) 장갑차를 육군이 제시한 요구조건에 부합되도록 개량한 형태였습니다. 여담으로 LAV-25은 원래 스위스 모바크(MOWAG)社가 만든 장갑차를 캐나다GM에서 라이센스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미 육군조차 이미 기존에 제식화 된 장갑차를 개량한 것을 채택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보면 새로운 개념의 무기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tryker의 베이스가 된 LAV-25 입니다.
                     장갑차를 새로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놈은 미군 사상 최초로 전쟁터에서 무공을 세웠던 일반 병사들의 이름을 따서 제식명이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17공수사단 소속으로 유럽 전선에서 무공을 세운 스튜어트 스트라이커(Stuart S. Stryker 1924~1945)와 베트남 전쟁에서 제26사단 소속으로 전공을 세운 로버트 스트라이커(Robert F. Stryker 1944~1967)였는데 그들의 공훈을 기려서 이름이 명명되었던 것입니다.


                                 스튜어트 스트라이커(左)와 로버트 스트라이커


미군은 무기에 유명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육군의 경우는 지휘관들의 이름을 딴 장비가 많은데 예를 들어 M-47, M-48, M-60 전차는 맹장 패튼(George Patton, Jr)의 이름으로, M-1 전차는 애이브럼스(Creighton Abrams)장군의 이름을 따서 정하여졌습니다. 그런 전통을 가지고 있던 미 육군이 무명에 가까운 사병들의 이름을 따서 차기 장갑차의 이름을 명명하였다니 신선한 충격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맹장의 기갑장비의 대명사가 된 애이브럼스(上)와 패튼


비록 현대적 무기의 개발사를 놓고 보면 일천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이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주요 장비를 살펴본다면 '신궁', '비호', '현무' 등 상무적인 이미지가 강한 추상적인 명칭을 많이 부여하여 왔습니다. 물론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제는 우리도 군인, 그것도 창군이후 국군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의 이름으로 무기나 장비의 이름을 지어 보는 것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한국 해군은 인물명으로 함정명을 명명하는 전통을 세웠습니다.

          창군의 주역 손원일 제독과 제2연평해전의 영웅 윤영하 소령을 기려서 명명한 함정들


그것도 유명한 장군보다 스트라이커 장갑차처럼 전사에 길이 빛날 무공을 세웠던 일반병사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 됩니다. 해군의 경우는 충무공같은 역사적인 인물 외에도 최근 인물들의 이름으로 함정명을 정하는 고마운 전통을 세웠지만 아직 육군이나 공군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대부분 전술장비인 육군의 무기류는 병사들과 동고동락을 함께 하는 성격이 강하므로 이런 이름이 붙는다면 병사들의 사기에도 좋은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천둥으로 명명된 'K-9 자주포'


예를 들어 국내 방산 역사상 최고의 성과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K-9 자주포의 이름은 '천둥(Thunder)'인데 한국전쟁 당시 무서운 투혼을 보여주었던 제8사단 제18포병대대의 순국 3용사 중 한분으로 가장 계급이 낮았던 용사의 이름으로 명명하였다고 가정하면 'K-9 심우택, 자주포' 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故 심우택 이병 - 1950년 6월 27일 강릉지구전투에서 아군 포대가 포위당하자 후퇴하지 않고 혼자 남아 아군 야포가 노획당하지 않도록 폐쇄기를 제거하던 중 전사)


                       수많은 무명용사의 피로써 지켜온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물론 우리 군 문화에서는 생경한 제식명이기 때문에 어쩌면 어색한 측면도 있고, 왠지 북한식 노력영웅의 구호를 붙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무명에 가까운 일반 사병들 중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였던 분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한 번 정도는 고려해 봄직 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로 지켜진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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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열혈아 트랙백 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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